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jn aujtw'/ tw'/ kairw'/(엔 아우토 토 카이로)는 앞의 이야기와 연결함과 동시에 예기치 않은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이 부분은 [바로 그 때에]라고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두어 사람 tine"(티네스)는 부정대명사릐 복수형이기 때문에 두 사람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몇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더 원문에 가깝다.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은 성경본문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지는 않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갈릴리 출신의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올라갔었고 그들이 희생제물을 드리는 그 때에 통치자에게 죽음을 당했다. 끔찍한 일이 발생한 것을 목격자였는지 들은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이미 이러한 소문은 파다하게 퍼져있었을 것이다. 몇 사람 예수께 와서 전했다는 것은 그것을 뒷받침한다. 2절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과응보(因果應報) 적인 생각으로 어떤 죄가 자신들보 더 있어서 죽은 것으로 생각했다(욥4:7, 욥8:20, 요9:1-2). 이 끔찍한 사건에 사람들이 떨고 있을 때 3절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말씀하셨다. 4절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에 대해서 헨드릭슨은 실로암 망대는 예루살렘 성 동남쪽 성 밖에 세워져 있었고, 그 옆에 실로암 못이 있었으며 기혼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이곳으로 흘러들어 갔었다. 느3:15, 26, 사8:6을 참고하라 예수께서 이 사건을 말하시는 것은 인과응보 적인 죄의 결과로 그들도 죽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사고로 죽었음을 설명하고 계신 것이다.
13:6-9 무화과나무의 비유
이 비유는 마21:18-22, 막11:12-14, 20-25의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내용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본문 자체의 연결성은 없으며 오직 이곳에서는 별도의 비유로 이루어진 것임은 틀림없다. 다만 무화과나무의 저주가 본문과 직접적인 연결성은 없지만 의미상의 연결성은 참고할 수 있다. 포도나무(시80:8-11, 사5:2)와 무화과나무(렘24:3, 호9:10)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나무로 이스라엘 백성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며, 농토가 적은 이스라엘의 포도원에는 포도나무뿐만이 아니라 다른 과실수들이 함께 심어졌다(왕하18:31, 미4:4). 그런데 주인의 생각과 달리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가 있다. 이것은 회개하여 열매를 맺지 못한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13:10-17 십 팔 년 된 병자 된 여자를 고침
10절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사건이 전개되는 이야기가 안식과 깊이 관계되어 있음을 말한다. 안식일은 천지창조 후 마지막날에 안식하신 것과(창2:1-3), 십계명의 명령(출20:8)에 근거하였지만 이제 그 주인인 예수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은 안식일이 아무리 중요하다 할지라도 우선되는 역사임을 망각하고 있었다. 11절 십 팔년 동안을 앞에 원문에는 ijdou;(이두) "보라!"는 미완료 중간태의 단어가 있는데 한글성경에는 빠져있다. [보라! 십 팔년 동안을]이 되어야 한다. 십 팔 년이라는 오랜 고통 속에서 살아온 이 여인의 병을 고치는데 안식일이라고 예수께서는 주저하지 않으시고 당연히 고쳐주셨다.
13:18-21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마13:31-33, 막4:30-32 비교하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암시되어 오다(눅6:20, 눅7:28, 눅8:10, 눅9:2, 눅10:9, 눅11:20) 비유를 통해서 좀더 명확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마태와 마가는 겨자씨가 원래 작은 것인데 큰 나무가 된다는 데 강조 점을 두고 있지만 누가는 크기의 대소보다는 그 결과에 강조 점을 두고 있다. 19절 겨자씨는 정확하게 어떤 식물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시나피스니그라(Sinapis Nigra)로 추정한다.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나무라고 보기 힘들다. 그러나 잘 자라면 4-5m 정도 자란다. 이 가지에 보금자리를 둔 새들은 종종 지상의 나라들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된다(겔17:23, 겔31:6, 단4:12, 21). 누룩은 아주 작은 량만 있어도 부풀게 하는 효과가 있다. 21절 서 말의 용량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반죽할 때 사용하는 적당한 양이다(창18:6). 누룩 zuvmh"(쥐메)는 부풀게 하는 효소이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파급효과를 설명하는데 효과적이었다(마16:6, 막8:15, 눅12:1, 고전5:6, 갈5:9). 그래서 예수께서는 좋은 의미뿐만 아니라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말로 조용히 퍼지는 잘못된 것을 경계하신다.
13:22-30 천국에 들어가는 길
23절 구원을 얻는 자가 oiJ sw/zovmenoi(호이 소조메노이)는 [주님! 구원을 얻을 사람이 적습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미래에 구원을 받을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의 이야기는 당시의 유대인들은 흔히 생각하는 관심사였다. 유대인들은 많은 사람과 아주 적은 사람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의 대답은 후자에 가깝게 설명되었다(마22:14, 요18:31-47).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방법으로 율법은 지키는 극소수의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좁은 문"으로 말하셨지만 힘쓰라고 하셨다. 처음부터 넓은 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힘쓰지 않거나 모든 일을 대충 할 것이다. 25절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는 구원을 얻고자 하는 사람 중에는 얼굴로 들어가려는 시도가 있음을 말한다. 안면 문화에 익숙한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할 부분이다. 예수를 믿는 것도 헌금을 하는 것도 그러한 안면을 익히려는 시도로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신다.
31절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헤롯이 예수를 죽이고자 함을 알려주었다. 이 바리새인들이 진짜 예수님을 위해서 하는 소리인지 아니면 예수를 잡고자 함인지,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다. 32절 여우에게 이르되헤롯을 가리켜 한 말로 그가 위대하지도, 강직하지도 않은 하나의 교활한 자로 말하셨다. 여우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야생 짐승으로(삿15:4) 랍비 문헌에도 간교한 사람을 비유할 때 사용한다. 아가서 2:15에서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비유한다. 제 삼일에는 짧은 시간 안에, 혹은 일정한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완전하여지리라 teleiou'mai(텔레이우마이)는 "끝맺는다, 완성하다"로 예수의 구속사역이 곧 마무리됨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