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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 청소년교육과 서울지역 (맑은YOUNG 밝은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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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상담및치료(전공-과제물) 스크랩 드라마치료
유수향(사무국장/3) 추천 0 조회 220 10.10.22 18:15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드라마치료란 무엇인가? 

 

1. 1 사이코 드라마치료

 

1. 2 사이코드라마의 기초 이론

 

사이코드라마는 인간 사회의 축소물이다 - Jacob Levy Moreno

사이코드라마의 아버지인 Jacob Levy Moreno가 지금 세기의 첫 반년 동안에 비엔나의 젊은 정신병 의사였을 때, 그는 별났고, 사람들 때문에 열정적 이였고 매혹되었다. 그는 주로 공원에 앉아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구경했는데 상황의 구성과 역할의 연극을 통해 그들이 자발적으로 감정적 관심과 느낌들을 어떻게 행동화하는지를 주목했다. 그가 순간적으로 인지한 것은 강한 감정을 가지고 상황의 행동화(acting out situations)와 그들의 삶의 권위적인 인물에 대한 역할을 갖는 것은 아이들에게 큰 치료 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모레노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환자들이 가능하다면, 아이들처럼, 그들의 삶과 관련된 역할과 장면들을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치료 상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그들 또한 지배하고 감독하는 환경에서 그들의 사이코드라마를 견뎌낼 수 있고 다양한 역할에 연결된 감정들을 해방하는 동시에 경험들이 원래 그랬던 것처럼, 원래 그랬을 것 같고 그렇게 됐으면 하는 것을 연극을 통해 수정할 수 있다. 모레노는 삶을 우선으로 그 다음으로는 병리학을 믿었다; 그는 정신 의학에 기쁨을 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그의 자서전적 글들에서 모레노는 또한 'turn-of the century' 비엔나의 매춘 여 일을 묘사하는데, 여기서 그의 사이코드라마적인 방법들이 성장했다. 그는 그들의 집을 방문하였고, 성병 전문가인 의사인 동시에 신문의 발행자로서, "그녀들을 변화시키거나 분석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존엄을 돌려주기 위함이었다. "매춘 여 너무나 오랫동안 경멸할 만한 죄인 그리고 하찮은 사람들로 비난받았기 때문에…….그들은 이것을 불변의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는 8에서 10명의 그룹들로 모여진 매춘 여 일주일에 3번씩 만났다. 처음의 만남들은 일상의 문제들에 대해 다루었다-"체포당하거나 자극적인 옷을 입었다고 경찰에게 시달리거나 고객들로부터의 무고로 감옥에 가게 되고 성병에 걸렸지만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그러나 결과적으로 매춘 여 그들이 덜 고립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서로의 깊은 근심을 나눌 수 있었고 서로에 대해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 모레노는 나눔이라는 간단한 경험이 치유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매춘 여 일을 통해 그룹이 가지는 치유의 힘을 확신했다.

모레노는 공식적으로 사이코드라마를 1921년 4월1일, 비엔나에서 소개했다. 1920년 후반에, 그는 미국으로 이민 갔고 모레노 협회를 세웠다. 모레노는 완전한 치료는 3부분의 시스템을 요구한다고 느꼈다: (1) 사이코드라마 (2) 그룹 심리치료 (3) 소시오메트리. 이 세 가지 접근을 통합시키면 사람에게 개인적 치료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며 새로운 행동이나 지지와 정돈의 네트워크와의 연결을 성취하며 결국 새로운 방법의 변화와 성장과 배움을 통해 이 세상에 있도록 하는 것이다.

모레노는 그룹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치료 상의 행위자라고 믿었다. 그는 그룹이 치료의 잠재성이 풍부하다고 보았다. 그의 소시오메트리의 과학적 연구 방법(3장, 소시오메트리: 사이코드라마의 원리)은 사람들끼리의 미묘하고 복잡한 연결, 우리 사회를 이루는 관계들의 거대한 본체에 대해 탐구한다.

모레노는 그의 방법의 임상의 중요성을 설명하였다: "역사적으로," 그가 쓰기를,"사이코드라마는 고립된 개인의 치료로부터 그룹에 속한 개인의 치료로, 개인을 언어적 방식의 치유로부터 동적인 방식의 치유로 변하게 하는 주요점을 대표한다."

다른 것들이 이로부터 성장한 원래의 동적-oriented 기술인 사이코드라마는 매우 유연한 방식이다. 오늘날 다양한 형태의 사이코드라마, 역할놀이와 역할 훈련은 다양한 장소에서, 가령 정신 건강 협회, 법률 집행청, 학교, 사회재활센터와 단체에서 사용되어지고 있다. 실제로, 사이코드라마는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어진다. 세계 사이코드라마 학회에 따르면, 미국에만 개업의(醫)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호주와 뉴질랜드; 일본; 프랑스, 독일, 스위스 그리고 오스트리아; 그리스와 브라질 그리고 아르헨티나에 있다. 모레노의 책들은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불어, 크로아티아어, 터키어, 일본어, 러시아어, 포르투갈어로 번역되었다. 사이코드라마 잡지는 영국, 서독,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일본에서 출판되었다. 사이코드라마, 소시오메트리 그리고 집단 심리치료는 실로 치료의 방식으로 성장하였다.

 

1. 3 사이코드라마: 내부의 삶을 회복시키기

 

모레노는 개인들이 놓친 개발적인 무대들을 다시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이 안전한 치료적 환경에서 주어진 무대의 힘을 경험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사이코드라마 학을 설립하였다. 충격과 고통이 이러한 방식으로 풀어질 때, 그것은 새로운 빛으로 이해될 수 있고 그 경험이 무의식 안에 재건될 수 있다. 사이코 드라마적 행동 또한 재건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는데, 그룹 안의 대행자가 주인공에게 실제의 상황에서 그 또는 그녀가 받아보지 못한 감정적인 지원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사이코드라마는 정상을 회복시킨다. 그것은 우리가 말하지 못한 것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이런 방식을 통해서 우리의 실제 경험을 고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내면과 외면적 현실을 균형과 조화로 놓을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해준다. 사회는 우리가 속에 담아둔 말을 할 수 있도록 항상 허락하지 않지만 사이코드라마는 가능하다. 그것은 우리 내면의 삶에, 나누기엔 너무나 부끄러운 것의 고통, 꿈도 꿔보지 못했던 꿈에 대해 목소리를 준다. 모레노가 한번 말한 것처럼, "무대로 충분하다." 사이코드라마는 우리에게 무대 위와 우리 안으로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우리의 어두운 모습을 부여잡아 자연스럽다고 느끼며 안전하고 통제가 가능한 빛에 놓을 수 있게 해준다.

 

1. 4 주인공의 현실에 관하여

 

사이코드라마 매우 성공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사이코드라마 안에서 우리가 상연하는 역할들이 사실상 우리의 모든 관점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탐구하도록 하는데 에 있다. 사이코드라마의 기본 역할들은 주인공, 자기의 이야기가 상연되고 있는 사람; double, 주인공 내면의 목소리; 디렉터, 사이코드라마적인 연기(보통 치료자)를 지도하는 사람; auxiliary egos, 그룹 안에서 사이코드라마의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사람; 그리고 방청객 또는 그룹. 역할 교대의 사용은 주인공이 드라마에서 아무 역할이나 연기하도록 해주는데 이것은 자기를 밖에서 보는 동시에 타인의 위치에서 자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역할에 대한 개념은 2장, 사이코드라마의 요소, 그리고 4장에서 역할들, 사이코드라마적인 연기의 기술들에서 탐구할 것이다.)

진짜 사이코드라마와 사이코드라마적인 또는 경험상의 기술들을 치료적 모델 위에 적용시킬 때 둘의 근본적인 차이는 사이코드라마는 주인공의 인도를 따른다는 것이다. 디렉터는-그룹을 지도하는 전문가-주인공의 선택을 쉽게 해주며 어떤 도구가 사이코 드라마적으로 검사하는데 영향을 미치며 그 상연이 어떻게 시간과 공간에서 모양이 이루어지는지 해준다. 이런 점에서 디렉터는 주인공의 잉여현실 속을 거닐게 되며-이것은 우리의 정신에 개인적 역사로 가지고 다니는 것,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모든 것에 영향을 주며 어떻게 관계되는가이다. 잉여현실은 중요하며 실제이다. 주인공이 '이다'고 말한 것은 단순하게 '이다'이며 디렉터는 거기서부터 일한다.

 

① 잉여현실

우리 개개인은 지적이며 감정적이며 정신의 자기 자신이 있으며 주로 우리 자신에게 알려진 내면의 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에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데 에 어려움이 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을 찾아다닌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가장 큰 미스터리다. 이런 혼란스러운 추적에서 우리는 가끔 내면의 현실을 밖으로 투영시키며, 아마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기 위한 시도이다. 그러나 여러 번, 우리는 그 좀 더 좋은 이해력을 성취하지 못하는데 그것을 우리는 투영하는 경향이 있으며 더 이상 우리 자신에게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연결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울의 집을 만들고, 다양하게 왜곡된 모양으로 반사된 우리 자신을 본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깨닫지 못하고 투영을 하면 언제 떠나야하며 모든 것이 시작하는 감각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아도, 잉여 현실은 우리의 삶에 강렬한 영향을 주는데, 마음으로 보는 것과 반사된 것을 보기가 어렵다. 사이코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우리 마음이 작동하는 것을 좀 더 객관적인 관점과 구체적인 행동의 관찰을 통해 관측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사이코드라마적인 여행은 우리의 잉여현실 속으로의 성지순례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 안으로의 용기 있고 용감한 걸음이며-제일 깊은 두려움, 굴욕, 감춰진 부끄러움, 말하지 않았던 희망과 꿈들을 지나-궁극적으로 다시 나오는 것이다. 사이코드라마는 우리의 잉여현실이 좀 더 이해될 수 있도록 무대를 제공하여 그 위에 우리를 다정하게 놓을 수 있다. 사이코드라마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 속에 이르게 되며 우리 자신을 끌어낸다. 이것은, 그 스스로, 치료이다-우리 내부에서 소리치고 있었지만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으려 했던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이코드라마의 치료는 매우 강해서, 치료자는 항상 의뢰인을 으뜸으로 존중해야 한다. 이 방식의 위험한 점은 치료자가 의뢰인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곳까지 밀고 나아가는데 기술들을 이용하는 모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치료자로서, 잉여 현실에 들어갈 때, 우리는 주인공의 내면 심리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받는다.

주인공은 디렉터를 주인공 마음속의 미로 속으로 이끈다. 치료자는 주인공의 손을 한 손으로 잡고 있으며 다른 손으로는 손전등을 들고 있다-그 순간에 볼 수 있는 것에 빛을 발산하며 그것이 전체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치료자는 다른 사람들의 정신을 다룰 때 항상 인지해야 하는 것은 전체 그림을 다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치료자는 환자에게 실효성이 없는 기대를 주려고 할 수 있다.

모레노에 의하면, 사이코드라마는 환자들을 몇 명의 치료적 연기자들의 도움으로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그것은 모든 종류의 문제, 개인적 또는 집단적, 아이들이나 어른에게(of children or adults) 적용될 수 있다...우리의 가장 깊은 심리적 갈등들은 그것의 도움으로 가까운 해결으로 데려올 수 있다. 사이코드라마는 인간 사회의 축소물이며, 심리학적인 구조의 조직적인 연구를 위해 가능한 가장 간단한 장치이다…….마음의 새로운 차원들이 열리게 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실험적 조건에 놓여서 그것들이 연구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모레노는 치료자들은 상연 그 자체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 그는 스스로 악기를 연주하지 않으며 감독하며, 지도하며 관찰한다. 그는 환자로부터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둔다." 드라마 내의 사람들의 역할을 하는 보조자아를 선택하는 것은 주인공이며 장면의 설정이나 상연의 농도를 디렉터와 같이 정한다. 그룹에서 선택되어진 보조 자아는, 디렉터의 중립을 위한 보호수단이다.

상연 중에 치료자와 그룹이 보는 것은 주인공의 잉여 현실이며 주인공의 진실이 치료자가 다루는 진실이다. 주인공은 보조자아와 대역들을 필요하다면 고용하거나 해고하는 것이 허락되어지며 디렉터를 포함해, 사이코 드라마적 무대에서 그의 진실을 좀 더 정확하게 그리는데 아무나 수정하도록 장려한다.

 

② 자발성

자발성은 사이코드라마의 중심 요소 중의 하나이며 그 사용으로 항상 존재하는 목표이다. 우리가 어린이였을 때, 우리가 어떻게 놀아야 되는지 아무도 가르쳐줄 필요가 없었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대부분은 성인이 되는 험난한 길에 이 자아-확인(self-affirming)하는, 양육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됐다. 사이코드라마는 그것을 돌려주는데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사이코드라마는 일상의 생활과 많이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매일 다양한 역할의 행동을 한다 ― 어머니, 아버지, 애인, 노동자, 사장. 각 역할은 확실한 기대들, 확실한 자산과 부채와 같이 온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가 하는 각 역할에 대해 다른 감정들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것은 우리 자신처럼 매우 느껴지는 반면에 어떤 것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성격을 속박하고 우리를 위해 문제를 일으킨다. 어떤 것에 우리는 과장된 연기를 하며 어떤 것에 우리는 내부에 우리가 원하는 만큼 덜 존재한다. 자발성의 일부분은 역할들에서 쉽게 나오거나 들어가기 위해 우리의 능력에 달려있다.

연기와 사이코드라마 안에서 우리는 자의식의 분실과 우리 주위의 사람들과의 깊은 연관성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순식간에 상처입기 쉽고 또 강인하며, 역할과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혼동 시킬 수 있는 정체로부터 들어가거나 나간다. 연기와 사이코드라마는 우리에게 살아있다는 것의 미를 가르쳐준다. 우리가 가장 성공적이고 만족스러움을 느끼는 역할들은 우리가 가장 살아있다고 느끼는 역할이다. 이 역할들은 우리와 삶을 위해 에너지를 빈번히 보충하는 역할들이다

모레노에 의하면, 자발성은 상황이 요구하는 상황에 반응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능력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자발성을 의지만으로 달성할 수 없다. 그것이 만약 더 이상 자연스럽지 못한다면, 아이들처럼, 사이코드라마가 제공하는 것처럼 자발성의 훈련의 결과로 차차 성장해야 한다.

정신의학자 아담 블라트너(Adam Blatner)가 쓰기를, 자발성은 눈에 띄거나 드라마적일 필요가 없다; 그것은 주제넘지 않을 수 있다(it can be unassuming). 그 것은 당신의 생각, 걷기, 자연을 보거나 춤추거나 소나기 속에서 노래를 하는 방식에 있다…….자발적 행동의 본질적 본질들은 마음의 개방성, 새로운 접근, 혁신적인 행동을 기꺼이 하는 마음, 그리고 외부를 내부와 통 합하는 것이다.

사이코드라마는 자발성을 3가지 종류로 정의한다. (1) 타당성 없는 새로운 반응, 또는 병리학적 자발성; (2) 새로움과 창조성이 없는 타당한 반응, 또는 정형화된 자발성; 그리고 (3) 새로움과 창조성이 있는 타당한 반응, 또는 천재의 자발성. 자발성은 창조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이것은 창조적 과정의 촉매 또는 동반자처럼 행동하지만 그 창조성은 자신 스스로 표현하고자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은 그림을 감상하거나, 식사를 요리하거나, 강좌를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새로운 상황에 착수할 때나, 책을 읽거나 또는 글을 쓸 때의 방법일 수 있다. 이것은 모든 노력의 창조적 토대이며, 삶과 자신에게 같이 살거나 상호 작용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사이코드라마의 핵심이며 감정적 그리고 심리적 문제들을 막거나 요구하는 것을 제거 또는 해결하며, 자발성을 새로운 반응을 요구하는 상황에 참여자를 놓는 방법으로 가르치거나 훈련시킨다. 우리의 자발성과 창조성이 자랄 수 있을 때, 치유가 일어난다. 우리는 치료의 근본적 목표인 삶과 자신을 재 연결한다.

끊임없이 사이코드라마의 역할-연기자들은 연기할 때 자신들의 역할을 이행하는데 필요한 깊고 복잡한 반응들을 제공하기 위해 자신들의 창조성이 요구되어진다.

 

③ 카타르시스

고대 그리스의 비극들은 사이코드라마가 카타르시스 개념은 사이코드라마에서 사용되어지는 것처럼 고대 그리스에서 왔는데, 보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였다. 그는 “드라마적인 연기와 실제 상황의 연출을 통해서, 영혼 속의 폭력은…….정화할 수 있다” 하는 방식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여러 기본 주제를 다루었다. 미국 원주민들 또한 꿈의 상연을 통해서 카타르시스나 심리적 정화에 효력을 주기 위해 탐구하였다. 드라마적 상연들은 콤플렉스, 문제들 그리고 두려움을 정신적 정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의식의 수준에 놓일 수 있도록 사용되었다.

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능력은 이 드라마가 내 이야기이며 내 면전에 무대 위에서 내 역사의 의미가 의례 화되고 있다. 이 연기는 내 의미의 거울이다. 여기서, 카타르시스는, 드라마적 해명과 설명이다.

사이코드라마는 역할놀이가 주인공의 실제 이야기의 자발적 상연인 상황을 제공함으로써 이것을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은유적으로 카타르시스는 7가지 그림을 제공한다.

(1) 한 고대의 고문서에서는 카타르시스가 사람이 땅의 작은 가지나 돌을 치우는 것처럼 “개척하기”라고 한다.

(2) 또 다른 고문서에서 카타르시스는 곡물을 두드리는 것처럼 “키질하기”라고 한다.

(3) Diocles는 음식을 요리함으로써 깨끗이 하는 과정을 설명할 때 “청소” 의 이미지로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4) Theophrastus는 그의 에세이 “On plants"에서 나무들과의 관계에 카타르시스를 사용하였을 때 “가지치기”라는 뜻을 의미했다.

(5) Philodemus의 에세이 “연설의 자유에 관하여”와 에피쿠로스가 그의 편지들에서 둘은 설명으로 이룬 “해명”을 표현하고자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I

(6) Galen은 물론, 약의 적용으로 인한 질병의 “치유”를 나타낼 때 카타르시스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7) Chrysippus의 카타르시스는 불에 의한 우주의 “정화”였다.

실질적인 성장과 발아를 위해, 환자는 통합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해야하며, 이것은 감정의 카타르시스만이 적용된 것이 아니라 또한 카타르시스의 결과로 인한 인식과 감정적 지각의 움직임도 포함된다. 궁극적으로, 이것이 환자가 완전히 제자리를 잡아가기 위해 치료를 받으러 가야하는 곳이다.

해제 반응의 카타르시스는 대립의 반응- 예를 들면, 다른 이의 아버지를 향한 미움의 카타르시스가 분노와 좌절로부터 일어난 것이 풀어졌다. 모든 카타르시스는 결과-지향적이 아니라 진행-지향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밀고 나아가는 치료자는, 특정한 목표를 요구하는, 주인공 안에 ‘좋은’ 것을 요구하는 것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감정이 해방되었어도, 주인공 안의 종속적 관계는 강화될 것이다.

사이코드라마는 다음과 같은 종류의 양자의 카타르시스를 구체화시킨다: “분리와 설명 그리고 통합과 완성의 카타르시스”의 카타르시스. 무의식의 물질을 치유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의식의 수준으로 놓는 것이며, 개인의 잉여 현실에서 빼내어 생산과 그룹으로부터의 집단 현실로 움직여놓는 것이다. 효과적인 통합의 카타르시스는 우리를 평형의 상태로 되돌려주며 삶의 상황들에 적절하게 반응해야하는 우리의 무력을 경험하는 불균형으로부터 멀리하게끔 한다. 모레노에 의하면,

정신의 카타르시스는 3가지 방법으로 일어날 수 있다:

(1) 주인공 안에서

(2) 드라마에 참여하는 보조자아 안에서; 그리고

(3) 동일함을 통해 연기를 경험하며 참여하는 청중을 통해서. 카타르시스는 육체적 수준에서도 일어나며, 몸을 정화시키고, 뇌와 몸 안에 잡아둔 기억을 세포 해방(cellular release)시킨다. 사이코드라마는 사회적 환경 내에서의 자발성의 부족은 불안을 개인 안에서 뿐만 아니라 그룹 내에서 불러일으킨다. 이불안들은 자발성의 부족이 증가할 때마다 증가한다. 그룹 안의 개인 속의 성공적인 카타르시스는 전체 그룹의 자발성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줄 수 있으며, 동시에 개인과 그룹-동적인 불안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1. 5. 최초의 주장면 설정

먼저 장면을 설정하는 의미 혹은 이유를 확실히 이해해야한다. 그 뜻은 다음 장면을 준비한다거나 결과를 예측하고, 의도적으로 장면을 설정하거나 혹은 장면을 만들기 전에 반드시 그 이유를 묻고시작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자주 그러한 이유나 의미가 비언어적 혹은 언어적으로 생략되고 설정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인공이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특히 연재 상황과 동떨어진 장면을 연출하거나 , 현재 감정상태가 몹시 고조된 상태에서 장면화화여 오히려 자발성 감소되는 경우, 관객이 장면의 진행상황을 알 수 없을 만큼 애매모호한 동기에서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는 경우에 주인공의 자발성에 의한 자신의 사이코드라마가 되지 못하고 피상적인 행위화에 그쳐 버릴 위험이 높다.

따라서 “인간을 평가하지 말라 . 분석하려 들지 말라. 자신의 불완전한 지식으로. 언어로 인간을 주인공을 재단하고 자신의 틀 속에 가두지 말라.”디렉팅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만남이며 창조이다. 언어 이미 기존의 의미, 규칙에 물들어 있는 언어-개념-관념-이론의 사슬의 얽매인 언어적 규칙에 의해서, 그러한 현실 원칙에 젖어있는 선입관, 편견 등으로 주인공을 대해서는 안 된다. 그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놀이하게 하라. 그 스스로 느끼고 행위할 수 있게 도우라. “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전체 장면, 그 어느 곳을 보아도 주인공과 디렉터의 자발성 정도, 만남의 깊이, 창조성의 작용정도, 집단의 분위기를 알 수 있지만 인터뷰와 첫 장면은 디렉터와 주인공 사이의 텔레 관계를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이다. 디렉터의 주인공에 대한 텔레에 의해서 그의 적극성, 긍정성, 자발성, 정도가 드러날 것이며 주인공의 디렉터에 대한 텔레에 따라서 주인공 자신의 내면세계의 드러남 정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첫 장면은 또한, 주인공의 지금 이곳에서의 자발성 정도뿐만 아니라 그러한 자발성을 가로막고 있는 주된 장애물 혹은 소위 중심문제를 찾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첫 장면의 주제가 구체적인 내용-사실에 입각한 사건-인가 애매모호한 추상적인 상태인가? 아니면 이것저것이 얽혀서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복합된 사건, 감정인가 아니면 성격적 경향, 최근의 삶에 있어서 주된 정서 상태인가 혹은 환상. 상상 혹은 꿈 망상계열의 주제인가에 따라 디렉터는 주인공의 전반적인 생애 대한 태도, 경향, 자신과 세계에 대한 관점 자세 등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1. 5. 1 첫 장면의 설정은 중요하면서도 쉽지 않다.

 

1. 5. 2 너무 이른 설정 혹은 늦은 설정의 문제

 

아직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장면을 만들어 볼까요?”하고 주인공을 무대 로 내보내지만 주인공은 아작 할 말이 남아 있는 듯 전혀 장면 설정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워밍업이 안 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디렉터는 주인공의 지금 이순간의 마음 상태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행위화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어떻게 하든 우선 장면을 만들어 보고자 시도하며 주인공이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소위 저항이라거나 자발성 감소 등을 이유로 혹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더욱 장면설정을 고집하게 된다.

반면에 , 충분한 사전 지식. 심지어는 주인공의 가계 , 사회적 위치. 성격경향 까지도 충분히 알지 못하면 장면설정이 어려운 것처럼 끊임없이 질문을 함으로써 오히려 주인공의 진행, 탐구 의지를 자하시킬 수도 있다. 뭔가 완벽한 스토리, 단서에 의한 장면설정, 그래서 머릿속에 벌써 다음 장면에 대한 그림까지 넣어 놓거나 , 아니면 전체 진행-목표를 설정하거나 소위 감이 잡히지 않으면 장면에 들어가기는 어려워하는 디렉터도 있을 수 있다.

사람은 모두가 다르다. 차이가 있다. 실제 그 어떤 하나의 시각, 보편화된 논리로 인간에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저마다의 특수성이 중요하다.

 

1. 5. 3 모든 것이 수용되어야 한다는 점

 

주인공이 제시하는 문제, 사건, 느낌, 그리고 나아가서는 자세, 태도, 성격적 경향, 인생관 등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수용되어져야 한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지금 이 순간을 화상의 상태로 보고 주인공을 그 어떤 평가 분석 없이 수용하는 것 그리고 그와 함께 삶의 심연을 향해하는 것. 상식적인 혹은 합리적인 이론들로부터 무장해제하고 나와 너와 진실이 부딪쳐서 이루어지는 세계. 그것이 곧 사이코드라마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1. 5 사이코드라마 치료의 사례

 

2. 1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치료

 

2. 1. 1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TO)이란?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Theatre of Oppressed)은 브라질의 연극 이론가이자

실천가인 아우구스또 보알 (Augusto Boal)이 1970년대 초반 확립한 연극 형식이다. 보알은 아리스토텔레스이래 브레히트에 이르기까지 서구 연극사 전체를 비판하고 그것의 대안 책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을 제안한다.

기존의 연극을 객석과 무대의 “대화” 형식이 아닌 무대에서 개석으로의 일방적인

“독백”이라고 진단하고 객석과 무대, 관객과 배우간의 활발한 대화에 의한 연극을 제시한다. 이와 같이 기존의 무대와 객석간의 억압적 관계를 청산하려는 것이 보알 연극의 형식이다. 일상생활의 인간관계에서도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의 일방적인 “독백”만 있는 경우 억압이 생겨난다. 이러한 일방적인 관계를 쌍방 간에 의사소통하는 관계로 바꾸려는 것이 보알 연극의 내용이다. 보알은 자신의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 시학을 구체화하기 위해 이미지 연극, 보이지 않는 연극, 토론연극, 욕망의 무지개 등 여러 가지 유형의 연극을 시도했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에서는 관객이 더 이상 구경꾼으로 남아있지 않으며, 연극공간은 극장 밖으로 확장된다. 학교, 공원, 거리, 지하철 등 억압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다시 말해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연극을 할 수 있다.

이 연극 속에서 관객은 극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억압을 인식하고, 자신을 억압하는 현실을 바꾸어 볼 수 있게 된다. 연극은 더 이상 현실의 모사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이며, 이 안에서 우리는 현실을,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연습을 하게 된다.

보알의 연극 형식들은 지금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 우리 개인이 느끼는 많은 억압들을 인식시키고 해결해내는데 탁월한 방법론이다. 그러나 나라에 따라, 사람에 따라 드러나는 문제의 양상 및 억압의정도가 다르고 그에 따라 방법론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TO 워크숍의 과정”은 극단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공간-해(解)1)의 워크숍 내용을 토대로 한 것이다.

 

2. 1. 2 워크숍이란?

 

워크숍(workshop)이라는 말은 여러 곳에서 사용된다.“ XX회사 사원 워크숍”이라고 하기도 하고 미술 워크숍, 무용 워크숍, 음악 워크숍, 연극 워크숍 식으로 쓰이는데 ‘워크숍’이라는 데서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이야기인지 정확한 의미를 전혀 전해주지 못한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워크숍이라는 용어에 대한 적절한 우리말을 찾지 못한 탓이고 ‘워크숍’이라는 이름 하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에 대한 인식이 아직 보편화되지 못한 것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선 작업장이라는 사전적 의미로부터 ‘워크숍’을 무언가 창조적으로 만들어지는 공간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미리 준비된 것이 그대로 재현되는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요소들이 충돌하고 예기치 못한 새로운 것이 창조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분야에서 ‘워크숍’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1960년대 즈음이며 이는 이전의 ‘리허설’이라는 개념과 구별하기 위한 시도였다. 리허설이 미리 써진 대본을 공연을 위해 연습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워크숍은 정해진 대본 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워크숍을 통해 매일매일 새로운 대본이 만들어지며 공연이 되어서야 대본이 확정되는 것이다.

본 글에서 ‘워크숍’은 일단의 사람들이 일정 시간동안 광의의 연극적 상황 속에서 자신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의 충돌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고 들여다보고, 자신과 주변에 대해 깨달아 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광의의 연극적 상황’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연극이라고 할 때 연상되는 상황, 즉 주어진 대본에 의거해서 배역을 나누어 맡고 연극 공연을 준비하는 상황만이 아니라 어린아이들의 놀이에서부터 다양한 예술 표현 기법들이 활용되는 상황을 말한다. 워크숍에서 사용되는 놀이, 예술적 기법들은 다분히 비일상적이고 허구적이라는 점에서 ‘연극적’이라고 불릴 수 있다.

연극 워크숍에서는 몸으로 또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혼자서 또는 여럿이서 표현하게 된다. 미술이나 음악, 무용 워크숍에서와는 달리 구체적인 언어로 직접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연극 워크숍에서는 참여자들이 안심하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일차 목표가 된다. 이를 위해서는 잘하고 못하고의 가치 평가가 전적으로 배제되어야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만 기계화된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만들고자 하는 워크숍의 또 다른 중요한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2. 1. 3 워크숍의 과정

 

워크숍은 자신을 여는 과정이다. 스스로를 가두는 여러 장벽들을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깨부수고 자신을 창조적으로 만드는 것은 연극을 포함한 모든 예술 행위를 위한 필수적인 전단계이다. 따라서 워크숍은 나 자신을 가두는 장벽과 나와 다른 사람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들을 무너뜨리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다. 이와 동시에 참가자들은 연극을 다르게 경험하게 된다. 연극은 우리의 삶 밖에 존재하는, 신비하고 접근하기 힘든 대상이 아니다. 우리 삶의 연장으로서 그 연극 속에서 자신이 주체가 될 수 있고 나아가 연극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볼 수도 있다. 현실 속에서 매일매일 경험하는 문제들, 억압들을 연극을 통해 들여다보고 가능하다면 해결방법을 모색해 보려는 것이다.

워크숍 과정은 크게 놀이적/ 운동적 범주, 감각 활성화 범주, 표현력 강화범주, 연극적 범주 넷으로 나눌 수 있다. 전체적인 흐름은 몸을 많이 움직이는 놀이적인 것에서 시작해서 순차적으로 연극 범주까지 가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반드시 직선적으로 순차적으로 움직여 가는 것은 아니며 상황에 따라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워크숍은 미리 짜인 내용을 교육하고 교육받는 과정이 아니라 상당 부분 참가자들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 지고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는 과정이기 때문에 예상하고 미리 계획하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진행자를 포함한 참가자 각각의 고유한 에너지들이 서로 충돌하고 어우러지면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유기적인 흐름을 창조해낸다.

 

2. 2 놀이적, 운동적 범주

 

참여자들이 서로간의 신뢰감, 연대감을 느끼고 각자 자신을 드러내는데 안전한 장소로 인식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워크숍의 선결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 움직임이 많고 참여자들 간에 신체적 접촉을 유도하는 동시에 경쟁적이지 않은 다양한 놀이4)를 워크숍 초반에 시도한다. 따라서 소위 “어른”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규범이나 그에 따른 자기 검열에서 벗어나 여러 명이 한데 어울려 뛰고 뒹굴고 하는 과정은 몸을 자유롭게 하고 나아가 사고를 자유롭게 하는데 효과적이면서 동시에 필수적인 방법이다. 그러므로 워크숍에서 사용되는 놀이들은 단순히 본론을 위한 워밍업이 아니라 그 자체로 중요한 사회적, 미학적 기능을 한다고 하겠다.

 

2. 3 감각 활성화 범주

 

사람은 여러 감각 중에 시각에 가장 많이 의존한다. 이는 다른 감각을 통해 외부 세계를 느끼는 대신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려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감각의 상당 부분을 퇴화시키며 살고 있는 것이다. 워크숍에서는 퇴화된 감각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놀이를 사용한다. 눈을 감고하는 것이 많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소가장 많이 의존하는 시각을 사용하지 않게 함으로써 다른 감각들이 보다 쉽게 일깨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2. 4 표현력과 강화 범주

 

이 범주는 내적인 정서를 신체표현으로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소리 및 동작으로 나타내는 것에서부터 어떠한 형식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그것이 춤 같은 움직임이든, 조각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표현하는 것, 구체적인 이야기를 글이나 말로서 표현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크게 리드미컬한 동작과 소리를 반복적으로 하는 범주와 개인의 내적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표현하도록 유도하는 범주로 나눌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움직임과 소리를 따라하는 경우에서는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 정확하게 모방하도록 한다. 다른 사람이 소리 내고 움직이는 방식을 그대로 재생산해내는 과정에서 다양한 표현력을 얻게 되며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관습화되고 기계화된 몸을 풀어낼 수 있게 된다.’둘이서 셋까지 세기‘,’인디언 놀이‘14),’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리오 카니발’, ‘아에는 얼마나 많은 아가 있나’15)등을 들 수 있다.

다음은 개인의 내적 감정의 흐름을 좇아 표현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것도 하나의 단위 이미지, 정지 동작으로 표현하는 것과 연속적으로 표현하는 것 둘로 나눌 수 있다. 둘 씩 짝지어 한 사람은 소리를 내고 다른 한 사람은 짝의 소리에 반응해서 움직이라고16) 한다거나 특정 단어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불러주고 그 단어가 주는 연상대로 움직이라고 한다거나 하는 것이 후자의 경우인데 많은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는 범주이다. 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 단계 전에 하는 것이 하나의 정지 동작으로 표현하도록 하기이다. 주로 사용하는 테크닉은 둘씩 짝지어 한 사람씩 번갈아 가며 몸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도록 하는 ‘이미지 릴레이’이다.

참가자들의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조각상 만들기’를 하기도 한다. 4~%명 정도의 소그룹으로 나누어 돌아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이것을 다른 사람들을 재료로 삼아 조각상으로 표현하게 한다. 이 때 이야기 주인공은 자신으로서 그 조각상에 들어간다. 공통된 주제 (예를 들어 ‘가족’, ‘차별’, ‘노인’, ‘학교’ 등등)를 주고 이것에 연관된 이야기를 끌어내기도 하고 광범위하게 현재까지 상처로 남아있는 ‘억압의 경험’을 이야기하도록 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서로 안심하고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생각되면 이런 식으로 참여자들의 실제 이야기를 끌어내도록 하는 쪽으로 워크숍이 진행된다.

전체 그룹 원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쪽 보다는 소그룹에서 하는 편이 훨씬 참여자들을 안심시키는 방법이다. 소그룹에서조차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두 사람씩 짝을 지어 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이럴 때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 ‘파일럿- 코파일럿’이라는 것이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은 사람과 짝을 하도록 하고 두 사람씩 다른 쌍에 방해를 받지 않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게 한다. 두 사람 모두 눈을 감고 손을 잡고 한 사람씩 자신의 실제 이야기, 가장 가슴 아팠던 경험, 아직 상처로 남아있는 경험 가운데 하나를 장황하지 않게 이야기하도록 한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의 관계에서 언제 일어났던 일이지를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듣는 사람은 질문하지 않고 그냥 듣기만 한다. 이야기 과정이 끝나면 이야기 내용을 조각상으로 표현하게 한다. 모든 팀이 동시에 조각상을 만듦으로써 누구에게 보이는 부담에서 자유롭게 해줄 수도 있고 몇 개 이야기를 택해 전체 앞에서 만들어 볼 수도 있다.

 

2. 5 연극적 범주

 

위에서 설명한 세 범주의 놀이나 기법들이 ‘광의의 연극적 ’범주에 속하는 것이라면 이 항목은 협의의 연극에 속하는 기법들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특정 상황을 설정하고 인물을 구축하고 이종의 역할 놀이를 하는 것에서부터 연극을 만드는 것까지 포함된다.

이상의 다양한 놀이 및 연극, 기타 예술적 기법을 통해 신체적, 정서적 표현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된 참가자들은 이제 자신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연극을 만들게 된다. 여건에 따라 해볼 수 있는 연극 형식은 다양한데 말을 사용하지 않고 참가자들의 몸을 이용해 조각으로 표현하는 ‘이미지 연극’, 실제 현실에서는 해보지 못했던 행동을 연극적 상황을 빌어 끌어내 보는 심리극적인 ‘욕망의 무지개’, 현실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관객과 함께 찾아보는 ‘토론 연극’등이 있다.

 

① 이미지 연극

 

‘이미지 연극’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사진의 한 컷과 같이 정지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다. 한 방면으로 만들 수도 있고 여러 개의 순차적인 장면으로 만들 수도 있다. 보통 4~5명이 한 조가 되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머지 구성원과 자신을 재료로 조각상으로 표현한다. 말을 배제하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조각상을 만드는 사람이나 이것을 보고 해석하는 사람이나 말에서 자유로움으로써 상상력에 많이 의존하고 창의적이 되며 동시에 문제의 본질을 훨씬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읽어 낼 수 있다.

 

토론 연극

 

‘토론 연극’은 배우와 관객이 동등한 비중으로 극중 현실에 참여하는 연극 형태이다. 보통 닷새 이상 하는 워크숍에서 토론연극 모델을 만들고 관객 참여를 통해 제기된 문제에 대한 대안을 찾아볼 수 있다. 5~6 명씩 조를 나누어 각 조마다 주제를 선정하게 하든지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작업할 수 있다. ‘토론 연극의 주제로는 주로 사회적인 억압이 다루어진다.

‘이미지 연극’을 ‘ 토론 연극’을 위한 시작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신문의 5단 만화처럼 주제를 다섯 정지 장면으로 만들게 한 다음 몇 가지 과정을 거쳐 역동화 시키는 것이다. 역동화 하는 방법으로 각 장면에서 모든 인물들에게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단어를 말하게 하거나, 한 문장으로 표현하게 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 모든 인물이 동시에 해당 인물로서 독백을 하도록 하는 식이다. 모든 인물에게 큰 소리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길게는 3분, 5분 동안) 독백을 하게 함으로써 모두는 자신의 역할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더욱 진실 되게 해당 역할을 맡아할 수 있게 된다. 독백 과정 다음엔 인물간의 대화를 하는 단계이다. 언뜻 어려울 것 같지만 자신이 맡은 역할과 그 역할이 처한 상황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면 그 역할로서 그 순간을 진실 되게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어떤 전문 배우보다도 더 훌륭하게 ‘연기’를 한다. 이렇게 하면 대본을 미리 쓰고 대본에 의거해서 역할을 나누어 말고 대사를 외우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동시 극작을 하는 셈이다.

다음은 관객과 하는 단계이다. 준비된 10분 정도의 공연을 관객 아에서 보여준다. 관객은 연극 속에 끼어들어 새롭고 더 나은 해결책을 직접 몸으로 보여줄 수 있다. 관객은 자신이 끼어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스톱!”을 외치기만 하면 된다. 토론 연극은 관객-참여자들이 현실의 여러 문제들에 접근할 수 있는 여러 대안들은 탐구해보고 현실을 변경하는 것이 자신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③ 욕망의 무지개

 

‘욕망의 무지개’는 ‘토론 연극‘이 상대적으로 외면적인 억압을 드러내 보여준다고 한다면 개인의 내면적인 억압들을 가시화 시켜 보여줌으로써 주인공의 문제를 객관화시키고 이어 현실에서의 억압 해소를 도모하고자 하는 연극 형식이다. 참여자들에게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는 억압의 경험들을 이야기하도록 하고 그 중에서 다른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상황 하나를 택한다. 이야기 제공자가 주인공이 되고 다른 참가자들이 다른 배역을 맡아서 주인공이 겪었던 구체적인 사건을 짧게 재현한다.

다음은 주인공이 실제로 현실에서는 행동으로 옮기기 못했던 마음속의 욕망들을 끌어내는 단계이다. 주인공이 한 가지 욕망을 이야기 할 때마다 주인공의 욕망에 공감하는 사람이 나와 해당 욕망의 모습을 취한다. 이제 주인공의 여러 욕망들이 형상화되어 늘어서 있게 된다.

진행자는 각 상황에 적절한 테크닉을 사용하여 욕망들 각각과 주인공의 억압자를 대결시키거나 주인공과 욕망들을 하나씩 대결시키다. 주인공이 원하면 앞서 구성한 억압 장면을 결말을 바꾸어 다시 해볼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주인공 자신과 관객들은 주인공의 문제를 시각적으로,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며 실제로는 불가능했던 욕망의 분출을 통해 연극 속에서나마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이상적으로는 현실 속에서의 여러 억압에 대처할 수 있게 된다.

 

④ 보이지 않는 연극

 

이 연극 형식은 전통적이 연극공간 개념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전통적 의미에서의 극장은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이 연극이 진행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무대가 된다. 지하철, 시장, 공원, 식당 어느 곳에서든지 가능하다. 여기에서 미리 짜놓은 사건을 하나 벌이는 것이다. 이 사건을 목격하거나 거기에 개입하는 사람은 우연히 그 장소에 있게 된 사람들이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은 그것이 연극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해야 한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준비된 돌발 사태에 얽혀들도록 해야 하며 이 연극의 영향이 이것이 끝난 후, 그것이 발생했던 장소를 떠나서도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맺는말

 

워크숍의 과정은 기계화되고 관습화된 몸과 사고를 탈기계화 시키고 탈 관습화 시키는 과정이다. 다양한 놀이 및 여러 예술적 기법을 통해 참가자들은 보다 창의적이 되며 신체적, 정서적 표현력이 높아지게 된다. 더 나아가 자신 및 주변 환경에 대해 보다 높은 통찰력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행동도 유발될 수 있다.

제한된 시간의 워크숍을 통해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고 해결을 바란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욕심일 것이다. 단 보는 자와 하는 자의 구분이 없는 열린 또 즐거운 연극의 틀 속에서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경험을 통해 잠시라도 닫힌 몸과 마음을 열 수 있다면 워크숍의 목적은 상당히 달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태가 곧 문제 해결의 중요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워크숍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사람과 사람이 제대로 만날 수 있다 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으로 워크숍 참여자와 진행자, 그리고 참여자들 사이에 무조건적인 믿음과 이해가 형성될 수 있다. 이전에 알지 못했고 서로 다른 사람들 끼리 공감하고 믿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우리 인간이 지닌 가장 확실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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