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산(逍遙山)
요약 : 경기도 동두천시와 포천시 신북면에 걸쳐 있는 산.
개설
소요산의 높이는 587.5m이고, 산세가 웅장하지는 않으나 석영반암의 대암맥이 산능선에 병풍처럼 노출되어 성벽을 이루고 있는듯하며, 경기소금강(京畿小金剛)이라고 할 만큼 경승지이다. 동두천역에서 약 4㎞ 떨어져 있는데, 소요산 하면 진달래·단풍·두견과 폭포를 연상할 만큼 꽃과 단풍으로 알려진 산이다.
명칭 유래
974년(광종 25)에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서화담과 양사언과 매월당이 자주 소요하였다고 하여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자연환경
소요산의 입구에 청량폭포(淸凉瀑布) 및 원효폭포가 있는데, 청량폭포가 있는 곳을 하백운대(下白雲臺)라 하고 그 위쪽의 원효폭포가 있는 곳을 중백운대라고 한다. 원효폭포 주변에는 방음봉·이필봉·약수봉 등의 봉우리들이 솟아 있다.
신라시대 원효가 세운 자재암(自在庵)에서 30미터 돌층계를 올라가면 그 위쪽으로 중백운대와 상백운대가 있다. 중백운대와 상백운대를 거쳐 나한대, 의상대에 이르게 된다. 산의 정상에서 보면 북쪽으로는 한탄강이, 남쪽으로는 서울방면의 산맥이 굽이쳐 전망이 매우 좋다. 추가령구조곡이 산의 서쪽으로 지나간다
현황
소요산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수많은 전설이 많은 명승지를 품고 있다. 처음 계곡을 오르면 원효폭포가 있는데 이곳이 하백운대다. 그 오른쪽에 원효대사가 앉아 고행을 했다는 원효대가 있으며, 이를 지나면 백운암(白雲庵)이 있다. 백운암을 지나 오르면 소요교가 있고 이를 건너면 자재암(自在庵)이 나타난다. 그 앞에 청량폭포는 중백운대이고 이곳에는 옥로봉, 관음봉, 이필봉 등 기묘한 봉우리들이 있다. 옥로봉을 넘어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나한대와 의상대가 있는데 이곳이 상백운대이다.
또한 소요산에서 봄에는 철쭉축제가 열리고, 가을에는 단풍축제가 열려서 서울·경기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문화행사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종교문화재 탐방-소요산 자재암] 자연과 사찰이 들려주는 ‘원효대사 이야기’
천지일보 기사 승인일 : 2012.07.30.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서울 지하철 1호선 종점, 소요산역.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소요산이 있다. 경기도 동두천시 북쪽에 자리한 소요산은 아름다운 산세와 기암절벽으로 ‘경기의 소(小)금강’이라고도 불린다.
잠시 비가 그친 지난 16일 소요산 중턱에 있는 사찰, 자재암으로 향했다. 비가 온 다음 날이라 산은 더욱 청아하고 시원했다.
◆원효가 머물던 사찰
소요산은 고승 원효대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원효폭포’ ‘원효대’ ‘원효굴’ 등 산 곳곳에 그 이름이 남아 있다. 또 원효대사의 부인 ‘요석공주’의 이름과 호칭에서 유래한 ‘요석공원’ ‘공주봉’ 등도 만날 수 있다.
원효는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으며 아들 설총을 낳았다.
하지만 원효는 다시 수행에 전념하기 위해 아내와 아들을 떠나 인적이 드문 산을 찾아 돌아다녔고, 소요산에 정착했다.
그리고는 초막을 짓고 끊임없는 수행을 하며 관세음보살로 나타난 여성을 만나게 되면서 사찰을 지었는데 그곳이 지금의 ‘자재암’이라는 게 사찰에 전해지는 설화다.
한편 원효를 그리워했던 요석공주는 아들 설총을 데리고 이곳으로 와서 별궁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그 역사의 흔적은 자재암으로 향하는 길 한 구석에 있는 ‘요석공주 별궁지’에서 찾을 수 있다.
◆계곡을 끼고 오르는 길
‘자유롭게 이리저리 다닌다’는 뜻인 소요(逍遙)와 산 중턱까지 오르는 길은 매우 잘 어울린다. 길이 완만하기 때문에 자유스럽게 산책하는 마음으로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녹음 짙은 나무들이 가득해 그늘을 만들어주고, 맑은 계곡이 옆으로 흘러 운치를 더한다.
입구에서 자재암을 향해 20분 정도 걸으면 일주문과 속리교가 나온다. 속리교(俗離橋)는 ‘속세와 이별하는 다리’라는 의미다. 이곳을 찾았던 원효가 그러했고, 산을 오르는 많은 이들도 속세의 고민을 내려두고 다리를 건넌다.
◆108계단과 해탈문
속리교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108계단’ 앞에 서게 된다. 이 가파른 108계단을 통과한 후엔 해탈문에 다다른다. 여기에는 불교에서 말하는 108번뇌, 곧 속세의 수많은 번뇌를 벗어버리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는 뜻이 담겨 있다.
아치형의 해탈문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데 약간 삐뚤어진 모양이라 자연스럽고 투박함이 느껴진다. 불교의 윤회를 형상화한 4조각의 나무로 구성됐다. 그 위에 연꽃이나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
해탈문을 통과해 바로 보이는 곳은 원효대다. 원효대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푸른 숲으로 가득한 산이 내려다보인다. 원효대에는 수도하던 원효대사가 자살하려고 절벽으로 뛰어 내리려고 한 순간 문득 도를 깨우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자재암 나한굴과 청량폭포
원효대에서 계단을 내려와 길을 돌아들면 스님들이 수행 중인 백운암을 지나 자재암에 도착한다. 자재암은 경내가 넓지 않아 한눈에 들어온다.
그중 가장 눈길이 가는 곳은 ‘나한굴’이다. 멋진 기암절벽 아래 굴이 있고, 그 속에 나한상을 봉안했다. 안으로 들어서면 양 옆은 자연 동굴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원효대사의 수행처라고 전하며, 내부에는 16나한상을 봉안하고 있다. 나한상 뒤로도 자연 석굴의 모습이 나타난다.
나한굴을 나서면 바로 옆으로 ‘원효샘’이 있다. 석상으로 만들어진 용의 입에서 물이 졸졸 흘러 나온다. 원효샘은 원효대사가 수행을 하며 마셨던 물이라고 한다. 그가 가는 곳마다 맛좋은 물이 나와 차(茶)맛 또한 뛰어났는데 그중에서도 자재암 원효샘은 전국에서도 알아줄 만큼 뛰어난 물맛을 자랑한다.
사찰 가운데 대웅전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뒤편으로 삼성각, 그 옆으로 스님들이 거주하는 요사와 종무소 등이 있다.
사찰을 돌아보는 내내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소리가 들린다. 원래 대웅전 앞으로 높은 바위에서 떨어지는 청량폭포가 보였으나, 지금은 윗줄기만 살짝 보일 뿐이다. 지난해 집중폭우가 쏟아지면서 자재암 석축과 석등이 무너지고 파손돼 현재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라 천막 등으로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만약 폭포가 쏟아지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면 더욱 멋진 풍경을 자랑했을 듯하다. 아쉬운 마음을 청량한 물줄기 소리로 달래며 자재암을 내려왔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숨결이 머무는 곳, 소요산
북쪽에 소요산, 서쪽에 마차산, 동쪽에 왕방산, 남쪽에 칠봉산, 해룡산 등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인 동두천은 북동쪽으로 포천시, 서남쪽으로 양주시, 북서쪽은 연천군에 접한다. 8개 동으로 이뤄진 동두천은 신천이 시의 중앙부를 관류하여 북으로 흐르고 있다.한수 이북 최고의 명산으로 손꼽히는 동두천시 소요동 소요산은 산세가 특이하고 봄철 진달래와 철쭉이 장관을 이루며, 여름철에는 오염되지 않은 계곡에서 한낮 더위를 피할 수 있다.가을 단풍은 유별나서 예부터 경기의 소금강이라 일컬어졌다. 이곳은 원효대사가 고행 수도하여 큰 도를 깨친 곳이어서 불교 유적지로도 이름이 높다. 자재암, 원효 폭포 등의 관광명소가 소재하고 있으며, 수도권 지역의 일일관광코스로 주목받고 있다.
소요산은 뾰족뾰족한 기암괴석이 절묘하게 봉우리를 이뤄 만물상을 연상케 한다. 심연의 계곡은 오묘한 정취를 발산하며 산정상인 의상대와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나한대, 공주봉이라 불리는 여섯 개의 봉우리가 원형을 이루고 있어 산행의 들머리와 날머리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소요산 관광지에는 신라 시대 고승인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애틋한 설화가 스며있는 요석공주 별궁지와 사랑을 상징하는 연리지문, 조선 초 태상왕 이태조가 별궁을 짓고 지냈다는 행궁지 유적이 있다.
소요산 주변 관광시설로는 안보교육의 산실인 자유수호 평화박물관, 관광객들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건강 오행로 등의 볼거리와 산채, 떡갈비, 초계탕 등을 소재로 한 먹거리가 산재해 관광객들에 즐거움을 더한다. 가족단위 캠핑을 위한 야영장이 2009년부터 개방되어 자연체험의 장소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관광지 입구에는 넓은 자동차 주차장이 설치되어 있고, 전철 1호선이 소요산역까지 연장되어 교통이 가장 편리한 수도권 지역 제1의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원효대사를 위해 일일 삼배 치성을 드렸다는 요석공주 별궁지 표석을 지나 산정으로 오르는 길목은 맑은 청류가 흐르는 계곡을 끼고 있어 상쾌함을 더한다.
소요산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자재암은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알려져 있다. 요석공주와 사랑에 빠졌던 원효대사가 수행을 위해 소요산을 찾았고, 이곳에 초막을 짓고 정진한 것이 자재암의 시작이라는 것.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찰 건물 자체에는 원효 대사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재암은 정미의병 때 일본에 의해 한 차례 불태워졌으며, 이후 복원되었으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폐허가 되었다.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60년대의 일. 1961년 대웅전, 1971년에 요사, 1974년에 포교당과 원효대, 1977년에는 삼성각을 각각 건립하였으며 일주문은 1982년에 이르러서야 세워졌다.
그러나 원효대사의 손길이 직접 닿은 곳을 찾기 어렵다 한들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석굴 안의 나한전, 원효샘과 원효굴, 원효폭포 등 원효대사를 떠올려 볼 수 있는 볼거리는 얼마든지 있다. 원효대사의 흔적을 찾아 자재암을 찾는 이들이 많으니 사찰 안에는 기념품 가게가 들어서 있기도 하다. 이 아름다운 사찰, 시간을 넉넉히 두고 천천히 둘러보기를 권한다.
동두천시 소요산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