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탐욕은 이념보다 강하다
“평등”의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시도했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카를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는 영국에서 산업현장의 비참함을 보았다. 저임금과 과한 노동으로 일찍 병들어 죽는 사람들과 어린아이들까지 일하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는 현장을 목도했다. 자본주의의 악폐(惡弊)를 본 것이다. 그는 그런 환경 속에서 자신의 두 자녀까지 잃었다.
그는 그 “비참한 사람들(Les Miserables)”을 프롤레타리아트라고 불렀다. 마르크스는 차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유대교 랍비였고, 그는 누구보다도 토라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다”(신10:14)를 “땅의 주인은 국가다”로 바꾸어 놓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즉 국가가 땅을 관리하며 공동생산, 공동분배하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은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최소한으로 일하고, 분배는 반드시 받자”로 바꾸어 놓았다. 최소한으로 일하자는 의식은 생산량의 감소를 가져왔다. 이에 국가는 생산량을 할당시켰고, 그로 인해 생산량은 맞추었지만 그 대신 품질이 떨어졌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탐욕을 무너뜨리기 위해 공산주의를 외쳤다. 그러나 그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것은 인간의 탐욕이었다. 인간의 탐욕은 이념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마르크스는 몰랐다.
p.s.
사실 우파와 좌파의 차이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파이(pie)를 어느 쪽을 더 키우고 어느 쪽을 더 줄일 것이냐의 차이밖에 없다.
“자유>평등”을 선호하면 우파가 되고, “자유<평등”을 선호하면 좌파가 된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서 결정한다. 그런데 국민들이 이쪽도 맛보고 저쪽도 맛보고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