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었던가, 친구의 소개로 『창세기전3』를 접하게 됐다. 강수진님, 구자형님, 김승준님 등 화려한 성우진이 포진, 당시로서는 우리말 더빙에 상당히 공을 들인 국산 게임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므로 자세한 내용은 생략.)
성우분들의 목소리를 음미하며 게임을 즐기는 와중에, 은근히 관심을 끄는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어린 살라딘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검술을 가르쳐준 스승, 기파랑. 좋게 말하면 개성이고, 나쁘게 말하면 균형이 안 맞는다고나 할까. 아무튼, 첫인상은 "아니, 뭐, 이런 목소리가 있어?" 정도였다.
문제의 목소리(?)는 투니 2기(1996) 성우 이주창님. 카우보이 비밥, 슬레이어즈 트라이(바르거프 역) 등 애니메이션에서도 자주 들었을텐데, 어째서 기파랑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지 모르겠다.
이주창님도 주연작이 많은 편은 아니다. 기억나는 건 『A.D. Police(1999)』의 마하(사사키) 정도. 마하라는 캐릭터는 최근에 맡으신 『카레이도 스타』의 레온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겉으로는 묵뚝뚝하고 엄격하고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 하고, 냉소적인 척 해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상처를 안고 있다. 냉엄하고 치열한 현실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가두지만 주위 사람들의 사랑과 우정으로 조금씩 닫혀진 마음을 열게 된다.
그런데, 『A.D. Police』의 캐스팅은 욕을 좀 먹기도 했다. 투니에서 저 작품을 방영한 게 2001년인가 그런데, 당시로서는 신인급이었던 이주창님이 주연을 맡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이주창님의 경력을 두고 시비를 걸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캐스팅이었다고 본다. 최문자님이나 온영삼님 등도 나오신 것으로 봐서, 돈이 없다거나 사람이 없어서 이주창님을 캐스팅 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활달하고 싹싹한 성격에 핸썸한 외모의 한스와 대비되는 마하, 노련하고 멋스러운 홍시호님의 목소리와 대비되며 개성있는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캐릭터에 대한 분석도 적절했다고 본다. 파트너 치고는 너무 안 어울린다고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원래 그 두 캐릭터는 그런 관계로 보였다. (천기누설이 될 수 있으므로 여기까지만.)
A.D. Police OST Stage A. 이주창님 싸인을 받고 싶은 희망사항이 있었으나……, 기회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고르고13』에서는 김준님과 함께 연기하신 적도 있다. 스네이크라고, 무지 엽기적인 캐릭터. 아마 주인공 역할인 김준님 보다도 대사가 많지 않았을까. (이쪽 대사가 워낙 적었던지라…….)
두 분은 『사이버시티 오에도 808』에도 나오셨다. 김준님이 유클리(센고쿠), 이주창님이 뷰티(벤텐). 유클리는 물론 터프한 남자였는데, 그에 비해 뷰티는 수상한 이름도 그렇고, 여자 같은 이쁘장한 외모의 캐릭터였다. (처음 봤을 땐 진짜 여잔줄 알았음.) 단순히 요상한 취향의 X태라고 말할 수만은 없는,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문제는, 이주창님 목소리가 거기에 묘하게 어울렸다는 것. 김준님 나오신 것도 그렇고, 우리말 더빙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데, 코드3 DVD에서는 빠져버린 게 너무 아쉽다.
이주창님도 항상 그렇게 극단적이고 특이한 캐릭터만 맡으신 건 아니다. 『미소의 세상』에서는 가정적이고 평범한(?) 아빠역을 하신 적도 있다.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는 그런 부드럽고 유약해 보이는 연기도 하실 수 있다는 게 조금 놀라웠다. 그것에 비하면 좀더 박력이 넘치지만, 결국 애아빠가 되는『파워레인저 다이노썬더』의 아스카 역도 인상적이었다. 전투에서는 치열하게 싸우는 전사이면서 약간 어눌하고 순진한 청년 연기가 귀엽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뭐니뭐니 해도 가장 깼던 건 『아즈망가 대왕』의 변태식 선생. (더이상 말이 필요 없음.)
이주창님의 데뷔 년도가 1996년으로 되어 있으니까 올해로 성우 경력 10년째가 되실 것이다. 요즘 『카레이도 스타』에 나오시는 걸 보면, 예전에 비해 더 자연스러워 지셨다고나 할까. 자신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작품속에 녹아드는 연기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어떤 때는 소름이 돗다 못 해서 아주 징그러울 정도다. 아무튼, 이젠 이주창님의 경력 갖고 트집잡는 글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욕할 사람들은 뭘 해도 시끄럽게 떠들려 하겠지만, 10년 동안 이 길을 걸어오신 만큼 앞으로도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넓혀 가며 멋진 목소리를 들려 주시리라 기대한다.
첫댓글 기파랑..정말 멋있었죠
아즈망가대왕은...정말...그치만...요즘 나오시는 카레이도스타의 레온과 같은 연기가..더 좋은것 같아요..^^ 냉철하면서도...그러면서도..왠지..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설레게하는..^^
저는 역시... 가면라이더 드래건에서의 연기를 잊을수 없습니다.... 뭔가 충격적이면서도 중독성 강한 더빙... ㅡ,.ㅡ
이주창님... 거의 투니버스의 히든카드급... 아... 얼굴은 또 성우계의 원빈급이라죠. 실제로 주창님은 순수하신 분이시랍니다.
이주창님 슬레이어스 try 에서 바르가프역으로 처음 접하고 건담W에서 창우페이로 그리고 아즈망가 대왕에서 변태식으로 나와 큰 충격을 준 분^^ 얼마전 종영된 카레이도스타에서 레온역 정말 좋았어요
트라이제논이 최고 -_-b 진삼의 주유 역이 개인적으로 주창님이 맡으셨으면 싶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