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독립을 원하는 티베트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 철도는 티베트인을 한화시키려는 도구로 보이게 마련이고, 그 만큼 티베트의 운신의 폭을 제한하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이 철도를 통해 한족이민을 장려하여 티베트 내 한족비율을 높이고, 지하자원을 개발할 뿐만 아니라 군사 기동력까지 제고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고대 당나라가 티베트에 불교를 전해주었다면 지금은 칭짱철도를 통해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이식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중국정부가 달라이 라마의 ‘귀국’을 바라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기존 대국주의에 바탕을 둔 티베트에 대한 직접 통제정책을 철회할 가능성이 전무한 상태에서는 백기투항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달라이 라마가 이에 응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반면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달라이 라마가 중국의 제의에 응하지 않는 상태에서 중국이 굳이 달라이 라마의 요구에 응해줄 필요는 없다. 이와 관련해 중국은 달라이 라마의 후계자문제를 가지고 티베트 문제를 해결하려는 복안이 엿보인다. 현재 73세의 고령인 달라이 라마가 서거할 때까지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긴 듯하다. 즉 달라이 라마가 사망할 때까지 ‘시간 끌기’전략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달라이 라마의 환생을 최종적으로 판정하는 판첸라마가 자신들의 수중에 있어 티베트망명정부가 제15대 달라이 라마를 선출한다고 해도 베이징의 판첸라마가 그의 환생을 인정하지 않으면 무위로 끌날 수 있고, 결국 달라이 라마가 없는 티베트는 구심점을 잃고 표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이러한 의도를 헤아린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이 원한다면 나는 다시 환생해 (제15세) 달라이 라마가 되겠다”고 공언함으로써 중국측의 저의에 쐐기를 박으려고 했다. 그러면서 “(달라이 라마 제도 역시) 왔다가 갈 것이고 현실상황에 따라 별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2007년 11월 일본 산케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후계자인 제15대 달라이 라마를 고승들의 투표로 선출하거나 자신이 직접 지명하는 방식까지 거론한 바 있고, 또 “차기 달라이 라마는 중국 밖에서 환생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온 배경이 여기에 있다.
넷째,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노선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무력을 보유하지 않고 있는 다람살라측이 13억 인구의 전 중국을 상대로 하기엔 전력이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유일하게 기대를 걸 수 있는 희망이 세계여론을 움직여 중공을 압박하는 것이지만 이미 세계 각국은 자국의 이익을 고려해 중국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티베트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있다. 2008년 3월, 49년 전 중국의 티베트강점에 맞서 항거한 기념일에 맞춰 티베트민중이 벌인 티베트인들의 격렬한 반중 시위는 수일간 계속됐지만 종국에는 탱크와 헬리콥터까지 동원된 중국군에게 무참히 진압되고 말았다.
티베트민중의 반중시위는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무장봉기 제50주년에 행한 연설에¶ 촉발돼 올해에도 발생했지만 예상대로 순식간에 진압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민간여론 차원에서 세계 각국에서 보도, 거론, 항의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정부 차원에서 이 사태에 관심을 기울여 중국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국가는 없었다. 달라이 라마의 연설이 기폭제가 돼 발생한 티베트 승려, 학생 등의 티베트독립 시위는 미국, 호주, 뉴델리, 서울 등지에서도 벌어졌지만 각국의 정부를 움직이기는 역부족이었다. 미국, 프랑스, 독일 등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의 입김에 티베트문제를 거론하려 들지 않고 있다. 1950~60년대 한 동안 미국은 티베트망명정부를 도와 그들의 반중공 저항운동을 부추기고, 티베트 침투작전을 지원한 적도 있었건만 현재는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더 이상 티베트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
¶(주) 달라이 라마는 “중국은 지난 50년간 티베트를 불법 점거하면서 수십만 명의 티베트인을 학살했을” 뿐만 아니라 “티베트의 고향을 생지옥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하면서 강압통치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또 그는 “중국공산당은 티베트를 점령한 뒤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지배해왔다”고 비난했다.
중국의 눈치를 보는 이러한 의도된 외면과 무관심은 앞으로도 심화되면 됐지 덜 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 구도가 깨지지 않는 한 티베트문제에 대한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2008년 3월과 2009년 3월의 시위는 티베트의 운명을 가름한 분수령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이 반영하듯 현재 달라이 라마는 딜레마상황에 처해 있다. 비폭력 평화주의 원칙으로 중국정부와 대화로서 의미 있는 결실을 이끌어 내야할 책임이 있지만 중국당국이 이에 응해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고, 다른 한편으로 급진적 민족주의, 무장독립투쟁노선을 걷는 해외 티베트망명자들의 의사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견지되어온 달라이 라마의 중도노선이 계속 유지될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여전히 중도노선을 걷고 있고, 그것은 2009년 5월 현재도 변함없이 티베트망명정부의 공식 노선이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가 세상을 뜨고 난 뒤에도 이 노선이 그대로 유지가 될 지는 불투명하다. 티베트망명정부 내 무장독립노선을 추구하는 강경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향후 십수 년 내에 베이징과 다람살라에는 다시 한번 지축을 흔들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견된다. 모든 것은 달라이 라마의 사망여부에 달려 있다. 그가 사망하면 티베트망명정부는 달라이 라마에게 집중돼 있는 신성성을 잃게 되고, 그것은 베이징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이로 인해 다람살라의 망명정부는 분열에 휩싸이거나 최소한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달라이 라마는 한 외신의 질의에 답한 인터뷰에서 “티베트가 해방되면 헌법을 새로 제정해 모든 권력을 이양하고 나는 은퇴해 평범한 승려로 살겠다”고 한 바 있다. 살아생전에 그의 꿈이 실현될지 아니면 그가 언급한 대로 다시 제15세 달라이 라마로 환생해서 비폭력 투쟁을 계속할지는 전적으로 중국과 세계의 의지에 달려 있다. 서거하기 전에 달라이 라마는 친히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참관하고 싶다고 여러 차례 뜻을 세웠었지만 번번이 중국의 압력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한국방문은 가능할까? 죽기 전에 자신과 모든 티베트인들이 그토록 염원하는 티베트인에 의한 자치와 조국의 독립을 목도하기란 요원한 일인가? 아, “랑젠”이여!¶¶
¶¶(주) 티베트어로 자유와 독립을 뜻하는 말이다.
첫댓글 아 "랑젠'이여 !!! 한치도 어긋남이 없다는 인연법, 공업의 무서움에 전율이 옵니다. 감사합니다. _()_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