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게송품(偈頌品) ①
그때 세존께서 이 수다라의 자세한 뜻을 다시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법 견고하지 않으며 모두 분별에서 생기느니라.
분별은 곧 공으로 분별할 대상도 존재하지 않느니라.
허망하게 분별하기 때문에 곧 인식[識] 작용이 생기니 8식, 9식 여러 가지 바다의 그 많은 파랑 같으니라.
습기 항상 증장하여 근(根)을 반연하여 견고히 붙어 있다가 마음 경계 따라 흐르니 쇠가 자석에 붙은 것 같으니라.
중생 의지하는 성품(의타기성) 모든 헤아림[計度] 떠나고 또 지혜로 아는 것[所知:소지장] 떠나면 의지처를 바꾸어[轉依] 해탈 얻으리.
여환(如幻)삼매 얻고 10지(地)를 뛰어넘어 심왕(心王)을 볼 때는 생각과 식 다 멀리 떠나리라.
그때 마음이 전의(轉依)하면 곧 항상 머물 곳이므로 연화궁 속에서 환(幻)의 경계 일어나리라.
이미 그 궁전에 머물고 나서 자재하여 공용(功用) 없이 모든 중생 이익하니 온갖 색의 마니보주 같으니라.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도 없고 오직 허망한 분별 없애야 하는데 어리석은 범부 미혹하며 집착하니 석녀(石女)가 꿈에 아기 낳은 것과 같으니라.
마땅히 알라. 나(보특가라)와 온(蘊)과 계(界)의 모든 인연 등 모두 공하여 자기 성품[自性] 없고 유(有)와 비유(非有)도 생김 없느니라.
내가 방편으로 설하나 진실로 모양 없는데 어리석은 범부 허망하게도 능상(能相)과 소상(所相)에 집착하느니라.
일체를 안다거나 알지 못하거나 그 일체도 일체가 아닌데 어리석은 범부 분별하는 것일 뿐 부처님은 나와 남을 분별 않느니라.
모든 법 환과 꿈 같아 생김도 없고 자성도 없어 모두 성품이 공한 까닭에 있다 없다 함도 얻을 수 없느니라.
나는 오직 한 성품 설할 뿐 허망하게 헤아림 떠나 자성이 둘이 없으니 모든 성인 행하는 바이니라.
4대(大)가 고르지 아니할 것 같으면 얼굴 변하고 토하며, 눈에 반딧불이 보이나 보이는 것 모두 있지 않으니 세간도 또한 이와 같다.
마치 요술로 나타낸 것 같아 초목ㆍ기와ㆍ조약돌 등 그 요술은 있는 바 없나니 모든 법 또한 이와 같다.
가짐[取]도 아니요 가지는 것도 아니며 얽매임도 아니요 얽매어지는 것도 아니니 환과 같고 아지랑이 같고 꿈 같고 또한 눈병으로 보는 것 같다.
만약 진실로 보고자 하면 모든 분별로 취하는 것 떠나고 마땅히 진실한 관(觀)을 닦으면 부처님 뵙는 것 꼭 의심 없느니라.
세간은 꿈 같아 물질과 생활도구 또한 그러하니 만약 능히 이같이 보면 몸은 세간에서 존경받으리라.
삼계는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고 미혹하여 허망한 생각으로 본 것이니 허망한 생각 떠나면 세간 없으므로 알고 나면 번뇌 바뀌리라.
어리석은 범부는 허망하게 생멸이 있다고 보나 지혜로운 이는 실답게 보면 생도 아니요 또 멸도 아니다.
항상 행함에 분별 없고 마음과 마음의 법 멀리 떠나 색구경천(色究竟天)에 머물러 모든 허물 있는 곳 떠난다.
그곳에서 정각 이루어 힘과 신통과 자재와 모든 훌륭한 삼매 갖추어 현재에 변화하여 여기에서 정각 이루리라.
화신은 무량 억 두루 일체처에 노닐며 어리석은 범부 듣게 하리라. 메아리같이 생각하기 어려운 법을. 처음이나 중간이나 뒤라는 생각을 멀리 떠나고 또한 있고 없음을 떠나 많지도 않은데 많이 나타나고 움직이지 않고 널리 두루 한다.
중생 몸 가운데 덮여 있는 성질(性質:眞性) 미혹하여 환(幻)이 있는 것이지 환이 미혹하게 한 것 아니니라.
마음이 미혹한 까닭에 일체가 모두 있다 하고 이 모양에 얽매어서 장식(藏識)이 세간 일으키느니라.
이 같은 모든 세간 오직 거짓으로 시설하여 있는 것일 뿐인데 모든 견해 폭포의 흐름같이 사람의 법 가운데 행하느니라.
만약 능히 이와 같이 알면 이것이 곧 의지하는 것을 바꾸는 것이니 이에 나의 참된 아들이 되어 순히 따르는 법 성취하리라.
어리석은 범부 분별하는 것 단단함과 습함, 따뜻함과 움직이는 법, 거짓 이름으로 진실한 것 없고 또한 능상[相]과 소상(所相)도 없네.
몸의 형상과 모든 근(根) 모두 여덟 가지 물체로 이루어진 것 어리석은 범부 물질이라 망상하여 미혹한 몸 장롱에 갇히었네.
어리석은 범부 허망하게 분별하여 인연이 화합하여 생겼다 하며 진실한 모습 깨닫지 못하여 삼계[三有]에 유전하도다.
식 가운데 모든 종자 능히 마음의 경계 나타내나 어리석은 범부 분별 일으켜 2취(取:能取ㆍ所取)로 허망하게 분별한다.
무명과 애(愛)와 업(業) 모든 마음 그에 의해 생기나니 이로써 내가 깨달아 앎은 의타기성(依他起性) 때문이니라.
허망하게 사물이 있다 분별함은 미혹한 마음이 행하는 것 이런 분별은 전혀 없는데 미망(迷妄)으로 헤아려 있다 하느니라.
마음이 모든 연(緣) 때문에 얽매어 중생이 생겨 일어나니 모든 연을 멀리 여의면 나는 보이는 것 없다고 말하느니라.
이미 온갖 인연 떠나서 자기 모습[自相]이 분별하는 바 몸 가운데 다시 일어나지 않아 나는 무소행(無所行)을 하노라.
중생심이 일어나는 바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이니 보는 것 모두 모양 없는데 어리석은 범부 허망하게 분별하느니라.
아뢰야식 나타내 보여 수승한 장식(藏識:아뢰야식)이라 하지만 능취와 소취를 여읜 것을 나는 진여라 말하느니라.
5온[蘊] 가운데 사람 없으니 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생(生)이란 오직 식이 생한 것이고 멸도 또한 오직 식이 멸할 뿐이니라.
마치 그림에 높고 낮음같이 비록 보이나 있는 것 없듯이 모든 법 또한 이와 같아 비록 보이나 있지 않느니라.
건달바성 같고 또한 더울 때 아지랑이 같아 보이는 것 항상 이와 같으니 얻을 수 없음을 지혜롭게 관찰하라.
인연과 비유로 주장[宗]을 세우나 건달바성ㆍ꿈ㆍ불의 수레바퀴 아지랑이ㆍ해ㆍ달빛 불꽃과 털 수레 등의 비유로써 무생(無生)을 나타내나 세상의 분별은 모두 공이요 미혹이요 환(幻)과 꿈 같으니라.
모든 것[諸有:三界]은 불생(不生)으로 보고 삼계는 의지할 바 없고 안과 밖 또한 이와 같으면 무생인(無生忍)을 성취하리라.
여환(如幻)삼매와 의생신(意生身) 얻어 갖가지 모든 신통과 모든 힘 자재하리라.
모든 법 본래 생함 없어 공하여 자성 없는데 불을 돌려서 생긴 원형 불꽃을 말한다.
모든 인연에 미혹되어 생멸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어리석은 범부 허망한 분별로 마음으로 마음 나타내고 밖의 물질도 나타내나 진실로 있는 바 없느니라.
선정의 힘[定力]으로 관찰해 보면 불상(佛像)과 골상[骨鎖:骨相]과 대종(大種:四大)으로 분석되어 거짓으로 시설한 세간이니라.
몸과 생활도구[資]와 머무는 곳 이 셋을 소취(所取)라 하고 뜻[意]과 취함[取]과 분별함 이 셋이 능취(能取)가 되느니라.
미혹으로 허망하게 헤아린 집착 능(能)과 소(所)를 분별함으로 다만 문자의 경계를 따를 뿐 진실을 보지 못하느니라.
수행자 지혜로 관찰함 모든 법 자성이 없음이니, 이때 무상(無相)에 머물며 일체는 다 휴식하리라.
먹물로 닭 그리니 지혜 없는 이 허망하게 취하듯 실로 3승이 없음을 어리석은 범부는 깨닫지 못하느니라.
만약 모든 성문과 벽지불로 보여도 모두 대비보살이니, 변화하여 나툰 것이니라.
삼계는 오직 이 마음뿐인데 두 가지 자성(自性)을 분별하느니라.
의지함을 바꾸어[轉依] 사람, 법 여의면 이것이 곧 진여가 되리라.
해ㆍ달ㆍ등불ㆍ빛ㆍ아지랑이 대종(大種)과 마니보주 분별 없이 작용하나니 모든 부처님 또한 이와 같으니라.
모든 법은 털 수레바퀴같이 생기고 머물고 멸함 멀리 떠나고 또한 항상함과 무상함도 떠났으니 더럽고 깨끗함 또한 이와 같으니라.
타도(陀都)약에 중독된 것같이 땅이 금빛으로 보이나 진실로 그 땅에는 본래 금의 모양 없느니라.
어리석은 범부 또한 이와 같아 무시이래의 미혹과 산란한 마음으로 허망하게 모든 것 진실이라 취하나 환과 같고 아지랑이 같으니라.
마땅히 한 종자를 관찰하되 종자 아닌 것과[非種] 더불어 같이 인증[印]하라.
한 종자와 일체 종자 이것을 마음의 갖가지[心種種]라 이름하느니라.
갖가지 종자가 하나이며 의지함을 바꿔 종자 아님[非種]이 되어 평등하여 같은 법인(法印)이니 모두 다 분별이 없느니라.
갖가지 모든 종자 능히 모든 무리[趣:六道]에 생(生)함을 느끼니 갖가지 온갖 잡된 고통 일체 종자라 이름하느니라.
모든 법의 자성 관찰하면 미혹에 버려지기를 기다리지 않나니 사물의 성품 본래 생김이 없음이므로 깨달아 알면 곧 해탈이니라.
선정에 든 이가 세간 관찰하니 온갖 물질[色] 마음에서 일어남이어서 무시이래로 마음이 미혹한 탓이니 실로 물질도 없고 마음도 없느니라.
환과 건달바성과 털 수레바퀴와 아지랑이 같아 있지 않으면서 있는 듯이 나타나나니 모든 법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일체법 생하지 않았고 오직 미혹하여 본 것일 뿐 미망(迷妄)에서 생김을 어리석은 이 허망하게 둘(능ㆍ소)을 계착(計着)하느니라.
갖가지 습기로 말미암아 모든 마음의 파랑 생기나니 만약 저 습기 끊을 때 마음의 물결 다시 일지 않으리라.
마음이 모든 경계를 인연하여 일어남이 그림같이 벽에 의지하듯 하나니 그렇지 않다면 허공에는 어찌 그림을 그리지 못하랴.
만약 조그마한 모양에 인연하여 마음이 생긴 것이라면 마음은 이미 인연에서 일어남이니 오직 마음이란 뜻은 이루지 못하리라.
마음의 성품 본래 청정해 마치 깨끗한 허공 같으나 마음이 반연 없이 홀로 있다면 허공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
마음이 도로 마음을 취하게 함은 습기 때문이요 다른 인연[因] 아니니라.
집착하는 자기 마음이 나타나 마음을 일어나게 하나 모든 것 실로 밖이 아니니 그러므로 오직 마음이라 말하느니라.
장식을 말하여 마음이라 이름하고 생각하고 헤아림을 뜻(7식)이라 하며 능히 모든 경계 분별하는 것을 곧 이름하여 식이라 하느니라.
마음은 항상 무기(無記)이고 뜻은 두 가지 행(行) 갖추었고 현재의 식은 선(善)과 불선(不善) 등을 다 갖추었느니라.
깨달으면 곧 선정에 들 때가 없나니 지(地)와 모든 세계[諸刹] 뛰어넘고 또한 심량(心量)을 넘어 무상과(無相果:진여)에 머무느니라.
보는 것 있다 없다 함과 갖가지 모양 이것은 모든 어리석은 범부가 전도되어 집착한 것이니라.
지혜로 만약 분별 떠나고 사물이 있다 함은 곧 서로 어긋나니 마음으로 연유한 까닭에 물질 없음이므로 이런 까닭에 분별 없느니라.
모든 근(根)은 마치 환과 같고 경계는 다 꿈 같으며 능작(能作)과 소작(所作) 일체 모두 있지 않느니라.
세속의 진리[世諦]는 일체가 있고 제일의제는 곧 없는 것이니 모든 법은 성품이 없다는 성품을 말하되 제일의(第一義)라 하느니라.
자성(自性)이 없는 가운데 모든 말을 인연하는 까닭에 그래서 사물이 일어남을 속제(俗諦)라 이름하느니라.
만약 말이 없다면 생긴 사물 또한 없나니 세속제 가운데 없다는 것은 말은 있어도 사물은 없는 것이니라.
전도된 허망한 법 실로 얻을 수 없느니라.
만약 전도 이것이 있다면 곧 자성이 없다 함이 없으리라.
있다, 없다는 성품 때문에 저 전도의 법은 일체 모두가 있다 하나 이것은 얻을 수 없느니라.
악습이 마음을 훈습하여 나타난 갖가지 모양 미혹하여 마음 밖(사물)에 있다 하며 허망하게 모든 색상 취하느니라.
분별과 무분별에 분별 이것은 끊어야 하고 무분별은 능히 보아 진실한 성품 진공(眞空) 깨치리라.
무명(無明)이 마음 훈습하여 나타난 모든 중생 환(幻)의 코끼리ㆍ말 등과 나뭇잎을 금이라 함과 같으니라.
마치 눈병난 자가 미혹하여 털 수레바퀴 보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범부 또한 이와 같이 허망하게 모든 경계 취하느니라.
분별과 분별한 것과 분별을 일으키는 자 바뀜[轉]과 바뀌는 것과 바뀌는 인(因) 6해탈(解脫)의 인(因)이니라.
허망하게 헤아린 까닭이지 실제 지(地)도 없고 모든 체(諦)도 없고 또 모든 국토도 없고 화신불ㆍ2승도 없느니라.
마음이 일체법 일으키니 일체처와 일체 몸 마음 성품은 실로 모양이 없는데 지혜 없어 갖가지 모양을 취하느니라.
미혹하여 상(相) 분별함을 의타기성[依他起:諸緣]이라 하며 모양 가운데 있는 이름 이것을 허망한 분별이라 하느니라.
모든 인연의 법이 화합하여 이름과 모양 분별하나 이들은 모두 생긴 것 아니니 이것을 곧 원성실(圓成實)이라 하느니라.
시방의 모든 국토 중생과 보살 중에서 있는 바의 법신ㆍ보신불 화신불과 변화해 나타남은 모두 무량수불이라
극락세계에서 나오시어 방광경(方廣經:대승경전) 가운데서 비밀의 뜻 설하심을 마땅히 알라.
불자(佛子:보살)가 설한 것과 모든 도사(導師)가 설한 것은 모두 화신불의 설법이요 이것은 실로 보신불은 아니니라.
모든 법 생김이 없고 또한 있지 아니함도 아니요 환과 같고 또한 꿈과 같고 건달바성 같으니라.
여러 가지가 마음에서 일어나고 여러 가지가 마음에서 해탈하나니 마음에서 일어남이요 다시 다른 것 아니니 마음 멸함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중생의 분별로 나타난 허망한 모양 오직 마음뿐 실은 경계 없으니 분별 떠나면 해탈이니라.
무시이래로 쌓고 모아 분별하는 모든 희론 악습의 훈습으로 말미암아 허망한 경계 일으키느니라.
허망하게 자성이 있다고 헤아린 것일 뿐 모든 법은 모두 생긴 것 없는데 연기(緣起)에 의지하여 일어남은 중생이 미혹하여 분별함이니라.
분별에 상응하지 아니하고 다른 데 의지하여 청정하나니 머무는 바에 분별을 떠나 의지함이 바뀌면 곧 진여이니라.
망령되게 허망함을 헤아리지 말라. 허망하게 헤아림은 곧 진실이 없고 미혹한 허망한 분별은 취(取)하고 취하는 것 모두 없느니라.
분별로 밖의 경계 보는 것 이것은 허망하게 자성 분별함이니 이 허망한 분별로 말미암아 연기의 자성이 생기니라.
사견(邪見)의 모든 밖의 경계는 경계가 아니고 다만 이 마음뿐 이치와 같이 바로 관찰하면 능취ㆍ소취가 모두 없어지리라.
어리석은 이가 분별하듯이 밖의 경계는 실로 있지 않으나 습기로 어지럽고 혼탁하여진 마음에서 밖의 경계와 상속하여 같이 바뀌느니라.
이미 두 분별(능ㆍ소) 멸하고 지혜, 진여에 계합[契]하면 영상(影像) 없는 경지가 일어나니 생각하기 어려운 성인의 행할 바이니라.
부모가 화합함에 의하여 소(蘇:우유)가 병에 있듯이 아뢰야와 뜻[意] 함께 붉고 흰 것[赤白:父精ㆍ母血]이 자라나느니라.
폐시(閉尸)와 조밀(稠密)해진 태[胞] 더러운 업 갖가지 생겨 업(業)의 바람으로 4대(大)가 증장하여 출생함이 과일 익는 것 같고 5근[根]과 다섯 가지 또 다섯 가지[二十五] 생기고 아홉 가지 구멍이 있고 손톱ㆍ발톱ㆍ치아ㆍ털이 갖추어져 기일이 차면 큰 출생하느니라.
처음 생길 때는 구더기 같고 사람과 같이 잠자고 깨며 눈을 뜨면 색이 보이고 분별함이 점점 늘어나느니라.
분별하여 결정하고 나면 입술과 잇몸 등이 화합하여 비로소 말이 나오니 마치 앵무들과 같으니라.
중생 뜻이 좋아함을 따라 대승을 편안히 있게[安立] 하나니 나쁜 견해로 행할 곳은 아니며 외도는 능히 받아들이지 못하느니라.
스스로 안으로 깨달은 바의 가르침[乘] 헤아려서 행할 바는 아니오니 원컨대 말씀하소서. 부처님 입멸하신 뒤에 누가 능히 이것(대승)을 수지합니까?
대혜여, 너는 마땅히 알라. 선서(부처님) 열반 후에 미래 세상에 마땅히 나의 법을 지닐 자 있으리라.
남천축국 가운데 큰 이름과 덕 있는 비구의 이름을 용수(龍樹)라 하리니 능히 유ㆍ무의 주장[宗]을 깨뜨리고, 세간 가운데서 나의 무상(無上)의 대승법을 나타내리니 처음 환희지(歡喜地)를 얻어 안락국(극락)에 왕생하리라.
온갖 인연으로 일으킨 뜻 유ㆍ무 모두 옳지 아니하니 인연 가운데 사물을 허망하게 분별하여 유ㆍ무를 분별하느니라.
이와 같은 외도의 견해 나의 법을 먼저 떠난 것이고 일체법의 이름자[名字]는 법 생기는 곳마다 항상 따라다니느니라.
이미 익혔고 또 현재 익히며 전전(展轉)하여 함께 분별하느니라.
만약 이름 설하지 않으면 세간 모두 미혹하리니 미혹 없애려 하는 까닭에 그러므로 이름과 말을 세우느니라.
어리석은 이 모든 법 분별하여 이름과 모든 인연에서 법이 생겨난다고 미혹하니 이것이 세 가지 분별이니라.
불생불멸하는 까닭에 본성은 허공 같으며 자성은 있는 바 없나니 이것을 허망하게 분별한 모양[妄計相:변계소집성]이라 하느니라.
환(幻)ㆍ그림자ㆍ아지랑이ㆍ 거울 속의 형상ㆍ꿈ㆍ물의 수레바퀴 같고 메아리와 건달바성(신기루) 같으니 이것이 곧 의타기성[依他起]이니라.
진여와 공은 둘이 아니요 실제(實際)와 법성 모두 분별 없나니 나는 이를 원성실성[圓成]이라 하느니라.
말을 따라 마음이 행하면 허망하게 2변에 떨어지나니 지혜로 실제(實諦)를 분별하나 이 지혜에는 분별이 없느니라.
지혜로운 이에는 나타나나 어리석은 이에게는 곧 나타나지 않나니 이와 같이 지혜로운 이에게 나타난 것 일체법은 모양 없느니라.
가짜 금으로 만든 영락같이 금이 아닌데 어리석은 이는 금이라 하듯 모든 법도 또한 이와 같은 데도 외도는 허망하게 헤아리느니라.
모든 법 시작도 끝도 없이 진실상(眞實相)에 머무느니라.
세간은 모두 만든 것 없는데 허망하게 헤아려 능히 깨닫지 못하느니라.
과거에 있던 법 미래와 현재의 법 이와 같은 일체법 모두 다 무생(無生)이니라.
모든 인연 화합한 까닭에 법이 있다 말하나 만약 화합 떠나면 불생이요 또 불멸이니라.
그러나 모든 연기의 법 같다거나 다름을 얻을 수 없느니라.
간략히 말하면 생(生)이라 하고 자세히 말하면 곧 멸이라 하느니라.
불생공(不生空)이요 다시 생공(生空)이라 불생공이 수승한 것이고, 생공은 곧 멸하여 무너지느니라.
진여ㆍ공ㆍ실제(實際) 열반과 법계 갖가지 의생신(意生身) 내가 설한 것은 모두 이름만이 다른 것이다.
모든 경ㆍ율ㆍ논에서 깨끗하게 분별하였으니 만약 무아(無我)를 깨닫지 못하면 말[敎]에 의지할 뿐 뜻[義]에 의하지 못하리라.
중생의 허망한 분별로 보는 것은 토끼뿔 같아 분별함은 곧 미혹이니 목마른 짐승이 아지랑이를 물로 보는 것과 같으니라.
허망한 집착으로 말미암아 분별을 일으키나니 만약 허망한 집착의 인(因) 떠나면 분별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매우 깊은 대방광(大方廣:경)의 설법 모든 나라 자재로이 알 것이니 내가 불자(佛子) 위해 설함이요 모든 성문 위함이 아니니라.
3유(有:三界)는 공이요 무상(無常)이니 나와 내 것 여의라고 나는 모든 성문 위해 이와 같이 전체 모습[總相]을 설하느니라.
일체법에 집착하지 말고 고요하고 깨끗하게 홀로 수행하는 벽지불과[辟支果] 생각하여 내가 그들 위해 설하느니라.
몸은 의타기성인데 미혹하여 스스로를 보지 못하고 밖의 자성 분별하여 마음을 허망하게 일으키게 하도다.
과보로 얻는 것과 신통력[力持]과 모든 무리의 종류(육도)로 태어나는 것과 또 꿈속에서 얻는 것 이것이 신통의 네 가지 성품이니라.
꿈속에서 얻은 것과 부처님의 위신력과 모든 무리의 종류 등에 태어남은 모두 과보와 신통으로 얻은 것 아니니라.
습기가 마음 훈습하여 사물같이 그림자 일어남을 어리석은 범부 깨닫지 못하여 이런 까닭에 생겼다 말하느니라.
허망한 분별을 따라 밖의 모양 수시로 일어나고 그러한 때에 망상은 늘어나며, 자기 마음의 미혹함을 보지 못하느니라.
어찌 생(生)이 있다 설하면서 보는 것[所見]을 설하지 아니하는가.
보는 것 없이 보거늘 누구 위해 왜 설하겠는가.
마음의 체는 스스로 본래 청정하나 뜻과 모든 식이 함께 습기로 항상 훈습하는 까닭에 모든 혼탁함과 어지러움 만드느니라.
장식은 몸 버리고 나면 뜻[7식]이 모든 무리[趣] 구하여 식이 경계 보이는 듯하면 보고는 탐내어 취하느니라.
보는 것은 오직 자기 마음뿐 밖의 경계 얻을 수 없느니라.
만약 이와 같은 관(觀)을 닦으면 허망을 버리고 진여를 생각하리.
모든 선정의 경계 업과 부처님의 위력 이것이 세 가지 부사의(不思議)와 생각하기 어려운 지혜로 행할 바이니라.
과거ㆍ미래의 보특가라[補伽羅] 허공과 열반 내가 세속 말을 따른 것이고 진제(眞諦)는 문자를 떠났느니라.
2승과 외도 모두 모든 견해에 의지하여 유심(惟心)을 미혹하여 허망하게 밖의 경계를 분별하느니라.
나한 벽지불과 불보리(佛菩提)로서 종자 굳게 성취되면 꿈에서 부처님이 그 이마에 관정하리라.
마음의 환이 적정(寂靜)에 나아가거늘 어찌 유무(有無)를 설하며 어느 곳에서 누구 위해 무슨 까닭인지 원컨대 설하여 주소서.
오직 마음임을 미혹하여 그래서 환ㆍ유ㆍ무를 설하나니 생멸상(生滅相)과 상응하며 상(相)과 소상(所相)이 평등하니라.
분별함을 의식(意識)이라 이름하고 또 5식과 함께 그림자와 폭류(暴流) 같아 마음의 종자에서 일어나느니라.
만약 마음과 뜻 모든 식이 일어나지 않으면 곧 의생신(意生身)을 얻고 또한 불지(佛地) 얻으리라.
모든 연(緣)과 온(蘊)ㆍ계(界) 사람 법의 자상(自相)은 모두 마음이 거짓 시설함이니 꿈과 털 수레바퀴 같으니라.
세상 보면 환과 꿈 같으니 진실에 의지하라.
진실이란 모든 상(相) 떠나 있고 또한 인(因)과 상응함도 떠났느니라.
성자(聖者) 안으로 깨달은 것 항상 무념(無念)에 머무나니 미혹하여 인(因)과 상응하여 세간 집착하여 진실이라 하느니라.
일체의 희론 멸하면 미혹은 곧 생기지 않으며 미혹이란 분별 따라 어리석은 마음 항상 나타나 일어나느니라.
모든 법은 공과 무성(無性)이며 항상하다, 무상하다 함은 생론(生論:외도의 논)자의 소견이니 이것은 무생론(無生論)이 아니니라.
같고 다르고 함께하고 함께하지 않고 자연(自然)이나 자재(自在) 시간ㆍ미진(微塵)ㆍ승성(勝性:原質)과 인연으로 세간 분별하도다.
식(識)은 생사의 종자이니 종자가 있으므로 생김이 있나니 벽화가 벽에 붙어 있듯이 깨달아 알면 곧 분별을 멸하리라.
비유하면 꼭두각시[幻人]를 보고 그것이 생사가 있다고 하듯이 어리석은 범부 또한 이와 같아 어리석으므로 속박이나 해탈의 생각 일으키느니라.
안과 밖 두 가지 법과 또 그 인연 수행자는 관찰하여 모두 무상(無相)에 머물러야 하느니라.
습기는 마음을 떠나지 않았고 또한 마음과 함께 있지는 않느니라.
비록 습기에 얽매여 있으나 마음의 모양 차별 없느니라.
마음은 흰 옷과 같이 의식(意識)의 습기가 때가 되고 때의 습기에 더럽혀져서 마음을 나타나지 못하게 하느니라.
내가 허공 같다고 말하는 것은 있는 것도 아니요 또한 없음도 아니니 장식도 또한 이와 같아 유ㆍ무를 모두 멀리 떠났느니라.
의식(意識)이 만약 의지처를 바꾸면 마음도 곧 혼탁하고 어지러움 여의리니 내가 말한 마음이 불(佛)이며 일체법 깨달으리라.
영원히 세 가지 상속(세계ㆍ중생ㆍ업계 상속) 끊고 또 4구(句) 떠나 유무(有無) 모두 버리고 떠나면 모든 있음은 항상 환과 같으리라.
전칠지(前七地)에서는 마음 일어나고 두 자성[二自性:人ㆍ法我] 있으나 남은 지[八地]와 불지(佛地)는 모두 원성실성이니라.
욕계ㆍ색계ㆍ무색계와 또 열반의 저 일체 몸 모두 마음의 경계이니라.
그 얻는 바(업)를 따르나니 미혹이 일어남이니라.
만약 자기 마음 깨닫고 나면 미혹은 곧 생기지 않으리라.
내가 두 가지 법 세웠나니 모든 상(相)과 깨달음 네 가지 이취(理趣)로써 방편을 설하여 성취하게 함이니라.
갖가지 이름과 모양 이것은 미혹에 의한 분별이나니 만약 이름과 모양 떠남은 성품 청정한 성인이 행할 바이니라.
능(能)ㆍ소(所)의 분별 따르면 허망하게 헤아리는 모양[妄計相] 있나니 만약 그 분별 떠나면 자성은 성인의 행할 바이니라.
마음이 만약 해탈할 때 항상 진실하여 종족의 성품[種性]과 법의 성품에 대해서 진여는 분별을 떠나 있느니라.
청정한 마음 있음으로 잡염(雜染:번뇌) 나타남이 있나니 청정함이 없으면 물듦[染]도 없어 참되고 청정한 성인 행할 바이니라.
세간은 인연에서 생기어 분별을 자라게 하니 그것을 보고 환과 꿈 같으면 이때가 곧 해탈이니라.
갖가지 나쁜 습기가 마음과 화합하므로 중생은 밖의 경계만 보고 마음의 법과 성품을 보지 못하느니라.
마음의 성품은 본래 청정하여 모든 미혹 생기지 않으며 미혹은 악습(惡習)에서 일어나니 그러므로 마음을 보지 못하느니라.
오직 미혹이 곧 진실이라 진실은 다른 곳에 있지 않으며 제행(諸行)과 비행(非行)이 다른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까닭이니라.
만약 모든 유위(有爲)를 관하여 상(相)과 소상(所相) 먼저 떠나면 온갖 상을 떠난 까닭으로 세간이 오직 자기 마음뿐임을 보리라.
오직 마음뿐임에 편안히 머물러 밖의 경계 분별하지 않고 진여의 소연(所緣:진여대상, 六境)에 머물며 심량(心量:外境을 헤아림)을 뛰어넘으리라.
만약 심량을 뛰어넘으면 또한 무상(無相)도 넘게 되나니 무상에 머무는 이는 대승을 보지 못하는 까닭이니라.
행함이 고요하여 무공용(無功用)이고 모든 큰 서원을 깨끗이 닦음과 또 나의 가장 수승한 지혜는 무상(無相)인 까닭으로 보지 못하리라.
마땅히 마음의 행함[心所行]을 보고 또한 지혜의 행함[智所行]을 보며 혜소행(慧所行)을 관하여 상(相)에 미혹함이 없어야 하리라.
마음이 행함은 고제(苦諦)이고 지혜의 행함은 집제(集諦)이며 다른 둘[滅ㆍ道]과 불지[地]는 모두 혜소행(慧所行))이니라.
얻는 과(果)와 열반 8정도[八聖道]로써 일체법 깨달으면 이것이 부처님 청정한 지혜이니라.
눈[眼根]과 물질의 경계[色境]와 허공의 밝음[空明]과 뜻[作意]으로 무위의 공(空)한 이치에 통달하는 것. 장식이 따르게 되어 중생의 안식(眼識)이 생기느니라.
가진다는 것 능취(能取)ㆍ소취(所取)와 이름과 사물 모두 없는 것, 원인 없는데[無因] 허망하게 분별하는 것은 지혜 없는 이가 하는 것이니라.
이름과 뜻 서로 응함도 생김이 아니고 이름과 뜻이 다르다 함도 그러한데 인(因)이 있어 생긴다거나 무인(無因)에서 생긴다 하면 분별 여의지 못하느니라.
허망하게 실제(實諦)에 머문다 하고 견해 따라 시설하여 말하나 한 성품[一性]에서 다섯(5대종) 이루지 못하니 잘못된 제(諦)의 뜻 버리고 떠나라.
유ㆍ무의 희론에서 마땅히 이들 마(魔)를 뛰어넘어야 무아(無我)를 보므로 허망하게 제유(諸有:三界)를 구하지 않느니라.
작자(作者:창조자)를 항상하다고 헤아리고 주술(呪術)과 쟁론(諍論)을 일으키나 실제(實諦)는 말을 떠나야 적멸법 보리라.
장식(藏識)에 의지하는 까닭에 뜻[意:7식]이 바뀌고 마음[藏識]과 뜻에 의지하므로 모든 식이 생기느니라.
세워진 법 허망하고 심성(心性)이 진여이니 선정 닦는 이 이같이 보면 오직 심성뿐임을 통달하리라.
뜻과 밖의 모양과 사물 관함에 항상함과 무상함 생(生)과 불생(不生)을 생각하지 말고 두 가지 뜻 분별하지 말라.
아뢰야식에서 모든 식 생하여 일어나나 끝내 한 가지 뜻에서 두 가지 마음 생기지 않느니라.
자기 마음 보는 까닭으로 공도 아니요 언설(言說)도 아니나 만약 자기 마음 보지 못하면 견(見)의 그물에 얽매이느니라.
모든 인연 생김이 없고 모든 근(根) 있는 바 없으며 탐함도 없고 온(蘊)ㆍ계(界)도 없고 일체 모든 유위(有爲)도 없느니라.
본래 모든 업보도 없고 만듦도 없고[無作] 유위도 없으며 집착도 본래 없고 얽매임도 없고 또 벗어남도 없느니라.
무기법(無記法:선ㆍ악이 아닌 법)도 없고 법ㆍ비법(非法)도 다 없으며 시간[時]도 아니요 열반도 아니며 법성(法性)도 얻지 못하느니라.
불(佛)도 아니요 진제(眞諦)도 아니며 인(因)도 아니요 또한 과(果)도 아니며 전도도 아니요 열반도 아니요 생(生)도 아니요 또 멸(滅)도 아니니라.
또 12지(12인연)도 아니요 변(邊)과 무변(無邊)도 있지 않고 일체견이 모두 끊어져 나는 이것을 유심(唯心)이라 설하느니라.
번뇌와 업(業)과 몸 업이 얻는 과(果) 모두 아지랑이 같고 꿈 같고 건달바성 같으니라.
오직 마음에만 머무르므로 모든 상(相) 다 버리며 오직 마음에만 머무르므로 능히 단상(斷常)을 보느니라.
열반에는 모든 온(蘊:五蘊) 없고 무아(無我)이며 무상(無相)이라 오직 마음에 들어감으로 의지함을 바꾸어 해탈 얻으리라.
악습(惡習)이 인(因)이 된 까닭에 밖의 대지(大地)와 모든 중생이 나타나니 오직 마음이면 보는 것 없으리라.
몸과 재산과 그림자 중생 습기로 나타난 것이니 마음 이것은 유(有)ㆍ무(無)가 아닌데 습기가 나타나지 못하게 하느니라.
더러움은 깨끗한 가운데 나타나나 깨끗함은 더러움에 나타나지 않으니 구름 허공 가리듯이 마음 나타나지 아니함도 그러하느니라.
허망하게 분별한 성품 있다 하나 연기에는 곧 없으며 허망한 분별로 미혹하게 집착함이요 연기에는 분별 없느니라.
소조(所造:四大種)가 다 색(色:물질)이 아니요 색은 소조가 아닌 것이 있나니 꿈ㆍ환ㆍ아지랑이ㆍ건달바성 이들은 소조가 아니니라.
만약 인연에서 생기는 법을 진실이다, 진실이 아니다 말하면 이 사람은 결정코 같다, 다르다는 등 모든 견해에 의지함이니라.
성문에 세 가지 있으니 왕생을 원함[願生]과 변화(신통)와 탐욕ㆍ성냄을 떠나려는 등이니 법이 생(生)한 대로 따르느니라.
보살도 또한 세 가지 있나니 모든 부처님 모습이 없는 보살, 중생을 생각하는 보살, 부처님 형상을 나투는 보살이니라.
중생의 마음이 나타나는 것은 모두 습기에서 생겨나 갖가지 모든 영상(影像) 별ㆍ구름ㆍ해ㆍ달 같은 것이니라.
만약 대종(大種:四大)이 있다 하면 소조(所造)가 생길 수 있으나 대종이 성품이 없는 까닭에 능상(能相)과 소상(所相)도 없느니라.
대종 이것은 능조이고 4대(大)에 의해 만들어진 색법(色法). 땅[地] 등은 소조이며 대종은 본래 무생(無生)이어서 소조색(所造色:色法)도 없느니라.
거짓[假]과 진실[實] 등의 모든 색과 또 환의 소조색과 꿈의 색과 건달바성의 색, 아지랑이 색, 다섯 가지가 있느니라.
일천제(一闡提)에 다섯 가지 종족의 성[種性]도 또 다섯 가지 5승(乘)과 비승(非乘)이 있고 열반에 여섯 가지가 있느니라.
모든 온(蘊)에는 스물네 가지, 모든 색(色)에는 여덟 가지, 부처님은 스물네 가지, 불자(佛子)에 두 가지가 있느니라.
법문(法門)에는 백팔 가지, 성문에 세 가지가 있고 모든 부처님 세계는 오직 하나뿐 부처님도 한 분임이 또한 그러하니라.
해탈에 세 가지가 있고 마음 흐름이 네 가지가 있으며 무아(無我)가 여섯 가지가 있고 소지(所知)에 또 네 가지가 있느니라.
작자(作者)를 멀리 떠나고 또 모든 견해의 허물을 떠나며 안으로 스스로 깨달아 움직이지 않으면 이것이 위없는 대승이니라.
생과 불생(不生)에 여덟 가지, 아홉 가지가 있으며 일념(一念)과 점차로 닦는 법 있으나 깨달으면 근본[宗]이 오직 하나뿐이니라.
무색계는 여덟 가지 선정의 차별은 여섯 가지가 있느니라.
벽지불의 모든 불자(佛子) 번뇌 벗어남에 일곱 가지가 있느니라.
3세는 모두 없는 것 항상하고 무상(無常)함도 또한 없으며 업을 짓고 또 받는 과보도 모두 꿈속의 일 같으니라.
모든 부처님은 본래 불생(不生)인데 성문ㆍ불자(佛子)는 마음 항상하여 능히 보지 못하나니 환 등의 법과 같은 까닭이니라.
일체 국토에서 도솔천[兜率]으로부터 모태에 들고 처음 태어나고 또 출가함에 태어나는 곳으로부터 태어나지 아니하였느니라.
유전(윤회)하는 중생 위하여 열반 설하며 모든 진리[諦]와 모든 국토에 근기[機] 따라 깨치게 하느니라.
세간과 섬[洲]과 숲[樹林] 무아(無我)와 외도행(外道行) 선정의 법[禪乘]과 아뢰야 과(果)의 경계[境]는 부사의하다.
별과 달의 종류 모든 왕과 모든 하늘의 종류 건달바와 야차의 종류 모두 탐애와 업 인연으로 생기느니라.
부사의한 변역의 생사[變易死]는 아직 습기(習氣)와 함께 하나 만약 죽음이 영원히 다할 때 번뇌의 그물 이미 끊어지리라.
재물과 곡식과 금과 은 전택(田宅)과 하인[僮僕] 코끼리ㆍ말ㆍ소ㆍ양 등 모두 마땅히 축적하지 말라.
구멍 뚫린 침상에 눕지 말고 또한 땅에 진흙을 바르지 말며 금ㆍ은ㆍ동의 발우 등 모두 다 마땅히 축적하지 말라.
흙과 돌과 철과 소라와 파리(頗梨)로 만든 그릇 마갈타국[摩竭量]에 가득하니 발우에 따라 채우는 것을 허락하노라.
항상 푸른 등의 색과 쇠똥ㆍ진흙 과일 잎으로 흰 감바라[欽婆:옷의 일종]를 염색하여 가사(袈裟)의 색을 만들어라.
손가락 네 개 길이[四指量] 정도의 칼로, 칼은 반달 모양인 것으로 옷을 재단하는 데 쓰기 위해 수행자가 간직함을 허락하노라.
공교명(工巧明)을 배우지 말고 또 마땅히 매매업도 하지 말며 오로지 사람을 청정하게 하여야 되니 이 법은 내가 설하는 바이니라.
항상 모든 근(根)을 수효하며 경과 율의 뜻을 잘 알고 모든 속인을 업신여기지 말지니 이렇게 하면 수행자라 하느니라.
나무 아래 바위나 굴 들판의 집이나 무덤 사이 기술 등 5명(明)의 하나. 움집[草窟]이나 노지(露地)는 수행자가 마땅히 머무르는 곳이니라.
무덤 사이와 다른 곳에서 3의(衣)만을 항상 가지며 만약 의복이 모자랄 때 와서 보시하는 것은 받을 것이니라.
걸식하려 나가 돌아다님에 앞의 여덟 자 정도[一尋]의 땅을 보고 생각을 거두어[攝念] 걸식하여 마치 벌이 꽃가루를 취하듯 하라.
시끄러운 대중이 모인 곳이나 여러 비구니가 섞여 있는 곳이나 세속이 교류하는 곳에서는 모두 다 마땅히 걸식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모든 왕과 왕자와 대신과 장자(長子) 집에 수행자가 걸식함에 모두 마땅히 친근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아기가 태어난 집과 상가[死家]와 친한 친구의 집과 좋아하는 집[愛家]과 비구니가 섞여 있는 집에서 수행자는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하느니라.
절 안에 연기[烟]가 끊어지지 않고 항상 갖가지 음식을 만들며 또 일부러 수행자를 위하여 만든 것을 수행자는 먹지 말아야 하느니라.
수행자는 세간을 관찰하여 능상(能相)과 소상(所相)에서 모두 다 생멸을 떠나고 또한 유ㆍ무를 떠나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