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다물고 듣기만 하던 고승이 물었다.
“재작년 서경업, 서경유 형제가 의거에 실패한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군사적으로 열세였습니다. 세력을 충분히 모은 다음 회하淮河를 넘어 북으로 진격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으므로 지리멸렬된 거죠.”
“하지만, 산동山東(중국 하남성 효산崤山과 함곡관 동쪽의 땅, 즉 태산과 회하 일대의 동부지방)의 영웅호걸들이 그가 올라오면 합류하고자 그의 군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만일 그가 군사적 열세였더라도 무 태후의 군대가 오기 전 파죽지세로 상승 진격했더라면, 산동은 물론 각지 영웅들의 호응을 얻어 동도 낙양성과 경사京師(장안성, 지금의 서안시)를 어렵지 않게 접수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고승의 의견이다.
“대인의 의견도 일리가 있습니다.”
이진영은 그 총명한 눈빛을 반짝이며 설명을 부가했다.
“그 다음의 실패 원인은, 패배했을 경우 달아날 도주로가 없었다는 겁니다. 금릉(남경)에 진지를 확고히 구축했더라면, 경사와 동도(낙양)를 도모하지 못하더라도 다시 후퇴해서 장강長江(양자강)을 방어막으로 삼아 농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진영은 뭇 영웅들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때를 놓칠세라 파죽지세로 서북의 낙양을 향해 진격한 것도 아니고, 장강 남쪽의 금릉을 제대로 접수하지도 못한, 그런 어정쩡한 상태로 장강의 남북에서 몇 번 허우적거리다가 그들은 망한 거죠.”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수긍하는 눈치다. 이진영이 다시 부언했다.
“서경업의 경우처럼 동남쪽에서 군사를 일으키는 것보다 동북쪽에서 일으키는 것이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이 대인의 말씀이 일리가 있소. 동북쪽에서 돌궐이나 거란, 말갈, 해족, 고려(대진발해) 등의 힘을 빌어 낙양성과 장안성을 압박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설사 실패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동북 산악의 거란이나 말갈, 고려 지역으로 도피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문홰의 대꾸다.
“우리 거란인들과 고려인들, 또 말갈인 등이 함께 군사력을 모으고, 서북쪽 돌궐족의 협조를 받는다면, 조 대인은 지금 장악하고 계신 적은 군사로도 능히 천하를 도모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진영이 그에 호응했다.
조문홰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 후에는 고려인들과 거란인들, 말갈인들이 이 억압 생활에서 모두 자유를 얻고 독자적인 나라를 세울 것이며, 우린 서로 침략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소.”
“거란의 송막 지역과 당나라가 관할하는 장성長城 이북을 독립시켜 이 대인께 귀속시키고, 영주 땅과 발해군 지역은 원래의 주인인 고려로 돌려보내기로 하는 게 어떻습니까?”
조문홰가 다시 물었다. 방안의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게 있습니다.”
이진영이 신중하게 말했다. 모든 사람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씨 타도를 외친 서경업, 서경유 형제의 거사가 무위로 돌아가게 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이씨 황족들의 전폭적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씨 황가를 복위시키려 하지 않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 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럼 우리가 이씨를 위해 거사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조문홰가 물었다.
“아닙니다.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씨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군기를 엄하게 하고, 피폐해진 백성의 삶을 돌보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당 고조 이연이 나라를 얻을 수 있었던 한 가지 이유도, 그의 군대가 백성들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감싸 안은데 데 있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모든 사람이 찬의를 표했다.
“서경업이 실패한 요인이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있다고 생각됩니다.”
고승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모든 사람의 이목이 고승을 향했다.
“그들의 조부 서세적(이세적, 이적)이 누구입니까? 우리 고려를 멸망시킨 장본인이 아닙니까? 듣자니, 그는 어렸을 때 도적단에 가입해 살인을 밥 먹듯 하던 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어쩌다가 출세했으나 결국 한 나라를 망하게 하는데, 선봉장이 되었습니다.”
수양제 양광의 사치와 방종, 주색잡기가 거의 광기로 변해있던 시기에, 전국에서 도적단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난 것은 필연이었다.
그 난세에 서세적이 어린 몸으로 십여 세 이후부터 도적단에 몸을 담아 걸핏하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서세적 자신의 회고담이다<자치통감>. 그는 훗날 희대의 풍운아 이밀李密에게 붙었다가 다시 당 고조 이연의 진영에 가담하면서, 이연의 당唐이 중국을 지배하게 되자, 출세가도를 달린다.
고승은 하늘을 쳐다보고 길게 한숨을 쉬며 탄식하듯 부언했다.
“악인들이 죄업을 쌓을 때 하나님은 수수방관하시는 것 같지만, 실상은 이 땅에 공의를 베풀고 악인들을 정의롭게 심판하신다는 것이 소인의 신념입니다. 그런 서세적의 후손들이 의거에 실패하고 망한 것은, 어찌 보면, 하늘의 심판일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고승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실내는 정적에 휩싸였다.
서경업 형제의 조부 서세적은 당나라 임금으로부터 이씨 성을 하사받고 이세적이라 불리다가, 그의 이름 속에 당태종 이세민과 같은 글자가 들어가 있어서 황제 이세민의 휘諱(이름)를 범하지 않도록, 나중 이적이라 호칭된 사람이다.
667년부터 668년에 걸친 고구려 정복 전쟁의 당나라 군대 총사령관, 요동도행군대총관이 바로, 영공英公 이세적이었다.
말하자면, 서경업, 서경유 형제의 거사 실패는, 그들의 조부가 고구려에 저지른 죄악에 대한 징벌이기도 하다는 것이, 고승의 말뜻이었다.
무거운 정적을 깨고 고승이 결론처럼 단언했다.
“하늘이 도우셔야만, 우리의 의거가 성공할 것입니다.”
그의 단언에 한동안 좌중에 재차 짙은 침묵이 흐른다. 이를 파하려는 듯 조문홰가 서둘러 일을 진행시켰다.
“그러면, 하늘의 도우심은 하늘에 맡기고, 우리의 뜻은 이렇게 합치된 것으로 확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조문홰가 품에서 비수를 꺼내더니 손가락을 살짝 베어 큰 술잔에 피를 흘려 넣었다. 이어서 이진영이 자신의 피를 같은 술잔 안에 떨어뜨렸다. 고승과 기타 인물들도 차례로 자신의 피를 한 방울씩 술잔 안에 넣었다.
드디어 혈주血酒가 만들어졌다. 영주도독 조문홰를 필두로 일행은 잔을 돌려가며 그 혈주를 한 모금씩 마셨다.
엄숙한 저주의 맹세 의식이 있고 난 후, 조문홰가 입을 열었다.
“일체의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여하한 문서도 작성하지 않고 모든 것을 구두로 처리했으면 합니다. 동지들의 생각은 어떤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구구한 것들을 문서로 만들어둔다면, 훗날 만일의 경우 큰 후환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좋습니다. 제가 나라를 얻는다면, 각 민족은 반드시 독립시키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문홰가 말에 힘을 주어 확언했다.
“이것으로 우리의 맹약은 끝났습니다.”
고가장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손님들을 모두 떠나보낸 후,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조영이 불안한 표정으로 조부에게 속삭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조문홰가 과연 무태후를 상대로 군사를 일으켜 성공할만한 만한 담력과 지략, 포부가 있는 인물이라고 보십니까?”
고승은 말없이 조영을 잠시 응시하다가 묻는다.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는 도무지 그 분이 미덥지 않습니다.”
“근거는?”
“그 사람의 인품이나 학식, 담력과 지략, 장래의 포부 등을, 그의 모든 언어와 외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로 판단해 볼 때, 그는 한 나라를 경영할 인재도 아니고, 감히 군사를 일으킬 만한 담력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보았느냐? 이 할애비 생각도 동일하단다.”
“그럼, 어찌 그런 인물과 이런 무모한 일을 도모하셨습니까?”
조영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진다.
“염려하지 말거라. 대답하기 이전에 하나 더 묻겠다.”
고승은 조영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입을 연다.
“조문홰가 우리와 의거 맹약을 맺은 것은, 진실로 그가 의거를 일으키기 원해서였겠느냐?”
“그렇지 않으면요?”
고승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는 의거에 전혀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
“그럼, 그가 도대체 무슨 심보로 이런 엄청난 일을······?”
“네가 한번 추리해보아라.”
조영이 한참 동안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굴린다.
“우리가 감히 그에게 도전하지 못하도록, 자기 보신책으로요?”
“그것도 일리가 있다. 그가 우리와 한배를 타고 있으면, 그는 우리가 자신을 처치하고 독립을 꾀하지 못할 것으로 계산했겠지. 하지만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요······?”
“내 추측이 맞다면, 나와 너, 그리고 이진영 대인을 무태후의 손으로 제거하기 위해서다.”
“네?! 역모가 탄로 나면 오히려 자기 목이 위험할 텐데요?”
조영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덧붙인다.
“할아버지의 말씀이 선뜻 납득되지 않습니다. 자신도 함께 역모를 꾀했는데, 어찌 자기 혼자 화를 면할 수 있습니까?”
“그게 바로 조문홰의 간교한 책략이지. 우리를 속이고, 우리의 역심을 파헤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거짓 맹약을 행했노라고 고백하면 되는 거다. 아무런 문서나 물증이 없지 않느냐?”
“하지만, 무태후가 얼마든지 조문홰를 의심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번 밀서 도난사건이 발생한 거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지. 하지만, 네 말대로 자신도 위험에 처할 수 있으므로 그는 섣불리 우리의 맹약사실을 무 태후에게 토로하지 못할 거다. 다만 그 밀서만을 무태후에게 가져다 바칠 것이다.”
조영이 잠시 멈칫거리다가 물었다.
“할아버지, 근데 조문홰가 왜 우리를 제거하고 싶어 하죠?”
“거기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다.”
고승의 눈빛이 주름진 얼굴 사이로 날카롭게 빛난다.
“나와 이진영 대인에게 혹시 자기 목숨을 빼앗길까 염려하고 있다.”
“아니, 왜요?”
조영이 깜짝 놀란다.
“그가 이곳에 부임한 이래 때론 암암리에, 때론 노골적으로 우리 고려 백제 신라 삼한인들, 해족 및 기타 이민족들, 특히 이진영 대인과 거란족을 얼마나 멸시하고 압제했느냐?”
그건 사실이었다. 조영은 상기된 표정으로 고승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지레 겁을 먹어 미리 도피처를 마련해 두고, 남이 자기를 해칠까 두려워 먼저 남을 해할 궁리에 빠져 있는 것이, 어떤 사람들의 습성이더냐?”
“남에게 악행을 많이 저지른 자들의 습성이요?”
고승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우리는 어떡해야 하죠?”
“그리 염려할 필요 없다. 나도 나대로 생각이 있으니까. 너도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나아가야 할지 잘 숙고해보아라.”
“네, 할아버지. 근데 왜 할아버지는, 그의 이런 음모에 참여하셨나요? 그의 속을 뻔히 아시고서도.”
“우리가 그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있겠느냐?”
“거절하면, 오히려 우리에게 더욱 깊은 앙심을 품겠죠?”
“그렇지.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유가 더 있다.”
“······?”
“그를 안심시켜야 하지 않겠느냐?”
조영은 여전히 얼굴에 의문의 빛을 가득 띠고 있다.
“이 할애비 마음 속에는 숨은 계획이 있단다.”
“그게 뭔데요?”
“진실로, 앞으로 거사를 일으킬 작정이다.”
고가장의 노장주 고승은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 그럼 이 밤의 맹약은, 또 다른 차원에서 조문홰를 안심시키기 위한 연막전술인가요?”
조영이 사뭇 놀라는 어조로 반문한다.
조문홰를 안심시킨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훗날의 영주의거營州義擧에서 드러나게 된다.
“그럼. 내가 만일 이 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죽으면 네가 이진영 대인과 협력해 반드시 이 일을 성취해야 한다. 알겠느냐?”
“네. 할아버지.”
조영이 잠시 허공을 응시하다가 물었다.
“근데 할아버지, 조문홰는 우리에게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이곳을 떠나면 그만이지 왜 이런 무모한 거짓 거사를 진행할까요?”
“그거 잘 물었다. 실은 이게 그가 좋은 곳으로 영전되어 가기 위해 수단이란다.”
“그래도 그렇죠. 위험부담이 너무 크잖아요?”
조용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너무 깊이 알려고 하지 마라. 내가 손 좀 써서 이렇게 된 것이다.”
그 후로도 두 사람은 거의 밤이 새도록 내밀하고 깊은 얘기를 길게 나누었다. 한편, 그날 밤으로 고가장을 떠난 영주도독 조문홰는 영주성의 도독관청으로 온 후, 몇 가지 물품을 정리하고, 심복 서연과 극소수의 호위병만을 대동한 채 곧바로 질풍처럼 말을 몰며 은밀한 여행길에 나섰다.
낙양성, 낙양궁의 초여름은 외견상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당나라 황실의 정권을 장악한 무 태후는 동도 낙양성을 정사의 좌소로 삼아, 이태 전인 684년, 낙양성을 신도神都라 개칭하고 낙양궁을 태초궁太初宮이라 명명했었다.
무 태후는 부도교의 승려와 도교의 도사들을 가까이했을 뿐만 아니라, 경교(기독교)의 경전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던 것 같다.
“신도,” “태초궁”이라는 명칭이나, 688년에 이르러, 낙양성의 황궁 안에 부도교의 사원을 짓고 천당天堂이라 이름 지은 일, 자신을 성모신황聖母神皇이라 부르게 하고, 자신에 대한 기림 글을 새긴 흰 돌판을 만들게 해, 천수성도天授聖圖(하늘이 주신 거룩한 글)라 지칭한 사실 등은, 그녀의 종교혼합주의적이고 사이비종교 교주적인 성향, 자신을 신으로 숭배하게 한 로마황제나 먼 훗날의 일본 국왕 등과 유사한 경향을 보여준 것이다.
이 천수성도는 낙수洛水(낙양성 안으로 흐르는 강, 지금의 낙하洛河)에서 얻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무 태후는 낙수를 신성화해 그곳에서의 낚시질이나 고기잡이를 금했다.
같은 해인 688년 음력 12월 25일, 무 태후는 천수성도를 받들고 낙수에 제사를 지냈다. 황제 예종 이단과 황태자 이성기李成器 이하, 문무백관과 외국의 관리들이 도열한 가운데, 제단 위에 기이한 날짐승, 들짐승, 각종 보물을 차려놓았는데, 그 제사 행렬과 제사의 성대함은 당나라 개국 이래 최대였다고 한다<자치통감>.
무조 무태후의 전격적인 발탁으로, 무예를 팔아 입에 풀칠하던 빈한한 약장수에서 하루아침에 무태후의 측근이 된, 낙양성 백마사의 사주 승려 회의는, 어느 화창한 날 입궁하기 위해 막 어마에 오르려던 참이었다.
그 때 한 종이 그에게 아뢰었다.
“대사님! 영주도독 조문홰가 대사님을 뵙기 원합니다.”
“뭐? 영주도독 조문홰? 저 동이東夷 북적北狄놈들을 다스리는 자가 아닌가?”
“예, 그렇사옵니다.”
“그가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는가?”
“직접 만나 뵙고 말씀 드린다 하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져왔습니다.”
종은 뭔가 묵직한 함을 그에게 건네었다.
열어보니 그 안에는 황금과 보석이 들어있었다.
상자 뚜껑을 닫으며 회의가 말했다.
“귀빈 접견실로 안내하게.”
조문홰가 들어가서 합장하자 승려 회의도 아주 정중한 태도로 합장하며 인사했다.
“대사님을 처음 뵙습니다. 부처님의 가호가 늘 함께 하길.”
“시주께도 부처님의 가호가 있길. 나무아미타불.”
회의는 조문홰를 잠깐 바라보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저에게 부탁하실 일이 있으시다면, 제가 성심껏 도와드리겠습니다.”
조문홰는 승려회의가 듣던 바와는 달리, 젊지만 총기가 넘쳐흘러 사람의 속뜻을 아주 쉽게 간파하고 말이 시원한 것에 속으로 적이 놀랐다.
“그토록 중생의 마음을 미리 헤아려 주시니, 대사님의 자애로움이 한이 없습니다. 대사님의 하해와 같은 자비에 용기를 내어, 저도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름 아니라, 태후마마를 알현하고 싶사옵니다.”
“아, 그렇습니까? 태후마마를 알현하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제가 일전에 아주 희귀한 보물을 얻었는데, 그것은 저 같은 소인배로서는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천고의 보배입니다. 제가 헤아려보건대 하늘 아래 그 진보에 어울리는 인물은 딱 한 분뿐입니다.”
“오, 대인께서 그런 놀라운 행운을 얻고도,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대의를 위해 이처럼 귀한 뜻을 가지고 계시다니 부처님의 한량없는 가호가 있을 것입니다. 자고로 모든 번뇌는 탐욕에서 비롯됩니다. 나무아미타불.”
조문홰는 승려 회의를 직접 만나보니, 듣던 것처럼 그렇게 안하무인의 교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에게서는 덕이 높은 고승高僧의 엄숙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기도 했다.
“대사님께서 그토록 저에게 대자대비를 베풀어 주시니, 그 은혜 무어라 형언하기 어렵습니다.”
조문홰는 진심으로 감복하며 감사의 뜻을 표현했다.
“때마침 잘 오셨습니다. 제가 지금 입궁하려던 참입니다. 저를 따라 가시면, 태후마마를 곧장 뵈올 수 있을 것입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회의가 은근히 물었다.
“그런데 그 천고의 보배가 무엇인지 소승이 미리 알 수는 없는지요?”
“오, 이런! 소인이 대사님의 자애로운 용자에 찬탄하다보니, 하마터면 큰 무례를 범할 뻔했습니다. 이건 아주 비밀스런 물건인지라, 대사님 귀 좀 잠깐만.”
회의가 얼굴을 그에게 가까이 대자 조문홰가 소곤거렸다. 조문홰가 말을 끝내고 회의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의 얼굴빛에 놀란 기색이 엿보였다.
(다음 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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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3. 8. 12.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