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원장은 1981년 제주간호대학을 졸업한 뒤 1992년까지 신촌세브란스병원, 의료선교회부속병원 등에서 간호사 생활을 했다. 조산사 자격증이 있는 까닭에 주로 신생아실과 산과 병동에서 근무하면서 출산과 관련해 부정적인 모습들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자신은 그런 식의 분만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임산부들이 그런 환경에 적응하고 따라가는 현실이 슬펐다.
“우리 몸을 불완전한 것으로 인식하고 계속 의료에 기대게 만들잖아요. 그런데 사실 우리 몸은 신비하거든요. 우리 몸의 본능을 발현할 수 있도록 임산부들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서 원장이 지금과 같은 조산원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게 된 데에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일원으로 피지(Fiji)의 병원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출산의 모습, 당연한 모유수유, 천 기저귀를 사용하는 병원.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최초 수중분만 시도
한국에 돌아와 서울의 은혜산부인과에서 일하면서 출산준비교육, 모유수유 등을 이끌면서 국내 최초로 수중분만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1996년부터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조산협회의 공간을 빌려 교육을 시작했고, 5년간 더 공부한 뒤 우리 철학에 맞는 조산원을 열자고 계획을 세웠다. 일반적인 출산 과정과 같이 왜곡된 방식이 아니라 자기 주체적으로 분만하고 싶어도 갈 곳이 없는 현실을 보고 “그렇다면 내가 한 번 해보자”며 직접 나서기로 한 것이다.
수중 분만, 그네 분만 등 각종 분만법도 유행을 타는 시대. 서 원장은 어떤 분만법이 더 좋다는 식의 생각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남을 따라서 하는 분만은 오히려 본능을 억제할 뿐이다. 출산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그러한 고정관념까지도 버리라고 한다. 기존의 정보나 지식을 다 벗어놓고 내 몸과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고.
내 몸이 원하는 것이 자연의 원리
“내가 얼마나 건강한 사람인가 느끼고 생각하면 그대로 몸이 따라갑니다. 출산에 대해 두려움이 아니라 누린다는 차원에서 생각을 바꿔야죠. 내 몸이 나를 가장 잘 알고 이끄니까 내 몸이 원하는 대로 하면 돼요. 자연에 대한 신뢰감을 갖는다면 내 몸의 모든 변화가 마땅한 이유가 있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출산의 진통조차 그 고통이 빠져나간 자리에 모성애가 들어설 수 있게 하는 긍정적 에너지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라마즈 호흡법도 교육을 하고는 있지만, 산모가 자신한테 몰입만 하면 출산시 호흡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아기가 세상에 나오는 첫 순간, 최대한 엄마 뱃속에 있을 때와 같은 환경을 유지시켜 줄 수 있도록 애쓴다.
그런데 젖이 안 나와 모유수유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100% 모유수유가 가능했는지 물었다. 아기가 하루 이틀 젖을 먹지 않는다고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배가 고프면 더욱 젖을 빨게 되고 결국 엄마 젖이 나오게 된다, 아기에게도 배고픈 경험 자체가 필요하다는 것이 서 원장의 답변이다.
희망의 순간에 동참하는 기쁨
“늘 기쁩니다. 이 곳에 오는 산모들은 주체적인 출산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오시는 분들이니까 그런 귀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기쁠 수밖에요. 아기를 출산한다는 것은 희망을 낳는다는 것인데, 그 순간에 내가 동참하고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것도 뿌듯하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힘든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고.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못해 혹시나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개인적으로 병원을 알아봐야 하는 실정인 것이다.
의료보험수가에 준하는 병원비로는 턱없이 부족할 만큼 출산비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도 어려움이다. 그러면서도 서 원장은 끊임없이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선 오는 5월에는 조산원 개원 3주년을 맞아 열린가족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낼 예정이다.
출산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듯 독특한 육아법으로 아이를 키우는 가족들이 많다고 한다.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만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영상물로 제작하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다.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며 어머니의 본능, 모성애를 다시 느끼게 해주는 내용이 될 것이란다.
향기로운 자기 꽃을 피우는 이는 ‘프로’
마침 그 곳에서 아이를 출산했던 이들이 찾아왔다. 출산 이후에도 서로 의논상대가 되어주고 모유 나눔도 하는 등 계속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말 그대로 ‘열린 가족’을 형성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서 원장은 이와 같은 조산원이 더 많이 생기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자기 삶에서 프로 아닌 사람이 있나요? 저마다 향기로운 자기 꽃을 피우기 위해서 사는 것이죠.”
////////////////////////////////////대한간호협회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