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3월 존 하울딩(John Houlding)이 에버튼 클럽(Everton club, 지금의 에버튼 FC)에서 독립해 리버풀축구클럽협회(Liverpool Association Football Club)로 창단했다.
에버튼 클럽은 1878년 세인트도밍고스축구클럽(Saint Domingo's Football Club)을 모체로 창단했는데, 재정에 관한 이견으로 존 하울딩이 독립하게 됐다. 오랜 역사를 지닌 최고의 명문클럽으로, 정식명칭은 리버풀 축구클럽(Liverpool Football Club), 클럽 애칭은 레즈(Reds)이다. 지금까지 모두 18회의 리그 우승을 차지한 최다우승팀이며 FA컵서 6회, UEFA컵에서 3회, 챔피언스리그에서 5회 우승했다.
04-05 시즌을 앞두고는 간판 공격수 마이클 오웬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시키기도 했다.
앤필드 로드(Anfield Road) 준공: 1988년 수용인원: 4만5,362 명 최다관중: 6만1,905명(1952/02/02: 대 울버햄프전) 위치: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州) 리버풀(Anfield Road, Liverpool, L4 0TH)
리버풀.. 전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죠. 캡틴 주장을 축으로 유럽정상급 키퍼 두덱, 젊지만 유능한 키퍼 레이나.. 윙부터 윙백, 심지어는 윙포워드 역할 까지 왼쪽이라면 모두 소화하는 리세, 유능한 윙백 피넌, 트라오레, 호세미. 유럽 최고의 센터백중 하나인 히피아와 캐러거가 수비진을 이끕니다. 캐러거는 왼쪽윙백으로도 출전가능하고요. 히피아는 리버풀의 전 주장입니다. 노련하죠.
캡틴 제라드와 스페인산 중앙미드필더 사비, 비에이라의 후계자라 불리우는 시소코, 독일출신의 힘있는 중앙미드필더 하만이 이끄는 중원은 견고합니다. 윙은 호주산 판타지스타라고 할수있는 키웰과 스페인 출신 에이스 가르시아가이끕니다. 거기에 네덜란드의 유틸리티 플레이어 젠덴까지 가세했죠.
포워드 진을 살펴보죠. 일단 스페인의 타겟포워드 모리엔티스를 축으로, 프랑스의 스피디한 공격수 시세, 2미터가 넘는 장신인 크라우치, 유망주인 멜러, 퐁올르 가 있습니다.
키퍼부터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 까지 모두 세계정상급 선수들로 구성되있고요. 팀웍역시 뛰어납니다.. 베니테즈 감독이 스페인 출신이라 그런지 스페인커넥션이라 불리우는 스페인 선수들이 스쿼드를 많이 채우고있습니다.
영문 이름
Tottenham Hotspur
창단연도
1882년
연고지
잉글랜드 런던 북부
감독
마르틴 욜(Martin Jol)
홈구장
화이트 하트 레인(White Hart Lane)
주요성적
리그 우승 : 2회(1951,1961년)
FA컵 우승 : -
챔피언스리그 우승 : 8회
UEFA컵 우승 : 2회
1901~91년까지 FA컵에서만 8차례 우승컵을 차지했지만 리그에서는 1951, 1961년 단 두차례밖에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1998~99시즌 컵위너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잉글랜드 축구명문으로서 자리를 확고히 했다.
토튼햄은 올시즌 앞두고 큰 폭의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04~05 시즌을 앞두고 전 프랑스대표팀 감독이었던 자크 상티니 감독을 데려와 분위기 쇄신을 꾀했다. 골키퍼에는 그동안 토튼햄 대표수문장으로 군림했던 노장 케이시 켈러 자리에 잉글랜드대표 폴 로빈슨(전 리즈)이 입단해 자리를 메웠다. 기존멤버 레들리 킹과 음부렐로 마비젤라에 베테랑 누레딘 네이벳(전 데포르티보), 에릭 에드만(전 헤렌벤), 티모시 아투바 (전 바젤), 레토 지글러 (전 그라스호퍼), 호드리고 디펜디(전 크루제이로)를 데려와 지난 시즌 불안했던 수비라인에 대폭 변화를 주었다. 미드필더에는 페드로 멘데스(전 포르투), 션 데이비스(풀햄), 마이클 캐릭(전 웨스트햄) 등 젊은 미드필드진을 보강해 한층 활기있는 공격력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공격진에는 저메인 데포에, 로비 킨 등 기존의 파괴력있는 공격진에 신예 에드손 실바(전 PSV)를 영입해 토튼햄의 미래를 기대케하고 있다.
▶'아스날의 맞수' 핫스퍼
1882년 창단한 토튼햄 핫스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잉글랜드의 명문 클럽이다. 1403년 시루버리 전투에서 전사한 핸리 퍼시를 기리기 위해 1880년 출범한 핫스퍼크리켓팀이 전신이며 핸리 퍼시의 별명인 '해리 핫스퍼'에서 클럽 명칭을 따왔다. 1882년에는 크리켓팀과는 별도로 '핫스퍼축구클럽'이 만들어졌고, 1884년에 같은 이름을 사용했던 '런던 핫스퍼'와 합병하면서 토튼햄핫스퍼축구클럽(Tottenham Hotspur Football Club)이 탄생하였다.
토튼햄은 런던 북부를 함께 쓰는 아스날과의 '더비 매치(Derby match)'로 유명하다. 양 팀은 지난 1977년 북아일랜드 축구영웅 골키퍼 팻 제닝스가 토튼햄에서 아스날로 이적하면서 물의를 빚은 바 있으며 지난 2001년에 잉글랜드 대표팀 출신의 수비수 솔 캠벨이 토튼햄과의 계약 연장을 거절하고 아스날로 적을 옮겨 한바탕 소동이 일었었다. 특히 당시 토튼햄의 주장이었던 캠벨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던 바르셀로나, 인터 밀란, 리버풀, 바이에른 뮌헨 등의 입단 제의를 마다하고 '정적' 아스날로 이적하면서 두 클럽과 팬들 사이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첨예한 라이벌 의식 때문인지 양팀은 통산 전적에서 비슷한 승패를 유지하고 있지만, 프리미어리그 성적은 차이가 있다. 아스날이 맨체스터와 함께 프리미어리그를 주름잡는 동안 토튼햄은 중위권과 디비전1(2부리그)을 오가 대조를 이뤘다.
화이트 하트 레인(White Hart Lane) 준공: 1899년 개장 첫경기: 토튼햄 4 - 1 노츠 카운티 수용인원: 3만6,214 명 최다관중: 7만5,038 명(1938/03/05 대 선더랜드전) 위치: 잉글랜드 런던(748 High Road, Tottenham, London N17 0AP)
이영표가 이적한 후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된 토튼햄.. 현재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상위권이지요.
키퍼는 잉글랜드 국가대표 주전인 로빈슨이 있죠. 매우 안정적인 키퍼중하나입니다.
백업엔 체코 국대 출신 체르니가있고요.
수비진은 잉글랜드 국대 킹이 이끕니다. 또 하나의 흑인 가드너와 함께 프리미어쉽 팀들중에서도 정상급 중앙수비라인을 갖추었다는 평가입니다.
센터백 백업에는 '모로코의 홍명보' 불리우는 노장 나이벳선수가 있습니다.
윙백에는 새로 영입된 선수들이 붙박이로 주전자리를 매?f죠.
왼쪽엔 우리 한국의 이영표. 오른쪽엔 캐나다의 스탈테리가 책임지고있습니다.
미들라인은 새로이적한 지나스와 다비즈, 창의적인 중앙미드필더 케릭이 지킵니다.
미들역시 프리미어쉽중 정상급이고요. 멘데스, 레논, 러틀리지, 리드 등 준수한 수준의 선수들이 많이 포진해서 백업 역시 강합니다.
포워드 진은 베컴 여동생의 남자친구이며, 지난시즌 득점왕 데포를 축으로, 현재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조커 로비킨, '이집트의 즐라탄' 미도가 있습니다. 카누데 선수가 이적하면서 미도가 주전자리를 꿰찼습니다.
팀웍이 상당한 팀이고요. 최근엔 박지성 선수가 속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비기기도 했습니다.
영문 이름
Barcelona
창단연도
1899년
연고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주(州) 바르셀로나
감독
프랑크 라이카르트
홈구장
누 캄프(Nou Camp)
주요성적
리그 우승 : 16회
FA컵 우승 : 24회(최다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 1회(1992)
UEFA컵 우승 : 4회
1899년에 한스 갬퍼에 의해 창단된 바르셀로나는 역사적으로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와 대립해온 카탈루냐 지방을 대표한다. '카랄루냐의 국가대표팀'이라 불릴 정도로 지역민들이 바르셀로나팀에 갖는 애정은 남다르다. 특히 국가의 후광을 업은 레알 마드리드나 기업과 투자자들의 후원을 받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는 달리 지역팬들의 열광적인 성원으로 '명가'의 반열에 올랐다는 점에서 바르셀로나는 말그대로 시민구단의 표상으로 볼 수 있다.
02~03시즌 추락을 거듭하며 카탈루냐 팬들의 원성을 샀던 바르셀로나. '재치만점'의 호나우디뉴를 영입했지만, 초반 그들의 성적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그러나 윈터브레이크 기간에 다비즈가 영입되고 포지션에 대동소이한 변화가 생기면서 바르셀로나는 저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진배치된 사비 에르난데스, 우측 측면에 포진해 저돌적인 돌파능력을 선보인 루이스 가르시아가 호나우디뉴와 함께 팀의 상승세를 이끈 인물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바르셀로나와 레알 간 클래식 더비의 전통이 지난 시즌을 기해 모두 깨졌다는 것. 전반기 레알을 홈으로 불러들였던 바르셀로나는 누캄프에서 21년만에 패하며 빈축을 샀지만 후반기 마드리드 원정에서는 97년 이후 처음으로 승리, 화끈하게 설욕했다. 시즌이 종료된 뒤 스페인 언론들은 바르셀로나의 03~04시즌 최대수확으로 전술의 핵심적 기반을 다지는 데 성공했다고 입을 모았다. 바로 호나우디뉴-사비 에르난데스-푸욜로 연결되는 공격-미드필더-수비 3인방의 구성이 그것이다. 04~05시즌 바르셀로나의 성공은 이들 외 주변전력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 2004년 전력보강
03~04시즌 후반기 대도약으로 리그 준우승의 쾌거를 이룬 바르셀로나는, 힘들어보였던 챔피언스리그 직행티켓을 따내면서 화려한 대미를 장식했다. 수훈갑으로 '삼바특급' 호나우디뉴와 '싸움닭' 다비즈가 손꼽히는데, 라포르타 구단주를 비롯한 바르셀로나 수뇌부들이 이들에 대한 입장은 사뭇 달랐다. 입단 1년차인 호나우디뉴는 귀한 몸이 됐지만, 시즌 도중 임대했던 다비즈는 과감히 포기했던 것. 세대교체에 대한 열망, 일부 네덜란드 선수들의 고액연봉에 대한 부담을 털어내고자 했던 라포르타 구단주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2004년 여름 바르셀로나의 프로젝트에서 눈에 띄는 점은 바로 '탈 네덜란드' 현상이다. 수년 간 네덜란드 감독과 선수들로 스쿼드를 채워 나갔던 바르셀로나가 클루이베르트, 라이지거, 필립 코쿠, 다비즈 등의 오렌지 전사들을 대거 내보낸 것. 이밖에 바르셀로나는 유럽무대에서 검증을 마친 일부 베테랑 선수들을 영입하는데도 성공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맞상대했던 모나코와 포르투의 '에이스' 지울리와 데코, 또 셀틱 생활을 마감한 라르손이 그 주인공들. 나이가 적지 않은 라르손의 경우, 유로2004를 통해 기량이 여전함을 입증한 바 있어 카탈루냐의 특급 스트라이커로 부상할 지 기대를 모은다.
▲ 바르셀로나 '90년대를 꿈꾼다!'
1928~29시즌 우승을 시작으로 1980년대까지 10차례 자국리그 정상에 올랐지만 스페인의 맹주자리는 역시 3번이나 자국리그 5연패를 달성했던 '사자군단' 레알 마드리드의 몫이었다. 바르셀로나가 본격적으로 발돋움한 것은 90년대 초반 '토탈사커'의 주역 요한 크루이프가 사령탑에 오르면서 부터다. 당시 스토이치코프, 로날드 코에만, 루이스 엔리케, 과르디올라 등을 앞세운 바르셀로나는 90년부터 94년까지 4년 연속 자국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91~92시즌에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안았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도 루이스 반 할 감독의 지휘 하에 호나우두, 히바우두, 피구, 클루이베르트 등이 거쳐가며 97~98, 98~99시즌 2연패를 달성하기도 했다. '블라우그라나스(Blaugranas)라 불리는 푸른 색과 붉은 색이 혼합돼있는 유니폼이 상징인 바르셀로나는 총 16차례의 리그 우승, 24번의 스페인컵 우승, 그리고 10번의 유럽컵대회 우승(챔피언스리그 1번, 유럽슈퍼컵 1번, UEFA컵 4번, 컵위너스컵 4번)을 차지했다.
▶ 홈구장 정보 누 캄프(Nou Camp) 준공: 1956/09/24(1994 보수) 개장 첫경기: 바르셀로나 4 - 2 와르사 셀렉션 수용인원: 9만8,650 명 위치: 스페인 바르셀로나주 바르셀로나(Avinguda Aristides Maillol, s/n, 08028, Barcelona )
스페인 프리메라 리그의 영원한 우승후보 바르셀로나..
키퍼는 발데스 선수...
수비라인은 일단 캡틴 푸욜이 이끌고요.
브라질 산 좌우 윙백 실빙요, 벨레티, 네덜란드의 만능 윙플레이어, 심지어는 수비형미들도 가능하죠. 반브롱코스트.. 브라질의 에드밀손, 멕시코의 전사라 불리우는 마르케즈, 백업 올레게르가 센터백을 구성합니다.
수비형미드필더는 PSV를 챔스4강으로 이끈 노련한 선수 반봄멜이 있고, 백업엔 브라질 유스 모따가 있습니다. 앵커역할을 하는 싸비, 데코 두 선수는 정말 최강 콤비라 할수도 있죠. 호나우딩요, 지울리, 라르손, 에투.. 모두 현역 최고의 공격수들이라 할 수있고요.
바르셀로나 유스출신 이니에스타, 아르헨출신의 로페즈, 메시 등이 백업으로 있습니다.
메시는 최근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득점왕,팀우승,MVP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해 주목받았죠.
전 시즌 프리메라 리그 우승팀입니다. 에투가 득점왕을 차지했고요.
영문 이름
Juventus FC
창단연도
1897년
연고지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토리노
감독
파비오 카펠로
홈구장
델레 알피(Delle Alpi)
주요성적
리그 우승 : 27회
FA컵 우승 : 9회(코파 이탈리아)
챔피언스리그 우승 : 2회(1985, 1996년),
UEFA컵 우승 : 3회(1977,1990,1993년)
세리에 A의 '영원한 우승후보' 유벤투스는 화려한 전통과 경력을 자랑하는 이탈리아 최고의 명문구단이다. 리그 27회 우승(최다)을 비롯해 코파 이탈리아에서 9차례 정상에 섰고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1985, 1996년), UEFA컵 우승 3회(1977,1990,1993년), 컵 위너스컵 우승 1회(1984) 등 일일히 나열하기가 벅찰 정도. 팀명인 유벤투스(Juventus FC)는 이탈리아어로 '젊음(youth)'을 의미하며, 흑백색 줄무늬 유니폼에서 유래된 '얼룩말(zebra)'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내노라는 슈퍼스타들로 꽉 짜여진 베스트 11, 또한 이에 못지 않은 화려한 백업멤버들의 존재는 사실 유벤투스를 03~04시즌 세리에 A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예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미 2년 연속 스쿠데토를 들어 올렸으며, 02~03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정상등극 일보 직전에서 놓쳤기에 그들의 관심사안은 유럽챔피언 외에는 없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유벤투스의 03~04시즌 행보는 기대 이하였다. 야심찬 포부를 드러냈지만 시즌이 개막하고, 경기가 진행될 수록 원인모를 슬럼프에 빠졌고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했다.
몬테로-레그로탈리에의 불안한 중앙수비와 다비즈를 대체해줄 것으로 기대됐던 아피아 등의 부진이 첫번째 요인으로 지적됐다. 또한 '에이스' 델 피에로의 잦은 부상, 재계약과 관련해 소속팀과 적잖은 불협화음에 시달렸던 트레제게 등의 불안요소가 많았던 점도 부진의 원인 가운데 하나. 일각에서는 세리에 A의 정상을 확인한 일부 선수들의 '정신적인 태만'을 그 이유로 꼽기도 했다. 반면 수확도 있었다. 전형적인 마라도나 체형의 스트라이커 파브리지오 미콜리의 발굴이 그것. 과거 페루자로 임대됐다가 원 소속팀에 복귀한 미콜리는 03~04시즌 리그 26경기, 챔피언스리그 7경기에 출전하며 총 9골을 기록, 주전 공격수들의 공백을 훌륭히 메웠다. 좁은 문전에서의 기민한 움직임과 한박자 빠른 슈팅 등이 미콜리가 지닌 장점이다.
▲ 2004년 전력보강
'우승 제조기'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토리노에 안착했다. 과거 레알 마드리드, AC 밀란, AS 로마에서 우승 청부사로 명성을 떨쳤던 카펠로 감독이 유벤투스에 어떤 옷을 입힐 지, 또 하향곡선을 그렸던 유벤투스에 터닝포인트를 제공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히 로마에서 호흡을 맞췄던 에메르손과 제비나가 카펠로 감독을 따라 유벤투스로 이적함에 따라 지난 시즌 토리노 클럽의 발목을 잡았던 수비라인의 변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밖에 트레제게와 재계약에 성공했으며 옥세르 소속의 올리비에 카포를 영입, 공격력을 강화했다. 반면 바르셀로나에 임대했던 다비즈를 인터밀란에 완전이적시켰고 이탈리아 대표팀 출신의 포워드 디 바이오는 발렌시아에 내줬다.
▲ 이탈리아 대표클럽, 유벤투스
유벤투스는 1897년 토리노의 리체오 디아젤리오에서 축구를 즐기던 영국, 스위스계 이민 젊은이들에 의해 탄생했다. 1923년 피아트 자동차 설립자의 아들인 아그넬리가 구단주로 취임, 명가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고 1930년부터 35년까지 리그 5연패를 달성하면서 황금기를 구가했다. 특히 81~82 시즌 프랑스의 '축구영웅' 미셸 플라티니가 합류하면서 유벤투스는 84년 컵위너스컵 우승에 이어 유러피언 수퍼컵과 도요타컵, 85년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유럽 3대 클럽대항전을 모두 제패한 최초의 클럽으로 재탄생했다.
90년대 들어서도 유벤투스의 맹위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바조와 비알리, 라바넬리, 비에리, 델 피에로, 지단 등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들을 간판으로 내세운 유벤투스는 UEFA컵 우승 2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를 달성하는 등 건재를 과시했다. 특히 이 기간 유벤투스는 96년부터 98년까지 3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00~01시즌과 01~02시즌 이탈리아 클럽의 전반적인 침체 속에 유럽무대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전열을 재정비한 유벤투스는 01~02, 02~03시즌 스쿠데토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고 02~03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지구방위대' 레알 마드리드를 꺽고 결승에 진출, '최강'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 홈구장 정보 델레 알피(Delle Alpi) 준공: 1990년 수용인원: 7만1,012명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토리노(Str. Altessano, 13110151 Torino)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세리에의 영원한 우승후보 유벤투스..
키퍼진은 세계팀들중 가장 최고라 부르고싶습니다.
말이 필요없는 세계최고의 키퍼 부폰.. 다른팀으로 가면 그팀에서 당장 주전자리를 꿰찰수있는 실력을 가진 두 키퍼 키멘티와 압비아티가 백업을 담당합니다.
압비아티는 부폰이 큰부상으로 시즌아웃을 당해 대체자로 밀란에서 영입됫죠..
현역 정상급 수비수. 칸나바로, 튀랑, 코바치가 중앙수비를 이끌고,
잠보르타, 키엘리니, 비린델리, 페소토, 제비나가 윙백을 담당합니다. 잠보르타는 세계최고의 윙백이라 불리우며 좌우, 윙, 윙백 가리지않고 뛰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죠. 키엘리니는 82년생으로 어린선수입니다. 피오렌티나에서 뛰다 올시즌 영입?榮쨉? 제2의 잠보르타 라 불리웁니다. 잠보르타 못지않는 포지션 소화능력을 지니고있죠. 센터백, 좌우 윙백 다 뛸수있습니다. 제비나는 프랑스출신으로써 강한 힘을 바탕으로 하는 윙백입니다. 오른쪽을 책임지죠. 페소토나 비린델리는 벌써 수년째 유베의 윙백을 책임지고있고요.. 모두 좌우 다 소화하는 빠른 윙백선수들입니다. 두 선수가 백업을 담당하죠.
다비즈 이적, 콘테의 은퇴 후 취약점으로 꼽히던 중원이 제작년 에메르손의 영입과 올시즌 비에이라의 영입으로 세계최강으로 불리우게 ?營윱求?. 거기에 전시즌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준수한 활약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준 블라시 선수도 건재합니다.
정상급 수비형미들 아피아와 타키나르디가 선뜻 이적 또는 임대를 가게된계기기도 하고요.
윙의 카모라네시나 올리베이라 선수 역시 모두 뛰어납니다. 특히 카모라네시는 아르헨 출신으로 이태리에 귀화 한후 이태리 국대가 ?瑩?. 이 선수가 컨디션이 좋은 날은 데니우손 저리가라는 소리가 있을만큼 드리블링과 크로싱이 뛰어난 선수입니다.
올리베이라는 우루과이와 유벤투스의 유망주고요.
포워드 진은 이브라히모비치, 델피에로, 트레제게, 살라예타, 무투 등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미콜리또한 자리가없어서 다시 임대신세가?怜諮?.
영문 이름
inter milan FC
창단연도
1908년
연고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밀라노
감독
로베르토 만치니
홈구장
산시로(San Siro)
주요성적
리그 우승 : 13회
FA컵 우승 : 3회 (1939, 1978, 1982. 코파 이탈리아)
챔피언스리그 우승 : 2회 (1964, 1965)
UEFA컵 우승 : 3회 (1991, 1994, 1998)
유벤투스, AC 밀란과 함께 이탈리아 북부지역의 초강세를 이끈 대표적인 클럽. 1908년 3월 9일 밀란에서 독립하여 창단됐고, 산시로 구장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밀란과의 '더비매치'는 전 세계 축구팬들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할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정식 클럽명칭은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축구클럽, 보통 인터밀란으로 불린다.
지난 시즌 만만찮은 선수보강을 이루며 내심 우승을 기대했던 인터밀란. 그러나 결과는 실망적이었다. 남부럽지 않은 스쿼드를 구축했으면서도 88~89시즌 이후 무려 16년간 스쿠데토와 연을 맺지 못하고 있는 인터밀란의 징크스가 재연된 셈이다. 쿠페르 감독이 경질됐고 모라티 구단주도 일선에서 물러났다. 시즌 중 사령탑에 오른 자케로니 감독 역시 스리백과 포백, 스리톱과 투톱에 대해 혼선만 빚다가 시즌 종료 뒤 퇴임해야 했다.
그나마 시즌 막판의 스퍼트가 돋보였다. 전반기 중위권까지 처졌던 인터밀란은 최종성적 4위로 세리에 A 결승 테이프를 끊으며 챔피언스리그 진출티켓을 확보한 것. 무엇보다 미드필더의 부재, 특히 윙 플레이어의 부재를 킬리 곤살레스, 데얀 스탄코비치와 같은 선수들의 영입으로 해결, 향후 전망을 밝게 했다. 아드리아누의 복귀, 마르틴스의 성장세도 긍정적인 대목이다.
▲ 2004년 여름 전력보강
인터밀란의 2004년 선수보강은 공격-미드필드-수비 전 부문에 걸쳐 폭넓게 진행됐다. 바르셀로나와 첼시로부터 각각 다비즈와 베론을 데려왔고, 레알 마드리드와 라치오로부터는 캄비아소와 파발리를 영입해 두터운 선수층을 구축했다. '프리킥의 마술사' 마히일로비치를 데려왔고 팀을 떠날 것이 유력시 됐던 비에리 역시 잔류가 확정됐다. 무엇보다 약점으로 지목됐던 창의적인 미드필더의 부재를 더 이상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베테랑' 다비즈와 베론, 스탄코비치 등이 건재하고 유로2004에서 그리스의 우승을 견인한 카라고니스 역시 부상에서 회복, 주전도약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 인터밀란 '세계로 세계로!'
이탈리아와 영국인 중심의 독단적 운영에 반발, 지오바니 파라미티오티를 포함한 45명의 멤버들이 AC 밀란으로부터 독립해 인터밀란을 창단했다. 이에 따라 인터밀란은 국내선수뿐만이 아니라 외국선수에게도 문호를 개방해 'inter'란 이름이 붙게 되었고, 팀 창단 이후 첫 주장인 망크틀도 스위스인일 만큼 개방적이었다. 하지만 인터밀란의 '세계 지향적'인 클럽 색깔은 1930년대 파시즘 지배하의 정치 상황과 정면으로 충돌, 결국 우니오네 스포르티보 밀라네세와의 합병을 통해 암브로시아나로 명칭을 개명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인터밀란이라는 클럽명을 원했던 밀라노 팬들의 지속적인 고집으로 인터밀란이라는 이름으로 복귀할 수 있었고 현재까지 전통을 유지해오고 있다.
세리에 A에서 유벤투스, AC 밀란에 이어 3번째로 많은 13회의 우승을 차지했고, 창단 이래 단 한번도 세리에 B로 강등된 적이 없다. 또 챔피언스리그에서 2회, UEFA컵에서 3차례 우승, 명문의 입지를 굳혔다. 1909∼1910년 시즌에 처음으로 리그우승을 차지했고 제1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선수를 잃었지만 1930년대에 3차례 정상고지를 밟으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가장 최근 리그에서 우승한 것은 88~89시즌. 당시 감독이 전 '아주리군단'의 사령탑이었던 트라파토니였다. 이어 91년에는 '독일 용병' 마테우스, 브레메, 클린스만을 필두로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UEFA컵 우승을 이루기도 했다.
▶ 홈구장 정보 산시로(San Siro) 준공: 1926/09/19(1990 보수) 개장 첫경기: AC 밀란 3-6 인터밀란 수용규모: 8만5,700명 위치: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밀라노(Via Piccolomini 5, 20151 Milan ) AC 밀란과 인터 밀란에서의 선수 생활을 하며 34년 이탈리아, 39년 프랑스 월드컵 을 우승으로 이끈 이탈리아의 축구영웅 쥬세페 메차를 기리는 뜻에서 쥬세페 메차 스 타디움으로도 불리워지게 되었다.
AC밀란과 같은 홈구장인 산시로를 사용하는 인터밀란..두팀의 더비는 정말 격하죠..
이태리 최고키퍼중하나인 톨도, 최근 급성장한 세자르가 GK진을 담당합니다.
부르디소,가마라,크로도바,미하일로비치,마테라치,J자네티,사무엘,파발리,워메,코코,제마리아.. 수비진 모두가 세계정상급입니다.. 코르도바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빠른스피드로 상대 공격수를 제압하는 선수고요. 미하일로비치는 프리킥에있어서는 세계최고라 할수있는 선수입니다. 마태클이라 불리며 강력한 태클을 자랑하는 마테라치, 벽이라 불릴정도로 견고한 수비능력의 사무엘, 인터와 아르헨티나의 캡틴 J자네티 등이 주요 수비수입니다.
스탄코비치,피구,베론,캄비아소,C자네티,피사로,솔라리,레코바,카라구니스 등 각 나라에서 모두 인정받는 선수들로 스쿼드를 이룹니다.
아드리아누,마틴스 두 선수는 브라질, 나이지라아 출신으로써 어리지만 팀에서 이미 주전자리를 꿰찬 대단한 인재들입니다. 특히 아드리아누는 프리킥, 헤딩, 몸싸움, 슈팅 어느면에서도 떨어지는 능력이 없는 무결점 스트라이커라 불려도 무방합니다.
노장 크루즈 선수가 백업입니다.
인터밀란은 프리킥 잘차는 선수가 참많죠. 레코바,아드리아누,미하일로비치,피구,베론..
영문 이름
AC milan
창단연도
1899년
연고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밀라노
감독
카를로 안첼로티
홈구장
산 시로(San Siro)
주요성적
리그 우승 : 17회
FA컵 우승 : 5회 (1967, 1972, 1973, 1977, 2003)
챔피언스리그 우승 : 6회 (1963, 1969, 1989, 1990, 1994, 2003)
UEFA컵 우승 :
유벤투스, 인터밀란 등과 함께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클럽이 바로 AC 밀란이다. 유벤투스(27회)에 이어 이탈리아 클럽 중 두번째로 많은 17회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왕중왕' 격인 챔피언스리그에서는 6차례나 우승컵을 안아 이탈리아 구단 중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지역 라이벌인 인터밀란과의 '더비 경기'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명성이 높다.
시즌 초반 AS 로마, 유벤투스와 함께 선두권을 형성했던 AC 밀란. 그러나 계속된 밀란의 고공비행으로 나머지 두팀은 어렵지 않게 떨어져 나갔다. 밀란은 시즌 전적 25승7무2패(승점82)로 2위 로마(승점71)와의 간격을 무려 11점차로 벌렸으며, 그들의 행보는 최종전까지 4경기가 남았던 30라운드 시에나전(2-1승)에서 이미 우승이 확정됐을만큼 독보적이었다.
4-3-3 또는 4-3-1-2 전법의 밀란은 이미 그 위력이 입증된 말디니와 네스타의 중앙 수비, 가투소-피를로-시도르프로 이어지는 미드필더진의 수훈으로 여타 팀들을 압도했다. 24골로 득점왕에 오른 세브첸코와 교체 출전해 팀 득점 2위에 오른 토마손(리그, 컵대회 포함 15골)의 활약은 밀란이 '수비의 팀'이라는 말을 무색케 할 정도.
특히 03~04시즌 합류한 '브라질 듀오' 카푸와 카카의 활약이 발군이었다. 카푸는 전문 윙어가 부족한 밀란에서 활발한 측면 공략으로 새로운 공격루트를 개척했으며, 카카는 번뜩이는 재치와 창조적인 플레이로 루이 코스타를 벤치로 밀어내고 팀의 주전 공격형 미드필더로 우뚝 섰다.
▲ 04~05시즌 '리빌딩'도 최고
리그 우승의 쾌거를 올렸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레알 마드리드의 조기 탈락으로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혔던 밀란은, 정작 데포르티보에 믿을 수 없는 역전패를 당하며 03~04시즌의 챔피언스리그를 혼돈 속에 빠뜨리고 만 것.
'운이 없다'는 식의 변명으로 몰고 갈 수도 있었겠지만, 밀란의 수뇌부들은 즉시 전력보강 작업에 착수했다.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중앙 수비수 스탐을 영입했고, 리옹의 상승세를 이끌었던 드라소도 끌어들였다. 원톱 세브첸코와 재계약에 성공했고 최근에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기대이하의 활약을 펼쳤던 크레스포마저 영입, 막강 공격라인을 구축했다.
▲ 105년 역사의 밀란 '이쯤되야 명문!'
1899년 영국인 허버트 킬핀에 의해 밀란 크리켓 축구클럽(Milan Milan Cricket & football club)으로 탄생했고, 1905년 밀란 풋볼 클럽(Milan Football Club)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AC 밀란(Associazione Calcio Milan)의 클럽 명칭은 1938년 변경됐고, 이후 70년이 다 되도록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1908년 영국인과 이탈리아인 중심으로 돌아가던 클럽의 방침에 반발했던 일부 간부들이 존재했었는데, 이들이 새롭게 창설한 클럽이 바로 인터밀란이다.
1950년대에 세리에 A에서 4회 우승하면서 1960년대 초까지 황금기를 맞았다. 특히 이 시대에 활약했던 스타가 현재도 밀란의 올드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지아니 리베라. 59년 단 16살의 나이에 밀란 유니폼을 입게 된 리베라는 같은 시절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잉글랜드의 조지 베스트와 인기그룹 비틀즈에 맞먹을 정도로 자국 이탈리아의 우상으로 떠올랐던 인물이다. 리베라는 각각 두차례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63년, 69년)과 컵위너스 컵 우승(68년, 73년), 그리고 리그 우승컵(61~62, 67~68)을 AC 밀란에 안겨 주며 60년대 '밀란 부흥'의 일등 공신으로 밀란 팬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하지만 79~80 시즌 라치오와의 경기에서 승부조작 사실이 드러나면서 AC 밀란은 '명문 구단'의 자존심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협회로부터 이탈리아 클럽사상 처음으로 세리에 B 강등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던 것. 물론 이듬해 세리에 A로 올라서긴 했지만 또 한번의 세리에 B 강등을 경험하면서 AC 밀란은 파산 직전에 몰리기도 했다.
위기에 빠진 밀란을 구해낸 것은 이탈리아의 총리 출신이자 현 밀란의 구단주인 베를루스코니였다. 그는 1986년 구단주로 부임, 약 2,000만 파운드라는 당시로서는 막대한 자금을 AC 밀란의 발전을 위해 적극 투자한 것. 그 결과 '오렌지 3총사'로 불렸던 네덜란드 출신 마르코 반 바스텐, 루드 굴리트, 프랑크 리카르트와 이탈리아 수비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프랑코 바레시, 파올로 말디니와 같은 당대 최고의 스타 선수 영입에 성공했고, 이들은 AC 밀란의 부흥에 제몫을 톡톡히 해냈다. 이를 기반으로 밀란은 89년부터 95년까지 7년동안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무려 5번이나 진출했고, 그 중 3번의 우승컵을 안았다.
▶ 홈구장 정보 산 시로(San Siro) 준공: 1926/09/19(1990 보수) 개장 첫경기: AC 밀란 3-6 인터밀란 수용인원: 8만5,700명 위치: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밀라노(Via Piccolomini 5, 20151 Milan )
AC 밀란과 인터 밀란에서의 선수 생활을 하며 34년 이탈리아, 39년 프랑스 월드컵 을 우승으로 이끈 이탈리아의 축구영웅 쥬세페 메차를 기리는 뜻에서 쥬세페 메차 스 타디움으로도 불리워지게 되었다.
현 세계의 프로구단중 가장 선수단이 두터운 팀중하나인 AC밀란..
키퍼는 브라질 국가대표 디다.. 이태리 백업 피오리가 있습니다.
수비는 말디니,네스타,스탐,카푸,시미치,칼라제,코스타쿠르타 가 주요선수고요.
수비진을 이끄는 말디니,네스타,스탐,카푸 저 네선수는 정말 말할필요가 없는 최고의 수비선수들입니다. 다만, 노쇠했다는것이 문제점이죠. 약간 느린게 흠이지만 모두 노련미로 극복하는 선수들입니다.
미들은 카카,셰도로프,피를로,루이코스타,보겔,가투소,암브로시니,얀쿨로프스키가있습니다. 카카가 루이코스타를 후보로 밀어내고 전체적인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담당합니다.
피를로 선수가 후방에서 지원을 하고요.. 셰도로프, 가투소가 좌우에서 앵커역할을 해줍니다. 미들은 정말 막강합니다.. 백업으로만 미들을 짜도 백업과 선발을 구분하지못할 수준이니까요...
공격진은 비에리,인자기,셰브첸코,질라르디노 가있죠.
약간 전성기에서 멀어진듯한 비에리, 인자기.. 그러나 여전히 킬러본능만은 가지고 있는 선수들입니다.. 질라르디노는 득점 2위만 2년연속한 킬러죠. 이태리의 미래라 불립니다.
셰브첸코는 이미 최고의 선수로 레전드급이?瑩?.
질라르디노나 카카는 각각의 나라 신인이며, 벌써 에이스역할을 부여받은 선수들입니다.
전시즌 챔피언스리그와 세리에 모두 2위에 그치는 약간은 불운한 시즌을 보내 올시즌 모두 우승을 하겠다는 일념이 강한팀입니다.
영문 이름
AS ROMA
창단연도
1927년
연고지
이탈리아 로마
감독
루이지 델 네리
홈구장
올림피코(Olimpico)
주요성적
리그 우승 : 3회(41~42, 82~83, 00~01)
FA컵 우승 : 7회(코파 이탈리아)
챔피언스리그 우승 :
UEFA컵 우승 : 1회(1961.페어스컵 시절)
정식명칭은 AS 로마 Spa. 수용규모 8만 2,500명의 올림피코 스타디움을 '더비 라이벌' 라치오와 함께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팀의 마스코트는 '루피(Lupi)'라는 뜻의 늑대이며, 노랑-빨강색의 유니폼에서 유래된 '잘로루시(Giallorossi)'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지난 시즌 초반 세리에 A(이탈리아 1부리그)의 화두는 단연 카펠로 감독이 이끄는 AS 로마였다. 사상 초유의 재정난으로 이렇다 할 전력보강을 이루지 못했던 로마는 당초 전문가, 언론으로부터 큰 주목을 끌지 못했고, 이에 따라 우승 후보군에서도 밀려 있었던게 사실. 그러나 시즌이 개막하자 로마는 이들의 좁은 식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멈춤없는 무패가도를 달렸고, 마침내 최종 전적 21승8무5패(승점71)의 성적으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선두 AC 밀란에는 승점11이 뒤졌지만 '전통의 강호' 유벤투스와 인터밀란의 막판 추격을 모두 따돌린 것. 특히 득점 68-실점 19의 기록은 세리에 A 18팀 중 1위에 해당되는 수치이다. 가장 많은 골을 넣었고, 가장 적은 골을 허용한 셈. 포백과 스리백을 상대팀에 따라 혼용하는 카펠로 감독의 전략이 빛을 발했고, 그 중심에는 아르헨티나 '전사' 사무엘과 '로마의 왕자' 토티가 있었다. 대인방어와 개인방어에서 모두 남다름을 과시했던 사무엘은 카펠로 감독이 추구했던 수비전술의 핵심이 되는 인물. 또한 물이 오를대로 오른 토티의 공격 조율능력도 팀의 상승세에 크게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특히 토티는 한 때 득점선두를 질주하던 세브첸코를 턱밑까지 추격할 정도로 완숙미에 오른 골결정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밖에 상대 공격을 일선에서 저지하는 브라질 대표팀 출신의 MF 에메르손과 '기대주'에서 '해결사'로 거듭난 카사노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2004 아테네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있는 데 로시를 발굴했고, 라치오와의 더비매치를 통해 '스타'로 부상한 만시니는 카푸의 공백을 200% 메웠다.
▲ 2004년 여름 전력보강
04~05시즌 로마의 목표는 어쩌면 '현상유지'일 지도 모르겠다. '명장' 카펠로 감독이 로마와 작별을 고했고, 핵심선수 수명이 역시 로마를 떠났다. 특히 센터백 사무엘이 레알 마드리드로 소속을 옮겼고, 에메르손은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 사이에서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에메르손 역시 로마를 떠나는 것만은 확정적. 이밖에 수비요원 제비나 역시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게 됨에 따라 로마는 수비라인에 큰 공백을 피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로마의 새로운 사령탑에 지명된 체사레 프란델리 전 파르마 감독은 리그 우승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46세의 프란델리는 지난 시즌 파르마를 5위에 올려놓으며 자신의 주가를 드높였고, 유벤투스로 떠난 카펠로를 대신해 로마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인물. 주축선수가 팀을 떠났고, 클럽 역시 자금난으로 어려운 상황에 도달해 있는 시기에 로마의 현상유지라는 막중한 임무를 프란델리가 완수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 '남부의 명가' 로마
AS 로마는 1927년 알바(Alba), 포르티투도(Fortitudo), 로만(Roman) 세 클럽의 합병에 의해 탄생했다. 창단 2년만인 1929년 1부리그로 승격해 1942년 리그 첫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특히 지난 61년에는 페어스컵 (UEFA컵의 전신)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만끽했는데, 이는 현재까지 로마가 클럽대항전에서 획득한 유일한 대외컵 타이틀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출신의 명 수문장 파비오 쿠디치니와 아르헨티나 출신 '쌍포' 페드로 만프레도니아와 안토니오 안젤리요를 앞세운 로마는 결승에서 버밍엄 시티를 합계 4대2로 물리치고 이탈리아 클럽으로는 처음으로 유럽클럽대항전의 타이틀을 획득했었다. 당시 세리에 A의 판도가 유벤투스, 인터밀란, AC 밀란과 같은 북부 지방의 명문 클럽들에 의해 좌지우지됐던 점을 감안하면 로마의 페어스컵 우승은 그야말로 대파란이었던 셈. 이후 80년대 초까지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하던 로마는 82~83시즌 두번째로 정규 리그 우승을 이뤘고, 지난 83~84시즌 챔피언스리그와 90~91시즌 UEFA컵에서 각각 준우승에 올라 녹녹치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지난 99년에는 AC밀란 시절 4차례 우승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우승을 이뤄냈던 '우승 제조기' 카펠로 감독을 영입, 전력을 보강했다. 99~00시즌 몬텔라의 영입을 시작으로 바티스투타, 에메르손, 그리고 '슈퍼스타' 토티 등 대어를 건진 로마는 마침내 00~01시즌 역대 세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이탈리아 남부지방의 대표적인 클럽으로 자리매김했다.
▶ 홈구장 정보 올림피코(Olimpico) 준공: 1900/01/09(1957 보수) 수용인원: 8만2,500 명 위치: 이탈리아 리치오주 로마(Via Foro Italico, 00194 Roma) 더비 라이벌 라치오와 함께 사용한다.
로마의 왕자이며 아이콘이라 불리우는 토티가 캡틴입니다. 토티없는 로마는 상상할수도없죠.
또한 밀란의 질라르디노와 함께 이태리의 미래이며 로마의 어린킬러 카싸노 선수가 무럭무럭
성장하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이태리 최고의 공격수중 하나인 몬텔라가 주요 공격자원입니다.
프랑스의 다혈질 미드필더 다쿠르와 이태리의 톰마시, 데로시, 만시니 등이 이끄는 미들진도
견고하고요. 이태리 국대 파누치가 이끄는 수비진은 키부, 맥세 등이있죠. 키부, 맥세 역시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