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열사병과 에어컨 두통 골머리, 일거리 없고 벌이 시원찮아 휴가 포기 많아 건설기계 대여사업자들에게 여름철은 비수기로 통한다. 폭염이 대여사업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해 강수량의 2/3을 차지하는 장마철에도 일이 없는데, 비가 멎고 일을 시작해야 할 때 찾아오는 폭염은 그래서 건기업계에 그리 달가운 건 아니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심술궂다. 남부지역은 끝날 것 같지 않은 찜통더위가 이어졌고, 수도권 지역은 늦장마가 길고 길게 이어졌다.
기상청에 따르면, 대구는 20일 연속 낮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을 기록했고, 전체 폭염일수 역시 45일로 가장 긴 기록을 세웠다. 전주·울산·정읍의 경우는 18일 폭염이 지속됐으며 광주·남원에서도 17일 연속 폭염이 이어졌다. 반면 수도권은 지루한 장맛비가 이어졌다. 7월 한달 비가 오지 않은 날은 나흘에 불과했다. 월 강수량도 양평 623mm, 서울 571mm, 문산 497mm에 이른다.
유난스런 올 여름 날씨만큼이나 건기인들도 유별난 여름을 보내고 있다. 건설경기 침체에 따른 일감부족과 건설기계 공급과잉이 겹치며 업계에는 한숨이 커져가고 있다. 그러니 유별나기 덮고 비가 많이 온 올 여름은 건기인들에게도 힘든 시절. 일거리가 없어 생계걱정에 전전하는 이, 간간히 이어지는 폭염 속 작업에 지친이, 여름철 휴양과 취미에 골똘하는 이 모두에게.
그 틈에도 건기단체들은 나름의 활동을 하느라 분주했다. 돈벌이 하느라 미뤄뒀던 단체사업들을 일 없을 때 치르는 셈. 워크숍이나 수련회로 임원·회원 리더십을 강화하는 기회를 삼았다. 체육대회 등을 통해 단결력을 고취시키기도 했다. 대여업계의 권익보호 정책마련을 위해 중앙·자치단체 의원과 간담회를 갖는가 하면 행정관청을 찾았다.
이에 본지가 전국의 건기사업자들과 건기단체들의 올 해 무더웠던 여름나기 그 속을 들여다봤다.
△땡볕, 그 작업현장 속으로=콘크리트펌프카 대여사업자 겸 조종사인 김세영(45)씨. 지난 8일 공동주택 타설 작업이 있어 아침 일찍 수원 현장에 도착했다. 시간이 좀 일러서 도착 두 시간 째 작업 지시가 없어 대기 중. 수원의 수은주가 이틀 연속 33도를 넘어서며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 아침부터 뙤약볕이 그늘 한 점 없는 작업현장을 달구고 있다. 대기하는 동안 차안에서 에어컨이라도 켜놓으면 더위라도 피할 테지만 작업일수가 적고 수입이 별로 없어 유류비라도 아껴야한다는 생각에 그러지도 못한다.
아침나절 더위에 지쳐갈 즈음 작업지시가 떨어졌다. 무선조종기로 펌프카를 조종하며 타설을 시작했다. 현장을 조금만 오가도 그의 몸은 땀으로 흥건하다. 무더위 강렬한 태양을 피할 길이 없으니까. 일을 시작한지 두 시간여 지났을까. 김씨가 무선조종기를 떨어트리며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주변에 있던 건설노동자들이 현장사무소 관계자에게 알렸고, 급히 119 구급차를 호출했다. 열사병이었다. 하루 요양하면 안정을 되찾는 다고 한다.
폭염에 건기사업자와 조종사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 강렬한 햇볕에 장시간 노출되며 열사병으로 나가떨어지는 이들이 늘고 있다. 햇볕을 쬐며 일하는 콘크리트펌프카 조종사들은 더욱 그렇다. 건설노조 펌프카지회에 따르면, 지난 7, 8월 두달간 7명의 조합원이 작업중 쓰러졌다. 조종석이 따로 없고 차량 밖으로 나와 무선조종기로 조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타설이 이뤄지는 오랜 시간 햇볕을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열사·일사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김영선 지부장은 “한번 작업을 하면 8시간씩도 하는데,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하다보면 열사병 위험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예방을 위해 알약 형태의 포도당을 갖고 다니며 섭취한다던가, 물을 수시로 마시고 있다”고 설명했다.
굴삭기와 타워크레인 그리고 지게차의 경우는 내부에서 조종을 하는 만큼 에어컨에 의지할 수 있어 그나마 낫다. 최신 제품들은 대부분은 에어컨을 구비하고 있으니까. 구형 건기라도 추가로 장착해 더위 먹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펌프카, 땡볕작업 ‘죽을맛’
창원에서 굴삭기대여업을 하는 홍성포씨.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와 일을 시작했다. 날씨가 더워 이른 시간에 서둘러 작업을 하고 정오경에는 두어 시간 휴식을 갖도록 탄력근무제를 건설사가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씨는 굴삭기에 올라타자마자 에어컨을 튼다. 처음엔 시원한 공기가 좋지만 시간이 흐르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메스껍다. 에어컨을 오래 가동시켜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홍씨는 잠시 에어컨을 끄고 오른쪽 머리위에 설치한 미니선풍기를 튼다. 에어컨보다 덥지만 그래도 두통은 좀 덜하다. 아침 집 냉동고에서 꺼내온 얼음물을 발밑 아이스박스에서 꺼내 꿀꺽꿀꺽 마신다. 시원함이 온몸에 퍼진다. 밖을 내다보니 건설노동자들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아이스박스에서 얼음물통을 몇 개 꺼내 그들에게 권한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잠시 휴식.
오전 11가 되자 현장사무실에서 작업 중단을 알리는 방송이 흐른다. 늘어난 일사량으로 건설노동자들의 작업이 어려워지자 중단시킨 것. 11부터 1시까지 두 시간 동안 휴식이다. 그 시간 점심도 먹고 더위를 씻는다. 오후부터는 40~50분 작업 하고 10~20분 휴식을 갖는다. 홍씨는 “에어컨이 있어 여름철 더위에도 작업하는 데는 그리 어려움은 없다”면서도 “함께 작업하는 건설노동자들이 힘들어 하기에 작업이 조금 더디긴 하다”고 말했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도 에어컨 없이는 일을 못한다. 100미터 고공에서 뜨거운 햇볕을 쬐면 살 수가 없으니까. 타워크레인 대여사업을 하는 정경영씨는 “에어컨 없이는 작업할 수 없다”며 “오랜시간 에어컨을 가동시키면 모터가 타버리는 고장이 잦지만 이를 알기에 미리 교체부품을 구비해 둔다”고 말했다.
작업을 방해하는 건 불볕더위만이 아니다. 잦은 비로 힘들어하는 이도 있었다. 서울에서 굴삭기 대여사업을 하는 이광수씨. 수도권 긴 장마가 원망스럽다. 일감부족으로 수입이 줄었는데, 이번 여름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비가 내려 조종석에 앉아 보질 못했다. 하반기에는 좀 나아지길 기대해보지만 부정적 전망이 쏟아지고 있어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크러셔, 비오니 작업수월
반면, 비의 도움을 받은 이들도 있다. 철거작업을 주로 하는 굴삭기크러셔 사업자들. 크러셔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먼지를 줄이기 위해 계속 물을 뿌리며 작업을 하는데, 비가 오면 그 수고를 덜 수 있기에 그렇다. 윤여견 전 서울크러셔굴삭기협회장은 “물을 뿌려 철거 먼지를 줄이고 작업시야를 확보해야 하는데, 비가 오면 물을 뿌릴 필요가 없어 그렇다”며 “올 여름 비가 자주와 일하기 좋았다”고 말했다.
△이 무더위, 그래도 피서가 최고=건기대여사업자들은 건설사의 휴가철에 맞춰 피서를 떠난다. 대략 7월 중순에서 말경. 불볕더위를 피해 가족이나 동료와 바다로, 산으로 떠난다. 하지만 올 여름은 좀 달랐다. 다수가 피서를 터나지 않은 것.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생계난 때문이다. 상반기 일을 못해 속편하게 휴가를 갈 수 없었던 것. 그러다보니 휴가기간 대리조종 등으로 부족한 수입을 메워야 하는 이도 많았다.
군산에서 굴삭기 대여사업을 하는 이두진씨도 올 여름휴가를 포기했다. 상반기 일감부족으로 수입이 변변치 않았던 것. 생활비도 부족한데 휴가비를 사용하는 것은 언감생심. 주말 인근 바닷가에서 동료들과 한잔 술을 들며 세상 한탄한 게 올 여름 휴가의 전부였다.
서울의 김환태씨도 여름휴가를 떠나지 못했다. 올 상반기엔 유난히도 수도권 지역 일감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결국 자신의 굴삭기를 세워두고 대리조종 일을 뛰었다. 이 일이라도 해야 굴삭기 구입한 할부금을 충당할 수 있으니. 일 마치고 함바집에 들려 막걸리 한잔에 푸념을 늘어놓으며 쓰린 속을 달래고 집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취미를 살려 신나는 여름을 보낸 이도 있다. 이들도 일감이 없어 고통스럽긴 마찬가지지만 늘 인상쓰고 있을 수만 없어 맘속 고민을 털어내려고 일부러 신나는 휴가를 자처한 것이다. 어차피 일이 없는 것, 생각을 바꾸니 여름 비수기를 더욱 알차게 보내야겠다고 다짐한다.
충주굴삭기협의회 ‘건설기계골프클럽’ 동호회. 개별사업자 20여명이 모인 동호회인데 한달에 한 번 그린필드에 나간다. 이달에도 충주 인근 컨츄리클럽에 모여 경기를 치렀다. 2년전 골프를 좋아하는 이들이 친목도 다지고 건강도 챙길 겸 만든 단체다. 회원 진용우씨는 “먼저 시작한 동료 권유로 가입했다”며 “골프가 운동도 되고 상대방과 깊은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일석이조의 좋은 운동이다”고 말했다. 그는 70~80타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기왕 일없는데, 신나게 즐기자
스포츠댄스로 무더운 여름을 떨치는 이도 있다. 문성주씨가 그 주인공. 15년전 스포츠댄스를 시작했다. 아는 분이 권해 시작했는데 그 매력에 푹 빠진 것. 꾸준히 배워 문씨는 얼마 전 전국 댄스대회에서 최우수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다 보면 온 신경에 퍼지는 그 짜릿한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죠. 특히 파트너와의 호흡을 맞춰 춤을 추다보면 이것이 삶이고 행복임을 느끼거든요. 하루 종일 조종석에 앉아 있다 보면 운동량이 턱없이 부족하기 쉽죠. 건강을 위해서라도 한번 해보세요.”
마라토너도 있었다. 서울경기인천10굴삭기협회 회원인 전현호씨. 올해 동아마라톤대회에 참가해 완주를 했다. 50대를 눈앞에 둔 그가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한 것은 그만큼 몸관리가 대단했음을 반증한다. 그가 마라톤을 시작한 건 온전히 다이어트 때문이었다. 172cm 키에 86kg 몸무게로 비만이어서 살을 빼려고 5년 전부터 아파트 주위를 달리기를 시작했다. 매일 5~6km를 달리니 살이 빠지고 몸이 좋아졌다.
2002년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흡연에 따른 폐암으로 세상을 뜨자 금연을 결심했고, 지금까지 이를 지킬 수 있었던 건 달리기를 했기 때문. 1년 뒤 학교 동창이 마라톤을 같이 해보자해 시작했다. 일 마치고 매일 달렸다. 마라톤 동호회에도 들어가 기술을 터득하기도 했다. 2년전부터는 1년에 3차례 국내 마라톤대회에 참가, 실력을 평가하고 있다. 중앙과 동아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