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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개념
첫째. 한옥과 살림집
우리 집을 '한옥(韓屋)'이라 부른다. 우리가 즐겨 입는 의복을 '한복(韓服)', 김치나 된장찌개 등을 곁들여 밥상 차린 음식을 '한식(韓食)'이라 하듯이, 한옥은 이 땅에 지어온 우리 들 집이다.
한옥의 넓은 의미(廣義)는「역대 한국 땅에 지어진 모든 건축물」이나 협의의 개념에서는「사람이 살림하고 사는 살림집」을 지칭한다. 지금 우리가 흔히 부르는 주택(住宅)이나 주거(住居)의 개념과 같은 단어가 된다.
우리의 '살림집'은 「사람의 삶을 사는 집, 살림을 살기 위해 필요한 시설을 갖춘 건물」이란 내용이 함축된 단어이다.
더러 '여염집', '주가(住家)', '주사(家舍)', '옥사(屋舍)' '민가(民家)'라 부르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주로 '주택'이라 하고 중국인들은 '민거(民居)'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살림집은 어제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현대인들도 누구나 오늘의 살림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는 미래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도 '한옥'하면 '고건축'이라는 시각으로 보면서 과거의 건축물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농후하다. 이 추세에 따라 한옥도 과거의 살림집 정도로 인식하려는 경향이다.
2000년 오늘, 木壽는 김영일, 조희환, 김도경과 더불어 강화에 「학사재學思齋」의 당호를 가진 살림집을 짓고 있다.
전에 우리들이 지은 선산(善山) 땅의 '동호재(東湖齋)'나 안동하회(安東 河回)의 '심원정사(尋源精舍)'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 집도 현대인들이 살 수 있는 집으로 건축되는 오늘의 현대건축이다.
살림살이의 시설도 최신의 것으로 망라되고 있다. 여느 현대건축의 살림집과 다를 바가 없다.
전통적인 법식과 기법에 따라 조영되기는 하지만 건축자재도, 조영하는 도구도, 사용하는 척도도, 공사하고 있는 종사자도 다 현대에 사는 현대인들이다. 그들은 때로 양옥도 짓고 이른바 현대건축에도 종사한다.
학사재는 21세기 오늘의 살림집이며 현대의 한옥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옥'은 시대에 관계없이 한국 땅에 순화되도록 지어진 집에 해당한다.
'살림집'을 바탕에 두고 '궁집'이나 '절집'이 경영된다. 난방을 위한 구들은 살림집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궁집, 절집 할 것 없이 이 땅에 순화된 모든 집에는 채택되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구들이 있는 집에 마루 깐 대청이 부설된다. 구들과 마루의 공존이다. 이런 공존을 다른 나라 살림집에서는 볼 수 없다는데서 한옥의 특성이 시작된다.
둘째. 한옥의 특성과 정형(定型)성립
한옥의 특성은 이 땅의 풍토에 순화되었다는 점 말고도 '구들과 마루가 공존한다'는 특색을 지녔다.
구들은 추운 북방에서 시작된 난방시설이다. 북방문화의 소산이다. 반대로 마루는 무덥고 습기 많은 남쪽 지방에서 발전을 시작한다. 더위와 큰 짐승 습격에 대비된 오두막집이 마루의 원천이다. 남방문화의 거점이다.
북방문화인 구들과 남방문화의 마루가 절충을 하면서 비로소 공존하기에 이르는데, 두 이질적인 건축요소가 공존함은 두 요소가 연합하여 한 건물을 이룩하였음을 의미한다. 다른 나라 집에서는 이런 공존을 보기 어렵다. 연합과 공존의 사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한옥은 특성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 구들과 마루가 공존하는 한옥 -하회 충효당 |
난방은 폐쇄적이어야 효과가 있다. 구들인 온돌방은 매우 폐쇄적이다. 마루는 무더위를 견디기 위해 높은 나무에 오르듯이 지표에서 뚝 떨어진 공간에 삶의 바탕을 마련하였고 사방을 훨씬 개방하여 시원하기를 지향하였다. 그만큼 개방적인 성향을 강하게 지녔다.
폐쇄와 개방은 아주 이질적인 성향이어서 좀처럼 공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한옥은 「구들 드린 방은 폐쇄성이 강하게, 마루 깐 대청은 훨씬 개방하면서」 미묘하게 상호의 장점을 잘 들어내었다.
1930년경, 우리 살림집을 처음 본 일본인 학자가 한옥을 "매우 중국적이라"고 가벼운 글을 썼고, 이래로 그 견해가 상식을 지배하였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그런 상식을 가진 이가 없지 않다.
아직 중국 여러 고장의 집을 널리 보지 못하던 시절에는 "그런지도 모르지" 하는 반신반의가 있었다. 지금은 넘칠 정도의 정보가 충분하다. 현지에 가서 탐구도 열심히 하였다.
자료와 식견이 축적되어 갈수록 한옥과 한족(漢族)의 민거(民居)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 확연해진다. 이제 1930년대 식견은 버려서 마땅한 것임이 분명해졌다.
한족의 집, 고구려 강역이나 문화 파급지역을 벗어난 고장에서는 구들 드린 방과 마루 깐 대청 보기가 어렵다. 방도, 당과 청도 맨바닥이다. 남방에 마루 깐 집이 있으나 그 집에는 구들방이 없다.
일본 집과도 다르다. 그러니 한옥은 우리가 가진 독특한 유형이며 네팔, 티베트 혹은 타일랜드 등 동남아 여러 나라와도 전혀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인도의 집과도 다르고 몽골이나 서역 여러 지역 살림집과도 다르다. 실제로 다니며 보니 그 점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방에 구들 드린 예는 고구려 옛 강역 뿐만 아니라, 고구려와 발해문화가 파급되었다고 보여지는 지역, 산동반도나 황토고원등 중국 서부지역과 몽골, 서역의 투루판, 우루무찌, 그리고 카자흐스탄에 이르는 북반부 여러 지역 살림집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오늘날 우리가 짓고 사는 도시의 여러 종류 살림집도 한옥이라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옥을 염두에 두면서 "그것까지 한옥이라 할 수 있겠느냐"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비록 이 땅에 세워진 집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집에서 살고 있다 하더라도, 자생적이 아닌, 이 땅의 풍토에 순화되지 않은 「외국에서 도입한 양식의 집」을 한옥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인 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그와 다른 생각도 있다. 아파트라 할지라도, 그것이 아무리 서구 지향적이라 하지만 우리 아파트에는 "구들 드린 온돌방"이 있다. 역시 다른 나라 주택에서 볼 수 없는 특성이다. 그러니 그것도 오늘날의 한옥의 한 모습으로 보아야 옳다는 견해이다.
그렇다면 한옥이란 개념에는 상당한 포용력이 있다. 이 땅에 지어진 모든 건축이 이 풍토에 순화된 기미만 지니면 한옥의 대열에 낄 수 있다는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서구에서 살림집 바닥에 신식 한옥에서처럼 온수파이프를 돌려 난방하는 일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그런 집도 구들 드린 온돌방이 있는 집으로 분류할 것이냐가 의문이 되나 대부분은 한옥과 동일한 구조의 구들 드린 범주로 볼 수 없다는 견해이다. 난방방법은 유사하나 그런 집은 한옥이라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한옥이란 개념에 저절로 한계가 그어진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양옥의 도입과 그 이후
우리가 살림집에서 19세기 개화기(開化期)에 서구양식(西歐樣式)을 받아들인 것은 일본 사람을 통해서였다. 19세기에 일본은 탈(脫)아시아를 지향하며 서구 문명을 모방하려는 조류를 타고 있었다.
당시 일본 지식인들은 구미(歐美)의 모든 것을 선진이라 보고 그것을 본뜨는 일에 급급했다. 이 물결은 우리나라에도 파급되어 부지불식간에 그들과 동화되었고, 이와 같은 타성의 흐름은 광복 후에도 계속 이어져 왔다. 더구나 6·25에 참전한 외국군인들과 전후 대거 내한(來韓)한 외래인들을 통한 외국문물의 유입은 극에 달하였고, 이런 강한 외세의 물결에 아무런 준비 없이 노출된 우리는 '우리의 것'에 대한 자기비하(自己卑下)의 야릇한 풍조에 휩쓸리게 되었다.
서양식 가옥형태가 범람하면서 주택행정도 그것을 기준으로 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서양식'을 취락구조개선이나 불량 주택 개량의 대안으로 여겨 국민에 이를 종용하였다. 국가의 주택 행정조차도 한옥을 질식시키는데 일조 한 것이다. 민족문화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것은 자신의 문화를 스스로 말살시킨 결과가 되었는데 "정말 그랬어야만 하였는지"를 이제 우리는 조용히 반성해 보아야 할 시점에 이르러 있다.
이는 현대에 새로 짓고 살아야할 한옥이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의 과제가 눈앞에 다가서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산업사회가 '서구적 취향이 지배하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문화가 경쟁하는 민족개성의 시대'로 발전할 공산이 크다.
인터넷 시대가 세계 사조(思潮)를 그렇게 휘몰아 갈 가능성이 짙다. 같은 정보를 세계인이 동시에 공유할 수 있는 이 시대가 오히려 문화의 지역성, 즉 개성을 갈구하게 할 것이다. 건축에서도 「새로운 한옥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한옥의 시대」에 우리가 향유하고 또 세계에 내어놓을 '새로운 한옥'이 어떠해야하는가를 생각해야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조선왕조시대로 되돌아가 살수는 없다. 따라서 조선왕조 때 살림집이 우리의 전통이므로 그대로 짓고 살자고 말하기는 어렵다」
새 시대의 생활 방식에 합당하고, 우리의 전통도 스며있어서 한국인의 정서에 가장 편안한 집이 새로운 한옥으로 틀 지어질 것이다. 전통 한옥에 대한 검토가 새롭게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을 알기 위해 우리는 어제의 한옥을 아는 일로부터 탐구를 시작하려는 것이다.
1. 벽난로의 화구를 세마릭그라스로 밀폐하면...
화실 입구가 개방된 벽난로는 장작을 연소하기 위한 일정량의 산소가 아닌 무분별한 과다한 산소가 공급되므로 장작은 빠른 시간 내에 타버린다.
또, 화실로 유입된 실내 공기는 화실 내부를 식혀주는 작용을 하게 되며, 열기는 곧바로 굴뚝을 통해 밖으로 배출되어 버리고 화실 내부는 달구어지지 않으므로 열기를 실내로 발산하지 못하게 된다.
굴뚝을 통해 많은 양의 실내공기가 연소공기와 함께 옥외로 배출되면 실내의 산소 보충을 위해서 문틈이나 반자틈 등으로 외부의 찬공기가 실내로 유입되어 실내의 온도는 점차 낮아지게 된다. 만약 완전 밀폐된 공간이라면 일정 시간 연소 후 연기는 밖으로 배출되지 않고 실내고 나오게 된다.
이럴 때 창문을 열어 외부 공기가 실내로 유입되면 다시 연기는 굴뚝을 통해 옥외로 잘 배출되게 된다. 이러한 형태의 벽난로는 벽난로라고 할 수 없으며, 그저 아궁이라고 부르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옹기나 도자기를 굽는 긴 터널 모양의 흙 가마를 연상해 보자. 긴 터널 속에 흙으로 빚은 옹기나 도자기를 넣고 많은 양의 참나무 장작을 넣어 불을 피우고, 곧바로 가마의 입구를 약간의 숨구멍을 제외하고 흙으로 막아버리는 광경을 TV를 통하여 보았을 것이다. 좋은 도자기를 굽기 위해서는 긴 시간 동안 일정한 높은 온도를 유지해야만 좋은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다.
만약 화구를 개방한다면 장작은 순식간에 타버리고 외부의 찬 공기의 유입으로 가마는 긴 시간 동안 일정한 높은 온도를 유지할 수 없게 되며 장작불의 불완전한 연소로 인하여 그을음과 타다 남은 재가 많이 발생하여 가마 속은 온통 그을음과 재로 덮혀 좋은 도자기를 만들 수 없게 된다.
벽난로의 화구를 세라믹글라스 등으로 막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까닭인 것이다.
벽난로의 화구를 도자기 흙가마처럼 밀폐하면 소량의 장작으로 긴 시간동안 일정한 높은 온도를 유지할 수 있으며, 그 열기는 실내로 발산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기술이 벽난로에서 말하는 버너 타임이란 기술이다.
수 백년 전부터 우리의 조상들은 이러한 버너 타임 기술을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벽난로의 화구를 세라믹 글라스로 밀폐하면 흙가마처럼 그을음과 재가 적게 생겨 항상 깨끗하고 높은 열효율은 물론 장작 등 연료를 절약할 수 있어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2. 벽난로 설치시 알아야 될 몇가지...
벽난로는 다른 물건과 달리 한 번 설치하면 오랜 시간 써야 하는 제품이므로 벽난로를 설치하기 전 꼼꼼히 따져보고 과연 어떠한 구조. 어떠한 형태의 벽난로를 선택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일부 상인들은 벽난로를 잘 모르는 소비자에게 잘 알 수 없는 말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화구를 개방하여 실내먼지를 옥외로 배출하고, 복사열을 실내로 내뿜는 통풍계의 사이클을 이루도록 해야한다."
또는 "화구를 글라스 등으로 막는 경우 닥트 시설을 해야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기압이 낮은 지역과 바람이 많은 장소에는 역풍방지 장치를 해야한다." 고 말한다.
벽난로가 기압과 바람의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은 벽난로가 아닌 아궁이로 보아야 할 것이다. 벽난로는 기압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 역풍 또한 벽난로 화실 자체에서 막을 수 있다.
또 거실의 크기와 벽난로의 화구 및 연도의 칫수가 다르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설명들은 벽난로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일반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는 사람들의 설명이므로 일축해도 된다.
3. 벽난로는 보일러나 다른 난방기구와 달리 난방 평수의 개념은 없다
벽난로의 등급은 버너 타임의 길고 짧음으로 평가되고, 버너 타임이 긴 벽난로는 화실의 온도가 매우 높고 긴 시간을 견뎌야 하므로 튼튼한 구조이며, 고급 제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만약 튼튼하지 못한 구조의 벽난로를 완전 밀폐하여 버너 타임을 강제로 길게 할 경우 벽난로의 수명이 짧아지게 되므로 연소시간에 맞는 튼튼한 구조를 가진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4. 벽난로 화실의 규모는 거실의 크기와 비례하지 않는다.
벽난로의 규모는 거실 면적이 몇 평일 때 어느 정도가 되어야 된다는 기준은 없다. 다만 내화벽돌 재래식 벽난로의 경우 거실 면적과의 비례표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의미가 없다.
벽난로는 보일러 등과는 달리 평수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화실의 크기 및 벽난로의 규모는 디자이너와 사용자의 의도대로 크게 혹은 작게 만들 수 있다.
또 아무리 큰 화구를 가진 벽난로라도 한 번에 피울 수 있는 장작의 양은 거의 같다. 그러므로 벽난로의 규모를 거실의 평수와는 비례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으며, 사용자의 편의와 집안 분위기를 고려한 크기라면 가장 적당한 크기일 것이다.
5. 굴뚝 끝에 설치하는 역풍방지장치는 역풍보다는 빗물을 방지하는 장치이다
굴뚝 끝에 설치한 역풍 방지 캡은 역풍보다는 빗물이 연통을 통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장치일 뿐 실제 역풍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역풍은 벽난로 화실 자체의 구조로 막을 수 있다. 벽난로를 선택할 때 연통 연결구에서 화실을 들여다봐서 불이 타는 곳이 보이는 벽난로는 역풍의 피해가 우려되는 구조이며, 열효율 또한 낮을 수밖에 없다.
역풍의 피해가 없고 높은 효율의 벽난로는 연통 연결 위에서 벽난로 속을 들여다 볼 때 역풍차단 장치가 부착되어 화실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구조이다.
벽난로는 한 번 설치하면 집의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사용하는 제품이므로 실제로 제품을 확인하고 꼼꼼히 살핀 후 구입한다면 후회 없는 탁월한 선택이다
여닫는 방법에 따라 여닫이, 미닫이, 미서기, 들어열개 등으로 나뉜다.
1) 여닫이
문틀의 선대인 문선(門線)과 문짝의 울거미 선대에 돌쩌귀(乭迪耳)를 달아,
여닫게 만든 것이다. 안여닫이, 밖여닫이와 바깥여닫이, 외여닫이, 두짝 여닫이
와 쌍여닫이, 또는 쌍닫이 등이 있다.
안여닫이는 바깥에서 집 안이나 방안으로 밀어 열게 되어 있으며, 궁궐 및 주택의
대문이나 중문들은 모두 두짝 문짝을 달았다. 또 방으로만 드나들게 한 외짝 문짝
인 지게문도 보통 안여닫이로 하는데, 안쪽에서 빗장을 걸면 밖에서 열 수 없게
되어 있다.
밖여닫이, 바깥여닫이는 안에서 밖으로 밀어 여는 여닫이다. 주택이나 궁궐, 사찰의
요사체에서 벽체 위쪽으로 높직하게 설치한 창호들과 각 방의 바깥 창호는 대개
밖여닫이로 하여 안에서 밖으로 밀어 열게 되어 있다.
외여닫이는 문짝의 한 짝만을 여닫는 방식으로, 대표적인 것이 지게문이다.
두짝 여닫이, 쌍여닫이, 쌍닫이는 두 짝의 문짝 모두 여닫게 되어 있다.
안여닫이나 밖여닫이 모두 두짝 여닫이로 할 수 있다.
(수졸당 사랑방의 여닫이문)
2) 미닫이
문틀을 짤 때 한 줄 또는 두 줄의 홈을 판 홈대를 아래위에 가로로 보내고,
홈대에 문짝을 끼워 두껍닫이(미닫이를 열 때 창짝이 들어가 가리게 된 빈 곳)나
벽체 속으로 밀어 넣는 방식의 문이나 창호를 일컫는다.
외미닫이, 쌍미닫이, 맞미닫이 등이 있다.
외미닫이는 문짝 한 짝을 벽체 속이나 두껍닫이 속으로 밀어 넣는 문이나 창이다.
쌍미닫이와 맞미닫이는 두 짝의 문짝을 각각 옆의 벽이나 두껍닫이 속으로
밀어 넣는 방법이다. 미닫이창호는 일반적으로 주택과 궁궐의 침전을 비롯한
내전과 기타 건물 그리고 사찰의 요사채 같은 방에 설치한다.
(연경당 미닫이문)
(미닫이문의 문틀과 홈대)
3) 미서기
문틀의 아래위 홈대에 문짝을 끼워서, 문 한 짝을 밀어 다른 한 짝 옆에 붙여
여닫는 방법이다. 두짝 미서기, 세짝 미서기, 네짝 미서기 등이 있다.
두짝 미서기는 두 짝의 문짝으로 구성된 미서기이며, 세짝 미서기는 문틀에
세 줄의 홈대를 만들어 세 짝의 문짝을 끼운다음, 두 짝의 문짝을 나머지 문짝
옆으로 밀어 여닫는 방법이다. 네짝 미서기는 문틀의 두 줄 홈대에 네 짝의
문짝을 끼워서, 가운데 두 짝의 문짝을 각각 옆으로 밀어 바깥쪽 문짝 옆으로
붙여 여닫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넓은 방의 중앙에 미서기를 설치할 때에는
윗방이 되는 쪽에, 곧 양 벽면 쪽에 문짝을 끼워넣고, 중앙의 두 짝 문짝은
아랫방 쪽에 면하게 한다.
(경주 최씨댁의 네짝 미서기 다락문)
4) 들어열개
문짝의 윗울거미와 문틀의 윗문틀에 돌쩌귀를 달아 문짝을 달고, 이 문짝의
돌쩌귀 반대편을 들어서 서까래나 기타 건축 부재에 매단 들쇠에 얹어 열어
놓는 방법이다. 이렇게 열고 닫는 장지를 들장지 또는 들창이라고도 한다.
이 들어열개창호들은 조선시대의 주택이나 궁궐 및 사찰의 전각 등 건축
전반에 널리쓰였다.
살림집에서는 일반적으로 대청과 방 사이에 들어열개창호를 설치하였다.
여러가지 창호의 횡단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