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림무비 - [독점] '기생충'봉준호 감독 익스트림무비 인터뷰여기를 눌러 링크를 확인하세요extmovie.com
Q: 미국 현지에서 직접 느낀 <기생충>의 반응은 어땠나?
지난 8월 말에 있었던 텔루라이드 영화제가 <기생충>을 미국 관객들에게 소개한 첫 출발점이었다. 이어서 토론토, 뉴욕영화제를 거쳐서 10월에 정식으로 북미 지역에 개봉됐다. 그리고서 북미 배급사 및 전문 홍보팀과 함께 개봉 프로모션 겸 아카데미상 프로모션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북미 반응이야 뭐 너무나 좋았다. (웃음) 프랑스에서의 반응이 가장 뜨거운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북미 쪽에서 더 좋아들 해줘서 의외지만 기뻤다. <기생충>의 장르적인 만듦새를 더 즐겨주시는 것 같다. 어제까지(12월 22일 기준) 북미 지역 극장 수입이 2,100만 달러를 넘었다. 북미 지역에서 개봉된 역대 외국어 영화 흥행 순위 10위권 안에 들었는데, 극장 상영이 2020년 1, 2월 어워드 시즌 이후 길게는 3월까지 이어질 거라고 하니 최종 흥행 성적이 어떨지는 두고 봐야 한다. (12월29일까지 북미 수입 2천2백만 달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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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을 갈아 넣는 오스카 캠페인
Q: 오스카 홍보 캠페인 활동이 몇 달째 계속되고 있는데, 엄청 강행군 같아 보인다.
텔루라이드 영화제 때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3박 4일은 걸릴 텐데. (다들 웃음) 그리고 아직도 진행 중이고... 무척 힘들다. (웃음)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야 해서 신체적으로 고생이고 스케줄도 살벌하게 빡빡하다. 텔루라이드 영화제 이후 LA에 갔을 때 <옥자>의 제작사 ‘플랜 B’의 프로듀서 제레미 클라이너와 만났다. 그 사람이 날 보며 씩 웃더니 “넌 올해 가을, 겨울은 X된 거다”고 말하더라. (다들 웃음) 좋은 의미로 ‘너는 강제 등판된 거다’란 얘기지. ‘<기생충>은 어워드 시즌 영화로 분류가 됐고 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투수 등판하듯이 마운드로 가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제레미 클라이너는 <노예 12년>, <문라이트> 등을 제작하면서 오스카 레이스를 많이 경험해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내게 “정말 지칠 거다. 대신에 그 과정에서 여러 아티스트들을 만나는 것이 낙일 수는 있다”는 조언을 해줬다.
이번에 귀국하기 전에 영국 런던에서 진행한 행사에서 틸다 스윈튼이 시사회 호스트를 맡아줬다. 틸다는 2007년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으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탄 적이 있어서,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원래 이렇게 힘든 거냐?”고 물었더니, 자기 때는 이 정도로 혹독한 스케줄은 아니라고 했다. 요즘 들어서 특히 기간도 길어지고 고강도가 된 것 같다고 말하더라.
작년에 <로마>가 오스카 레이스에 뛰어들었을 때는 넷플릭스가 홍보비로 1200억 원을 썼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돈이면 한국영화 10편은 찍을 텐데. (웃음) 수많은 인원들이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으면서 경쟁을 펼치는 걸 보면서 나나 송강호 선배나 신기해하고 있다. 이미 개봉한 영화들이고 또 박스오피스에서 내려간 영화들도 있는데, 큰돈을 들여가며 홍보한다는 게... 함께 경쟁하는 입장이지만 한편으로는 외부인인 우리 입장에선 대소동처럼 보인다.
Q: 홍보 캠페인 활동 중 경험한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있다면?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는 스마트하고 일 잘하는 좋은 분들인데, 아무래도 디즈니나 넷플릭스 같은 거대 회사가 아니다 보니 물량 대신에 (맷돌 돌리는 시늉을 하면서) 감독을 갈아 넣는 식으로... (다들 웃음) 엄청난 양의 GV(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미국에서 처음 개봉하는 주에는 하루에 몇 군데씩, 마치 봉고차를 타고 미사리를 도는 유랑극단처럼 움직였다. (다들 웃음) 그때 빡빡했던 스케줄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기생충> 같은 외국어 인디 영화는 PTA(극장 당 평균 수입)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더라. <겨울왕국 2> 같은 큰 영화들과는 어차피 경쟁이 안 되니 작은 규모의 극장들에서 PTA를 높이기 위해 아트하우스 배급사들이 목숨을 건다. 그래서 나와 송강호 선배, 박소담 씨가 GV를 엄청나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극장 안에서 쥐도 봤다. (다들 웃음) 극장 안에서 미친 듯이 질의응답을 하던 중 객석에 쥐가 지나가는 광경이 초현실적으로 보였다. ‘와, 저 관객은 대화에 몰두한 나머지 쥐가 지나가는 것도 모르는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대신 제레미 클라이너의 말처럼 사람들과 만나는 기쁨도 있다. <설국열차> 때 같이 일했던 에드 해리스가 연극 공연을 마치고 <기생충>을 보러 와서는 좋았다며 격려해줬고. 엔진칸에서 함께 지지고 볶고 했던 옛날 얘기도 나눴다. 또 스파이크 존즈, 데이빗 O. 러셀 감독 같은 이가 Q/A를 진행해 주기도 했다. 데이빗 O. 러셀은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분이던데 <기생충>에 대한 별난 해석과 자신만의 생각을 많이 이야기했다. <옥자> 때 같이 작업한 제이크 질렌할과 틸다 스윈튼과도 다시 만났다. 그런 게 가뭄에 콩 나듯 경험한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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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으로서 고통스러웠던 상황
Q: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봉준호 감독은 상업적으로 실패했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이후로 계속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들은 잘 모르는 좌절의 순간 내지 고통스러웠던 때가 있었을까.
<괴물> 때 시각효과 CG와 관련해서 힘든 일이 많았다. <옥자> 때는 이미 경험이 쌓였고 같이 작업하고자 하는 CG 회사도 많았지만, <괴물> 때는 내가 그런 괴물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하면서 다녀야 하는 입장이었다. 형식적으로는 내가 의뢰주이지만, 외국의 시각효과 회사의 입장에서는 <살인의 추억>이 무슨 영화인지도 잘 몰랐으니까.
당시 한국 회사들은 하지 못한다고 해서 미국이나 유럽 회사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보통 하는 작업의 예산과는 너무나 차이가 나서 애를 먹었었다. 그렇다고 CG 없이 영화를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영화는 이미 제작 발표돼서 배우들도 기다리는 상황이어서 정말이지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미국의 ‘오퍼나지’라는 회사와 만나면서 간신히 돌파할 수 있었지만 무척 힘들었었다.
<플란다스의 개>는 캐스팅을 마치고 한참 진행되려던 차에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해 제작이 무산될 뻔한 적이 있었다. 나와 연출부가 울면서 사무실을 정리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차승재 대표가 이성재라는 좋은 배우를 쓸 수 있는데 대신에 우리 예산을 줄여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순제작비 11억 원을 9억5천만 원으로 줄이고 새 발의 피 같았던 내 연출료도 깎였다. (다들 웃음) 그렇게 이성재, 배두나, 고수희, 김뢰하를 캐스팅해서 간신히 찍었다.
영화를 접으며 짐을 쌀 때 느껴지는 특별한 기분이 있다. 감독님들은 다들 아실 거다. 영화를 오랫동안 준비하다가 책상을 치울 때 밀려오는 쓸쓸함이란. 그래도 다행히 구제가 됐는데, 그 뒤로는 내가 기획했던 영화가 엎어진 적이 없어서 운 좋게 감독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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