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를 밟고 가는 천상(天上)의 화원(花園)
- 해발 1330m 함백산 만항재 야생화 꽃길
강릉이나 오대산에서 부산으로 오갈 때는 7번국도 못지않게 태백산맥 등줄기를 따르는 길도 좋다. 평창~정선~태백~봉화~영양~청송으로 이어지는 청정자연세계가 동해안의 시원하게 펼쳐진 절경들에 못지않다. 정선군 고한읍에서 두문동재(지금은 터널) 대신 414번 지방도로를 따라 정암사와 만항마을을 거쳐 함백산 만항재로 오르면 야생화 천국을 만나는 보너스를 누리게 된다. 만항재는 백두대간의 최고봉인 함백산 중턱 해발 1330m의 고개로 승용차가 다니는 포장도로로는 국내에서 가장 높다.
만항재는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 태백시와 만나는 상징적인 경계지점인데, 산줄기가 늘어져 가파르지 않고 느린 고갯길을 이루고 있어 이곳 사람들은 늘재(널재), 느린재, 늦은재(느진재)로 불렀다. 그래서 이 고갯길을 거쳐 태백시로 이어지는 도로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로 이름나 있다. 만항재 고갯마루에선 자동차도 쉬다 가야 한다. 이곳이야말로 야생화 천국으로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생화들이, 겨울철엔 눈꽃과 서리꽃들이 꽃잔치를 벌이고 있다.
만항재 고갯마루는 낙엽송 숲과 함께 ‘하늘숲 정원’이 소담하게 펼쳐져 있다. 이 정원에는 휴식하기 좋게 나무탁자와 의자 등이 놓여있고, 만항재에서 볼 수 있는 야생화를 촬영한 사진을 진열해 놓았다. 사진마다 꽃 이름과 유래, 개화 시기, 꽃말 등을 친절하게 적어놓았다. ‘하늘숲 정원’에서 야생화 예비공부(?)를 했다면, 본격적으로 ‘산상의 화원’, ‘바람길 정원’을 돌아본 뒤 1㎞ 남짓한 ‘만항숲길’을 따라가서 ‘야생화공원’도 둘러보아야 한다. ‘구름 위를 밟고 가는 천상의 화원’을 실감하게 된다.
만항재 고갯마루에는 마타리, 얼레지, 하늘말나리, 참당귀, 동자꽃, 금강초롱, 둥근이질풀, 일월비비추 등이 경염을 하듯 이쁜 모습을 자랑한다. ‘하늘숲 정원’에서 ‘야생화 공원’에 이르는 산책로는 부드러운 흙길로 걷기 좋게 이어져 있다. 허리를 약간 숙여 풀숲을 들여다보면 예쁘고 깨끗한 야생화들이 서로 다투듯이 고개를 내민다. 노란색 꽃을 피운 산짚신나물, 연분홍 둥근이질풀 꽃, 새하얀 큰까치수염, 주황색 물레나물, 여린 분홍색의 노루오줌 등이 푸른 풀숲에 색색의 물감을 들이고 있다.
만항재 주변 천상의 화원 4만1천여㎡에는 그밖에도 복수초, 한계령풀, 나도바람꽃 등 200종이 넘는 야생화들이 자생하고 있다. 만항마을과 가까운 야생화공원에는 야생화 전시장, 육묘장, 판매장 등을 갖춘 야생화 단지로 자리한다. 해발 1100m 만항마을~만항재에 이르는 414호 지방도로 주변에 펼쳐진 야생화 천국에선 매년 여름 야생화축제를 벌인다. 올해는 제10회째로 8월 1~9일 ‘구름 위의 산책’이란 슬로건과 함께 열렸는데, 꽃차 만들기 등 다양한 행사로 ‘힐링의 여름축제’임을 자랑했다.
고한함백산축제위원회가 주최하는 ‘고한 함백산 야생화축제’는 폐광도시에서 웰빙관광지로 거듭나는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정선군 고한읍 고한1리 만항마을은 함백산 기슭의 회색 폐광촌에서 지금은 ‘야생화마을 전국 1번지’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 마을은 옛 삼척탄좌 정암광업소가 무연탄을 생산하던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1천명의 주민으로 북적거리던 탄광촌이었다. 2001년 정암광업소가 문을 닫으면서 주민들도 하나 둘 떠나, 현재는 70여 가구 100여명만 남아있다.
식도락가들이 간간이 찾아오던 폐광촌 만항마을이 부활하기 시작한 것은 함백산 야생화 축제가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게 되면서였다. 이때부터 갖가지 야생화가 천상의 화원을 이루는 만항재를 찾는 탐방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 만항마을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도로변 주택에 벽화를 그리고, 낡은 집을 산뜻하게 고쳐지었다. 이제 만항마을은 석탄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맑은 숲과 공기, 형형색색으로 피어난 야생화의 천상 화원으로 새롭게 사랑을 받고 있다.
함백산 야생화 축제는 탄광에 의한 자연의 훼손에서 다시 야생화로 자연으로의 복원을 보여준다는 것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야생화가 갖고 있는 특유의 식용성과 약리성을 앞세워 이곳 일대를 웰빙관광지로 발돋움하게 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만항마을과 만항재는 여름철 낮 최고기온이 섭씨 20도로 시원하다. 무더위와 일상에 지친 도시민들이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지친 심신에 활력을 재충전하기 안성맞춤이다. 만항마을에는 이곳 특산물의 맛집들이 있고 민박도 할 수 있다.
고한읍에서 만항재로 접어드는 길목에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정암사(淨岩寺)가 있다. 신라 선덕여왕 5년(636년) 자장율사가 창건했는데, 보물 제410호 ‘수마노탑(水瑪瑙塔)’이 적멸보궁 뒤편에 세워져 있다. 만항재에서 흘러내리는 지장천에는 천연기념물 제73호 열목어가 서식하고 있어 이곳 일대가 청정자연세계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