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5 너희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바벨론에서 선지자를 일으키셨느니라
29:16 다윗의 왕좌에 앉은 왕과 이 성에 사는 모든 백성 곧 너희와 함께 포로 되어 가지 아니한 너희 형제에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29:1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에게 상하여 먹을 수 없는 몹쓸 무화과 같게 하겠고
29:18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들을 뒤따르게 하며 그들을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쫓아낸 나라들 가운데에서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게 하리라
29:1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들에게 꾸준히 보냈으나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9:20 그런즉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너희 모든 포로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29: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들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라 보라 내가 그들을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너희 눈 앞에서 그들을 죽일 것이라
29:22 바벨론에 있는 유다의 모든 포로가 그들을 저줏거리로 삼아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너를 바벨론 왕이 불살라 죽인 시드기야와 아합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리니
29:23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어리석게 행하여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며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지 아니한 거짓을 내 이름으로 말함이라 나는 알고 있는 자로서 증인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29:24 너는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라
29:2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네 이름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와 모든 제사장에게 글을 보내 이르기를
29:26 여호와께서 너를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제사장을 삼아 여호와의 성전 감독자로 세우심은 모든 미친 자와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들을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과 목에 씌우는 쇠 고랑을 채우게 하심이어늘
29:27 이제 네가 어찌하여 너희 중에 선지자 노릇을 하는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아니하느냐
29:28 그가 바벨론에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기를 오래 지내야 하리니 너희는 집을 짓고 살며 밭을 일구고 그 열매를 먹으라 하셨다 하니라
29:29 제사장 스바냐가 스마야의 글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읽어서 들려 줄 때에
29:30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9:31 너는 모든 포로에게 전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를 두고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그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스마야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에게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
29: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의 자손을 벌하리니 그가 나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기 때문에 이 백성 중에 살아 남을 그의 자손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복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주해
1. 시드기야 4년에 바벨론을 대항하기 위하여 사신들이 예루살렘에서 회의를 할 때, 예레미야는 열국의 사신들과 시드기야, 유다 백성들에게 바벨론의 멍에를 메라고 선포한다.
1) 거짓 선지자들과 하나냐가 하나님이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었다”고 하시면서 2년 안에 포로들과 성전 기구들이 돌아온다고 하였다.
2) 백성들에게 거짓을 믿게 한 하나냐에게 죽음이 선포되고 2달 만에 죽는다.
2. 예레미야는 B.C.597년 여호야긴(여고니야)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장로들, 제사장들, 선지자들, 백성들에게 편지를 보낸다(왕하 24:10-17).
1) 말씀의 요지는 회복이 임박했다고 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고, 70년 동안 바벨론에 집을 짓고 텃밭을 만들고 결혼을 하며, 바벨론의 평안을 구하며 정착하라는 것이다.
2)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다.
3) 그러므로 포로지(무덤)에 정착하고 심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한다.
“너희가 나를 부르고, 나에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의 호소를 들어주겠다. 너희가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날 것이다. 너희가 온전한 마음으로 나를 찾기만 하면, 내가 너희를 만나 주겠다”(12-13절, 새번역).
3. 바벨론의 멍에를 매고 포로로 잡혀간 자들은, 예루살렘으로 곧 돌아간다는 거짓선지자들의 말을 소망으로 삼고 있었다. 당연히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을 부러워하였다.
1) 그런데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왕(시드기야)과 백성들이 더 비참한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해준다.
2) 아직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지 않은 형제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을 보내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을 썩어 먹지 못할 부패한 무화과처럼 만드실 것이다(17절).
3) 이 말씀은 B.C.597년 여호와긴과 유력한 자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갈 때 이미 주신 말씀에 대한 반복이다(24:8).
4. 그러므로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은 왕과 백성들은 “다행”이 아니라, 더욱 겸비하여서 심판의 말씀을 받아먹어야 한다.
1) 하나님이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괴롭힌 후, 여러 나라 가운데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하신다. 그들은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된다(18절).
2) 심판의 이유는 분명하다.
렘 29:1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들에게 꾸준히 보냈으나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 성도가 심판받는 이유는 말씀대로 쉐마하지 않고 자기 소견대로 믿으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5. 29장 15, 21-23절은 포로지에 있는 백성들에게 “거짓 선자들”을 알리는 말씀이다.
1) 포로지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바벨론에서 선지자를 일으킨 줄로 생각하였다(15절).
2)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다(21절).
- 그들 거짓 선지자는 아합과 시드기야이다.
3) 하나님은 이 거짓선지자를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에게 넘겨주어 죽이실 것이다.
4)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들의 2가지 죄를 지적한다.
그들은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부도덕한 행위를 저질렀고, 거짓을 예언했기 때문이다(23절).
6. 우리에게 고난이 올 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두 가지임을 밝히셨다.
1) 하나는 공의의 심판을 받아들이고 일상에 충실하는 것이다.
2) 그리고 말씀 앞에 나아가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고 주를 찾음으로 탕자처럼 아버지 집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3)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무덤에 연합하는 실제이며 장사복음을 믿는 것이다.
4)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의를 기초로 그들을 다시 세우신다(시 94:15).
7. 포로로 잡혀간 바벨론에는 에스겔과 같은 참 선지자도 있었지만, 백성들이 듣기 원하는 말을 하는 거짓 선지자도 있었다.
1) 거짓 선지자 스마야가 예레미야를 책망하라는 말씀을 받았다면서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인 스바냐에게 편지를 보낸다.
2) 예레미야가 포로들에게 “바벨론에서 오래 살아야 하며 거기에서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열매를 먹으라고 했다”면서 그를 체포하여 투옥하라고 요구한다.
8. 제사장 스바냐는 예레미야를 체포하는 대신에, 바벨론에서 포로로 잡혀 가서까지 거짓 선지가 노릇하는 스마야의 글을 예레미야에게 보여준다.
1) 그때 스마야의 심판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한다.
2) 하나님은 포로들에게 스마야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다.
9. 스마야가 거짓을 예언하고 거짓을 믿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은 스마야 뿐 아니라, 그의 자손까지 이스라엘에서 멸종하실 것이다.
1)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소망이다. 그런데, 그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유다 백성에게 행하려는 복된 일을 보지 못할 것이다(32절).
렘 29: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의 자손을 벌하리니 그가 나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기 때문에 이 백성 중에 살아 남을 그의 자손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복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에스겔은 바벨론에서 심판의 말씀을 전한다.
1) 그러나 다수의 선지자들은 심판이 집행되고 있는 비참한 현실, 광야 길을 걷고 있는 백성들에게 “임박한 회복”을 말해준다.
2)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듣지 않음으로 언약대로 심판하시고, 그 심판의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극구 심판을 부인하고 싶은 백성들의 마음과 일치하는 말을 해 준다.
3)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뜻, 생명으로 나가는 길, 참된 평안과 미래가 아니라, 공감해주는 상담가 노릇을 한다.
11. 출애굽에서 광야를 건너 띄고 가나안을 차지하는 것, 가나안 정복전쟁이라는 치열함 없는 유업을 차지하는 것, 자기 소견대로 믿어도 사사기에서 번영을 누리는 것, 사울이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아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왕이라고 믿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1)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가 본능적으로 무화과나무 잎으로 수치를 가리고, 하나님 탓, 여자 탓, 뱀탓을 하였듯이, 모든 인간은 핑계거리를 대고, 심판 없는 구원을 기대한다.
2) 공부하지 않고 보란듯한 학생이 되고, 일하지 않고 안정되고, 내어주지 않고 자녀들이 바르게 자라기를 원한다.
12. 세상도 현실을 직면하고,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라고 한다.
1) 왜냐하면 영적 진리를 하나님은 자연세계와 인간 나라에도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13. 심판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찾으라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1) 심판을 이기고, 바벨론을 정복하려고 몸부림쳐도 그것이야 말로 불가능한 일이다.
2)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순종하라고 하신다.
3) 물론 어렵지만 심판받는 자는 심판을 받아들일 수 있다. 고난당하는 자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
4)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 하나님이 제시한 구원의 길을 외면하고, 헛된 희망으로 그들이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을 시도한다.
14. 심판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는 평안과 복된 미래를 보게 된다.
1) 하지만 그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 소원에 일치된 말씀을 따르면 주를 배반하게 된다.
2) 심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사는 길”이다.
15. 하나님 노릇이 소원인 우리에게 심판을 받아들이고 주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길이다.
1) 예레미야도 심판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만, 심판이 사는 길이며 진리이기에 그는 심판을 전하고 심판의 길을 간다.
2) 예레미야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알았다. 심판을 이기는 것, 바벨론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순종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할 수 있는 것을 순종하라고 하셨다.
3) 그리고 불가능한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이 은혜로 이루시고 참여하게 하신다.
◈ 나의 묵상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다는 것에만 주목했다. 암을 받아들이는 것,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 파산, 깨어짐, 아픔, 질병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어렵기는 하지만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심판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암을 이기는 것, 장애를 극복하는 것, 파산에서 일으키는 것, 깨어진 것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죄인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 노릇하는 본성에는 어렵지만 얼마든지 가능하다. 심판받아 마땅한 자가 심판받아 마땅함을 인정하고 그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은 마땅하고 가능하다. 십자가 복음, 장사 복음, 부활 복음은 모두 나에게 불가능한 것을 하라고 하지 않는다. 불가능한 그 일은 주님이 이미 이루셨다. 주님이 이루신 그 은혜를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 노릇을 포기하고 선물로 받아들이라고 하신다.
십자가 복음도 내가 죄인임을 인정해야만 한다. 가식과 외식을 벗어야 한다. 하나님 반역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죽을 죄인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은혜로 주어지는 죄사함과 생명을 감사로 받아야 한다. 죄인이 하기 힘든 일이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장사복음과 심판의 복음도 그러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거부하는 그 마음은 내 마음이다. 그러나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은 힘든 일이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불가능한 일은 하나님이 행하겠다고 하셨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나의 죄와 악을 인정하고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전적인 은혜로 평안과 미래와 소망과 복된 일을 행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나는 왜 이렇게 심판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오래 되었다. 하나님을 모르고, 나를 모름의 결과다. 그런데,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을 불가능하게 여긴 어리석음도 있었다. 어려운 일이지 불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나는 스스로 성전을 짓지 못하고, 스스로 의를 기초로 다시 세우지 못한다. 불가능한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면, 심판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정말 주님의 긍휼과 자비다. 불가능한 그 일은 하나님이 은혜로 이루어 주시고, 내가 할 수 있는 그것만을 순종하라고 하신다. 내 입장에서는 죽을 만큼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복종을 요구하신 것이다.
다시 한 번, 주의 인자와 긍휼을 찬양한다. 내 입장에서 보면 심판은 가혹하고 받아들이기 불가능에 가깝지만, 주님의 눈으로 보면 지나친 은혜와 자비의 손길을 내미신 것이다. 진짜 불가능한 그 복음을 은혜로 주셨음을 보길 원한다. 그 자비에도 불구하고 심판을 받아들이고, 주를 찾고 구하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 묵상 기도
주님, 할 수 있는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은 거부하고, 불가능한 일, 바벨론의 멍에를 꺽으려는 어리석음을 봅니다. 주님, 제가 그랬습니다. 더 불가능한 일은 하려고 하면서, 가능한 어려운 일은 핑계대고 합리화하였습니다. 주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을 거부하는 백성들의 마음이 제 안에 가득합니다.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마음을 주셔서 심판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포로지의 삶에 충실하며 주를 찾고 구하게 하옵소서. 헛된 기대와 악을 버리고 순종할 수 있는 것은 순종하게 하시고, 주를 만남으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포로지에서 할 것은 심판을 받아들이고 삶에 충실하며 주를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아멘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종하게 하옵소서.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것도 핑계대고, 연약함으로 합리화한 것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의 도우심을 구하며 주의 말씀을 듣게 하여 주십시오. 심판중에도 긍휼과 평안과 미래와 소망을 주시는 그 은혜를 알게 하옵소서. 성령님, 불안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고, 삶이 버거운 교우들을 돌보시고, 인도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생명이 밝히 드러나는 예배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