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와 와카치나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 (2편)
인사말씀
오늘은 남미 페루에서의 2일차 입니다.
소중한 분들과 함께한 소중한 시간 그리고 소중한 이야기를 잊어 버리지 않고 오래 오래 간직하고자 여기 일기장으로 기술해 봅니다. 저의 일기장 내용은 개인적인 감정과 주관적인 느낌을 기술하였기에 아마 다른분들과 견해가 다른 점도 많기 때문에 분명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튼 함께 했던 분들께 이 탐방기가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술해 봅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의 오후
♣ 아침 일찍 기상하여 조식을 마치곤 곧바로 리마 센트로 지구 일대를 둘러 보아야만 오후에 계획된 320Km 거리에 떨어진 와카치마 사막으로 떠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 하여 아침부터 서둘러 우선 먼저 산 마르틴 광장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이어서 산 프란체스코 성당과 수도원으로 가는 길인 우니온 거리(Jr de la Union) 길목에 위치한 리마에서 가장 오래된 성마리아 성당(자비의 성모 성당)를 비롯해 아르마스 광장, 대통령궁까지 보았습니다. 이어 곧 산 프란시스코 성당과 수도원, 리마 대성당, 대주교 궁전 등을 둘러 볼 계획입니다. 좀더 서둘러야만 점심 식사후 장거리 버스로 와카치마에 어둡기전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리마 산프란시스코성당과 수도원
Iglesia y Convento de San Francisco de Lima
비밀의 지하 묘지를 품은 성당
♣ 아르마스 광장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몇 블럭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산 프란체스코 성당과 수도원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산프란시스코의 성당과 수녀원Jirón Ancash)은 리마의 가장 중요한 종교 기념물로 1,673 년에 건립되었으며, 바로크 스타일의 1,542 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 아르마스 광장에서 산 프란시스코 성당으로 향하는 길목 좌우측에는 마치 유럽에 온 것 같은 착각이들 정도로 유럽풍의 멋진 건물들이 웅장했습니다. 그리고 제복을 잘 갖춰 입은 남녀경찰들이 주변일대에 순찰도 돌고 있어서 관광객을 위해 치안이 굉장히 잘 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기실 이렇게 경찰들이 많이 요소 요소에 배치되어 있는 것은 바로 대통령궁을 비롯한 의회 등의 관공서가 있기 때문에 만약에 사태에 대비한 안전준비태세였습니다.
♣ 처음 산 프란시스코 성당에 들어서면 성당 마당과 건물에 유난히 많은 비둘기들로 인해 놀라게 되는데 생전에 동물, 그중에서도 새를 유난히 좋아해 동물의 수호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프란시스코 성인의 이름이 붙여진 성당이라 그렇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 좌우로 대칭되는 상아빛 탑과 정면에 조각되어 있는 성인상이 인상적인 외관을 뒤로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여느 성당들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제단과 성상 등 각종 장식들이 내부를 꾸미고 있습니다. 성당은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지만 수도원과 카타콤은 입장료를 내고 그룹 가이드를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합니다.
♣ 이곳에 도착한 우리 일행도 개인당 7 Sol(1 Sol = 우리돈 약 400원)의 입장료를 단체로 낸 후, 순서를 한참이나 기다려 현지의 안내드의 안내를 받아 입장을 했습니다만, 혼자 영어로 떠들기 때문에 사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기 어려웠습니다.
♣ 이곳은 산 프란시스코 성당, 수녀원, "La Soledad" 및 "El Milagro"와 외부에는 정원같은 작은 광장의 조성되어 있으며, 이 성당과 수녀원 아래에는 지하 갤러리가 카타콤바로 변모하여 총독 시절에 리마 묘지로 사용 되었습니다. 성당 내에는 세개의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소성전, 완전히 조각 된 제단, 아름다운 성찬, 넓은 창문과 풍부한 그림 수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그리고 또한 수도원에는 회랑, 광장, 도서관 및 거실이 있습니다. 포털은 1620 년에 세워진 정통 세비야 (Sevillian) 타일로 꾸며져 있으며, "Museo de Arte Religioso"(종교 미술 박물관)와 사도 컬렉션을 갖춘 룸 Zurbarán이 있는데, 이 시설은 수년전 "Banco de Crédito del Perú"의 지원으로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 수도원은 건물 안 어디에 이렇게 거대한 공간이 숨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수많은 방과 아름다운 회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부에는 16세기에 양피지로 만들어진 장서들을 비롯해 거대한 회의장과 성가대 연습실, 아름다운 초상화부터 쿠이를 먹는 최후의 만찬 그림까지 수많은 고서와 가구, 그림들이 각 방에 보물처럼 간직되어 있었습니다. 절대 촬영금지 구역이라 사진에라도 담아 올 수 없는 것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 특히 이곳 수도원 2층방에 있는 이곳 남미색깔을 띤 음식으로 준비된 '최후의 만찬 그림' 그리고 피사로를 비롯한 도미니코회의 발베르테 수사 등 스페인 정복자들 168명이 말을 타고 나타난 잉카의 '아타우알파 황제'와 수만명의 잉카 인디오 병사들과 조우하여 대립하는 그 생생한 장면 유명한 그림'을 사진에 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했습니다.
♣ 산 프란시스코 성당은 대성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지하 무덤인 카타콤으로 더 유명해 졌지요. 지하의 카타콤은 낮은 천장과 미로로 이루어진 지하 무덤으로 곳곳에 해골과 정리된 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지하 통로 길은 미로였습니다. 그리고 미로 곳곳은 성당 바닥과도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낮은 계단을 통해 드나들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카타콤의 제일 안쪽에는 거대한 우물 모양의 공간 속에 수많은 해골과 뼈들이 방사형으로 쌓여 있는데 그 깊이는 몇 십 미터나 된다고 합니다. 이곳 산 프란시스코 성당과 수녀원 및 카타콤은 세계문화 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대주교 궁전
Palacio de Arzobispa
♣ 앞서 본 리마의 산프란시스코 성당은 바로크와 안달루시아풍의 건축양식으로 1546년부터 100년 이상 걸려서 완공된 성당이었는데, 엄청난 역사자료와 문화재를 본 그 감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아르마스 광장 끝부분에 위치한 대주교궁전( Palacio de Arzobispal)에서 또한번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일반 성당은 종탑이 하나이지만, 리마 대성당의 종탑이 2개인 것은 주교가 계신 성당이기 때문이지요.그것도 대주교(추기경 or 교구장급)가 있는 성당이지요.
♣ 이 대주교궁의 견학은 우리 일행중에 몇몇분과 함께 했습니다. 우리 여행팀장(유대장)은 약 40분간의 자유시간을 주었는데, 12시 30분까지 아르마스 광장에 이르는 두번째 골목 약 100m에 위치한 페루 전통식당으로 집합 할 것을 알리며 자유시간을 주었기에 뜻을 같이하는 몇몇분과 대주교궁을 견학하였던 것입니다.
♣ 대주교(Archbishop)가 거주하던 궁은 리마 대성당(La Catedral)과 연결되어 있는 건물로 왼편쪽에 위치해 있는데, 1924년에 완성된 것으로 붉은 나무로 조각된 창문틀이 건물의 정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를 Moorish 스타링이라고 부른답니다. 어떻든 우리는 Palacio de Arzobispal(대주교 궁전)에 입장권을 끊고 관람하였습니다.
♣ 이 대주교궁에 소장된 카톨릭교회의 각종 조각 성상과 그림 그리고 역사적 유물과 그 보존관리 상태를 보면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이렇게 강했기에 이런 역사적인 유물이 만들어졌고 또 오늘날 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대주교 궁정의 1층과 2층에는 이곳 페루의 역대 추기경과 주교분들의 사진, 그분들 서품식 때 입었던 각종 제의, 성화, 성물, 성서 등의 책자 등이 마치 박물관과 같이 잘 정리되었고 방마다 가득 찼습니다.
♣ 황금에 눈이 어두워 남미에 침략한 유럽의 정복자들이 잉카제국을 패망 시키고 이땅을 300년 이상 식민지화 하면서 함께 상륙한 카톨릭교회가 이곳 원주민의 종교를 말살 시키고 또한 정치수단으로 이용되어 그들을 억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도 왜 남미의 모든 나라들이 약 90% 이상 카톨릭 신자인가?하는 의구심도 생겼습니다.
♣ 대주교 궁전을 견학하고 막 나설 무렵 아르마스 광장 앞의 대통령궁에서는 근위대들의 교대식 행사 나팔소리가 들려 득달같이 달려가 현장을 관람했습니다. 정말 폼나 보였습니다. 더 관람하고 싶었지만, 바쁜 일정이라 리마 대성당에 입장했습니다. 아까 대주교 궁전에 입장할 때의 10 Sol(한화 약 4,000원)을 주고 산 영수증으로 리마 대성당 입장이 가능하였습니다.
리마 대성당
Catedral de Lima
식민지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 건축물
♣ 리마에서 식민지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로 손꼽히는 대성당은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스페인 침략 군대를 이끈 피사로가 직접 주춧돌을 놓았다고 해서 더욱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스페인의 주류 양식이었던 바로크 양식을 그대로 이어받아 지어진 대성당은 몇 차례의 대지진으로 손상을 입은 후 1755년 최종적으로 복구되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아르마스 광장의 동쪽 면적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로 이루어진 대성당은 당시 스페인 사람들의 가톨릭 신앙심을 그대로 반영한 듯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는 대통령 궁과 비교해도 전혀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고풍스러우면서도 대담한 조각과 장식들로 위풍당당함을 자랑합니다.
♣ 성당 내부 또한 화려하게 장식된 여러 제단들과 각종 그림들로 꾸며져 있으며 피사로의 초상화와 유해가 성당 한쪽에 안치되어 있었고, 성당의 성전 왼편에는 대주교궁전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역대 주교님들의 연대기와 활동상을 비롯한 자료 전시실이 있었습니다.
♣ 2층에도 역시 성화와 성상 그리고 관련책자들 등 종교관련 자료들이 가득한 보화였습니다. 대성당 앞의 넓은 계단에는 광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페루의 전통음식 식당에서 점심을...
♣ 자유시간 40분이 금방 흘렀습니다. 리마 대성당 견학을 마치고 난 시각은 낮 12시 40분이었습니다. 허겁지겁 약속한 장소로 뛰어 갔습니다. 우리 일행은 이미 식당에 도착해서 우리 4명이 도착하길 기다리면서 맥주와 콜라를 마시며 우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또 지각을 했기에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페루 리마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맛보는 이곳 전통음식이었지만 이곳 전통음식도 이젠 관광객의 입맛을 고려한 푸젼요리가 되어 있어서 조금도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이곳 페루는 수산왕국이라서 우리가 생선요리를 주문했기에 더 적응이 가능했는지도 모릅니다.
페루의 화폐를 환전
♣ 우리 인솔자 유대장은 이곳 식당에 찾아온 환전상으로부터 달러를 Sol로 환전하여 희망하는 이들에게 분배해 주었기에 처음으로 페루 화폐를 만져 볼 수 있었지요. 이곳 점심 음식값을 비롯해 우리 일행이 각자 사용할 수 있는 금액만 환전을 했습니다.
♣ 페루의 화폐단위는 공식적으로 누에보 솔(Nuevo Sol)인데, 보통 솔이라고 말합니다. 솔의 하급개념으로 센티모(Centimos)가 있는데 센티모는 솔의 1/100이지요. 즉 USD 달러 / 센트로 나눈것과 비슷합니다. 남미에서는 주로 "페소"라는 단위를 많이 쓰는데 비해서 페루는 솔(Sol)이라고하는 조금은 페루만의 독특한 화폐단위를 쓰고 있습니다.
♣ 페루가 현재의 Nuevo Sol를 사용하기 까지에는 한때(1985 ~1990년)에 물가상승율이 연 최대 8,000%까지 오르면서 종전에 사용중이던 Inti는 휴지조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일본계 이민 2세로 1990년 대통령 당선, 1995년 재선 당선, 2000년 3선에 당선되었으나 부정선거로 그해 10월 사임됨) 시절 화폐개혁을 해서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는데, 지폐로서는 10 Sol, 20 Sol, 50 Sol, 100 Sol, 200 Sol이있는데, 제일 큰 단위인 200 Sol은 페루에선 일반인들에게 워낙 큰 돈이고 귀해서 잘 통용이 안되고 일반인들은 집 장롱에 잘 보관한답니다.
♣ 동전으로는 1, 2, 5솔(Sol) 짜리가 있고, 센티모(Centimos)는 5, 10, 20, 50센티모가 있습니다. 100센티모가 1솔이지요.
♣ 1솔은 우리돈(₩)으로 환율이 현재 370~380원에 해당되지만, 우리는 그냥 계산하기 쉽게 400원으로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페루의 물가수준은 우리 한국과 비교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재화와 서비스, 공산품과 농산품 등의 가격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즉 페루의 물가는 농산물로 말하면 한국에 비해서 1/10수준도 안되지만 공산품은 우리 한국의 물가와 비슷한 정도이기에 비교가 쉽지 않지요.
♣ 어떻든 이곳 페루에서 약 1주일간 머물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1/10에 해당하는 포도, 사과, 바나나, 망고 등 열대과일은 원없이 먹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 환전을 했기에 실제 페루의 화폐인 Sol를 현지에서 사용하면서 상세한 물가를 기술할 생각입니다.
리마 센트로 지구
우니온 거리에서의 길거리 공연관람
♣ 아르마스 광장 근처의 페루 음식 전문점 ‘El Pacifico 식당’에서 4가지 요리인 까르메(소고기), 뽀요(닭고기), 투르차(송어)와 이름 모를 녹색의 면요리를 식탁별 1개씩 주문하였는데, 그 양(量)이 많은 관계로 결국 음식을 남길 수 없어 과식을 할 수밖에 없는 점심식사였습니다. 맛은 고추장과 김치가 없었어도 먹을 만 했지요. 점심 식사후 우리 일행은 식당에서 10분이내에 도착이 가능한 같은 리마 센트로 지구내에 위치한 우리 숙소인 Hotel Inka path까지 도보로 향했습니다.
♣ 식민지 시대부터 잘 조성된 유럽풍 건축물들이 즐비한 구시가지의 우니온 거리(Jr. de la Union)를 지날 때 그 거리에선 섭씨 25~ 26℃의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온몸을 은색의 우주복 같은 차림을 한 공연자와 또 온통 검정색으로 몸을 페인팅한 공연자가 판토마임 공연을 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는데, 잠시 머물러 보고 싶었지만 곧 대절한 관광버스를 타고 ‘와카치나 사막’으로 출발해야하기에 그냥 스치듯 지나쳐 볼 수 밖에 없어 많이 아쉬웠습니다.
페루의 수도 리마를 떠나 '와카치나 사막'으로...
♣ Pm 13시, 숙소인 호텔에 도착하여 여행용 큰 짐들은 프런트에 맡기고 우리들은 이틀간 와카치나 사막투어시에 필요한 물건만 담은 작은 배낭만을 메고 도로변으로 나왔습니다. 전세한 대형버스가 리마 센트로 지구내에 위치한 우니온 거리로 진입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지요.
♣ Pm 13시 10분, 우리는 신형 중국산 대절버스에 탑승했습니다. 얼마전 우리나라 국내에도 중국산 버스가 수입되었다고 했는데, 이곳 남미에까지 중국산 버스가 진출한 것이 놀라웠습니다. 신형의 새차의 에어컨도 빵빵해서 좋았습니다. 버스 운전기사는 전형적인 페루인으로 서글 서글한 인상의 호감가는 얼굴의 중년(41세)이었는데, 그의 이름은 ‘호로세’라고 우리 팀장이 소개인사를 시켜, 그의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호로새끼’라고 하며 나도 모르게 키득 키득 웃었습니다.
♣ 어떻든 우리는 버스에 승차하였는데, 마치 경주 불국사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창시절 때의 고교생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리마 시내는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교통체증으로 인하여 버스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였으나 도로에 우리나라 현대와 기아차의 승용차와 티코 택시도 눈에 많이 띄어 아주 반가웠습니다.
♣ 복잡한 도심을 막 빠져나와 외곽의 고속도로에 접하는 교량 위에서 리막강을 바라보았는데, 흙탕물이 범람하여 꽐~꽐~ 흐르는 것이 장관이었습니다. 연중의 강우량이 채 10mm도 안되는 건조한 지역이라, 평소 리막강은 흐르지 않는 곳이라고 했는데, 의외로 이렇게 강이 흐르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마도 먼곳의 해발 4~5,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비가 많이 내려 이곳까지 흘러내린 탓인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 도로 좌우편 주변일대의 낡은 건물과 열악한 환경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페루의 총인구 2,800만명 중, 그 절반에 가까운 1,000만명 이상의 인구가 리마지역 일대에 거주하는 관계로 주택난이 심각할 수 밖에 없기에 리마 시내 외곽엔 판자촌과 달동네가 많은가 봅니다. 잠시후 버스 차창 밖에 커다란 모래산(山)이 보였는데, 나무와 풀은 하나도 없고 거기엔 형형색색의 레고 블록 같은 낡은 많은 집들을 배경으로 거대한 십자가상이 보였습니다.
♣ 가난한 저개발 국가의 대도시들이 모두 그러하듯, 리마 도심에는 고층건물과 번화한 광장이 화려한 수도임을 알리고 있지만, 변두리 사막에는 직접 말려서 만든 아도베(adobe)라는 흙벽돌로 쌓아 올린 붉은 건물들이 지붕도 또 창문도 없이 빈민층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도심과 주변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미타 플로레스 지구), 식민지 시대문화와 현대의 문화가 절묳게 조화를 이룬 라마에서 그들이 공존하는 삶을 엿 볼 수 있었습니다.
♣ 척박한 모래밭이 많은 땅에서 농사를 짓기보다는 리마라는 대도시로 나와 피자집의 배달을 하는 것을 더 선호할 수 밖에 없는 이곳 페루의 젊은이들의 현실적 입장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모래밭 광야에서 그나마 간간히 농사를 지으려고 수로를 설치하여 채소를 가꾸고 또 가축을 기르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악조건 하에서 근교농업을 통해 대도시에 공급하는 그 지혜에 탄복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리마시내를 떠난지 1시간이 지난, 오후 2시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막 지나면서 우측 버스 창가에서 시원한 태평양 바다가 보였습니다. 지금은 이곳의 계절이 가을이지만, 1월과 2월에는 이 바닷가에는 해수욕 인파와 관광객들이 엄청 붐볐다고 합니다. 해변가에는 사막의 달동네 판자촌과는 달리 부자들의 별장들이 보였습니다. 관광시즌이 아니고 또 평일인 탓인지 고속도로는 비교적 한가하여 버스는 질주했습니다. 그런데 잠시후 우리가 탄 버스가 도로상에 잠시 멈추었지요. 그건 갑자기 도로가 침수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막지대에 도로가 물에 잠긴 것을 보니 너무 물이 아까웠습니다. 분명 상수도가 터져서 그런줄 알았으나, 이 넓디 넓은 사막도로에 상수도 관이 설치 될리는 만무라는 생각이 불쑥 뒤늦게 들었지요. 그 이유는 멀리 설산의 해발 4~5,000m의 고지대에서 최근 내린 폭우로 인하여 그물들이 건조한 사막지대인 이곳까지 흘렀기 때문이란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 도로 침수지역을 지나고 난 잠시후, 우리는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시 정차했습니다. 지금까지 차창밖으로 본 사막의 집단 판자촌 마을과 달동네를 보았기에 이곳 휴게소도 열악할 것이란 선입견을 갖었는데, 놀랍게도 이 휴게소는 비록 그 규모는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보다 작았지만, 현대식의 쾌적한 환경 조성도 좋았고 편의시설을 완벽하게 갖춘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용객도 없는 한적한 곳인데도 이토록 멋진 최상의 휴게소를 꾸몄다니...? 화장실도 아주 위생적이었습니다.
♣ 그리고 이 휴게소에는 수많은 종류의 포도주를 비롯한 모든 생필품들이 완벽히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중 오늘 리마에서 와카치나로 향하는 전세 버스를 타는데, 그만 착오로 인하여 지각을 한 대전의 김교장 선생님께서 벌칙으로 모두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돌렸습니다. 하여 쉬는 김에 우리는 이참에 커피까지 한잔하고 곧 다시 버스에 승차했습니다.
♣ 광할한 사막지대의 도로를 달리다가 Pm 3시 20분, 도로변에 위치한 노상과일 상점에 잠시 정차했습니다. 긴 장거리 여행이라 간식용으로 과일이 필요했기 때문인데, 과일 맛을 본 부녀회원들은 그 맛에 깊이 푹~ 빠져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어쩔수 없이 우린 무려 30여분이나 그 상점 앞에 죽쳤습니다. 열대과일이 이렇게 다양한 줄 몰랐고 또 건조한 사막지역에서 재배한 과일이라 당도가 뛰어났기에 더 맛있었나 봅니다.
♣ 우리 일행 15명이 먹은 과일값은 65솔(Sol)이었는데, 우리돈으로 환산시 1인당 1,500원(₩)으로 마음껏 포식하며 행복을 만끽했습니다. 페루 화폐로 1솔은 우리돈 400원(₩) 정도인데, 1솔(Sol)로는 바나나 2~3개 or 사과 4개 또는 포도 2송이를 살 수 있는 금액이지요. 우리 농산물에 비해 1/10이기에 과일로 배를 채우고도 몇 보따리를 비닐봉지에 담아 버스에 실었습니다. 내일 여행시에도 먹어야 할 우리의 일용할 양식으로... 과일상점에서 30여분 머문 후인 Pm 3시 50분, 다시 버스에 승차하여 또다시 고속도로를 내달렸습니다.
♣ 태평양의 더운 바람이 많아 산에는 나무와 풀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곳은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에서만 나무의 식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남한땅의 13배나 되는 넓은 땅을 지닌 페루에서는 특히 포도주가 유명한데 그중 ‘미스코 사오’라는 알콜농도 30도 이상의 포도주와 포도주에 레몬을 넣은 ‘뻰토비노(적포도주)’가 많이 생산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달리고 있는 고속도로 좌우편에는 사막인데도 인공으로 수로를 만들어 포도주 농장을 하고 있는 곳이 참 많았습니다. 비록 1년에 10mm도 안되는 비로 인하여 건조한 사막지대가 되었지만, 따뜻한 햇볕의 건조한 날씨는 포도재배의 당도가 최고라고 합니다.
♣ 그리고 모래사막에 간간히 수로를 설치하여 포도를 재배하는 농장들이 점점 더 많이 눈에 띄었고 또 대형의 비닐하우스 온실들도 많이 눈에 띄었는데, 이 하우스는 닭과 오리를 키우는 농장이라는 것에 또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막에서 닭 양계장을 하다니...? 그런데 그도 그럴것이 건조한 사막의 기후에는 조류독감을 비롯한 가축의 질병이 전혀 없기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막화 된 높은 모래언덕에 지어진 판자촌에는 우리의 옛 북창 물장수처럼 물지게를 진 물장수들의 수입이 짭짤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이들에 비해 너무 행복에 겨워사는데도 불만이 많았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 Pm 5시, 달리는 버스 창밖에는 ‘PARACAS’라는 표시의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이곳은 내일 모래쯔음에 우리가 들릴 제2의 목적지이지요. 또 차창 밖에 인공수로를 만들어 포도재배 농장을 꾸민 나무 울타리에 만다리나 꽃이 아름다운 자태를 폼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도로에서 예쁜 꽃들을 보니깐, 잠시나마 장거리 여행의 피로가 싹~ 가셔지는 듯 했습니다.
♣ 이어 곧 ICA 50km 지점이라는 것을 알리는 이정표도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앞으로 1시간 후엔 우리 목적지인 와카치나에 도착 할 것 같아 흥분되었습니다. 그런데 Pm 5시 40분경, 갑자기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끼었습니다. 곧 비가 내릴 것 같아 걱정이 되었습니다. 내일 아침에 와카치나 사막을 투어하는데 비가 오면 지장이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우려도 잠시 다시금 햇볕이 내려쪼였습니다. 이곳 날씨는 이렇듯 변죽이 심한 사막 기후의 특성을 지녔나 봅니다.
♣ 잠시 후, 도로에「BIEN VENID」이라는 프랭카드가 펄럭이고 있었는데, 이 글의 뜻은 ‘어서 오십시오’라는 환영 인사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Pm 5시 50분 어느덧 우리 버스는 ‘이카 시내’로 서서히 진입하였습니다. 이카 시내의 도로변에 ‘현대 / 기아자동차 판매전시장’이 보여 반갑기 그지 없었습니다.
♣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ICA 시내에는 서서히 라이트를 켠 현대와 기아 승용차 그리고 옛 대우에서 생산된 티코가 택시로 운행되고 있는 것이 엄청 많아 왠지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그리고 이카 시내를 지나 30여분 후인 Pm 6시 20분, 우리는 리마에서 320km의 떨어진 남쪽에 위치한, 주변이 온통 모래산으로 쌓인 와카치나 사막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 우리의 숙소는 사방이 모래로 둘러쳐진 언덕 아래에 ‘오아시스’에 위치한 Hostal Curasi 였습니다. 장장 5시간 30분이 걸린 장거리 여행이었습니다.
♣ 저녁 7시 30분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졌기에 우리는 짐을 풀자마자 곧바로 누가 말릴 틈도 없이 호텔 중앙에 있는 풀장에 뛰어 들었습니다. 오늘 장거리 여행의 피로가 일시에 사라지는 듯한 기쁨이 순간이었습니다.
♣ 저녁 7시 40분, 우리는 숙소 뒤편의 오아시스 호숫가 길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멋진 파티를 열었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갖는 최고의 만찬이었습니다. 간만에 마음껏 포도주를 마실 수 있어 더욱 좋았습니다.
2017. 3. 14(화) / 오늘의 일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