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동화 - 첫번째 이야기
< 두 얼굴 >
한 다리를 저는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어느 날 냇가에서 물에 떠내려오는 흰구름을 보았다.
소녀는 항아리 속에 흰구름을 물과 함께 떠 담아가지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아무도 몰래 흰구름을 우물 속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는 기쁜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면 우물가로 나가서 흰구름하고 이야기하며 지냈다.
하루는 흰구름한테 물어보았다.
"어떻게 살면 행복해지니? 알고 있다면 말해다오."
"좋아, 내가 깨닫게 해주지."
흰구름이 일어나서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자 우물 속이 빈 화면이 되었다.
동전 하나가 나타났다.
양쪽 얼굴이 각각 다른 동전이었다.
한쪽은 웃는 표정이었고, 한쪽은 찌푸린 표정이었다.
동전은 때굴때굴 굴러서 뜨락에 섰다.
"볕이 드는군. 고맙기도 해라."
웃는 얼굴이 말하자 찌푸린 얼굴이 투덜거렸다.
"무슨 놈의 햇볕이 이렇게 시들해. 활짝 좀 쏟아지지 못하구서."
바람이 불어왔다. 단풍잎을 흔들었다.
웃는 얼굴이 말했다.
"상쾌한 바람이야. 산너머의 소식이 단풍물을 들이네."
찌푸린 얼굴이 말했다.
"빌어먹을, 웬 바람이 이렇게 차담."
동전은 때굴때굴 굴러서 언덕 위로 올라갔다.
찌푸린 얼굴이 말했다.
"먹지 못하는 풀이 왜 이렇게 많아."
웃는 얼굴이 말했다.
"여기에 더덕이 있고, 저기에 고들빼기가 있네."
해가 서산 마루에 걸렸다.
웃는 얼굴이 감탄했다.
"아, 저 해 지는 아름다운 풍경 좀 봐. 이제 또 별을 보는 기쁨이 오겠네."
찌푸린 얼굴이 말했다.
"해가 청승맞게 지는군. 지긋지긋한 밤이 또 오겠지."
돌아오는 길에서 웃는 얼굴이 말했다.
"한 다리가 성하니 나는 행복하다. 어머니가 계시니 행복하다. 코로 향기를 맡을 수 있으니 나는 행복하고, 뜨거운 물을 마실 수 있으니 또한 행복하다."
찌푸린 얼굴이 말했다.
"한 다리를 저니 나는 불행하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니 더더욱 불행하다. 왼쪽 귀가 약간 멀었으니 나는 불행하고 찬물을 마셔야 하니 역시 불행하다."
소녀는 우물에 기대어 잠깐 잠이 들어 있었다.
소녀의 얼굴이 웃는 표정이 되어 우물 속에 떠 있었다.
흰구름이 살며시 소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다.
...............혹 지금 당신의 얼굴은 찌푸려 있지 않나요 ?
생각하는 동화 - 두번째 이야기
< 멀리 가는 향기 >
향원정(향원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마음이 청청한 사람이면 누구든 이곳에서 아름다운 향기를 대할 수 있다는 말이 전해져 오는 정자였다.
어느 날 어진 임금께서 길을 가다가 이 정자에서 쉬게 되었다.
이때 미풍에 얹혀 슬쩍 지나가는 향기가 있었다.
기가 막힌 향기였다.
임금은 수행 신하들을 불러서 부근에 피어 있는 여러 꽃을 꺽어 오도록 했다.
신하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향기가 좋기로 소문난 꽃들을 한가지씩 가지고 왔다.
모란, 난초, 양귀비...
그러나 임금은 꽃을 하나하나 코에 대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임금은 궁으로 돌아가서 향감별사를 불렀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향원정이라고 하는 정자에서 일찌기 대해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향기를 만났었다. 경은 지금 곧 그곳으로 가서 그 향기가 어디의 어느 꽃의 것인지를 알아오도록 하여라."
향감별사는 그날부로 향원정에 가서 머물렀다.
날마다 코를 세우고 임금을 황홀케 했다는 그 향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향기는 좀체로 나타나지 않았다.
간혹 바람결에 묻어오는 향기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향감별사가 아니더라도 쉽게 알아맞힐 수 있는 향기였다.
작약꽃이며, 수선화며 찔레꽃의 향기들.
여름철이 지난 뒤 향감별사는 실망하여 일어났다.
그러나 얼른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는 시름없이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서서 먼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처마끝의 풍경처럼 세상만사를 놓아버리고 하늘가를 떠가는 흰구름에 마음을 실었다.
그 순간이었다. 코를 스치는 향기가 있었다.
향감별사로서도 평생 처음 대해보는 아름다운 향기였다.
'아, 이 향기가 임금님을 황홀케 한 향기로구나.'
향감별사는 서둘러서 바람이 불어오는 서녘을 향해 걸었다.
들판을 지나서 산자락을 헤매었다.
강나루를 돌아 마을을 뒤졌다.
그러나 좀체로 그 향기를 가진 꽃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 사흘째 해가 저문 저녁때였다.
꽃을 찾아내지 못한 향감별사는 힘없이 향원정으로 돌아왔다.
굳이 알아내야겠다는 욕심을 포기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뒷개울에서 몸을 씻고 정자에 앉았다.
솔바람이 소소소 지나가자 둥근달이 떠올랐다.
저만큼 떨어져 있는 바위로부터 도란거리는 새소리를 그는 들었다.
'저 작은 새는 이 고요한 달밤에 누구와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 ?'
새가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 향감별사의 눈에 풀 한포기가 비쳤다.
그것은 이제껏 헛보고 지냈던 바위틈에 있었다.
향감별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빛 속을 걸어 바위 가까이 다가서보니 풀이 좀더 잘 보였다.
그런데 서너 갈래의 풀잎 사이로 고개를 숙이고 숨는 희미한 점이 있어 그를 안타깝게 했다.
이때였다.
먼 하늘 깊은 곳에 있는 별빛인지, 가늘고 맑은 바람이 한줄기 흘러왔다.
그러자 보라, 풀섶 사이에서 작은 꽃이 갸우뚱 고개를 내밀다가 들킨 향기를.
바로 그 황홀한 향기가 아닌가.
향감별사는 임금 앞에 돌아가서 아뢰었다.
"그 향기는 화관이 크고 아름다운 꽃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또 멀고 귀한 곳에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굳세게 살고 자기 빛을 잃지 않은 작은 풀꽃이 지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그 향기는 보는 이의 마음이 청청할 때만이 제대로 깃들 수 있기 때문에 좀체로 만나기가 어려울 뿐입니다."
당신 마음의 향기는...
생각하는 동화 - 세번째 이야기
< 왜 그는 독수리가 못 되었나 >
- 인디언 민화에서
어떤 개구장이가 산에 갔다가 독수리 알 하나를 주워 왔습니다.
개구장이는 마침 알을 품고 앉아 있는 암탉의 둥지 속에 독수리 알을 집어넣었습니다.
한달이 지나자 여러 병아리들과 함께 새끼독수리도 부화가 되어 나왔습니다.
다른 병아리들과는 달리 몸집이 크고 부리와 발톱이 날카로울 뿐만 아니라 깃털이 별났기 때문에 새끼독수리는 자랄수록 고민을 더하였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험하게 생겼을까 ?'하고.
새끼독수리는 닭장을 뛰쳐나갈 것을 궁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입부리와 발톱이 어디에 소용되는 지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겨드랑 밑이 근질거리는 것이 날개가 돋으려고 그러는 것인 줄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새끼독수리는 그저 자신이 '병아리려니'하고 다른 병아리들이 하는 짓을 따라 하며 지냈습니다.
낟알을 쪼아 먹는 데에 부리를 사용했고 벌레를 찾느라고 발톱으로 땅을 헤집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병아리들한테서 따돌림을 받지 않으려고 돋아나오는 날개를 자신의 부리로 짓찧었습니다.
어느 날 밤, 들쥐떼가 닭장을 습격해 왔습니다.
닭장은 금방 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닭들은 모두 독수리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쥐떼가 무섭게 느껴지기는 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미 발톱과 부리는 닳아지고 눈망울에도 힘이 하나도 없어,
닭이나 진배 없었으니까요.
다른 닭들과 함께 독수리도 우왕좌왕 도망다니다가 날이 밝았습니다.
닭들은 일제히 독수리를 손가락질 하면서 미워 하였습니다.
'저건 몸이 큰 먹충이일 뿐이지, 아무 것도 아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닭장 속의 독수리도 닭들과 함께 많이 늙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독수리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높이 나는 위용있는 새를 보았습니다.
매섭게 생긴 부리, 갈퀴처럼 보이는 발톱, 우아하고 멋진 날개...
부라리고 있는 그 새의 눈 아래서는 들쥐뿐만이 아니고 피하지 않는 짐승이 없었습니다.
'아, 저렇게 멋진 새도 있구나.'
초라하게 늙은 독수리가 중얼거렸습니다.
그러자 그의 친구 닭이 독수리를 점잖게 타일렀습니다.
"응, 저건 독수리라는 새다. 날개 있는 새들 중에서는 왕이지. 그러나 넌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넌 들쥐한테도 쫓겨다니는 닭이니까 말이야."
혹시 당신은 독수리가 아닐까요 ?
생각하는 동화 - 네번째 이야기
< 기적 >
젊은이는 기적을 보고자 하였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그의 평범한 나날이 그에게는 불만이었다.
해가 뜨고 지고, 바람이 일다가 자고, 간혹 비가 오다가 그치고...
어제와 같은 오늘이, 오늘과 같은 내일이 그는 불만이었다.
젊은이는 날마다 기적을 일으킨다는 도인을 찾아 나섰다.
물어서, 물어서 도인이 '도중도'라는 외딴 섬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젊은이는 그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포구에 이르렀다.
때마침 바다에는 폭풍경보가 내려져 있었다.
객선은 닻을 내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하염없이 선창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젊은이는 여인숙을 찾아갔다.
배가 출항할 때까지 묵어갈 방을 얻었다.
그 방은 여인숙의 문간에 딸려 있었다.
그것도 먼저 들어 있는 손님과 합숙해야 할 처지였다.
젊은이는 선객과 인사를 나누었다.
"도중도에 사는 김영감이올시다."
"내륙에 사는 이총각입니다."
젊은이는 지루하고 답답했다. 낮잠을 한숨 늘어지게 잤다.
잠에서 깨어보니 바람에 아직도 문간이 덜커덩거리고 있었다.
노인을 찾아보았다.
노인은 개울가에서 속옷이며 양말 등을 빨고 있었다.
"날씨가 나쁜데 무슨 빨래를 합니까 ?"
"빨래는 바람에 더 잘 마르는 걸요."
노인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이튿날도 바다는 파도의 뉘로 하?R다.
젊은이는 안달 끝에 선술집을 찾았다.
술에 젖어서 돌아와 보니 노인은 웃목의 씨고구마 동이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것은 주인네가 할 일이 아닙니까 ?"
"누가 하든 우리의 생명을 늘이는 일인걸요."
사흘째 되는 날에야 폭풍경보가 풀렸다.
바람이 자고 해가 높이 떠올랐다.
노인은 속옷을 갈아 입었다. 양말을 바꿔 신었다.
들창을 열어서 볕을 들였다.
씨고구마 동이에서 새순이 쏘옥 나왔다.
그러나 젊은이한테는 여전히 맛없는 하루였다.
어제와 다름없이 여전히 발에서는 고린내가 났고 내장 속에서는 술트림이 올라왔다.
여인숙을 나서면서 노인이 물었다.
"젊은이는 왜 그 섬에를 가자고 합니까 ?"
"도인을 만나고자 해서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 도인을 만나려 하십니까 ?"
"날마다 기적을 행하고 있다니 그것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입니다."
노인이 선창 쪽으로 발을 옮겨놓으면서 말하였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기적을 보았소이다. 어디서나 지금에 최선을 다하여 의롭게 살면 그날이 곧 기적의 새날이요, 그렇지 못하면 반복의 묵은 날입니다. 이번에 나와 함께 지낸 사흘이 당신이 보고자 한 그 도력의 전부이니 따로 더 볼 것이 없습니다. 그만 돌아 가시구려."
당신은 기적의 삶을 살고 있으십니까 ?
생각하는 동화 - 다섯번째 이야기
< 이실 직고 >
무조건 '옳습니다'로 출세하려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옳습니다'만을 사랑하는 윗분들이 있다면.
이조 숙종 때의 일이다.
당하관 벼슬에 있던 이 관명이 어사(어사)의 직함을 갖고 영남지방 사찰을 나갔었다.
이 관명이 돌아가자 임금은 그를 불러 물었다.
"그래, 그대가 이번에 돌아본 염남은 어떻던가요? 관리들이 민폐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마음이 곧은 이 관명은 어떤 후궁의 소유로 되어 있는 섬에 대해 이실직고하였다.
"황공하오나 한 가지만 아뢰옵나이다. 통영 관할밑의 섬 하나가 어인 일인지 대궐식구 가운데 한 분의 소유로 되어 있었습니다. 고로 그 섬은 관리의 수탈이 어찌나 심한지 백성들의 궁핍을 차마 눈으로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임금은 화를 벌컥 냈다.
철여의를 들어 책상을 내리쳤다. 책상이 박살이 났다.
"내가 그 조그만 섬 하나를 후궁에게 준 것이 그렇게도 불찰이란 말이오!"
이 관명은 그러나 태연자약하였다.
"그 일로 저를 그리 탓하신다면 물러나겠습니다. 파직하여 주시옵소서."
임금은 더욱 목청을 높였다.
"그만둘 테면 그만두시오!"
임금은 승지에게 당장 전교를 쓰라고 명하였다.
승지는 당황한 빛으로 붓을 들었다.
"전 수의어사 이 관명에게 부제학을 제수한다."
승지는 의외의 분부에 놀라면서 교지를 써내려 갔다.
임금의 명은 계속되었다.
"또 한장 쓰시오.
부제학 이 관명에게 홍문제학을 제수한다."
"또 한장 쓰시오.
홍문제학 이 관명에게 호조판서를 제수한다."
이리하여 감투가 달아날 줄 알았던 이 관명은 도리어 삼계급 특진이 되었다.
임금은 이 관명을 가까이 불러 말하였다.
"경의 충간으로 내 잘못을 깨달았소. 법 앞에는 어느 누구도 평등하오. 앞으로도 그와 같은 신념을 변치 말고 일해 주기 바라오."
당신은 바르지 못한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는 않습니까?
생각하는 동화 - 여섯번째 이야기
< 어느 날 갑자기 >
남들처럼 열심히 '마련하기 위하여' 살아가는 이씨.
전세방을 얻기 위하여, 칼라 텔레비전을 가지고자, 냉장고를 사고자, 마침내 집을 장만하고자, 앞선 친구의 뒤통수만 바라보고 달려온 우리 가운데의 한 사람.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두통이 일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한 고통이었다.
약국에 가서 약을 지어 먹어 보았으나 효과는 별로였다.
직장 동료의 권고에 따라 종합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았다.
평소 안면이 있는 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나타났다.
"아직 단정적으로 말씀드리기에는 이르지만..."
"그럼 암이란 말입니까?"
"결과는 사흘 후에 나옵니다. 그렇게 속단하진 마십시오."
"다 압니다. 친구가 나 같은 증상을 보인 지 여섯달 만에 갔지요."
의사 앞에서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병원을 나서면서부턴 동료의 부축을 받아야만 했다.
집에 와서 돌아보니 자신의 삶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 평화보다는 불안이 많았던 나날.
몇 쪽 보다가 남긴 책이며, 항시 내일로 미루어 온 여행이며, 마저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 해야 할 일들이 많고도 많았다.
그것들을 6개월 내에 완료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3년만 더 살게 된다면 몰라도. 아니, 생명이 1년만 더 연장된다면...
그러나 그한테는 이미 하루가 넘어가 버린 5개월 29일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한번 멋지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죽게 되다니...'
그는 신이 원망스러웠다.
'왜 나에게는 이 세상의 행복을 단 한번도 맛보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이불섶이 흥건히 젖도록 울었다.
사흘 후, 이씨는 입원 준비를 하여 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빙그레 웃으며 나타나 그에게 말했다.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제는 제가 오진을 했었습니다.
엑스레이 필름을 다시 검토해 보니 그것은 암세포가 아니라 작은 종양이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물결치듯이 밀려드는 햇살을 느꼈다.
어느 하루 뜨지 않은 적이 없는 태양이건만 이때처럼 해가 찬란하게 느껴졌던 적은 일찌기 없었다.
그는 밖으로 나왔다.
돌 틈에 피어 있는 냉이꽃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오, 네가 거기 있었구나.'
그는 허리를 구부렸다. 그러자 풀꽃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저도 여기 있어요' '저두요' 하고.
그는 풀꽃들에게 일일이 입을 맞추었다.
"그래 너희들이 거기 있었는데 나만 모르고 지냈구나. 미안했었다."
상쾌한 봄바람이 살짝 그의 머리칼을 흔들었다.
'오, 너도 여기 있었구나.'
그는 바람을 소중히 손바닥에 받아든 듯이 하여 들이켰다.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공기 한 모금.
'아, 이처럼 단 공기를 이제껏 내가 모르고 지냈었다니, 정말 죄송한 일이었어.'
그는 그제서야 행복을 제대로 알아본 것 같았다.
의사가 그의 곁에서 말했다.
"위기의 고비를 넘긴 사람은 대개가 당신과 같이 이 순간이 인생의 첫걸음인 것처럼 감격하고 다짐을 새로이 하지요. 허나 그것도 작심 사흘입니다. 며칠 지나면 다시 자기가 무한하게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고 몰염치해집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꼭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를 당신의 최초의 날인 동시에 최후의 날인 것처럼 생각하고 사십시오."
가장 소중한 것은 당신 앞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당신 옆에 있습니다.
생각하는 동화 - 일곱번째 이야기
< 새벽 달빛 >
그가 아이였을 때 새벽달은 종종 보았다.
마루 끝에 서서 길게 달빛 같은 오줌을 누던 것을.
간혹 어머니한테 들켜서 꾸중을 들었으나 그는 이런 핑계를 대곤 했다.
"달빛하고 누가 더 하얀지 보려구요."
소년이 되자 그는 집이 가난하여 우유배달을 하였는데 그때에 새벽달하고 가장 정이 들었었다.
어떤 날은 윗사람으로부터 야단을 맞고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기도 했었다.
그러면 달빛은 하얀 손수건처럼 그의 뺨 위에 내려서 그를 위로하곤 했다.
청년시절에도 그는 새벽달과 친히 지냈다.
도서관에를 새벽달빛 속에서 찾아가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어느 날 그는 새벽달한테 주먹을 쥐어 보이며 다짐을 했다.
"두고 봐라, 난 반드시 이루고 말테다."
그런데 그가 머리를 빗어 넘기고 넥타이를 매면서 부터였다.
그가 점점 새벽달한테 보이지 않게 된 것은.
그것은 실로 우연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호텔의 옥상 위로 새벽달이 지고 있었는데 어느 방의 창가에 그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속옷 바람의 여자가 있었다.
"아하, 결혼을 한게로군."
새벽달은 빙그레 웃었다.
그날 이후로 십 수년은 그를 통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새벽달이 도시의 골목을 비추고 있는데 그가 술에 젖어서 전신주에 기대 서 있었다.
그 동안에 그가 변한 것은 약간의 대머리와 약간의 배불뚝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혀가 굳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혀엉편 없는 노옴이야... 어머니, 어머니 하안 분도 제대로,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있어..."
십 수년이 또 지났다.
어느 날 무심히 새벽달은 어떤 병원의 창을 넘어다보다 말고 깜짝 놀랐다.
파리해진 그가 병실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새벽달빛이 고여들자 그것이 홑이불인 줄 알고 헛손질을 하던 그가 문득 눈을 떴다.
그가 반기는 것을 새벽달은 참 오랜만에 보았다.
그가 힘없이 말했다.
"나는 그동안 너무도 헛살아 온 것 같아. 내 삶을 내 식으로 살지 못하고 남의 눈치에 맞춰 남의 식으로만 살아 온 거야. 작은 것도 서로 나누어 가지면서 사람답게 살고자 한 것이 나의 청년 시절의 꿈이었는데..."
오랜만에 열린 그의 가슴속으로 새벽달빛이 조용히 흘러 들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 보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되 편안함과 타협하지 말고 명예를 지나치게 탐하지 말게나. 그리고 간혹 숨을 멈추고 우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새소리 한낱, 바람소리 한낱이 때로는 소중한 기쁨을 주기도 할걸세."
다음날 새벽달이 그를 찾아가 보니 그의 침대가 텅 비어 있었다.
새벽달빛만이 침대 위에 쓸쓸하게 있다가 돌아갔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만나게 될는지...
아니면, 어느 공동묘지에서 그의 묘비를 발견하게 될는지...
당신은 주위를 둘러볼 사이도 없이 숨가쁘게
세상을 살고있지는 않습니까?
생각하는 동화 - 여덟번째 이야기
< 어떤 광대 >
강화도에 살던 떠꺼머리 총각이 어느 날 임금 자리에 올랐다.
때마다 신선로 음식을 들고 밤마다 비단침구 속에서 잠을 잤다.
어린 아이 다루듯 자리에서 일어나면 예쁜 궁녀들이 옆에서 부축을 했고, 손에서 손을 건너오지 않는 물건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알아서 하라" 해도 "황공하옵니다"
"모르겠소" 해도 "황공하옵니다"
"자고 싶다" 해도 "황공하옵니다"
수많은 신하들이 그저 머리를 조아리고 "황공하옵니다"만을 연발했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아서 우쭐거리던 어깨도 달이 가고 해가 바뀌자 시들해졌다.
신선로에 밥을 먹으나 된장국에 밥을 먹으나 한끼 때우기는 마찬가지.
비단침구로 잠을 자나 누더기 이불로 잠을 자나 하룻밤 잠자기는 마찬가지.
임금님은 '속이 답답하다'고 짜증을 내었다.
눈치 빠른 신하들이 궁녀들을 바꿔 들여보냈다.
임금님은 꽥 소리를 질렀다.
"여자들한테도 지쳤다. 달리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 다오."
신하 하나가 저자거리에 나가서 소년 광대를 데려왔다.
요즘 말로 하면 코메디언인 이 소년 광대는 대궐에서 쓰는 말하고는 전혀 반대의 말을 해서 임금님을 웃겼다.
내시를 가리켜서 "저건 고자다" 그러면 임금님은 으하하.
풍채가 좋은 대감을 가리켜서 "저건 배불뚝이다" 마찬가지로 임금님은 으하하.
임금님 말을 척척 받는 대감을 가리켜서 "저건 아첨꾼이다" 역시 임금님은 으하하.
임금님이 물었다.
"그럼 나는 누구냐?"
소년 광대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당신이야 뭐, 황공하옵게도 임금옷을 빌어 입은 허수아비지."
임금님은 표정이 돌변했다.
"여봐라! 저놈을 당장 끌어내어 목을 베어라."
그러자, 이번에는 소년 광대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임금님의 노여움이 상투 끝에까지 올랐다.
"이놈아! 왜 웃느냐?"
소년광대가 말했다.
"그럼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습니까? 바른 말로 남을 놀릴 땐 돈을 주고, 바른 말로 자기를 놀릴 땐 벌을 주다니, 이보다 더 웃기는 광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듣기 싫다, 이놈!"
임금님은 주먹으로 탁자를 꽝 내리쳤다(이것은 강화도 떠꺼머리 총각이 임금자리에 오르고 나서 처음으로 자기 손을 자기 마음대로 써본 역사적인 일이었다).
글쎄요, 그 다음에 소년 광대를 사면해 주었는지, 처형해 버렸는지 그것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깁니다.
임금의 옷을 입은 허수아비는 바로 당신일 수도 있습니다.
생각하는 동화 - 아홉번째 이야기
< 성 묘 >
소년의 아버지는 술망태였다.
항시 뿌연 막걸리 자국이 옷섶에서 지워질 날이 없었다.
소년의 은근한 자랑은 학교의 사친 회장이 같은 마을에 사는 숙이 아버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년의 부끄러움은 술망태가 그의 아버지라는 사실이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숙이네에 가서 품을 팔았다.
숙이 아버지가 지나가면서 "돼지가 왜 저 모양이야?"
하고 혼잣말만 해도 소년의 아버지는 갈퀴 같은 손으로 돼지의 등을 득득 긁곤 했다.
세밑이었다.
숙이네에서 돌아올 아버지를 소년은 밤늦게까지 기다렸다.
지게뿔에 소년의 새 신발을 달아매고 김이 나는 떡함지를 지고 돌아올 아버지를.
그러나 소년의 아버지는 온통 머리 끝까지 술에 젖은 채 빈 지게로 돌아왔다.
짚가리에 쓰러지면서 주정을 했다.
"이젠 자식을 깔머슴으로 들여보내라고...흥."
설날 아침은 차고 맑았다.
소년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쓰시던 탕건과 갓을 찾아 썼다.
버선을 신고 대님을 치면서 말했다.
"우리집도 뼈대가 있는 집안이다. 그 센 뼈를 부드럽히려고 내가 술을 과히 들었지만서두..."
성묘를 마치고 재를 넘어 올 때였다.
소년의 아버지가 조끼 주머니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었다.
그것은 고구마였다.
소년은 아버지가 건네주는 고구마를 솔밭 속에다 던져버렸다.
"설날에 고구마 먹는 집이 어디 있는가요? 나는 숙이네에 가서 깔머슴을 살면서 떡 먹을라요."
소년의 아버지가 눈 덮인 먼산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는 올 설이 어느 해보다도 자랑스럽다. 비럭질해서 떡 싸들고 온 날보다도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명심해 두어라. 부자집 개로 발끝에 채이면서 사는 것보다도 못 먹더라도 내 맘 지니고 사는 것이 조상님께는 떳떳하구나."
이번에는 소년이 아버지가 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왔다.
떡을 잘못 먹고 배탈이 났는지 아이가 칭얼대었다.
솔밭 속으로 아이를 들여보내 놓고 나자 고구마 내음이 솔밭으로부터 흘러나왔다.
'아아, 아버지.'
소년은 가슴 위에 두 손을 모았다.
올 설에도 먼산 봉우리는 눈을 이고 있었다.
당신은 부모님의 사랑을 얼마나 알고 느끼십니까?
생각하는 동화 - 열번째 이야기
< 일곱 금단지 >
- 라마크리슈나 우화에서
임금님의 이발사가 있었다.
하루는 유령 붙은 나무를 지나가는데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내게 황금이 일곱 단지 있는데 갖고 싶지 않니?"
이발사는 사방을 두리번 거리다가 아무도 안 보이자 얼른 대답했다.
"갖고 싶고 말고요. 주시기만 한다면야!"
"그럼 얼른 집으로 가봐. 안방 광 속에 틀림없이 있을 테니까."
이발사는 단숨에 집으로 달려가서 광을 열어보았다.
과연 광 속에는 황금 일곱 단지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섯번째 단지까지는 황금이 가득가득 차있는데 일곱번째
단지가 반밖에 차 있지 않았다.
이발사는 반만 찬 단지를 황금으로 마저 채울 것을 궁리했다.
반밖에 차지 않은 단지가 불만이었다.
이발사는 자기 집에서 값이 나갈 만한 물건을 모두 내다 팔았다.
그 돈을 금으로 바꾸어서 반밖에 차지 않은 단지에다 쏟아 넣었다.
그러나 반단지는 매양 반단지였다.
이발사는 허리띠를 졸라 매었다.
먹을 것을 적게, 그것도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쓸 것도 쓰지 않는
구두쇠 중에서도 왕초 구두쇠가 되었다.
물론 반단지를 마저 채우기 위하여.
그런데도 반밖에 차지 않은 단지는 매양 그대로였다.
이발사는 임금님께 봉급을 올려주십사 하고 간절히 청했다.
봉급이 배로 올랐다.
봉급을 몽땅 털어 금을 사서 단지 속에다 넣었다.
그러나 반단지는 반단지일 뿐.
이발사는 동냥질까지 나섰다.
오직 반단지를 마저 채울 욕심으로.
이발사의 여위고 궁상맞은 꼴이 임금님의 눈에도 역력하게 드러났다.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느냐? 전에는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흡족해 하더니 요즘은 걸신 들린 사람 같구나. 혹시 너 일곱 금단지를
가진 게 아니냐?"
이발사는 깜짝 놀랐다.
"내가 황금 일곱 단지를 가졌다는 걸 누구한테서 들으셨읍니까? 폐하!"
임금님은 껄껄 웃었다.
"일찌기 나도 그 유혹을 받은 적이 있었거든. 허나 그때 난 그 황금을
내가 써도 좋다거나 아니면 그냥 그대로만 저장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지. 그랬더니 유령은 두말 없이 사라져 버리더구나. 너도 지금
당장 가서 그걸 되돌려 주도록 하라. 그러면 전처럼 다시 행복해질
것이니라."
당신 마음에 빈 공간이 있다면 그대로 두십시요.
그 여유만큼 모든걸 포용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여분의 공간이 당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말해주니까요.
생각하는 동화 - 열한번째 이야기
< 좀나방과 꽃나방 >
- 제임스 더버 우화에서
옷장 속에 좀이 있었다.
좀은 털 외투를 갉아 먹었고, 순면 속옷을 갉아 먹었다.
배가 부르면 비단 틈에서 잠을 잤고 눈이 떠지면 입맛 당기는
옷들을 찾아다녔다.
먹다보니 어느 틈에 나이가 찼다.
좀은 한숨 늘어지게 잠을 잤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어깨에 날개가 돋아 있지 않은가!
이때부터 좀나방은 먹는 것보다는 가슴 두근거리는 것에 더 신경이
쓰였다.
어느 날, 옷장문이 열린 틈을 타서 좀나방은 바깥으로 나왔다.
좀나방의 앞에 금빛 찬란한 빛살이 부서지는 유리창이 나타났다.
그 유리창의 바깥 쪽에서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꽃나방이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좀나방은 파도처럼 이는 욕정을 느꼈다.
"얘, 나하고 살림 차리지 않을래?"
좀나방이 말을 걸었다.
"가서 수의(수의)나 파먹지 그래."
꽃나방이 핀잔을 주었다.
"나한테 시집을 와봐. 밍크코트 맛을 보여 줄 수가 있어."
좀나방이 으시대었다.
그러나 꽃나방은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는 꽃과 저녁 놀만으로 충분해."
"정신 좀 차려라. 이집 주인의 연미복을 뜯어 먹는 맛을 알기나 하니?"
"한심스럽다, 얘. 그것을 먹는다고 안 죽니? 그렇게 먹기 위해서
살아?"
"나는 파란 하늘과 감미로운 바람 속을 날아서 작은 풀꽃들을
사랑하는 기쁨으로 산다."
좀나방은 투덜거리면서 돌아섰다.
"너같이 시시한 것들은 내 배필이 될 수 없어. 가서 쌀나방한테나
장가 들어야겠다."
꽃나방이 활짝 날면서 말했다.
"무엇이 진짜인지 모르고 사는 불쌍한 녀석아, 계속 먹고 먹다가
끝나거라."
진정한 삶이란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주위의 모든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일때 완성되는게 아닐까요.
생각하는 동화 - 열두번째 이야기
< 한없이 주는 땅 >
보름달만한 서 마지기의 땅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땅에는 사랑하는 농부가 있었다.
농부는 땅을 끔찍이도 사랑했다.
봄이면 씨를 뿌리고 여름이면 거름을 내었다.
쉬임 없이 김을 매고 가뭄때는 물을 길어 ??다.
한가할 때는 소를 몰고 와 풀을 뜯기면서 버들피리를 불기도 했다.
어떤 때는 잔디밭에 누워 낮잠을 자기도 했다.
재 너머 교회에서 종이 울려오면 일하다 말고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하여 가을이 오면 추수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측량기사들이 나타나면서부터 땅의 주인은 변하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도시로 빠지는 길이 뚫리자 땅값이 치솟았던 것이다.
선량하기만 하던 주인한테 불평이 늘었다.
드디어 주인은 괭이를 내던지며 말했다.
"농사는 지겨워서 못 짓겠다. 장사를 해야지. 널 팔아서 밑천을 삼겠다."
서 마지기의 땅은 반달만 하게 남았다.
그리고 주인은 통 나타나지를 않았다.
땅은 황폐해졌다.
그러나 주인을 기다리는 마음은 변치 않았다.
어느 날 주인이 불쑥 나타났다.
그러나 예전의 순박한 모습은 아니었다.
배가 불룩 나왔고 두리번거리는 눈에는 탐욕의 빛이 가득했다.
"널 마저 팔아야 겠다. 차도 사고 새 장가도 들어야겠어."
땅은 또 없어졌다.
남은 것이라곤 하현달만한 비탈진 언덕뿐.
오랜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억새가 무성한 언덕 밑에 영구차가 와서 섰다.
영구차에서는 관이 내려졌다.
그 관은 땅이 기다리고 있는 주인의 것이었다.
"결국 이렇게 돌아오고 마는 것을 그렇게 큰 욕심을 내고 방황하고
다니다니..."
땅은 가슴을 열고 사랑하는 주인의 시신을 맞아 들였다.
한 점 흰구름이 새로 생긴 무덤 위에서 오래 오래 머물었다.
욕심은 끝이 없는 법. 삶이란 공수래 공수거.
작은 것에 만족을 느낄때 진정한 행복을 찾을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에 만족을 느끼십니까?
생각하는 동화 - 열세번째 이야기
< 살아있는 구유 >
왕이 있었다.
왕은 방을 써서 나라의 곳곳에다 붙였다.
'섣달은 별이 내리는 달이다. 각자가 별을 받을 구유를 하나씩
지어와서 심사를 받도록 하여라.살아 있는 구유로 판정이 내려진
사람에게는 상을 주겠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구유를 만드는 데 정신이 없었다.
서로가 더 나은 구유를 만들기 위해 재료 경쟁이 치열했고
솜씨 싸움 또한 볼 만하였다.
종을 지을 때처럼 주물로 구유를 빚는 부자도 있었고 대리석으로
구유를 조각히는 예술가도 있었다.
어떤 권력가는 몇백 살이나 먹은 향나무를 도벌해 와서 구유를
만들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치장 붐까지 일어나서 구유에 금도금을 하는가 하면 아름다운
문양을 새겨 넣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쪽에 비단을 대어서 우아하게들 꾸몄다.
심사일이 다가오자 응모자들은 모두 들떠서 술렁거?풔?.
전시장에다 각자가 만들어 온 구유를 내다놓고 가슴을 조였다.
왕이 몸소 전시장에 와서 구유를 살폈다.
그런데 왕의 심사방법이 아주 특이했다.
가슴 속에서 빛나는 별을 꺼내어 구유에 살며시 놓아보는 것이었다.
왕은 주물로 빚고 금도금을 한 구유 속에다가 별을 놓았다.
그러자 별은 구유 속에서 이내 굳어져 쇠인형으로 변하였다.
왕은 고개를 저었다.
다음에는 대리석 앞으로 갔다.
별을 꺼내어서 대리석 구유 속에 넣었다.
그러자 별은 돌이형으로 변하였다.
왕은 고개를 저었다.
향나무로 구유를 만든 권력가의 가슴이 부풀었다.
이제 자기의 구유에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왕이 가까이 오자 그의 호흡은 심하게 거칠어졌다.
왕이 자기의 향나무 구유에다 별을 놓을 때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애석한지고!
별은 향나무 구유에서 조차 볼품없는 인형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나무인형이라는 것일 뿐.
별이 변하기는 어느 구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쇠로 빚은 구유에서는 쇠인형으로, 돌로 만든 구유에서는 돌인형으로,
그리고 나무로 만든 구유에서는 나무인형으로 뻣뻣해지곤 했다.
궁으로 돌아가려던 왕은 문득 군중 틈에서 멈칫거리는 한 소녀를
발견했다.
왕은 조용히 말했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이리 나오너라."
소녀는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하면서 사는 넝마주의였다.
소녀는 날마다 쓰레기더미에서 차마 버리기 아까운 헌 나무를 주워
잇대어서 만든 구유, 조각천을 이어서 바닥에 깐 작은 구유를
안고 있었다.
왕은 넝마주의 소녀의 그 가난한 구유 속에 별을 놓았다.
그러자 보라! 갑자기 별이 숨을 쉬면서 거룩한 아기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왕은 기쁨에 넘쳐서 말했다.
"이리들 오라. 이 가난한 소녀의 구유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구유의 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유의 마음이 중요하다.
형식의 구유에서는 인형으로 있는 별도 정갈한 마음의 구유에서는
거룩하게 살아 움직인다. 이 태어남이 진짜인 것이다."
형식이 마음보다 중요한 것처럼 되어버린 세상에서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까?
생각하는 동화 - 열네번째 이야기
< 파멸의 조건 >
- 엔소니 드 멜로 예화에서
거짓 예언자와 참 예언자의 식별 방법.
거짓 예언자는 상대에게 듣기 좋은 말만을 한다.
참 예언자는 상대에게 듣기 싫어하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참 예언자가 있었다.
그는 틀린 적이 없는 그의 예언 때문에 감옥에도 자주 들어 다녔다.
어느 날 그는 '인류의 멸망 원인'을 밝히겠다고 했다.
알 만한 사람들이 모이자 그는 이렇게 말하고 들어가 버렸다.
첫 마음을 잃어버린 묵은 마음에 의해서
육체 대접에 비해 형편 없는 정신 대우
정치가들의 원칙 없는 정책
지도자들의 연민 없는 발전 추구
펜보다 강한 칼
일하지 않고 잘 살려고 하는 사고방식
시험만을 위한 배움
그리고 깨침 없는 예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생각하는 동화 - 열다섯번째 이야기
< 현 대 장 >
고구려시대에는 '고려장'이 있었고 현대에는 '현대장'이 있다 - 법정
소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간혹 다투었다.
처음에는 소년이 들을세라, 할머니가 들을세라 소리가 문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조심조심하며 투닥거렸다.
그러나 차츰 날이 감에 따라 부부싸움 소리가 점점 커졌다.
소년도 듣게 되고, 할머니도 듣게 되었다.
나중에는 담을 넘어가게 되었다.
"당신 어머닌 비위생적이어서 함께 못살겠어요."
"오늘 신경정신과에 다녀왔어요. 내 병명이 무엇인지 아세요?"
"......"
"당신 어머니가 남한테 망신사는 일만 저지르니 내가 노이로제에
걸릴 수밖에요."
날이 가면서 소년의 어머니는 할머니를 보면 고개를 돌렸다.
얼마 가지 않아서 소년의 아버지도 할머니방 앞을 무심히 지나쳤다.
어느 날 또 죽는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년의 어머니는 시퍼렇게 되어서 외쳤다.
"나를 택하든지, 당신네 어머니를 택하든지 둘 중 하나를 말해요!"
마침내 소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합의를 하였다.
할머니가 묵을 방을 하나 얻어서 내보내기로 한 것이다.
낙엽이 우수수 지는 날, 온 식구가 달려들어서 할머니의 이사짐을
꾸렸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워 물고 상자를 묶었고, 어머니는 고무장갑을
끼고 거들었다.
소년은 종이와 연필을 꺼내 와서 적었다.
헌옷장 1
전기장판 1
담요 1
밥통 1
어머니가 물었다.
"너, 왜 그런 것을 쓰니?"
소년이 대답하였다.
"다음에 어머니를 내보낼 때 내가 챙겨드릴 품목이에요."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입니다.
당신은 부모님을 슬프게 하지는 않으시는지요.
생각하는 동화 - 열여섯번째 이야기
< 훼방꾼들 >
악마들의 마을이 있다.
이 마을 악마들의 임무는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을 이루지 못하게
훼방놓는 일이다.
이 마을의 무수한 악마 중에서도 뻔질나게 인간세계로 드나드는
단골 악마는 다음과 같다.
나태의 악마이다.
그는 처음에 작은 것으로부터 사람을 유혹한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게 하는, 그리하여 백년 천년 살게 될 것처럼
늘 몸이 편하자는 대로 따르게 만든다.
다음은 관습의 악마이다.
대담하지 못하게, 깨우침이 없이 어제 하듯 오늘을 살게 한다.
그리고 일상에 젖어서 디스코나 고스톱 같은 것에 중독되게 만든다.
다음은 선심의 악마이다.
한 일보다 나타냄이 약간만 높은 것, 간혹 '재수 좋다'고 하게끔
공부한 것보다도 시험 점수가 약간 높고, 복권도 500원 짜리로
5,000원 짜리가 간혹 맞게 한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행운만 좇는 사람이게 한다.
다음은 교만의 악마이다.
쥐꼬리만한 앎을 가지고 황소머리만하게 드러내기 좋아하며, 좋다고
하는 쪽만 좋아하고 안된다고 충언하는 쪽은 절대로 싫어하게 한다.
다음은 망각의 악마이다.
지난날의 피맺힌 한을 시간 속에 묻어버리며 오늘의 강한 결심 역시도
적당한 구실로 풀어지게 하여 결국에는 마음 속에 뼈가 없는 사람이게
만든다.
다음은 애욕의 악마이다.
욕정이 불붙게 만들어서 모든 예지를 눈멀게 하고 온 몸과 마음을
그쪽에 빼앗기게 만들어 버린다.
오늘도 이 악마들은 눈코 뜰 사이도 없이 인간세계를 향해 달려들고
있다.
당신은 지금 어느 어느 악마를 맞이해 있는지...
악마들은 항상 당신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생각하는 동화 - 열일곱번째 이야기
< 작은 물 >
계절이 바뀌면서부터 높은산 바윗골에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흰구름이 자주 와서 맴을 돌았고, 바람이 골골이 찾아들어
티끌을 쓸어 갔다.
밤이면 별빛이 소록소록 재였고, 아침이면 안개가 해 뜬 뒤에까지도
자욱하였다.
어느 날, 밤중에 번개가 쳤다.
천둥이 울렸으나 비는 내리지 않았다.
두번 세번 번갯불이 스쳐간 뒤였다.
첩첩이 쌓인 바위틈이 바늘귀만큼 열리었다.
그리고 거기로부터 한 점 푸름이 비어져 나왔다.
물방울이었다.
터오는 먼동과 함께 물방울은 하나둘 모여서 작은 물줄기를
이루었다.
골안개밑으로 흐르면서 산삼 뿌리를 스쳤다.
사향노루가 딛고 간 발자국을 닦았다.
오랜 세월동안 비와 바람에 파여진 돌확이 나타났다.
작은 물은 거기에서 숨을 돌렸다.
바로 건너편에 깊은 골짜기가 있었다.
골짜기에는 한떼의 물이 모여있었다.
작은 물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 물이었다.
큰 물이 말을 걸어왔다.
"넌 왜 그렇게 작은 길을 가니?"
"왜? 이 길이 어때서?"
"그 길은 작기 때문에 험한 고생만 하게 돼."
작은 물이 물었다.
"네가 가는 길은 편해서 좋니?"
"그럼. 계속 넓어지니까. 그렇게 가다보면 강에도 이르고, 바다에도
이를 거 아냐."
"그게 너의 살아가는 뜻이니?"
"나한텐 뜻 같은 건 없어. 그냥 많은 친구들이 가는 대로 따라갈
뿐이야. 그러다가 한 세상 마치는 거지 뭐."
작은 물이 말하였다.
"나한테는 작지만 소중한 뜻이 있어. 이 길이 작고 험한 길이라
하더라도 끝가는 데까지 가볼테야."
작은 물은 길을 떠났다.
가파른 돌벼랑으로 길은 이어졌다.
숨이 차고 발이 아팠다.
그러나 쉬어갈 만한 틈이 없었다.
그치지 않고 흘러가야만 했다.
아래의 큰 물은 천천히 구비쳐 흐르며 산구비에 이르러서는 한참씩
머물기도 하는데.
하지만 작은 물의 몸만큼은 큰 물에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맑았다.
먼지 하나 끼지 않았고, 이끼 한올 슬지 않았다.
작은 물 앞에 낭떠러지가 나타났다.
작은 물은 곤두박질을 하며 아래로 떨어졌다.
아래는 작은 소였다.
소에서 나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었다.
하나는 큰 물로 합해지는 넓은 길이엇고, 하나는 숲속으로 간신히
열려진 좁은 길이었다.
아래편 여울에서 큰 물이 손짓을 했다.
"고생하지 말고 어서 이쪽으로 와.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그 길로 갔다가 다시 이쪽 길로 돌아올 수 있어?"
"그렇게는 되지 못해. 한번 합해지면 그만이야."
작은 물은 말하였다.
"그럼 나는 나의 좁은 길을 갈테야. 내 몸이 하나인데 왜 두 길을
넘보겠어"
좁은 길로 들어선 작은 물은 숲속으로 한참을 흘렀다.
전나무들이 뒤덮인 산모퉁이에 이르면서 힘이 다한 것을 느꼈다.
몇 구비를 지나서 움푹 패어진 바닥에 드디어 멈추어 서고 말았다.
"이제 나는 풀잎 하나를 밀어낼 힘까지도 모두 써버렸어.
비록 더 멀리 가지는 못하였지만 나는 나의 길을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왔어."
작은 물은 눈을 감았다.
이튿날, 눈을 떠본 작은 물은 놀랐다.
나무들과 풀꽃들이 작은 물을 빙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한 점, 흰 구름이 가슴 위에서 맴을 돌고 있었고 눈이 맑은 노루가
목을 축이고 있었다.
바위종달이가 부르는 노래를 작은 물은 들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당신이 가고자 하는 길은 어디입니까?
혹 큰 물이 아닙니까?
생각하는 동화 - 열여덟번째 이야기
< 올빼미 뒤를 따르다 >
- 제임스 더버 우화에서
별도 없는 캄캄한 한밤주에 올빼미 한 마리가 밤나무 가지에
앉아 있었다.
장난기가 많은 다람쥐 형제가 올빼미를 골려주려고 살금살금
다가가고 있었다.
"네 이놈들!"
올빼미가 근엄하게 한마디했다.
어둠 속에서 자기들을 보았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다람쥐
형제가 겁에 질려서 물었다.
"누굴 보고 그러시는 거죠?"
"너희들 두 놈을 보고 말한다."
다람쥐 형제들은 혼비백산해서 달아났다.
그리고는 아래 숲에 가서 떠들어댔다.
"저기 밤나무 위에 신령스런 새님이 계시다. 이 깜깜한 밤중에도
우리를 굽어보시고 우리들의 방종한 모든 것을 훤히 알고 계신다."
"어디 내가 가서 정말 그런가 한번 확인해 보겠다."
토끼는 깡총깡총 뛰어갔다.
올빼미한테 한쪽 귀를 늘어뜨리고서 물었다.
"제가 지금 어느 쪽 귀를 세우고 있지요?"
"이놈, 나를 시험하지 말아라. 왼편 귀를 구부리고서 무엇이
어떻다고?"
토끼는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용기를 내어서 한 가지만 더 물어보았다.
"우리 동생은 밤마다 머리 아프다며 밖으로 나다니는데 무슨 일
때문이지요?"
"바람이 나서 그래. 칡넝쿨 밑에 사는 숫놈 만나러 다니느라고
그런다고."
토끼는 입이 딱 벌어져서 돌아갔다.
산짐승들은 모여서 세상만사 일을 다 알고 있는 올빼미를 교주로
모시자고 결의했다.
여우만이 '올빼미가 낮에 일어나는 일을 아느냐?'고 이의를 걸었지만
누구도 귀 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드디어 산짐승들은 올빼미를 구세주로 모시고 행진을 시작했다.
"구세주 나타나셨다. 구원받고자 하는 자들은 이리 모여라!"
먼동이 밝아오자 올빼미는 여기저기 부딪치기 시작했다.
다른 짐승들은 그것이 멋이라고 생각되어서 저희들도 쿵쿵 나무에
머리를 부딪치면서 올빼미뒤를 따랐다.
아침 해가 떠올랐다.
올빼미의 발걸음이 위태위태하였다.
앞에 벼랑이 나타났다.
다람쥐가 올빼미한테 물었다.
"구세주님, 무섭지 않으세요?"
"뭐가 무서워? 내가 가는 길은 천당으로 가는 길인데."
짐승들은 감격하였다.
"와. 천당으로 가는 길이다!"
올빼미가 벼랑 밑으로 떨어졌다.
다람쥐도, 토끼도, 오소리도, 모두들 천당가는 길로 안녕히 들어섰다.
안녕히.
지금 당신과 우리 사회는...
생각하는 동화 - 열아홉번째 이야기
< 달과 박 >
- 민담에서
초가지붕 위에 박꽃이 피었다.
하얀 나비가 하얀 박꽃 속을 드나들었다.
얼마 후, 박이 열렸다.
처음엔 완두콩만하였는데 점점 자랐다.
계란만 해지고, 작은 공만 해지고, 큰 공만 해지고.
박은 자라면서 은근히 기다려지는 것이있었다.
그것은 하늘에 떠서 은빛을 내는 달처럼 저도 빛을 내리라는
기대였다.
마침내 박은 하늘에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만해졌다.
그러나 이게 웬일, 다 큰 것 같은데 한줄기 실낱 같은 빛도 뿜어지지
않지 않은가.
한밤중에 박이 달을 보고 물었다.
"달님!"
"왜?"
"나도 달님만큼 자랐는데 왜 빛이 나지 않지요?"
달은 빙그레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내가 아는 한 소녀가 있었지. 소녀는 어느 날 극장엘 갔다오더니
가수가 되겠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얼마 후였어. 소녀는 미술 전람회장엘 갔다오더니 이번에는
화가가 되겠다고 하였어."
"그래서 가수도 되고 화가도 되었는가요?"
"아니지. 몇 해가 흐른 다음에 보니 그녀가 창가에 나와서 이렇게
말하더구나. '나는 가수도, 화가도 아냐요. 나는 지금 디자이너예요'
라고."
박이 물었다.
"왜 그랬을까요?"
달이 대답했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각자 따로 있는 것이거든."
박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에 달은 하현으로 기울어지더니 차차 상현으로 돋아나기
시작하여 보름날이 되자 두둥실 떠올라 왔다.여물어진 박이 보름달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달님, 내가 할 일을 그동안에 생각해 냈어요. 나는 단단한 그릇이
되겠어요."
달도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그 일은 내가 못하는데 너만은 할 수 있는 몫이지."
당신 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었입니까?
생각하는 동화 - 스무번째 이야기
< 들국화의 향기 >
외딴 두메 산골에 들국화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누구 하나 기다리지도 않고, 누구 하나 반겨주지도 않는데 꽃이
피게 되었다.
들국화는 투덜거렸다.
"이런 두메에서는 애써 꽃을 피울 필요가 없어. 그저 억새로나
하얗게 흔들릴 일인데."
이때 곁에 있는 돌부처님이 이끼가 낀 입을 열었다.
"나도 있지 않느냐? 들국화야."
들국화는 목을 움츠려 들이면서 말했다.
"나는 덤덤한 당신이 싫어요. 철이 지났지만 멋쟁이 나비라도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어여쁜 소녀의 가슴에라도
안겨 가고 싶어요. 그런데 이 신세가 뭐예요? 이렇게 하염없이
피어나서 하염없이 피어나서 하염없이 저버린다는 것이 너무도
억울해요."
돌부처님이 비바람에 마모된 눈으로 그윽히 들국화를 바라보았다.
"들국화야, 이런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니? 우리가 이 한데서
기도함으로 이 세상 누군가가 받을 위로를 말이야."
돌부처님은 먼 하늘의 노을한테로 눈을 준채 말을 이었다.
"우리가 밤하늘의 이름없는 별들처럼 외딴 자리를 지킴으로 해서
이 세상이 그래도 태양을 좇아 갈 수 있는 것이란다. 그리고
이 세상의 빛 또한 아직 꺼지지 않는 것은 산천의 꽃들이
도회의 쓰레기보다도 많기 때문이란다."
"부처님은 언제부터 그런 마음으로 사셨어요?"
"천년도 더 되었단다."
"천년이나요?"
들국화는 입을 다물었다.
들국화는 돌부처님한테 몸을 기대었다.
"나의 향기 받으세요, 부처님."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서 기도를 하십니까?
생각하는 동화 - 스물한번째 이야기
< 참 지혜 >
신으로부터 '소원 세 가지를 들어주겠다'는 언질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장 첫 소원을 말했다.
"저를 미인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날부터 그의 앞에는 아름다운 여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나타났다.
그를 보기만 하면 사랑하지 않곤 배겨내지 못하는 미인들.
그들은 넋을 놓고 그를 따라 다녔다.
그런데도 그는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미인들로부터 시달림을 받아 날로 파김치처럼 후줄근 해져
갔다.
견디다 못한 그는 시께 두번째 청을 넣고 말았다.
"저들로부터 나를 구하소서. 나는 저들의 사랑 공세에 지쳤나이다."
그의 주위는 다시 조용해졌다.
이제 그에게 소원을 풀 기회란 딱 한번밖에 없었다.
그는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사람을 마구 부릴 수 있는 높은 자리를 달라고 할 것인가,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할 것인가,
오래오애 살게 해 달라고 할 것인가.
그 외에도 많고 많은 소원이 그의 머리 속을 어지럽혔다.
이것을 청하자니 저것이 놓치기 싫고 저것을 청하자니 이것이
놓치기 싫고...
그는 이 일로 신경쇠약이 되었다.
그는 마침내 한가지 남은 것을 신의 답을 구하는 것으로 쓰고
말았다.
"부디 제가 무엇을 청했어야 했는지 그것을 가르쳐 주소서."
신은 말했다.
"내가 너라면 첫째는 사랑받는 것보다는 사랑하는 능력을 크게
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솔로몬처럼 귀담아 듣는
지혜를 달라고 했을 것이고 세째로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때
그때에 충실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주여, 우둔한 저에게는 그러나 이제 기회가 없나이다."
"아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이 세 가지의 씨앗은 내가 진즉
너희 마음 속에다가 깊이 심어 놓았었다. 그러니 각자 노력하기에
따라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도 있고 거둘 수 없기도 할 것이다."
당신 앞에 세 가지의 소원이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생각하는 동화 - 스물두번째 이야기
< 거룩한 성배 >
- 크리스찬 예화에서
중세기 이탈리아에 기사도 정신에 충렬한 한 성주(성주)가 있었다.
그는 살아 생전에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공을 세웠으면 하고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자 한가지 일이 떠올랐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더불어 만찬을 나눌 때 사용한 금잔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성주는 당장 많은 돈을 준비해서 말을 타고 나섰다.
그런데 그가 성문을 나서려 할 때였다.
성문 앞에서 한 문둥병자 거지를 만나게 되엇다.
"한푼 도와 주십시오."
"무슨 소리냐? 나는 지금 우리 구세주의 영광스러운 금잔을
찾으러가는 길이다. 내큼 비키지 못할까!"
"성주님, 저는 며칠을 굶었습니다. 제발 한푼만!"
성주는 마지못해 금화 한닢을 꺼내 땅바닥에 내던지며 소리 질렀다.
"자, 이걸 가지고 떠나라. 나는 지금 내 인생의 큰일 때문에 너를
돌볼 겨를이 없다."
이때부터 수십년 동안 성주는 예루살렘은 물론 이탈리아 구석구석을,
그리고 멀리 애급과 사막에까지도 금잔을 찾기 위해 뒤지고 다녔으나
헛수고였다.
드디어 돈은 떨어지고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앉게 되었다.
그는 지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용마를 타고 비단옷을 입고 떠나던 때와는 달리 낡은 옷에 지팡이를
짚은 쓸쓸한 모습이었다.
성문 앞에 다달았을 때였다.
그의 앞에 예의 문둥병자 거지가 나타났다.
"한푼 도와 주십시오."
그동안 숱하게 겪은 고생으로 이제 그의 거드름은 잦아지고 사랑이
솟아나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거지에게 나누어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마른 빵 한 조각 밖에는.
그는 빵의 절반을 잘라 거지한테 주었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쪽박을 들고 옹달샘으로 가서 물 한바가지를
길어왔다.
"내가 이렇게 당신을 돕는 것이 변변치 못해 미안하오. 하지만 이것이
내 전부인 것을 어떡하오"
그러자 갑자기 문둥병자 거지가 예수의 모습으로 변했다.
"두려워 말고 들어라. 금잔을 찾으려고 아무리 헤메어도 소용이 없다.
샘물을 길어온 그 보잘것 없는 쪽박이 나의 성배이다. 네가 떼어준
빵이 나의 살이며 이 물이 내 피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와 더불어
나누는 식사야말로 진정한 성찬이다."
영탔 진정으로 남을 위해 무었을 베풀때, 그것이
참 베품이며, 참 사랑일 겄입니다.
생각하는 동화 - 스물세번째 이야기
< 양이 받은 축복 >
- 조지 기싱 우화에서
태초에 창조주께서 이 세상 만물을 지어내 놓자 크고 작은 물음과
부탁이 잇달났다.
그중에는 머리가 좋지 못한 당나귀도 끼어 있었다.
당나귀는 빈번히 제 이름을 잊어먹고 찾아왔다.
"또 깜박 잊었습니다. 저의 이름을 뭐라고 하셨지요?"
"이 녀석아, 이번이 몇번째냐? 당나귀란 말이다. 당나귀!"
창조주는 당나귀의 두 귀를 조금 늘어지게 잡아당겼다.
"다음에도 네 이름을 잊어버리거든 귀를 생각해라. 나는 귀가
길다, 그러니 내 이름은 당나귀다 하고 말이야."
당나귀가 돌아가자 이번에는 벌을 에워싸고 여우와 오소리와
토끼가 징징거리면서 나타났다.
"침을 가진 벌을 좀 어떻게 해주십시오. 조금만 뭐해도 침을 마구
쏘아대니 참을 수가 없습니다."
"뭐라고? 그렇다면 벌의 침은 일회용이다.침을 쏘아버리게 되면
생명도 끝나는 거야. 그러니 벌은 명심하거라.
네 목숨과 바꿀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때만 침을 쓰도록 해야
할 것이야."
여우와 오소리와 토끼는 좋아서 박수를 쳤다.
그러나 벌은 앵하고 볼이 부어서 돌아갔다.
창조주가 한숨을 돌리려는데 또 발소리가 났다.
이번엔 양이었다.
"아버지,다른 짐승들이 저를 얕잡아 보고 못살게 굴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의 이 고통을 좀 덜어 주십시오."
"네 말도 맞다. 너를 너무 곱게만 빚었어."
창조주는 한참 있다가 은근히 물었다.
"그렇다면 너의 이를 옥니로 하고 네 발톱을 갈퀴발톱으로 바꿔줄까?"
"아, 아닙니다. 저는 육식하는 맹수들과 같이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의 풀을 뜯어먹고 사는 생활에 만족합니다."
"그럼 너의 입 속에 독을 감춰둘까?"
"아이고, 그건 더 싫습니다. 뱀들처럼 미움을 받고 살기는 싫어요."
"그렇다면 너의 이마에 뿔을 달아주면 어떨까?"
"그것도 안되겠어요. 염소는 걸핏하면 뿔로 받으려 하거든요."
창조주는 말했다.
"참, 딱하구나. 너를 해치려 하는 자를 막자면 너 자신이 그들을
해칠 수 있어야 하는데..."
"내가 그래야만 하다니..."
양은 한숨을 쉬면서 쓸쓸히 말했다.
"그러하시다면 아버지, 이대로 저를 내버려 두십시오. 누구를 해칠
능력을 가지면 해치고 싶은 욕망이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옳지 않은 일을 하기보다는 옳지 않는 일을 당하고 사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 같습니다."
양은 돌아서 갔다.
이를 본 창조주는 어느 누구에게보다도 큰 축복을 양에게 내렸다.
"오, 착하고, 착한 양아! 너는 힘이 없어도 땅에서 대우를 받고
살게 될 것이다. 너의 이름은 어진이들의 상징이 될 것이며
어느 힘센 짐승보다도 자자손손 번성할 것이다."
남을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이 모순된 사회에서 당신은 양의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까?
생각하는 동화 - 스물네번째 이야기
< 가실 줄 모르는 사랑 >
오리들이 사는 호수에도 여름이 왔다.
여름은 오리들에게 있어서 낭만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더러는
예기치 않은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그것은 젊은 오리들의 성 문제가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드러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어른 오리들이 모여서 의논한 끝에 원앙을 초청해서 사랑에 대한
강의를 듣기로 했다.
원앙이 왔다.
그는 먼저 사랑에 실패한 젊은 오리의 경험담을 듣고자 했다.
한 처녀 오리가 나와서 말했다.
"작년 여름 일입니다. 사랑하는 총각 오리와 함께 휴가를
떠났습니다. 첫날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함께 푸른 물을 가르며
수영을 하였습니다. 따로따로 둥지를 틀고 아름다운 꿈을 꾸며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이었습니다.
소나기가 내리자 무섭지 않느냐며 그가 나의 둥지로 건너 왔습니다.
나는 원하지 않았는데 그가 강하게 함께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허락하고 나자 그는 나한테서 멀어져 갔습니다.
나는 사랑의 시작으로 생각하였는데 그는 사랑의 끝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원앙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는 제가 알고 있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젊은 만남은 끊임없는 갈구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함께 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사랑을 즐거운 것만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조로부터 이렇게 배웠습니다."
'사랑은 갈구인 동시에 인내이며, 아름다움인 동시에 슬픔이기도
하며 즐거움인 동시에 고통이기도 하다. 인내로 사랑이 성숙하며
슬픔이 승화하면 어느 것보다도 아름답다.
그리고 고통이 행복의 샘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절대 어떠한 경우이건 혼전에는 둥지를 함께 쓰지 않습니다.
함께 한 둥지 속에 있으면 유혹을 떨쳐 버린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몸에 관심을 나누어 영혼에 대해서도
대화합니다. 성의 유희보다도 하늘의 별과 풀잎의 흔들림과
풀벌레들의 노래를 함께 듣는 걸 더 즐거워합니다."
이때 한 오리가 일어나서 질문하였다.
"그렇게 아끼다가 상대가 변하면 어떡합니까? 우리는 변하지 않는
증거로 몸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원앙이 미소 띈 얼굴로 대답하였다.
"사랑은 믿음과 신뢰입니다, 못미더운 사랑은 믿음과 신뢰가 다져질
때까지 더욱 키워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시점에서의 성행위는
더 자랄 수 있는 풋사과를 따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원앙은 이렇게 말을 맺었다.
"물의 힘을 전기로 바꾸는 댐처럼 자제는 성욕의 힘을 진정한
사랑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랑이야말로 가실 줄을 모르는 사랑입니다.
즐겁되 후회없는 여름휴가가 되기를 빕니다."
사랑은 결코 불장난이 아니며 인스턴트는 더더욱
아닙니다.
아껴주고 지키며 보호해줄때 사랑은 비로서 완성될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사랑을 하고 계십니까?
생각하는 동화 - 스물다섯번째 이야기
< 어떤 사람 >
그는 동네 길을 어제처럼 발한테 맡기고 걷다가 하수도 공사
중인 구멍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그는 투덜거렸다.
"재수가 더럽게 없는 날이군. 일년째 눈감고 다녀도 아무 일
없더니..."
그는 발명품 전시회장에 가서 중얼거렸다.
"아하, 내가 발명하려고 했던 것이 벌써 나왔구나. 복사기도
그랬었지. 아이디어는 내가 먼저였는데 말이야."
그의 방에는 가구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는 그것들에 갇혀서 어깨 한번, 허리 한번 마음껏 펴지도 못한다.
텔레비전이 부르면 텔레비전한테 달려가고 전축이 부르면 전축
앞으로 대령하고.
그는 날마다 결심한다.
'오늘은 그냥 이대로... 그러나 내일부터는!'
'오늘 하루만... 그러나 내일 부터는!'
'내일 두고 보자!'
친구를 모함한다.
교회에 가서 빈다.
친구를 다시 모함한다.
교회에 가서 다시 빈다.
이번에는 교회에 가서 빌거리를 만들기 위해 친구를 모함한다.
그는 남의 화제에는 절대 궁하지 않다.
유명 여배우의 간통사건.
상대의 신상명세와 자주 드나들던 호텔 이름과 방 호수.
유명 가수의 키와 몸무게, 가슴둘레며 좋아하는 음식, 키우고 있는
개의 이름.
유명 선수의 타율과 홈런, 도루 기록.
잘 부르는 노래곡명, 승용차의 이름, 번호.
그가 모르는 것은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그는 우연히 코메디 극을 보았다.
자기 생각이라곤 일푼어치도 없이 그저 로보트처럼 움직이다가
하수구에 빠지는 배우를 보고 그는 배를 잡고 웃었다.
'저런 녀석도 사람이라니!'
어떤 사람은 바로 우리 주위에 있으며, 당신도 그속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생각하는 동화 - 스물여섯번째 이야기
< 대 지 >
- 루미의 시를 인용하여
하느님은 장미의 귀에 뭔가 속삭이셨다.
그러자 장미는 싹을 틔우며 미소지었다.
하느님은 돌에게 뭔가 소근거리셨다.
그러자 돌 속에서 보석이 빛났다.
하느님은 해에게 뭔가 귓속말을 하셨다.
그러자 새빨간 뺨이 수백 개나 해를 뒤덮었다.
하느님은 물에게 뭔가 은밀히 말씀하셨다.
그러자 물은 흐르기 시작했다.
하느님은 대지에게 가만가만히 속삭이셨다.
그러나 대지는 꿈쩍도 하지 않고 그저 응시할 뿐 이었다.
후일, 장미가 입을 열었다.
"하느님은 나와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
돌도 말했다.
"나한테도 계시겠다고 했는걸. 그래서 나는 내 안에 보석을 가졌지."
해도 나섰다.
"나한테도 머무신다고 했는데..."
물 또한 가만 있지 않았다.
"나한테도 그러셨어. 그래서 내가 움직인거야."
그러나 대지는 말이 없었다.
그저 그 순간에도 세상의 모든 것을, 심지어 썩고 죽은 것까지
받아들이는 사랑의 일을 계속할 뿐.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만큼 내려가 있는 겸손한 대지.
짓밟아도, 짓밟아도 끝없이 용서하는 대지.
볍씨가 떨어지면 벼를, 풀씨가 떨어지면 풀을 키우는 정직한 대지.
오직 대지만이 온몸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지의 사랑을 배우지 않으시렵니까?
생각하는 동화 - 스물일곱번째 이야기
< 하느님의 약속 >
- 안니 플린트의 기도문을 인용하여
하느님은 1년 365일 내내 푸른 하늘만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사시사철 꽃들이 피어 있는 길만을 주겠다, 하지도 않았습니다.
폭풍우 없는 바다.
슬픔 없는 기쁨만의 나날.
고통 없는 평화를 약속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느님은, 우리가 어떠한 역경에 있건 오늘에
살아갈 힘을 약속하였습니다.
노동 다음에 휴식을.
상처에는 새살을.
마음을 비운 사람에게는 빛으로 채워주고.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게 함께 있을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어제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기에
내일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오늘을 얼마나 열심히 사셨습니까?
생각하는 동화 - 스물여덟번째 이야기
< 함정 >
장끼(수퀑)들의 까투리(암퀑) 마음 도적질하는 술책을 폭로함.
장끼는 먼저, 마음 먹고 있는 까투리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 목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심지어는 뒷모습이 좋다고도 말한다.
다음에는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고, 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 깃이 썩 잘 어울리는데요."
"아니, 어디가 편찮으세요? 얼굴이 안 좋네요."
좀더 친해지면 우아함을 보인다.
남한테서 빌어 쓰는 형편인데도.
"그 콩밭은 분위기가 영..."
어쩌구 하면서 고상한 척 군다.
그 다음에는 자기속을 은근히 보이면서 동정을 유도한다.
"우리 둘이는 못할 말이 없는 사이니까 하는 말인데 내 아내는
나를 조금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요. 당신같은 까투리를 좀더
일찍 만났더라면..."
어느 정도에 이르면 자기 일을 희생하면서까지 상대방의 일에
발벗고 나선다.
"내 몫이야 내일 해도 늦지 않아. 그러나 그 일은 당신한텐 무리야.
내가 돕지 않으면..."
이번 차례는 선물이다.
"작은 것이지만 내 정성이니..."
어쩌구 하는 미사려구와 함께.
여기에서 그래도 좀 강한 까투리는 망설인다.
이때 마음 한편의.
'이 정도야 어쩔려구. 더구나 내가 거절하면 얼마나 민망해 할까.'
하는 우려가 있어 마지못해 받는다.
사냥을 할 때 포수가 선불을 놓는다는 말이 있는데 부정한
관계에서는 선물이 곧 선불에 해당한다.
곧 이어 늑대가 토끼를 덮치듯 순식간에 일은 벌어진다.
마지막은 늘 그렇다.
후회와 어찌할 수 없는 번뇌와 중독 현상과 될 대로 되라는
공식으로.
당신의 주위에는 많은 함정이 달콤한 선물을 뿌려놓고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유혹을 물리칠 자신이 있습니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습니다.
생각하는 동화 - 스물아홉번째 이야기
< 순간에서 영원으로 >
내가 지극히 무료하게 보내고 있는 이 순간에
한줄기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서
칼날을 느끼는 수도자가 있으며
한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진통을 참아내는 산모가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지 않을 수 없는 아픔에
눈물 짓는 연인의 비통이 있으며
어떻게 흘러가버린 물줄기를 되돌려볼까, 하고
음모를 꾸미는 무리가 있으며
힘차게 들어올리는 지휘자의
지휘봉이 있으며
농간에 녹아나서
그의 사인 하나로 몰락하고 마는,
그 사인이 지금 나고 있으며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환자는 이 순간에 이렇게 한탄하기도 한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하느님, 조금만, 조금만 더
내게서 죽음을 유예시켜 주소서.
할일없아 무료히 앉아 있는 사람이여!
내게 그 시간을 적선해 주소서."
바로 지금이 나의 이 세상 전부이다.
깨어라, 지금!
* 당신의 그 순간이 바로 전부입니다.
생각하는 동화 - 서른번째 이야기
< 입 속에서 나온 장미꽃 >
그는 말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3년 동안 벙어리 노릇을 하기로 하였다.
그동안 그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말을 남발하는가를 지켜보았다.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한다'하고,
그렇지 않은 것에도 '그렇다'하고.
제일 한심스러운 일은 가짜를 가짜로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짜'라고 증언하는 일이었다.
차라리 '침묵이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는
명언에 그는 동의하였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고서 평생을 지낼 순 없는 일이었다.
그는 벙어리노릇을 청산하면서
한마디 낱말에만은 순결을 지키고자 마음먹었다.
그 한마디 말을 고르고 고른 끝에
그는 '사랑'이라는 낱말을 택하엿다.
이 세상 사람들이 어찌도 사랑이라는 말을 남용하는지
그는 한때 이 말을 다른 낱말로 바꾸엇으면 하고
고심한 적도 있었으니까.
그는 하느님께 기도하였다.
"저는 사랑이라는 말을 이 세상에서 딱 한번만
사용하겠습니다.
그때 주님, 저에게 제 진실의 표징을 보여주소서."
그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많은 유혹을 받았다.
한창 젊음이 들끓을 때에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선 결정적으로 이 말을 쓸뻔하였다.
그러나 용케도 다음을 위하여 견뎌냈다.
마침내 그한테 임종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때에 젊음도, 명예도, 권력도, 재력도,
아무 것도 없는 그의 빈 손을
평화롭게 잡아주는 여인이 있었다.
그가 입을 열어 마침내 사랑이라는 말을 했을 때였다.
놀랍게도 그의 혀에서
장미꽃 두 송이가 굴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 우리는 진실을 가려낼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습니다.
당신은 진실에 대해 얼마나 순결하십니까?
생각하는 동화 - 서른한번째 이야기
< 마음을 찍는 사진기 >
X레이 사진기로 가슴을 찍으면 씸장이 드러나듯
마음을 찍어 보여주는 사진기가 있다.
대개의 사람들을 찍어본 바로는
참으로 한심한 지경이라고 한다.
감투가 찌혀져 나오거나, 돈다발이 찍혀져 나오거나
남자인 경우에는 여자가,
여자인 경우에는 남자가 찍혀져 나오지를 않나.
또 평수가 넓은 집이 찍혀져 나오는 사람도 있다.
박사 학위증이 찍혀져 나오는 사람,
자가용이 찍혀져 나오는 사람도 있고.
때로 웃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어린이들을 찍었을 때의 일이다.
인형이나 꽃, 아니면 로버트나 아이스크림이
아주 선명히 찍혀져 나오니까.
그런데 얼굴이 온화하고 언행이 당당한 노동자
한 사람의 경우에만 희귀한 사진이 나왔다.
바다를 내다보는 작은 창문이 찍혀져 나온 것이다.
사진사가 말을 걸었다.
"세상에 당신의 소원이란 이 창문 하나란 말입니까?"
노동자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내 고향은 바닷가 마을이지요.
그 마을의 언덕 위에 우리집이 있었는데 우리집의 창문에서
소년시절처럼 바다를 내려다보며 사는 것이 나의
소원이지요.
그 창을 소유하고 죽는 것이 나의 꿈입니다."
* 당신의 마음은 어떤 것이찍혀져 나옵니까?
소년 시절의 작은 꿈을 아직도 간직하고 계시는지요.
생각하는 동화 - 서른두번째 이야기
< 하얀 계절 >
히말라야의 깊은 산골 마을에
어느 날 낯선 처녀가 찾아왔다.
처녀는 다음날부터 마을에 머물러 살면서
매일매일 마을 앞 강가에 나가 앉아
누구인가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달이 가고, 해가 갓다.
몇십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고왔던 그녀의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가기 시작하였고
머리칼도 하얗게 세어갔다.
그러나 여인의 기다림은 한결같았다.
그러던 어느 봄날.
이제는 하얗게 할머니가 되어 강가에 앉아 있는
그녀 앞으로
무언가가 둥둥 떠내려 왔다.
그것은 한 청년의 시체였다.
여인은 벌떡 일어났다.
바로 그 청년은 여인이 일생을 바쳐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청년은 히말라야 등반을 떠났다가
행방불명이 된 여인의 약혼자였다.
그동안 그녀는 어느날엔가는 꼭 눈속에 묻힌 약혼자가
조금씩 녹아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떠내려 오리라는 것을 믿고
그 산골 마을 강가에서 기다렸던 것이다.
이제, 할머니가 되어버린 그녀.
그녀는 몇십년 전 히말라야로 떠날 때의
청년 모습 그대로인 약혼자를 붙안고
한없이 뺨을 비비며 울고 있었다.
* 사랑이란 기다림.
요즘처럼 기다릴 줄 모르는 세상에서 당신의 작은 기다림이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해주지 않을까요.
생각하는 동화 - 서른세번째 이야기
< 원숭이들 >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가장 손쉽게 원숭이를 잡는
방법입니다.
먼저 가죽으로 자루를 만들되 입을 좁게 합니다.
그러니까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가고 나올 정도입니다.
다음에는 그 자루 속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과실을 넣어서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습니다.
원숭이가 나타납니다.
녀석은 자루 속을 들여다보곤 '웬 떡이냐'며
희희 낙락합니다.
그리고는 '얼씨구나'하고 자루 속에 손을 집어넣어
과실을 꺼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원숭이의 손은 자루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합니다.
과실을 쥐고 있으니까요.
나뭇가지에 매여 있는 가죽자루,
그 가죽자루 속에붙들려 있는 원숭이의 손.
가장 간단한 이치를 가련한 원숭이는 모르고 있습니다.
손안에 쥔 먹이를 놓버리면 될 것을.
그러면 저 자유의 숲을 다시 누빌 수 있으련만.
원숭이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은 다름 아닌 원숭이의
욕심입니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손에 쥐고서 놓지를 못합니까?
그 욕심 때문에 당신의 인생이 끝장날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 우리는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아주 조금 당신 마음의 줄을 늦추십시요.
눈을 조금 들어 위를 보십시요!
생각하는 동화 - 서른네번째 이야기
< 왕릉과 풀씨 >
고아원의 뒷동산에 작은 무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무덤 위에서 풀씨가 익어가고 있었다.
어느날 밤, 큰 바람이 불어와 풀씨가 날려갔다.
풀씨가 떨어진 곳은 어마어마하게 큰 무덤가였다.
아침이 되자 여기에 살고 있는 개미가 나타났다.
풀씨는 개미한테 물었다.
"여기가 어디니?"
"왕릉이다."
개미는 풀씨한테 자기네가 살고 있는 왕릉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 능은 만 평도 넘어. 그리고 돌로 된 근엄한 대감도
있고, 말도 있지."
풀씨가 물었다.
"그럼 그들이 지금 저기 저 나무 위에서 노래하고 있는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니?
개미가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들은 살아 있지 않아. 그냥 장식으로 여기에
서 있는거야."
"그런 게 뭐가 자랑거리가 되니?"
나는 작고 힘이 약한 풀이지만 아무데나 떨어져도
뿌리를 내리고 살지.
이름을 갖지 못했지만 꽃을 피우기도 하고
풀벌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기도 하는걸."
개미가 반박했다.
"물론 살아 있음이 중요하지.
그러나 신분에 따라서 죽은 이의 무덤도 다른거야.
이 왕릉을 보고 느껴지는 거 없어?"
풀씨가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고아원을 세우고 그 고아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다가 죽은 사람의 무덤 위에서 살았었어.
그 무덤의 묘비글은 이래."
"나를 고아들이 자주 찾는 뒷동산에 묻어 주오.
내 무덤은 그리고 내 한 몸 길이만 하게 작게 하여 주시오.
아이들이 놀다가 다칠지도 모르니 돌로 된 것은
아무 것도 만들지 마시오. 다만
잔디가 벗겨지면 아이들이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니
봄마다 잔디나 한번씩 손봐 주시오."
"네가 못 보아서 그렇지.
이 무덤 속에 들어가면 임금님의 관이 있어.
그리고 큰 칼도 있는걸."
"그건 진짜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야.
진짜는 그런 왕관이나 칼에 의해 정복되지 않고
위대한 영혼에 의해 정복되는거야."
한참 후 개미가 입을 열었다.
"그래, 나도 이제야 알겟다.
이곳에서 구경꾼들이 흘려버리는 과자부스러기나
주워 먹고 살 것이 아니라 내가 땀 흘려서 먹이를
구하여야겠다.
그리고 내가 사는 뜻을 가꾸어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도
들녘으로 나가야겠다."
풀씨도 말했다.
"그래, 네가 이곳을 떠난 후면 내가 대신 이곳에
뿌리를 내려서 이 왕릉의 수평이
기울어지지 않게 하겠다.
그리고 뜻을 가진 이면 알아 볼 수 있게
내 푸른 잎을 세우고 살아야지.
그래서 이 왕릉의 위엄에 조금도 기죽지 않은
내 맑은 혼을 보여주겠다.
* 당신의 맑은 혼은 어디에 있습니까?
생각하는 동화 - 서른다섯번째 이야기
< 상속의 조건 >
부자인 아버지만 믿고 아무일도 하지 않는 아들이 있었다.
어머니는 또 천금 같은 아들 편이 되어서 아들만 감싸고
돌았다.
아버지가 병들어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그는 아들을 불러 말했다.
"네 힘으로 금전 한 닢을 벌어 오너라. 그래야
재산을 네 앞으로 상속시켜 주겠다."
어머니는 남편 몰래 아들에게 금전 한 닢을 건네 주었다.
아들이 금전을 아버지 앞으로 가져가자 아버지는 단번에
"이건 네 돈이 아니다"며 난로 속으로 금전을 던져버렸다.
다음번도 어머니는 남편 몰래 아들에게
금전 한 닢을 건네주었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이건 네 돈이 아니다"며
난로 속에다 금전을 던져버렸다.
그때서야 어머니와 아들은 마음을 바꾸었다.
어머니는 아들더러 네 힘으로 "금전을 벌어오라"고 일렀다.
아들은 거리로 나서서
금전 한 닢어치의 노동을 한 다음에
금전 한 닢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번 역시도 아버지는 금전을
난로 속으로 던져버렸다.
아들은 황급히 난로 속을
뒤져서 금전을
꺼내면서 흐느껴 울었다.
"아버지. 너무하십니다. 이 돈을 버느라고 제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십니까?"
그제야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들의
손목을 따뜻히 잡아주었다.
"그래, 이것은 네가 번 돈임을 내가 알겠다.
이젠 내가 안심하고 재산을 맡길 수가 있겠다."
* 당신은 땀의 의미를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요즘처럼 땀흘려 일하기를 싫어하는 세상에서 한번
땀을 흘려 보시지 않겠습니까?
생각하는 동화 - 서른여섯번째 이야기
< 아첨곡 >
지혜로운 임금이 있었다.
임금은 또 엉뚱한 일을 잘 하기도 했다.
달 밝은 밤이었다.
궁전에서 연회가 열렸다.
정승들이 모이자 임금이 나타났다.
그런데 임금은 전에 없이 거문고를 들고 있었다.
임금이 거문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리산 도인께서 나한테 보내 온 신기한 거문고인데
이 거문고는 뜯는 사람이 따로 없어도
스스로 소리를 낸다 하오.
다만 마음이 청정한 사람한테만이 들리는 게 흠이오만
경들이야 다들 청렴결백하니 걱정될 게 뭐 있소.
자, 즐겨봅시다."
괴괴한 정적 속에서 임금의 고개가 끄덕여지기 시작했다.
손가락 장단을 맞추기도 했다.
정승들의 어깨 또한 하나, 둘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영의정은 손바닥으로 무릎 장단을 맞추었다.
좌의정은 일어나서 춤을 추었다.
나중에는 너도 나도 흥겨운 거문고 가락에 그만
못참겠다는 듯
일어나서 춤들을 췄다.
"거참 신비하기도 하구려.
저렇게 아름다운 곡이 뜯는 사람 없이도 연주되다니."
"글쎄 말이오. 기가 막히외다."
잔치가 어느 정도 기울자 임금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거문고 소리를 혹시 듣지 못한 분 계시오?"
정승들은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잘 들리옵니다. 마마!"
임금이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 저 거문고의 소리 없는 곡 이름이 무엇인지 아오?"
정승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
누구도 선뜻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임금이 내뱉듯이 한 마디 하고는 내전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럼 내가 곡 이름을 말하리다. 아첨곡이오. 아첨곡!"
* 아첨곡의 작곡자는 당신과 나 우리 모두가 아닐까요.
혹 당신의 귀엔 아첨곡이 들리지는 않습니까?
생각하는 동화 - 서른일곱번째 이야기
< 내 가슴속 램프 >
개울가의 언덕에 개똥벌레네 집이 있었다.
개똥벌레는 밤이면 님을 찾아서
훨훨 마실을 떠나는 이웃 나방들이 부러웠다.
어느날, 참다 못한 개똥벌레가 엄마 개똥벌레에게 고백했다.
"엄마, 나도 저 나방들처럼 님을 찾아가고 싶어요."
"아들아, 넌 아직 이르다."
"그러나 엄마, 난 몸이 뜨거운 걸요.
누구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아요."
"그럼 나랑 함께 가보자."
엄마 개똥벌레는 개똥벌레를 데리고
철길이 있는 방죽으로 갔다.
거기에는 열차의 불빛을 향해서
덤벼들다가 다친 나방들이 즐비하게 누워 있었다.
더러는 머리가 깨지고 날개가 부러진 나방들...
그들은 앓으면서도 아쉬워하고 있었다.
"유리창만 없었으면 님을 안을 수 있었을 텐데."
"엄마, 왜 그래요?"
개똥벌레의 물음에 엄마 개똥벌레는 고개를 저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숲속에 있는 야영장이었다.
거기에는 모닥불에 덤벼들다가 타버린
나방들의 시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엄마 개똥벌레가 말했다.
"이렇듯 맹목적인 사랑에 몸을 던져버려서야 쓰겠니?"
돌아오는 길에 개똥벌레가 엄마 개똥벌레에게 물었다.
"엄마, 저런 풋사랑이 아닌
아름다운 사랑은 어떻게 이룰 수가 있지요?"
"커가면서 생각해 보려무나.
어떤 사랑이 가치 있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이룰 수 있는 것인지를."
이후로 개똥벌레는 통 말이 없었다.
어느날 밤에 엄마 개똥벌레가 아들의 방을 들여다보았다.
아들은 하늘의 별을 우러른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엄마 개똥벌레는 아들의 마음을 알아챘다.
"아들아, 그 사랑을 이루기는 참으로 어렵단다.
오래 참아야 하고, 교만하지 않아야 하고.
...그리고 앙심을 품지 않고 진리를 보고 기뻐해야 한단다."
개똥벌레는 일편 단심으로 별을 사모했다.
그러나 님은 미류나무 위에 있는 것 같더니
개똥벌레가 날아가자 산 위로 올라가 버렸다.
산 위로 올라갔더니 더 높은 산 위로 물러났다.
하나 개똥벌레는 님을 향해 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 여름날 밤이었다.
개똥벌레는 뒤가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아, 별을 향해 나는 그의 꽁무니에
별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것은 행복한 기쁨이었다.
* 사랑은 당신 가까이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보십시요.
생각하는 동화 - 서른여덟번째 이야기
< 어떤 통 >
'세상에 많고 많은 것들 가운데 쓰레기통으로 태어나다니...'
통은 밤새워 울었다.
그러나 운다고 통의 용도가 바꿔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날부터 길거리에 나선 통한테
쓰레기들이 들어오기 시작햇다.
휴지며 비닐봉지며 심지어는 여인들 걸레까지.
어떤 때는 성명서가 낙엽처럼 쏟아져 들어오기도 했고
들켜서는 안되는 메모지와 증권을 바꿔 넣고
밤새워 통을 파헤친 사람도 있었지만,
가장 허망함을 느낀 때는 수도복이 살짝 들어와 박힐 때였다.
통은 비로서 생각했다.
'아하, 남의 쓰레기들을 거두어 들이는 내가
도리어 통답게 사는구나'
문제는 남이 쓰고 버린 쓰레기까지도 주워 담고 사는
인간들의 마음통이 아닌가.
사기와 협잡과 권모 술수가 가득 찬 통.
통은 파란 하늘을 우러르면서 노래했다.
'저기 가는 저 사람 쓰레기 좀 버리고 가오.
호주머니 것도 좋지만 마음 것을 내놓으시오.'
* 당신의 마음속엔 쓰레기가 얼마나 있습니까?
지금 버리십시요.
쓰레기를 버릴 통도 당신 마음 속에 있을 것입니다.
생각하는 동화 - 서른아홉번째 이야기
< 세 가지 질문 >
- 톨스토이 민화에서
왕이 있었다
그는 가장 중요한 때가 언제인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이며,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지를 알고 싶어했다.
왕은 지혜가 많다고 소문난 도사를 찾아가
물어보기로 했다.
그 도사는 깊은 숲속에서
자기의 거처를 한번도 떠나지 않고
자기가 농사지은 만큼만 먹고 사는 사람이었다.
왕은 도사의 암자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을 내렸다.
그리고 신하들을 돌려보내고 혼자 걸어갔다.
마침 도사는 텃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왕은 물었다.
"도사님, 우리가 결코 후회하지 않게
꼭 지켜야 할 시간은 언제인가요?
그리고 어떤 사람을 멀리하고
어떤 사람을 가까이해야 하며
어떤 일을 중요시해야 합니까?"
그러나 도사는 묵묵 부답이었다.
그저 땅 파는 일을 계속할 뿐.
늙고 마른 도사가 일을 하는 것이 왕의 마음에 걸렸다.
"도사님은 너무 지쳤소. 삽을 이리 주시오."
왕이 도사 대신 땅을 파는 동안 해가 졌다.
일을 마치려 할 때였다.
뒷산으로부터 칼을 찬 한 사람이 달려 내려와서
왕과 도사 앞에서 쓰러졌다.
그 사람은 맹수한테 습격을 당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왕과 도사는 황급히 부상자를
암자로 옮겨서 치료했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몸이 회복된 사람이 왕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나는 임금님의 정치에 원한을 품고
임금님을 죽이고자 뒤를 밟았던 자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극진한 간호를 받고 보니
나의 원한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왕은 기쁜 마음으로 도사를 찾았다.
도사는 어제 파헤친 텃밭에서 싸앗을 뿌리고 있었다.
"도사님. 나는 당신 덕분에
나를 해치려 한 사람을 친구로 만들었소.
이제 간절히 바라는 것은 내가 말한 어제의 질문에
도사께서 답을 해 주시는 것이오."
도사는 말했다.
"임금님께서는 이미 대답을 얻었습니다.
만일 어제 나를 동정하여
이 채마밭을 갈아주지 않고 돌아갔더라면
자객의 칼을 받았을 것이니 그때가 중요한 때이지요.
그리고 맹수에 물린 그 사람을 도와 원수됨을 풀었으니
그 사람보다 중요한 사람이 어디 있으며
그 일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도사는 씨앗 뿌리는 손을 쉬지 않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잘 기억하십시오.
가장 중요한 때란 한순간, 순간뿐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 순간만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결코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란
그 순간에 만나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이란 그 순간에 만나는
그 사람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 한 순간 한번 더 생각해 보십시요.
생각하는 동화 - 마흔번째 이야기
< 외딴 두메에서도 >
인적이 미치지 않는 외딴 두메.
이 산골에서도 물은 쉬지 않고 흐르고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바람은 숲을 들락거리고
별빛은 풀섶마다 소록소록 재이고
산나리꽃이 피었다가 지고
돌부처님 발가락에 이끼가 돋으며
이렇듯 모두는 제 할 일을 한다.
누구 보아주는 이 하나도 없는데도.
* 남들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을 사랑합니다.
생각하는 동화 - 마흔한번째 이야기
< 개미와 매미 >
개미와 매미가 살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개미는 오직 모으는 데 온 힘과 수단을 다하며 산다.
그러나 매미는 그 반대다.
그날 노래를 부르지 못하면 다시는
못할 것처럼 맴맴맴,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산다.
어느날 둘은 뽕나무 위에서 만났다.
매미가 먼저 물었다.
"개미야, 너 무엇 하러 여기에 왔니?"
"나는 오디를 가져가려고 왔다. 매미 너는 무엇 하러 왔니?"
"나는 은혜 많은 뽕을 찬미하러 왔다."
개미가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불쌍한 매미야, 정신 좀 차려라.
이 바쁜 세상에 찬미가 다 뭐냐.
어서 나랑 같이 맛있는 오디를 물어 나르자."
"불쌍하기는 네가 더 불쌍하다.
너 먹을 만큼만 가지면 됐지,
그렇게 정신없이 모아서 뭐하니?"
"많이 가지는 것이 힘이야.
부자에게 비굴해지지 않는 녀석을 본 적이 있니?"
"그것은 함정이다. 지나치게 소유하면
곳간이 도리어 너를 부리게 될걸."
"듣기 싫어."
개미는 와락 화를 내며 떠났다.
개미는 계속해서 모았다.
한날 한시를 쉬지 않았다.
더 많이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항시 종종 걸음질을 했다.
한 곳간이 차면 또 한 곳간을 지었다.
개미의 눈에는 오직 곳간의 빈 자리만 보였다.
그러나 매미는 그날의 먹이는 그날로 족했다.
작은 이슬 한 모금에도 기쁨을 느꼈다.
그 기쁨을 매미는 노래로 옮겼다.
매미의 목소리는 날로 맑아져 갔다.
소나기가 무섭게 내리는 날이었다.
개미와 매미는 이팝나무 허리에서 비를 피하는 중 또 만났다.
이번에는 개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때? 이렇게 뇌성 벽력이 치는 날씨를 보고도
찬미의 노래를 하겠니?"
"그럼, 하늘의 권능을 찬미해야 하고 말고.
그런데 넌 그동안 모은 걸로 보람있는 일을 좀 하고 사니?"
"보람있는 일이라니?
나는 아직 그런 일을 하기엔 재산이 부족해.
곳간이 차지 않았단 말이야."
"너는 도대체 얼마를 모아야 속이 편해지겠니?"
이야기하는 도중에 소나기가 멎었다.
개미와 매미는 다시 헤어졌다.
개미는 이제 무엇이든 가져가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디서고 물어갈 것이 보이지 않으면 남의 몫을
빼앗아서라도 가져갔다.
곳간을 또 지었고 또 지었다.
이미 가진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없는 것만을 생각했다.
한편 매미는 어느날
황량한 바위 틈에서 놀라운 보석을 발견했다.
그것을 개미가 보았을 때는 그저 하잘것없는 풀꽃이었다.
그러나 매미가 보는 순간 그 풀꽃은 금보다도 더 비싼
진리로 반짝이었다.
매미는 엎드려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오, 하느님.
생명은 양이 아니라 질이며 보호가 아니라 자유이고
의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임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개미와 매미는 죽었다.
속의 것을 모두 노래로 다 불러 버린 매미는
한꺼풀 남은 마지막 허물마저도 훨훨 날려버리고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일생 모으기만 한 개미는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많은 곳간을 남겨두는 것이 원통했고
자기 삶을 자기답게 살지못한 것이 그제야 후회가 되었다.
그러나 이미 개미의 해는 지고 없었다.
* 보람되고 진정한 삶이란 무었일까요?
당신은 후회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생각하는 동화 - 마흔두번째 이야기
< 당신의 보험물 >
창조주는 한 사람당 한 가지씩 남보다 뛰어남을 각각 주었다.
AFKN 텔레비전의 여성사회자 메리 하트의 날씬한 다리.
그녀의 멋진 다리는 영국 로이드 보험회사에
200만 달러로 가입되어 있다.
바이올린의 대가 쿠벨리크는 열손가락을 손가락별로
보험에 가입하였다.
엄지손가락은 75만 프랑, 왼쪽 새끼손가락은 22만 프랑,
나머지 손가락들은 각각 27만 프랑씩이었다.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는 그녀의 목을 1천만 프랑의
보험에 가입했다.
댄서 수잔 우아네 양은 그녀의 히프를 10만 달러의 보험에
가입하였다.
소피아 로렌은 그녀의 유방을 보험에 넣었다.
당신은 어느 부분을 보험에 걸겠는가?
과연 보험회사가 인정해 줄 만한가.
* 신은 공평합니다.
당신이 재능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요.
당신은 남보다 뛰어난 그 무엇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해 개발하고 안하고는 당신 노력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생각하는 동화 - 마흔세번째 이야기
< 진주 >
넓고 넓은 바닷가에 조개마을이 있었다.
조개마을에는 바지락과 다슬기와 고둥이 많이 살았다.
그러나 백합은 단 한집밖에 없었다.
그래서 백합은 제 몸매를 은근히 뽐내면서 지냈다.
태풍이 불어와 바다를 아주 심하게 할퀴고 간 뒤였다
깊은 바다 산호초마을에서 진주조개가 하나 떠밀려 올라왔다.
조개들은 다투어서 구경을 갔다.
하나 진주조개는 그저 평범한 조개일 뿐이었다.
오히려 겉모양을 말한다면 백합한테 훨씬 못 미쳤다.
바지락이 말을 걸었다.
"진주 씨앗을 좀 얻을 수 있어?"
진주조개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의 진주는 씨로 옮겨지는 것이 아니야."
"그럼 어떻게 해야 그 값진 보석을 가질 수 있지?"
"진짜로 사랑을 하면!"
이번에는 다슬기가 나서서 진주조개한테 물었다.
"진주를 가지면 어때? 몸도 마음도 편안하고 좋아?"
"아니야. 몸은 아주 아파. 견디기 어려울 만큼."
"그런데 뭐하러 가져? 그것 때문에 도리어 아파지는데."
조개들은 피식피식 웃으며, 뿔뿔이 흩어졌다.
백합만이 혼자 남았다.
백합이 물었다.
"진주를 가지고 사는 것과 가지지 않고 사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그것을 말해 줘."
"그것은 사는 의미에 관계된 것이야.
진주를 가지지 않으면 지금 당장은 편하지.
주어? 시간에 먹고 즐기며 살면 그만이니까."
"진주를 가졌을 때는?"
"희망을 가졌다는 뜻도 돼.
언제 어디서 죽음이 나타나더라도 두렵지 않아.
죽음이란 그저 껍질과 살이 없어지는 것일 뿐
진주란 보석은 영원히 빛나면서 살게 되는 것이거든."
그날부터였다.
백합한테 말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나들이하는 시간도 줄엇다.
대신 해당화 그늘 밑에 앉아서 명상하는 시간이 길어져 갔다.
백합은 흰구름이 지고피는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였다.
어느날이었다.
백합은 바지락을 공격하는 불가사리를 보았다.
이럴 때는 자기 몸을 먼저 숨기는 것이 모든 조개들의 습관이었다.
그러나 이날의 백합은 달랐다.
뜨거움이 가슴에서 치솟자 냅다 불가사리의
머리통을 물고 늘어졌다.
한참 후에야 백합은 정신을 차렸다.
눈을 떠보니 늙은 뼈고둥이 상처를 꿰매고 있었다.
"넌 아주 훌륭했다.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으니까.
그런데 이번 일로 모래 한 알이
네 심장 깊숙이 박혀버렸다는 걸 알아두어라."
"그럼 어떻게 되는가요?"
"십중 팔구는 죽게 되지.
그러나 하늘이 도운다면 진주가 되기도 하지."
백합은 엎드려 울면서 기도하였다.
"저는 죄 많은 조개입니다.
내 기쁨을 나누어 가질 줄 몰랐으며
남의 아픔을 덜어줄 줄 몰랐습니다.
내안의 교만과 질투와 욕심이 악마임을 미처 알지 못하였으며
물 한 모금, 바람 한 모금의 작은 것에 감사할 줄을
몰랏습니다.
이제 저는 남은 날을 오직 참회하며 살고자 하오니
이 세상을 떠날 때 눈물 한 방울 남기는 것을 허락하소서."
* 사랑은 아픔이지만 그 아픔까지도 사랑할때 비로서
사랑은 아름다움으로 승화 할수 있을것 입니다.
생각하는 동화 - 마흔네번째 이야기
< 첫마음 >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이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날의 첫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 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는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 늘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을 수 있다면.
당신은 끝을 어떻게 맺습니까?
생각하는 동화 - 마흔다섯번째 이야기
< 심 판 >
- 라마크리슈나 우화에서
한 사원에 고명한 수도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사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매춘부의 집이 있었다.
사원은 성스러웠으나 매춘부의 집에는
건달들이 쉬임없이 들락거렸다.
어느날 수도사는 매춘부를 불러다 놓고
호되게 꾸짖었다.
"그대는 밤낮으로 죄를 짓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그 죄의 댓가를 받으려고 그러느냐."
가난한 매춘부는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였다.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무식하고 재주없는 이 여인은
다른 직업을 구할 수가 없었다.
사내들의 출입은 그치지 않았다.
수도사는 매춘부의 집으로 사내들이 들어갈 때마다
뜰에 돌을 하나씩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날이 감에 따라 돌무더기가 커갔다.
하루는 수도사가 매춘부한테
돌무더기를 가리키며 질책했다.
"여인아, 이 돌무더기가 보이느냐?
이 돌 하나 하나는 네가 상대한 건달들의 숫자이다.
천벌을 받을지고!"
매춘부는 두려움에 떨며 돌아갔다.
그녀는 그의 찬 방에 꿇어 엎드려 울면서 통회했다.
"신이여, 어서 이 비참한 생활에서
이 몸을 벗어나게 하소서."
그날 밤 죽음의 천사가 이 골목에 찾아왔다.
수도사를 데려갔고 매춘부를 데려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매춘부는 천당으로 인도되고
수도사는 지옥으로 끌고 가지 않는가.
매춘부가 천당으로 가는 것을 본 수도사의 눈에 불이 일었다.
"어떻게 신의 심판이 이렇단 말인가.
나는 일생 동안 금욕과 절제 속에서 신을 경배하며 살았다.
그런 나는 지옥으로 가게 되고 일생 동안
간음죄만 지은 저 여인은 하늘나라로 가게 되다니 말이 되는가?"
신의 사자가 대답했다.
"수도사여. 신의 심판은 공명 정대한 것이다.
너는 평생 수도사라는 자만심과 명예만을 지키며 살았다.
신의 이름으로 죄만 가릴 줄 알았지 사랑은 베풀 줄 몰랐다.
그러나 보라! 저 여인은 몸으로는 비록 죄를 지었지만
마음으로는 진정한 기도를 했다.
가난한 이웃과 끼니를 나눠먹고
의로운 자의 편을 들기도 한 적도 있으니 얼마나 갸륵한가."
신의 사자는 수도사에게
지상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을 보여주었다.
수도사의 장례차는 온통 꽃으로 꾸며져 있었고
수도 없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매춘부의 시신은 헌 누더기로 싸여 있었다.
꽃 한송이 없었고 찾는 사람 하나 없었다.
신의 사자는 말했다.
"잘 알아두어라. 지상의 대접이 하늘의 대접과는 다르다는 것을.
신은 인간의 순수를 본다.
매춘부보다도 더 더러운 것은
종교의 매춘, 지식의 매춘, 권력의 매춘이다."
* 아이들의 순수를 배우십시요.
때묻지 않은 그 동심을.
계산하지 않는 마음을...
생각하는 동화 - 마흔여섯번째 이야기
< 꺼져버린 사랑 >
성년을 맞이한 거미가 있었다.
잎새를 스치는 바람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저녁이면 잠자리가 끈적해지는 기분하며
간혹 한 부분에 가래톳이 서는 듯 뻣뻣해지는 증세가
자주 나타나곤 했다.
그물코에 걸리는 날파리 등의 먹이보다도 더
간절히 기다려지는 그.
물을 마셔도 가셔지지 않는 갈증.
달빛 한 옹큼만 새어들어 와도
혹시나 하고 밖을 내다보게 만드는 조바심.
'그는 어디에 있을까
만나보고 싶어라
이 마음 전하고 싶어라.'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가 나타났다.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나갔을 때 그가 거기에 있었다.
- 처마 밑의 그물에 달려 있는 아름다운 방울.
방울은 거미한테 들켜버린 속살이 부끄러워서인지
빛살을 되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빛살마저도 무지개 가닥이어서
거미의 가슴을 더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거미는 조심조심 몸을 떨며 다가갓다.
"너를 사랑해. 정말, 정말이야. 자, 손을 이리 줘. 부탁이야."
방울은 몸을 움츠리며 대꾸했다.
"천천히 가. 급행보다는 완행이 더 많은 것을 보게 되는 것이야.
햇볕 아래서 갑자기 말리는 도자기보다
그늘과 햇볕으로 천천히 말리는 도자기가 더 튼튼하대."
거미는 은근히, 그리고 간절히 말했다.
"내가 지금 터뜨리지 않아도 누군가가 터뜨릴 텐데 뭘."
"아니야. 네가 보호해 주면 누군가도 보호해 주게 돼.
네가 곧 누구인가인거야."
거미는 열이 받??다.
"나도 그런 것쯤은 알아. 그러나 참을 수가 없는 걸 어떻해?"
"사랑은 참을 수 있는거야.
그것이 곧 사랑의 가장 참다운 증거인거야.
만일 능금나무에 꽃이 피었을 때 그 꽃을 꺽어 가진다면
능금은 영영 맛보지 못하게 될 것이야."
거미는 애원했다.
"잠깐만."
"관계에 있어선 잠깐만도 다인거야."
"그럼 연습처럼 슬쩍만."
"이것은 연습이없어. 슬쩍도 사처는 마찬가지야."
거미는 방울을 욱박질렀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너를 허락할 수도 있어야 해.
사랑은 아낌없이 줄 때 아름다운거야."
그러자 방울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제 나는 네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
내가 지키려고 하는 것을 함께 보호해 주기는 커녕
도리어 가져가려고 하는 것은
도적의 심뽀가 아니고 무엇이겠어?
사랑은 무례하지 않는 것이야."
그러나 거미는 솟구치는 불길을
잡지 못했다.
기어코 방울을 향하여
덤벼들고 말았다.
순,
간.
......
그 다음은 아무 것도 없음이었다.
찬란하던 방울이 사라져버린 빈 자리에
바람만이 허허하게 흐르고 있을 뿐.
아...
* 사랑은 참고 기다리며 보호해 주는 것.
당신은 사랑은?
생각하는 동화 - 마흔일곱번째 이야기
< 아홉 고개 >
약자에는 강하고
강자에는 약하다.
캄캄한 데 갇혀 있을수록
빛을 더하는 것.
이것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으로부터 배우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신으로부터 배웠다는
페루탈코스의 명언도 있다.
지혜있는 사람한테는 은혜를 베푸는 지체이나
우매한 사람한테는 자기를 삼키는 지체이다.
펜에 의한 것은 지울 수가 있지만
이것에 의한 것은 지울 수가 없다.
남 못되는 데는 잘 나서지만
남 잘되는 데는 움츠러든다.
고기는 낚시바늘로 잡지만
범인은 더러 이것으로 잡히게 된다.
두 배로 듣고, 두 배로 관찰한 다음그 반만 움직이라고
해서 눈과 귀는 두 개이나 이 지체는 하나이다.
이 당사자는 우리의 입 안에 살고 있다.
* 당신은 이것을 얼마나 조심하십니까?
이것은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이것을 사용하려고 할때 한번만 더 생각하십시요.
생각하는 동화 - 마흔여덟번째 이야기
< 오손도손이네 >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1남 1녀인 여섯 식구인데도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아가는 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웃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1남 1녀의 네 식구인데도
늘 큰소리가 그칠 날이 없는 싸움 잦기로
소문난 집이 있었다.
어느날, 화목의 비결을 알려고
소문난 집 주인이 오손도손이네 주인을 찾아갔다.
"댁은 식구도 많은데 언제나 평화가 넘치고 있으니
그 비결을 좀 가르쳐 주시지요."
그러자 오손도손이네 주인이 한참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댁은 똑똑한 사람들만 살고 있기 때문에 말썽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집은 좀 부족한 듯한 사람들만 모여 있기
때문에 조용합니다."
오손도손이네 주인은 말을 이었다.
"우리집은 누가 그릇을 부주의로 깨뜨려도 깬 사람은 물론
곁에 있는 사람까지도 제 잘못이라고 빕니다.
이렇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서로가 자기 탓이라고들
뉘우치고 사니 화목할 수밖에요."
싸움 잦기로 소문난 집 주인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돌아갔다.
"그렇군. 우리집에는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 상대방 탓이라고 우기지 않는가.
컵 깨뜨린 것도 당신 탓, 빚 얻어 쓴 것도 당신 때문,
모두가 네 탓이지, 내 탓이라고는 왜 하지 않는가."
* 내 탓이요.
한 걸음만 양보하면 됩니다.
생각하는 동화 - 마흔아홉번째 이야기
< 강자와 약자 >
강한 이는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며
다른 사람이 그에게 의지하고자 하면
따뜻하게 안아준다.
약한 이는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의지하며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억누르려고 한다.
강한 이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민감하다.
약한 이는 자신의 감정에만 민감하다.
강한 이는 어제까지 한 일에 대해서도
'더 나은 방법이 있을거야'하고
그 방법 찾기에 골똘한다.
약한 이는 오늘 하는 일에 대해서도
'남들도 늘 이렇게 해 왔는걸'하고
손발에 길들여진 대로 일을 한다.
강한 이는 한가지 큰 문제를 여럿으로 쪼갠다.
그리하여 해결하기 쉬운 것부터
차례차례로 풀어 나간다.
약한 이는 작은 문제들이 나타나도
그때그때 풀지 않고 모아둔다.
그러다가 목전에 당도해서야 갑자기
그 문제덩어리를 끌어안고 바둥거린다.
강한 이는 기분 나쁜 대우를 받으면 솔직이
그 불쾌한 마음을 털어놓고 해명한다.
그리고는 그 감정을 그때로 ?耉儲嗤?고 다시 평화를
회복한다.
약한 이는 기분 나쁜 대우를 받으면 겉으로
승복하나 속으로는 꽁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잊지 않고 마음속에
쌓아 두었다가 복수하려고 벼른다.
강한 이는 모든 것을 처음 보는 듯 반가이 맞으며
모든 것을 마지막 보내는 듯 철저히 한다.
약한 이는 모든 것을 늘 보듯이 덤덤히 맞으며
모든 것을 다시 만나서 할 것처럼 적당히 해둔다.
* 강한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까?
시야를 넓게 가지십시요.
눈을 들어 자기 자신만이 아닌 다른 주변을 둘러 보십시요.
생각하는 동화 - 쉰번째 이야기
< 메추리 마을 패망기 >
깊은 산속에서 고명하신 스님 한분이 돌아가셨다.
스님이 저승에 가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전생에서 지은 너의 공덕에 따라서
메추리들의 우두머리로 환생시키겠다."
"우두머리가 되자면 지혜가 필요할텐데요."
"물론이지.
네가 인간세상에서 보고 얻은 지혜 가운데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것 한가지만 기억하게 해주마.
그걸로 메추리들을 이끌어 나가거라."
이리하여 스님은 메추리의 몸을 받아 태어났다.
그리곤 어른 메추리가 되자 메추리마을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어느해, 메추리마을에는 비상사태가 발생하였다.
메추리들을 잡아가는 사냥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사냥꾼은 메추리 우는 소리를 기가 막히게 잘 냈다.
친구가 부르는가 싶어서 메추리들이 나가면
어김없이 그물이 날아와서 몽땅몽땅 잡아가는 것이었다.
우두머리 메추리는 모든 메추리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한가지 방법을 일러주었다.
"사냥꾼의 그물에 걸리면
하나, 둘, 셋 하고 일제히 날도록 하라.
그리하여 그물을 쓴 채 나무위에 올라가서
제각기 아래로 빠져 도망치거라. 알았느냐?"
"넷."
다음날도 사냥꾼은 여느 날처럼 찾아와서
메추리들의 친구 소리를 흉내냈다.
메추리들이 모였다.
소나무 뒤에 숨어 있던 사냥꾼이 그물을 던졌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메추리들이 하나, 둘, 셋 하고
일제히 그물을 쓰고 날아서 나뭇가지에 앉았다.
통쾌한 탈출이었다.
사냥꾼은 몇번이나 실패를 거듭하였다.
사냥꾼은 중얼거렸다.
'그렇군. 메추리들이 사이 좋은 땐 안되겠어.
저희들끼리 싸워서 사이가 나쁠 때 잡아야지."
사냥꾼은 살며시 메추리들이 좋아하는 모이를 뿌려 놓았다.
"얘, 그건 내가 먼저 찾은거야."
"뭐라구? 내가 먼저 봤어."
두 마리의 메추리가 싸움을 시작하였다.
싸움은 점점 커졌다.
끝내는 두 패로 갈라졌다.
숨어서 이것을 보고 있던 사냥꾼은 싱긋 웃었다.
재빨리 그물을 던졌다.
메추리들은 싸움을 하고 있던 참이라
힘을 합칠 수가 없었다.
제각기 흩어져서 달아나려고만 했기 때문에
그물코에 목이 걸리거나 날개가 걸려서
모두 잡히고 말았다.
우두머리 메추리는 탄식을 하면서
깊은 산속으로 들어거 버렸다.
'이 세상 것들은 왜 이다지도 어리석단 말인가.
그까짓 먹을 것 조금 가지고 하는 유혹에
번번이 넘어가고 말다니... 애석한지고, 애석한지고.'
* 당신은 작은 것을 얻으려 하다가 보다 큰 것을
잃은 경험이 있으십니까?
생각하는 동화 - 쉰한번째 이야기
< 쌍동이 >
사랑이 일어나자
고통도 일어났다.
사랑이 주저앉자
고통 또한 주저앉았다.
사랑이 눕자
고통도 누웠다.
사랑이 살며시 일어났다.
고통도 살며시 일어났다.
사랑이 참다못해 말했다.
"제발 날 따라오지 마.
너 때문에 내가 사람들로부터 원망을 듣는단 말이야."
고통이 대답했다.
"너와 나는 쌍동이인 걸.
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너도 포기해야 하는거야."
둘은 인간마을을 향해 길을 떠났다.
사랑을 맞아들인 사람들의 가슴은 이내 고통에 일그러졌다.
어떤 사람은 고통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기까지 했다.
아예 사랑 맞기를 외면하는 사람도 있었다.
오직
사랑의 고통까지도 사랑하는 사람한테서만
사랑이 완성되었다.
* 당신은 고통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사랑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생각하는 동화 - 쉰두번째 이야기
< 살과 씨 >
싸움이 잦던 부부가 어느날
'이혼하지 못하면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각오로 결혼식 할 때
주례를 봐 주었던 은사분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은사분께 이혼하지 않으면 안될 사유를 설명하고
두 집안의 부모님을 대신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은사분은 아무 말 없이 웃옷을 입었다.
두 사람한테 그들이 처음 만났던 곳으로 가자고 했다.
그 다방은 그들이 연애할 때
다정스럽게 만나던 곳이기도 했다.
종업원은 낯이 설었지만 분위기는 예전 그대로였다.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전에 늘 앉았던
자리에 가 앉았다.
은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처음 여기서 만났던 시절을 기억하겠지?
그리고 그때는 자기가 먹고 싶은 것보다도
상대가 먹고 싶어하는 것을 시켜 먹었겠지.
사소한 것도 자세히 설명하고 별 우습지도 않은 것에도
크게 소리내어 웃었겠지..."
두 사람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가슴은 미동도 않고
자기가 먹고 싶지 않은 것이 나오면 화를 내겠지?
작은 일이 아니라 큰 일도 한 두마디로 끝내고
우스갯 소리에는 콧방귀도 안 뀌겠지."
두 사람의 고개가 점점 숙이어져갔다.
"결혼은 사랑의 골인이 아니라 시작인 걸세.
연애는 복숭아 살을 베어먹는 일에 불과한거야.
중요한 것은 복숭아 씨인거야.
결혼을 함으로써 자네들은 그 씨앗을 땅에 파묻은 걸세.
서로가 열심히 상대한테 노력하는 것이
복숭아 씨에 물과 거름을 주는 과정일세.
알겠는가?"
은사가 두 사람의 손을 쥐어주면서 말했다.
"여기서 처음 만났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게.
서로가, 상대가 좋아하던 것을 좋아하던 그 마음으로.
그리고는 집에 가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우리의 첫마음을 죽는 날까지 가게 하소서'라고
써 붙여놓고 살게나."
* 첫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계십니까?
첫마음 그대로 살수 있다면...
생각하는 동화 - 쉰다섯번째 이야기
< 늘 행복이 >
늘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부모복도 없고, 여자복도 없고, 직장복도 없고,
돈복도 없는 그가 어느날
늘 웃고 사는 행복이를 찾아갔다.
그런데 늘 행복이한테도 늙고 못 배운 부모님이 계셨다.
아내도 미인이 아니었고, 평범한 월급장이에
집도 형편없이 작았다.
늘 불행이가 물었다.
"행복할 꺼리라곤 하나도 없는데 뭐가 그리 즐거우세요?"
늘 행복이가 늘 불행이를 데리고 길 건너편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수술실 앞에서 초조해 하는 사람들.
병실에서 ?g고 있는 사람들.
링겔을 꽂은 채 휠체어를 굴리며 가는 사람들.
영안실에서는 울음소리가 높았다.
병원을 나서면서 늘 행복이가 말했다.
"보시오. 우리는 저들에게 없는 건강이 있으니
행복하지 않은가요? 날 걱정해 주는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이 있으니 행복하고
작지만 내 집이 있으니 행복하지 않은가요?"
"나는 불평이 일 때마다 숨을 크게 쉬어봅니다.
공기가 없다면 죽게 되겠지요.
그런데 공기가 있지 않은가요.
마찬가지로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을 생각하면
평화가 오지요.
죽어서 묘 자랑을 하느니
살아서 꽃 한송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 위를 보면서 꿈을 갖고 그것에 도전을 하는 삶은
생명이 넘치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생각하는 동화 - 쉰여섯번째 이야기
< 마음 한 가운데 >
목동이 있었다.
목동은 가슴앓이 병을 지니고 있었다.
양이 더 많은 남의 양 우리를 보면 가슴이 답답했다.
아름다운 아가씨가 곁을 지나면 가슴이 동동거렸다.
주인으로 올라가는 친구를 보면 가슴이 저몄다.
목동은 의원을 찾아갔다.
의원이 일러준 대로 약을 써 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다른 의원을 찾아가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어느날이었다.
목동은 우연히 한 나그네를 만났다.
샘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그에게
양젖을 한 사발 적선하자 청하지도 않은 말을 들려주었다.
"성아기를 맞으시오. 그리하면 당신 원이 풀리리다."
목동이 물었다.
"언제입니까? 그리고 어디입니까?"
"하늘에 영광이 가득할 때, 평화의 구유에서."
목동은 추운 밤, 어두운 들녘에서 성아기를 기다렸다.
양을 지키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이 사람으로 하여금 성아기를 맞게 하소서.
시들은 풀잎에도 새 희망을 주시는 주님.
솔가지 같은 내 마음을 흰 눈으로 덮어 주소서.'
그날 밤에는 별이 유난히도 반짝이었다.
마른 풀잎이 기우는 소리도 들릴 만큼
세상 또한 고요하였다.
그때였다.
별 하나가 남쪽으로 흘렀다.
'그렇다. 저 별이다!'
목동은 별을 좇아 걸었다.
재를 넘는 목동의 발부리에 사람이 채였다.
기갈이 들어 쓰러진 나그네였다.
"나를 좀 도와주시오."
나그네가 애원하였다.
"아니오. 나는 지체할 수가 없소.
어서 저 성아기가 탄생하는 곳으로 가야 하오."
"당신이 그냥 떠나면 나는 죽소.
나를 죽게 내버릴 것이오?"
목동은 생각했따.
성아기를 보러가면 양을 얻을지도, 여자를 얻을지도,
지위를 얻을지도 모르는 일.
그러나 목동은 발을 멈추었따.
외투를 벗어서 나그네의 몸을 싸고,
옆구리에 찬 통을 꺼내어서 우유를 따랐다.
우유를 받아 마시는 나그네가
은은하게 빛을 내더니 천사로 변하였다.
목동은 무릎을 꿇었다.
"사랑한는 목동아, 일어나 성아기를 맞으라."
"성아기가 어디에 있습니까?"
"네 마음 한 가운데 지금 태어나고 있지 않느냐."
순간, 목동의 가슴앓이는 씻은 듯이 나았다.
마음 저 안쪽에서 먼 하늘의 별처럼 성아기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천리 먼 곳에서 백 번 천 번 성아기가 태어나면 무엇하느냐.
한번이라도 네 깨끗한 마음을 구유로 청하여 태어난
성아기가 소중한 것이다."
* 당신의 마음속엔 지금 무엇이 태어나고 있을까요?
한번 가만히 들여다 보십시요.
생각하는 동화 - 쉰일곱번째 이야기
< 빛과 그늘 >
사람들은 자기들이 거울을 본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사람의 생각일 뿐,
거울 쪽에서는 거울이 사람을 보고 있다.
거울은 별별 희한한 사람들을 다 본다.
얼굴을 거울 속에 들여놓고서 갖가지 칠로
꾸미는 사람들.
때로는 한 시간도 부족한 여자도 있다.
어떤 사람은 머리를 들이밀고서
흰 머리카락을 뽑는가 하면
콧구멍을 들추고
코털을 뽑는 사람도 있다.
살짝 윙크하는 연습을 하는가 하면
뽀로통한 표정을 연습하기도 한다.
나(거울)는 말한다.
걱정하는 사람은 이마에
주름살이 세로로 새겨진다.
원한은 눈꼬리에
살기를 집어넣어 봉합하며
불만은 얼굴에 그늘을 한 꺼풀씩 입힌다.
기쁨도 얼굴에 자국을 남긴다.
미소가 뚝뚝 듣는 사람은
그 얼굴이 도리어 나(거울)를 빛나게 해준다.
얼굴에 빛살이 펴나게 할 것인가,
골이 패이게 할 것인가는
당신의 마음씀이지
내(거울) 책임이 아니다.
* 당신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비쳐집니까?
생각하는 동화 - 쉰여덟번째 이야기
< 열리는 문 >
- 어떤 우화에서
그는 항시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말하곤 했다.
'사랑은 나뉨이 아니라 일치이며 무엇으로도
가를 수 없는 것이다'고.
마침내 그는 사랑하는 그 사람의 집을 찾아갓다.
그는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발소리가 났다.
신발소리만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는 틀림없는 그였다.
"누구세요?"
그는 은근히 대답했다.
"나야, 나."
그는 희열에 떠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발소리가 다시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는 못들었는가 싶어서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다.
돌아갓던 발소리가 다시 다가왔다.
"누구세요?"
"나라니까, 나라구!"
이번에도 문이 열리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신 이런 대꾸가 흘러나왔다.
"돌아가세요. 이 집은 너와 나를 들여놓을 만한 집이 아녀요."
사랑하는 그 사람한테서 문전 박대를 당한 그는 며칠을
방황하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드디어 새?芙瓦? 한줄기 바람 같은 깨침이 있었다.
그는 다시 사랑하는 사람의 집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너야, 너."
이내 문이 활짝 열렸다.
* 사랑은 둘이 아니라 하나로 되는 것입니다.
지금 사랑의 문을 두드려 보십시요
생각하는 동화 - 쉰아홉번째 이야기
< 난파선의 사람들 >
항해하던 요트가 태풍을 만났다.
파도가 두어 시간 휘감아버리자 기관실도,
무전기도 불통이 되었다.
요트는 표류하기 시작했다.
상처뿐,
배 안에 남은 사람들은 절망에 빠졌다.
양식도, 물도 줄어만 가는데
구조선은 나타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부상당해 앓고 있던 사람이 하나 죽었다.
남은 사람들은 하나 줄은 입에 대해 차라리 안도했다.
누가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을 더 먹는가, 눈에 불을 밝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조난객 가운데 임산부가 있어
그 여인이 아기를 낳았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의 눈이 번쩍이었다.
사람들은 모처럼 입을 열었다.
"우리가 죽더라도 저 아이만은 살리자."
"저 아이에게 육지의 꽃과 평화를 맛보게 하자."
한 사람이 자기 혼자만 쓰기 위해 숨기고 있던
낚싯바늘을 내놓았다.
또 한사람이 낚싯줄을,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미끼를
내놓았다.
사람들은 힘을 모아 낚시질을 해서 산모를 먹였다.
또 한 사람이 임종을 맞았다.
"부디 내 죽음이 저 아기를 위한 죽음이 되게 해주시오."
죽는 사람은 미련없이 눈을 감았고
산 사람들은 슬픔에 차서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옆 사람을 원수처럼 여겼던 사람들의
얼굴에 평화가 찾아왔다.
물 한 모금도 아이를 위해 양보하자 기쁨이 일었다.
남은 사람들은 조각난 판자로 노를 만들어 저었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오직 아기를 물에 닿게 하기 위하여 저어갔다.
* 지금 우리 사회가 이 난파선과 같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우리를 구원해줄 아기는 어디 쯤 있을까요.
당신 가까이에 있는건 아닐까요.
바로 나와 당신, 우리의 마음속 깊숙이 잠자고 있습니다.
당신 마음속에 있는 아기를 깨우는 일은 오직 당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아기를 깨우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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