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죽음의 형식
<등장인물>
* 석출 : 김용범 * 무녀 : 임선경
* 노모 : 윤경숙 * 맏아들 : 이행록
* 둘째 아들 : 윤 하 * 맏며느리 : 최미선
* 손녀 봉숙 : 김보연 * 저승사자 1 : 고건영
* 저승사자 2 : 신희붕 * 저승사자 3 : 윤창만
* 과수댁 : 추소정 * 문상객 1 : 송재권
* 문상객 2 : 신상호
* 연출: 신상호
서막 (노모의 아들)
(한여름 대청마루 낮잠 자는 칠순 노모. 곱게 다려 입은 모시적삼. 반들거리는 백팔염주. 흘러나오는 백발가. 노모는 관객이 적당히 모일 때까지 속 편하게 누워 있으면 되고 백발가는 흐를 만큼 흐르면 되는 것.- 꿈속장면 재연)
[노모] 아아악! (기겁. 노모의 기겁에 놀란 극장, 불이 탁 꺼지고)
[노모] 깜박하면 잡혀갈 뻔했네.
[노모] 탁아!(열살 먹은 어린애 부르듯)탁아~~! (오십줄이 다 된 탁이가 들어온다. 옷 맵시가 영락없는 초등학교 선생격.) (정답게) 탁아~~~.
[아들] (무뚝뚝하게)와요!
[노모] 내 잡혀갈 삔 했다.
[아들] (귀를 후비며) 또 그 소리--- .
[노모] 이번에는 직통으로 끌려갈 뻔했다. 사자급이 아이고, 염라대왕이 직접--- .
[아들] (크게) 내방하사--- .
[노모] 내하고 연애하자 카드라.
[아들] 거 새로운 레파토리를 개발하소.
[노모] (주책스럽게) 탁아.
[아들] 탁이가 아이고 택이요. 이윤택!
[노모] 그건 동국정운식 발음이다.
[아들] 내도 손자 볼 나인데 탁아 탁아 하지 마소.
[노모] (섭섭해서) 내 갈란다.
[아들] (무대 뒤를 향해) 봐라, 봉숙이 엄마~~~
[며느리] ...............................(열심히 하던일에 열중)
[아들] (강하게) 봐라, 봉숙이 엄마~~~~
[며느리] 와요.
[아들] 어무이 파고다 공원에 나가실 모양인께 용돈 좀 두둑히 드리소. (아내에게 다가가 돈 을 뺏어 들고 노모에게 다가감)
[손녀] 엄마! 나도! (크게 외치며 며느리쪽으로 달려가면 며느리, 손녀 이마빡을 세게 내려침
-손녀 크게 운다.)
[아들] 거 백원짜리 화투는 치지 마소. 어른들이 공원에서 담요 깔아 놓고 화투치는 거 보기 안좋심더. 안좋아요
[노모] 에라 이 썩어빠질 놈아. 이놈아
[아들] (낄낄거리며) 내 인제 엄마가 보따리 싸고 집 나갈란다는 공갈에 넘어갈 나이가
아이오.
[노모] (심드렁해져서) 이건 공갈이 아니다.
[아들] 공갈 아니다 소리 한두 번이오? 중학교 때까지는 깜박 속아서 엄마 치맛자락 붙들고 넘어졌지만서도--- .
[노모] 공갈칠 밑천 다 떨어졌다.
[아들] 그라이까네 이 장손 기둥뿌리 꽉 붙잡고 가만 있으소.
[노모] 그래. 내도 가만있고 싶은데 자꾸 가자 칸다.
[아들] 염라대왕이?
[노모] 그래.
[아들] 공갈치지 말라 카소.
[노모] 내 굿 한판 할란다.
[아들] (이마를 치며) 아~~`고.
[노모] 와?...니는 내가 극락왕생하는 게 그리 싫나?
[아들] 살리 주소.
[노모] 그래. 내가 화탕지옥에 떨어져서 네 년놈들 꿈자리에 매일 밤 나타나면 될꺼 아이가.
[아들] 그건 미신이오.
[노모] 니는 조상도 없나, 후레자식 같으니라고.
[아들] 조상 섬기는 거 하고 굿하는 거하고--- .
[노모] 한통속이다.
[아들] 돈이 어지간히 들어야지.
[노모] 내 죽으면 이 집 어느 년놈이 차고앉는데--- .
[아들] 돈도 돈이지만서도--- .
[노모] (반울음) 느그 아비 서른도 몬 넘기고 총 맞아 죽고 자식 둘 공부시키면서 떡 팔아 모은 집이다. 이집이. 이누마야
[아들] 떡 팔아서 우예 집사요?
[노모] 요새는 주둥이가 고급이 돼놔서 떡을 안 쳐먹지만서도 옛날에는 떡 팔아서 부자 된 사람 많았다! 이눔아
[아들] 내도 명색이 학교 접장인데 접장 엄마가 상소리 쓰면 되겠소?
[노모] 니도 나이 처먹어봐라, 느는 게 욕뿌이다.
[아들] 알았소. 9월 보너스 몽땅 털테니까네 동남아여행 한 번 댕기오소.
[노모] 동남아에 내가 와 가노.
[아들] 다들 부모 동남아 구경시킨다고 난리요.
[노모] 미친놈들. 게가서 꼴각하면 지삿밥도 몬 언어묵는다.
[아들] 백사장이 좋다 캅디다.
[노모] 이 나이에 물장구 칠까.
[아들] 모래찜질은 어떻소.
[노모] 신소리 말고 석출이나 불러라.
[아들] 석출이가 누구 개 이름이요. 그 쌍놈의 자식은 언제부터 턱쪼가리 쳐들고 상판에 맞지 않는 거들먹인지--- .
[노모] 그놈이 요즘 바쁘다.
[아들] 그놈 굿해서 빌딩 사겠소.
[노모] 그놈 그놈 하지 마라, 오구대왕 빽 있는 놈이다.
[아들] 돈도 돈이지만서도--- .
[노모] 내 살아 있을 때 소원 풀어나 주라.
[아들] 솔직히 말해 동네 시끄럽소.
[노모] 그게 무슨 말이고?
[아들] 징을 치고 (노모-얼쑤) 북 두들기고(노모-좋다) 칼춤 추는데--- .
[노모] 거 을메나 재밌노.
[아들] 동네 창피해서 못 다니겠소!
[노모] 에라 이 세가 만발이나 빠져 자빠질 놈아! 동네 창피한 굿을 와 요새 인간들은
극장에 표 끊고 보러 가노?
[아들] 그건 국가에서 문화재로 지정한 거 아이요.
[노모] 석출이도 인간문화재다. 모르면 암말 말고 퍼뜩 산오구 한판 떡 벌어지게 채리 봐라.
[아들] 아니 인간문화재가 와 그 짓을 하지?
[노모] 인간문화재가 뭐 말라비틀어진 훈장이고. 무당은 생굿판에서 놀아야 지 팔자다.
[아들] 석출아~~~`굿 해라!
[노모] 오야 석출아 굿해라~~~~
(푸너리 장단과 함께 무대 전환 장고재비, 징재비, 무녀 등장, 모이는 동네사람들)
[장] 1장 죽음을 위한 형식 - 굿
(푸너리 장단 이어지면서 맏아들과 처, 신단을 차림. 신단은 <성주 조상상> 이 제격. 노모는 비싼 돈 들여 맞춘 '죽음의 옷'을 입고 좌정, 정재비는 지게 막대기처럼 생긴 삼각대에 징을 걸고, 무녀는 남쾌자 차림 - 등짝에 <이복례여사수명장수>란 글씨를 붙였다. 한 손에 부채, 한 손에 물바가지와 손수건을 들었다. 신단을 등지고 재비를 향하여 바로 선 자세. 굿판이 준비되자.)
[석출] (객석을 향하여) 이복례 여노는 젊어서 대동아전쟁에 바깥 양반을 잃고, 이때껏 혼자 아들자슥 둘 공부시키기 위하야 채소장사 밥장사 떡장사 포목장사 등 전전긍긍하면서---
[노모] 밥장사는 안했다.
[석출] 전번에 할 때 했다 안했소?
[노모] 니가 창작해 넣었제 은제 내가 했다 켔나. 아무래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으니
까네 바로 잡을 거는 딱 바로 잡으면서 진행하자.
[석출] 그라입시더. 밥장사는 안 하고(하고) 떡장사를 하면서 푼푼이 돈을 모아 적산가옥을 사고(얼쑤) 땅도 몇 마지기 확보하여 쏠쏠이 이재를 모았으나 이제 극락 갈 일만 남았으니 이 모든 고생과 축재도 허망하다(허망하다).
[노모] 그래 말짱 도루묵이다.
[석출] 차라리 전 재산을 바쳐 좋은 곳에 가자 산오구굿을 한다.
[아들] 저놈이 칼 안든 강도네. 굿 한판 하는데 백만 원이나 받아쳐먹고 전 재산을--- .
[노모] 신경 쓰지 마라. 산오구 사설에 원래 그렇게 적혀 있는기라. 다 내 마음이다
생각하고 넘어가자.
[석출] 그리하여(얼쑤) 죽어서 좋은곳에 가고 살아서 복이 없었떤 남편과의 뒤늦은 행복도 찾아보려 지금 극락세계 정문을 두드리는데,
[징재비] 얼쑤 -
[석출] (창으로) 에 - 에 - 여혼여 - 여혼여 - 여혼여 - 여혼여 - (청승맞게) 어 - 이 - 불쌍코 애창한 할마씨 구슬같은 젓가슴 쭈그렁 바가지 되얏시니 살아온 길 누가 알고 저승 가니 누가 알꼬 이 - (반울음) 살아 생전 내가 지은 업보 다 털고 조상님 곁에 갈라카는데 하이고 - 어데 의논할 사람이 있나 내 고생 알아주는 자식이 있나아 - 아아 - 악, 악, 아악. (아예 운다)
[아들] 저게 누구 약 올리나?
(노모 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찍어 바른다.)
[노모] (악을 쓰며) 내 살아 생전 뼈빠지게 고생하야 이렇게 극락 갈라꼬 좋은 세상 기다렸나아아, 극락이 아무리 좋다케도 (아들을 가리키며) 저 새끼 부모공양에 미칠까 하이고 (동네사람 틈에 끼어 있는 손녀를 ‘할머니“하고 외치며 노모에게 달려간다) 오야오야.. 요 영계백숙같은 요년 조자룡 자식 한 놈 턱 물고 들어와 금동아들 보고 갈라켔는데, 하아이고 이제 다 틀렸구나아아, 날 여기 이대로 안 놔두고 어데로 가잔 말고, (아예 악을 쓴다) 어느 시절에 다시오잔 말고 몬 간다 내는 몬 간다아!
((노모, 울음을 터뜨린다. 아들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담배를 피워 문다. 그러나 손이 떨린다. 맏아들의 처도 실룩거리기 시작한다. 노모, 울음이 커진다. 석출, 청승맞은 울음을 계속하면서 사람들 눈치를 살피고 무녀가 응원을 나선다.))
((이 대목에서 아들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분명히 눈물이 찔끔 나온 것 같다) <어머니이> 하면서 노모 품에 쓰러진다.))
[노모] (순간 울음을 멈추고, 아들을 쥐어박는다) 돈 내라, 이 대목에서 돈 내야 칸다. (그리고 다시 울면서, 어서 신단에 돈 태우라는 눈짓)
((아들, 질질 울면서 손지갑을 찾는다. 황망 중이라 정신이 없다.))
[아들] 엄마 - 내~~돈 없다.
((노모, 울면서 쌈지 돈을 꺼내어 흔든다. 아들, 울면서 노모의 돈을 건네 받아 무녀의 허리띠에 꽂는다.))
[전체] 축원이야 축원이야 오늘 다 축원이야. 도리천 보내 주고 옹내천을 보내 주심만 - (석출 신광주리를 들고 객석을 돈다)
[석출] 이 돈을 나를 줄 때 쓸데없이 나를 줬나 무당각시 입을 빌려 이복례 할머니 극락 노자돈 하라고 나를 줬지. 자 할머니 축원해드립시다, 아저씨. 천원 내고 젊은 처자들도요 돈 천원씩 봉양하면 시집장가 잘 가요. 축원이요 축원이요 여러 보살님네들 축원이요.
[노모] 석출아 인심 사납게 놀지 말고 이제 그만 굿 진행해라, 이놈아 돈독 오르면 신기 다 빠진다.
[무녀] (독백) 하여튼 저 할망구는 백년 묵은 여우야 도대체 굿발이 안서니. (돌아보며) 알았소. 이제 살타령 축원으로 넘어가 봅시다. (경쾌한 창으로) 닭띠 뱀띠 소띠는 삼재가 들었습니다. 삼재 팔난살을 막아 봅시다. 삼층살 육층살 삼재팔난 청용살 감기몸살 개박살 동기 간에 애증살 부부 간에 이별살 아파트에 손재 살길 걷다가 윤화살 모두 막아 주시고 -. 이제 복타령으로 넘어가요오. (창으로) 인복 들고 여복 들고 물복 들고 쇠복 들고 관복 들면 오복이요, 일년 열두 달 삼백예순살 정칠월로 이팔월에 삼구월 짚고 사시월, 오동.....오동추야 달이밝아~~아!오동동이야...오동동 술타령에 아 오동동이야~~아니요 아니요 궂은비 내리는 ????????? (노모를 향해) 할매. 할매가 한번 막아보소~~~~
[노모] (단장의 미아리고개, 너무합니다)
[무녀]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보살님네요. 지는 한 고랑 냈습니다. (피곤한 기색 완연하다)
[노모] 수작 말고 오구대왕풀이로 넘어가자.
[석출] (기가 차다는 듯) 할매가 다 하소. (투덜) 숨이 차 죽겠는데 대왕풀이가 조폐공사 지폐 찍듯이 쏟아지는 중 아나.
[아들] (시비 걸 호재를 만났다) 판 거두시오! 뭐 이 따위가 있어. 이거. 굿 절반도 안하고 돈 백만원 거저 먹을려고 그래. 잔금 없는 걸로 하고 이만 쫑 하소.
[무녀] (아니꼽다)하이고 치사하다 치사해. 육년 전에 백 만원 받고 했는데, 지금까지 백만원 아이요. 인플레도 감안해 주셔야지.
[며느리] 아니, 굿판에도 인플레가 적용되나? 이거 순 손 안대고 코풀기 아니가. 굿하는 데 밑천이 드나 재료가 드나--- .
[노모] 이 썩어질 놈들아! 이 굿판이 느그들 싸움판이가. (쌈지 주머니를 던지며) 자 썩은 돈 받아라, 내 돈 필요 없다, 대왕풀이나 한번 시원하게 풀어라.
[석출] 복례 할머니 쌈지돈은 저승냄새 나서 못 받겠소. (아들을 향해) 걱정 마시오. 아직 굿판은 안 끝났으니까 저기 앉아서 감상이나 하시오. 괜히 한 번 틀어 보는 것도 굿판에서는 짜여진 각본 아니오. (노모를 향해) 할매, 내가 요즘 기력이 떨어져서 내리닫이로 굿판을 못 몰고 가요. 대신 (젊은 무녀를 가리키며) 내 딸년들 줄줄이 키야놨으니까네 한번 들어보소. 제법 쓸만 하요.
[노모] 젊은아들이 가락을 아나?
[석출] 요새는 젊은 아들이 더 무섭소
[무녀] 슬프다 세상사 사람이 일생을 사다가 부모를 두고 가는 자식이 있고
자식을 두고 가는 부모도 있고 사람이 먼저 가고 나중가고 젊은 청춘에 가고
[전체] 그렇지---- (무녀가 메기면 전체가 받는 형식이다)
[무녀] 일생에 한참 살만하다 자식두고 떠나가니 얼마나 불쌍하고
[전체] 야속헌고----
[무녀] 한번가면 영영 못올 길로 아주가고
[전체]영기가네----
[노모] 그래그래 사람은 누구나 다 한번 왔다 한번가는데
잘먹고 잘입고 고대광실 높은집에서 사다가면 덜 섭다가는데
자슥둘 떡장사로 공부 시켜놓고 이제 늙으막에 집장만하여 쪼~~까 살만한데
이승을 이별하고 떠나갈라카니 눈앞이 아른거려--- 내 어느시절에 다시올꼬~~~~
[무녀] 불쌍타 우리영가 오구 복받아 극락갈려고 [전체] 오--- 내가 왔네
소식없이 떠나갈까 마음이 한데 올 줄 몰라도
사람마다 한번은 나고 한번은 가고 하는데
죽어지면 어느곳으로가요 부모를 두고 가는 사람은
[전체] 울엄마요-- (보고싶어도) 울엄마요---
마른자리 지른자리 골라가며 키워가는 울엄마요----
어디가서 만나보며 어디가서 찾아볼꼬----
[노모] 탁아 (애타게) 탁아아!
[아들] 사람 많은 데서 탁아 탁아 부르지 마소, 제발! (사람들, 꺄르르 웃는다)
[노모] (환하게, 그러나 아쉽게) 내 갈란다. (노모, 픽 쓰러진다. 좌중 일순 침묵. 석출, 벌떡 일어나 노모에게 다가가 앉는다.)
[석출] (멍하니) 복례 할매 죽었다. (좌중 얼어붙는다.)
[석출] (희미하게 웃으며) 극락 갔다.
[아들] (어린애처럼) 엄마요옷! (달려가 부둥켜안는다. 석출, 북을 치면서 넋풀이 - )
[전체] 간다간다 / 극락을 간다 / 염불 받아 / 이제 간다 저 달/ 안 밝아도 / 대한천지 / 다 비추는데 극락가는 / 구천 행로 / 깜깜해서 / 안 보이네 오구대왕아 / 면경비춰 / 저 하늘 좀 / 밝혀다오 동자야 / 내 북을 타고 / 할머니 길 / 열어다오 세월 가려면 / 내 혼자가지 / 우리 부모 / 왜 데려가나 살아 생전 / 우리 부모 / 만단시름 / 품고 살아 황천길 / 가는 길이 / 여기 보다 / 편할 손가 여보소 / 말 물어 봅세 / 그쪽은 살기 괜찮소? (오열음) 영혼아 - 아 - 영혼아 영혼아 - 아 - 영혼아
귀에 쟁쟁 / 눈에 삼삼 / 어디메서 / 나를 찾나 하늘에서 / 나를 찾나 / 지하에서 / 나를 부르나 허공에서 / 나를 부르나 / 세상사 / 쳔초롱같아 넋이라도 / 왔건마는 / 혼이라도 / 내 여기 왔건마는 이내 집이 / 비었구나 / 어 - 어 - 산천도 / 예보던 산천 / 내 먹던 / 녹수건만 / 자식새끼 / 등에 업고 넘나들던 / 내집인데 / 체관아 -(아들 ‘엄마욧’) 백년 체관아 - --- .(아들 “아이고 우리엄마요”)
[무녀] 10분간 휴식입니다.
[장] 2장 죽음의 형식 ① - 몸 거두기
[석출] 예서에 의하면 임종에 대한 준비, 초혼, 시체 거두기, 상례 동안의 역할분담, 관 준비, 부고 등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들을 차례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운명이 가까우면 속광, 즉 생사여부를 확인한다.
[석출] 솜털을 집어, 솜털! (( 아들 솜털을 코 위에 놓는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솜털.))
[석출] 숨쉬지 마소.보세요.솜털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죠. 숨이 안 끊어졌다는 증거입니다.
((아들, 노모의 저고리를 벗겨든다))
[석출] 다음 단계는 초혼. (아들에게) 지붕 앞으로!
(아들, 무대 앞으로 뛰어와 계단 위로 올라선다.)
[석출] 앞치마를 흔들면서 엄마를 불러.
[아들] 엄마--- 엄마--- 엄마야--- .
[석출] 네 엄마 이름이 뭐야?
[아들] 이복례
[석출] 그래 엄마 이름을 불러.
[아들] 이복례--- 이복례--- 이복례--- . ((아들 계단을 내려온다.))
[석출] 원위치! 지붕에서 내려올 때는 뒷처마를 이용해야 한다.
[아들] 뒷치마. (엉덩이에 두른다)
((석출, 노모에게 다가가 다리를 잡는다. 아들, 노모의 어깨를 잡는다. 노모를 성큼 든다.))
[석출] (무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배우에게) 시상판이 남쪽으로 향해 있는지 확인해!
((남자 배우 두 명이 시상판을 남쪽이라 짐작되는 방향으로 고쳐 놓는다. 거기 노모를 눕힌다.))
[석출] (앞으로 나오며) 이때 사자밥을 앞마당에 차려. 사자밥은 밥, 동전, 짚신등을 세 개씩 놓는다.
[석출] 먼저 목욕! (배우2. 누워있는 노모에게 홑이불을 덮는다)
[석출] 쑥물 쌀뜨물 향물을 솜에 적셔 머리 얼굴 손을 씻기며 (석출의 말에 따라 배우들 저마다 잽싸게 손을 놀린다) 상체와 하체의 차례로 목욕을 시킨 다음 발을 씻긴다.
[석출] 수의를 웃옷은 웃옷끼리 끼워 넣고, 아래옷은 아래옷끼리 서로 끼워 시신에 입힌다. 발에는 버선을, 손에는 악수를, 머리에는 명건을 씌운 다음, 반함은 이렇게 한다. 쌀갖다줘라
[아들] (노모의 입을 벌리고 쌀을 던져 넣으며, 슬프게) 천석이요, 이천석이요, 삼천석이요.
[작은아들] (동전을 입 속에 던져 넣으며, 슬프게) 천냥이요, 이천냥이요, 삼천냥이요.
[석출] 이어서 소렴!
((배우들 우르르 달려들어 베 위에 시신을 눕히고 창호지를 짚이나 줄풀 말린 것을 발라 붙이고, 헌 옷가지로 시신의 몸 어깨 다리 사이를 마구 묶어 채우고, 다리에 몸과 같은 높이로 종이등을 접어 넣어 시신의 전체 모양을 사각지게 만든다. 그 위에 베 조각을 양 옆으로 묶는다))
[모두] (낮은 구음) 아--이--고--
[손녀] 할머니... (외마디)
[장] 3장 죽음의 형식 ② - 초상집
[석출] (건성으로 곡을 놓는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석출] 아아이고. 아이고 여기 밥상 빨리 안 차려 주는 거야? 아이고 반나절 동안 곡을 놓았더니 창자가 꼬이고 뱃가죽이 앞뒤로 찰싹 달라붙는구나 밥 줘, 바압 -
[맏상주] 봐라 봉숙이 엄마.....저 친구 밥상 차려도.
[처] 여기 밥상 나가요.
[석출] 아이고 배고파라.
[맏상주] 곡하는거 저거 상당히 힘드는거야
[처] 힘든거 당신이 안하고 와 남한테만 맡기노!
((상주의 처, 밥상을 사납게 놓는다.))
[석출] 개밥그릇 놓듯이 와 이라노?!
[처] 밥통에 걸신 들었소.
[석출] 밥을 먹어야 곡을 할 게 아이가.
[처] 여기 속 편하게 밥 먹는 사람 어디 있나. 아무리 일당 받고 대신 곡하는 행편이라지만 초상집 분위기 봐 가매 노소!
[석출] 분위기 좋아하네. 나는 초상집 분위기 깰라꼬 일당받고 온 사람이다! 와?
((상주의 처, 휑하니 퇴장.))
[석출] (밥을 퍼먹으면서) 아이고 - 배고파라--
((문상객1 등장))
[석출] 손님 온다, 아이고 -
((맏상주, 황급히 옷매무새를 고치면서 일어선다 문상객2, 부의금 접수처에 봉투를 놓고 제삿상 앞 멍석에 꿇어앉아 분향하고 절 두 번 반.))
[맏상주] 아이고.
[문상객] 허이.
[맏상주] 아이고 아이고 -
[문상객] 허이 허이.
[문상객]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맏상주] 바쁘실텐데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상객] 수명장수 하셨으니 호상일세.
[맏상주] 그래 말하면 내는 우예 대답해야 되는 기요?
[문상객] 그냥 감사합니다 하면 돼.
[맏상주] 그냥 감사합니다.
[석출] 말도 안되는 소리하면서 엎드려 있지 말고 이리들 오시오. 안상주 상식 올릴 채비나 합시다. 아주머니 한 번 불러보시오.
[맏상주] 여보 - 석출이가 상식 올릴 준비하래는데--- .
[처] 나 그런 거 할 줄 몰라요.
[석출] 내 조금 전에 가르쳐 줬잖소.
[처] 그냥 막 울면 안돼요?
[석출] 그냥 막 울다니?
[처] 곡하는 데도 작곡을 해서 울어야 돼요?
[석출] 작곡만 하는 게 아니고 연기까지 해야 되는 거요.
[처] 싫어요. 난 그냥 자연스럽게 울겠어요.
[석출] 자연스러운 거 좋아하시네. 아무소리 말고 내 가르쳐 준대로 하시오. 자 봐요. 이 상을 가지고 가서 술잔을 올리고, 절하고, 치맛자락을 이렇게 이 손으로 받쳐 요쪽 뺨따귀에 대고 아이고 아이고, 이렇게 애원성을 놓으면, 봉숙이 아버지는, 애고 애고 애고, 알겠어? 목에 힘을 주지 말고 아랫배 단전에 숨을 탱탱히 넣어서 그냥 쭉쭉 뽑는 거야. 쓸데없이 목놓아 울지 말라고--- .
[맏상주] 알았다.
[석출] 우리 인사합시다.
[문상객1] 그러지요.
[석출] (엎드려 절하며) 저는 이 집에 대신 곡하는 사람올시다.
[문상객1] (웃으며 넙죽 절하며) 소인은 여주 이씨 문종 종손되는 자로서 세상 떠나신 노친의 먼 친척뻘 되는데 (명함을 내밀며) 그냥 이런 사람올시다.
[석출] (명함을 받아 읽으며) 자유수호연맹 종로구 지부장, 대한 호국 불교사무국 기획위원 겸 종로신도회 섭외부장, 허 이거 몰라 뵈었습니다. 지체 높으신 분이시군요.
[문상객1] 바로 요 앞길에서 복덕방하고 있지요.
[석출] 아, 네. 이런 자리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인사를 트는 것도 좋은 일이지요.
[문상객1] 좋죠. 사람은 서로 만나면서 사는 거 아니겠어요?
[석출] 우리 화투나 한판 칩시다.
[과수댁] (석출에게) 안녕하십니까?
[석출] 아이고, 누구시더라?
[과수댁] 봉숙이 외숙모 아닙니까? 지난해 굿할 때도 왔는데요.
[석출] 맞다. 내 몰라 뵈었네요
[과수댁] 지금 상식 들어가네?
[석출] 응원 좀 해주소. 둘째 상주가 아직 총각이라 여자 혼자서 고전이오.
[과수댁] 그럼 나중 또 뵙겠습니다. ((과수댁 조용히 신발 벗고 올라서서 멍석 위에 앉자마자 곡을 터뜨린다. 과수댁의 곡은 너무나 크고 유창해 놀라운 설득력을 확보한다. 맏상주와 둘째 상주는 진짜 울음을 터뜨리면서 훌쩍거리고, 처는 그제사 소리가 터진다. 이때 문상객 2, 3 들어선다. 손녀 봉숙도 비쭉이 얼굴을 들이민다.))
[손녀] 할머니 흑흑흑.
[석출] 봉숙아! 여기 소주 한 병하고 돼지머리 눌린 거 한 접시 더 가져와라!
((손녀, 울음을 뚝 그치고 신경질을 팍 내며 퇴장. 맏상주, 둘째 상주, 며느리 곡소리, 울음소리 드높아진다))
((석출, 맏상주에게 간다.))
[석출] 내 일당 좀 선불해 주소.
[맏상주] 다 잃읏나?
[석출] 오늘 곡한 거 완전 헛농사야.
[맏상주] 화투는 그래 치는 게 아이다.
((맏상주, 화투판으로 간다. 상주 굴건을 턱 벗고 자리를 잡고 앉는다. 좌중 일순 정지, 맏상주 약간 계면쩍어 진다))
[석출] 패 돌려.
[문상객2] 점 천 피바가지 있고 전두환 고스톱야.
[맏상주] 오도리냐 육도리냐.
[문상객1] 육도리 쳐주고 광 천 쓰리 고는 갑절.
[맏상주] 고!
[문상객] 못 먹어도 고! (문상객 3 죽는다.)
[문상객2] 아니, 또 죽어?
[문상객2] 광 팔러 왔나? 다음 판부터 저 친구 빼고 돌려.
[문상객3] 푼돈 있다고 유세하지 마.
[문상객2] 내가 너한테 선거유세 하냐.
[문상객3] 네 주제에 선거유세?
[맏상주] 자 삼점 올리고, 고! 초장 끗발이 삼삼하다.
[문상객3] 초장 끗발이 파장 몽둥이다.
[맏상주] 자, 삼점 올리고 쓰리고.
[문상객3] 야 맏상주 끗발 죽이네.
[맏상주] 원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둘째상주] 저래도 되는 거요?
[처] 화투라면 사족을 못 쓰는 양반이 돼놔서--- .
[둘째상주] 참 집안 꼴 잘 돼간다. 나는 이번 기회에 독립하겠소.
[처] 누가 잡는 사람 있습디까?
[석출] (창으로) 어 - 허 - 으 남선부중 대한민국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이씨영가불명은 이씨 금강화 왕생극락 가옵소사 세상근심 다 씻어버리고 이 세상 죄 다 살아버리고 동래 온천에 목욕하러 해운대 법성뜰 너른 뜰에 맨발로 밟아가는데. 썩은 손목 일수하니 광목천왕이 현신하실 때, 청보장 한 번 옆에서 배워보시오
[과수댁] 아 예!
((안방.))
[둘째상주] 형님하고 합의만 되면 이 집 처분합시다. 요새 아파트가 좋잖소.
[처] 이 집 팔아서 아파트 두 채 사겠소?
[둘째상주] 대지가 이백 평인데 평당 백 오십만 쳐도 삼억이오.
[처] 그래 갖고?
[둘째상주] 일억이면 뒤집어쓰고도 남소.
[처] 그래갖고?
[둘째상주] 내가 혼자 사업하겠다는 게 아이고 형수가 감사로 턱 취임하란 말이오.
[석출] 상지 뜨나 달이 뜨나 아 어 -
우량천하 대법창아 어찌라네 이 (무악과 석출. 과수댁의 어깨춤)
북은천왕 후방천왕아 우리중 전왕
우마당아 삼십삼천에 이십팔수야 ((무악과 어깨춤))
[석출/과수댁] 육장문아 구청구워 이 어스야 누운 천자 옥장문 열고 나무금수 하단문 열고 어 - 후 -
[화투패일동] 참 한다, 얼싸 -
((같이 어깨춤, 화투는 계속))
[석출/과수댁] 중앙황유리 화장세개 상주설법 하옵시고.
[화구패일동] 좋다!
[석출] ((석출 갑자기 징을 탕 치며,)) 손님 왔다 -
[맏상주] (아쉬운 표정으로 화투를 놓고 굴건을 쓰며) 이 밤중에 무슨 문상객이--- .
((저승사자 들이닥친다. 그로테스크한 저승사자 복장))
[과수댁] 꺅! ((불이 꺼진다.))
[장] 4장 죽음의 형식 ③ - 저승사자
((다시 불이 켜지면, 3장. 마지막 산자와 저승사자의 대면장면. 일동, 스톱모션에 걸려 있는데.))
[석출] (여유있게 일어서며) 어서 오소. 오늘은 좀 이른데요.
[저승사자1] 아이구 오랜만입니다. (악수를 청하며) 몸조심허쇼. 석출 씨도 명단에 올랐습디다. (과수댁을 향해) 아따 이 여자 사자 간 떨어지게 하네 잉 . 까딱하믄 까무러칠 뻔했당께.
[석출] (맏상주에게) 저기 저 양반이 오늘 제주요.
[저승사자1] (공손하게) 이거 처음 뵙겄습니다. 잘 좀 부탁헙시다.
[맏상주] (엉겁결에 굴건을 벗고 절하며) 이윤택이라고 합니다. 존함은 일찍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뵙기는--- .
[저승사자1] 처음이지요 잉!
[석출] 자 들어오소. 먼 길 오느라 시장하셨을텐데 (앞마당 사자 밥상을 가리키며) 저기 자리로--- .
[저승사자] (산 자들을 향해) 자 그럼 신세 좀 지겄습니다. 잉!
((저승사자 1, 일일이 둘째 상주 문상객 1, 2, 3과 악수를 나누고 처와 수인사를 나누면서 들어선다. 저승사자 2, 3. 산 자들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뒤따른다. 저승사자 3은 두렵고 호기심에 찬 표정이 역력하다. 저승사자들 사자밥 앞에 둘러 앉으면 과수댁이 따근한 막걸리 주전자와 돼지머리를 잽싸게 가져온다.))
[저승사자1] 아 이러시면 안되는디. 술과 고기는 규정에 거시기해서..
[저승사자2] (과수댁 상을 받으며) 이거 고맙습니다. (저승사자1에게) 아따 기양 눈 딱 감고 받아 묵어븝시다. 아 춥고 배고픈 놈들 거시기 지키게 됐소.
[저승사자1] 시끄라. 촌지나 두둑허니 줬으믄 쓰겄다.
((저승사자들이 이러는 사이 산 자들은 저승사자 촌지문제로 숙의 중))
[석출] 준비 됐나?
[맏상주] 얼매나 주면 되나?
[석출] 원칙적으론 부의금 들어온 건 다 주어야지.
[처] 말도 안돼요. 저승에서 무슨 한국은행권이 필요하단 말이요.
[석출] 여기가 저승이요? 지금 저들이 이승에 내려와 있잖소?
[맏상주] 맞는 말이다, 가만 있자, (부의금 접수대장을 더듬다가) 이게 뭐꼬? 백지잖아, 부의금이 하나도 안 들어왔나? 그렇군 돈이 안 들어온 거 같애, 빈봉투야.!
[둘째상주] 뭘 가지고 떠들어, 내가 다 챙겨 놓았는데.
[맏상주] 니가 와 챙기노?
[둘째상주] 눈 뜨고 코 베어먹히는 세상 아니우? 요즘 초상집 부조금 전문털이가 성행한단 소리 못들었수. (품에서 봉투 하나 달랑 꺼내며) 자, 이거 저승사자 갖다 주시오.
[석출] 너무 작은데---
[둘째상주] 아, 거기다 지전 몇 장 보태서 주면 될 거 아니오. (제사상 위에 놓인 지전 서너 장 쥐어주며) 자, 이거 보태고--- .
[석출] (둘째에게 건네며) 갖다 줘라.
[둘째상주] 알았어. 내가 갖다 줄게.
(둘째, 저승사자에게 엉거주춤 다가선다.)
[둘째상주] 이래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자2] 아따 수고가 많으시지라 잉?
[둘째상주] 이거 얼마 안되지만 노잣돈으로--- .
[사자2] 하 이러시면 안되는디--- .
[둘째상주] 그럼 이만.
[사자2] 네. (둘째 상주가 돌아서자 봉투 속을 들여다본다) 머시여? 시방 누구 약올리는 거시여, 머시여? 아따 인간이 싫다 싫어. 세상 참 많이 변했구마잉. (사자 1에게 봉투를 주며) 아이 성님! 인간들이 요로코롬 거시기해도 되는 거시요 시방?
[사자1] 이거시 머시여? 이거 완전히 실망인디.
[사자2] 안되겄구만. 저 할망구를 관 뚜껑에서 빨딱 일으켜가꼬 깨춤 한번 추게 헙시다.
[사자1] 야 사자 체면이 있제 우리는 기양 끝까지 신사적으로 거시기 허자.
[맏상주] 둘째 니 이리 좀 와봐라.
[맏상주] 내 놔.
[둘째상주] 뭘.
[맏상주] 부조금!
[둘째상주] 째째하게스리.
[맏상주] 뭐? 이 도둑놈아!
[둘째상주] 도둑놈이라니!
[맏상주] 내가 모를 줄 아나? 니 어무이 인감도장하고 자유저축예금 통장도 챙겼지.
[둘째상주] 내가 가지고 있수. 그런데 집문서는 어디로 빼돌렸수?
[맏상주] 여 있다. 등기대장 토지대장 가옥대장 줄줄이 다 챙겨놓았지. 약오르나?
[둘째상주] 이거 순 도둑 아냐. 울 엄마 집문서를 왜 빼돌려!
[맏상주] 이건 누구 작품이고? 죽은 어무이가 언제 살아나셔서 행복 부동산과 매매계약을 했노, 으잉?
((저승사자 3, 상주들 싸움에 말을 걸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서 있다.))
[맏상주] (문상객 1을 가리키며) 니 저놈하고 짜고 집 팔아 넘기려했지.
[둘째상주] 이런 빌어먹을, 왜 그리 머리통이 안 돌아가요. 상속세가 엄청난데 어떻게 하오. 그것도 겨우 사망 날자 이틀 전으로 매매계약서 만든다고 얼마나 고생했--- .
[맏상주] 에라 이 후레자식아. (박치기)
[둘째상주] 아이구 코야!
[맏상주] (둘째 상주 멱살을 잡고) 말해 누구 작품이야.
[둘째상주] 그거 나 혼자 한 거 아니우. 형수한테 결제 받았소.
[처] 아이다! 내 안했다!!
[맏상주] (사이) 세상 다 살았다 (벌떡 일어서며) 줄초상이다 -
((맏상주 달려가 처의 허리를 잡고 넘어진다. '아이고 사람잡네' 느린 처의 비명을 신호로 저승사자들과 둘째 아들을 제외한 무대 위의 모든 사람들 사이의 일대 활극이 슬로우비디오 식으로 펼쳐진다. 이때 한쪽에선 싸인펜으로 <100,000원> 이라고 씌어진 지전을 둘째 상주 코 앞에 들이미는 사자 3)
[사자1] (먼산 불보듯) 저것들이 먼 지랄들이여 저거시?
[사자2] 인간세상 개판이구마잉 . (기어오는 사자 3을 보고) 아야 니는 또 어째 그라냐?
[사자3] 인간쌈에 사자 등 터져부렀소. 옛소! 현금 바꿔왔구만이라우.
[사자2] 진즉에 그럴 것이제. 인자 제법 신사적으로 노는구마잉. 성님, 피리가 수금해 왔소.
[사자1] 아야 카만 있어바라잉. 까딱하믄 계획에 없는 저승길 동행이 생기겄다. (맏상주를 가리키며) 저시끼가 왜 저 난리여?
[사자3] (둘째 상주를 가리키며) 저 놈이 나쁜 놈이어라. 죽은 할마씨를 산 것같이 속여가꼬 가옥 토지 매매계약서를 꾸몄닥하요.
[사자1] 그래야? (사자 2를 돌아보며) 아야 그거 저승법 몇 조에 거시기 되냐?
[사자2] 고거시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부분 제16장 4절에 해당 되는 사문서 위조구만이라우.
[사자1] 확실허냐?
[사자2] 분명 하당께라우.
[사자1] 강시출동 혀브러.
[사자1,2] 강시출동. 강시출동
(이때 노모 몇 명의 귀신들과 등장-터벅터벅 들어가 관 뚜껑위에 앉는다)
[처] 꺄악! (혼절)
[사자2] (관에서 뛰어 나온 노모에게) 여노는 머시 애로사항이 있어서 요로코롬 반칙을 거시기하고 계시요잉?
(노모 가까이 오라는 시늉. 사자2 노모에게 다가가 귀를 댄다. 알았다는 듯 끄덕거리는 시늉
사자2 뚜벅 뚜벅 걸어와 둘째 멱살을 잡아든다. 번쩍 들리는 둘째)
[둘째] 살려주!
[사자2] 안 돼겄다, 느그 어메가 니하고 동행해야 쓰겄단다.
[둘째] 아이고 나는 상주지 저승갈 사람이 아니요.
[사자1] 야 이 호로자식아! 저승이 니 가고 싶으믄 가고 안가고 싶으믄 여행 취소하는 온천장이여 머시여?
[석출] (나서며) 어떻게 편리좀 봐줄수 없겠소?
[사자1] 먼 편리?
(석출, 사자1 에게 다가가 귓속말, 사자1, 눈을 끔뻑이며 의미심장한 미소. 그리고 사자2에게 놓아주라는 눈짓. 털썩 떨어지는 둘째. 석출, 둘째에게 다가가 귀엣말. 둘째, 강력한 저항. 석출, 알아서 하라는... 둘째, 말없이 일어서 관으로 다가가 꿇어앉는다. 노모 군밤을 한대 먹인다. 둘째 옷속에 꿍쳐둔 부조금을 하나, 둘 끄집어 내어 관속에 넣으며 애고 애고 돈 잃어 원통한 곡 둘째 일어서려는데 노모, 어깨를 찍어 꿇어 앉힌다)
[노모] 내 통장 내 놔! (귀신이 마임을 대신함)
(둘째 상주, 더욱 서러운 곡을 놓으며 통장과 인감도장을 관속에 집어넣는다. )
[노모] 집문서도!(귀신-마임)
[맏상주] 아이고 어무이 집문서는 안됩니다. 그게 우예 해서 모은 재산입니까. 어무이가 떡장사해서 뼈빠지게 세운 우리 가문의 터전인데---
[노모] 집은 팔고 사는 부동산이 아이다. 요새 인간들이 가옥과 토지를 무슨 증권 거래하듯이 굴리는데, 이거, 안 좋다! 집은 그냥 집이다. 방구들에 눌러붙어 편하게 살자고 세우는 제 집이지 돈 놓고 돈 먹는 뺑뺑이판이 아니잖나! 알겠나! 내가 떡장사해서 집 샀을 때 느그들 부동산 투기하라꼬 헛지랄 했나? 새 새끼 둥지 틀 듯 자손이 이어지고 종손이 집 지키고 지삿밥 꼬박 꼬박 얻어묵을 생각으로 집 세웠지. 느그들 집 팔고 아파트로 이사해 봐라. 내가 우예 느그들 찾아가노. 서울 교통이 지옥인데 낯선 길 찾기 어렵고, 아파트 관리인에게 신고해야되고, 이 나이에 그 높은 계단 걸어서 올라갈 군번이가, 내가!
[맏상주] 요새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다 있어요. 어무이.
[노모] 혼백이 엘리베이터에 갇혀 봐라. 쥐도 새로 모르게 구천중음신 신세로 떨어진다. (둘째 상주에게) 빨리 집문서 내 놔라!
(둘째 상주, 하이고 자지러지며 집문서를 관속에 던진다. 맏상주와 처도 기절한 듯 곡소리 - 노모 관속을 더듬어 다발을 꺼내어 확 뿌리며 이별의 수화 (마임) - )
[노모] 자, 용돈이다. 닭 울기 전까지 신나게 화투판이나 벌여 봐라, 탁아, 내 진짜 간다!
(노모 돈 흩뿌리며 사라진다. 돈 주우려고 아귀다툼하는 상주들. 석출의 창으로 이어진다))
[석출] 할미야-- 할미야아--- 쓴 것은 네가 먹고 단 것은 자식 밥상, 오뉴월 짧은 밤 모기 빈대 뜯을세라. 고단한 몸 괴롭다 않고, 살 부채 다 떨어질 때까지 자식 몸 위해주고, 동지 섣달 살한풍 백설이 휘날리면 자식 몸 추울세라 이부자리 덮어주며, 정에 못이겨 잠든 허리 부여잡고, 탁아 탁아 우리 탁아 청산 첩첩 보내, 탁아, 오색바다 누벼누벼 바지 적삼 꾸려놓고 어화둥둥 내사랑 어화둥둥 내사랑 (작아지면서 흥겹게) 어화둥둥 내사랑 어화둥둥 내사랑......
[장] 5장 산 자를 위하여
((화투판이 한창이다))
[사자1] 아아 신겡쓰지 말고 계속 허쑈. (그러면서 사자 1, 능청스럽게 비집고 앉는다.)
[사자1] (맏상주 패를 훔쳐보며) 거 돼도 안하는 고도리에다 미련 두들 말고, 기양 흑싸리 쭉정이로 쭉 거시기 혀부쑈.
[맏상주] 와 이라요?
[사자1] 피로 모으는 거시 상책이다 이말이제.
[맏상주] 내도 그리 생각 중인데 당신이 말해 버리면 전략이 들통나잖소.
[사자1] 미안--- 미안--- 아따 요놈의 방정맞은 주둥이가 기양~~
[문상객2] 그러지 말고 정식 신고하려면 하세요.
[사자1] (헤벌쭉 웃으며) 하따 이거 그래도 쓸랑가 모르겄네잉--- .
[문상객3] 괜찮아요. 현금 거래에 매너만 좋으면--- .
[사자1] 화투판 매너야 저승에서 짜 한 몸이여. 자 거시기 패 돌려부쑈.
[맏상주] 잘 됐수. 이 집 쇠붙이 싹 쓸어 갔응께 이제 한번 게워 내보쇼.
[둘째상주] 형님, 껍데기를 싹 벗깁시다.
((이러면서 화투판이 이판사판으로 치닫는데 저승사자 2 슬그머니 일어선다.))
[사자3] 어디 가요?
[사자2] 니 여기 똑바로 앉어서 지키고 있어라잉.
(사자2 무대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간다. 사자3 관객들을 힐끔 쳐다보고 주눅이 든다 낯설고 혼자남아 불안하다 사타구니를 바짝 당겨 올리고 곤봉을 움켜쥔다. 석출, 빙긋 미소지으며 사자 2의 눈치를 본다. 사자 2, 계면쩍게 웃으며 마주 본다.))
[석출] 이승과 인연 한번 맺어 보실려고?
[사자2] (우물쭈물 하며) 아따, 그거시 아니고 기양 산보 좀 거시기 허니라고---허헛 .
[석출] 이 몸이 삼대 할애비 때부터 대물림하는 무가 자손이오. 오늘 저녁 점성이 남쪽 하늘에 떨어지고, 고단한 조각달 하나 떴다 싶으더니 바로 당신과 (무대 뒤편 잠든 과수댁을 쳐다보며) 저 신녀 뚜쟁이 노릇 하라는 뜻인 것 같소. 어서 들어가 보시오.
[사자2] 하따 이거 쪼까 껄쩍찌근 혀서 허허헛--- .
(정사장면 / 죽은 남편과 노모의 혼례장면)
((사자2, 과수댁 머리맡에 성큼 선다. 접신춤이 시작된다. 발갛게 데워지는 안방. 석출의 북과 문상객들의 싱싱한 응원이 사자 2와 과수댁의 정사를 북돋운다. (암전) 다시 불이 켜지면 석출의 창 조용히 흘러나온다.))
[석출의 창] 할미야 - 할미야 - 쓴 것은 네가 다 먹고 단 것은 자식 밥상 오뉴월 짧은 밤 모기 빈대 뜯을세라 고단한 몸 괴롭다 않고 살부채 다 떨어질 때까지 자식 몸 위해 주고 동지섣달 설한풍 백설이 휘날리면 자식 몸 추울세라 이부자리 덮어주며 정에 못 이겨 잠든 허리 부여잡고 탁아탁아 우리 탁아 청산첩첩 보배 탁아 오색 바다 누벼누벼 바지 적삼 꾸며 놓고 어화둥둥 내 사랑 (작아지면서 흥겹게) 어화둥둥 내 사랑 어화둥둥 내 사랑.
((동그마니 혼자 무대 앞에 남은 사자 3의 눈앞에 손녀 (봉숙) 가 커피잔을 들고 섰다.))
[손녀] 커피 주까?.
[사자3] 안 묵어.
[손녀] 와?
[사자3] 써서 싫당께.
[손녀] 설탕 많이 넣어주까?
[사자3] (질겁) 옴메 나 죽일라고야? 나는 설탕 묵으먼 눈사람같이 녹아부러.
[손녀] 녹는다고? 재밌네.
[사자3] 이거시 사자 잡을락 하네.
[손녀] 우리 할머니는 어디로 데려가는 거가?
[사자3] 우리 할아버지한테 가제.
[손녀] 느그 할아버지한테?
[사자3] 그려.
[손녀] 느그 할아버지가 누군데? 염라대왕?
[사자3] 히힛, 다들 그렇게 알고 있제.
[손녀] 그람?
[사자3] 느그 할아버지 성명삼자가 어찌케 돼냐?
[손녀] 응--- 뭐라했드라..
[사자3] 요사이 젊은것들은 못 쓰것드랑께. 즈그 할아버지 이름도 까묵어부러.
[손녀] 할배가 워낙 일찍 돌아가셔서 그르타. 나는 얼굴도 한번 몬봤다 아이가.
(사이) 맞다. 이석이 -
[사자3] 우리 할아버지 이름하고 똑같구만.
[손녀] 그라문 동명이인이고?
[사자3] 아니여 같은 사람이여.
[손녀] 그라문 할머니가 할아버지랑 상봉하는 거고?
[사자3] 그런 셈이제.
[손녀] 내도 가고 싶다.
[사자3] 니도 언젠가 오게 돼야.
[손녀] 거가 어데고? 억수로 머나?
[사자3] 아니여 가까워.
[손녀] 가까워? 어덴데?
[사자3] (손녀의 가슴을 쿡 찌르며) 바로 여그!
[손녀] (곱게 흘기며) 니 이마에 새똥도 안 벗겨진 게 요상하구나.
[사자3] (당황) 아니여, 나는 기양 거시기--- .
[손녀] 다 큰 숙녀 가슴을 건드리다니--- .
[사자3] 나는 진실을 말한거 뿐이당께!
[손녀] 진실?
[사자3] 그래, 우린 모두 한생각 한 몸이여, 니는 그것을 진짜 모르고 있었냐?
[손녀] (사자 3의 손을 정답게 잡으며) 맞다. 우린 한생각 한느낌이다.
[맏상주] (환호) 장땡이다, 장땡!!
[사자1] (쓴맛을 다시며) 막판에 가리오. (맏상주에게) 개평 좀 주소.
[맏상주] (관을 끌어안으며) 엄마, 난 돈 먹었어 -
[전체] 얼쑤 -
[석출 창과 일동 후렴] 친구 벗이 많다 하나 어느 누가 대신 가랴 어허야 어허야
일가 친척 많다 하나 어느 누가 대신 가랴 어허야 어허야
영변 약산 진달래꽃 저기 앞산에 묻었구나 어허야 어허야
극락 정토 어드메요 저기 앞산이 극락 정토 어허야 어허야
(모두 만가를 흥겹게 부른다. 이때 노모도 관에서 일어나 함께 부른다.)
[손녀] (불쑥 튀어나와) 잘 가세요 잘 가세요 그 한 마디 했었네.
[전체] 잘 있어요 잘 있어요 인사만 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