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심사평 [2010 신춘문예]
1. [‘10 경향] ‘개가 돌아오는 저녁’
본심 대상작 열 편 중 마지막까지 남은 건 네 작품이었다. <코끼리가 없는 동물원>은 에피소드들을 흥미있게 엮어낸 솜씨가 돋보였다. 하지만 전직 포르노배우이자 어머니를 살해한 과거를 지닌 주인공의 내면심리를 보다 더 깊이있게 그리지 못한 게 아쉬웠다.
<눈썹의 습관>은 주인공의 개성적인 면모를 재치있게 포착해낸 점이 매력이다. 평생 세상과 부조화를 겪어온, 은퇴한 여배우인 어머니가 실은 난독증 환자였다는 설정도 인상적이고, 어머니의 독특한 심리구조 또한 나름대로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그런데 정작 ‘나’의 출생, 즉 아버지와 관련된 얘기가 아예 생략된 탓에 전체적인 짜임새가 흐트러졌다. <버지니아 맨의 죽음>은 생기 넘치는 감각과 이야기를 끌고 가는 호흡이 일품인데, 젊은 세대 특유의 기발한 발상과 익살스러운 문체로 소재를 깔끔하게 다루어냈다. 다만 작위적인 몇몇 부분, 또 아버지를 좀더 부각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당선작인 <개가 돌아오는 저녁>은 주제, 문체, 구성력이 두루 충분한 완성도를 갖춘 작품으로, 모처럼 우리에게 읽는 즐거움을 안겨준 수작이다. 이 작품의 가장 빛나는 점은, 다 읽고난 후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 풍부하고 정교한 상징성에 있다. 이 소설은 서로 다른, 그러나 실은 하나인 ‘죽음과 소멸 / 그리움과 기다림’이라는 두 가지 중심축을 지닌다. 이 둘은 사라진 개 ‘소리’를 통해 하나로 합쳐지고, 죽은 아내와 ‘편지’로 재차 변주되는데, 이런 중층적인 상징 장치를 통해 드러나는 주제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주인공의 절절한 그리움과 슬픔이다. 하지만 또 있다. 연암의 글에서 인용한 “운종가의 개, 오”라는 상징은 은연중 오늘 우리 현실에 대한 또다른 음울하고도 절박한 풍경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죽음으로써 약속을 지키는, 순결과 진정성의 상징인 ‘오’, 그리고 성대 수술로 소리를 빼앗긴 채 골짜기에서 사체로 발견되는 ‘소리’는 실은 하나이다. 동시에 그건 어쩌면 우리가 상실해버린 어떤 소중한 것에 대한 통절한 상징으로 읽히기도 한다. 모처럼 힘 있는 목소리를 만난 것 같아 반갑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앞날에 문운이 만발하기를 바란다.
<소설가 임철우씨(한신대 교수·사진 왼쪽)와 신경숙씨>
2. [동아2010 중편] 아직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정유경)
금년도 중편소설 분야의 최종 심사에 오른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어느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소설적 상상력의 폭이 넓지 않다. 왜 중편소설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탐구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최종 심사 과정에서 주목된 작품은 ‘아직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정유경), ‘동굴’(조이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그 화요일’(김요안) 등이다. 김요안씨의 작품은 주인공의 내면 의식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형상화 과정이 설득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사형집행을 목전에 둔 사형수라는 타자의 환영을 불러들여 자기 내면을 드러내는 이 작품은 그 특이한 소설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서사 내적 역동성을 살려낼 수 있는 어떤 동기가 결여된 느낌이다. 조이헌 씨의 경우는 고래해체라는 특수한 작업의 현장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이 장면과 짝을 이루고 있는 암환자의 이야기는 공감을 얻어내기 어렵다. 지나치게 상투적인 설정이거나 작위적인 구도 때문일지 모른다.
정유경 씨의 ‘아직 한 자도 쓰지 않았다’를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전반적으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이야기의 솜씨가 뛰어나다. 물론 이 작품을 더욱 압축시켜 하나의 단편으로 만들었다면 훨씬 더 짜임새 있는 성과를 거두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긴 했지만, 감각적인 문장과 빠른 호흡을 긴장감 있게 유지하면서도 자기 주제에 대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일종의 메타적 기술법을 활용하여 구성해낸 텍스트의 성격이 매우 도전적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이 새로운 이름의 작가는 이제부터 소설을 써야 하는 단계에 접어든 셈이다. < 권영민 문학평론가, 조성기 소설가 >
3. [동아2010] 미로 - 김미선
예심에서 올라 온 11편의 소설 대부분은 만화적 상상력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만화는 현실의 축약과 변용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무미건조한 일상을 건너뛰도록 하는 힘이 있지만, 그러나 그 대가로 현실로부터의 검증을 회피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김엄지의 ‘돼지우리’, 이정옥의 ‘치코의 숲’, 김미선의 ‘미로’가 마지막 후보작으로 거론되었다. ‘돼지우리’는 현대인의 욕망을 돼지의 탐식에 빗대어 풍자하는 힘이 돋보였다. 그러나 작위적 설정이 진실에 다가가는 걸 방해할 수도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치코의 숲’은 유한자인 인간 삶의 근본적인 이원성, 즉 창조가 파괴가 되고 선과 악이 등을 맞대고 있는 상황을 환상적 형상들을 통해 추구한 소설이다. 데미안적 주제와 수미일관한 구성이 돋보였다. 그러나 동원된 형상들이 적합하다기보다는 장식적이어서 그로 인해 소설이 공소한 난해성 속에 빠진 게 아니냐는 물음이 따랐다.
‘미로’는 불우한 유년으로부터 벗어나 가까스로 사회에 뿌리내리는 데 성공한 상담원이 겪고 있는 삶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두 가지 낯선 경험을 통해 충격적으로 부각되고 의미화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그 과정을 통해 문명사회의 화사한 외관 뒤에 숨어 있는 정신적 불모성을 진지하게 되묻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문체를 다듬는 데 공을 들이면 좋은 소설세계를 보여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당선을 축하한다. < 박범신 소설가·정과리 문학평론가 >
4. [세계2010] 낯선 아내 - 이유
예심에 올려진 작품은 모두 10편. 이중 집중적으로 거론된 작품은 4편이었다.
‘야유회’(이성훈). 십이인승 봉고차로 회사원 일행이 소문만 들은 명승지 야유회에 나섰다가 이런저런 낭패에 부딪힌 사건이 촘촘히 짜여졌지만 거기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미흡해 보였다. 잔잔하게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탐구심은 보였으나 신선함은 모자랐다.
‘소리(들)’(이필훈). 1년 전 낯선 소리 때문에 수능 수리 영역에 실패한 사내가 회사에서 또는 삶의 현실에서 정체불명의 소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정황을 다룬 것. 여기에서 소리란 오히려 소통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등장하지만, 비유의 방식이 너무 추상적으로 보였다.
‘스팸을 클릭하는 당신’(이지연). 스팸으로 생존해나가는 IT관련 노동자의 고충을 다룬 것. 지적 통제를 통해 긍정적으로 결말에 이르지만, 조금은 안이하게 보였다. 요즘 문제되는 이슈를 다루었다는 점에 호감이 갔으나 그 이상의 삶에 보여지는 깊이가 보이지 않았다.
‘낯선 아내’(이유). 형사의 직업병인 안면인식장애증을 주축으로 하여 아내의 낯섦이 오고, 잇달아 스스로의 낯섦에 이르기, 이를 통해 부부의 동일성에 이르는 과정이 다소 낙관적이나 소설적 처리에 가까이 간 것으로 평가되었다. 추리적인 긴장과 간결한 문체로 속도감 있게 읽히는 미덕이 있다. 정진을 기대한다. <김윤식 서영은>
5. [조선‘10]. 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법 - 박지영
본심에 오른 10편이 모두 잘 읽혔고 이야기도 비교적 잘 끌어갔다. 그러나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응모작은 한 편뿐이었다. 쉽게 당선작을 결정했다.
'슈팅게임'은 서술이 차분하고 구성도 매끄러웠지만, 그만큼 단선적이고 이미 정리가 끝난 보편적인 이야기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었다. '식물인간'은 귀찮다는 듯한 독특한 서술이 인상적이었지만 주제의 구심점이 애매했다. '어항'은 카메라가 돌아가는 듯 시각적인 정밀묘사가 매력적이었지만 부정확한 언어 사용과, 특히 어머니와 딸로 이어지는 불륜의 트라우마라는 상투성이 거슬렸다. '틈'은 안정적이었지만 착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미스 갈라의 겨울비'는 할 말이 뚜렷하다는 면에서 호감을 주었지만 세계가 좁고 작가 자신이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 미숙함으로 비쳤다. '드라마틱'은 문제제기나 군더더기 없는 구성, 흥분하지 않는 서술에서 솜씨가 엿보였지만 결말이 상투적이고 설정에도 무리가 있었다.
당선작은 '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법'이다. 당선 이유를 세 가지로 말하고 싶다.
첫째, 굳이 사회적 사건을 소재로 삼지 않더라도, 개인의 사소한 일상사라고 해도, 지금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구조적 성찰이 없으면 그건 이야기일 뿐이다. 둘째, 소설은 콩트가 아니므로 무조건 뜻밖의 결말이라고 해서 반전이 성립되는 건 아니다. 셋째, 당선작을 놓고 작가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심사위원 둘의 생각이 엇갈렸다. 화자가 남성이고 그 시점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고 있지만, 디테일과 언어를 다루는 방식의 섬세함으로 보아 여성이리라는 의견. 남성의 변형된 성적 판타지를 실감나게 묘사하는 점에서 남성이리라는 의견. 결론은 '멋진 신인작가의 탄생'이었다. 축하를 보낸다. <은희경(왼쪽)·최수철씨.>
6. [서울‘10] 붉은 코끼리 /이은선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모두 열 편. 이 가운데 다시 세 편의 작품을 어렵게 추려 놓고 생각했다. 신춘문예가 필요로 하는 소설은 어떤 소설인가? 우리 소설은 어디로 가야 하나? 단편소설은 산문 양식임에도 언어의 경제성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는 이 짧은 언어로는 ‘모든 것’을 쓸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양식은 이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한다. 어떻게? 수사학, 즉 기교가 우리를 지상적인 삶에서 초월적 의미의 세계로 순간이동시켜 준다. 그러니 기교가 모든 것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수도 있다. 상징적 깊이나 환유적 지시 체계를 갖추지 못한 훌륭한 단편소설이란 일종의 형용모순과도 같다.
하이준씨의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현대적 일상을 사건으로 만들어 가는 문체가 돋보였다. 강남의 한 미장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조그만 사건은, 일상의 소소함이 그 한계 내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만든 장점도 갖추었다. 김명진씨의 ‘뷰티플 원데이’는 베트남에서 온 아버지와 아버지의 젊은 여인과 ‘나’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나’의 내면의 섬세함이 다문화라는 문제를 사회성 이상의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의미를 구성하는 사건이 너무 희박하고, ‘뷰티플 원데이’는 사건을 보편적인 의미로 상승시키는 힘이 부족하다.
이은선씨의 ‘붉은 코끼리’는 상징적 압축미가 뛰어나다. 동물원 코끼리 조련사의 이야기 안에 많은 것을 담았다. 동물원이라는 배경 자체가 어떤 상징성을 띤, 현대인의 삶의 축도로 이해하게 한다. 여기서 동물원을 지배하는 어떤 메커니즘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세계의 어떤 축도와도 같다. 이 작품은 쓴 것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면서 독자에게 시적인 울림을 선사한다. 재능과 생각을 겸비한 이은선씨에게 축하의 말씀과 함께 정진을 당부 드린다.
< 소설가 현기영(왼쪽), 문학평론가 방민호.>
7. [한국 ‘10] 얼음의 요정 - 이지원
본심에서 만난 작품들의 성향은 다채로웠다. 반면 그리 새로울 것도 없었다. 세상이 눈부시게 변하고 있는 데 비해 문장의 갑옷을 입은 문학의 속살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는 뜻일까. 아니다. 스스로를 성찰하는 인간의 속성이 쉽사리 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수한 작품의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은 완성도라 하겠다.
'모텔 503호'는 입심이 좋은 반면 마무리가 급하고 해결이 충분치 않다. '그것은 마치'는 잠과 꿈이 더 이상 우리의 위안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위협이 되기까지 한다는 착상은 이해가 가지만 그에 어울리는 실감나는 현실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11½, 이건 너에 관한 말'은 불법체류 중인 동포 여성의 곤고한 위상을 그려내고 있는데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홈 스윗 홈'은 아버지의 불륜으로 파탄에 직면한 가족이라는 정황을 뒤집는 반전이 없는 게 밋밋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지원의 '얼음의 요정'은 문장과 구성이 단단하다. 작가 자신이 장악하고 있는 정황을 자신이 잘 쓸 수 있는 문장으로 포착하고 있는 까닭에 구체적이다. 남반구의 얼음 위에 누워 있는 병든 사람들과 그들을 치유하고 위무하는 요정이라는 상상력이 두드러지기도 했다. 부모의 부재 속의 자아 찾기라는 익숙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있어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된다는 점이 당선작으로 뽑게 했다.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윤후명(소설가) 성석제(소설가)
8.[문화 ‘10] 당신의 자장가 / 김은아>
최종적으로 논의 대상이 된 작품은 김민정의 ‘당신의 시선’, 김시율의 ‘돌아와 흑염소’, 조형래의 ‘파편’, 김은아의 ‘당신의 자장가’ 네 편이었다.
‘당신의 시선’은 형식에서 신선했으나 시점의 변화가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지 못해 작위적인 느낌을 주었고, 서사구조도 밀도 있게 짜여지지 못해 인상적인 이야기로 완성하는 데 실패했다고 보았다. ‘돌아와 흑염소’는 참신하고 재미있는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으나 여러 삽화들이 내적 개연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파편’은 무난한 문장으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진술하고 있지만 ‘아버지’를 비롯한 인물의 캐릭터를 참신하게 형상화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되었고 전체적인 구성이 응집력을 확보하지 못해 산만한 느낌을 주었다. 최종적으로 ‘당신의 자장가’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자는 데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사육사인 화자가 자신이 돌보는 침팬지와의 동일시를 통해 소외와 상처를 담담히 그려내고 있는 ‘당신의 자장가’는 무엇보다 그늘진 곳을 웅숭깊게 들여다보려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돋보였다. 약육강식의 사육장 풍경과 더불어 ‘윤’이라는 남자와의 관계를 형상화하는 솜씨도 안정적이었다. 오랫동안 닦아온 솜씨라고 보았다.
형식과 내용에서 두루 신뢰할 수 있는 신인 작가를 얻었다고 본다. 작가의 계속적인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김병익·박범신>
9.[광주일보‘10] 시작점,0- 정보고
세상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의 삶을 창조적이고 감동적으로 우려낸 이야기, 그것이 소설이다. 본선에 오른 열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우선 재미와 감동을 기준으로 삼았다.
‘미진’은 어머니의 죽음과 딸의 출산을 병치시킨 발상은 신선했으나, 두 이야기를 충분히 유기적으로 풀어내지 못했다. 손을 매개로 한 모녀의 이야기인 ‘하스라’ 역시 두 이야기의 짜임새가 부족했다. ‘분통점 오알점 케이알’은 순박한 인물들의 모습을 잔잔히 그려냈지만 이야기가 너무 단순했다.
‘검은등뻐꾸기’는 안정감이 돋보인 수작으로, 노모를 중심으로 한 가족사가 애틋함을 안겨주었는데, 소재와 문체 면에서 참신성이 다소 부족했다. 텔레마케터인 주인공을 통해, 진부한 일상 속에서의 삶의 의미 혹은 존재의 진실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나는, 도트’는 의욕은 돋보였으나, 주제를 설득력있게 형상화해내지 못한 게 약점이었다.
결국 우리 두 사람은 별 어려움없이 ‘시작점,0’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무엇보다 소재를 잘 형상화해냈다는 점이다. 물론 아동성폭력이라는 소재가 특별히 새로운 건 아니겠으나, 이 작품에선 주인공의 내면에 자리한 상처가 다양한 디테일들을 통해 매우 짜임새 있게 형상화되어 있다. 큰아버지의 관 앞에서 주인공이 오줌을 터뜨리는 결말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앞날에 문운이 만발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한승원·임철우>
10. [대구매일‘10] 쿨 게이트 -고유미
최종심에 올라온 11편의 작품은 그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다채로운 경향을 보여, 문학이 시류보다는 개성을 중시한다는 사실을 선명히 증명해보였다. 모든 작품에서 오랜 문학적 연마의 흔적이 보였고, 그 노력에 상응하는 수준이 확보되어 있었다. 11편 중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고유미의 ‘쿨 게이트’, 위주옥의 ‘스포일러’, 이제곤의 ‘너의 소리’, 김엄지의 ‘몸에 좋은 소설’ 등 네 편이었다.
‘스포일러’는 극장 휴게소 한쪽에서 타로카드 점을 보는 직업을 가진 화자를 내세워 삶의 비의적이거나 불가항력적인 면을 이해하려 애쓰는 작품이다. 하지만 타인의 삶 뒷면만 나열하듯 들추어낼 뿐 정작 주인공의 삶에 대한 치열한 성찰은 결여되어 있어 플롯에 중심점이 없고, 주제가 모호해진 점이 아쉬웠다.
‘너의 소리’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노래방 도우미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말이 주는 상처와 침묵의 고귀함을 대비해 보이는 작품이다. 찬찬한 묘사와 단단한 구성은 일인칭 독백체 소설이 가질 수 있는 지루함을 잘 비켜가고 있다. 하지만 사랑의 속임과 복수에 관한 흔한 이야기를 늘 듣던 방식으로 듣는 듯한 미진함이 있었다.
‘몸에 좋은 소설’은 원푸드 다이어트로 책을 뜯어먹다가 기어이 소설 쓰는 사람이 되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한 젊은이가 소설가로 태어나는 심리적 과정을 발칙한 상상력과 도발적인 문체로 서술해나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다만 패기가 지나치게 승해서 총체적으로 덜 여물었다는 인상을 주었다.
당선작으로 뽑은 ‘쿨 게이트’는 오이디푸스적 욕망을 포기하고 진정으로 ‘아버지의 이름’에 복종해가는 사회 초년병의 통과의례를 그려낸 작품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중인 주인공에게 사회는 쉽게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얼음 창고에서 동사한 어머니, 얼음 같은 연상의 연인, 얼음 조각의 소녀상을 세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 욕망을 넘어서려 애쓰지만 쉽지 않다. 결국 연인을 만나고 온 날 자취방에 도둑이 들어 시험공부중이던 노트가 찢겨진 것을 발견한다. 진정한 성인의 문으로 들어서기 위해서 청춘은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를 개성 있는 방식으로 통찰해낸 점이 미더웠다. <김형경(소설가) · 엄창석(소설가) >
11.[2010 국제신문] 미 늘 /장서인
130여 편의 응모작 중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8편을 두고 심사위원들은 이야기의 현장이 삶의 절실한 일면에 육박하는가, 그 삶을 해석하는 시선이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가,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독자를 충분히 흡인할 수 있는가에 주목하였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3편을 가렸는데, '쓰아농카페' '아나리자' '미늘'이다. 모두 다문화가정의 폭력적 일상과 이주노동자의 삶을 다루었다.
특정 소재의 유행이 삶의 다양성을 대신한다면, 이는 또 하나의 획일성이 아닐까 우려하면서 우리는 소설적 형상화의 수준을 크게 고려하였다.
3편 가운데 특히 장서인 씨의 '미늘'을 깊이 읽었다. '미늘'의 주인공은 병든 한국노인을 수발하는 중국인 여성이다. 야비한 한국인과 순진한 외국인 희생자라는 상투적 이항대립을 넘어설 정도로 작가의 시선이 넉넉하다.
흔히 희생자를 물건처럼 대상화하게 되는 양극화의 역설을 벗어나, '미늘'은 타자의 목소리를 복원하고 이로써 스스로의 삶을 이야기하게 만든다. 그래서 여성인물은 노탐(老貪)에 희생되는 일방적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다.
노인의 동물적인 본능에 대해 인간적인 연민을 보이되, 삶을 이끌어나가는 주체로서 그녀는 노인의 본능을 부드럽게 제압한다. 이는 소수자를 다룬 기존의 한국문학에 견주어 손색이 없는 독창적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또 고향의 가난한 가족을 위해 간병인 일을 놓칠 수 없다는 인물의 속다짐도 놓치지 않는다.
여기서 독자는 우리 모두 삶의 미늘에 걸린 슬픈 존재임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이주노동자의 일상을 통해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킨 소설적 성취라고 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장서인 씨의 '미늘'을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당선자의 대성을 기대하며, 모든 응모자의 노고에 격려를 보낸다.
< 본심위원 현기영(소설가) 황국명(문학평론가), 예심위원 옥태권 정인(이상 소설가) >
12. [‘10경인신춘] 아내의 화단 -전영일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서른 한 편이었다. 응모작들은 대부분 암이나 사고로 인한 죽음, 가족간의 갈등, 상처의 악순환 등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다루었다. 현실의 팍팍함이 발랄한 상상력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리라고 짐작하면서도,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은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한편, 작가는 나름대로 생각을 갖고 썼으리라는 짐작이 가지만, 독자에게는 작가의 의도가 와 닿지않는 소설들이 여럿이었다. 아마도 글을 쓰는 동안 이야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작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독자들은 공감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생길 수 있음을 간과 한 듯 하다. 이런 부분에 좀 더 공을 들였다면 좋은 소설이 되었겠다 싶은 아쉬운 작품들이 많았다.
이다경의 '유리나방'은 암으로 유방을 절제한 여자가 겪는 상실과 치유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기교를 부리지 않는 담담함이 장점이라면, 상처 입은 채로도 살아내야 하는 게 삶이라는 메시지가 지나치게 선명하게 드러난 게 오히려 약점이 됐다.
이계태의 '동굴 속으로'는 저마다 지닌 기억속의 동굴을 지하철 기관사의 시점으로 그렸다. '빨간색 원피스'라는 이미지로 이어진 세 여자, 눈앞에 떨어지는 자살자를 보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기관차와 스프링 복, 동료가 앓는 환상통과 아버지를 괴롭혔던 기억 등 중첩되는 이야기들에서 만만찮은 의욕이 드러나는데, 좀더 정제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김은수의 '사막을 건너는 시간'은 남편을 잃은 여자의 상실과 죄책감이 간결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우편물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간 지점에서 남편이 죽은 연유가 새롭게 밝혀진다는, 신선한 반전일 수도 있는 결말이 조금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곳곳에서 돌출하는 자의식의 과잉 때문이 아니었을까.
당선작인 전영일의 '아내의 화단'은 퇴직자의 관점에서 쓰인 작품이다. 삶을 관조하는 시선의 원숙함이 담백한 문장에 실려 있다. 아내를 여의고 노후자금을 자식 뒷바라지에 날린 퇴직자의 이야기가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고양이의 모습에 현재의 자기와 아내의 모습을 투사하고, 아들이 데리고 온 개의 안락사와 아내의 죽음이 겹치는 동안, 생의 쓸쓸한 기미를 환기하는 격조가 느껴진다. 반면, 아내의 모습이 완벽하다 못해 신성시한 점은 결점으로 남는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당선자와 응모자들의 정진을 빈다. <심사평 / 구효서·이혜경 >
13. [광주매일‘10] 밤 새 - 손정혜
이상한 일이다. 갈수록 독서 인구는 줄어드는데 쓰는 사람은 늘고 있다. 글쓰기의 기본 조건은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인데, 가만 보면 그렇지 않다. 어찌 좋은 글을 읽지 않고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어쨌거나 해마다 신춘문예 철이 돌아오면 문학을 꿈꾸는 이들은 몸살을 앓곤 한다. 글쓰기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기꺼이 그 고통을 감내한다. 헌데 글쓰기에 앞서 진지한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 왜 이글을 써야만 되는지, 이글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쓰고자 하는 글에 대한 질문이 없는 것 같다. 그게 주제의식인데, 투고된 작품 대부분이 이 주제의식이 약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오랫동안 습작을 해왔다는 흔적들이 엿보였다.
소설은 인간의 이야기다. 인간이 지닌 본능이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작품으로 형상화시키는 작업이다.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갈등이나 상처들을 통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보여줘야 한다. 헌데 대부분이 작품들이 그 천착을 소홀히 해 아쉬움을 주었다.
‘밤새’와 ‘죽음을 기다리는 집’, ‘카야파스의 뜰’, ‘맛’, ‘틈’ 이렇게 다섯 작품을 최종심에 올렸다.
‘죽음을 기다리는 집’은 여행기 소설에 가까운 작품이다. 구성도 좋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힘도 있었다. 문장도 안정돼 있었다. 하지만 죽음과 삶이라는 그 무거운 주제를 단편에는 담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화자와 등장인물간의 관계가 약했다. ‘카야파스의 뜰’은 풍자소설의 맛을 풍기고 이다. 하지만 교훈적인 단순비교가 소설의 긴장을 떨어트렸다.
‘맛’은 88만원 세대의 상실감을 그린 작품이다. 맛에 대한 맛과, 삶의 쓴 맛이 서로 잘 엮어졌으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 작품이다. ‘틈’은 소설공부를 오래한 사람의 작품이다. 문장도 좋고 구성도 좋았다. 떡밥집 사내와 아내의 이중노출은 오래 습작을 해온 사람의 작품일 거라는 짐작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구성의 매끄러움과 정형성이 오히려 소설의 결말을 짐작케 해 재미를 떨어트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밤새’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구성력은 떨어졌으나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자칫 어두워질 수 이야기를 나름의 경쾌한 문장으로 잘 살린 데다 인물의 성격도 잘 그려냈다. 중간 중간의 작위성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삶의 고단함과 신산함을 작가가 나서서 설명하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삶을 통해 능청스럽게 잘 드러내고 있다.
비록 당선작에 들지 못한 네 편의 작품들도 좋은 작품들이다.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말았으면 한다. < 은미희/소설가 채희윤/ 광주여대 >
14. [전남일보 ‘10] 진동 - 임요희
100여 편의 응모 작품 중에서 본선에 오른 작품은 '근원','오리엔트 시네마','할머니와 나','學生 필리핀 車公之柩', '실종', '진동' 등 여섯 편이었다.
'근원'은 우선 소설 문체에 대한 지극한 자세가 돋보인 작품이다. 과거를 회상하는 작가의 이미지 또한 풍성했는데 아쉽게도 그 미덕이 과잉 상태가 되어버려 독법을 방해하고 있었다.
'오리엔트 시네마'는 쉽게 읽히는 작품이었다. 소설 대상에 대한 거리 유지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능력에 눈이 갔으나 단편이 요구하는 '함축'을 놓치고 있는 게 걸렸다.
'할머니와 나'는 해학과 재치가 돋보였지만, 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성찰이 없어서 이야기가 가볍게 흘러 버리는 게 흠이었다.
'學生 필리핀 車公之柩'는 죽은 자의 시점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시도는 좋았으나, 성격화가 약하고, 누구에 대한 이야기인지가 분명하지 않아 주제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실종'은 탄탄한 구성으로 습작의 내공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단지 소설을 위한 소설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작가 자신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임요희의 '진동'을 당선작으로 삼는 데 심사위원 두 사람은 쉽게 합의했다. 깔끔한 문장과 읽는 재미를 주는 입담으로, 후기 자본주의의 천박한 욕망과 현대인의 부박한 삶의 양태를 핸드폰이라는 소재 안에서 잘 녹여냈다는 점이 평가되었다.
소설 쓰기는 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자신이 조망한 인간과 삶에 대한 가치를 확신하고 이를 다른 이와 나누고자 하는 열망이 있을 때, 소설 쓰기는 시작이 되어야 하며, 독자가 소설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도록 긴장감을 잃지 않는 구성 방식이나 문체의 힘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심사평 / 한창훈ㆍ이미란 >
15. [무등‘10] 붕어찜/ 김정희
금년에는 응모작이 예상보다 많은 모양이다. 이것은 비록 미미하지만 소설에 대한 관심의 증가를 가리킬 것이고, 적어도 그것의 기능에 대한 신뢰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양적인 성장도 일단 반가웠지만, 좋은 작품을 찾은 것도 다행한 일이었다. 조선조 중기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역사와 환상의 융합('덕수궁 돌담길'), 얼굴이 하루아침에 땅콩처럼 변한다는 괴담('땅콩 페이스 클럽'), 섬들에서 방목된 말들처럼 남자들이 야생으로 살아간다는 의사과학소설 ('그들을 다루기 전에 알아야 할 사항들'), 되풀이되는 모래밭에 묻힌 개가 그림쟁이의 상황을 암시하고 강조하는 상징('개'), 등은 참신했지만, 진기함만으로 작품이 될 수 없었고, 가령 '동양극장'은 그 곳, 또는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쓴 것처럼 구체적이고 선명했지만, 세부만으로 예술이 되기는 어려웠다.
'고독한 거미'는 환경미화원에 취업한 장애인의 삶이 극적이고 파란만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화자 공수의 아버지는 당뇨병으로 눈이 멀고, 결혼한 형은 딴 여자에 미쳤고, 화자 자신은 사랑하는 여자와 성교를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마침내 여자가 달아난다. 이러한 사건들이 단순한 이야기들에 그치지 않고,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 되는 것은 그 바탕에 작가의 글쓰기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평범한 일상사를 놀라운 삶의 한 모습으로 바꾼다. 삶의 단면은 모두 기적이다.
'붕어찜'도 가족 이야기다. 못난 아우가 잘난 형과 결국 치매에 걸리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한다. 못사는 고향집을 버리고 서울에서 출세한 형이 몇 십 년 만에 아버지의 문병을 오지만, 이미 떠난 가족을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 화자가 그의 아버지와 낚시 가는 장면, 그의 형에 대한 비난과 불만과 화해, 그의 아버지에 대한 기대와 실망은 무리가 없고 자연스럽다. 그의 글쓰기는 그의 사건들이 일어난다면 그가 말한 대로 일어날 것 같은 개연성을 준다. 그것은 소재의 진부함을 극복한다.
흠은 물론 있다. 환경미화원의 형이 마지막 자살적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은 그의 글쓰기가 감추기 힘든 작위적인 마각을 가진다. 또 하나의 아우와 형의 이야기는 사람의 한 평생, 적어도 반평생을 담기에는 단편의 장르가 조금 부적절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심사위원들은 거듭 생각한 끝에 사별이 아니라 생이별한 삼부자 이야기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서정인(소설가)·박혜강(소설가)>
16. [한라‘10]1962년산 전기기타
예심 과정에서 건져낸 작품은 '멜랑꼴리한 미스들'(전지원), '엄마의 언덕'(김소영), '바람의 딸'(라은록), '길 위의 집'(조만식), '밴 다이어그램 속 교집합을 닮은'(오은희), '1962년산 전기기타'(전기양) 여섯 편이었다.
조만식·오은희·전기양의 작품이 당선작 후보로 남았다. '길 위의 집'은 풍수(風水) 사상과 '육지것'들에 대한 거부 정서, '잃어버린 고향'과 고리를 지어 '올렛길'를 제재로 다뤘다. 갈등 해결과 결말의 안이한 처리가 결정적인 흠이었다. '밴 다이어그램…'은 출산을 준비하는 가난한 '나', 내가 고1 때 성 폭행당해 낳은 아이가 새 엄마의 딸로 입적된다는 '이상한 가족 관계' 이야기다. 주변적 이야기가 너무 과장되고 전체 틀이 산만했다.
전기양(본명 이정기)의 '1962년산 전기기타'는 가난한 예인(藝人)으로 살다가 암으로 죽은 할아버지, 전기기타의 대가인 지미 헨드릭스를 우상으로 삼아 '녀석-1962년산 전기기타'에게 도취되어 살지만 생업에는 무기력한 아버지 또한 암으로 죽음에 이른다는 줄거리다. 아버지의 삶과 '녀석'과의 관계를 통하여 '그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현실의 장벽과 존재의 가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탄탄한 문장과 얼개 요소들의 매끄러운 이음새가 돋보였다. '녀석'과 '고도의 지성체'인 암을 핵심 매체로 '할아버지-그(아버지)-나'와 '어머니' 관계의 확장, 시간과 공간 이동에 따른 장치들을 변용·융합시키는 문학적 상상력과 감성이 뛰어났다. 그러나 '그와 나 사이에 큰 강'으로 존재했던 '녀석'이 '나'와 '하나의 울림통'이 되는 극적 반전 과정이 다소 작위적인 감이 들었다. <심사위원 고시홍·김동윤>
17. [‘10강원] 빈방 - 백이
빈방이 삶의 의미로 충만하기를 기원하며 최종심에 올라온 `작살을 날리다', `계곡으로 가요', `손', `빈방', 이상 네 편은 각기 개성은 다르나, 수준은 엇비슷하다고 여겨졌다.
나름대로 산문의 힘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러 있고, 자신이 경험한 삶의 한 자락을 들추면서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절실함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아직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이나 각 세부를 충분히 통제하지 못하여 일관되지 않은 상황이 끼어들거나 작위적인 결말로 빠지거나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일화들이 한데 섞여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당선작인 `빈방' 역시 그런 장점을 충분히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약점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기본 얼개가 튼튼하고, 이야기 진행이 안정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했다. 또한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적확하게 포착되어 있으면서도 음미할 수 있는 울림이 있는 문장은 독자들에게 흡인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부 진부한 설정으로 인해 인간관계 혹은 인간성의 좀 더 낮은 곳까지 닿기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의 틀이라는 하나의 테마를 끝까지 단단하게 틀어쥐고 그 안팎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기량에 있어서는,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 오정희·최수철 소설가 >
18. [농민일보‘10] 봄 날 - 정희경△1968년 충북 청주 출생 △경기 광주시 쌍령동
심사평 / 결말 궁금해 작품 읽는 재미 ‘솔솔’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봄날>〈염소야 염소야〉 〈긴 그림자〉 〈동물은 먹이를 기억한다〉 〈돼지〉 〈구멍을 보다〉 〈땀 비엣〉 등 여덟 편이었다. 작품을 읽는 내내 현장감이 느껴졌다. 현장감은 바로 흡인력으로 이어졌고 풍부한 이야기성은 소설의 결말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봄날〉과 〈돼지〉였다. 〈봄날〉은 불구자이면서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과 함께 살아 보려고 아등바등하는 여인의 이야기다. 다소 어두울 수 있는 이야기가 시종일관 역동적으로 흐를 수 있었던 건 개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기르던 개를 손수 잡는 장면, 흘러나오는 창자와 그 창자 속의 기생충 묘사는 압권이었다. 〈돼지〉는 돼지와도 같은 욕망덩어리인 현실에 대한 신랄하지만 귀여운 보고서다. 한없이 무겁게도 흐를 주제를 삼겹살 굽듯 가볍게 그려 놓았다. 여러 편의 소설을 쓰고 수정하는 작업을 거친 이의 작품임이 느껴졌다.
두 작품을 놓고 오래 고민했다. 결국엔 〈농민신문〉이 갖는 특수성에 조금 더 적합한 작품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당선작에겐 축하를, 즐거운 독서의 시간을 준 응모작들에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박상우 소설가. 하성란 소설가>
19.[영남‘10] 펭귄 - 최종미
본심에 올라온 작품을 숙독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의 현실이 고단하고 팍팍함에 비해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모색이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현실과 소설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지만 소설에는 현실에 없는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작가의 윤리가 있다.
'미스티'는 소설과 물리학의 공리라는 이질적인 재료를 접합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고양이를 대화상대로 상정한 것이 보여주듯 자의적 기준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만한 핍진함이 있어야 하는데, 삶의 속살을 파고드는 삽날이 아직은 약간 둔해 보인다.
'유령의 집'은 철거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그린, 다소간 해묵은 듯한 소재의 소설이다. 여러 번 다듬은 듯 문장이며 구성이 매끄럽긴 하지만 역시 결말에서 무엇을 말하려는지가 잡히지 않는다.
'돼지우리'는 청년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 육두문자를 서슴지 않은 청춘 여성들의 언어생활을 보여준다는 점 등이 기대를 갖게 했다. 걸쭉한 입담이며 거침없이 치고 나가는 이야기 전개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고, 이야기 그 자체와 말의 재미로 끝난 점이 아쉽다.
'바다로 향하는 늪'은 단단하다. 붕어와 아버지, 언니의 거식증과 아버지의 비만, 스톨과 무덤 속의 돼지 등이 대비되며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상당하다. 하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납치에 대한 아버지 자신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미약하고, 납치에서 풀려난 이후에도 단순히 '공황장애'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지나치게 수동적이라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펭귄'은 인간이 동물로 변신하는 전통적인 테마를 사용하고 있다. '일상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여자, '승진에서 밀린' 남편과 같은 사람들이 실종되고 그들이 동물원의 펭귄으로 발견된다는 설정은 지금, 여기, 우리의 생활과 세부가 살아 있는 까닭에 개연성이 있다. 자기 잇속을 차리기 급급한 여자도, 그 여자의 동업자로 수동적으로 대응하며 열패감을 느끼던 '나'도, 날마다 늘어나는 펭귄 구경을 하려고 동물원 앞에서 줄을 서는 사람들도 모두 펭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문학적인 설득력을 가지게 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아쉽게 다음 기회를 기약하게 된 분들의 정진을 바란다.
< 심사위원 은희경·성석제 >
20.[전북‘10]액 땜-정 희 경/68년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 경제학과졸, 경기도 광주시 거주
예심을 거친 작품을 반씩 나누어 읽어 보았다. 이들 작품 가운데 우선 <몸살> <가슴 다이어트> <하늘길> <액땜> <태평원룸 202호> <미륵댕이> <재떨이를 비우는 여자>가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작품 나름의 광택과 흠결이 있었지만 결함을 보상할 장점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하늘길> <액땜> <재떨이를 비우는 여자>로 압축하였다.
<몸살>은 다소 거칠지만 심연의 상처를 가진 젊은이의 방황과 고뇌를 그린 비유적 언술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서술의 긴장이 부족하고, 소재의 상투성도 흠이라고 할 수 있다. <가슴 다이어트>는 광고회사 직원인 '수아'의 스트레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가지만 단조로운 구성,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서술, 불안한 문장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태평원룸 202호>는 이야기의 박진감은 돋보였으나 서술 전략이 효과적이지 못하였다. 그 결과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전달하는데 역부족이었다. 화자의 감상적 개입을 자제하여 독자가 심리적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적정한 거리를 확보하면서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더라면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륵댕이>는 좋은 소재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이야기를 쏟아놓아 서사의 일관성을 훼손한 것이 큰 흠이라고 할 수 있다. 단편소설은 무엇보다 단일한 시츄에이션을 지향해야 한다. 그래야 효과적이다. 이야기의 초점을 모았더라면 토속적 소재가 가진 장점이 잘 드러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재떨이를 비우는 여자>는 자칫 사소할 수 있는 사랑의 밑그림을 곡진하게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그러나 과불급(過不及)이랄까, 그 원숙함이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하여 내면화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최종적으로 <하늘길>과 <액땜> 두 작품을 두고 논의한 결과 <액땜>이 가진 강점이 많다는 결론에 다다라 이를 당선작으로 하고 <하늘길>은 차후를 기약하기로 하였다. <하늘길>은 죽은 언니를 생각하며 티벳 고지대 사원을 찾아가는 여행담 형식의 작품이다. 언니의 불행한 일생이 잃어버린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차분하면서도 깊이 있게 천착한 서술의 밀도도 돋보이고, 사원에서 화자가 언니의 옛 연인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결말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객창감을 잘 살리지 못하면 로드픽션이 빠지기 쉬운 함정인, 무의미한 여행 기록이라는 인상을 주기 쉬운데 <하늘길>도 이러한 점 때문에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액땜>은 몸에 신기를 지닌 스무 살 화자가 액땜을 위해 뜻밖의 결혼을 하게 된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남편과 생부의 운명, 자신의 태생 비밀 등 등장인물들의 타고난 굴레를 모티브로 잘 활용하였다. 이 작품은 무당집은 물론 남편의 서점 분위기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물론 캐릭터의 설정도 탁월하다. 그네들의 행적을 피력하는 거침없는 서술 태도도 매력적이다. 응모자의 작가적 재능을 담보하는 강점이 많아 당선작으로 결정하는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당선을 축하하며 큰 작가로 대성하길 바란다.
전상국(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정영길(소설가·원광대 문예창작과 교수)
21. [경남신문] 틱탁틱탁/ 김호재
청각·촉각·미각의 표현력 세련돼
총 72편의 응모작 중에서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 17편을 읽고, 따로 예심 작품도 일별하였다.
신춘문예 소설이 패기와 참신함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의식한 응모 소설들은 오히려 이들을 더 매끄럽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소설이 ‘이야기하기’의 서술 양식이라 하더라도 묘사가 없는 설명은 요설이 되거나, 끊임없는 사건의 연속으로 독자를 지치게 한다. 그렇다고 미문으로만 채워져 공허한 이야기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문체는 뛰어났지만 성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 많았고 심하게는 엽기적인 성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도 있었다. 요설보다 삶의 진정성과 그것의 새로운 표현이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선작으로 뽑은 ‘틱탁틱탁…’은 일상의 세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적 현실과, 그것을 참신한 문체로 엮어내고 있어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주인공은 일상에 매몰된 우리들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소리를 듣는다. 지금도 주위에 귀 기울이면 우리는 단번에 소리에 둘러싸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거리를 달리는 차량들의 소리, 가슴을 파헤치는 쇠붙이의 마찰 소리, 옆집 어디선가 들리는 슬리퍼 끄는 소리, 불안하게 끊어진 음악의 한 소절…. 청각에 의한 ‘소리’는 우리들로 하여금 사물의 내부를 상상하게 한다. 작가는 청각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세계 인식을 새롭게 하며 습관, 관습화된 일상적 삶을 새롭게 주시하게 한다. 그것은 의식하지 못하고 지내왔던 세상의 온갖 소음과 불협화음에 대한 거부이자, 우주의 숨소리이자 태고적부터 있어온 조용한 울림과 조화로운 삶의 진정성을 추구하는 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 항거가 끊임없이 되풀이된다고 하더라도.
‘틱탁틱탁…’은 청각, 촉각, 미각의 세련된 표현력과 예리한 문체 미학이 단연 돋보이는 수작으로 경남 소설 문학에 새로움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심사위원 명형대·김인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