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남자 아이를 키우다
- 현대 아빠 홍승우의 만화로 보는 조선 사대부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홍승우 지음 / 2008년 예담 출간
* 이문건의 <양아록>을 만화로 풀어낸 책입니다.
* 이문건李文楗
조선 명종 때의 문신(1494~1567). 자는 자발(子發). 호는 묵재(默齋). 벼슬은 승지에 이르렀고, 을사사화 때 대윤(大尹) 일파로 지목되어 성주에 유배되어 죽었다. 글씨를 잘 써 초서와 해서에 일가를 이루었다. 저서로 <묵재일기> <양아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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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노인은 읽던 책을 내려놓고 숙길(淑吉)을 지켜보았다. 숙길은 걸음마 연습에 한창이었다. 그 작은 손으로 벽을 짚고 옆걸음질을 하던 숙길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노인은 손을 뻗었다 멈추었다. 다행히 숙길은 넘어지기 전에 다시 벽을 잡았다. 숙길은 스스로가 대견한지 노인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노인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잠시 멈추었던 숙길은 이번에는 한 손으로 벽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노인은 숨을 멈추고 숙길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한 걸음 떼기가 어려웠지 그다음은 쉬웠다. 숙길은 단번에 서너 발짝을 걷더니 벽에서 손을 뗐다. 그러고는 천천히 걸음을 걸어 노인에게로 왔다. 초조하게 지켜보던 노인은 두 팔을 활짝 벌려 숙길을 안아주었다.
노인은 칭얼대며 매달리는 숙길의 등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유달리 자식 복이 없었던 노인이었다. 첫 번째 아이는 어미 뱃속에서 죽었고, 세 번째 아이는 몇 달을 버티다 천연두로 죽었고, 네 번째 아이는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죽었다. 다섯 번째 아이인 순정은 천연두와 풍을 이겨냈으나 간질에 걸려 고생하다가 스무 해를 채우지 못하고 죽었다. 남은 것은 두 번째 아이인 온(熅)뿐이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열병을 앓았던 온은 살아남기는 했으나 반편이가 되었다. 사람 구실을 아예 못할 줄 알았던 온이 장가를 들어 얻은 아이가 바로 숙길이었다. 오래토록 바라고 바라던 일이라 노인의 기쁨은 너무도 컸다. 더구나 노인은 귀양살이 중이었다. 조광조에게 조문하고 장례를 지냈던 것이 결국 발목을 잡고 말았다. 천지가 뒤집히기 전에는 귀양살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터였다. 그런 시기에 얻은 숙길이었다. 노인의 지나치다 싶은 기쁨을 조금은 이해해주어야만 할 이유다. 숙길이 무사히 태어난 것을 확인한 노인은 혼자서 술잔을 기울여가며 자축의 시를 지었다.
천지자연의 이치는 무궁하게 생성이 계속되어
어리석은 자식이 아들을 얻어 가풍을 잇게 했네.
지하에 계신 선조의 영령들께서 많이 도와주시리니
인간세상의 뒤이어 올 일들이 다소 잘되어 가리라.
노인은 숙길이 자라는 모습을 매일 같이 기록해나갔다. 우울과 좌절로 점철되었던 노인의 일상에 활기가 돌았다. 숙길의 이가 하나둘 모습을 보이는 것, 꼼짝도 못하다가 기어 다니고, 혼자 일어서려 애를 쓰다가 마침내 걷게 되는 것, 아이라면 누구나 거치게 마련인 그 당위의 현상들이 노인에게는 새로운 경이였다.
숙길이 몸을 비틀어 노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숙길은 노인이 읽던 책을 집어 들더니 몸을 흔들며 웅얼거렸다. 책 읽는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노인은 무릎을 쳤다. 숙길은 보통 아이가 아니었다. 문장을 업으로 삼아 큰일을 할 아이였다. 기쁨의 극단으로 치닫던 노인을 자제시킨 것은 숙길이 태어났을 때 조카 이염이 보냈던 편지의 한 구절이었다. ‘원컨대 너무 귀하게도 너무 과보호하지도 마시고, 다만 평범하게 기르소서.’ 아이를 지나키게 사랑하면 조물주가 시샘하니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숙길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명약관화라 도무지 바뀔 것 같지가 않았다. 노인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궁벽하게 된 나는 비록 신세가 끝나가지만, 이 손자에게는 하늘이 때를 정해주기만 바랍니다.”
두려움
하늘이 시샘한다는 말을 조금 더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건강하게 자라던 숙길에게 병마가 줄지어 찾아왔다. 어느 날 숙길은 몸을 덜덜 떨며 어미 무릎을 파고들었다. 어미가 꼭 안아주어도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며칠 그러다 말려니 했다. 아니었다. 숙길의 몸은 불덩이처럼 끓었고 입 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학질이었다. 숙길의 얼굴이 누렇게 뜨고 통통하던 살은 한꺼번에 빠져버렸다. 노인은 속으로 신음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하늘에 대고 한 말 때문인 것만 같았다. 올바른 때를 정해달라고 했던 말을 조물주가 오해했던 것만 같았다. 아니다. 그럴 리는 없었다. 분주하기 그지없을 조물주가 유독 숙길만 시샘했을 리는 없었다. 그래도 노인은 숙길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자신의 말을 쉼 없이 머릿속에 떠올리며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러나 학질은 시작이었다. 병에서 회복된 아이는 침상에서 허비한 시간을 보충하려는 듯 기운차게 놀다가 손톱을 다치고 이마를 다쳤다. 더위를 먹어 경기를 일으키고 배앓이를 하고 고온에 시달렸다. 사내아이가 그렇지 하고 넘기려는 차에 마마에 걸렸다. 숙길은 죽을 뻔한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숙길이 앓는 동안 노인은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웬만해서는 입도 열지 않았다. 숙길이 병에서 완전히 회복된 것을 확인하고서야 살며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을 뿐이었다. 하나 다행인 것은 그렇게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숙길이 노인을 끔찍이 따른다는 점이었다. 숙길은 마마를 앓는 동안에도 노인이 자신 곁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자신의 똥오줌도 노인이 받아주기를 원했다. 노인은 기꺼이 그렇게 했다. 병마로 인해 노인과 숙길의 관계는 더 애틋해졌다. 노인이 홀로 외출하는 날이면 숙길은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다가 펄쩍펄쩍 뛰며 돌아오는 노인을 맞이했다. 그럴 때마다 노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름다운 천품까지 타고 났구나.’ 물론 그 말은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노인이 입단속을 한 탓이었을까, 하늘은 숙길 대신 그의 아비 온을 데려갔다. 일곱 살이 된 숙길은 상복을 입고 소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노인의 마음이 찢어졌다. 온도 불쌍했고, 숙길도 불쌍했다. 하늘에 대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아들은 잃었으나 그래도 노인에게는 숙길이 있었다.
이제 노인의 책임은 더욱 더 막중해졌다. 가문의 재기는 오로지 숙길의 손에 달려 있었다. 노인은 숙길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것으로 슬픔을 잊으려 했다. 돌도 되기 전에 책 읽는 흉내를 냈던 숙길이었다. 자신을 유난히 따르는 숙길이었다. 조금만 붙잡고 가르치면 천품이 뛰어난 숙길은 이내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드러내리라. 그러던 즈음 노인은 뜻밖의 광경을 목격했다. 숙길이 쌍소리를 하며 할머니에게 대드는 것이었다. 노인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회초리를 들었다. 몇 대 때리지도 않았는데 숙길이 눈물을 쏟았다. 그 눈물에 노인의 마음이 약해졌다. “조금 전과 같은 잘못을 또 저지르겠느냐?” 숙길은 소맷부리로 연신 눈을 훔쳐가며 대답했다.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날 밤 노인은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손자가 더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듯하니
하늘이 복을 준 것이라 생각하노라.
분노
숙길의 대답은 말뿐이었다. 학업에는 조금의 열의도 보이지 않으면서 사사건건 문제만 일으켰다. 노인이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책을 읽으면서 딴전을 피우는 것이었다. 노인의 꾸지람을 들으면 숙길은 자신의 잘못을 곧바로 반성했지만 노인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곧바로 뛰쳐나가 아이들과 어울렸다. 노인은 여종을 불러 숙길을 데려오도록 했다. 강제로 끌려온 숙길은 여종에게 있는 대로 화를 냈다. 그 모습을 보던 노인은 버선발로 뛰쳐나가 숙길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러고는 방으로 데려와 창문 앞에 세운 뒤 엉덩이를 때렸다. 숙길이 숨죽여 울었다. 그 조용한 울음이 노인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노인은 숙길을 밖으로 내보냈다. 노인은 숙길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린 아이 중에 부지런히 공부하는 이가 몇이나 되겠나? 가는 세월이 너무도 아쉬워 할아비가 조바심을 내고야 말았구나.”
그 뒤로 노인은 화와 회초리를 멀리 하려 애를 썼다. 아직 어리니 놀고 싶을 때는 놀게 하는 것도 훈육의 방법이거니 생각하려 애를 썼다. 단옷날 그네를 원 없이 타도록 내버려 둔 것도 그래서였다. 그러나 숙길은 도통 만족을 몰랐다. 다음날이 되어도 그네에서 내려올 줄을 몰랐다. 노인은 슬며시 경고의 말을 던졌다. “글을 짓지 않으면 그네를 끊겠다.”
숙길은 듣고도 모른 척했다. 노인은 칼을 들어 그네를 끊었다. 울부짖는 숙길의 종아리를 때리고 또 때렸다. 종아리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서야 회초리를 내려놓았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노인은 나중에 더 때릴 것이니 그리 알라고 엄포를 놓았다. 숙길은 전에 그랬듯 숨죽여 울었다. 노인을 숙길을 밖으로 내보냈지만 마음은 전과는 사뭇 달랐다. 포기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노인은 고개를 젓고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그네를 바라보았다.
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수단을 동원했음에도 숙길은 달라지지 않았다. 숙길은 걸핏하면 화를 냈다. 다른 이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부터 내뱉다가 때로는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면 바닥에 드러누워 소리부터 지르는 것은 별난 일 축에도 들지 않았다. 머릿속을 맴돌던 포기라는 단어가 자포자기로 확대되어 턱하니 입가에 자리 잡았다. 숙길이 가문의 앞날을 짊어지기는 어려울 듯했다. 아니 불가능했다. 그러나 노인은 숙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숙길을 다잡는 것이 노인에게 남겨진 마지막 사명일 터였다. 집안은 전쟁터가 되었다. 타이르고 화를 내다가 인내의 한계에 이르면 회초리를 들었다. 숙길이 흘리던 조용한 눈물은 제어되지 않는 욕설로 변했다. 노인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장대하던 가문이 몰락하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이 되었다. 노인은 숙길을 향해 아예 저주의 예언을 퍼부었다. “작게는 자신을 욕되게 하고, 크게는 가문을 기울게 할 것이다.”
미련
그렇다고는 해도 포기는 쉽지 않았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훌륭한 천품을 지닌 숙길이 다시 한 번 바뀌지 않으리라 단언할 수는 없다. 노인은 틈날 때마다 숙길을 붙잡고 가르쳤다. 어느새 머리가 커진 숙길은 이제 고분고분하게 노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자신을 책망하는 노인을 비웃었고, 노인의 가르침에 이의를 제기했다. 좌부승지로 일하며 임금의 눈과 귀 노릇을 했던 노인 앞에서 자신의 경전 해석이 옳다고 주장하며 목청을 높였다. 노인은 할 말을 잃었다. 훈계도, 회초리질도 소용없었다. 노인의 기력만 쇠하게 할 뿐이었다.
숙길의 만행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노인은 숙길이 술을 밝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숙길의 나이 겨우 열네 살이었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났으니 호탕하게 술 한두 잔 비우는 것을 가지고 뭐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숙길은 자제력이 결여된 아이였다. 한 번 술을 마시면 취하도록 마셨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무데나 게워냈다. 노인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제 하늘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어차피 더 이상 빼앗길 것도 없었으므로.
늙은이 자식 잃고 손자에게 의지하는데
손자는 지나치게 술을 탐해 자주 취하네.
번번이 취하고 토하는 걸 한탄할 수도 없으니
기박한 운명이 얼마나 한스러운가?
그날 밤 노인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쨌거나 숙길의 나이 겨우 열네 살이었다. 아직은 어린 아이였다. 한두 해가 더 지나면 바뀔 수도 있었다. 노인도 열네 살 시절에는 불량스러운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특별히 기억나는 잘못은 없지만 노인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유난히 밝은 달을 보며 두 손 모아 마지막 소원을 빌었다. 모든 것을 앗아간 하늘이 제발 그 하나의 소원만은 들어주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내가 진심으로 하나뿐인 손자에게 바라는 건
시종일관 학문을 완성하여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 것.
『양아록養兒錄』 해설
『양아록』은 『묵재일기(默齋日記)』로 유명한 이문건이 손자를 양육하면서 겪었던 일과 느낌을 기록한 책이다. 조선 시대를 통틀어봐도 조부가 손자 양육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사례는 매우 드물다. 한두 해의 기록이 아니라 16년 동안의 기록임을 감안하면 유일무이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겠다. 그만큼 이문건은 손자인 숙길에게 많은 것을 기대했다. 그가 가졌던 기대의 폭은 갓 태어난 숙길을 위해 쓴 축원문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대를 이를 맏아이를 내려주셨으니 이것은 천세의 경사를 연 것이며, 가통을 계승하는 것이며, 만복의 근원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잇고 잇고 또 잇고 이어서 가문을 끝없이 보존하고, 자자손손 세대를 유지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여 주소서. 신 등은 전율과 지극한 두려움을 이길 수 없어, 삼가 백배하며 글을 지어 위로 비옵니다.
숙길은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의병을 일으켜 상을 주려 했으나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는 기록만이 전한다. 이문건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가 몹시 궁금하다.
* 인용된 글은 이상주가 옮긴 『양아록』(태학사)에서 가져왔다. 이문건과 『양아록』에 대한 정보 또한 전적으로 이 책을 통해 얻었다.
- 설흔(『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공저)』,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저자)
- 출처 : 기획회의 303호(2011년 9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