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의 젊은 오빠는 아직도 일을 꿈꾼다..... 우성남
“난 저 양반이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보시며 말했다. 전국노래자랑 사회
진행자 송해 선생님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다. 아버지는 이제
칠순을 바라보고 계시다. 가끔씩 친정에 갈 때마다 이야기하시는 것은 ‘나의 일’을 갖고
싶다는 말씀이셨다.
퇴직하신지 벌써 10년이 다 돼 간다, 아버지는 퇴직하셨던 그 해 무척 늙으셨던 것 같다. 몇십년 동안 철두철미하게 습관처럼 몸에 배어버린 출근과 퇴근을 하루
아침에 끊어 버리니 갑작스레 ‘고장난 라디오’ 같다는 말씀까지 하시곤 했다. 육남매나 되는 자식들 먹여 살리고 교육시키느라 정신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오셨던 후유증이 퇴직과 동시에 나타나는가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에겐 가슴 깊은 좌절과도 같았다.
노인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에는 억울한데다 노후를 어떻게 보내리라 자세한 대책도 세우기 전에 퇴직을 하신 것이다. 사는 게 바쁘다
보니 변변히 폼나는 취미도 없고 문화적인 시간을 많이 접한 것도
아니고 사막 한가운데 떨어진 아이처럼 당황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퇴직하시던 날 자식들을 불러 놓고, 미리 준비한 하얀 봉투 여섯개를 우리들 앞에 내놓으셨다.
“너희들이 이제껏 아무 탈없이 잘 커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행복하게 가정 꾸며 나가거라. 그리고 이것은 아버지가 주는 마지막 용돈이다.” 그 봉투를 받아든 난 겉으로 좋아라 웃었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어쩐지 쓸쓸함이 스쳤다. 마치 아버지의 마지막 남은 ‘기(氣)’마저 빼앗은 느낌이 들었었다.
아버지는 퇴직후, 하루 종일 집안에서 신문을 보시거나 한자를
쓰시며 시간을 보내곤 하셨다. “난 아직도 젊고 일을 할 수 있는데…. 휴, 이제부터 뭘 해야 하나”라는 말을 자주 내뱉으셨다. 사람은 짧게 했던 일이라도 하던 일을 접게 되면 균형감각을 잃고 극도로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러니 평생의 일을 놓는다는 것은 허전함 따위로 감히 비교할 수 없고 마치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기분’일 것 같다. 그 막막함과 동시에 자신의 가치를 상실한 것 같은 기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버지가 그 당시 참으로 헛헛해 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는 또 퇴직후 얼마가지 않아 선산의 묘 자리를 알아보시고
수의를 장만해 놓아야겠다고 말씀하셨다. 마치 죽을 날을 받아놓은 듯 미리 돌아갈 것을 준비하시는 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니 아부지 이 빠진 호랑이 마냥 구는 게 좀 안스럽다. 왜 그리 약해지시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걱정도 커져만 갔다. 막내인 나마저 출가해서 두 분만 계셔 더 외롭게 느껴지나 싶어 자주 놀러 오시라고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딸 네 집에 뭐 자주 가노”라고 하셨다, 손주
녀석을 보러 오는 재미로 오셨다가는 불편한지 금세 가시곤 하는 아버지께 나는 노인대학을 권했다. 그러자 아버지께선.“야 내가 뭐 노인네냐? 거기는 아주 늙은 노인네나 가는 거지”라며 펄쩍 뛰셨다. 노인대학에서 하는 강좌나 여러 프로그램을 안내해줬지만 아버진 꼼짝하지 않으셨다.
하루종일 무료하게 보내느니 가서 여러 사람과 어울리고 배우는 시간도 ?찮을 것 같아 권했지만 아버지는 “난 일을 할 나이이지 노인네들과 어울리며 노는 나이가 아니다”라며 완강히 거부하셨다. “거기 가시면 봉사활동도 하고 댄스도 배우고 좋다는데, 이제껏 일하시고 또 뭘 그렇게 꼭 돈을 벌고 싶어하세요. 좀 쉬면서 즐기세요.”
내가 말하면 아버지는 “무슨 소리. 난 평생 일하고 싶다. 사람이 뚜렷한 일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김 빠지는지 모른다”라고만 하셨다.
퇴직 후 아버지는 줄 곳 이런 마음가짐으로 보내셨다. 온전히 즐겨보지 못한 사람은 일을 하지 않는 순간이 오히려 불안하다는 심리가 꼭 맞아 떨어 지는 경우였다.
그 후 십년이 흘렀다. 다행히 작년부터는 노인대학에 나가신다.
봉사 활동도 하시고 댄스도 배우시고 여러 가지 강좌를 듣고 계신다.
축 쳐져 있을 때보단 한결 생기 있어 보여 마음이 좋다. 가끔씩 친정에 들르면 손수 기른 야채를 한 소쿠리 담아 자랑스럽게 내놓으신다.
할아버지가 손수 기른 야채 보여준다며 텃밭으로 여러 손주
녀석들의 손을 잡아 끄시기도 한다.그래도 말 끝에 ‘일’에
대한 욕심을 내비치신다.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면 너무 좋겠다.
이젠 늙었다고 시켜 주지 않겠지? 꼬마들에게 이야기 해주기, 그런 것도 하면 잘하겠는데…. 니 유치원에 자리 좀 하나 구해 줘라. 허허허.”
아버지는 유난히 일자리를 꿈꾼다. 청년이든 노인이든 사람에게 일이
휴식만큼 중요한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아버지는 오늘도 수많은 정보지의 구인 구직난을 훑고 계실 것이다. 주유소 아르바이트, 주차장
관리인, 창고 물건 관리…. 매일매일 하루의 일과처럼 언제나 직장을 기획하고 꿈꾸며 살고 계신다. 이 땅의 칠순나이 젊은 오빠들에게 파이팅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