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지개의 본질은 심판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은혜로 바꾸셔서, 모든 피조물과 무지개 언약을 일방적으로 맺으시면서 더 이상 물로 인한 심판을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이 땅에서 번성하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즉 구름(심판에 대한 두려움) vs 무지개(그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생명의 은혜), 가운데 무지개를 선택하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 이번 달에는 (창9:8-17) 말씀을 통하여 <무지개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많은 유익이 있기를 바랍니다. 진 상열 목사 드림.
- (무지개를 보라!) : 홍수 이후에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세우셨을 때, 다시는 물로 생명을 멸하지 않으며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할 것이라고 약속하며 언약의 징표로 무지개를 보여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너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창9:11-13)
- 그런데 무지개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징표가 아니었습니다. 노아와 노아의 후손과 모든 생물에게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이 언약의 범위가 꽤 넓습니다. 또한 땅의 모든 생물이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도록 무지개를 언약의 징표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니 모든 피조물들은 하늘에 무지개가 나타날 때마다 본능적으로 이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것이 무지개 언약의 특징인 것입니다.
- 그런데 성경에서 반복은 강조를 나타냅니다.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라는 뜻입니다. (창9:9-17)에는 하나님과 인간과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로 무지개를 설명하면서 꽤 많은 반복이 사용되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나”를 강조하셨습니다. “내가”가 무려 8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둘째, “무지개”를 강조합니다. 3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셋째, “언약의 증거”도 3번 반복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조한 것이 바로 “내가”입니다.
- 그런데 이 하나님의 언약은 일방적인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의 일방적 특성이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이 언약이 세워졌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내가”가 강조된 것입니다. 즉 너희가 받을 만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하나님이) 은혜를 베푸는 것이고, 너희가 물의 심판을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의로워져서가 아니라, 내가(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너희로 물의 심판을 면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의 주체는 하나님 자신이며, 그랬기에 언약에서 강조된 것이 “내가”인 것입니다.
- 이처럼 홍수 이후에 하나님이 땅 위의 모든 생물과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는 일방적인 언약을 하셨고, 그 징표로서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셨습니다. 또한 이때부터 “구름 속에 무지개가 나타나면 언약을 기억하겠다.”고 하셨습니다(창9:15). 여기서 “기억하다”는 “새기다, 표기하다”라는 뜻입니다. (창8:1)에서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에서 쓰인 “기억하다”와 동일한 뜻입니다. 즉 “늘 떠올리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지개를 볼 때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들 사이에 세운 언약을 항상 기억하겠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하나님은 왜 하필 <무지개>로 언약의 징표를 삼으셨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무지개의 원래 뜻이 ‘활(弓)’이라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므두셀라]가 죽었을 때 홍수 심판이 일어난 것에서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본래 [므두셀라]라는 이름에는 “병기, 칼의 사람”이라는 살벌한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칼을 들었다는 것은 ‘심판(審判)’을 의미합니다. 즉 그의 이름의 의미는 ‘그가 죽으면 심판이 임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고 782년을 더 살다가 969세에 죽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로 오래 산 인물이 되었지요.
- 그런데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는데, [노아]가 태어났을 때 [므두셀라]는 369세였습니다. 그런데 홍수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노아]가 600세 되던 해입니다(창7:11). 그때 [므두셀라]는 몇 살이었을까요? 969세(187+182+600)였습니다. 이처럼 [므두셀라]가 죽는 날에 홍수가 임했던 것입니다. “그가 죽으면 심판이 임하리라.”는 말씀이 그대로 실현된 것입니다.
- 그런데 병기나 칼 모두 공격용 무기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무지개가 활처럼 생겼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활을 구름 속에 두셨다니 이게 무슨 뜻입니까? 사람이 크게 놀라거나 상처를 받으면 트라우마(trauma),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깁니다. 어렸을 때 엘리베이터에 갇힌 경험이 있는 사람은 좁은 곳에 들어가면 숨을 잘 못 쉬는 폐소공포증을 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트라우마입니다. 그러니 홍수를 겪고 난 피조물들이 오죽했겠습니까? 물의 심판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길 법하지 않습니까? 아마 빗소리만 나도 부들부들 떨었을 것입니다.
- 그러나 하나님이 비로 세상을 심판했다고 해서 비가 원래 심판의 도구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땅이 채소와 열매를 맺으려면 당연히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비는 인류에게 오히려 축복이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 중에 축복이 아닌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으로 말미암아 축복이 저주가 되어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 하나님은 태초에 인간이 사용할 모든 자원을 땅에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 앞서 셋째 날에 미리 땅이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창1:11)를 내게 하셨습니다. 홍수 이전에는 비가 왔다는 기록은 없지만 모든 채소와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풍족한 물(또는 안개)을 허락하셨습니다.
- 그런데 홍수 이후에는 하늘에서 비가 와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홍수 이후로는 비가 올 때마다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먹구름이 조금만 몰려와도 심장이 쿵 내려앉습니다. 빗소리만 들려도 미친 듯이 도망가거나 경기를 일으키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언약의 징표를 어디에 두셨습니까? 바로 구름 속에 두셨습니다. 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내리는데 비가 그치고 나면 무지개가 뜨는 것입니다.
- “내가 너희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한다.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으리라.”라는 언약처럼 하나님이 늘 기억하고 계심을 언약의 징표로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격 무기인 활처럼 생겼지만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구름 속에 두신 무지개는 매우 기가 막힌 언약의 상징인 것입니다. 더 이상 물로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 (환난 속에 언약을 감추시다!) : 놀랍게도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환난과 어려움 속에 약속을 감추길 좋아하십니다. 풍랑이 일 때 예수님이 걸어오셨습니다. 풍랑을 바라보면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예수님을 바라보면 풍랑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었지만 풍랑을 바라보는 순간 발이 빠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 물의 심판처럼 인생의 큰 시련을 겪어 본 사람은 구름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것입니다. 정신을 가다듬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구름을 보면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럴 때 구름을 보지 말고 구름 속에 둔 무지개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언약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무지개를 보면 마치 예수님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선포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말씀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 이처럼 언약의 말씀은 인생의 환난과 어둠 가운데 함께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향해 갈 때 광야는 그들에게 험난한 곳이기도 했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은혜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을 때는 광야의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친히 인도하셨습니다. 반면에 그들이 광야의 험난함만 바라봤을 때는 타락의 길로 빠졌습니다.
-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셨다는 것은 우리 삶 속에 구름처럼 보기만 해도 부들부들 떨게 되는 트라우마의 대상이 있음을 하나님이 잘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그만큼 피조물을 잘 알고 인간을 이해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환난 속에 언약이 공존하게끔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막힌 사랑 법이라는 것입니다.
- 신앙은 두 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트라우마에 빠지게 하는 구름을 볼 것인지 아니면 구름 속에 두신 무지개 언약을 볼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무지개 언약을 바라보면 더 이상 비와 구름이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언어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 삶의 현장 속에 있는 소재를 가져와 비유로 들려주시곤 합니다. 예수님도 많은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비유를 곧이곧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비유가 담고 있는 의미를 찾아보는 것입니다.
- 홍수 심판 후에 구름은 지금으로 보면 인생의 거친 환난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의미하는 바가 통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볼 때 문자적으로 읽을 게 있고, 본질을 들여다볼 게 따로 있습니다. 이것을 거꾸로 하는 것이 이단입니다. 이단은 거꾸로 하는 기술이 교묘하고 기가 막힙니다. 덕분에 우리도 기가 막히게 잘 속습니다.
- 무지개 언약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홍수 이후에 생물들이 얼마나 힘들어할지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무지개 언약을 선포하실 때 “내가”를 8번이나 반복하며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무지개와 언약의 증거를 반복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언약을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 즉 이 땅에서 피조물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며 이 땅에 충만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