반가운 손님
서화 구도순
매우 친한 지인이 사무실에 찾아왔다. 어제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목소리를 전해주던 H 시인이 보고 싶다는 말에 시간 내어 오라고 했다. 스무 해 전쯤 내 사무실에 상담 손님으로 와서 여태까지 친동생처럼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글을 쓰는 취미는 똑같은데, 문학에 힘을 쏟은 기간은 훨씬 선배였다. 평소 서로 시간 여유가 있을 때면 특별한 일이 없어도 편안하게 만나는 사이다.
그녀는 인정도 많은데 음식도 잘하고 야무지다. 글 쓰는 일은 더 잘한다. 모친을 극진히 공경하는 효녀이기도 하다. 바쁜 와중에도 매사가 똑 부러지는 성격에 배울 점이 많다. 그녀의 집 뒷동산에는 텃밭이 있다면서 내 사무실을 방문할 때는 직접 가꾼 채소나 반찬을 들고 오기도 했다. 오늘은 가죽자반, 매실장아찌, 두릅장아찌를 직접 담가둔 것을 가지고 왔다. 반찬통에 넣어 정갈하게 담아왔다. 입맛 없을 때 식사 잘하라고 끼니 굶을까 봐 걱정도 된다고 했다. 애틋한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서 가슴이 찡해졌다. 지난날에도 무, 죽순, 상추 등을 얻어먹기만 하고 어떻게 되갚을까 항상 미안했다.
어쩌다가 만나면 서로 할 이야기도 많다. 나이는 나보다 몇 살 적지만 가족이나 글 쓰는 이야기 등을 하다보면 배울 점이 많아 참 좋다. 만나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금세 식사시간이 되기 일쑤이다. 그럴 땐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런 말이 없어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까운 웰빙식당에 가서 팥죽을 먹는 게 습관처럼 굳어졌다. 날씨나 계절에 관계없이 팥죽을 제일 많이 먹은 것 같다. 오늘도 식당에서 팥죽 두 그릇을 시켜놓고 잠깐 일 보고 돌아오니 그녀가 식대를 이미 지불해 나를 미안하게 만들었다.
마주 보고 웃으면서 따끈따끈한 팥죽을 먹었다. 하얀 새알을 몇 개 남긴 그녀가 배부르단다. 억지로라도 다 먹어라 했더니 쉬어가며 맛있게 먹었다. 식당 여사장이 두 사람 즐겁게 음식을 드시니 기분이 좋다고 했다. 목이 쉬고 피로한 날에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지인이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우린 배부르게 식사를 한 뒤에 오랜만에 사무실 근처 삼동공원에 있는 창원수목원을 산책했다.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는 수목원의 겨울이 한산한 듯했지만,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은 우리 두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 상쾌했다. 산책하면서 선인장 온실까지 구경했다. 겨울임에도 따뜻한 온실 안에서는 여러 종류의 선인장이 한여름같이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모처럼 둘이 잠깐의 여유를 부렸다.
그녀는 나에게 한 가지 약속하자고 했다. 몸 건강해야 우정도 영원하다면서 어떤 경우에도 식사를 거르지 않기로 하자는 얘기였다. 오늘 그녀가 가지고 온 반찬 맛있게 잘 챙겨먹고 꼭 건강해야겠다. 고향집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게 하는 가죽자반, 매실장아찌, 두릅장아찌는 어떤 반찬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보약이라 생각하고 꼭꼭 식사를 챙겨 먹을 참이다. 일주일 동안 반찬 걱정이 없겠다. H 시인의 정성이 대단히 감사하다.
그녀에게 도와줄 것은 없지만 언제라도 사무실에 찾아오는 날이면 반갑게 맞아 격의 없는 정담을 나눌 것이다. 특히 책을 좋아하는 그녀이기에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서 좋다. 그녀와의 우정을 영원하게 가꿔나가리라. 요양병원에 계시는 그녀의 어머님과 H 시인이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