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다 잘된 거야>와 <완벽한 가족>
2022년 한해가 저물어 가는 중이다. 그래도 실내 마스크를 의무화하는 코로나 여파는 저물지 않고 있다. 그래도 지난 3년간 봉쇄된 일상이 점차 열리면서 송별모임도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그 와중에 코로나 파장을 타고 예상보다 빨리 다가온 영화관을 떠난 영화보기문화는 영화계에서 풀어내야할 급선무 과제이다.
11월말 열린 영화학 학술대회에서 내건 주제 “영화란 무엇인가?”도 영화관을 떠난 영화의 정체성을 새롭게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영상위원회 총회에서도 영화관보다 OTT 서비스 중심으로 이동한 영화문화의 변화를 지원하는 임무가 도전적 과제로 대두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필자에겐 지난 9월 13일 날아든 장 뤼크 고다르의 존엄사 소식은 영화관 속 영화의 삶과 죽음의 예고편처럼 다가온다. 왜냐하면 고다르는 현대 영화사를 창조한 '누벨바그'의 기수이자 혁명적인 영화사상의 상징으로 통했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다르의 법률고문이 뉴욕타임스(NYT)에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명료하게 “이제 이만하면 됐다”고 하면서 “존엄하게 죽기를 희망했다"고 덧붙였다. <네 멋대로 해라>(1960)로 점프컷을 시도하며 새로운 영화서사 문법을 창조해 나간 그는 영화탄생 100년을 기념하는 영화사 다큐에서도 영화작품과 현실과의 상호작용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성찰적 태도를 보여준 바 있다. 그런 점에서 그가 선택한 스위스식 존엄사는 고다르다움을 증명한 셈이다.
마침 같은 시기인 9월 한국에서 개봉한 <다 잘된 거야>(2021)는 존엄사 여정을 다룬 작품으로 실화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드라마의 핵심은 소설가 엠마뉘엘(소피 마르소)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80대 아버지 앙드레(앙드레 뒤솔리에)의 마지막 여정을 담당하면서 벌어지는 상황과 사건들을 긴장감 있게 다룬다. 파킨슨병을 앓는 아내와 별거생활을 하는 앙드레는 의료 기계장치로 연명하기보다 삶의 마지막 단계로 존엄사를 선택한다. 그런데 존엄사가 법적 투쟁중인 프랑스에선 그런 선택이 불가능하다. 아버지를 돌보며 아버지의 요청을 거부해온 엠마뉘엘은 아버지의 결단을 되돌리려고 동생과 함께 온갖 노력을 다해본다. 그러나 끈질긴 아버지의 요청은 그녀에게 마치 영화 시나리오를 쓰듯 불법적인 존엄사 여정으로 스위스로 가는 밀행을 연출하게 만든다.
일상적 관습의 이면을 치밀하게 뒤집어 보이는 프랑수아 오종 감독 특유의 관찰력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웰빙(Wellbeing)이 웰다잉(Welldying)의 이면임을 증명해낸다. 가족관계의 친밀감 속에 내재된 부모사이의 불화, 부녀지간의 신뢰와 갈등 등이 그러하다. 한때 청춘스타의 상징이었던 소피 마르소가 주름진 중년 작가이자 큰 딸 캐릭터로 연기해내는 내면심리 묘사는 보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기도 한다. 한쪽이 마비된 일그러진 얼굴을 중심으로 한 온몸 연출로 장시간 연기투쟁을 벌인 앙드레 뒤솔리에의 연기력도 혀를 차게 만든다. 그 와중에 상대방을 배려하며 마지막 남은 순간에도 유머를 구사하는 부분에서는 눈물과 웃음이 공존하는 영화보기의 묘미를 경험하게 해준다.
<완벽한 가족>(2011)도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즉 웰빙(Wellbeing)/웰다잉(Welldying) 문제를 가족관계 차원에서 풀어낸 작품이다. 바닷가 아름다운 집에서 행복한 노년의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는 릴리(수잔 서랜든). 그러나 그녀는 루게릭병으로 마비되는 신체를 경험하며 삶의 마지막 단계를 선택하기로 결심하며 크리스마스 가족파티를 계획한다. 그녀의 단호한 결심에 의사인 남편도 불법적 존엄사 여정에 협조해 나간다.
동성애 둘째딸의 선택도 존중하며 모범생처럼 보이는 큰 딸의 아들도 마약 경험을 고백하는 진보적으로 보이는 가족이지만 양파껍질처럼 벗겨내다 보면 그 안에선 상처받은 누군가의 아픔이 드러난다. 모녀간 갈등과 화해, 모범생 언니와 탈주하는 동생, 두 자매 사이의 불화와 긴장감...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완벽해 보이는 행복한 가족 속의 개인이란 이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런 세상의 편견을 반어법적으로 표현하려고 원제목 ‘Blackbird’를 <완벽한 가족>이란 제목으로 바꾼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팁: 한국에서도 2022년 6월 '조력 존엄사' 법안으로 불리기도 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이 법안은 말기 환자가 자신의 죽을 시점을 선택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지나
영화평론가, 동국대 교수
LABZINE 2022 겨울호
첫댓글 영화 <다 잘 된거야>는 아직 보지 않았는데, 보고 싶어지는 글이네요!
<다 잘 된거야> 강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