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현실 인식과 서정적 화해, 그 진실 --송수복 시집 『봄이 오는 길목에서』 김 송 배 (시인.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나’의 확인과 존재의 인식 현대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관찰되는 것은 시적상황과 거기에 잠재된 시인의 인식을 인용(認容)하면서 공감하는 일이다. 그 시인의 인생론과 같은 깊은 사유(思惟)나 숙성된 정서가 그 작품 속에서 광채를 발산하면서 우리들에게 다가와서 큰 울림을 제공하는 것이다. 시의 위의(威儀)나 본령(本領)은 특수상황이나 특별한 인생론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보편적인 일상에서 살아온 체험을 재생시키면서 시인의 심미안(審美眼)으로 이미지를 추출하고 거기에 지적인 지향점을 표현하는 점을 우리들은 간과(看過)하지 못하는데 이러한 맥락으로 송수복 시인의 첫 시집 『봄이 오는 길목에서』를 일별해 보면 자신의 체험에서 존재를 인식하는 다양한 어조(語調)를 엿보게 한다. 송수복 시인은 우선 ‘나’라는 화자(話者)를 내세워 시간과 공간의 화합을 유도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성숙한 인생론을 창출하려는 원대한 심저(心底)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은 ‘칠십 년 희로애락은 / 가슴속에 숙성된 언어로 / 푸르른 사월의 시가 되어 / 사랑으로 무르익으니 / 끝내 꿈은 이루어지더라.(「사월의 시」 중에서)’라는 자신의 삶에서 동일한 사유의 시혼(詩魂)을 투영함으로써 인식의 세계를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송수복 시인은 이처럼 사소한 주변환경에서도 ‘시’라는 진실을 만났기에 인생과 삶의 조화를 어렵지 않게 갈구하면서 자신의 인생관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그는 ‘밤을 새운 시 한 줄 / 무겁던 마음 위안이 되고 / 저무는 황혼의 빛이 될 줄 / 정말 몰랐다.(「정말 몰랐네」 중에서)’는 시와 인생이 접목하는 데서 그는 새로운 ‘위안’과 ‘저무는 황혼의 빛’을 교감하고 있는 것이다. 가을이 영그는 들녘에 구름도 한가로이 노니는데 지나온 한세월은 허수아비 흔들다 쫓겨난 바람처럼 사라지고 내려놓을 수 없는 삶의 무게로 눈물마저 메마른 눈가에 어느새 석양이 내려앉았다 가슴에 응어리 동여맨 얽히고설킨 인연의 끈 가을밭에 풀어 놓고 석양빛에 알알이 영글면 갈피갈피 접었다가 이어처럼 꺼내어 시 속에 나를 심자. --「나」 전문 그렇다. 송수복 시인은 ‘지나온 한세월’이라는 시간성에서 인식의 세계가 ‘내려놓을 수 없는 삶의 무게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생관은 ‘가을’과 ‘석양’이라는 이미지와 동일한 정감으로 투사(投射)하면서 ‘시 속에 / 나를 심자’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그는 항상 ‘새로운 삶 / 또 다른 기다림(「햇발」중에서)’과 같이 그의 인식은 많은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 그가 ‘일상에서 벗어나 / 초대 받은 가을 날 / 사각거리는 갈대숲에 / 되새기던 지난 세월 / 붉게 물들어간 산등성에서 / 나는 억새꽃으로 피어난다.(「초대받은 가을 날」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연약하지만 화사한 ‘억새꽃’으로의 변신을 여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가을’이라는 시간성인데 가을 이미지는 대체로 계절적으로 풍요에 해당하는 성숙이며 결실이다. 따라서 우리 인생으로는 알차게 열매를 맺는 인생의 성숙기이다. 그렇다면 이 ‘가을’이 그에게서는 어떻게 새로운 변신과 변화를 요망하고 있을까. 이는 그동안의 체험을 형상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바로 ‘시’였기에 시를 지향하는 내면(內面)에는 바로 인생과 그 가치관이 추구되어야 한다는 주제를 흡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수복 시인은 가을 특히 선호(選好)한다. 가을의 풍요와 성숙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가을볕’이나 ‘초가을 따가운 햇살’, ‘늦가을 찬바람’, ‘초대받은 가을 날’ 그리고 ‘가을이 영그는 들녘’ 등등 계절적인 마무리의 언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시적 상황의 설정은 대체로 시간성에 탐색하는 이미지들이 가을에 많이 집중하는 현상을 다수 접하게 되는 것도 송수복 시인의 인생론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한때 풋풋함은 / 여름 땡볕에 순응하고 / 붉게 물든 채 / 가을볕에 시들어간다 // 소슬바람은 서산에 머물고 / 하늘을 볼 수 없는 / 할머니의 굽은 등에 / 세월이 업혀 간다.(「인생」중에서)’는 인생적인 언어와 같이 우리 인간과 동행하는 ‘세월’이 바로 결실의 성찰과 회한(悔恨)으로 현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회한이 ‘새벽이슬 따라 / 산사에 오르니 / 오색연등 아침을 연다 // 추녀의 숨결 / 청아한 풍경소리 / 이승의 상념 녹아내고 // 백팔염주 돌리며 / 쏟아낸 참회의 / 눈물 // 가슴 두드리는 목탁소리 / 비워내고 채우는 깨달음의 기도로 / 나를 일깨운다.(「참회의 눈물」전문)’는 작품의 흐름이나 어조가 ‘나’의 확인과 동시에 존재의 성찰임을 이해하게 한다. 2. 기원의식과 성찰의 지향점 송수복 시인은 ‘나’라는 자아(自我)의 인식과 더불어 어떤 염원이나 갈망이 동반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기원의식이 발흥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소망이나 희망은 성취를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 시인들의 소원은 진정소발(眞情所發)이다. 참된 속마음에서 바라는 하나의 진정한 희구(希求)다. 송수복 시인도 이의 성취를 위해서 다양한 메시지를 적시하고 있다. 대체로 우리 어법(語法)에서는 종결어미를 ‘.....싶다.’라거나 ‘.....렵니다.’ 등으로 표기하고 기원하는 바를 표현하게 되는데 송수복 시인도 이러한 어법으로 작품을 완성하고 있어서 정감은 더욱 두텁게 느껴지기도 한다. 새벽이슬에 향기 머금고 당신의 아침을 열겠습니다 온종일 뜨락을 채우렵니다 한나절을 수런거려도 행여 듣지 못할까 봐 보랏빛 나팔을 불겠습니다 내 생에 아름다운 날을 곱게 드리렵니다 낮달 안고 익은 사랑 저녁노을 지기 전에 당신의 꽃으로 피우렵니다. --「내 인생의 아름다운 날을」전문 보라. 송수복 시인의 어조는 ‘ 열겠습니다’, ‘채우렵니다’는 등의 표현으로 그는 절규하듯이 기원의 진실을 메시지로 전해주고 있다. 이러한 화자의 어조(tone)는 어쩌면 그가 평생을 두고 반드시 이루어야 할 그의 진정한 열망(熱望)이며 그가 기필코 성취해야 할 진실의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그는 ‘내 인생의 아름다운 날을’ 위하여 ‘당신의 아침을 열고’ 또 ‘온종일 뜨락을 채우’면서 갈구(渴求)의 ‘보랏빛 나팔을 불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날’ 바꾸어 말하면 ‘낮달 안고 익은 사랑’의 합주곡을 ‘당신의 꽃으로 피우’려는 기원의식이 팽배해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어둠이 내리고 마음속엔 까닭 모를 슬픔이 엄습해온다 파도가 넘실대고 갈매기 끼룩대는 끝없는 바닷가를 한없이 거닐고 싶다 --「고독」중에서 아무렇게나 피 끓는 젊은 날을 살다 보니 오늘에 이렇게 뉘우침도 있나 보다 우리들 사이에 그 무엇이 남았다면 그때 미움과 후회로써 사랑했노라고 말하리라. --「우리」중에서 여기 이 작품에서는 ‘고독’을 체험하고 있는 송수복 시인의 기원은 바로 ‘끝없는 바닷가를 한없이 거닐고 싶다’ 이며 ‘고요로운 한 밤을 그렇게 / 지새우고 싶다’는 독백에 가까움 염원이 강렬하게 분사되고 있다. 또한 ‘사랑했노라고 말하리라’라는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뉘우침’은 ’미움과 후회’라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영역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언젠가는 가버릴 날이 오겠지’라거나 ‘서로 가슴으로만 간직하고 말자’라는 체념의 언어가 더욱 시적 분위기를 간절하게 흡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체념의 어조는 ‘파리 목숨보다 못한 신세 / 오늘도 묵언으로 하늘만 쳐다보네(「노인의 탄식」중에서)’라거나 ‘그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 쏟아지는 햇발 향해 / 두 손 모읍니다(「희망」중에서)’ 또는 ‘이 밤 자고남변 설마 낯 펴고 / 먹구름 걷어가겠지 / 하늘 향해 두 손 모은다.(「장마」중에서)’는 그의 절대적인 정성으로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후미지고 험난한 길 / 여명의 불 밝히고 / 붉은 날개 퍼덕이듯 / 가슴에 품은 뜻 / 마음껏 펼치리라(「정유년」중에서)’라는 다짐과 같이 그의 단정적인 현실과의 불협화음을 조화롭게 화해하는 형상으로 현현되고 있어서 이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들을 적절하게 긍정하면서 수용하는 그의 심중(心中)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3. ‘어머니’를 적시한 모정의 승화 송수복 시인에게서 다시 진한 정감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시적 승화이다. 우리 시인들은 누구나 이 어머니를 소재로 작품을 창작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는 사어(死語)에 가깝도록 낡은 소재이지만 어머니란 이미지는 영원 불변의 생동감 넘치는 노래와 메시지가 흐른다. 대체로 어머니는 나의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시킨 모태(母胎)로서의 기능이 잠재해 있다. ‘나’라는 존재감이 형성되고 ‘나’라는 인격체가 정립하는 소중한 주제의 시원(始原)이 되는 것이다. 늦가을 찬바람에 당신 떠나고 오늘도 나는 산에 오릅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그 모습 송진내 나는 솔바람도 그립습니다 차가운 산등성에서 새들의 노랫소리 자장가 삼아 못난 딸 기다리다 잠이 드셨나 시끄러운 세상이 싫어서인가 귀 막고 눈 감고 솔잎에 누어 타성에 젖어버린 채 아 그리운 내 어머니 올해도 구절초 꽃 만발하겠지. --「그리운 어머니」전문 우선 송수복 시인은 ‘어머니’에 대한 시적 상황을 ‘당신은 떠나고’에서부터 설정하고 있다. 이는 사후(死後-‘다시는 볼 수 없는 그 모습’)에 재생하는 진정한 사모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화자는 ‘못난 딸 기다리다 잠이 드셨나’라는 어조로 ‘아 그리운 내 어머니’를 적시하고 있다. 그는 ‘가을 찬바람’과 ‘송진내 나는 솔바람’ 그리고 ‘새들의 노랫소리’와 함께 어울리는 상황에서 그의 시법은 청각과 후각을 가미한 이미지로 의미 깊게 현현하고 있는데 자연과 인간의 동일시로 구성하는 대목이 마지막 행 ‘올해도 구절초 꽃 만발하겠지’라는 결론은 우리들의 심경(心境)을 강하게 흡인시키고 있다. 세상이 나를 외면할 때도 버거운 생활이 지치게 해도 가족이란 둥지가 버팀목 독어 모진 비바람도 견뎌 주었다 켜켜이 쌓아둔 빛바랜 사연들은 황혼의 꿈으로 곰삭아서 칠십 년 삶에 녹아내려 사월의 꽃으로 피운다 빛 고운 향기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감동으로 아픈 가슴 치유 되는 잊히지 않는 시인으로 남아있길 간절히 기도한다. --「황혼의 기도」전문 또한 그의 ‘간절한 기도’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감동으로 / 아픈 가슴 치유 되는 / 잊히지 않는 시인으로 남아있길’ 바라는 순정을 공감하게 되는데 이는 송수복 시인이 그동안 시를 창작하면서 재생한 체험의 주류가 바로 ‘어머니’의 모정(母情)에서 많은 영향을 획득했다고 이해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시인과 어머니라는 공통분모를 정감있게 다독거리는데 이것이 ‘켜켜이 쌓아둔 빛바랜 사연들은 / 황혼의 꿈으로 곰삭아서 / 칠십 년 삶에 녹아내려 / 사월의 꽃으로 피운다’는 회한의 절절한 메시지로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작품 「첫차」「장날」「이별」「엄니 정원」「엄마손」「고향」「그 시절」「보리밭」「샘물」등등에서 많은 이미지를 투영하고 있어서 ‘당신 떠나던 날의 아픔’을 모정으로 승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김남조 시인이 그의 글에서 ‘어머니! 이렇게 부르면 지체없이 격렬한 전류가 온다. 아픈 전기이다. 아프고 뜨겁고 견딜 수 없는 전기이다’라는 말이 더욱 어머니와의 정감을 두텁게 하고 있다. 4. 그리움의 형상화, 그 심리적 온화함 다시 송수복 시인에게서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모정과 동시에 그리움을 발현하는 시법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 내면에는 심리적인 온화함을 표상하는 이미지들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고향이거나 가족들 그리고 주변의 많은 이웃들이 그 시적 소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정겨웠던 과거의 다정한 체험들이 그의 뇌리에서 불망(不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경(情景)의 향수라든지 혈육간의 정(情)들이 모두 시적으로 승화하여 ‘그리움’이라는 심원(深遠)이 심중에서 용암처럼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추억이 서려 있는 고향집 낡은 초가지붕에 조롱박 매달리고 다람쥐 뛰놀고 새들이 조잘대던 한적한 뒤뜰의 옹달샘 그립다 어머니의 세월 스민 장독대에 맨드라미 채송화가 지킴이었고 봉선화 꽃잎 빻아 손톱에 싸맨 채 평상에 누워 흥겨운 노랫가락에 깊어가는 밤 부푼 꿈 속절없이 지금은 폐허 되고 모두 떠난 빈자리 퍼내고 퍼내어도 다시 채워지는 샘물 같은 그리움. -- 「샘물」전문 송수복 시인의 ‘그리움’은 ‘고향의 향기’나 ‘보리밭’ 그리고 ‘아침 이슬’ 등에서 시적 원류를 두고 있는데 이러한 서정성에서 자신의 존재가 이제는 한낱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는 아쉬움이 이 ‘샘물’에서 절감할 수 있다. 그는 ‘추억이 서려 있는 고향집’이 시적 상황이다. 그리고 ‘낡은 초가지붕에 매달린 조롱박’, ‘옹달샘’, ‘장독대’, ‘평상’ 등이 그에게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의 대상이며 거기에서 그의 심연(深淵)에 펼쳐진 한 폭의 그림(맨라미 채송화 봉선화)이 그를 지금도 설레게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들이 그에게 ‘지금은 폐허 되고 모두 떠난 빈자리 / 퍼내고 퍼내어도 다시 채워지는 / 샘물 같은 그리움.’이라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어서 우리들은 잠시 추억의 향수에 몰입되기도 한다. 돌이킬 수 없는 파문 일고 싸늘한 바람 한 줌 살갗을 파고들어 가슴 에인다 이 세상 끝까지 사랑한다던 너를 끝내 안을 수 없는 빈곤 그리움은 허공을 헤맨다 서로 의지한 세월의 정 보듬고 가을빛에 물든다. -- 「혈육」전문 여기에서는 송수복 시인이 고향과 동시 개념으로 설정하는 것이 ‘혈육’이다. ‘이 세상 끝까지 사랑한다던 너’에 대한 그와의 절망이 현현되고 있으나 이 ‘그리움’은 ‘끝내 안을 수 없는 빈곤’ 그래서 ‘허공’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로 의지한 세월의 정 보듬고 / 가을빛에 물든다.’는 어조로 서로 화해하는 해법을 탐색하고 있다. 이처럼 송수복 시인의 ‘그림움’의 형태는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어서 시선이 집중된다. - 그해 장마가 또 다른 그리움을 부르는 / 세찬 빗줄기로 내린다(「무너진 흙담」중에서) - 간간히 울어주던 산새 한 마리 / 시간을 쪼아대며 보챈다 / 법고 소리 고요한 산울림 / 멀리 떠난 그리움들 / 포근한 할미 품에 안긴다(「할미꽃」중에서) - 부서지는 물결소리 / 가슴 에어 싸고 / 노을 너머 / 그리움 별 되어(「아침 이슬」중에서) - 설렘 안고 첫눈 기다리던 그 시절은 / 세월의 뒤편에 추억으로 농익어 / 하얀 그리움이 나를 감싼다(「긴 밤 홀로」중에서) - 이미 낙엽은 떨어졌지마 / 깊은 밤 나의 애잔한 기도는 / 햇살 담은 창 너머 / 그리움으 로 맴돈다(「낙엽은 떨어지고」중에서) - 구멍난 고무신이 제격이었던 / 이제는 모두가 향수에 젖은 / 그리움이다(「그 시절」중에 서) 이 밖에도 그는 ‘아버지’, ‘사촌 남동생’ 등 가족들과 교감하는 ‘그리움’이 과거라는 시간성에서 재생산하는 이미지가 누구에게서나 발견할 수 있는 보편적인 시법이지만 송수복 시인이 분출하는 감수성은 너무나 명민(明敏)하게 발현되고 있어서 공감의 영역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대사물관과 관념의 깊숙한 내면에서 회상하는 ‘그리움’ 속에는 언제나 ‘시’와 상관을 갖는 시법을 발견하게 되는데 작품 「두레박」에서 ‘부서지는 가을 햇살이 / 야외무대를 가득 채우고 / 가슴에 샘솟는 그대 위한 / 시를 읊는다 // 온몸을 휘감던 환호의 물결은 / 애틋한 마음에 젖어들고 / 쉼 없이 퍼 올려도 넘치는 / 그리움의 두레박을 내린다.’는 그의 시적 진실을 이해하게 된다. 5. 자연 서정과 시간의 순응미학 송수복 시인은 서정시인이다. 그것도 자연을 사랑하고 감응(感應)하는 청순한 향기를 구현하려는 서정적 자아의 탐색을 시 창작의 기저(基底)에 두는 듯하다. 이는 그가 취택하는 소재가 대체로 자연 상관물에서 착목(着目)하고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이처럼 자연과 교감하는 시적 경향은 오래전부터 우리 시인들의 전유물이었는데 너무 고전적인 음풍영월(吟諷詠月)적 취향을 탈피하고 자연과 인간의 상관성의 탐색에서 새로운 자연관으로 발전하게 되어 산수화를 옮겨온 듯한 시풍(詩風)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파스칼은 그의 글 「팡세」에서 ‘자연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고 신학(神學)까지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그로부터 배우는 사람들이야말로 자연을 깊이 존중하는 사람들이다.’라는 말로 우리 인간과 자연의 밀접한 생명의 범주(範疇)를 설명해주고 있다. 바람이 싸늘한 오후 자분자분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 봄내음이 가득한 꽃집 앞에 멈춘다 미소가 화사한 주인장 마주하고 예쁜 화분들이 반긴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꼬마 다육이들 서로 데려가 달라고 보챈다 활짝 핀 선인장 시샘하며 안긴다 녀석들하고 한참 노닥거리다 남편 저녁상은 까맣게 잊었다 나이 칠십에도 꽃 사랑은 여전하다 우리 집 가겠다고 따라나선 귀염둥이들 데리고 허둥지둥 발길을 재촉한다 거실엔 봄 향기로 가득 찼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전문 이 작품은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된다. 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나이 칠십에도 꽃 사랑은 여전하다’는 어조는 그에게 내재된 미적(美的) 감응이 어느 정도의 깊이이며 얼마만큼의 넓이인지를 감지할 수 있게 한다. 그의 거실에는 언제나 봉향기가 넘친다는 그의 취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송수복 시인은 대체로 계절적인 시간성과 더불어 자연을 관찰하거나 친자연적인 사유에 젖어 있다. 특히 봄에서는 ‘봄내음’, ‘예쁜 화분’들이 그를 시간(봄)과 공간(꽃집)이 접목하는 시법이 우리들을 안온하게 흡인하고 있다. 그의 봄 향취는 ‘향기를 잉태한 목련 배가 만삭이다(「봄앓이」중에서)’라거나 ‘집안에 온통 봄이 수런거린다(「목련」중에서)’ 그리고 ‘명주바람에 / 겨울 녹는 소리 / 뜨락 매화 꽃망울 터진다(「봄물」중에서)’ 등의 어조로 그의 봄은 화사하게 장식되고 있다. 또한 봄의 이미지는 새 생명의 탄생이거나 새로운 출발 등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다시 흙으로 돌아가 / 새 생명으로 태어날 봄을 기다린다(「새 생명을 위하여」중에서)’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처마 끝 이별의 봄비 추억은 여름밤 풀벌레 울음 곁에서 그리움으로 흐르지만 또 다른 만남의 기도 초록의 함성은 내일의 가을로 익어간다. --「초록의 함성」중에서 이 여름의 이미지는 활기찬 인생의 절정이거나 왕성한 생존기로써의 ‘초록의 함성’이다. 그는 ‘이별의 봄비’와 ‘여름밤의 풀벌레 울음’에서 ‘그리움’에 젖어 시간(계절)을 보내는 이 여름의 이미지는 바로 ‘내일의 가을로’ 이어지는 순환성 서정에 감응하고 있는 것이다. 가진 것 다 내어주고 빈손으로 뒹굴다 제 몸까지 마지막 불꽃으로 사른다 무겁고 지친 마음도 훨휠 태운다 연기 속에 세월 묻혀가고 향기는 노을빛에 젖는다 한 줌의 재는 새 생명을 위해 흙으로 돌아간다. --「낙엽」전문 다음 가을은 수확의 시간을 덮고 이제 마무리의 길목에서 ‘낙엽’이라는 우수의 이미지를 만나게 되는데 이는 우리 인생의 결실기에 해당하는 풍만(豊滿)의 현실이 ‘제 몸까지 마지막 불꽃으로 사른다’는 ‘새 생명’의 탄생을 예비하면서 ‘흙으로 돌아’가려는 가치관이 적나라(赤裸裸)하게 현시(顯示)되고 있다. 일찍이 릴케도 ‘비록 한 잎의 낙엽일지라도 바람에 떨어지면서 우주의 최대의 법칙의 하나로서 충만한 뜻을 지니고 있다.’는 말처럼 인간과 만유(萬有)의 자연 조화가 펄럭이고 있는 것이다. 길손 반기는 까치마을 한 폭 사랑 그리는 산사의 풍경소리 겨울밤 깊어간다. --「겨울 까치집」중에서 마지막으로 ‘겨울밤’은 무엇인가 한 해 동안 거둔 결실의 집념이 안온한 평화의 겨울밤이 지속된다. 자연의 섭리이며 시간의 순리에서 송수복 시인은 이제사 그 절묘한 의미를 감지는 순응의 미학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살펴본 송수복 시집 『봄이 오는 길목에서』에서는 ‘나’라는 존재를 통해서 성찰과 기원의 염원이 그의 내면에서 잔잔하게 표출되고 있으며 그는 모정의 승화로 효심(孝心)을 발현하고 있어서 이러한 상황들이 그리움을 생성하는 지원지를 창출하고 있다. 송수복 시인은 서정적 자아의 확인을 위해서 사계절에서 감응할 수 있는 순응(順應)의 미학을 심도(深度)있게 시적으로 화해하고 있어서 그는 가끔 ‘큰 스님의 목탁 소리’를 듣거나 ‘법당의 향내음(이상「동지」중에서)’을 음미(吟味)하는 수양도 이해하는 좋은 계기를 제공해서 순박한 서정시인의 면모를 몸소 실현하는 그의 시적 진실은 더욱 높게 빛나고 있는 것이다.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