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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저 평범한 소녀예요. 특별하지 않죠. 키가 좀 크다는 것 말고는요!” 이것이 케이트 모스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믿겠는가? 그녀가 디자인한 톱숍이 뉴욕에 상륙한 첫날,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그녀의 얄미울 정도로 겸손(?)한 발언과는 달리 수많은 소녀들이 그녀를, 아니 정확히 말해 그녀의 스타일을 특별하게(여전히) 생각한다. 거리를 거니는 케이트 모스의 사진은 몇 년 전부터 지금까지, 실시간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체에 뿌려지고 있다. 그녀처럼 입는 방법이 제시되고 급기야 그녀가 직접 만든 옷이 등장했다. 톱숍의 케이트 모스 라인을 가리켜 <뉴욕 포스트>는 ‘Duplikate(Duplicate는 복사본을 의미한다)’라고 비꼬았다. 그녀의 평소 스타일을 그대로 복사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 하지만 그들의 질투 어린 비아냥과는 상관없이 ‘케이트 따라잡기 옷’들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케이트의 복사본이라도 되고 싶은 소녀들의 몸에 걸쳐지기 위해! 어디 케이트 모스 뿐이겠는가. 시에나 밀러와 아기네스 딘, 올슨 자매 등 흔히 ‘패셔니스타’라고 불리는 이들은 그녀들의 작품(영화, 쇼, 방송 등)보다 패션으로 더 주목받았다. 그녀들의 스타일은 각종 매체에 의해 끊임없이 평가됐다. 그들의 뒤를 이어 등장한 클로에 셰비니, 알렉사 청, 테일러 맘슨, 픽시 로트 등은 또 어떤가. 아침에 찍힌 그들의 파파라치 컷은 오후가 되면 지구 반대편 블로거들에게 전파된다. 애초에 부호나 정치인 등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엿보기 위해 생겨난 파파라치들은 지금도 그들이 오늘은 어떤 옷을 걸쳤는지, ‘잇’백을 어떤 방식으로 드는지 찍기 위해 카메라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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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범한 카디건 룩에 가터벨트를 매치한 픽시 로트. 2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퍼 재킷을 더한 케이트 모스. 3 클로에를 입은 끌로에 셰비니. 4 버버리 프로섬 룩의 알렉사 청. 5 레오퍼드 백을 든 케이트 모스.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셀러브리티들의 사진을 보면 언뜻 멋져 보이지만 가만가만 따져 보면 한편으론 놀랍다. 딱히 특별할 것이 없어서. 레이디 가가, 리하나, 빅토리아 베컴 등 다소 기이하고 극단적인 룩에 비하면 케이트 모스나 시에나 밀러, 픽시 로트 등의 룩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아이템을 하나하나 따져 보면 더더욱 그렇다. 목 늘어난 티셔츠와 스키니 진, 플랫 슈즈, 바이커 재킷 혹은 테일러드 재킷 등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는 평범한 아이템들로 구성된 룩이니까. 민낯은 선글라스로 겨우 가려져 있고 푸석한 머리는 헝크러진 채로, 매니큐어는 반쯤 지워진 채로 방치된 모습이다. 어깨에 툭 걸친 가방은 뚜껑이 열린 채 위태롭게 덜룩거린다. 하지만 그들이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심호흡 한 번 하고 모든 요소를 최소화한 느낌을 준다고 할까. 케이트 모스가 스타일링 비법을 묻는 질문에 대해 “집을 나서기 전 무조건 하나의 아이템을 덜어내세요.”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한 일화다. 디자이너 앨버 엘바즈는 케이트 모스 룩을 가리켜 ‘미완성의 묘미’라고 말했다. 적절한 표현이다. 그녀들은 룩을 보면 패션 업계에 종사하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거나 아침 일찍 일어나 고심 끝에 고른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무리했구나’라는 인상을 심어주지 않는다. 이쯤 되면 슬그머니 자신감이 고개를 든다. 어라,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명 스트리트 룩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 시작된다. 만만해 보인다는 것. 나도 시도해볼 만한 편안한 룩이라는 것. 근데 그게 사실일까? 정말 그런 스타일은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것일까?
정말 신경 안 쓰고 나온 거 맞아? 2007년 겨울, 커다란 봄버 점퍼에 쑥색 레깅스를 신고 거기에 어그 부츠까지 더한 후 백 팩을 손에 들고 거리에 나타난 리브 타일러의 사진을 보았을 때, 그날의 충격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저렇게 청순한 얼굴로 어떻게 저런 룩을!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몇 가지를 발견한다. 편안한 룩이 무작정 편안해서만은 안된다는 것. 내추럴 룩에 도전해 보겠다며 티셔츠와 청바지, 스니커즈의 3단 콤보를 장착했다가는 음식쓰레기 버리러 나온 아주머니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것. “집에 있다가 그대로 나왔어요.” 혹은 “패션 따위 아무렴 어때?”라고 말하는 듯한 그녀들의 룩은 사실 철저히 계산된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핵심은 믹스매치다. 예상치 못한 조합, 혹은 반전이 평범한 아이템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법. 케이트 모스는 테일러드 재킷에 새로운 하이라이트를 준 것으로 기억된다. 잘 재단된 날렵한 테일러드 재킷 안에 셔츠가 아닌 목이 늘어난 티셔츠나 낡은 탱크 톱을 더하는 것이 그녀 이전에는 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빈티지 숍에서 건진 게 분명해 보이는 청키한 퍼 재킷에 블랙 스키니 진을 입고 이브 생 로랑 클러치백을 구겨 쥔다거나, 시골에 계신 할머니의 몸빼 바지에서 본 듯한 플라워 프린트의 미니드레스에 어깨가 강조된 슬림한 블랙 재킷을 입는 룩은 당시엔 낯선 것이었다. 최근 스타일로 주목받는 소녀 알렉사 청의 스타일은 어떤가. 그녀의 룩은 매우 익숙하고 친근하다. 스트라이프 티셔츠와 니트 카디건, 레이스 블라우스, 데님 쇼츠, 빈티지 액세서리 등이 그녀의 룩에 등장하는 단골 아이템. 하지만 그녀의 강약 조절 기술은 놀랍다. 코르셋 미니드레스 위에는 베이지 컬러 카디건을 입고, 베이직 캐멀 코트 아래에는 화려한 무늬의 스타킹을 신는 등 다소 ‘센’ 아이템과 ‘밋밋한’ 아이템을 적절히 섞는 것이 비법. 그녀의 또 하나의 기술은 적절히 포인트를 주는 것이다. 로에베 스타일의 소녀적인 미니드레스에 플랫 슈즈를 신고는 터프한 느낌의 돌체 앤 가바나의 스터드 장식 백을 든다거나, 데님 팬츠와 그레이 니트 톱에 청키한 커스튬 주얼리를 매치하는 식이다. 그래서 그녀의 룩을 보다 보면 “저기서 저걸 뺐다면 정말 볼품없는 룩인데 말이야!”라며 무릎을 치게 된다.
얼마 전에 열린 한 드라마의 제작 발표회 현장. 에디터의 눈에 들어온 것은 두 명의 주인공 여배우의 전혀 다른 두 룩이었다. 먼저 이하늬. 그녀는 아슬아슬한 길이의 구찌 미니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뒤태를 뽐냈다. 또 다른 한 명은 공효진. 그녀는 끌로에 셰비니가 디자인한 오프닝 세러머니의 레오퍼드 카디건에 가죽 소재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그리고 슈즈로는 커다란 버클이 장식된 레이스업 부티를 선택했다. 어딘가 육덕지고 불편해 보이는 이하늬보다는 공효진 쪽이 훨씬 자연스럽고 쿨해 보였다. 방송 후 인터넷에는 그녀의 카디건의 브랜드를 묻는 질문이 쇄도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서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레오퍼드 니트 카디건에 평범한 데님 팬츠를 매치했다면? 혹은 밋밋한 플랫 슈즈를 매치했다면? 결국 한끗 차이로 그냥 편안한 룩이 되기도 하고, 편안하면서도 시크해 보이는 룩이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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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rancoise hardy 프랑수아즈 아르디는 언제나 아무거나 대충 걸쳐 입었다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다. 하지만 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 얼마나 신경 써 입고 나왔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2 Marianne Faithful 직선적이고 간결한 룩이 지배적이었던 60년대에 빈티지한 느낌의 룩으로 주목받았던 마리안느 페이스풀. 옆에 있는 남자는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다. 3 Kate Moss 어떤 이는 추앙하고 어떤 이는 과대포장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17년전의 이 사진은 그녀의 타고난 감각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4 Ali MacGraw 영화 <러브 스토리>의 여주인공 알리 맥그로. 그녀는 편안하면서도 시크한 프레피 룩을 선보였다.
힘 빼기 스타일링의 달인은 이전에도 있었다
60년대의 마리안느 페이스풀, 70년대의 알리 맥그로 1970년 1월을 담은 사진 한 컷.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와 그의 여자친구 마리안느 페이스풀(Marianne Faithfull)이 거리에 서 있다. 사진을 본 순간. 현대의 한 커플을 떠올렸다. 스타일리스트 카미유 비도 워딩턴(Camille bidault Waddington)과 뮤지션 자비스 코커(Jarvis Cocker)부부. 영국인 특유의 신사(게다가 위트까지 가미된) 룩을 입은 남편과 파리지앵 특유의 시크한 감각을 뽐내는 아내. 40년 전의 사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세련된 룩이었다. 고혹적인 이미지와 섹시한 느낌이 공존했던 배우이자 가수인 마리안느 페이스풀. 그녀는 여러 남자들과의 염문으로 유명하지만 그녀의 시대를 앞선 패션 감각 역시 지금도 회자된다. 60년대 당시 화려하고 독특한 룩을 선보이던 패션 아이콘 에디 세즈윅과는 또 다른 느낌의 그녀. 빈티지한 느낌의 미니드레스와 박시한 재킷, 빅 프레임 선글라스 등의 아이템을 이용한 단출한 스타일링이 그녀의 특기였다. 거기에 쿨한 애티튜드까지! 시에나 밀러가 그녀의 스타일과 애티튜드를 그대로 모방한다는 항간의 주장은 꽤 설득력 있어 보인다. 60년대에 마리안느 페이스풀이 있었다면, 70년대에는 알리 맥그로(Ali MacGraw)가 있었다. <러브 스토리>의 여주인공으로 기억되는 그녀는 영화에서 블루 셔츠, 터틀넥 스웨터, 스포츠 재킷, 피코트, 크로셰 모자 처럼 누구나 갖고 있는 평범한 아이템만으로도 단정하고 세련된 룩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영화 속 그녀의 룩에서 영감을 받아 샤넬의 2007~2008 F/W 컬렉션을 발표하기도 했다. <러브 스토리>의 저자 에릭 시걸(Eric Segal)은 영화 속 그녀의 프레피 룩을 가리켜 “따로 노력하지 않으면서 완벽하게 옷을 입는 혹은 노력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것이야말로 에포트리스 드레싱(Effortless Dressing)이 아닌가!
70년대의 프랑수아즈 아르디, 90년대의 케이트 모스 프렌치 시크의 창시자로 불리는 프랑수아즈 하디(Francoise Hardy)의 40년 전 사진은 정말이지 지금 보아도 시크함 그 자체다(알렉사 청은 자신의 스타일 아이콘으로 그녀를 꼽았다). 추상화와 몽상, 점성술(그녀는 점성술가이기도 하다)을 즐겼다는 그녀는 무심함의 ‘끝’을 달리는 룩을 보여준다. 그녀의 깡마른 몸에는 언제나 넉넉한 실루엣의 스웨터나 터틀넥 니트 톱, 트렌치코트 등이 걸쳐져 있었다. 클래식한 아이템들, 아무거나 대충 골라 대충 걸쳤다는 듯한 애티튜드 그리고 뚱한 표정. 그와 같은 그녀의 스타일은 당시 젊은이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내추럴 시크 룩의 대명사가 케이트 모스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1993년(그러니까 무려 17년 전)에 블루밍데일 백화점에서 찍힌 케이트 모스의 사진을 보면 감각은 그저 타고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당시 19세였던 그녀는 그레이 컬러의 실크 소재 팬츠 수트를 입고 있는데, 재킷 위에 벨벳 소재의 오버 사이즈 재킷(코트가 아니다)을 덧입고 밑에는 블랙 컬러 스니커즈를 신고 웃고 있다. 하얀 얼굴과 헝크러진 머리카락. 그리고 청량한 미소. 이후 그녀의 행보에 대해서는 이미 너무 많이 언급했으니 사진에서 확인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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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and of Outsiders 아노락 점퍼와 톱. 큰오빠 트렁크 같은 쇼트 팬츠의 조합을 선보인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스. 이건 뭐, 해변에 함께 놀러간 친구의 룩을 보는 듯하다. 물론 이런 무심함이 이 컬렉션의 가장 큰 매력이기는 하지만. 2 Chloe 매니시한 재킷과 화이트 셔츠, 트라우저의 평범한 조합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소재와 컬러의 배합에 있다. 리넨과 코튼, 가죽으로 소재를 달리하고 컬러는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게 자제했다. 3 Isabel Marant 자신의 아이코닉 아이템에 에스닉한 무드를 살짝 가미한 이자벨 마랑. 튀는 아이템 없이 좋은 조화를 이루는 룩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기대했던 이들에겐 다소 실망을 안겨준 것도 사실. 4 Erin Wasson 에린 왓슨의 쇼를 보면 옷보다는 스타일링이 먼저 보인다. 스타일리스트라는 지난 경력을 증명하는 듯 말이다. 결정적인 아이템을 보여줄 날, 알렉산더 왕이라는 거대한 그림자에서 벗어날 날이 과연 그녀에게 올까?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가 되다 디자이너가 옷을 만들어 선보이면 그것이 대중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던 때가 있었다.1930년대에는 패션 신문에 실린 패션 일러스트레이션과 도안을 보고 사람들이 집에서 옷을 만들어 입었다.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 경제가 회복되던 때는 또 어땠나. 크리스챤 디올이 뉴 룩을 발표했을 때 패션 업계에 있는 이들은 허리를 조이고 스커트의 폭을 넓힌 이 룩을 재빨리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룩은 단 1년만에 대중 시장에 넓게 퍼졌다. 뉴 룩은 텍스타일 산업을 촉진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액세서리 제조업계를 활성화했고, 디올은 그 업적을 인정받아 1947년, 니먼 마커스 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당시의 패션 디자이너들은 산업을 움직이는 파워를 가졌을 뿐 아니라 대중에게는 패션을 가르치는 ‘선생’이나 다름없었다. 발렌시아가는 우아한 테일러링과 과감한 컬러 매치를 가르쳤고, 발맹은 관능적인 로맨티시즘을 가르쳤다. 샤넬은 코르셋을 벗어도 된다고 가르쳤고, 니나리치는 다른 것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직선의 우아함을 가르쳤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몇몇 창의적인 디자인을 발표하는 디자이너들의 작품은 런웨이에서 멈춰 주저앉는다. 매체들은 열광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우스의 시그너처 백을 사는 것 이상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쇼를(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보는 것 외에도 패션을 배울 수 있는 곳은 많으니까. 말하자면 디자이너들은 1차적인 지도자로서의 힘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런웨이 룩을 소화한 2차적 지도자들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으니까. ‘보통’ 사람들의 룩을 보여 주는 스트리트 패션 사이트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그들은 패션 매거진만큼의 파워를 갖게 됐다. 버버리는 트렌치코트를 입은 사람들의 스냅 사진을 올리는 아트 오브 더 트렌치(Art of the Trench)라는 사이트를 열었다. 지난해 론칭한 남성복 브랜드 커스터멜로우는 브랜드 홈페이지에 접속했을 때 스냅 사진들이 가장 먼저 보이게 했다. ‘Like it’이라는 제목의 이 카테고리는 서울의 거리 이곳저곳에서 촬영한 요즘 남자들의 룩을 보여주는 페이지다. 그게 뭐 별일이냐고?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의 ‘옷’이 아닌 자신들의 ‘옷을 소화한 이들’을 보여주는데 별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젠 한 장의 사진에 담긴 스타들 혹은 일반인들의 평소 스타일이 일종의 스타일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대중이 열광하는, 곧 잘 팔리는 컬렉션을 선보이지만 평단에게는 극단적인 평을 받는 몇몇 디자이너들이 있다. 그들은 새로운 옷을 발표하기보다는 새로운 옷입기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더 이상 창의적인 작품을 발표하지 않는다. 그들의 공통점은 스타일링에 집중한다는 것. 따라서 런웨이의 룩을 찢어 하나씩 놓고 보면 볼품이 없는 경우가 많다. 룩 전체를 보면 아름답지만 아이템 하나하나는 지극히 평범하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해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스타일리스트라는 명함이 더 적합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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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리 식으로 힘 빼기 파리에 대해 이야기하면 두 손을 마주잡고 눈을 하트 모양으로 뜨는 아가씨들을 주변에서 수십 명은 찾을 수 있다. 다소 과장되고 포장된 것 같은 파리의 이미지. 하지만 그곳 거리를 거니는 여자들의 룩을 보면 그들만의 독특한 감각을 가졌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리지앵들은 힘 빼기의 고수들이다. 아이템들을 모두 모은 뒤 기름기를 빼고, 빼고, 또 뺀 뒤에 남은 건조한 잔여물만 남겨놓은 느낌. 프린트가 없는 아이템을 주로 선택하고 룩의 한 곳에만 포인트를 주는 것이 가장 큰 비법이다. 컬러는? 당연히 모노 톤이다. 네 살짜리 꼬마조차 회색 옷을 입는 곳, 파리니까!
2 런던 식 트위스트 스트리트 패션 사진을 쭉 보다가 가장 눈에 띄는 룩이 있다면, 그것은 런던에서 찍힌 사진일 확률이 높다. 그곳의 젊은이들은 패션을 ‘즐기는’ 종족이니까 말이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체크무늬나 플라워 패턴을 마구 뒤섞은 룩. 톤 온 톤, 톤 인 톤 따위의 공식은 바다 건너로 던져버린 듯한 자유로운 컬러 매치. “이렇게 하면 좀 어때서?”라고 말하는 듯한 그들의 자유로운 룩은 80년대에 시작된 펑크 문화에서 기인된 것. 아무리 클래식한 아이템이라도 톡톡 튀는 위트를 더하는 자유분방함이 가장 큰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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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뉴욕 식 캐주얼 공식 셔츠와 티셔츠, 피케 셔츠와 데님 팬츠로 대표되는 뉴욕 식 캐주얼 룩을 시크하게 소화하는 방법? 셀러브리티들의 룩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다. 실루엣이 예쁜 아이템들을 골라 심플하게 매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 하나, 몸을 가장 편안하게 하는 핏을 잘 골라 입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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