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언제 다시 이러한 책을 읽을지 모르겠다.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한페이지 한페이지가 소중하게 여겨졌다.
panic bird.........
-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위대한 가르침을 주는 인생의 교사들이다. 삶이 더욱 분명하게 보이는 것인 죽음의 강으로 내몰린 바로 그 순간이기 때문이다.
- 태어나는 순간 누구나 예외없이 삶이라는 학교에 등록한다. 살아있는 한 그 수업은 계속된다.
- "사랑, 관계, 상실, 인내, 받아들임, 용서, 행복" 등이 이 학교의 과목들이다.
- 우리가 방금 한 말과 행동이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마지막 말과 행동이 될지도 모른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말한다.
"지금 이순간을 살라고, 삶이 우리에게 사랑하고 일하고 놀이를 하고 별들을 바라볼 기회를 주었으니까"
- 인생의 수업에는 "행복"하라는 숙제 뿐!
- 생의 어느 시점에서 누구나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다.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비극은 인생이 짧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너무 늦게서야 깨닫는다는 것이다.
1.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당신이 배워야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만의 여행이다.
- 인간 모두의 깊은 내면에는 자신이 되기를 갈망하는 어떤 존재가 있습니다. 그 존재에 가까이 다가갈때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삶속에서 배움을 얻으려 하고 그 해답을 찾습니다. 두려움과 후회에 싸우고 의미와 사랑과 용기를 추구하며, 상처와 상실,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찾고,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려고 시도합니다. 사랑, 종교, 신, 돈, 지위, 완벽한 직업, 지식이나 진리의 추고, 창조적인 일 등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어느 순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배움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절망이라는 어둠속에서 남은 생동안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배움을 얻기 위해 꼭 죽음에 직면할때까지 기다려야할까요? 지금 이순간 그 배움을 얻을 수는 없을까요?
- 누군가 미켈란젤로에게 어떻게 "피에타 상"이나 "다비드 상"같은 훌륭한 조각상을 만들수 잇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미 조각상이 대리석 안에 있다고 상상하고, 필요없는 부분을 깎아내어 원래 존재하던 것을 꺼내주었을 뿐이이다"
- 마찬가지로 당신안에 있는 위대한 사람도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위대함의 씨앗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대한 사람은 단지 "가장 자신을 드러내는데 장애물이 되는 것을 제거해버렸을 뿐"입니다.
-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현실에서 쓰고 있어야하는 가면과 역할들에 가려져 있기가 쉽습니다.부모, 의사, 회사원, 모범생, 반항아, 착한아이 등등
- 때로는 그 역할이 멋있어 보이거나,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주거나 이익이 되기 때문에 또는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자진해서 그 역할을 맡는 경우도 있습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가 그 결과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좋았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뭔가 잘못된거 같아. 그들은 결혼한 뒤에 자신이 알고 있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떠 맡으려했습니다.
"난 삼촌노릇은 훌륭하게 했는데, 아빠 노릇을 하려니 정말 힘들어. 삼촌이었을때는 아이들과 마음으로 교류했습니다. 아버지가 되어서는 자신이 맡아야 할 특정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역할"이 그가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인정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들 각자에게는 간디에서 히틀러까지 모든 인물이 될 가능성이 숨어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괴롭고 힘든일이지만 일단 그것을 인정하고 나면 노력으로 그것을 내보낼 수 있습니다.
- 자신이 특별히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되었다면 좋은 사람인 척하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 때로 우리는 역할들로부터 많은 것을 얻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치러야하는 댓가가 크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사람들은 중년에 이르러서야 자신들이 가정의 "관리자"에 불과했음을 알게 됩니다. 상황을 이해하지도 못한채 부모와 형제들을 항상 행복하게 해주어야하는 책임을 떠맡았고, 갈등을 해결해야 했으며, 식구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직장을 구하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 어느 순간 당신은 그런 짐스러운 역할이 당신 자신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그것을 놓아버립니다. 당신은 여전히 좋은 사람이지만 더이상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 어떤 인간관계는 잘 풀릴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언제나 의견 충돌과 실망이 있게 마련입니다. 당신이 모든 문제를 떠맡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버리지 못한다면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것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 자신을 멋있게 보든 초라하게 보든 우리는 주변상황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습관이 있지만 그것은 결코 진정한 자기자신이 아닙니다. 모든일이 잘 풀리고, 날씨도 좋고, 주가도 오르고, 아이들은 좋은 성적을 받아오고 ...스스로 굉장한 사람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반대의 상황도 있습니다.
-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정의내리기 위해 타인을 살펴봅니다. 그래서 타인의 기분이 나쁘면 우리자신도 실망합니다. 다른 이들이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방어자세를 취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아는 그런 방어를 넘어선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건강하며 완전하며 가치있는 존재입니다.
- 우리가 부유하든, 가난하든, 젊은이든, 노인이든 또는 관계를 시작하고 있든, 끝내고 있든 그것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인생의 시작에 있든 끝에 있든 절정기에 있든 절망의 나락에 있든 우리는 언제나 그 모든 상황을 초월한 존재입니다. 삶이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닌 존재에 관한 문제입니다.
진정한 자신이 된다는 것
- 진정한 자신은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특별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한 후에야 비로소 그 특별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깨닫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심하게 절망합니다. 이것이 자신을 아는 첫단계입니다.
-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에게 진실해지려면 또 자신이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찾아내려면 일상적인 일에서 그것을 경험해야합니다. 만일 다른 사람의 눈에 가치있게 보이려고 한다면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에 자신이 얼마나 붙잡혀 사는지 알면 놀랄 것입니다.
- 진정한 자신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인간적인 자아를 존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때로 감추고 싶은 자아의 어두운 부분까지도 포함해서 ......
- 진정한 자신에 가까워지려면 자신의 어두운 면과 결점에 대해서도 솔직해져야 합니다.
2. 사랑없이 여행하지 마라.
- 사랑은 지식, 학벌, 권력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행위 너머에 있습니다. 삶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유일한 선물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공허함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사랑은 진실의 근원입니다.
- 이러한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어렵습니다. 평생 사랑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이 어떤 것이지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이 어린시절에 갖게된 그림입니다.
- 우리는 대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엄격한 조건을 내세웁니다. 우리는 거의 조건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정도로 조건적인 사랑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감정이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 어떻게 하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이것은 가장 큰 도전이며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대부분 어렸을때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고 배웠습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은 자기도취, 이기주의라고 생각했습니다.
- 우리들 대부분은 사랑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은 대개 "보상"에 불과합니다.
-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 주위에 언제나 있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장벽을 없애는 것입니다.
- 사랑에 대한 배움은 모든 형태로, 모든 종류의 사람과 상황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돈을 얼마나 버는지,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우리의 삶속에, 모든 아름다운 경험속에 때로는 비극속에 존재합니다. 사랑은 삶에 깊은 의미를 불어넣는 순수한 재료입니다. 사랑은 살아있고 만질 수 있으며 우리안에서 숨쉬고 있습니다. 사랑은 신과 신성함에 대한 경험입니다. 우리는 손을 뻗어 그것을 붙잡기만 하면됩니다.
3. 관계는 자신을 보는 문
- 전 생애동안 우리는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연인, 친구처럼 우리가 원해서 맺은 관계, 부모형제처럼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는 관계에 이르기까지..그 관계들을 통해 우리는 많은 배움을 얻습니다.
- 우연적이거나 중요하지 않은 관계는 없습니다. 마주치는 모든 이들은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 있을 행복과 사랑, 또는 고통과 불행으로 인도해줄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 이성과의 사랑을 할때 우리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상처의 치유, 사랑과 안전, 애정, 만족감과 동료의식 등 많은 것을,
- 또한 그 관계가 우리 삶을 치유하고 우울함에서 벗어나게 하고 최고의 기쁨을 안겨주기를 원합니다. 우리는특히 그 관계가 모든 면에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리라 기대합니다. 우리는 특별한 누구를 만나면 자신의 삶이 획기적으로 나아질 것이라 믿습니다. 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식 밑바닥으로 내려가보면 그런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 그것은 동화속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이러한 동화적인 생각에 너무 붙잡혀 있으면 스스로를 더 행복하고 더 나아지게 하는 책임, 삶의 여러문제들을 해결하는 책임에 소홀하게 됩니다. 그 대신 누군가가 나타나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만들고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고 믿습니다.
- 완전한 삶은 당신 자신안에서부터 나와야합니다. 특별한 누군가를 발견한다고 해서 인간관계나 책임감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 부모, 형제, 자식 특히 청소년 자녀들은 특이하게 우리를 화나게 합니다. 때로 이런 관계는 무척 힘들지만, 그만큼 우리에게 특별한 가르침을 줍니다. 가족관계는 우리가 선택한 사람들과의 관계처럼 쉽게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해결방법을 찾아야합니다. 그 해결 방법이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 우리의 행복은 상대방을 더 좋게 바꾸는 것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바꿀 수 없으며 바꾸려 해서도 안됩니다. 그들이 절대로 변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겁니까? 우리가 진정한 자신이기를 원한다면, 그들도 진정한 그들로 있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 만일 우리 관계가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내가 지루해한다는 뜻이죠. 이는 "일종의 거울이론"입니다. 거울이론의 긍정적인 면은 문제가 자기안에 있으며 따라서 접근이 가능하고 해결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으며 그러므로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방을 더 좋게 고치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언제나 당신이 중심입니다.
- 상대방에게서 문제를 찾으려고 하면 관계의 중심인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 사랑이란 자신의 성공을 포기하고, 늘 희생해야 하며, 상대방을 기쁘게 해줘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희생한다"는 것이 과연 사랑의 올바른 정의일까요?
- 정상적이지 못한 관계에 머무르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상대방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때문이고, 둘째는 모든 관계에는 해결의 여지가 있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 상대방을 바꾸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환상이 제거된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규칙과 환상을 고집하는 한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자신만의 기준을 정해놓고 그것에 적합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훈계하려들고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행동에 자신이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보여주고 싶어합니다.
- 모든 관계가 평생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50년이 지속될수도 있고, 6개월만에 종말을 맞을 수도 있고, 죽음으로 관계가 완성될 수도 있고....우리는 관계에서 그것이 완성을 위한 어느지점에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완성에 이를 수 있는지 거듭거듭 살펴보아야 합니다.
4. 상실과 이별의 수업
- 삶이 하나의 학교라면 "상실과 이별"은 그 학교의 주요과목입니다.
죽음을 포함한 모든 상실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다섯가지 반응
첫째, 부정
둘째, 분노
셋째, 타협
넷째, 절망
다섯째, 수용
- 상실을 경험했을때 그 반응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상실은 우리에게 공허감, 무기력감, 분노, 슬픔, 두려움 등의 감정을 남깁니다. 불면증이 시달리기도 하고 식욕이 변하기도 하고 극단적인 감정이 왔다갔다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단계가 치유의 과정입니다.
- 결국 당신은 치유될 것이며 온전한 자신을 찾게 될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지는 못하겠지만 그 상처를 치유할 수 는 있습니다.
- 상실은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어려운 배움 중 하나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혼이나 별거를 통해 헤어짐을 경험한 사람들은 죽음이 궁극적인 상실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살아있는 사람과의 이별이 훨씬 더 힘든 경험이라는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4가지
첫째, 그들은 한결같이 더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둘째, 그들은 이제 죽음이란 필요없어진 옷을 벗는 것처럼 육체를 떠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고 말한다.
셋째, 그들은 죽음속에서 온전한 자신을 느꼈고, 자신이 모든 사물,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고 말한다.
넷째, 그들은 절대 외롭지 않았으며 누군가가 자신과 함께 있음을 느꼈다고 말한다.
- 상실을 치유하는데는 여러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상실을 느끼고, 그 자체를 인정하고, 상실을 부정하는 시간을 갖되, 자신이 느끼는 것이 정상적인 감정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5.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말라.
- 죽음에 도달하는 순간 모두 제로가 된다. 삶의 끝에서 당신이 어떤 학위를 가졌는지, 얼마나 큰집을 가졌는지, 얼마나 고급차를 몰고다녔는지는 묻지 않는다.
-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방식이 항상 최선은 아닙니다. 왜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방식으로 행동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들이나 물건들, 또는 사건들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깨닫고 남을 지배하려는 마음을 버릴때 인간관계와 삶에서 더욱 강해질 수 있습니다.
- 감사할줄 아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에서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모든 여유로움은 우리가 가진것을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
- 죽을 사람과 살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신이나 우주의 몫입니다. 왜 나만 살아남았느냐에 대한 고민보다는 "만일 내가 더 살도록 선택받았다면 난 지금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야합니다
- 죄의식은 우리를 가장 어두운 내면에 묶어 둡니다. 그것은 우리를 나약함, 수치심, 냉정함과 연결합니다. 우리의 부정적인 부분이 그 죄의식을 먹고 자랍니다. 죄의식을 느낄때 우리의 마음은 좁아지고 하찮은 생각들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수치심을 느낍니다. 수치심은 과거의 죄의식에서 생겨납니다.
- 진정한 자아는 죄의식을 알지 못합니다. 진정한 자아는 이 세상의 죄의식을 초월해있습니다.
- 마음의 평화와 죄의식은 서로 반대편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의식과 마음의 평화를 동시에 느낄 수는 없습니다. 사랑과 평화를 받아들일때 죄의식에서 벗어나며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을때 사랑과 평화로부터 멀어집니다.
- 죄의식은 언제나 과거의 일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과거는 게속해서 우리를 쫒아 다닙니다. 자기 비난은 지금 이 순간의 실체를 회피하는 하나의 길이며 과거를 미래로까지 끌고갑니다. 과거의 자기비난은 우리의 미래마저 자기 비난으로 채울 것입니다. 죄의식을 내려놓을때 과거가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
- 당신이 했다고 여기는 잘못은 용서를 통해 깨끗이 정화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평생동안 다른 이들에게 가혹했고 무엇보다 자기자신에게 가혹했습니다.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을 떨쳐버릴 시간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스스로를 용서할때 자기 비난은 더이상 따라다니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비난이 아니라 용서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이 배움을 얻을때 진정으로 자유로워집니다.
6. 가슴뛰는 삶을 위하여
- 삶은 시간이 지배합니다. 우리는 시간에 의해 살고, 또 시간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시간은 다른 사람의 시간과 같지 않습니다.
- 우리는 과거를 보내버리고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삶에 얼마나 멋진 경험을 안겨주는지 모릅니다. 애인과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내일아침 수업따위는 잊고 대화에 몰두해야합니다.
- 우리는 어느샌가 미래에 의존하며 살게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미래를 꿈꾸며, 또 다른이는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 우리는 삶에서 많은 것들을 두려워합니다. 대중앞에서 연설하는 것, 데이트 신청, 때로는 자신의 외로움을 인정하는 것조차도 두려워합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바로 궁극적인 두려움에 직면하면서 깨닫습니다. 죽음이 자신을 파괴하지도 못하며, 더이상 힘을 발휘하지도 못하리라는 것을 ....
-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다면 삶이 얼마나 달라질까요? 만일 아무것도 방해받지 않고 꿈을 추구한다면 당신의 삶은 틀림없이 지금과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두려움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다른 감정으로 나가야합니다. 그것은 곧 사랑의 감정입니다.
- 행복, 불안, 기쁨, 분노 등 우리가 평생 겪는 많은 감정들에는 다양한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은 오직 두가지 뿐입니다. "사랑과 두려움"이 그것입니다.
- 모든 긍정적인 감정은 "사랑"에서 나오고,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두려움"으로부터 나옵니다. 사랑으로부터 행복, 만족, 평화, 기쁨이 나오고, 두려움으로부터 분노, 미움, 걱정, 그리고 죄의식이 나옵니다.
- 우리의 내면에는 사랑과 두려움이라는 두가지 근원적인 감정이 있지만 사실은 "사랑 또는 두려움"만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사랑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낄수는 없습니다. 그것들은 반대되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있는 곳에 사랑이 설자리가 없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두려움이 설자리가 없습니다. 중립지대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지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은 아닙니다. 두려움은 분노, 방어, 자만심 등 여러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두려움을 지혜로 바꾸어야 합니다. 사랑은 더 많은 사랑을 불러옵니다.
7. 영원과 하루
-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 화는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일반적인 상태에서는 밖으로 표현되면 몇분, 몇초도 지속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화를 폭발시키는 식으로 부적절하게 표현하거나 그것을 억제해서 쌓이게 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 억압된 화는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채로 마음속에 남습니다.
- 화내는 것이 잘못이라고 가르치는 가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장합니다.
- 두려움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분노로 변합니다. 또한 두려움을 회피하거나 자신이 두려워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할때 그것은 화로 변합니다. 그 화를 처리하지 않으면 심한 분노가 됩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표현하기보다는 화를 내는데 더 익숙합니다.
-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 삶의 마지막에 이르면 즐겁게 지낸 놀이의 순간들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성취해낸 것들을 자랑스럽게 회상하면서도 삶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놀이입니다.
- 그럼에도 놀이는 삶의 우선순위에서 낮게 취급되어 왔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항상 생산적이고, 성공적이어야 하면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립니다. 사람들은 일하는 법은 알지만 "존재하는 법"은 모릅니다.
-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면서도 자신들이 왜 성공하려고 하는지를 잊고 있습니다. 모임에 나가더라도 좋은 연줄을 얻기 위한 모임에만 나갈뿐 재미를 위한 모임에는 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공을 얻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뒷전으로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공과 권력이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놀이도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 놀이는 순수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 하는 행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놀이는 내면의 기쁨이 바깥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웃음, 노래, 춤, 수영, 등산, 요리, 달리기, 게임 등 즐거움을 주는 것이면 무엇이든 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놀이는 신체기능도 돕습니다. 엔돌핀을 분비하게 합니다.
-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순수한 놀이의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로 슬픈일입니다.
- 일과 놀이가 완전히 별개의 활동일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일상의 일들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것은 하루를 살아가고 평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것은 정말로 운 좋은 일입니다.
- 삶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놀이를 잊어버립니다.
왜 우리는 즐거움이 고개를 내밀지 못하는 세상에 사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성공이라는 사다리를 올라가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법을 잃어 버릴까요?
왜 우리는 놀이에서 얻는 즐거움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할까요?
8.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
- 운명에 순응하는 것을 나약함의 상징이나 포기, 굴복으로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운명을 받아들임은 나약함이 아닙니다.
- 우리는 내일이 와서 상황이 바뀔때까지는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일 행복이 가능하다면 오늘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9. 용서와 치유의 시간
- 용서의 첫단계는 상대방을 다시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들은 실수투성이고, 부서지기 쉽고, 외롭고, 궁핍하고, 정서적으로 불완전하다. 다시말해 그들은 우리 자신과 똑같다. 그들 역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로 가득한 인생 길을 걷고 있는 영혼들이다.
-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용서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이며, 우리를 다른 사람과 연결하는 방법입니다.
-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살면서 느끼지 못한 평화를 되찾는 경우가 종종있습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서하지 않을때, 우리는 오래된 상처와 분노에 매달립니다. 과거의 불행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분노를 되새김질합니다. 용서하지 않을때 자기 자신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 용서는 다시 한번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는 자유를 줍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관계를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얻습니다 그 기회는 용서만이 부릴 수 있는 마술입니다. 타인과 자신을 용서할때 우리는 다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되찾게 됩니다.
- 용서를 미루는 사람들은 그들이 다름아닌 자기자신을 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 용서하는 법을 간단히 몇단계로 정리해서 말한다는 것은 마치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용서란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용서의 첫단계는 그들을 다시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다음단계는 자신의 분노를 자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분노의 감정밑에 깔린 슬픔, 고통, 증오와 상처를 발견할 것입니다. 그것을 찾은 다음에는 그런 감정들을 충분히 느껴야합니다.
다음단계는 그 감정들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그들과의 감정의 고리를 끊을때 우리는 자유를 발견할 것입니다.
- 우리모두가 언제나 용서를 실천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인 우리가 모든 경우에 모든 사람을 완전히 용서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 역시 때로는 용서하기 힘들때가 있는데, 내가 죽기전에 모든 것을 용서하지 목하고 죽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성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이여! 용서하고 싶지만 그럴수가 없습니다. 부디 저를 도와주세요"
- 우리가 가장 많이 용서해야 하는 사람은 자기자신입니다. 자신이 한일에 대해서나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까지 자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어도 용서를 해야합니다.
- 용서는 일생에 한두번 일어나는 일이아니라 평생 계속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용서는 우리의 영적인 정화입니다.
- 중병에서 회복된 사람들이 자신들이 시한부 인생이었을때 더 행복했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부분 행복을 어떤 사건이 가져다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행복은 우리 주위에서 진행되는 일과는 별 관계가 없는 마음입니다.
- 행복한 사람들은 실제로 가장 덜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불행한 사람들보다 더 자발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내주고, 다른사람을 도우며 더 친절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용서하고 배려합니다. 불행은 이기적인 행동을 낳는 반면에 행복은 주는 능력을 더 키워줍니다.
- 행복은 무슨일이 일어나는가가 아니라 일어난 일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달려있습니다. 행복은 일어난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인식하고 그 전체를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 비교는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우리자신과 타인을 비교한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적은 노력을 들여 재빨리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여 절망의 나락으로 내려갑니다. 이런 자기 파괴적인 비교는 반드시 다른사람이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자신을 과거나 미래와 비교하는 것도 마찬가지 결과를 낳습니다.
- 문제가 해결되거나 삶의 힘든 시간을 겪고 나면 행복해지리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현실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요
- 시기하는 감정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가?
- 누군가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약점을 잡아 공격하고 나면 오랫동안 기분이 좋은가?
- 감사할때 어떤 기분이 드는가?
-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고나면 어떤 기분인가?
- 교통체증에 걸리면 욕설을 퍼붓기보다 주위를 둘러보고 모두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생각해 본다면?
- 타인에게 친절해지는 연습을 한다면?
- 익명으로 친절을 베풀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누군가를 보살피거나 도와준다면?
- 우리는 모두 다른 방식으로, 다른 배움을 통해 행복을 발견합니다.
10.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상실은 무엇이 소중한지를 보여주며, 사랑은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가르쳐준다. 관계는 자신을 일깨워주고 성장의 기회를 가져다 준다. 두려움, 분노, 인내심, 시간, 죄책감조차도 훌륭한 교사이다. 삶의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 삶은 그 특별한 매력을 나타내기 위해 굴곡이 있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모든 날들을 최대한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것이 언제였습니까? 아침의 냄새를 맡아본것은 언제였습니까? 정말로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즐긴 것은? 맨발로 풀밭을 걸어본 것은? 파란 하늘을 본것은? 이것은 다시 얻지 못할지도 모르는 경험들입니다.
이번 생과 같은 생을 또 얻지는 못합니다. 당신은 이생에서처름 이런 방식으로 이런 환경에서 이런 부모, 아이들, 가족과 또 다시 세상을 경험하지는 못합니다. 다시는 이번 생처럼 경이로움을 지닌 대지를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볼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요. 지금 그들을 보러가십시요!"
첫댓글 삶에 대한 멋있는 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상실,사랑,두려움,분노,용서등 처리하기 어려운 여러생각들을 젊은나이에 깊게 생각하지 못한것이 서럽고, 삶에 연연했던 지난날을 후회하긴 싫은데... 눈이 나빠지기 전에 책을 더욱 더 줄기차게 보아야겠다. 문형철 선생님 역시 멋있어요!! 탁월한 한의사님이십니다.헤헤
배운대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