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2권 1-61 영사詠史 한선제漢宣帝 한나라의 선제
선제중흥입오년宣帝中興卄五年 한나라의 선제가 중흥한 지 25년에
관인대도이소연寬仁大度已翛然 관인寬仁하고 대도大度하던 태도 이미 사라졌네.
신한법률심전촉申韓法律尋前躅 신申·한韓의 법률이 앞의 자취 찾으려 했고
왕패공명혼후전王霸功名混後傳 왕도王道ㆍ패도覇道 공명을 후대에 섞어 전하였네.
극분요황우접대極憤要荒優接待 요복要服·황복荒服을 분개해 우례優禮로 접대하고
감차환수전승선堪嗟宦竪典承宣 애석한 일은 내시 시켜 명령 맡게 한 것일세.
대저책비어계중大抵責備於契重 대체로 책임 다함을 어진 이에게 요구하니
계후쇠징가피건啟後衰徵可避愆 후대의 쇠망할 징조 연 그 잘못 어찌 피하리?
►신한법률申韓法律
한나라 때 처음의 몇 임금은 관인寬仁하고 대도大度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선제宣帝는 형법刑法을 엄하게 하는 신불해申不害. 한비자韓非子의 학설에 따라 법치 국가로 만들었다.
►요복要服·황복荒服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을 말한다.
진복鎭服 밖 5백 리를 번복藩服
번복 밖 5백 리를 완복緩服
완복 바 5백 리를 요복要服
요복 밖 5백 리를 황복荒服이라 했는데 이를 5복五服이라 하였다.
요복은 왕기王畿 둘레의 1천 5백리 내지 2천리의 땅을 말한다.
<서경書經> 우禹에 “五百里服”이라 하였다.
황복은 9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땅이다.
►환수宦竪
선제宣帝는 대신을 직접 만나 명령을 내리지 않고 내시를 시켜
임금의 명을 전하게 하여 그 후에 내시들이 황제의 명을 조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한선제漢宣帝(BC91-BC49)
유순劉詢. 전한의 제10대 황제.
초명은 병이病已, 자는 차경次卿.
할아버지 여태자戾太子 유거劉據가 무고巫蠱)의 일에 걸려 자살하고
부모가 모두 해를 당하자 민간에서 길러졌다.
이 때문에 민심의 동정을 잘 알았다.
소제昭帝가 죽자 곽광霍光이 창읍왕昌邑王 유하劉賀를 영입했지만
얼마 뒤 황음荒淫하다는 이유로 폐위하고 그를 맞아 옹립했다.
즉위한 뒤 통치를 마음을 쏟아 현능賢能한 사람을 기용하고 이치吏治를 중시하여
패도覇道와 왕도王道를 적절하게 사용해 명실상부한 정치를 꾀했다.
또 서역도위西域徒尉를 두어 변방의 방위를 강화하고 서역 지방의 생산을 발전시키도록 했다.
감로甘露 2년(기원전 52) 남흉노南匈奴의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가 항복하자 長安에서 접견했다.
25년 동안 재위했다/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