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신앙
말 씀: 마태복음 28:1-10
설교일: 2024. 3. 31 (주일 낮 예배) 부활주일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4년 전 2020년 부활주일에는 코로나 19 초기, 방역 관계로 전국 모든 교회가 온라인으로 각자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다 모이지 못하고 병원에서 예배를 드리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아시고,
이 시간 우리의 예배를 기쁘시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
“우리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 할렐루야 !
예수님은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마가복음 8장 31절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시니” 아멘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시니” 아멘
예수님은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난다고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치신 말씀대로 죽으셨고, 말씀대로 사흘만에 살아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말씀대로 죽임을 당하시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이 땅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거짓말한 예수님을 누가 믿겠습니까?
부활하시지 않은 예수님을 부활했다고 말하는 거짓종교라면
어떻게 2,000년 동안 기독교가 세상에 존재하고, 또 어떻게 여전히 부활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 1절입니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사랑하던 주님이 십자가에서 그렇게 비참하게 돌아가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파서 밥을 먹을 수도 없었고, 잠을 잘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안식일을 보내고, 안식 후 첫날, 첫 새벽에, 예수님의 장례 마지막 절차,
향유를 바르려고 무덤으로 갔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 여인들의 믿음을 이렇게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안식일이 지나기만 기다렸다가 안식 후 첫날 새벽부터 무덤을 찾아가는
그들의 신앙은 행함이 있는 신앙, 곧. (행동하는 신앙)이다.
둘째, 구하기 힘든 값비싼 향유를 준비해서 주님께 드리는
(헌신하는 신앙)이다.
셋째,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고,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으나 전혀 개의치 않는, 그야말로 ‘죽으면 죽으리다 !’ 하는 (순교적 신앙)이다.
행동하는 신앙 – 헌신하는 신앙 – 순교적 신앙
이런 신앙의 여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먼저 6절을 보십시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아멘
그들은 제일 먼저 부활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제 9절 말씀 시작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 아멘
그들은 가장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 여인들과 같은 행함이 있는 신앙, 헌신하는 신앙,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는 순교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주십니다.
여러분 ! 부활신앙, 부활신앙 하는데, 부활신앙은 무엇을 믿는 것일까요?
첫째, 예수님이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의 과거적인 사건을 믿는 거지요 !
둘째, 예수님이 오늘도 살아계셔서 항상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의 현재적인 사건을 믿는 것입니다.
셋째, 요한복음 11장 25-26절 말씀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의 미래적인 사건을 믿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예수님이 나의 죄값을 치루시고 나 대신 십자가에서 죽어 주셨기 때문에
나는 죄로 인한 멸망의 심판을 받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 복음은 죄의 심판을 받지 않는 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복음은
죄의 심판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인간의 숙명인 사망권세에서
해방되어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아멘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십자가 복음은 완성된 복음이 아닙니다.
십자가 복음은 부활의 복음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6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아멘
빈 무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빈 무덤 외에도 부활의 증거는 너무 많이 있습니다.
안식후 첫날 첫 새벽에 무덤으로 달려갔던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이제는 자신들이 체포되고 죽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문을 닫고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 가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안하라 / 성령을 받아라”
또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네 말대로 내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내 옆구리 창 자국에는 손을 넣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제서야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믿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구운생선과 떡을 제자들에게 먹이셨고,
베드로에게는 네가 나를 사랑하는냐고 세 번씩이나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부활을 증명하신 후 마지막으로는 제자들과 500여명의 형제들이 보고 있는 중에 하늘로 올리워 가셨습니다.
율법으로 어떤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증인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부활의 증명은 두 사람이 아닙니다. 500명 이상의 증인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도마처럼 의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심하는 도마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도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에게
“말로만 듣고 의심하지 말라, 직접 나를 만나고, 못자국에 손가락을 넣어 보고
창자국에 손을 넣어보는 체험을 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완전히 세상 지식이나 세상 풍습을 거스르며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해 뜨고 있는 육의 눈을
조금만 예민하게 하늘을 향해 뜨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영의 눈을 열어주십니다.
그러면 그 때부터 예수님이 보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경험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영으로 나와 함께 하심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도마처럼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임을 믿습니다” 아멘
우리교회 나오시던 많은 분들이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사실 죽음으로 이별하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이 바로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곧 우리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데살로니가전서4:13-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은 자도 자는자 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아멘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먼저 가신 분들과 우리는 다 같이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영원토록 함께 있을 것입니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은 우리와 만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 부활하신 예수님이 누구를 먼저 만나 주셨습니까?
예수님은 부활하신 다음 힘있는 대제사장들이나 장로들을 먼저 만나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제일 먼저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 주셨습니다.
소망을 잃고 눈물 흘리며 슬퍼하는, 아무 소망이 없어 보이는 여인을 만나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문을 걸어 잠그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찾아 가셨습니다.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처럼
눈물이 있는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만나 주십니다.
불안해 하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소망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 주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직후에는 예수님을 만나고 동행하는 것이 쉬웠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몸으로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손에는 못 자국이 있고 옆구리에는 창 자국이 있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음식도 나누고, 귀에 들리는 말로 서로 대화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주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더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분은 지금 성령 하나님으로 계십니다.
이 우주를 충만하게 채우시는 만유의 주님으로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 어느 곳에 있어도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과 항상 함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부활은 실험실에서 증명되지 않습니다.
부활은 논리를 통해서 이렇게 저렇게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부활은 오늘 마리아처럼 행동하는 신앙으로
내게 맡겨 주신 일을 하기 위하여 달려가는 그 때에 체험이 되고,
부활은 마리아처럼 헌신하는 신앙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위해, 시간을 드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면서 달려가는 바로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 증명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은 ”죽으면 죽으리이다“하는 순교적 신앙으로
달리는 그곳에서 확증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은 이론도 아니고 추상적인 사상이나 관념도 아닙니다.
부활신앙은 그 복된 소식을 믿고 전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며,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그 나라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달려가는 사람들을 주님이 만나 주시고,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부활신앙은 오늘 말씀에 나오는 여인들과 같은 행동하는 신앙이다.
마리아와 같이 향유를 준비하여 드리는 헌신하는 신앙이다.
죽으면 죽으리다는 각오로 믿는 순교적 신앙이다.
이 신앙으로 주님을 위해 달려갈 때 우리는 늘 새롭게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
우리는 가장 중요한 죽음과 생명의 문제를 때때로 외면하고
스스로 자기를 우상화하면서 허망한 일에 끌려다녔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확고한 부활 신앙을 주셔서
과거, 인류의 역사 속에서 놀랍게 일어난 예수님의 부활과
현재,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며
미래,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예수님을 믿고 살면서
생명이요, 부활이신 예수님을 전하는 능력있는 증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