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관람 후기
어제 충주지회 이배사님들과 함께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를 관람하였다. 이미 방진님과 격군님의 관람 후기와 인터넷에 올라 온 다양한 감상평을 본 까닭인지 화면들이 그리 낯설지가 않았다. 이순신연구자로서 2014년 영화 <명량>에서 백병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것을 보고 실망했었던 기억 그리고 작년인 2022년의 영화 <한산: 용의 귀환>에서의 거북선 충돌 전술을 보고 흥분했던 기억을 뒤로 하고 이번에는 영화 그 자체로 몰입해보자고 각오를 다진 것도 어느정도의 영향을 주었으리라.
그래서 그런지 2014년의 영화 <명량>, 작년인 2022년의 영화<한산 : 용의 귀환>에서 보았던 백병전, 거북선의 충돌 전술이 그대로 재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백병전의 경우는 해전 장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1시간 이상 진행되는 해전 장면을 보면서 이런 정도까지 당시의 해전을 재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을 김한민 감독의 고민의 일단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이순신 장군의 부인인 상주 방씨의 등장과 셋째 아들 면의 죽음과 관련된 소재의 활용은 시‧공간적으로 생뚱맞게 느껴졌지만 노량해전에 임하는 이순신 장군의 내면세계의 일단을 보여주는 데는 나름대로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관련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일반 관객들이 보기에는 전혀 저항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감정이입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또 한편 항왜(降倭) 준사의 등장은 영화<한산:용의 출현>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김 감독의 생각을 다시 소환하였다. 준사로 대변되는 항왜(降倭)는 자신의 조국인 일본을 등진 배신자가 아니라 불의한 침략자 일본을 버리고 의로운 길을 택한 정의의 사도라는 것이 그것이다. 영화 <한산: 용의 귀환>의 웅치 전투 장면 등에서 보였던 조선의 의병(義兵)들의 활약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상황에서,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분연히 일어나 싸우다 죽은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이 해야 할 의리(義理)요 가야할 길[道理]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의식은 이순신 장군의 내면에서도 그대로 읽힌다. 이순신 장군에게 있어서 임진왜란, 정유재란은 불의(不義)한 침략자 일본군을 ‘단 한 척도 돌아가지 못할(片帆不返)’ 정도로 철저히 응징하여 역천자(逆天者)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정의가 반드시 승리한다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고자 했던 정의(正義)의 전쟁이었다. 사람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가치는 나라도 아니요, 임금도 아닌 ‘의로움[義]’이다. ‘의로움[義]’을 저버린 나라는 나라도 아니요, ‘의로움’을 포기한 임금은 임금도 아니다. 바로 항왜(降倭) 준사와 이순신 장군 사이의 공감의 토대였던 유학의 가치의식이다.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와 김한민 감독이 머리를 짜내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인 것 같은데, 박수를 보내고 싶은 대목이다.
영화 <노량;죽음의 바다>에서 가장 큰 감동을 준 대목은 아무래도 후반부에서 이순신 장군이 큰 북을 치는 장면부터이다. 김 감독은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어떻게 묘사하였을까? 사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가장 관심 있었던 부분이다. 그동안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둘러싸고 자살설 등 여러 가지 이설(異說)들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투구를 벗고 스스로 탄환에 맞아 죽었다(免冑, 自中丸而死)’는 자살설은 채택되지 않았다. 그 대신 김 감독은 이순신 장군은 왜, 무엇 때문에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싸우려고 했는지를 드러내 보이려고 노력하였다. 서로군 총사령관인 명나라 장수 유정(劉綎)도, 수로군 총사령관인 진린(陳璘)도 소서행장(小西行長)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적절히 전투를 회피하고자 했는데 왜 이순신은 끝까지 싸우려고 했을까? 그리고 수많은 부하 장병들의 인명피해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무엇 때문에 10여 명의 부하 장수들과 더불어 장렬히 전사하였을까?
김 감독은 그가 창작한 이순신의 마지막 대사, <이 전쟁은 이렇게 끝내면 안 되는데...>로 대미를 장식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 본토까지 쫓아가서라도 침략자 일본군을 철저히 응징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다시는 조선을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또는 불의한 침략자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똑똑히 보여주기 위해서... . 어쨌든 종반부 30여 분간의 처절한 전투의 모습은 사실 여부, 승패 여부를 떠나 전쟁은 하면 안 된다는 생각과 더불어 나라와 백성과 의(義)를 가슴에 품고 살았던 조선의 대장부(大丈夫)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모습을 충분히 감동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묘사한 것 같다. 화면으로 재현된 그 분의 마지막 모습에 한 때 가슴이 먹먹하였다.
그렇다면 노량해전은 어떤 해전이었을까? 노량해전은 조‧명 수군 연합함대 약 460여 척과 일본의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소 요시토시[宗義智] 등의 함대 약 300∼500여 척이 맞선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통틀은 최대의 해전이었다. 전과(戰果) 측면에서도 200∼300여 척을 격파하였으니 역시 최대이다. 아군의 피해도 그렇다. 통제사 이순신을 비롯한 10여 명의 조선 장수들 그리고 2명의 명나라 장수들이 전사하였으니 이 또한 최대이다.
또 한편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그토록 치열하게 싸운 결과 조선과 명나라의 함선 피해는 어느 정도였을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경남(趙慶男)의 『난중잡록(亂中雜錄)』에 ‘우리나라 함평(咸平) 전선이 불탔다’는 기록과 일본 측의 자료 『정한록(征韓錄)』에 시마즈 요시히로가 명나라 전선 2척과 조선의 전선 4척을 사로잡았다는 기록이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이다. 조‧명 수군 연합함대 460여 척과 일본의 함대 300∼500여 척이 참여한 해전에서 일본의 함선은 200∼300여 척이 격파되었는데, 아군의 함선 피해가 6척 정도였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과연 노량해전의 전투 양상은 김한민 감독이 묘사한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처럼 전개되었을까? 그런 방식으로 과연 일본의 함선은 200∼300여 척이 격파되고 아군의 함선은 6척 밖에 손실을 입지 않은 상황을 묘사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점을 가지고 임진왜란이 발발하는 임진년(1592년)의 해전으로 소급해 올라가 본다. 이순신이 중심이 된 조선 수군은 임진년(1592년) 첫해에 치른 4차례 출전 16회의 크고 작은 해전에서 일본의 함선 330여 척 이상을 격파, 분멸한 반면 일본 수군은 조선의 함선을 단 한 척도 격파하지 못했다. <330척 격파 : 0척 격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대미문의 전과(戰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전과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이해하고, 영화화시켰던 해전 방식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른바 김한민 감독이 제작한 영화 <명량>(2014년), 영화 <한산 :용의 귀환>(2022년),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2023년)에서 재현했던 백병전, 충돌 전술 중심의 재래식 해전 전술로는 결단코 설명할 수 없는 전과(戰果)이다.
어떻게 이런 전과(戰果)가 가능했을까? 그것은 분명, 차원을 달리하는 조선 수군의 무기와 해전 전술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똑같은 조선 수군을 지휘하여 이순신의 경우는 전승무패의 승리신화를 창출했던 반면 원균은 왜 칠천량에서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했을까? 그것은 나름대로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리더십의 문제로 귀결된다. 한 마디로 차원을 달리하는 이순신 장군의 승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차원을 달리하는 이순신의 해전 전술과 차원을 달리하는 이순신의 리더십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연구자들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지난 10여 년 동안 이순신 장군에 몰입하여 세 편의 영화를 만들어낸 김한민 감독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동안 이순신연구자로서 역사적 사실을 기준으로 그의 영화에 대한 비판도 많이 했지만 사실 영화감독이 목표로 하는 관객은 이순신 장군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분을 마냥 좋아하고 존경하는 일반 국민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이순신을 다룬 영화의 수준은 우리 국민의 이순신 이해 수준과 철저히 비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들 대다수가 <명량에 철쇄를 걸어 승리>했고, <거북선은 충돌하여 적선을 박살>냈으며, <이순신 장군은 일부러 자살한 것 같다>라고 이해하고 있다면 일정 부분 그것을 투영해야만 관객을 만족시키고 영화의 흥행도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순신 장군 관련 영화를 제대로 만들도록 하려면 먼저 감독을 포함하여 우리 국민들의 인식 수준, 이해 수준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2000년 대 들어, 2004년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저본이 되었던 김탁환의 소설 <불멸의 이순신>,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 시작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재조명 붐이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2014년), 영화 <한산>(2022년), 영화 <노량>(2023년)을 끝으로 일단락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분위기에 발맞추어 우리 국민들의 그 분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이고, 제대로 본받을 수 있도록 방법을 모색하며,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 카페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이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닐까? 먼 훗날 제대로 된 연구성과가 반영된, 차원을 달리하는 이순신 관련 영화가 어느 감독에 의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며 10여 년을 고군분투해 온 김한민 감독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끝>
첫댓글 잊을만하면 다시 명량으로, 잊을만하면 한산으로,또 잊힐만하면 노량으로 끊임없이 대한민국 국민을 일깨워주는 감독의 공로 인정합니다.
김한민 감독은...10여 년을 영화<명량>, <한산>, <노량>...을 만드느라 몸과 마음을 바쳤으니...공과를 떠나서...그 자체로 이순신 장군을 선양하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 것이지요. 우리 단장님은...국악창극 <이순신의 노래>(2022년), <이순신의 어머니>(2023년)를 만드셨는데... 김한민 감독처럼...삼세번을 하셔야....역사가 되지 않을까.........이런 생각이 문득 드네요.....ㅎ
영화를 보고 논평을 하고..
역사적인 자료와는 잘못된 점이 많다는 걸 하나하나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그에 못지 않게 내면의 이순신을 그려내는 것 또한 영화감독의 몫이기에..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이순신의 정신을 알리고 장군의 훌륭한 점들을 드러낼 수 있는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는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3편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의 고뇌를 이해하게 됩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가장 쉽게 접하는 부분이기에..다시 말하면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빠르게 인식되는 것이기에 파급력 또한 대단합니다.
전 국민이 이순신 전문가가 되는 그날까지 우리는 쭈욱~~~~ㅎㅎ
영화<명량>, <한산>, <노량>...이배사의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처럼...해전 관련 전투 장면, 스토리상의 고증 등...많은 문제점들을 남긴 것은 사실입니다. 비판도 하고, 흥분도 했지만..그 분들의 의식구조는..연구자들과는 다른 것 같아요. 일단은 흥행이 되어야 하니...상업성의 한계를 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한편 감독 차원에서..무엇이 <이순신 정론>인가...에 접근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자칭 ..이순신연구하는 분..이순신전문가들이 많이 있으니..감독 차원에서도 나름대로..그런분들께 자문을 구하지 않았겠어요?
또 한편 영화가 남기는 것은...감독이 만들어낸 <이순신 장군의 모습>, <이순신 장군의 내면의 세계>이지요...영화<명량>에서는...<장수의 의리는 충을 다하는 것이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영화<한산>에서는..<이 전쟁은 의와 불의의 싸움이다>..영화 <노량>에서는..<이 전쟁은 이렇게 끝내면 안되는데....>(단 한척도 돌려보내선 안된다. 불의한 침략자 끝까지 응징해야 한다..)...영화 관람 후...관객들에게 오래도록 남는 것은...사실여부가 아니라..이순신 장군의 체취가 아닐까..ㅎ
전문가의 관람 후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사적 사료가 없는 것들은 멋지게 그럴듯하게 꾸며 찍고,
사료가 명확한 것들은 사실대로 촬영하면 흥행이 떨어질까?
또, 소설을 쓰는 반풍수들에게 고증된 사실을 가르쳐야하는 우리 이배사 가족들은
더욱 피곤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자칭 연구자라고 하지만...사실 해전의 양상, 해전의 팩트에 대해 확신을 가진 것이 불과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이순신연구자들도....특히 해전의 양상에 대해...깊은 통찰을 가진 분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백병전 없었다>..<충돌전술 없었다>..정도를 강조한 것도..불과 10여 년 밖에 안되었고 ...이런 내용을 공유할 수 있는 분들도..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다행인 것은..이배사님들...그리고 경상도, 전라도의 남해 연안 지자체의 문화관광해설사님들이...함께 공유해주시고 계신다는 것이지요. 이제는 ..<노량해전에 거북선이 참전하지 않았다>..는 정도는 이순신 장군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신 분이라면 대개 지적할 수 있는 내용이지요..그래서..팩트 부분에서는 ..영화<노량> ..많은 분들로부터 지적을 받고 있을 것이구요. 이렇듯..국민들의 인식 수준이 중요한 것 같아요. 20년 후에는...국민들의 이해 수준도 높아질 것이고..제작자들도..국민 눈높이 맞추어..영화를 만들지 않겠나요?...저는 이런 부분이..<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역할, 힘이라고 생각합니다...회장님..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감사드려요...ㅎ
저도 다녀왔어요!! 명량 한산 노량 중에 노량이 가장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어보니 좋은 영화는 맞는거 같네요!!
어떤 부분이 가장 아쉬웠나요?...좋은 영화일 수밖에 없는 것은 ..주인공이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순신 장군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잘 만든 영화여서가 아니라..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보니...이순신 장군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이 영화는 의무적으로 보아야 돼. 이런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는 것은..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이순신 장군을 패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야. 그럴 수는 없어..일단은 무조건 보아야 해..평가는 나중에 하고..> 이른바..애국심 마켓팅이지요. 그래서 웬간하면..이순신 장군 영화는 ..실패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전 관련 장면은..격군님이 지적하신대로..공상 과학영화 같아요. 실제 바다에서 촬영한 것이 아니고...또한 대부분..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하다 보니...거의 다 비슷하고..무슨 전술을 어떻게 쓰는 것인지...이해하기도 어렵고.....이런 이성적 비판의 마음이 꿈틀대다가도..아니야 ..그래도..그 어려운 해전 장면 제작을 ..저렇게 라도 ..웅장하게 표현하였으니..감독을 포함한 제작자들 참 고생했겠다....라는 감성적 포용으로 전환이 되는 것은..비단 저뿐이겠습니까?
@일심 그저 개인적인 아쉬움입니다. 영화적 전개도 좋지만 난중일기도 읽지 않은 대다수의 국민이 대상이라면 역사적 사실과 난중일기라는 기록에 근거해서도 영화를 풀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은 묻혀지고 난데없이 이순신 장군의 신격화와 영매였던 것 처럼 강하게 표현을 해놓았으니 ( 전 개인적으로 걸출한 인물들은 다 영매적 자질이 있다고 봅니다만) 사람들이 이번 영화의 전개와 분위기,신격화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겠단 우려가 들었을 뿐입니다. 오히려 할리우드 식 영화적 전개를 채택 했다면 재미도, 대중의 사랑도 더 이끌어내고 기록영화의 가치도 지녔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님 본인께는 가장 힘든 시기 였겠지만 이 좋은 역사적인 이야기를 이번에 감독이 코드를 잘못 잡아 희석시키고 묻어버렸다 생각됩니다. 중대한 실수라고는 여겨지는데 아는바가 없고 평론가가 아니다보니 설명할 수도 없고 근거도 없습니다.
@천자총통2 그렇네요...저도 개인적으로는...노량해전의 승리보다도....이순신 장군은..이 마지막 해전을 어떤 마음으로 임하였을까...왜..몸을 던져 일본군을 모조리 섬멸하려고 하였을까...철군하기를 원하는 일본군을 가로막고...치열한 전투를 해야하는 상황에서...부하 장수들을 어떤 논리로 설득하였을까..이런 것들이 궁금해요...<이 원수 모조리 무찌를 수만 있다면 제 한 몸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이순신 장군의 이 기도문을 곱씹어 보면...혹..답이 있지 않을까....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ㅎ
노량에서 히데요시는 이순신장군때문에 속이 희뜩 디비져 죽고 적장 시마즈는 북소리에 괴로워하다가 사망한걸로~ㅎ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서양의 나폴레옹에 비견되는 인물로..평가된다고 하지요. 그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륙진출의 꿈이 이순신으로 대표되는 조선 수군에 의해 임진년(1592년) 첫 해부터 좌절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조금 과장하면..이순신 장군 때문에 화병으로 빨리 죽었다...이렇게 각색할 수도 있겠네요. 시마즈 요시히로는 ..노량해전에서..부하 병사들을 대부분 잃고..돌아가..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옹호하는 서군편에 서서 싸우다(소극적으로)...도꾸가와 이에야스에게 죽을 뻔 했지만..결국 살아남아..85세에 사망하였다고 하니..천수를 누렸네요....ㅎ
@일심 넵! 감사합니다!
@일심 또 한편 저도 궁금한게 있어요. 시마즈 요시히로는 ...자신의 부대원들을 온전히 데리고 철수할 수도 있었는데...왜.. 무엇 때문에... 소서행장 부대를 구하기 위해..저토록 막강한 조명수군연합함대와 노량에서 결전을 벌여...심대한 타격을 입고..실패를 자초했을까? 또한..시마즈 요시히로는 소서행장을 구하기 위해 출전하여..조명수군연합함대와 죽기로 싸우고 있는데..정작 소서행장은 ..모른척하고 꽁무니를 빼고 온전히 도주하였을까? 만약 소서행장이..노량해전에 참여하여 조명수군연합함대를 협공했다면..그 결과는 어찌되었을까? 마지막 노량해전은..조선..일본에게 어떤 의미의 해전이었을까? 시마즈 요시히로와 소서행장(고니시 유끼나가)는 어떤 관계였을까? ....ㅎ
@일심 넵! 새로운 궁금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호~
댓글도
관람후기도 너무
관심있게
숨도 안쉬고 읽어
내려갔네요.
많은 공부를 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댓글은...지면 관계상...관람후기에서 못다한 이야기를..추가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여...주저리..주저리..해보는 것이지요..한 숨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한 해 되시길....ㅎ
역사 영화는 상상력의 표현으로 인한 펙트찾기를 하며 우리 역사에 더 관심을 갖게 하는데 의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만 관객을 넘긴 '서울의 봄'도 ' 노량'도 국민들의 적극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팩트체크에 열심이죠. 영화에 나타난 부분과 다른 진실을 찾는 또다른 재미와 역사의식으로!! 이배사를 넘어서 많은 이들에게 사실이 바르게 전달되기를, 영화 해설을 하는 유튜브에서조차 오류를 범하질 않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짜피 ..개봉되었으니...팩트 첵크는...계속되겠지요. 아마도 당분간은...이순신 장군 관련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니...영화<명량>, <한산>, <노량>은 ..이순신 장군을 이야기할 때 두고 두고..회자가 될 것입니다. 향후 이순신 장군 관련...오류를 잡아가는 데 있어서...좋은 교육 자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2024년...창원지회...홧팅!!!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