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재래시장에 가고 싶어요?"
"가본지 오래돼서. 가보고 싶어. 그리고 추석 기분이 날것 같아서"
"아마 사람 많고 복잡할거에요. 비온뒤라 땅도 질척거릴거구"
"승지씨 내 주머니에 이것좀 꺼내봐요."
종이쪽지다.
"이게 뭔데?"
"장볼 목록"
"고사리 숙주 도라지 토란 쇠고기국거리한근 갈비찜용 두근
돼지고기간거 한근 동태포 반건오징어 당근 양파
호박 느타리버섯 마른생선 사과 배 당면 시금치 목이버섯
헥헥 다 읽느라 숨 넘어 가는줄 알았네.
뭐 이렇게 많아요? 와이런것도 다알아요? 어디서 보고 적은건가?"
"인터넷에서.근데 승지씨 김치 담글줄도 알아요?"
"담글줄이야 알겠지 맛을 장담할 수 없어서 그렇지.
김치는 담글때마다 매번 다른맛이 나는것 같아.김치 사야 해요?"
"딱 봤을때 어 김치네 할수 있게 비슷하게 만들줄만 알면 되요."
"음 정말 크게 한상 차릴려나보네.독거노인!"
시장안은 분주하다.
사람들로 붐비고 상인들도 다들 큰소리로 손님을 부르고 물건을 정돈하고
바삐 움직인다.
어디서부터 어떤걸 사야 할지 막막하기 까지 하다.
"근데 희원씨 사실 나도 뭐가 좋은 물건인지 잘 모르는데."
"큰 기대 안해요."
"기대도 안하면서 같이 다니자고 하나?"
"그래도 나보다는 낫겠지. 난 사실 시장에 오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전에도 혼자 시장에 한번 온적이 있는데 그냥 사람만 막 구경하다가 갔어"
"여자들만 구경하고 간거 아냐?"
"응. 맞아 엄마들 구경."
"난 아줌마들 구경이라고 말하는데 역시 희원씨는 착한 사람이구나!
예전 회사에서 어른들이 다 좋아하는 애가 하나 있었는데
걘 식당 가서도 어머님 아니면 이모 라고 불러.
같이 간 나는 난 아줌마라고 부르는데 나중엔 스트레스 받아서 저기요~ 하고 불렀어요."
"나도 저기요 있쟎아요 이렇게 불러요."
"그럼 우리 인상 팍 쓰고 시장 보러 다닐까요?"
"왜?"
"무서워서 속이거나 후진 물건 못주게."
"인상 쓰고 다닌다고 보기 싫다고 더 후진거 주고 더 적게 줄지도 몰라."
"그럼 이쁘게 웃을까?"
"승지씨 이쁘게 웃을수 있어요?"
"아뇨."
"어설프게 웃으면 어리버리 하게 보여서 속일지도 몰라."
"음..그럼 나는 웃을테니까 희원씨가 뒤에서 인상써.그럼, 아줌마들이 이럴걸
젊은 색시가 안됐구먼 어디서 저런 남자를 만나가지고쯧. "
"그게 좋겠다. 그리고 물건이 비싸면 내가 뒤에서 인상 팍 쓸게. 막 쫄은것 처럼
승지씨가 내 눈치를 보는거지. 역시 내가 승지씨 이렇게 똑똑할줄 알고
시장에 오자고 했지."
"흐흐 근데..엄마랑 시장가면 울엄마는 맨날 싱싱한 물건 고르는 법이 아니라
중국산 구별하는법만 알려줬거든. 그럼 난 옆에서 중국 사람들은 다 그거 먹고 사는데
잘만 살더라. 하고 투덜대고."
"하하. 목록에 적힌거 말고 후라이팬이나 기름이랑 양념 깨 파 마늘
이런것도 다 사요. 아마 우리집엔 없어"
"음 이말하면 또 놀리겠지만 음..지금 꼭 영화나 티비에서 본것처럼 남자랑 도망쳐서 살림 차리는것 같아."
"무슨 다큰 여자가 살림 차린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 아무리 나랑 도망치고 싶어도
그렇지"
"나이가 들면 뻔뻔해져."
"벌써?"
"그럼요."
희원이 나를 빤히 본다.
내 얼굴로 열이 확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가만히 손을 내밀어 그 사람의 손을 잡는다.
차가운 손이다.
"승지씨 손 따뜻하네."
"어, 맘이 찬사람이 손이 따뜻하대요."
"또 쿨하게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 구나 맘이 찬게 좋아요?"
"어.요즘 남자들은 쿨한 여자 좋아하쟎아.
못된 여자. 가시 있는 여자.쌀쌀 맞은 여자"
"그건 예쁘다거나 돈이 많거나 아님 쭉쭉빵빵이라는걸 전제로 그런거지
다른건 노력으로 안되니가 승지씨 밀건 맘씨 뿐이니까 성격 고쳐요. 안그럼 평생 외로워."
"네."
"어. 오늘은 이상하게 발끈 안하네."
"놀리는 재미를 줄여줄라고 그럼 안할거 아니에요.
옛날우리 삼촌이 나 놀리는 재미로 장가도 안가고 늙다가
내가 좀 커서 반응이 없으니까 바로 장가가더라."
"그러다 나 장가 가버리면 어떻게 할라구 반응 좀 해줘."
"장가가면 희원씨한테는 행복을 빌어주고 그여자한테는 명복을 빌어주고
뭐 그럼 되는거지. "
"어? 진짜 발끈 안하쟎아. 어젯밤에 벽보고 수양했어요?"
"근데..그 생각은 안해요?"
"뭐?"
"지금 내가 굉장히 재미있어 할거라는."
"승지씨가 점점 나의 패턴을 읽고 있어서 두려워."
"원래 읽고 있었는데 그냥 쫌 봐준거에요 뭐. 이제 얼른 시장 봐야지야지.
먼저 가벼운것부터 사요."
"다 봐서 들고 가면 무거울것 같으니까 이거 반 사서 차에 놓고
밥 먹고 이거 반 사자."
그가 종이 가운데 줄을 긋는다.
"에이 그렇게 그냥 부턱대고 반만 나누면면 안되지. 시들거나 상하지 않는거 먼저 사고
그 담에 고기나 생선 이런걸 마지막에."
"오올 승지씨 보기보다는 치밀한."
"나 보기에도 치밀하게 생겼는데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날것 같이"
"에이. 승지씨는 눈이 약간 쳐졌쟎아. 외판원이나 사기남들 타겟
일호야. 예전 회사에서 유명했다며?"
"누가 그래? 도진이한테 들었어요?"
"승지씨는 나쁜건 다 도진씨한테 씌우더라. 그날 밤 어찌나 말을 많이 하는지
아침에 해뜰까지 떠들더라."
"진..짜에요?"
"못 믿겠으면 이따 저녁에 퀴즈하자. 승지씨가 승지씨의 신상에 관한 문제를
내면 내가 맞출께. 몇살때 버스에 치어 죽을뻔한 이야기"
"그럼내생일도 내가 말해줬어요?"
"어."
"그랬구나. 어떻게 알았나 했지."
"내가 조사한줄 알았구나? 나 바빠요. 그런 조사를 왜해
막 외우라고 외웠다가 선물 사달라고 막 소리 질러 놓구."
"설마."
아 그날밤 또 나는 무슨말을 했을까? 혹시 내가 희원씨 좋아해서
사표내고 만화가게 차려서 이사했다는 소리까지 한건가?
그래서 내가 불쌍해서 나랑 놀아주는걸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갑자기 그가 썬글라스를 꺼내 쓴다.
"비온뒤라 날씨도 구질한데 왠 썬그라스"
"난공인이쟎아."
"이시장에 희원씨알아볼 사람 하나도 없다.나 빼고."
"에이 사람일은 모르는거야. 엄마따라 시장온 여대생이 어머 오빳 하면 어떻게 해"
"계속 큰소리로 이름 불러야지! 어머 인기가수 서희원씨 이쪽으로 오세요.
저기 고사리가 있네요."
"어? 하지마요~"
엄마랑 시장에 다닐때는 빨리 사라고 쪽팔리니까 깎지 말라고
무거우니 시장입구에서 사라고 궁시렁 거리던 내가
구석 구석 희원의 손을 잡고 누비고 있다.
"어 순대국집이다."
"왜요? 배고파요?"
"우리 이거 먹자."
"희원씨도 이런거 먹을 줄 알아요?
음 스파게티에 갓구운빵에 어니언 스읖 이거 아니었어?"
"아냐 나 이거 좋아해 너무 좋아하지. 그리고 이렇게 시장 구석에 있는
집에서 먹고 싶어."
"이거 마저 사서 차에 놓고 와서요."
"승지씨가 사줘 순대국!"
"왜요? 자기가 돈내면 맛없나?"
"응 이건 누가 사주고 앞에 앉아서 쳐다봐 줘야 맛있어."
그는 정말 잘 먹는다.
고추다진거를 풀어서 밥을 말고 땀을 흘리며 먹는다.
"승지씨는 정말 안먹게?"
"먹을줄 몰라요."
"한입만 먹어보면 맛있어서 맨날 사달라고 할텐데.
혹시 되게 좋아하는데 이슬만 먹는척 하느라 그러는거 아냐?"
"음 희원씨 먹는것만 봐도 ....느끼해."
"하하 갈수록 고수가 되는군. 원래 승지씨가 싫어한는 여우과 여자였다면
눈빛을 촉촉히 해서 자기 먹는것만 봐도 배 부른걸 이렇게 해야지."
"얼른 먹기나 해요 시장 마져 보고 가서 준비하려면 바빠."
"뭐 바빠. 밤새도록 티비 영화보면서 천천히 하면 되는거지."
"그러든지 뭐."
"근데 승지씨한테 나 궁금한거 하나 있어요."
"뭔데요?"
"저번에 승지씨 집에서 김치전에 술먹던날 나 울었쟎아요?"
"그랬었나?"
"왜그랬는지 왜 안물어봐요?"
"물어보면 또 나 놀려먹을려구 이상한 이유 준비 했어요?."
"아니 그리고 추석에 놀자고 하는데도 왜 그러냐고 안 묻고."
"물어봐야 하는거에요?"
"아니 사실 나도 댈 이유가 궁색해서 승지씨가 물어볼까봐
물어보지 말라고 연막 치는거야."
"가끔..나도 그럴때 있어요. 그냥 묻지 말아 줬으면 하는거
엄마들은 밥 먹기 싫다고 해도 왜? 해 놓고
그냥이라는 대답을 못 넘기쟎아.
그냥. 아주 나중에 말해주겠지 뭐.
안 말해줘도 그거 궁금해서 죽기야 하겠어."
"미래를 기약하는구나 승지씨!"
"앗 그런 생각은 안했는데 이제부터 미래 기약해야 겠다.히히"
"나 술한잔 마실까? 소주 한잔 마실래."
"차는?"
"승지씨가 해요. 운전할 줄 안댔쟎아."
"막 긁어버릴지도 몰라."
"어..내차는 사고가 한번도 안나서 온몸이 근지러울거야
한번 시원하게 긁어줘도 되요."
고기를 사고 생선을 고르고 물건들을 싣고 차에 오르자
가는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차에 타자 마자 안전벨트를 메고 오디오를 켜고 의자에 기대나 싶더니
잠이 든다. 규칙적인 숨소리가 그가 틀어놓은 음악의 박자에 맞춰 들리는것 같다.
길게 자라고 먼길로 돌아돌아 왔는데도 주차장에 들어와 바보처럼 쩔쩔 매며
주차를 하고 혼자 짐을 다 올리고 내려와도 그는 자고 있다.
다시 차문을 닫고 옆에 앉아 가만히 자는 모습을 본다.
그 모습을 보는게 견딜수 없이 슬픈 일 같다.
그가 쉬는 숨에서 옅게 소주 냄새가 난다.
어쩌면 그는 내가 알고 있는것과 다를지도 모른다.
매일 큰소리를 치고 웃지만 쓸쓸한 기억이 있을지도 모르고
혹시 저것도 설정일지 모른다.
한때 의심했던것처럼 희원이와 같은과라면.
하지만 오늘은 정말 쓸쓸해 보인다.
언제쯤 그가 그 쓸쓸한 기억까지 내게 나누어 줄수 있을까
생각한다.
"승지씨 응큼해"
"언제 깬거에요?"
"아까 아까 부터."
"근데 왜 가만히 있어요?"
"승지씨가 내얼굴을 너무 오래 보길래 얼마나 오래 볼라 두고 볼라구"
"그런걸 두고 보냐? 희원씨는 응큼하고 음 치사하기까지해"
"승지씨 운전 잘하더라. 조심조심."
"차가 막히고 조심스러워서 그래요. 이렇게 좋은차 첨 몰아 보는데
확확 밟아 보고 싶었는데 얼마나 잘나가나 볼라구 "
"나 되게 잘잤어요. 아마 이따 밤새도록 눈 말똥말똥할것 같아. 그럼 승지씨
괴롭혀야지"
'괴롭힌다구? 밤에? 헉!'
"왜 얼굴 빨개져? 또 이상한 생각 하는구나?"
"힘들어서 빨간거야. 혼자 짐 다 날랐쟎아요.
빨랑 내리기나 해요."
차에서 내려 성큼성큼 걷는데 희원이 큰걸음으로 뛰어 온다.
"승지씨."
내 앞에 서서 팔을 벌리고 선다.
"어쩌라구요?"
"알면서."
"어머 왜이러셔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비켜주세욧.소리지를거에요."
"하하 장난 하지 말구 빨랑."
"누가 보면 어떻게 할려구요."
"몰라 난 술김이야."
"술김에 뭐요?"
"내가 지금 승지씨한테 원하는거 뭔지 알쟎아요."
팔을 벌려 한걸음 앞으로 나가 그의 허리를 앉는다.
"일케요?" 어느 개그 프로에선가 여장남자가 하는 그대로 장난을 친다.
"승지씨 갈수록 썰렁한 농담 늘어서 큰일이다 내탓이긴 하지만.
근데 또 소금 목욕했어요? 머리에 이거 하얀거 뭐야?"
'헉 비듬인가?'
"농담인데 또 움찔한다. 적응을 해야지."
"오늘 머리 안 감았단 말이에요.찔리는게 있으니까 그렇지"
"그럼 이 냄새는 샴푸 냄새 아니고 승지씨 냄새구나."
"내 냄새 아니지 시장냄새 순대국집 냄새 뭐 골고루"
"아냐.. 향기가 나요. 승지씨 향기. 뭐 참을만 해요 걱정마."
"참을만 하다구?"
"아마 승지씨도 슬쩍 눈치 챘겠지만 나는 비밀이 많은것 같아.
근데 그 비밀이 내가 일부러 감추는게 아니라
나도 문득 잊어 버리는 아니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떠올리지 않으려는 것들이야.
그래서 그날밤 울었는지도 모르고 승지씨한테 자꾸 말도 안되는 억지 부리고
기대고 그러는걸지도 몰라.
옛날에 어떤 여자를 아주많이 좋아했던적이 있어요.
그때 내모습이 지금 승지씨 같아요.
그래서 승지씨를 보면 그때의 내가 보여서 기분이 좋아지는거 같아.
물론 승지씨는 그때의 나보다 훨씬 씩씩하고 밝지만
그리고 승지씨를 이렇게 안으면 놓기 싫어져.승지씨 가슴 뛰는 소리
숨소리까지 하나하나까지 놓치고 싶지 않아져.
그러니까 내가 놀려도 살짝 삐지고 내가 잘못해도 도망가지 말고
딴남자랑 뽀뽀하지 마요."
"하는거 봐서,근데 희원씨 여기 cctv 있지 않아요?"
"있겠지."
"헉"
"왜요?"
"누가 보면 어떻게해."
"아이고 아까 차 두대나 들어오고 지나도록 모른척 이야기만 잘하더니"
"내가 언제요?"
"봐. 저기 저차 두대 나란히 들어와서 사람들 우르르 내려서 들어갔어.
아마 추석쇠로 온 사람들인것 같은데.막 우리 쳐다보면서 손가락질 했어."
"헉. 진짜 아까는 없던 차다."
"너무 좋아서 못봤구나?"
"어 그랬나 보네. 얼른 올라가요.바빠."
현관앞에 오자 시장 본것들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다.
"어 왜 여기다 뒀어요?"
"문을 못여니까"
"724곱하기1124 해야지!"
"아 그걸 언제 계산해요?
"아까 알려줬는데 못 외우나"
"내가 남의 집 문을 왜외워!"
"어? 남의집 그럼 들어오지마요 남의집에 왜 들어오나?"
"아 생선이랑 이런거 다 상해 얼른 문열어요!"
"자기가 불리하면 꼭 윽박 지르더라.."
당장 쓰지 않을것들을 냉장고에 넣었는데도 식탁 위는 어지럽다.
"나 손부터 씻어야지."
"이리와요 내가 씻어주께."
"내가 뭐 손이 없나 내손도 내가 못씻게"
"하하. 부끄러워 하기는 위생 검열 차원에서 내가 씻어줄래."
"아 그러면서 슬쩍 손 잡을라고 하는거죠?"
"손은 뭐 맨날 잡는데.뽀뽀도 하고 남들 다 보는데서 포옹도 하고
이제 승지씨는 큰일났어. 이동네 소문 다 날거다."
"소문 나면 좋지 나로선 노리는 바야."
"쎄게 나온단 말이지?"
희원이 장난 스레 실눈을 뜨고 다가온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응답기가 돌아가고 삐이 소리가 난다.
"새꺄!"띠이띠이 띠이"
"무슨 소리에요? 장난 전환가? 저거 새.끼.야 하고 끊은거지?"
"저거 오준수 목소리다."
"에이 설마."
"정말 오준수라니까."
"어 응답기 깜빡거리네 메세지 있나 봐요. 요새도 집으로 전화 하나? 휴대폰은?"
"어 나 휴대폰 꺼버렷어 아까."
"아 맞다. 이거 오준수가 다 남긴걸거야 단계별로 맛이 가는 상태를 들려줄게
다른사람들 메세지도 있는데.
이 인간들 방송이나 공연장에서 쓴 가면을 벗기고 말테야."
"희원씨거부터 벗고."
"에? 난 승지씨 앞에선 가면 안써.섭섭할라구 해"
삐익
희원 나 준수 내일은 빨간날 방송도 특집때문에 밀림
나 할일 없음 술 사가지고 쳐들어 갈 예정임
혹시나 없을까봐 메세지 남김
용수 한주 남경 다 모여 있음 안나오면 쳐들아감
삐익
희워어언 나 쥰수 새끼 빨리 나와
너 여자랑 있지 너 요새 슈상해써 주거
삐익
야. 빨리 나와.
삐익
야아아아아아 보고 싶어 자기야
얼른 나와
"크크. 봐 이 놈들이 이렇다니까. 근데 쳐들어오면 안되는데
큰일이네. 승지씨 혹시 준수한테 환상 있어?"
"아니 난 없는데 은주가 무지 좋아하는데 저건 말해도 안 믿겠다."
"크크 근데 나도 쟤네 집 응답기에 저런거 있어"
"희원씨도 술 취하면 저래요?"
"아까 봤쟎아 나 술 취하면 이쁘게 잠들어."
"소주 두잔에 취했었어요?"
그가 핸드폰을 켠다.
"준수냐? 나 뭐 벌써 부터 그렇게 마신거야?
나 안돼 나 차례 지내야 해.
차례도 모르냐? 누구 차례인지 알아서 모하게 나도 인간도리 좀 해보자.
용수? 너 용수야? 어쭈 이놈은 더 맛이 갔네.
나 정말 안된다니까 "
통화가 길어진다.희원은 몹시 난감한것 같다
저편에서 지르는 소리들이 내게까지 들린다.
"가.서.얼.굴.만.비.치.고.와.요" 내가 낮게 말을하자 희원은 피식 웃음을 보인다.
"알았어 나 가께 그래 알았다."
그가 간다고 하니 조용해진다.
"승지씨 나 한시간만 갔다올테니까 암것도 하지 말고 한숨 자요.
갔다와서 같이 해 꼭꼭꼭!"
그가 나가자 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토란 국 끓이는거 알아?
그거 토란을 물에 담가야 해?
에? 무국이랑 똑같이 끓이는거야?
아냐? 그럼? 아 천천히 말해."
엄마는 집에서는 엄마 혼자 허리가 휘는데 집에와서 계란하나 안 깨주면서
어디서 뭘하는거냐고 묻는다.
"어. 결혼한 친구가 물어봐서.걔 친정엄마가 안계신대 시집가서
책 잡힐까봐 적는거야. 그니까 친절히 말해줘봐"
측은지심이 많은 엄마는 새벽까지 몇번을 전화해도 친절히 사소한거에도 대답을 해주고
나중에는 차라리 집으로 와서 음식을 해가라고 까지 적극적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양념비율대로 갈비를 재워 쪄주고
도미를 찐다.
지단을 만들어 하나 하나 손으로 고명을 얹고
나물을 볶아 내고
조금씩 하는 음식이라 손은 많이 가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다 하고 나니 새벽 네시가 되간다.
희원에게 전화를 하지만 핸드폰은 꺼져 있다.
컴퓨터를 끄려는데 프린터에
차례지내는 법이 뽑아져 있다.
'아까 차례지낸다는게 진짜였구나.'
책상위의 사진들
어린희원 그리고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인듯 한 사람.
세사람은 조금씩 닮아 있다.
아침이 되도록 희원은 오지 않았다.
희원이 뽑아놓은 종이에 적힌대로 차례상을 차린다.
홍동백서가 이런때 쓰는거구나.
데워야하는 음식들을 따로 챙겨 두고 상위에 빈자리에 놓아야 할
음식의 이름을 적은 쪽지를 올린다.
냉장고에 내가 만든 수배전단 옆에
쪽지를 한장 써서 붙인다.
"임무완료"
메모를 붙이고 문을 잠그고 나와 대문 앞에서 그를 잠깐 기다려 본다.
30분쯤 기다렸을까? 골목에 슬슬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일어서서 손을 털고 엉덩이에 붙은 먼지를 털고 걸어 내려오려니
골목을 돌아 가게가 보이기 시작한다.
명진이 간판불을 끄는걸 잊은 모양이다.
그 흰 불빛 위의 초록색 글씨에 긴장이 풀리는것 같다.
따뜻한 물에 씻고 잠깐 눈만 붙이고 가서
차례지내는걸 봐야 겠다고 생각한다.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쳐지는데 입에서는 휘파람처럼 숨이 쉬어 진다.
서희원 서희원 이름을 부르며 한계단씩 올라본다.
이름을 부를때마다 그가 조금씩 조금씩 가까이 오는것만 같다.
============이 글을 퍼가시는것은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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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의 저작권은 soramom에게 있습니다.
출처 miclub 소설습작실 THEE@han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