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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
<흥남의 마지막 배>
전 경 애(한국문인협회 해외문학 발전위원장/국제PEN한국본부 이사/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한국전쟁문학회 부회장 역임/한국전쟁문학상/한국문학백년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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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항에서 김 신부를 태운 밥은 곧장 수도원을 향해 차를 몰았다. 수도원이 있는 작은 마을까지는 두 시간 가량 달려야 했다. 밥은 차를 몰며 지난 해 가을 김 신부와 처음 만나던 날을 생각했다. 그들이 처음 만난 것도 그 수도원에서였다.
“한국에서 온 김 바오로 신부네,” 마린신부는 한국에서 왔다는 오십 세 안팎의 단단하게 생긴 신부 김 바오로를 밥에게 소개해 주었다.
“아, 예- 반갑습니다.”
밥은 마린 신부가 그 한국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소개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마린 신부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젊은 시절 메레디스 빅토리호의 선장이었던 고령의 마린 신부는 휠체어에 의지해 있었다. 김 바오로 신부는 건장해 보이는 남자였다.
“저는 흥남철수 때 메레디스 빅토리호 위에서 태어났습니다... 마린 신부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러 왔습니다. 제 어머님은 빅토리호가 닿은 한국의 거제도를 제 출생지로 출생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김 신부는 말했다.
밥은 김 신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제가 바로 그 상선의 부선장이었습니다.”
“정말이요!” 김 신부는 참으로 반갑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배에서 그 때 다섯 명의 아기가 태어났지요.”
밥은 김 신부가 그의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 때 그 배에서 태어난 다섯 아기 중 하나가 반세기도 넘은 지금 신부가 되어 나타나다니... 얼마나 만나고 싶었던가. 밥은 와락 김 신부를 끌어안았다.
1950년 12월 차디찬 흥남부두...
밥은 그 날의 혼란과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연기를 기억했다. 당시 그 배의 부선장이었던 밥은 한국전쟁 후 배를 떠났다. 법대를 나와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밥은 장난끼있게 김 신부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자네 이름은 ‘김-치’?”
김신부는 웃었다. “어머님 말씀이 배 안에서 미국선원들이 날 그렇게 불렀다고 하더군요.”
“그게 우리가 아는 유일한 한국말이었소. 모두들 좋아하더군요. 그래 김치 1, 김치 2 등등 이렇게 이름을 지어 불렀지요...정말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이해가 갑니다. 저는 김치 5였습니다. 그래 제 이름은 김치지요,” 김 신부가 대답했다.
“흠... 그런데, 부친께서는 어떻게 되셨나요?”
“제 아버님은...” 김 신부는 문득 말을 멈추고 한숨을 지었다.
“괜한 것을 물었구나-” 밥은 후회했다. 그는 손을 저으며, 아, 됐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는 김 신부에게 다가가 그의 등을 두드렸다. 사실 그는 무슨 소리가 나올까 두렵기도 했다. 한국사람과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아, 괜찮습니다. 아버님은 그 때 흥남부두에서 일찌감치 배를 타긴 탔었는데... 그런데, 부두에 남은 사람들이 한사람이라도 더 타려고 목숨을 걸고 덤비는 것을 보고, 마지막 순간에 배에서 내리셨다고 합니다. 그 뒤로는 영영 소식을 모릅니다...” 김 신부는 말을 맺지 못했다. 밥은 정말 괜한 것을 물었다고 후회했다.
“제 어머님은 저를 키우느라 무진 고생을 하셨습니다, 어머님은 평생 아버님을 기다리셨습니다... 통일의 그 날을 기다리며 매일매일 기도하시다... 얼마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말을 마친 김 신부는 천천히 성호를 그었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김 신부, 마린 신부님이 사시는 이 오래된 수도원은 신부가 필요해요, 당신같은 사람이, 활달하고 튼튼한 수도자들 말이요. 사실, 미국에는 신부가 부족해요. 그래 외국에서 젊은 신부를 많이 초빙합니다,” 밥이 말했다.
“글쎄요, 한국에서도 할 일이 무척 많아서요.”
김 신부의 웃음 띤 얼굴 너머로 밥은 외로이 항해하는 한 척의 배를 보았다. 1950년, 참혹했던 겨울, 불타는 흥남부두를 최후로 빠져나온 마지막 배, 메레디스 빅토리호를...
2.
밥은 젊은 시절 배를 탔었다.
그러다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전쟁이 터졌고, 그가 부선장으로 일하던 빅토리호는 전쟁 물자를 실어 나르는 일에 차출되었다. 전투는 치열했고 당시 세계의 이목은 연일 쏟아지는 한국전쟁에 쏠리고 있었다.
“1950년 6월 25일-고요한 아침의 나라 코리아에 전쟁 발발...”
급박한 상황을 알리는 보도는 숨가쁘게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전선은 부산까지 밀리었고 우방국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밥이 탄 빅토리호는 닥치는 대로 군수물자를 날라야 했다. 군인들이 먹을 레이숀 박스에서부터 제트오일까지. 그것은 지극히 위험하고 힘든 일이었다. 유엔군은 크리스마스 이전에 전쟁을 끝내기 위해 총공세를 폈다. 그러나 그 계획은 30만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의해 저지되고 말았다. 미해병대 제1 사단을 포함한 2만 5천 명의 유엔군은 최북단 함경남도 장진호로 진격해 갔다. 그들이 12만 명의 중공군에게 완전히 포위당했다는 뉴스가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유엔군들은 그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개마고원의 깊숙히 집중포격을 가했다. 장진호의 상황을 보고 받은 맥아더 사령관은 알몬드 장군에게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그 때가 바로 밥이 탄 배가 전투비행기 연료로 쓰일 제트오일을 잔뜩 싣고, 지뢰밭을 헤치고, 흥남 항에 들어갔을 때였다. 그러나 아군이 후퇴 중이라 배는 싣고 간 제트오일을 부두에 풀어놓을 수가 없었다. 빅토리호는 해안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 닻을 내리고 상부로부터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 부두에는 연일 몰려드는 피난민에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밥은 배 위에 서사 쌍안경으로 흥남을 지켜보았다. 그는 당시 장진호에서 퇴각하는 미군과 유엔군의 상황을 상세히 알 수 있었다. 부두 한 쪽에는 미군이 군인과 피난민을 한사람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포기한 온갖 병기와 군용물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군이 후퇴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흥남으로 몰려들었다. 미제 10군단 민사부 고문 현봉학 등은 알몬드 장군을 찾아가 피난민들을 남쪽으로 데려가기를 끈질기게 애원하고 설득했다.
그러나 알몬드 장군은 그가 이끄는 제10군단의 10만 여 군인를 철수할 방도를 찾기에도 힘겨웠다. 흥남부두에는 이 십 만 명이 넘는 피난민들이 집결하여 추위와, 허기, 눈보라와 싸우며 그들을 남쪽으로 실어다 줄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춥고 굶주린데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알몬드 장군이 이끄는 10군단은 일본과 부산으로 계속 피난민 구원요청을 타전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을 태워 줄 LST와 수송선이 흥남부두에 도착했고 피난민들은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천지를 뒤흔드는 중공군의 포성은 바짝 다가오고 있었다.
LST와 수송선들은 피난민들로 꽉꽉 들이찼다. 트럭이나 탱크 위, 아래, 지하창고에서 꼭대기까지 온통 피난민들로 뒤덮였다. 부두에는 피난민들을 더 태우기 위해 포기한 엄청난 분량의 무기와 군수품들이 쌓여갔다. 미공병대가 그것이 적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폭파장치를 설치했다. 미처 배를 타지 못한 피난민들은 부두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군수송선 레인 빅토리호, BM 501호, 버지니아 빅토리호, LST 661호, 요나야마 마루호, 토바트 마루호, 마다 케트호, LST 668호, LST 059호, LST 081호 LST 074호 등 군수송선이 흥남과 원산, 이원 등에서 십만 여 명의 피난민을 싣고 속속 남쪽으로 향했다.
메레디스 빅토리호는 흥남에 풀어놓지 못한 3백 톤의 위험천만인 제트오일을 싣고 명령이 하달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밥은 쌍안경으로 줄곧 부두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또다시 한국이란 나라와 그와의 기묘한 인연의 끈이 다시 팽팽하게 당겨지는 느낌이었다.
1944년, 해군 수병으로 사이판 전투에 참전했을 때, 그는 최초로 한국인의 비극과 접했었다. 당시 사이판에는 일본에 의해 강제로 끌려온 수 백 명의 한국인 징용자들이 노예처럼 일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났다고 해도 강제노동은 계속되고 있었다.
미해군함정을 타고 그 곳을 방문한 수병이었던 밥은 솔선하여 한국인들을 고향으로 돌려 보내는 일을 맡았다. 밥은 특히 북쪽이 고향인 한국인 징용자들이 고향에 가지 못하고 혹사당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그들을 우선적으로 고향으로 되돌려 보내는 일을 했던 것이다.
3.
밥과 김 신부를 태운 차는 양쪽에 늘어선 집들 사이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날이 흐려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중태인 마린신부를 방문하는 일을 미룰 수는 없었다. 수도원장은 그가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다고 말했었다.
잠시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마린 신부님이 건강을 회복하셔야 할 텐데... 그러나 수도원장은 오늘 저녁을 넘기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밥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김 신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김 신부 역시 자신이 너무 늦게 온 것을 차창 밖은 도시의 모습은 사라지고 전원풍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김신부는 말없이 앉아 그 풍경을 지켜 보았다. 나무들이 더 많아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트리...” 김 신부는 그 곳 수도원의 나무들을 생각했다. 그 곳 수도원의 신부들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재배했다. “참, 이젠 크리스마스 나무들도 쓸모없다고들 해요...” 김 신부는 지난 해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수도원장과 나누던 대화를 생각했다.
“대량 생산된 플라스틱 크리스마스 트리에 밀려 진짜 크리스마스 트리가 통 안 팔려요,” 수도 원장이 말했었다. “게다가 여기 신부들의 숫자가 자꾸 줄어들고 있어요. 이제 우리 열 댓 명 뿐이 안 남았다니까. 그 중 삼분의 일이 95세 이상이지요. 얼마 안 가 이 수도원도 문을 닫게 될 것 같아요.”
김 신부는 마린 신부가 위독하다는 것을 밥에게서 연락을 받았었다. “마린 신부의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어 가고 있어요. 고령의 수도자들이 모두 짐을 싸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밥은 그에게 말했었다.
“마린 신부님은 혼수상태로 누워 계시고... 수도원은 문을 닫게 된다니.”
김 신부는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마린 신부에게 무심했던 자신을 질책했다. 그는 출생자체가 마린신부와 연관이 있었고 마린신부가 아니면 지금 그의 삶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조차 없었다.
“한국에 있는 젊은 신부들을 이 수도원으로 보내 수도원을 재건하고 싶습니다.” 사실 그는 지금 마린신부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러 한국에서 달려온 것이었다.
어두워지는 하늘에 하나, 둘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김 신부는 걱정스레 유리창 밖을 내다보았다. 차는 고집스럽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사실, 밥은 그 동안 점점 허약해져 가는 마린 신부를 틈틈이 방문했었다. 수도원장은 항상 밥을 반갑게 맞아 주었고 그와 함께 마린 신부의 곁을 지켜 주었다.
어느 날 밥은 마린신부에게 불쑥 이야기를 꺼내었다.
“마린 신부님, 설마, 그 한국바다에서의 그 기적같은 항해를 잊은 것은 아니겠지요?”
“기적같은 항해?.”
평소 말이 거의 없던 마린신부가 희미하게 되받았다. 밥은 재빨리 말했다.
“네 그 기적의 항해요.” 그리고 밥은 그의 귀에 입을 바싹 가져다 대고 말했다. “195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죠.”
“.....”
밥은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나 마린 신부는 더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밥은 포기하지 않았다. 갈 때마다 그 기적적인 항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며 참을성 있게 마린 신부의 반응을 기다렸다. 어느 날, 밥이 또 그 기적의 항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려 하자 말없이 누워있던 마린신부의 입술이 조금 움직였다. 밥은 얼른 귀를 바싹 가져다 댔다.
“인간이” 마린신부는 숨가빠했다. 밥은 바짝 긴장했다. “할- 도리를-한거요.” 마린신부는 말하기가 힘이든지 거기서 말을 끊었다.
“네, 인간이 할 도리를 한 것이지요,” 밥은 크고 명확한 소리로 반복했다. 마린 신부는 무엇인가 더 말하려고 했으나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 입술을 움직이려다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러자 수도원장이 말했다. “그는 단지...”
“네? 단지 인간이 할 도리를 했을 뿐이라고요?” 밥이 물었다.
“네, 바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도원장이 말했다.
“마린신부님, 그런데 을지무공 훈장을 찾아야지요, 없어졌단 말입니다. 사라졌단 말입니다.” 밥은 마린 신부의 귀에 대고 외쳤다. 그러나 마린신부는 대답이 없었다. 그 이후에도 밥은 틈나는 대로 수도원을 방문해 마린 신부의 기억을 일깨우려 노력했고 사라진 을지무공 훈장에 관해 이야기했다.
한국전쟁과 사라진 을지무공훈장.
밥은 기필고 그 잃어버린 훈장을 도로 찾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밥이 수도월을 방문하자 마린신부는 밥에게 ‘당신 누구요? 남미에서 온 사람인가?’ 하고 말했다. 그는 차갑게 말하고는 밥을 외면하며 돌아눕는 것이었다.
“왜 그는 나를 피하는 것일까?” 밥은 그를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밥은 마린 신부가 완전 치매가 되거나 의식을 잃어버리기 전에 빅토리호가 한국정부로부터 수여받은 그 을지무공훈장을 찾아내야 한다고 결의를 굳혔다. 그것이야말로 그 배의 부선장이었던 그가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을지무공 훈장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밥은 수도원장에게 그것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나 수도원장 역시 마린 신부의 방과 소지품을 샅샅이 뒤졌지만 그것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이제 밥도 70대 후반이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그는 늦게나마 훈장을 찾고, 메레디스 빅토리호의 기적적인 항해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것은 그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당시 빅토리호 선원들은 다 뿔뿔이 흩어져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밥이 마지막으로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수도원장은 마린신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에게 알려 왔다. 밥이 급히 한국의 김 신부를 부른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4.
가늘던 눈발이 굵어지며 차의 앞유리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눈보라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기는 힘이 들었다. "마린 신부님은 내가 수도원에 찾아가서 흥남철수 당시 활약상을 다른 한국인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하면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어요. ‘인간이라면 당연히 할 도리를 했는데’ 뭘 그러나, 하구요.“ 밥은 말했다.
김 신부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선장님은 어떻게 신부가 되셨답니까?” 김 신부는 그가 가장 궁금해 하던 것을 물었다.
“글쎄요...”
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평소에도 매우 온화하고 조용한 사람이었지요. 배의 선장으로서도 그는 절대 소리를 지르거나 부당한 짓을 하지는 않았어요. 그는 근본적으로 매우 종교적인 분이었어요.”
밥 역시 자세한 것을 알지 못했다. “혹시, 나머지 네 명의 김치아기 중 누구를 만나 본 적이 있나요?” 밥은 물었다.
“아니요, 저는 그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김 신부는 대답했다.
그렇다. 거제도에 도착해서 거의 구걸하다시피 연명하던 피난민들은 하나 둘 다 부산으로, 서울로 살길을 찾아 떠났다.
흥남부두에서 배에서 내리신 나의 아버지는 북한에 살아 계실까? 만일 살아 계시다면, 밥보다도 더 연로하실 텐데...
김 신부는 그 생각을 털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아버지 없는 아이로서 고통과 외로움의 날들을 견디어야만 했고, 반세기에 걸친 어머니의 눈물과 기도 - 그 고통이 그를 가톨릭 신부로 만들었을 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선장님은 신부가 된 후 일생 수도원 밖을 나오지 않았어요. 아마도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아주 높은 정신적 경지에서 사시는 분 같았어요. 내가 수도원에 갈 때마다 수도원장은 마린 신부님이 기도 중이라고 말씀하시곤 했으니까요. 수도원장 역시 항상 마린신부님 옆에 그림자 같이 따라다녔고... 도대체 두 분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밥이 말했다. 그는 마린신부의 무관심이 야속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4,000명의 피난민을 남쪽으로 안전하게 싣고 간 메레디스 빅토리호는 고철로 팔려 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영원히 역사 속에 묻히게 될 런지도 몰라...’ 밥은 한숨을 내쉬었다.
5.
수도원장은 마린 신부의 침상을 지키고 있었다. 창 밖에는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고령의 마린신부는 몇 달째 침상에 누워 있었다. 수도원장은 침상을 지키는 사이사이 마린신부의 서랍을 열고 훈장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매번 헛수고였다.
수도원장은 몇 년 전 눈보라가 휘몰아 치던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를 기억했다. 그날 저녁 수도원은 교통이 끊겼고 그와 마린 신부 단 둘이었다. 마린신부는 속세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날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응시하며 창밖을 내다보던 마린 신부의 눈은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그 날 마린신부는 수도원장에게 믿을 수 없는 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날 흥남부두에는 이렇게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지요...,” 마린 신부는 먼 곳을 응시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1950년 12월, 나는 상선 빅토리호의 선장으로 한국의 북쪽 흥남부두를 향하고 있었지요. 내가 그같은 항해를 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조차 없지요. 다만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메레디스 빅토리호가 신의 가호 아래 항해했다는 믿음뿐이죠.
한국피난민이 까맣게 흥남부두로 몰려들었어요.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었어요. 제대로 옷도 입지 못한 그들은 무거운 것을 이고, 지고 있었어요. 토끼처럼 놀란 아이들이 그들 옆에 붙어 있었지요. 나는 쌍안경으로 부두를 둘러보았어요. 흥남부두는 어디선가 몰려온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그들의 뒤에는 중공군이, 그들의 앞은 망망대해였지요.
마지막 날, 해군함정으로부터 깜빡이는 불빛 신호등으로 메시지가 전달되어 왔어요, 우리에게 부두 쪽으로 와서 피난민을 태워줄 수가 있겠느냐고. 저는 그 즉시 부두를 향해 배를 출발시켰지요. 우리는 그들을 배에 태우기 시작했어요. 서로 배에 오르기 위해 큰 소란이 벌어졌죠. 왜냐하면 우리 배가 피난민들을 남쪽으로 태워다 줄 마지막 배였거든요.
‘빨리!’, ‘빨리!’, 우리는 사력을 다해 빨리빨리를 외치며 그들을 배에 태웠습니다. 이 말을 내가 처음으로 피난민들한테서 배운 말이었어요, 피난민들은 모두가 빨리, 빨리를 외치며 배에 오르고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가능한 모든 공간에 피난민들을 가득가득 태웠어요. 다 아이들이 네 다섯은 보통이었고 일곱 여덟, 열씩 되는 가족들도 있었어요. 부상자가 있는가 하면 커다란 이불이나 농짝을 짊어진 사람도 있었고 재봉틀을 들고 있는 사람도 있었지요. 나중에는 아이들이 수 백 명이나 되었어요. 드디어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최대한 2,500명을 태울 수 있는 배에 14,000명을 태울 수 있었어요.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우리는 조심조심 부산을 향해 헤쳐 나갔어요. 물 밑에는 적이 설치해 놓은 지뢰, 우리 배 바닥에는 300톤의 제트 연료가 실려 있었지요. 성냥 하나만 그으면 배는 삽시간에 화장터로 변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배에서 아기들이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누울 공간이 없어 심지어 서서 아이를 낳는 부인까지 있었어요. 모든 것이 참담했습니다. 이들을 돌보던 선원들은 아기들의 이름을 그들이 아는 유일한 한국말인 ‘김치’라고 지어 주었어요. 첫 번 째 빅토리호 아이를 ‘김치 1’, 둘째가 ‘김치 2’, 그리고 마지막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김치 5’였습니다.
나는 갑판 위에서 이 모든 일들을 지켜보며 서 있었습니다. 내 머리에 별안간 이런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오늘이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가 아닌가?’
피난민들이 다 빅토리호를 떠나자 나는 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끝나자 나는 바다를 떠났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길을 따르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말을 마친 마린 신부는 휘몰아치는 눈발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움직일 줄을 몰랐다. 한 참 후 수도원장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저 역시 기억하지요. 참담했던 그 시절을. 내 동생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만 행방불명 되었어요. 난 그와 8,000 명의 실종자들이 언젠가 살아서 돌아올 날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어요.” 수도원장은 말을 계속하지 못했다. 손을 마주잡고 그는 눈을 감았다. 눈보라가 거세게 창문을 후려치고 있었다.
“전쟁은 슬픔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젠가는 돌아올 것입니다.” 마린 신부는 수도원장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위로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면...,” 수도원장은 뜨거운 숨을 내쉬며 말했다.
“희망을 가지세요, 그리고 한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세요,” 마린 신부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나직히 말했다.
“네, 한국의 평화통일을 위하여...,” 수도원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마린신부는 제단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무릎을 꿇었다. 잠시 후 수도원장도 마린 신부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이, 전쟁이 있는 곳에 평화가, 용서와 화해가 강을 이루고...”
나직하게 수도원을 울려 퍼지는 두 사람의 기도소리 너머로 눈이 쉴새없이 쌓이고 있었다.
6.
밥의 차가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방은 알아볼 수 없는 어둠이었다. 인근 동네의 불빛이 난파선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모든 선원들이 옷과 담요 등을 피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지요,” 밥이 약간 고조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었군요,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김 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원에 도착하려면 삼십 분 이상을 더 가야 했다. 이제 주위에는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지독하게 춥군요.” 밥은 몸을 떨었다.
차는 더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밥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허공을 응시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마린 신부의 임종을 지키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1950년 차디찬 한국의 바다에서 느낀 절망감이 온 몸을 휩쌌다. 그 깊디깊은 심연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눈보라를 헤치고 홀연히 한 척의 배가 나타났다.
빅토리호!
밥은 뚫어질 듯 어둠 속을 응시했다. 배는 어둠 속에서도 환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마린 선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출발이다! 닻을 올려라!”
배는 두둥실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차가운 눈보라를 헤치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갑판 위에서 마린 신부가 미소 짓고 있었다.
(* 이 소설은 작가가 한국전쟁 중 흥남부두를 마지막으로 빠져 나온 상선 메레디스 빅토리호(Meredith Victory)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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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단편소설 : (흥남의 마지막 배) :
"Short Novel on The Korean War which won the 16th Korean War Literature Award"
"The Last Ship Out of Hung-Nam Har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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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ion by Kim Kyung-Nyun and Steffen F. Richards(Prof. Berkeley,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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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out the Writer Kyung-Ae Jeon (kejeon@unitel.co.kr) *
[Novelist Jeon Kyung-Ae, a graduate of Sogang Jesuit University, worked as a reporter for The Korea Herald, and wrote extensively on the Korean War. Her publications include the novels "Montana 625," "The Chosin Few," "The Dandelion Ranch (published by AuthorHouse(E-Book), Amazon.com) : and the The Forgotten War, Forgotten UN Soldiers and the Chosin Few(1999). She won Korean War Literary Award(2008). She is board member of the International PEN Korean Center. This short story is written based on the real documentary of Meredith Victory, the last ship which escaped Hung-Nam Harbor during the 1950 Korean War. Jeon Won the Korean Literature One Hundred Years Award on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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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ob Picked up Father Kim at the airport and headed straight for the monastery. It took two hours to get to the small town where the monastery was located. Bob thought of the first time he had met Father Kim. It had been at the same monastery.
"This is Fr. Paul Kim, of Korea," Father Marinus had said, introducing him to Bob. Fr. Kim seemed to be about fifty, and fairly sturdy.
"Ah, yes. Glad to meet you."
Bob was hoping to hear more from Fr. Marinus about the Korean priest. But Fr. Marinus did not add anything.
Fr. Marinus, who had been captain of the merchant ship Meredith Victory as a young man, was sitting in a wheelchair, in his old age. Fr. Paul Kim seemed to be lively and congenial.
"I was born on the Meredith Victory after it left Hung-Nam. I have come here to thank Fr. Marinus. My mother listed the island Keo-Je-Do as my birthplace, where the Meredith Victory landed," said Fr. Kim.
Bob grabbed Fr. Kim by the hands. "I was first mate of the ship at the time!" he said excitedly.
"Really!" Fr. Kim was indeed jubilant.
"Five babies were born on that ship," Bob said. He cold not believe Fr. Kim was standing in front of him.
Of the five born on the ship, one had become a Catholic priest and, more than a half-century later, was standing before him. How Bob wanted to see them all! He embraced the priest.
December, 1950, the cold seacoast of Hung-Nam....
Bob recalled the confusion and the smoke that had billowed up. Young Bob, who had been first mate at the time, left the ship after the Korean War. He went to law school and worked as an attorney. Bob playfully asked Fr. Kim, "Then, they call you Kimchi?"
Fr. Kim laughed. "My mother did tell me that the men on board called me Kimchi."
"That was the only Korean word we knew. Everyone liked the word. So we named them Kimchi 1, Kimchi 2, and so on. In the confusion, we had to give the babies some name, and well... I'm really sorry about that."
"Don't be. I understand. I was Kimchi 5. So my name is Kim Chi," Fr. Kim responded.
"Hmm... And what happened to your father?"
"My father..." Fr. Kim stopped suddenly and sighed.
"I shouldn't have asked..." Bob thought regretfully. Waving a hand, he said, "Oh, never mind." And he went up for Fr. Kim and gave a pat on the back. He was actually afraid he might hear something bad. He thought it impossible to talk about anything deep with Koreans.
"Oh, that's alright. He was at Hung-Nam that day and actually went on board early, but after seeing how many were so desperate to get aboard, he left at the last minute. After that, he know nothing..." Fr. Kim could not finish the sentence. Bob regretted having asked.
"My mother had a hard time raising me. She waited for my father all her life. She hoped for unification and prayed every day. She passed away not long ago." He made a slow sign of the cross after he had finished. The pair went silence.
"Fr. Kim, this old monastery, where Fr. Marinus lives, needs monks, men like you, men who are active and strong. In fact, we have a shortage of priests. We are inviting quite a few young monks to come from abroad," Bob said.
"Well, there is a lot of work to do in Korea, also."
Bob could see the image of a lone ship at sea beyond the thoughtful countenance of Fr. Kim.
During the miserable winter of 1950, the last ship that escaped from Hung-Nam, which was ablaze with fire : the merchant ship Meredith Victory.
2.
Bob had worked aboard a ship when he was young. Not long after, war broke out in Korea, which he had never heard of, and the merchant ship Meredith Victory on which he served as first mate was designated to carry military supplies. The fighting was fierce, and the eyes and ears of the world were focused on the daily news from Korea.
"June 25, 1950- War Breaks Out in Korea, Land of the Morning Calm..."
Reports on the urgent situation spread quickly to all corners of the world, The front moved down as far south as Pusan, and Korean was desperately in need of help from friends and allies.
The Meredith Victory was charged with transporting military supplies- from jet fuel to soldiers' rations. It was a dangerous and difficult task. The U.N. forces launched an all-out attack in order to bring the war to a close before Christmas. But the plan was foiled by a Chinese Army of three-hundred-thousand men attacking in human waves. A U.N. force of 25,000 including Marines of the 1st Division had advanced to Chosin Reservoir in the province of Ham-Gyong-Nam-Do in the northeast. The news that they were completely surrounded by 120,000 Chinese soldiers spread over the world.
In order to rescue them, U.N. forces mobilized their efforts in a concentrated bombing of the deep valley of the Gaema High Plateau. Gen. MacArthur having been briefed on the situation at Chosin Reservoir, ordered Gen. Almond to withdraw, before the damage got any worse.
It was just at this time that the ship Bob was on board entered the Post of Hung-Nam, fully loaded with jet fuel, having successfully negotiated the mine field. But the ship cold not unload the fuel, as the soldiers were in retreat. Anchored offshore, the Meredith Victory awaited orders from above. In the distance, the harbor seemed to be in great confusion with crowds of refugees coming in everyday.
From the ship, Bob watched Hung-Nam through his binoculars. He knew in detail what was going on with the American soldiers and the U.N. forces who were withdrawing from the Chosin Reservoir. In one corner of the port, there was a small mountain of weaponry and supplies that the U.S. soldiers had to give up in order to take more people, soldiers and refugees, on board.
When the news spread that our side was retreating, a large number of people crowded into Hung-Nam. Mr. Hyun Bong-Hak, a civilian advisor to the 10th U.S. Army went to Gen. Almond and, by pleading with him, persuaded him to transport the refugees south.
Gen. Almond was hard-pressed even to find a way to withdraw his 100,000 soldiers of the 10th Division. At Hung-Nam, more than 200,000 refugees had gathered, wanting to be taken to the South. They were cold and hungry, and it was snowing.
The 10th Division, led by Gen. Almond, kept sending wires to Japan and Pusan, requesting help for the refugees. An LST and some transport ships soon arrived, and the refugees began boarding. The reverberations from Chinese gunfire were rapidly coming closer.
The LST and the transport ships were packed with refugees. They were everywhere: on top of the trucks and tanks, in the holds, and at the very tops of the masts. The U. S. engineering corps had set up explosive devices in the enormous quantity of weapons and military supplies, so as to prevent them from falling into enemy hands. The people who weren't able to get on board were screaming and weeping everywhere around the harbor.
The military supply ships Rain Victory, BM 501, Virginia Victory, LST 661, Yanayama Maru, Tobart Maru, Mada Ket, LST 668, LST 059, LST 081, LST 074 all left carrying more than 100,000 refugees from Hung-Nam, Wonsan, and E-Won, heading south.
The Meredith Victory, still carrying 300 tons of hazardous jet fuel that could not be unloaded at Hung-Nam, was awaiting orders. Bob kept watch on what was going on around the harbor. He felt that his tie to Korea was once again pulling him in close.
It was in 1944, when he took part in the Battle of Saipan as a Navy man, that he had first encountered the tragedy of Korea. At the time, there were several hundred Korean men working like slaves, having been forcibly drafted by the Japanese. Even after the war, forced labor continued under Japanese rule.
Bob took the initiative to have them sent back when he toured there on a naval ship. He felt especially sorry for the men from northern Korea, who were so abused that he had them sent home first.
3.
The car in which Bob and Father Kim were riding sped along a street lined with houses on either side. Suddenly, the day turned cloudy and windy. But they could not delay in visiting Fr. Marinus, who was in serious condition. The abbot had said that he could not promise another day.
The two did not speak for some time.
"I hope Fr. Marinus regains his health, but the abbot said that he might not last the night..." Bob mumbled, as if to himself.
Fr. Kim was downcast. He also felt guilty that he had come too late. The scenery changed into landscape. Fr. Kim looked out at it without speaking. There were more trees.
"Christmas trees..." Father Kim was thinking of the trees at the monastery. They grow Christmas trees there. "Yes, they had said, now Christmas trees are useless..." He was thinking of the conversation that he had with the abbot.
"Because of mass-produced plastic trees, real trees don't sell at all," the abbot had said. "Furthermore, the number of priests here is dwindling. There are only about fifteen of us. A third of us are over 95 years old. It won't be long before we have to close the monastery."
Fr. Kim had learned from Bob that Fr. Marinus was ill. "Fr. Marinus's health is rapidly deteriorating. The old monks are all packing up to leave," Bob had said to him.
"Fr. Marinus is lying in a coma, and the monastery will be closing its doors." Fr. Kim felt guilty that he had neglected Fr. Marinus, telling him he was busy. Even his being born had so much to do with Fr. Marinus that he wondered whether he would have survived without him.
"I should send young Korean monks to this monastery, so that they can help rebuild it." In fact, he had come all the way from Korea to convey this good news to Fr. Marinus.
As evening came, a light snow began falling. Fr. Kim looked out the window, a worried look on his face. The car pressed ahead.
Sensing that Fr. Marinus was growing weaker, Bob had visited him whenever he could. The abbot always welcomed Bob and would stay with him at Fr. Marinus' bedside to look after him.
Once, Bob brought up the subject abruptly with Fr. Marinus.
"Fr. Marinus, you have not forgotten that miraculous voyage, have you?" "Miraculous voyage?" the usually quiet Fr. Marinus faintly responded. Bob hastened to add, "You know, that miraculous voyage on the sea off Korea."
Then he drew close to Fr. Marinus' ear. "It was on Christmas Eve, December 24, 1950."
" ..... "
Bob asked him again. Fr. Marinus said nothing more. Bob did not give up, however. Every time he went to see Fr. Marinus, he brought up the subject of the miraculous voyage and waited patiently for Fr. Marinus' response. One day, when bob was with Fr. Marinus and brought up the story of the voyage, Fr. Marinus, who had been lying quietly, moved his lips a little. Bob put an ear close to Fr. Marinus's lips.
"Anyone," Fr. Marinus breathed with an effort, "would have done..." He stopped as if it was difficult to speak.
"Yes, anyone would have done it, captain, no! father-" Bob repeated in a loud and clear voice. Fr. Marinus wanted to say more, but his voice failed him. His lips moved a little, but he soon fell asleep. The abbot said at this point, "he only did..."
"What? He only did what any human being would have done?" Bob asked.
"Yes, that's what he meant," the abbot said.
"Fr. Marinus, we have to find the Eulchi Medal for Distinguished Military Service that was awarded to you. It's missing. It was lost." Bob yelled this into Fr. Marinus's ear. But Fr. Marinus was unresponsive. Even afterwards, Bob visited the monastery whenever he had the spare time, to stimulate Fr. Marinus's memory and to talk about the lost medal.
The lost Eulchi Military Medal for Distinguished Military Service.
Bob was determined to find the lost Korean War medal.
One day, when Bob visited him at the monastery, Fr. Marinus said to Bob, "Who are you? Are you from South America?" He asked this coldly, turning away in his bed from Bob.
"Why is he avoiding me?" Bob wandered.
Bob became every more determined, before Fr. Marinus's memory was completely lost and his Alzheimer's condition worsened. To find the medal that the Meredith Victory had received from the Korean government. This was indeed what he had to do, as first mate on the ship at the time.
"But what could have happened to it?"
Bob had asked the abbot to look for it. Though he searched high and low for it in Fr. Marinus's room, the abbot could not find it. Bob was in his late seventies. He had no time to lose. Even if it took some time, he thought it his life's mission to find the lost Eulchi Medal, and to let the world know about the Meredith Victory's miraculous voyage that had taken place during the Korean War. The crew of the ship was scattered who-knew-where and their whereabouts were long lost.
The last time Bob visited the monastery, the abbot alerted him to the short time remaining to Fr. Marinus. That's why he hastened to call Fr. Kim from Korea.
4.
The snow became heavier and began pelting the windshield. Progress through the snowstorm was tough. "Fr. Marinus was never pleased to hear that I wanted to let the world know what we did during the retreat from Hung-Nam. he would say, 'Any human being would have done the same thing. Why bother?'"
Fr. Kim merely listened without saying a word.
"How did he become a priest?" Fr. Kim was asking the most intriguing question of all.
"Well..." Bob hesitated, tilting his head slightly. He was a very peaceful and quiet person. Even as captain of the ship, he never shouted or did anything improper. He was basically a very religious person."
Bob wasn't familiar with all the details. He asked, "Have you ever run into any of the other Kimchi babies?"
"No, never. I don't know anything about them," Fr. Kim replied.
It was true. When the ship arrived at the island of Keo-Je-Do, the refugees, who were practically begging for food, went into Pusan or up to Seoul to try to make a living.
Would my father, who hadn't boarded the ship at Hung-Nam, still be alive in the North? If alive, he would be older than Bob... Fr. Kim shook his head, as if to rid himself of the thought. He had to live through pain and loneliness as a fatherless child and a half-century of tears and the prayers of his mother- he was thinking that his poignant suffering had been responsible for making him a Catholic priest.
"The captain never left the monastery after he became a priest. He seemed to be living in a very high spiritual realm that I could not fathom. Whenever I went there, the abbot said that Fr. Marinus was in prayer. He never left Fr. Marinus and was like his shadow... I don't know what they were praying so hard for..." Bob said. He felt hurt by Fr. Marinus's apathy. He found out later that the Meredith Victory, which had carried 14,000 refugees safely to the South, had been decommissioned and sold somewhere as scrap metal.
"This story may get permanently buried in history..." Bob thought with a sigh.
5.
The abbot was keeping watch at Fr. Marinus's bedside. Falling snow was visible through the window. The elderly Fr. Marinus had been sick in bed for months. Several times the abbot had opened Fr. Marinus's drawers and searched for the Eulchi Medal, which Bob was looking for. But each time his effort was in vain.
The abbot recalled one Christmas Eve, several years before, when there was an intense snowstorm. That night the road to the monastery was closed, and there were just the two of them. Fr. Marinus never spoke about the outside world. As he watched the blizzard through the window, his glistening eyes were especially bright. He told the abbot an incredible story.
"It was snowing like this, that day at Hung-Nam..." Fr. Marinus began, staring into the distance.
"In December 1950, I was headed north to Hung-Nam as captain of the Victory. I had never thought that I would go on such a voyage. The one thing I was sure of was the belief that the voyage of the Meredith Victory was under God's protection.
Korean refugees were crowding the harbor at Hung-Nam. The weather was bitter cold. People were not even warmly dressed, and carried heavy loads on their heads and on their backs. Distraught children were clinging to them. I surveyed the harbor through my binoculars: it was packed with people from who-knows-where. Behind them were Chinese soldiers and before them lay the vast sea.
On the last day, a message came from a naval vessel using flashing light, asking if we could enter the harbor to carry refugees. I immediately headed into the harbor. We started boarding them. There was intense confusion, as everyone wanted to get on board. This was because our ship was the last one to take on refugees for the South.
"Palli(hurry), palli!" we yelled, trying to get them to hurry up and get on board. This was the first expression I heard from the refugees, as they were all yelling, "Palli, palli!"
We took as many as possible, filling every conceivable space. In general, each family had four or five children, and there were some who had seven, eight, even ten children. Some were wounded, some carried large blankets, or wooden chests, or even a sewing machine. Eventually the children numbered several hundreds. By next morning, we had actually boarded 14,000 people- on a ship that had a maximum capacity of 2,500 passengers. Fourteen thousand people! It was really impossible.
We set out for Pusan, with extreme caution. There were mines in the water that the enemy had laid, and 300 tons of jet fuel in the hold of our ship. One match and the whole ship would have become a crematory.
Then babies began to be born on the ship. One woman had to give birth standing up because there was no room for her to lie down. Things were miserable. The crew who were looking after them named the babies Kimchi, as that was the only Korean word they knew. The first baby was named Kimchi 1, the second Kimchi 2, and the last Kimchi 5.
I was standing on the deck watching all this happen. Suddenly it occurred to me, 'Isn't today Christmas Eve?' When all the refugees left the Meredith Victory, I prayed to God in thanksgiving. And when the Korean War was over, I left the sea. I chose to follow God."
When he had finished, he was completely still, his eyes fixed on the falling snow. After a long while, the abbot broke the silence.
"I also remember that miserable time. My dear brother also fought in the war and became missing in action... I still wait for the day for him to come back alive, as well as for the 8,000 young men who are still missing."
The abbot could not finish his sentence. Folding his hands together, he closed his eyes. The snowstorm was battering the window even harder.
"War is a sad business. But they will return some day."
Fr. Marinus put his hand on the abbot's shoulder to comfort him.
"If only it could really happen..." the abbot said, exhaling a warm vapor.
"Have hope and pray for the peaceful unification of Korea,"
Fr. Marinus said in a low voice without a bit of movement.
"Yes, for the peaceful unification of Korea..."
The abbot let out a long sigh and slowly closed his eyes.
Fr. Marinus walked up to the altar. He stopped and kneeled to pray. A few moments later, the abbot also knelt next to Fr. Marinus.
"Where there is sadness, joy; where there is war, peace; may forgiveness and reconciliation flow like a river..."
Beyond the low murmuring for the prayers of the pair, the snow was piling up deep without cease.
6.
Bob's car moved slowly ahead. In the dark, one could not make out what the surroundings were like. The lights of the town shook like those of a boat run aground.
"Every crew member gave clothes and blankets to the refugees," Bob said somewhat loudly.
"Is that so? It was so kind of them." Fr. Kim nodded. It would take another half-hour to get to the monastery. There wasn't another car around anywhere.
"It's awfully cold," Bob was shivering.
The car was stuck. Bob stared into the void of the snowstorm. Then he shut his eyes. He knew it was too late to reach Fr. Marinus's bedside for his last moments. He felt overwhelmed by the despair that he had experienced at sea off Korea in 1950. His vision grew dark. On that deep sea, in the vortex of a snowstorm, a ship appeared out of nowhere.
The Victory!
He stared into the darkness. The ship glowed brightly in the dark. He could hear the captain's voice, "Full ahead! We are making for...!"
The ship rose into the air, and moved ahead, parting the snowstorm. On deck, Fr. Marinus was beaming.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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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마 ~ 경애야 ~ 고마워 ~ 잘 읽을께 ~
저배는 기적의 배야 ~
친절하게 이곳에 올려줘서 편하게 읽었어. 나머지 작품들이 더 궁금해. 부지런히 구해서 읽어야겠다. 이명희라는 대학친구도 바로 이 배를 타고 함경도에서 피난왔다고 했지.
소설을 이렇게 올리니 금방 읽을수있어서 참 좋다~ 정말 기적의 실화네~ 감동~
영어도 있고~~
그 마린 신부님이 평생 기도하신 평화 통일을 또 기적 같이 맞이하는 날이 오겠지~
이 지구 상에 유일한 분단 국가가 없어지는 날....
지금은 손녀가 불러서, 가봐야 하니까
다시 들어와서
한글도 영어도 다 자세히 정독 할께~~
고마워~~~
그리고 또 축하해~~~
미국에 와서야 들어본 흥남마지막배,
군사물건대신 피난민을 살린 선장의 결정... 경애가 쓴글도 .. 정말 잘썼어
축하해
정말 이렇게 올려 줘서 그래서 읽을수 있게 되어 아주 좋았어..
고맙다..
흥남부두는 유행가에도 나오는 지명 아닌가? 그러니까 더 정겨운거 같아.
근데, 경애야. 그 많은 전쟁 자료들을 모아서 정리하고 또 상상력을 동원해서 소설을 쓰고~~
그 과정을 잠시 생각만해도 너무 방대한 일이라서 내 머리가 아득~해지네~~
네 말대로 그 일이 네 운명인 거 맞다~ 맞어~ ㅎㅎ
한국 신부님들이 그 수도원을 맡아서 일을 하기 시작했나? 그게 몇 년도야?
맞아 ~ 바로 그 흥남부두. "국제시장" 영화에서도 나와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 "
내용을 알면 정말 기막히고 가슴찢어지는 가사
우리 친구가 그 역사를 자기 운명처럼 생각하고 집필을 했다니 정말 존경스럽다. 자랑스럽다.
경애야, 정말 고맙다. 이렇게 쓴것도, 올린것도~~
난, 읽으면서,
소름이 좍 좍 돋는것 처럼, 느낌이 왔어~~
그때, 그 상태가, 눈에 그려 지는것 같아.
경애야, 어쩜 그리 아는것이 많아?
정말 많은 사람이 읽어야 겠고, 더 많이 알려져야겠어~~~
fiction 과 non fiction 사이인거 같아~~
그 때 형편을 우리는 잊으면 안돼는데~~~~
영문은 이제 또 내일 이나 읽어야 겠어~~~
이렇게 그때 형편을, 문장으로 남겨 놓아야 하는데, 그걸, 우리 친구 전경애가 한다니? !!!!
장 하다~~!!
요새 상영 되는 ;국제시장' 하고 딱 씨츄에이션이 똑 같네..
경애 같은 작가가 이제는 각광을 받겠다.
재료 찾는 일이 쉽지 않았을텐데... 한국전쟁사 전문이겠다~~ 우리나라를 위해 죽은 외국인 병사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우리가 없겠지... 경애 덕으로 그들을 잠시 생각하게 되네. 현충원의 국군도 같이... 그런 그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좋은 노후를 맞고 있네.....
어린 나를 비롯한 우리식구들은, 1951년 1.4후퇴 때,
함경남도 단천항(내 고향)에서 후퇴하는 한국군함에 실려, 15일만에 포항에 피난왔다가
며칠 후에 포항에서 미군함을 타고 다시 여수로 피난왔대.
나는 전혀 기억이 없지만,
엄마와 오빠들과 큰언니는 그때 한국군인들에게 대단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더라.
와. 옥희야 역사의 소용돌이치는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야?
이제 우리까지 죽으면 사진만이 얘기하겠네. 그런데 경애가 그걸 소설로 살려놓았구나.
옥희도 나처럼 1.4후퇴 때 내려왔구나~
우린 평양에서 기차타고 내려와서 대구, 부산에 피난 왔다 서울로 갔대는데. ㅎㅎ
세숙이도 평양에서 태어났다고 했었던거 같은데~
난 평양에서나서, 사개월때 , 아빠가 먼저 서울로 무사히 간것알고, 엄마가 세 안내원을 구해 엎혀 내려왔대
소인 김유섭도 1.4후퇴에 갖난 동생에게 엄마를 양보하고 친척할머니 등에 업혀 "피안남도 개천"에서 평양으로 갔다 또 밀려밀려 남쪽으로가다 잠시 쉰다고 멈춘 충남 논산이 제2의 고향이 됬네요.
유섭아 니가 니북내기라구?
난 충청도 논산 여자인 줄 알았시유~~~ ㅎ ㅎ
우리 친구들 이북에서 태어나서 피난 나온 사람들이 상상히 많으네.
이렇게 어떻게 어떻게 해서 이남으로 내려 오신 분들은 다 행운아들이시네~~
그냥 남아 있던 사람들은 다 불쌍해~~
점 점 더 나쁜 땅에서 그냥 살고, 죽고 있으니까~~~
우리 친구들이 , 그때 그렇게 내려와서, 우리와 이렇게 만나서 살고 있다니~~~~~!!
우리 친구들은 그냥 어리고 아무것도 몰랐을테지만 부모님은 아가를 데리고 얼마나 힘드셨을꼬 ~ ㅉㅉ
정말 오래간만에 홈피에 들어올랬더니 6개월 동안 안들어와서 비밀번호를 바꿔야된다해서 바끄ㅓㅆ더니 인적사항을 새로 기입해야하는데 전화번호등에 미국것이 맞지가 않아 이제 홈피에 못들어가나보다했는데 어찌어찌 하다가 들어왔어. 안 바꿔도 되는데 괜히 고생했어.
근데 들어와보니 마침 경애 니 글이 올라와있어 이거 볼려고 들어와보고 싶었나봐. 난 그 동안 pittsburgh 에 살다 우리 탱 이번엔 진짜로 은퇴해서 지난달 다시 LA 로 이사왔어. 이곳엔 한국 극장이 하나있어 그저께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봐서 니 글이 더욱 실감있게 읽히네. 요즘도 계속 전쟁영화를 써? 난 별로 돌아다니는데 취미가 없는데 우리 탱 따라 계소 다닌다.
지난 11 월 에는 뉴질란드 여행갔다 마지막에 new milford tracking 4박 5일 을 했는데 각 나라에서 온 20 명과 가이드 3명과 떠났는데 두째날 비가 오는데 걷기 시작해 3시간쯤 걸었을때 개울물이 불어 허리 까지 오는데를 건너갔는데 앞에 산사태가 나서 위험라니 돌아 가래. 그래 다시 개울을 3개 건너 2 시간 대피하고있다가 헬리콥터가 구조하러 와서 간신히 타고왔단다. 그 다음 날은 진눈깨비가 오는데 8시간 걷느라고 얼어죽는줄 알았다. 근데 또 2월에는 인도 4월엔 한국 간대. 그때 보자.
와 ~~~ 순희야 ~ 방가 방가 ~ ㅎㅎ
비밀번호는 바꾸지말지 ~ 우리는 자꾸 잊어먹어서 ㅎㅎ
순희야 한국오면 보자 ~~~ 응 ?
순희네가 여행에 불을 지폇구나.. 좋앗어..
어제 정진이가 그러더라고 너이가 10월이나 11월에 티벳에 가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정진이도 나도 가고 싶어하는 곳이라 어떻게 같이 가면 어떨가 싶네...
나도 2월쯤 인도 갔었던것 같아.. 아주 볼게 많은 나라...
그런데.. 정말 힘든 트랙킹을 했구나.. 헬리콥터까지 동원되었다니..
순희, 웰컴 백~~
그래도 용케, 잘 들어왔네. 난, 얼마전, 비밀번호 잊어버려서, 쩔쩔 매고 못 들어오다가, 겨우 어디다 써 놓은거 찾아서, 다시 들어왔어.
여행을 아주 즐기네. 그동안도 여행을 무척 많이 한걸로 아는데, 아직도, 또 더 할것이 남았구나.. 여행은 끝이 없어.
아주 힘들게, 뉴지랜드 그곳 트래킹 하였구먼. 오래동안 남을 추억을 만들었어.
자주, 자주 들어와.
여행얘기도 해 주고~~~
반갑다 순희야--무사히 헬레콥터 타고 구조 되었다니 다행이다-. 안 그래도 널 매일 생각하며 살고 있었어. 무엄의 대화를 나누며...ㅋㅋ.
나두 국제시장을 보았어. 그런데 거기 첫 장면으로 나오는 피난선이 바로 내가 한국에 처음으로 알린 '메레디스 빅토리호'이더구먼. 내가 1999년 뉴욕의 로버트 러니씨 집을 방문해서 직접 그 자료를 가지고 왔지. 그 분이 뉴욕 브롱스에 케네디 일가 고향동네 고급주택가에 살고 계셨는데 부인은 맨허튼 교육감이고... 대단한 인텔리였어. 당시 라루선장(마리너스 수사)은 뉴욕 쌩뽈 수도원에 계셨는데 많이 편찮으실 때였어. 그 메레디스 빅토리호 의 흥남철수 이야기를 1999년 뉴욕서 최초로 가지고
와서 내 소설 '장진호'(1999년)에 최초로 넣었고 2000년 코리라헤럴드에서 출판한 영문판과 2003년 미국에서 출판된 'The Dandelion Ranch'(아마존 닷컴) 에 영문으로 처음 넣었지. 2002년 조선일보에 전면에 이 메레디스 빅토리호의 인도주의적인 피난민 구조 이야기를 기사로 알리기도 했어(유용원기자). 어쨌던 이리저리 알려져서 '국제시장' 첫 장면에 나오는 것을 보고 나도 깜짝 놀랬어. 라루선장은 한국전쟁이 끝난 1954년 가톨릭 수사님이 되셔서 평생을 수도원에서 기도하시다 2001년 돌아가셨고--그 후 그 폐쇄직전의 수도원을 한국의 왜관수도원 신부님들이 인수를 해서 부활 시켰어요....원정이가 궁금해 했는데. 지금은 한국인들
이 고속 인터넷도 깔고, 배추도 기르고, 식당에서 김치도 제공하고 미 동부지역 한국 젊은이들의 허브같이 잘 운영되고 있다고 해요. 라루 신부님이 흥남부두에서 한국 피난민을 구하셧듯이---미국의 한국인들이 가라앉아가는 수도원을 다시 구한 감동의 스토리지. 한국인들 대단하지. 은혜를 갚은거지....이 이야기, 미국 참전군인들의 한국사랑 이야기 등을 ... 내가 수필로도 여기저기 썼는데 나중에 차차 하나씩 올릴게. 넘넘 반갑다. 내가 지난 해에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고, 새 작품 쓰기가 힘들어서... 밀린 원고 정리해서 책을 4권을 냈어. 그러느라고....아무 것도 못했어. 이제 자주 만나자---!
경애야 이렇게 좋은 자료들을 수집해 놓았으니 한국의 카톨릭계에도 좋은 귀감이 되겠네.
그리고 꼭 한국 전쟁사를 주제로 다루는 또하나의 새로운 소설가로 탄생 되기를 바란다.
나도 어제 국제시장 보고 왔어.. 첨에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경애 소설 생각했지.
그 배에 쓰여있기를 빅토리아라고 써 있고 로스앤젤리스라고 써 있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