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기 7주차]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듯이
남편과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콩나물에 물 주듯 하는거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요즘 받고 있는 영성지도와 나를 알아가는 내적 여정 공부, 글쓰기 수업, 철학 공부 등으로 인한 내적, 외적 변화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나의 동동거림에 남편이 툭 던지듯 한 말이 가슴에 콕 박힌 거다. 학교에서 동료선생님들과 아이들을 두고 회의하면서도 많이 들어본 말이지만, 출처를 명확히 밝히고 싶어 검색했더니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의 시에 나온 표현이었다. 작년부터 이어령 교수님의 책을 최근에 발간된 작품부터 하나씩 읽어가고 있어서인지 더 반갑고 뭉클했다. 다음은 <천년을 만드는 엄마> 책에 담긴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듯이' 시이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듯이
- 이어령
콩나물 시루에 물을 줍니다.
물은 그냥 모두 흘러내립니다.
퍼부으면 퍼부은 대로
그 자리에서 물은 모두
아래로 빠져 버립니다.
아무리 물을 주어도
콩나물 시루는 밑빠진 독처럼
물 한방울 고이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콩나물은 어느새 저렇게 자랐습니다.
물이 모두 흘러내린 줄만 알았는데,
콩나물은 보이지 않은 사이에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물이 그냥 흘러 버린다고
헛수고를 한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는 것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매일 콩나물에 물을 주는 일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물이 다 흘러내린 줄만 알았는데,
헛수고인 줄만 알았는데,
저렇게 잘 자라고 있어요.
물이 한 방울도 남지 않고
모두 다 흘러 버린 줄 알았는데
그래도 매일 매일 거르지 않고 물을 주면,
콩나물처럼 무럭무럭 자라요.
보이지 않는 사이에
우리 아이가...
이어령 <천년을 만드는 엄마>중에서...
어린 자녀를 기르는 어머니들에게 전하는 메세지이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 여러 스승들께 가르침을 받고 있는 현재의 나에게도 꽤 의미 있는 내용이 담긴 시다. 물이 흘러내린 줄만 알았는데, 보이지 않은 사이에 무성하게 자란 콩나물은 물 주는 이를 격려하여 헛수고가 아니었음을 알게 한다. 매일 매일 거르지 않고 물을 주면 어느덧 무럭무럭 자라 있는 콩나물을 표현한 문장을 보며, 좋아하는 드라마 속 대사가 떠올랐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건 없지만, 내 안에서 뭔가가 이만큼 키가 컸을 거야"
'메리대구 공방전'이라는 드라마에서 뮤지컬배우를 꿈꾸는 백수 메리가 늘 육탄전을 벌이는 동네 주민 백수 친구 대구에게 던진 이 대사는, 드라마가 방영된 지 16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의 원픽 대사이다. 대학 시절 내내 이 드라마를 무한 반복하며, 특히 이 대사가 나올 때는 알 수 없는 울림으로 눈물을 흘리며 리플레이를 했었다. 당시 갈 바를 알지 못해 방황하던 시절이어서였을까,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모습이 순수하고 애잔한 것이 꼭 현실의 청춘들 같아서였을까. 한참을 다이어리에 저장해두고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이 대사를 곱씹지 않다가, 이번에 다시 꺼내보았다.
20대부터 지금까지 내면의 갈급함을 채우기 위해, 마음이 이끄는 소리에 진실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곳에 가 보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공부와 그로 인해 파생된 다른 공부, 책, 만남들은 순간순간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목마르고 부족함을 여실히 느끼며, 우물을 파면 팔수록 내면의 공허함은 깊고 크다는 것을 느낀다. 흘러가는 젊음을 잘 보내고 있는 것일까 반문하며, 괜시리 성찰도 해보며 눈을 감고 지나온 시간들을 되감기했다.
내가 나를 볼 때는 보이지 않는 성장과 퇴보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기에, 글이 편안해졌다는 사부님의 말씀과 함께 있을 때 편안하다는 지인들의 말 속에서 나의 변화를 더듬어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조급함과 불안함이 나를 밀려올 때 책 속으로, 묵상일기로, 영혼을 내려놓을 곳을 찾아 숨바꼭질을 반복했다. 땅굴을 파고 들어앉아 있다가 답답함을 못 이겨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돌고 돌아 결국 영성지도를 받으며 나의 삶을 뒤집어보기도 하는 요즈음이다. 결혼을 하고 크게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이니 넌 인생에 고민이 없지 않느냐는 물음에,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아느냐'며 화가 나던 시점도 이제는 좀 지난 듯 하다. 여전히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는 사람들이 불편하고, 허락하지 않았는데 내 영역 안에 발을 들이미는 사람들을 멀리 밀어내고 싶지만 그래도 이제는 그런 나와 타인조차 조금은 '그러려니'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다. 이 또한 콩나물 시루처럼 자라난 내 조붓한 마음이다.
4월을 보내고 5월을 맞으며, '이번 달은 또 어떤 시간들이 날 기다릴까. 어떻게 꾸려갈까' 기대가 된다. 당장 눈에 보이는 건 없지만, 아이들도 3월보다 훌쩍 자라난 모습을 보니 함께한 시간 속에 나도 자랐을 것 같다. 점점 따뜻해지는 날씨, 흘러가는 시간에 잔잔히 물을 주며 그렇게 또 내 마음도, 아이들도 각자의 속도로 자라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