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출신의 한국화가 권기철 화백
자연, 음악, 술, 그림을 통하여 사물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화가
아프다. 춥다, 사랑한다, 슬프다라고 하는 감정 언어를 글로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림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그리 쉽지 만은 않을 것 같다. 이런 감정을 하나로 묶어 비구상 연작으로 만들어 가는 화가가 있다. 영주출신의 한국화가 권기철(46) 화백이 바로 그다.
화가 권기철은 보통의 그림쟁이들이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자연과 나무, 바람, 조개, 악기, 음악, 술, 영화, 책, 마음 등을 자신만의 그림 언어로 화폭에 다시 발현하는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다. 일반적인 화가들이 도저히 그림으로는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추상의 언어를 캔버스 위에 형상화하는 천재성을 그는 타고 났다.
철들기 전부터 생활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붓글씨를 쓰면서 살아온 화동 권기철이 평생 업을 화가로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그의 생은 오로지 음악과 그림, 술로 시작되고 끝이 나며, 이후 모든 결과물은 그림으로 귀결된다.
영주서부초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형들을 따라 그림과 서예에 열중했고, 영주중, 영주고를 거치면서 미술부원, 서예부원으로 활동을 했다. 당연히 대학은 경북대 미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이후 영남대 대학원에서도 미술을 더 공부했다.
작가 권기철의 삶은 고통과 절망, 연민과 열정이 빼곡하게 들어찬 고달픈 인생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가운데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을 나와 신문배달을 하며 고학으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가난은 그의 삶에 가장 큰 절망이었다. 어려서 그림도 그리고, 붓글씨를 썼지만 한 번도 스케치북과 붓을 돈 주고 사 본 적이 없다. 모두 얻거나 주워 쓴 것이었다. 그런 고통을 감내하게 한 힘은 화가가 되겠다는 작은 소망 때문이었다.
신문 배급소에서 매를 맞아가며 잠자리와 끼니를 해결했고, 라디오가 유일한 친구였던 어린 시절의 상처, 이 모든 것을 이기게 한 힘은 화가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로 대학 강의, 그림을 판 돈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술을 한잔하면서 음악을 듣거나 기타를 치면서 그림을 그리고 산다. 음악이라고 하는 무형 예술을 그림이라고 하는 유형의 틀 안으로 공간화 하는 것이 좋아서 자주 오선지며, 악기, 연주자의 모습 같은 것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의 초기작품은 주로 인물화나 구상작품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추상화를 많이 그리고 있다. 그가 추상의 드로잉을 좋아하는 이유는 즉흥적으로 감정이입이 가능한 작품을 만들 수 있고, 일이 잘 풀리는 경우에는 하룻밤에 한 작품 정도는 완성할 수 있어 즐겁기 때문이다. 물론 잘 그려지지 않는 경우에는 드로잉을 하는데만 한 달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그가 좋아하는 음악과 서예를 혼합한 듯한 선의 완급, 점, 면의 조화를 느낄 수 있으며, 보는 이들이 편하고 자유롭게 그림을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
그는 음악을 들으면서 편하게 작업을 하고, 또 그 느낌을 형상화하면서 캔버스를 채워가고 있다. 또한 열린 사고와 다작에 능한 자유인이며, 늘 마음을 비우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추상화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재자다.
“8~9년 전 구상에서 비구상으로 틀을 바꾸었다. 내 생각에 구상은 껍데기를 재현하는 것 일뿐이다. 나에게 비구상은 시간과 공간, 시각적 비주얼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더 재미있고 즐겁다. 지난 시기 구상작품을 하면서 잘못된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깨닫는데 10년이 걸렸다. 비구상의 길을 갈 것이라고 결심을 하고서는 나 자신을 버렸다. 나를 없애고, 나를 태워버리면서 무아(無我), 무위(無爲)를 이루었고 나의 작품세계를 완성해가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아울러 “나는 요즘 끊임없이 자연, 사물과 대화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내가 주로 말을 걸지만, 나중에는 사물과 자연이 나의 말을 되받아주기도 한다. 그러기에 나는 정신을 형상화할 수 있는 것이고, 보이는 정신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 같다. 화가의 작품에는 정신이 가장 중요한데, 나는 스스로 정신을 만들어 가고 추상화를 통하여 형태로 승화시키고 있다.”라고 한다.
사실 “요즘의 내 작업은 자연의 연속성과 순환성을 채집하는 과정이다. 시간을 하나로 모으고 진부한 평면에서 벗어나 새로운 그 무엇인가를 만드는 작업이 나의 철학이요, 작품들이다. 간혹 다른 작가들을 만나면 그의 정신과 기운을 느낄 수 있다.”라며 “ 좋은 작품을 하려면 상처는 긁고, 드러내고, 해체시켜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사라지는 무아, 무위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음악과 그림의 세상이요. 합일이요. 승화다.”라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말하고 있다.
영주출신 한국화가 권기철의 끝없는 자기탐구와 자연, 사물과의 대화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으며, 1-2년에 한 번씩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 개인전이라는 이름으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나 역시도 그런 권기철의 정신세계와 꾸준한 에너지 교류를 위해 그의 그림을 탐미하고 있는 것 같다.
2-3년 후에는 대구 생활을 접고, 상경하여 서울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권기철은 대구시 달성군의 화실과 대구 시내의 집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으며, 미술대학 진학을 꿈꾸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을 하나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