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작고 강한 나라중의 상징이다. 우리나라 경상남북도 정도의 면적밖에 안 되는데 거기다가 남쪽으로 네게브사막이 국토의 약60%를 차지하고 북으로 훌라호수(갈릴리호수)와 동쪽 요르단과 국경을 이루는 사해(소금바다호수)가 있다. 국토의 서쪽은 지중해요 북으로 레바논 시리아동쪽이 요르단이다. 남남서로 이집트가 있고 네게브사막이 있는 남쪽 홍해쪽으로 시나이반도가 있는데 이 작은 나라에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발상지로 되어 있는것 같아 무종교인의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간다.
먼저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에 대한 관계를 살펴 보고자 한다. 이슬람교와 유대교, 기독교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답 : 같은 서아시아에서 나온 유일신 답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유대교는 구약성경을, 기독교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경전으로 하는데 이슬람교 역시 구약과 신약의 일부 내용을 경전에 포함시켰다. 세 종교는 모두 모세를 선구자로 인정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슬람교가 믿는 알라는 하느님 또는 하나님이란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이라는 말이 없듯이 알라신이라는 말도 잘 못된 표현이다. 알라, 여호아, 야훼, 엘로힘은 모두 같은 신을 가리키는 다른 단어이다. 이슬람교 최고 성지는 메카인데, 예루살렘 또한 유대교, 기독교뿐만 아니라 이슬람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691년(고려광종15년)에 예루살렘에 '바위의 둠'을 건립했는데, 무함마드가 여기서 승천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 종교의 가장 큰 차이는 예수의 위상이다. 유대교는 예수를 인정하지 않고, 기독교는 신의 아들 내지는 신으로 보며, 이슬람교는 선지자로 인정한다. 이슬람교는 예수의 신성은 물론이고 무함마드의 신성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우상 숭배를 철저히 배격하기 때문에 신을 조각하거나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면 안 된다.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또 다른 차이는 원죄이다. 이슬람교는 아담의 죄는 당대에 소멸되었기 때문에 원죄는 없다고 가르친다. 또 이슬람교는 인종을 넘어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이슬람교가 평등한 종교라는 것 때문에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복싱 선수 '무하마드 알리'이다. 이슬람은 '신에게 몸을 맡긴다' 는 뜻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을 무슬림이라고 한다. 이슬람과 아랍은 크게 다르다. 이슬람은 종교이며, 아랍은 민족이다. '기독교를 믿는 아르메니아인' 처럼 '이슬람을 믿는 아랍인'이다. 전 세계의 무슬림 중에서 아랍인의 비중은 15% 정도에 그친다. 사람들이 흔히 이슬람의 교리라 생각하는 것 중의 상당수는 아랍의 풍속이다. 아랍인 중에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도 꽤 많다
유대인들의 불행한 역사로 가깝게는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핍박을 피해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지구를 떠돌다가 1948년5월14일 예루살렘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현재의 이스라라엘이 출범하게 되었는데 이스라엘의 유대인의 총인구가 850만명정도 되고 세계(미국570만,프랑스45만6천명,케나다39만명 등 자유진영 22개국에)에 나가 사는 약800만명 가량이 유대인으로 살고 있으며 미국에 가장 많이 사는 570만명은 한국인 교포의 2배정도이다. 미국에 사는 유대인들은 재계 정계 요직을 장악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말도 있다.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유대인과 슬라브족,집시,동성애자, 장애인,정치범 등 약 1천1백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
이스라엘 요약 : (면적) : 한국의 4.6분의1(경상도 크기) / 인구 : 약 852만 명 / 지중해 동쪽 끝에 위치해 있는 중동의 국가. 남북길이가 약 400km, 동서길이가 가장 넓은 곳이 121km에 이른다. 수도는 예루살렘이며 화폐는 이스라엘 쉐캐림이다. 국민의 대부분이 유대인이며 종교는 77%의 국민이 유대교이다. 서비스업과 제조업에 바탕을 둔 혼합경제체제이며, 국민총생산(GNP)은 인구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1인당 GNP는 개발도상국과 비교해 낮은 편이다.
팔레스타인 요약 : (면적) : 한국의 16분의1 / 인구 : 498만 명 / 팔레스타인은 고대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있었던 지역을 뜻하며, 동시에 2013년에 수립된 나라를 의미한다. 지역으로서의 팔레스타인은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에서 모두 신성시하는 지역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유대와 아랍의 민족운동 진영의 분쟁지로 주목을 받았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이스라엘 간의 오랜 분쟁 중 1993년 평화정착을 위한 기본적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되었고, 2013년에는 팔레스타인 국이 수립되어 국가 지위에 대한 인정을 받았다.
예루살렘 요약 : 이스라엘의 실절적 수도는 텔아비브라고 할수있으나 역사와 종교적인 측면으로 보면 예루살렘은 공존의 도시다. 인구가 933,000명(광역인구1,700,000명)으로 보면 유대인구역 아르메니안구역 종교와 인종이 공존하는 예루살렘은 8개의 성문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 다메섹문인데 기독교와 이슬람지구 사이에 있고 이문에 들어서면 아랍시장으로 이어진다.또한 예루살렘에는 폭이 60m 높이가 18m인 유대인 최고의 성지 '통곡의 벽'이 있는데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고 세계를 방랑하면서 이곳에 오기만 하면 통곡하며 기도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팔레스타인 개요 :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역사적 지명이자, 2013년 1월 이 지역의 일부에서 독립 국가로 수립된 국가의 명칭이다. 지역으로서의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여러 지역을 포함하며, 대체로 서쪽의 지중해에서 동쪽의 요르단 강까지, 북쪽의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지대에서 남쪽의 가자 지구에 이르는 지역을 가리킨다. 아랍 민족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이 7세기 이슬람 제국의 정복 이후 이 지역에서 살아온 아랍 민족의 고향이며,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플레셰('펠리시테인의 땅'이라는 뜻)에서 나온 그리스어 팔라이스티나에서 유래되었다. 플레셰는 필리스티아라고도 하는 이집트 북동쪽의 작은 연안지역을 가리킨다.
BC 2세기에는 로마인 사이에서 이전 유대지역을 포함하는 시리아 주의 남쪽 1/3 지역에 대해 시리아 팔라이스티나 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요르단 강에서 서쪽으로 지중해 연안에 이르는 영국의 위임통치 지역을 가리키는 공식 명칭으로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이 다시 쓰이게 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이 이 지역 영토를 점령하고 독립을 선언하면서 유대와 아랍의 민족운동 진영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분쟁지역으로 남아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과의 국경을 경계로 1994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수립되었고, 2013년에는 팔레스타인 국이 수립되었다.
팔레스타인 위치(자연지리) : 팔레스타인의 경계는 역사를 통해 심한 변동을 거듭했으나, 일반적으로 서쪽의 지중해 및 연안평원에서 중간지대인 하셰펠라를 거쳐 고대 히브리 왕국들의 심장부인 유대와 사마리아 산악지대에 이르는 영토를 포함한다. 동쪽에는 유대 광야(미드바르예후다)가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북쪽 부분인 요르단 강 유역을 향해 비탈져 있으며, 남쪽에는 건조하고 험한 네게브 사막이 아카바 만까지 이어진다. 북쪽에는 사마리아(남쪽)와 갈릴리 산악지방 사이에 넓고 기름진 에스드라엘론 평원이 펼쳐진다.
갈릴리 산악지방은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높고 관개가 잘 되는 지역으로 갈릴리 동쪽에는 갈릴리 호와 예전에 물이 흘렀던 훌라 계곡이 있다.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시대에는 지금의 레바논 및 시리아 대부분 지역까지를 포함하는 왕국이 존재했다(BC 1000경). 팔레스타인은 해발 821m의 예루살렘 북부지역과 해면보다 약 400m가 낮은 사해 연안지대(지구에서 가장 낮은 육지)가 겨우 23km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 지형적으로 급격한 대조를 이룬다. 기후는 겨울에 비가 내리는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연평균 강우량은 내륙인 동쪽으로 갈수록 점점 줄어든다.
초기 역사 : 이곳은 일찍이 초기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정착해서 살아왔으며, 역사시대에 들어서는 중동지방을 거쳐간 거의 모든 세력에 차례로 점령되었다. 그 가운데 이집트·아시리아·바빌로니아·페르시아·마케도니아 제국과 그뒤를 이은 프톨레마이오스·셀레우코스 왕조 등의 여러 제국들,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 우마이아 왕조, 아바스 왕조, 파티마 왕조, 십자군, 아이유브 왕조, 맘루크 왕조, 오스만 제국 등이 꼽힌다.
성서시대에는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자리잡고 있었다. '성지(聖地)'라고도 불리며, 정도는 다르지만 유대교· 그리스도교·이슬람교 등에서 모두 팔레스타인 지역을 신성시한다.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에레츠 이스라엘'('이스라엘의 땅'이라는 뜻)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하느님이 약속한 땅이자 가장 거룩한 곳으로 유대민족 독립의 중심지였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와 사도들이 생활하고 복음을 전파한 현장으로 중시되며, 이와 관련된 몇몇 성스러운 장소들이 발견되었다. 이슬람교도들은 예언자 마호메트와 관련된 일정한 곳들을 거룩한 장소로 여긴다. 1920년대초부터 시작된 시온주의자들의 이주 시기와 특히 1948년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진 이후에 이 지역을 중심으로 아랍 민족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근현대사 :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제연맹의 결정에 따라 영국의 위임통치하에 놓였다. 이 위임통치는 영국이 정책적으로 팔레스타인의 유대민족 국가 수립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1917년 밸푸어 선언을 구체화한 것이었다. 영국의 통치는 1948년까지 계속되었으나 다수 민족인 아랍인과 세력이 점점 커가는 유대민족 모두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합(UN) 총회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넘기게 되었다.
UN 총회에서는 1947년 11월 29일 팔레스타인에 아랍인 국가와 유대인 국가를 따로 세울 것을 제안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고,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수립이 선포되면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영국 관리들도 철수했다(팔레스타인 분할). 그후 이스라엘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주변 아랍 국들의 정규군이 팔레스타인으로 진격하면서 벌어진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 갈릴리 지방, 연안지역, 이집트 점령 가자 지구 일부, 네게브 사막, 예루살렘 북서부지역을 포함해서 UN의 원래 분할안(案)보다 50% 정도가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약 72만 명의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이스라엘을 떠나 주변 아랍 국가들에서 난민생활을 하게 되었다. 1950년 요르단 왕국이 UN의 계획대로라면 이 지역에 세워질 아랍국의 영토에 포함된 요르단 강 서안(5,180㎢)을 공식적으로 합병했으나 국제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후에 웨스트뱅크로 알려진 이 요르단 점령지역은 1967년 가자 지구, 시나이 반도, 골란 고원, 동(東)예루살렘과 함께 이스라엘에 점령되었다 (웨스트뱅크). 1979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 조인되면서 규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1979∼82년에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되돌려주었으나 웨스트뱅크, 가자 지구, 골란 고원, 동예루살렘은 계속 점령해왔다.
국가로서의 팔레스타인 : 이스라엘과의 대립과 팔레스타인 공동체의 구성 ~ 1948년 이스라엘 수립에 뒤이어 전쟁이 벌어진 1948∼49년과 종전 직후의 기간 동안, 새로 생겨난 이스라엘 지역을 벗어나 이웃 아랍 국가로 망명해 정착한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또한 6일 전쟁 이후 웨스트뱅크, 가자 지구, 동예루살렘 내에서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거나 이웃 국가에 흩어져 사는 아랍인들도 팔레스타인 공동체의 일원으로 간주되었다. 반면, 건국 이후에도 이스라엘 내에서 계속 거주하며 그곳의 시민이 된 아랍인들은 현재 이스라엘 아랍인으로 불리고 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아랍 연맹은 1974년 10월 모로코의 라바트에서 열린 정상 회담에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PLO)를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유일한 대표 기구로 인정했다. PLO는 1969년 헌장에서 분명하게 밝힌 것처럼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제거하고 팔레스타인 위임통치지역 안에 이슬람교도·그리스도교도·유대교도 각각의 독립국가를 건설할 것을 천명해 왔으나, 1988년에 이를 약간 수정하여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한 2개 국가 수립안, 즉 이웃 이스라엘과 공존하게 될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안에 대해 처음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인티파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립
1993년 이스라엘과 PLO 간에 평화정착을 위한 폭넓은 기본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PLO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실제적 권한을 인정한 대신, 이스라엘은 PLO를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해 유일한 대표성을 갖는 단체로 용인했다. 그리고 양측은 웨스트뱅크, 가자 지구의 통치권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점진적으로 이양하고 그 지역 내에 주둔한 이스라엘군을 단계적으로 철수시키는 5년간의 과도기간을 둔다는 데 합의했다. 이를 통해 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되었다. 1996년에는 웨스트 뱅크, 가자 지구의 영속적 지위에 관한 협상이 시작되었다. → 중동전쟁,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팔레스타인국의 수립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국제적 발언권을 확보하기 위해 2011년 11월 유엔 산하기구인 유네스코에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내의 강경파인 하마스 세력과 협상파인 파타당 세력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내분 수준의 갈등을 겪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국가로 국제적 지위를 격상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2012년 11월 29일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을 옵서버 국가의 지위로 인정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고, 2013년 1월 3일 팔레스타인국이 수립되었다. 전 세계 138개국에서 국가로 승인하는 데 찬성했다. 한국은 국가 지위 투표에서는 기권했으나 팔레스타인국의 대표성은 인정하고 외교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2005년부터 행정수도인 라말라에 대표부를 운영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아랍 및 이슬람권 국가들과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편이나, 적대적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 이스라엘을 정점으로 하는 외교적 갈등이 다른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에서 쟁점이 되고 있다.
정치경제적 상황
팔레스타인국의 정치는 주로 온건파인 파타와 강경파 하마스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며, 그밖에 이슬람 권의 시아파와 기독교도로 구성된 소수 정당들이 존재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하부조직이었던 하마스는 반 이스라엘과 반 서방의 성향이 강하여 온건파인 파타와 물리적 충돌을 마다하지 않는 편이다. 하마스 세력에 의해 통치되는 가자 지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대하여 파타가 주도하는 팔레스타인국이 통치권을 실현하고 있다. 팔레스타인국은 미국과 이스라엘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국의 수도는 예루살렘이지만 실질적인 행정수도는 라말라이다.
팔레스타인국의 경제는 이스라엘 정부에 예속되어 있는 상황이다. 국가 재정의 많은 부분을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원에 의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 일대의 농업과 산업의 기반 시설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국 자체의 경제활동은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 국민의 실업률은 50%가 넘으며, GDP는 이스라엘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팔레스타인국 전역이 분쟁지역이어서 여행은 제한되고 있다. (이상 일부 인터넷 글 편집)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13시간을 타고 가면 텔아비브 벤구리언 공항에 내릴수 있다. 지중해로의 관문이자 시작이 되는 욥바(텔아비브)는 히브리어로 '아름답다'라는 어원을 가지며 구약시대부터 가장 오래된 항구도시로 이스라엘의 관문이자 훗날 세계를 떠돌던 이스라엘 이민자들이 고향을 찾아 들어온 곳이다. 이 항구 가에 있는 주춧돌이 모든 이스라엘의 고도를 재는 기준원점이다(우리나라도 인천 인하대학교 교정에 수준원점을 나타내는 표지석이 있다) 욥바는 이스라엘 3대왕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위해 백향목과 금을 들여왔던 항구로도 유명하다.
100년전통 욥바 벼룩시장으로 가본다. 19세기부터 욥바텔아비브 구시가지에 자리하고 있는 벼룩시장으로 이스라엘의 다양한 골동품과 먹거리를 구경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이 욥바에 있다. 초입에 주렁주렁 목걸이를 파는 가게가 있다. 베두인들과 중동의 여성들이 하는 다양한 악세사리는 마치 비가 내리는 빗줄기처럼 주렁주렁 흔들리며 여행자를 반긴다. 광야의 양과 염소가 내는 소리와도 같다.이 소리를 들으면 양과 염소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죠. (베두인족은 중동 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부족으로 이스라엘 네게브사막에 약20만명이 거주하며 손만 들어도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 베두인의 특징이 있으며 깊은 광야에 동떨어져 살아도 TV도 있고 전기도 쓰고 살아간다.)
깊숙한 골목 안엔 또 뭐가 있을까? 크나페(둥근빵)이요 방금 만들어서 아주 맛있어요 치즈를 위에 얹고 버터를 넣어서 만들어요, 이것도 한번 드셔보세요(여인이 권함).제가 먹으면 살이쪄요, 댁이 먹어줘요. 도와줘요, 귀엽게 말한다. 치즈맛이 굉장히 달아요, 디져트로 먹으면 우리 입맛에도 맛을 것 같아요, 만드는 방법이 독특한 국민간식 크나페였다.
자몽농장으로 간다. 예로부터 유럽으로 수출된 자몽이 주렁주렁 달려있는게 과일 천국 같다. 한개를 쪼개서 맛본다, 쓴듯 해도 즙이 굉장히 달아요. 여기 원액 즙도 있어요 하며 주인이 통채로 즙을 짜서 여행자 이강근 입에 넣어준다. 에덴동산에서는 장송을 사람만 먹는게 아니라 개도 한입 물고 있어요 한다. 2019년 기준 자몽수출 세계7위라고 자랑한다.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값이 우리나라보다 5분의1가격 으로 엄청 싸다는 것이다.
메롬이란 호수의 철새도래지로 가본다. 훌라호수는 구약성경에 높은장소 란 뜻의 메롬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390여종의 철새와 5만마리가 넘을 두루미를 보러 인근 주민을 비롯 관광객이 수없이 모여드는데 자전거 골프카들이 등장 하고 임대료가 장난이 아니다. 이강근 여행자도 6인용 골프카(55,000~95,000)를 렌트 했는데 가족끼리 온사람 투어로 혹은 친지끼리 등 인파가 엄청나게 많았다.이 철새 도래지 훌라호수 늪지대는 유럽에서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철새들의 실크로드라고 한다.
유대인들의 성년식 '바르미츠바' 란 성인이 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성년식을 하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남자는 13세 여자 12세가 되는 성년의식은 주인공을 의자에 앉혀 어른들이 들어올리는데 유대인들의 전통 문화의식으로 성인식순은 토라낭독 토라에 대한 토론 축하파티를 하는 것인데 성년식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계약이라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기는 '모세오경' 두루마리를 주인공이 들고 성전에 옮겨 놓는다.
다메섹 문너머 펼쳐지는 아랍시장 바로 이 재래시장이며 2000년전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로마식 도로 '카드로' 위에 형성된 시장이다. 십자군시대에 만들어진 쓰리마켓에 속한 점포(정육점,향료,금은방)는 현대에서 고대를 읽는 최고의 재래시장이다. 중동전역에서 즐겨 먹는 음식중 하나로 '케밥'이 있는데 이스라엘에서는 피타(빵)에 고기와 채소를 넣어 먹는다. 우리는 요리할 때 화학 조미료를 많이 쓰지만 이곳은 '자타르' 라고도 하고 '우슬초' 라고도 하는 향료예요 라고 쟈콥(향료가게사장)이 말한다.
이스라엘 물건인데 닭,채소,토마토,감자 등 요리에 좋아요, 예전에 병원이 없었을때 향신료 가게에서 향신료와 허브 등 을 팔았고 우리 가게는 이스라엘 전 지역에 향신료를 팔기 시작한 첫번째 집이예요. 라고 가게주인 자콥이 자랑한다. 나바테안 스테이션은 나바테아인이 네게브사막 주요 교차로에 지은 휴게소로 향신료 교역을 하던 대상들이 쉬어가던 쉼터였다. 광야에 '아브닷' 이라는 곳이 있는데 상인들을 위해 향료길에 세워진 고대 도시중 하나로 기원전 4세기경 번성했을것으로 추정된다. 도시 헝태가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향료를 실은 대상들을 보호하며 번영을 누렸던 나바테아 왕국은 광야의 오아시스였다.
광야의 오아시스 엔게디 : 이스라엘 북부에 있는 유대 광야와 사해사이의 오아시스를 히브리어로 '사슴(염소)의 샘' 이라는 의미를 지님, 엔게디에 도착하면 이스라엘 전체 국립의 상징인 누비아아이벡스가 살고 있는데 사막에 주로 서식하는 염소과 포유류 동물로 바깥으로 그부러진 뿔의 길이는 평균 120cm에 달한다. 엔게디 골짜기 사이로 보이는 사해의 모습이 아침저녁 시시각각 변하는 색깔을 보는것이 물방울 떨어지는게 꼭 보석알갱이 처럼 보인다. 베두인족 여자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그들의 집으로 초대되어 집구경도 했다.
에덴동산을 꼭 닮은 벧샨은 고요한 집이라는 의미를가진 이스라엘 북부의 도시로 고대 로마시대의 극장과 도로 등이 남아있다.벧샨성에 올라보니 동쪽으로는 요르단 남쪽에서 북쪽으로는 헤르몬산이 연결되어 있다. 서쪽은 지중해에서 이스라엘 골짜기를 타고 흐르고 있기때문에 4개의 교차로지점에 벧샨이 있다.(고대 이집트왕국의 가나안땅의 일부) 다윗(고대이스라엘2대왕)이 정복한 뒤 이스라엘에 속한 벧샨은 훗날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이 점령했으며 고대 최대규모의 벧샨은 로마시대의 도로와 석주가 아직도 남아있다.
로마의 원형극장도 남아있다. 이곳에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라는 70년대 세계적인 뮤지컬 영화를 촬영했다. 이 영화를 보신분이 있다면 아마 대부분의 벧샨 유적지가 낯 익으실 것이다. 바로 벧샨이 '지저스크라이스트슈퍼스타' 의 무대였으니까. 벧샨의 최고의 인기유명소 공중화장실도 자취가 남아 있다. 돌을 깎아 만들어진 물이 흐르는 로마시대의 화장실은 칸막이가 없었다는 거예요, 경사가 있어서 앉으면 저절로 쏙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여기는 자동으로 물이 흘러가서 휴지가 필요 없어요. 용무를 보며 즐거운 대화도 나눌 수 있었지요, (여행자 이○근 님 설명이다.)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동, 베들레헴 유대인 지역과 분리장벽으로 나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내의 관광도시로 예수가 탄생한 곳으로 유명함, 베들레헴은 도시 이름이 빵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피타는 아랍지역에서 이스라엘로 전해진 중동 전통빵으로 밀가루를 발효시킨 뒤 둥글고 납작하게 구워낸다. 베들레헴에는 예수의 탄생 장소로 알려진 동굴위에 지어진 교회가 있는데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교회를 들어갈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원래 4~5세기 비잔틴 시대에는 높은 문이 있었어요,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탄생하셨다는 장소에 예수님의 역사를 품은 예루살렘 평화의 도시란 이름과 달리 아픈 역사의 땅 예루살렘, 바로 유대인 최고의 성지 이 통곡의 벽입니다. 라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