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도박 세계를 리얼하고도 냉혹하게 다룬 영화인데 대사 중 김혜수(정마담)가 던진 한 마디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 나 이대 나온 여자야!> 불법 도박판을 단속하러 나온 형사에게 쏘아 붙인 말로 <나를 우습게 보지 말라. 함부로 까불지 말라>는 뜻입니다. 명백한 사기꾼임에도 공권력을 향해 이처럼 당찬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화여대가 가지는 명문 사학으로서의 권능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대는 1886년 5월 미국 북감리교 여선교부가 파송한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이 서울 정동 선교사 사택에서 단 1명의 학생으로 수업을 시작한 것이 그 기원입니다. 이후 이대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인 박에스더를 비롯 3.1운동에 앞장섰던 유관순 등 수많은 기독교 여성 지도자들을 배출해 왔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이 나라 여성 리더들을 길러내는 게 목표였던 이대가 언제부턴가 기독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대학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현재 법인이사회 구성만 봐도 8명의 이사와 2명의 감사 중 목회자나 신학자, 교단 관계자 등 교계 관련인사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소위 학위장사라는 비판을 받으며 재학생, 졸업생들의 강한 반발을 샀던 <미래 라이프 대학> 학내 사태와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특혜 의혹에까지 휘말려 김경숙 학장과 류철균, 이인성 교수가 구속되고 최경희 전 총장도 피의자로 특검에 소환되면서 이대는 이제 대한민국 여성 교육의 산실이라는 명예도, 미션 대학이라는 고유의 정체성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130년 전통의 명문 사학이라는 권위와 신뢰가 한꺼번에 다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이는 설립자의 뜻을 완전히 저버리고 기독교 정신을 망각한 채 오직 상업주의에만 매달려온 이대의 필연적인 현주소입니다. 차병원도 그렇습니다. 최근 최순실의 국정 농단의 궤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차병원 그룹 회장 일가가 불법 제대혈 시술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보건 당국이 이 병원의 <국가 지정 기증 제대혈 은행> 지위를 박탈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위 덕분에 그동안 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도 모두 환수하기로 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룹 산하의 <차움>의원이 최순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리 처방도 해주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도 줄기세포 시술을 해줬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습니다. 차광렬 차병원 그룹 총괄 회장의 할아버지는 우리 교단의 장로회신학대학과 총신대의 전신인 <평양신학교>의 제4회 졸업생(1911년)인 차형준 목사님입니다. 차목사님은 1912년 목사안수를 받고 만주지역의 선교사로, 또 시골 작은 교회의 목회자로 평북 강계, 용천, 정주 등지에서 사역하며 평생을 누구보다도 청빈하게 사역한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차형준 목사님의 다섯째 아들인 경섭이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한 후 미국에 가서 선진 의술을 배워와 논현동에 차산부인과 병원을 개원하고 큰 성공을 거둔 후 이 분당에 차병원을 설립하면서 일약 병원 재벌로 발돋움 했습니다. 그러나 차병원은 이번에 밝혀진 여러 가지 치부한 정황들로 미루어 그간 차형준 목사님의 아름다운 신앙 전통을 제대로 이어온 것 같지 않습니다. 할아버지의 고귀한 신앙 유산에 치명적인 누를 끼쳤기 때문입니다. 학교든 병원이든 그 본래의 초심을 잃으면 그것은 한낱 돈벌이의 기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초심이란 곧 첫 사랑, 첫 믿음, 맨 처음의 순수한 다짐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겸손하고 순수하고 아름답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 영원한 초심자여야 합니다. 내가 무엇이 되고, 무엇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합니다. 위기는 언제나 그 초심을 상실할 때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 이대>도 <차움>도 다시 한 번 겸허하게 <초심>으로 돌아갈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