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의 세레나데 14 (롤러코스터)

[바다로간이리]

 
솔희는 보스톤도 엘에이도 멀리 두고 제이를 쫓아 마오이섬으로 둘만의 밀월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이틀째 되던날 어스름하게 태양이 노을져 넘실대는 바닷물을 퍼플빛으로 바꾸고 있을 때, 솔희는 긴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옆에 반바지에 상체에는 간단한 셔츠만 입은 키가 큰 제이의 팔짱을 끼고 해변을 걷고 있다.
정균 앞에선 단 한번도 입어본적이 없는 비치용 드레스는 속이 훤히 비추어지며 그녀의 유려한 몸이 그대로 보여졌고 동그랗고 단단한 히프의 실루엣이 보여지며 허리에 딱맞게 걸쳐진 팬티의 윗끈까지 드레스를 뚫고 보여진다.
원래 아랫속옷을 입지 않은것처럼 탐스러운 두 궁둥이는 그녀이 맨몸이나 마찬가지인 몸을 가로 막고 있는 망사드레스를 무색하게 만든다.
솔희는 이렇게 입고 파트너와 공공연히 걸을수 있는 이곳이 천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둘은 어김없이 마주보고 키스를 나누었고, 솔희는 제이의 목을 끌어안고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 보며 묻는다.
 
 
“제이씨, 나 사랑하죠?”
 
“이런, 당연하지. 그런데 왜 갑자기 존댓말이야? 어울리지 않아”
 
“그저......당신 앞에서 그러고 싶어져서, 요”
 
“한국식 존댓말을 듣는 순간 내게는 책임이 생겨, 그러니깐 평소 말하던대로 해라”
 
“어유, 누가 자유로운 영혼 아니랠까봐? 날 너더러 책임지라는 소리 안해. 이 바람둥이야!”
 
그때 제이는 도끼눈을 뜨고 분노를 폭발시키며 솔희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솔희는 예상못한 이 상황에 깜짝 놀라 온 몸이 굳어 버렸다.
 
 
“뭐, 바람둥이? 네가 다른 여자랑 데이트하는거 봤어? 어디서 근거없이 나를 모함하지?! 너는 이런 식으로 남자를 길들이냐? 네 남편한테 그런 식으로 해오던걸 나한테도 똑같이 하려는 모양인데, 사람봐가면서 해!! 나도 어리석은 여자의 우스꽝스러운 소리는 상종하지 않아! 대답해 봐, 니가 봤니? 니가 봤어?”
 
“제, 제이....! 난 그냥 귀여운 농담으로........”
 
“너 나한테 몇 번째 그렇게 말하는줄 아니? 귀엽게 봐줄게 있고 안 봐줄게 있지, 아 미쳐 버리겠네, 다 때려치우고 보스톤으로 돌아갈까?”
 
솔희는 뜻밖의 제이의 불호령에 어쩔줄을 몰랐다.
그냥 혼자 짐싸고 비행기 타고 떠날까하는 생각도 올라왔지만 그렇게 되면 제이와 함께 애써 쌓아온 사랑과 음악의 공든탑의 붕괴와 그녀의 여정에 차질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솔희는 그저 제이의 분노가 가라앉길 바랬다.
 

 
여행 넷째날 한식당을 들어갔을 때 제이가 매운 것을 먹지 못한 것을 간과한채 솔희가 주문해준 음식은 너무 맵고 짠 것이었다.
제이는 소스가 너무 매워서 얼얼한 표정으로 음식을 뱉어내고 찬물을 한컵을 다 마셨다.
그 남자의 얼굴은 붉어지고 눈이 불꽃처럼 튀기 시작했다.
 
 
“이따위 쓰레기를 음식이라고 시켜준거야? 환상적인 한국 토속음식을 먹여준대며? 너 정말 내 취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 나 골탕먹일려고 일부러 그런거지?!”
 
“미안, 나는 네가 이런 음식은 먹을 수 없다는 걸 몰랐어. 다음부터는 더 잘 살펴보고 말해줄게....”
 
제이는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숨을 몰아쉬며 식당이 떠나갈 듯, 종업원들이나 다른 손님들이 보던 말던 솔희에게 꾸짖는 말을 이어갔다.
결국 솔희는 눈에 안약이 떨어지듯 수치심과 불안한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주르륵 흘렀다.
그는 솔희가 말없이 흐느끼는 것을 보며 서서히 분노를 감추었다.
 
솔희는 제이가 어느 구간에서 저리 화를 내는지 파악을 못하는 것에 대해 자책했다.
그녀도 잘 안다.
왜냐하면 솔희 역시 신경이 예민하고 날카로운 여성이었기 때문에 이해는 할수 있었다.
함께 있던 남편 정균조차 그녀가 화를 내는 지점이 어디있는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가 그런 예민한 남자의 분노를 온 몸으로 받아내는 일이 생겼을 때 너무나 당황스럽고 굴욕스러웠다.
그럼에도 눈물을 흘리며 제이에게 사과를 하는 자기 자신이 순간 미워지기까지 했다.
도대체 사과를 할 내용이 무엇이고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하지만 제이의 이런 모습은 숨겨진 모습이었을까?
솔희의 몸과 마음을 모두 갖고, 함께 한 일정한 성취후 대인관계의 긴장이 풀려 버린걸까?
 
 
(뭐에요? 당신 눈빛, 굉장히 제게 불만족스럽고 짜증나는 눈빛이에요. 그리고 목소리가 왜 이리 퉁명스럽죠? 당신 제게 다른 안 좋은 생각 품고 있는거 전 알수 있어요, 거짓말하지 말고 불어요, 왜 무슨 생각인지!!)
 
솔희는 이따금 정균에게 이런 식으로 화를 냈고 정균은 ‘이크, 또!’ 하는 심정으로 솔희의 분노가 확장되지 않도록 그녀에게 빌고 빌었었다.
 
(여보, 안 그래, 피곤해서 목소리 톤이 낮아졌겠지, 내 눈빛이 어때서? 화 풀어, 당신 예민한줄 알면서도 가끔 내가 좀 둔감하긴 해, 당신을 좀더 살필께.)
 
(당신 이 순간이나 어떻게 모면해 보고 또 그럴거죠? 당신의 무표정이나 차가운 말투가 얼마나 내게 상처가 되는줄 알아요? 하여간, 어떡하면 밤에 날 덮쳐볼까 궁리나 하고..............오늘 밤새도록 집에서 암보도 해야 하니 당신 먼저 자기나 해욧! 아~ 집에서까지 스트레스 짱받네?!)
 
솔희는 예민한 심사가 뒤틀릴 때 남편 정균에게, 이 여행중의 제이가 그녀에게 하는것처럼 분노를 표출했을때 정균은 무조건 그녀에게 빌기만 했다.
그래서 솔희는 상대방에게서 그런 분노가 폭발했을 때 대응하는 방법을 배웠을 리가 없었으니 남편 정균이 자신에게 하던대로 제이에게 싹싹 빌고 있었다.
 
하지만 제이는 분노를 참지 못해 한참 동안을 화를 내다가도 분노의 구간을 통과하면 호탕하고 자상하게 변하는 남성이었다.
솔희는 제이의 분노의 쓰레기통이 되어준뒤 그의 아기자기함이 찾아올 때 비로소 안도하며 그의 험악했던 태도를 잊을수 있었다.
 
 
 
 
“제이야, 너 나 책임질수 있어?”
 
“또 그 소리.......너는 독립적인 인간이고 여성이야. 누구의 책임으로 존속하는게 아니라고”
 
“제이야, 네 아이를 갖고 싶어서 그래”
 
“아이를 가지려면 누군가에게 종속되어야 하니? 스스로를 속박으로 끌고 들어가는게야. 게다가 넌 임신을 예방하는 수술을 받았대며? 너의 지난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말어. 너답지 않은 일이야.”
 
해변가 1층에 위치한 호텔에서 솔희는 땀에 젖은 허벅지를 역시 땀이 흐르고 있는 제이의 엉덩이에 걸치며 그의 어깨에 턱을 괴고 물어 보았다.
솔희는 불현듯 제이의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그녀가 그 가능성을 스스로 없애버린 것을 떠올렸고 처음으로 난관수술을 받은 것을 후회했다.

그녀가 여태껏 살면서 임신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정열의 순간에는 두 사람 사이에 벼라별 말들이 다 오간다. 

하나 그런 순간에 오가는 밀어들은 술취했을때의 술주정과 비슷했다.
그래서 회오리 바람같은 시간이 지나서 현실과 이성이 돌아오고 나면 역시 제이는 현실적으로 또박또박 대답한다.
 
 
“서로의 약속대로 난 너에게 나의 인생에 대한 짐을 지우지도 않을거고, 난 아이를 낳을수도 없어. 그래도 이럴 때 뭐라고 맞장구치면서 내 기분좀 맞춰주면 안되니? 제이야말로 제이답지 않아..........”
 
제이는 팩트와 논리로 말했지만 솔희는 그저 공감과 거짓위로라도 받길 원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가 깊어질만큼 깊어져서인가 더 이상 제이는 솔희의 마음에 쏙 드는 커멘트를 주기를 거부했고 도리어 귀챦고 답답해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상태에서 제이의 민감한 심사를 건드려 또 옥신각신 상황이 올줄 알았건만 제이는 바로 피곤한 듯 코를 깊게 골기 시작했다.
 
육지와 시차가 맞지 않아 지금쯤 보스톤은 초저녁일 시간, 오히려 정신이 점점 또렷해 지는 솔희는 일어나 머릿결을 정돈했다.
그리고 속옷도 안 입은 상태로 산책용 드레스를 입고 그 위에 자켓 모양의 윙을 걸친뒤 샌들을 신고 호텔방을 나섰다.
 
어두워졌어도 여전히 해변가를 들추는 파도는 달빛을 담아 희게 반짝거리고 있다.
작은 2인용 벤치에 걸터앉아 솔희는 물끄러미 밀려 들어왔다가 물러나는 파도를 바라본다.
밤바람을 쐬이며 아직도 솔희의 몸 곳곳에 그와의 촉각이 남아 있다는 것을 즐기고 있다.
제이의 리사이틀이 끝난뒤 바로 이곳으로 날아와 그와 24시간을 며칠동안 같이 지내본적은 처음이다.
여기서 그의 예민한 심사와 변덕이라는 새로운 성격을 맞이하게 되었고 함께 있는 솔희가 모두 감당해야 했다.
그럼에도 제이는 솔희를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분노어린 꾸중 뒤의 포옹과 찬사라는 반전.
무엇보다도 그의 강인한 신체적 특성에서 오는 성생활의 놀라운 만족과 충만감, 숫컷의 카리스마는 그녀가 도저히 도망칠수 없었다.
잠깐잠깐이라도 제이를 독점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제이더러 그녀를 책임질수 있겠냐는 질문이, 행위 도중의 흥분상태에서가 아니라 회오리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이후에 넋두리처럼 내뱉은 임신하고 싶다는 소원, 두가지 다 말이 안되는 불가능한 것임을 알면서도 그건 솔희가 제이를 그만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제이는 특정한 여자가 독점할수 있는 남성이 아님을, 그 스스로가 질색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리고 이번 제이와의 밀월 여행에서 느낀 것이지만 제이의 예민한 심경은 솔희가 평생 옆에서 그것을 감당할수 없는 것이었다.
처음 그와 이야기한것처럼 음악적 협업을 하며 그를 통한 성장을 하되 가끔 한달에 한번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사랑을 나누고 데이트를 하는 것이 최선이리라.
 
 
(결혼 5주년 기념여행은 마오이로 가자고 그 사람이 그랬었지?! 그 날은 오지 않게 되었어, 정균)
 
솔희는 정균과 신혼여행을 하와이 본섬으로 갔었다.
그녀는 원래부터 마오이를 가고 싶어 했는데 어찌어찌 하다가 본섬으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정균이 그녀를 달래며 5년 뒤로 마오이 여행을 미루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결혼 5년차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솔희는 제이와 함께 보스톤으로 돌아가 다시 치열한 일상과 싸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솔희에겐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다.
이제 정균에게 몇 달에 한번이라도 형식적인 아내 노릇을 해주던 일도 그만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그녀의 마음은 계속 말하고 있다.
 
(제이.........이번 여행에서도 느꼈지만 나라면 절대로 결혼할수 없는 남자지만 끊을수는 없는 남자. 그는 내게 계속 필요하다, 무슨 관계이던지. 하지만 정균과 부부로서의 관계는 내 생활에 혼란만 주는게 되어 버렸어. 부부관계를 버려야 내 앞의 성공과 생이 있는게야............이제 몸도 마음도 온통 제이와 맞춰져 있어, 억지로 남편에게 웃음짓고 그를 위해 밥해주고 밤에는 몸을 맡기고 좋은척? 이젠 끔찍해)
 
솔희가 제이를 알게 되면서 정균에게 해준 모든 것들은 연기와 진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몇 퍼센테이지로 무슨 비중이 더 높은지는 의미가 없는 것이었고, 특히 지난번 마지막 방문때는 정균을 대할때의 진실이 연기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간단한 마법같은 손동작으로 그녀의 육체와 정신을 지배하고 굴종시키며 용서빌 것을 강요하던 그 카리스마, 거기에 남편 정균을 우러러 보게 된건 사실이니깐.
실은 얼마든지 솔희를 어떤 방법으로도 제압하고 살수 있었던 남자였던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그리고 공항을 떠나올 때 정균에게 그 많은 키스를 그날따라 유달리 해준것도 마지막이라는 예감도 있었지만 정말 정균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정균에게 별로 정도 안주고 아내 역할도 안해주고 냉정하게 대했건만 5년간의 세월 동안 어디서 생긴건지는 몰라도 부부의 정이라는게 그들 사이를 휩싸고 있었던 것도 느끼고 왔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시 연기를 할 용기도 없었고, 진실되게 정균을 대할 용기도 이젠 없다.
무엇보다도 정균과 계속 부부관계를 유지한다해도 제이와의 연애를 그칠 생각도 없지만 새로운 인연과의 사랑과 그 관계 사이에서 감정낭비도 만만치 않을 것이었고 습관적 이중생활과 비밀유지에 대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가 극심할 것이다.
 
 
(그래.......! 어떤 결정이든지 후회가 없는 결정은 없다고 했어. 내겐 앞날과 성공이 더 중요해. 새로운 인연과 새로운 형태의 사랑도 중요하고...........미안해, 정말 미안해, 정균씨,,,,,,,자기는 정말 헌신적이고 순종적인 여자 만나서 아이낳고 알콩달콩 살기를 바래)
 
이만 호텔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솔희가 일어섰을 때 강렬해진 바닷바람은 그녀의 머릿결과 드레스를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요즘 채실장님 일 너무 열심히 하시는 것 같지 않아? 휴가다녀오신 후로”
 
“글세, 보스톤에 계신 사모님하고 뭐가 잘된건지 잘못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러시면 우리도 힘들어지지”
 
정균은 휴가를 반납하지 않고 그 기간을 오롯이 산행과 인근 해변가 산책, 자전거 단독 라이딩에 사용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가사도우미를 불러 집안 전체를 깨끗이 소제했다.
그의 생활은 열심히 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상 균형이 깨어져 있었다.
일을 오버스럽게 하는 순간에,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는 조금이라도 실수나 딴생각이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시름을 잊을수 있었다.
하지만 집 근처의 해변가를 정처없이 걸어가거나 하이킹 복장을 갖추어 엘에이 근교의 산에 올라갈때는 내내 솔희와 그녀와의 관계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솔희는 거의 전화를 받지 않고 어쩌다가 카톡으로 짦막한 단답형 답변만 들어올 뿐이었다.
 
(3주 후에 제가 엘에이 가니깐 그때 이야기 많이 해요. 지금은 너무 바빠요, 당신이 이해해주길 바래요.)
 
이 카톡메시지가 며칠전 받은 가장 길고 자세한 솔희의 메시지였다.
 
 
“야잇, 젠장!”
 
긴 챙모자를 쓰고 하이킹화를 신고 붉은 등산복을 입은 정균은 돌연 트래커(지팡이)를 죄없는 나뭇가지를 향해 마구 휘둘렀다.
 
(솔희야,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니? 네가 하자는대로 다 해주었어. 관계 횟수 제한까지 받아주었고, 귀가시간 간섭안했어. 네가 수술받고 왔을 때 딱 한번 화냈지만 사과하고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어. 네 예민한 심사를 건들지 않기 위해서 전전긍긍하다가도 터지는 네 분노와 감정쓰레기통 역할도 해줬어. 그래도 내게 부족한걸 그 남자한테서 채운거니? 아니, 내가 해줄수 없는 음악적 협업을 그 남자가 해주니깐 몸이랑 마음도 다 준거니? 샌디에고에서 외박할때부터 계획된거니?)
 
그는 산행을 하다가 끊임없이 괴롭히는 상념과 싸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균은 잘못한 것이 없었다.
잘못한 것이라면 솔희를 너무 사랑했다는 것일까?
웬만한 남자라면 샌디에고 사건부터 강하게 추궁하고 이혼소동도 벌였고 최소한 재발방지 약속이라도 받았을 것이다.
아니면 겁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자칫하다가 솔희를 날려 먹을수도 있다는 겁 때문에 그녀에게 끌려다니는 결혼생활을 해온 것인가?
그래도 떠날 여자는 떠난다? 어떻게 해서라도 솔희를 잡고 싶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다.
세상 수치스러운 자는 바람난 아내의 남편일 것이다.
오죽 남편이 못났으면 마누라가 바람나냐는 반문일수도 있지만, 반대로 아내 솔희가 너무 잘난 여자라서일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간략하여 “XX콤”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남초 커뮤니티에 올렸다.
그가 가는 곳은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고민 문제에 비교적 굵직하고 경륜있는 댓글들이 많아서 그곳에 하소연하기로 했다.
그중 정균을 화나게 했으면서도 그가 산행을 할 때, 산책을 할 때 계속 그의 귓전에 메아리를 준 댓글이 몇 있었다.
 
 
[[님이 사랑한 것은 부인이 아니라 부인이 갖고 있는 미모와 탈랜트, 예술적 성취와 콘서트에서의 화려함 속의 부주인공으로서의 당신 자신입니다]]
 
[[부인 자체보다는 당신이 가장 빛나던 시절의 열정과 헌신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에 님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듯 합니다]]
 
[[평소 끼 안부리고 남자 밝히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그런 여자들이 더 무서운거에요. 미모와 대중적 노출있는 직업땜에 끊임없는 유혹들이 있고, 기분파에 분위기에 약한 성향이시라면, 이미 님만의 여자가 아닐거라고 생각하세요. 샌디에고 사건 말고 더 있을거에요. 다만 님이 모르실 뿐이고 부인분은 낭만적인 비밀 몇 개는 가슴 속에 추억처럼 간직하고 님 앞에선 아무일 없었던것처럼 지냈겠죠. 지금은 빼박 숨길수 없는 상황이 된 것 같고..........할말하않....]]
 
[[쭉 사모님에 대한 설명을 보니 처음부터 아니다 싶은 분이셨네요. 독점이 불가능한 여성이에요. 거기다 살림도 부부관계도 잘 안하셨대매요. 그걸 감수하고 결혼하시고 모든 별별 요구를 다 들어주셨으면 님이 끝까지 책임지셔야죠, 어딜 사회로 방출하셔서 새로운 피해자를 만들려 하십니까]]
 
 
“그래, 내 탓이다, 내 탓! 쓰버얼~!!”
 
산 정상에 도달하자 정균은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스스로를 소박한 남자로 자평했던 정균은 그가 내면적으로 그런 화려함을 숭상하고 있었던 것을 인정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여행을 마치고 보스톤으로 돌아온 솔희와 제이는 시내의 미국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뒤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솔희는 제이와 24시간 같이 지내는 시간이 얼마나 롤러코스터를 타고 숨막히는 순간이 언제 어디서 터져나올줄 모르는 불확실한 환경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지금 각자 집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시간에 해방감을 느꼈다.
그녀의 모든 남자를 매료시키는 미소는 그런 해방감과 자유에 대한 기대에서 나온 것일게다.
 
 
“솔희야, 네 인생은 너의 것이고 너의 결정이야. 하지만 나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하는것이라면 보류해”
 
“호호호........너라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 이유도 없지는 않아. 하지만 난 음악과 성공을 위한 것이 더 커. 그게 아니라면 너와 만나면서도 결혼생활은 결혼생활대로 유지했을거야.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에너지 손실이 크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날 것 같아. 지금도 혼란스러워서 결혼생활이라도 정리하기로 한거야”
 
“솔희야, 네가 내 인생관을 제대로 이해해주고 있는 것에 고맙다. 난 어느 여자에게도 소유되지 않은 상태로 남기를 원해. 결혼제도라는건 그래서 불합리한거지, 난 이런 제도에 영향받고 싶지 않아”
 
“그래. 사람 일은 모르는거니깐 내가 혹시라도 재혼할 인연을 만나거나 하면 방해하지 않을거지?”
 
이미 식당 종업원이 계산서를 그들 앞에 놓고 사라진지 오래이다.
이 둘은 다소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듯 했지만 이미 이들이 만나고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면서, 이번의 여행에서의 몇몇 대화를 정리하고 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새로운 진정한 인연을 만나서 재혼하더라도 가끔 나 만나줄것인지 묻고 싶다, 솔희야”
 
“어머머?! 얘좀봐?! 제이답지 않게 끈쩍대내? 오호호호호호..........! 틀에 박힌 생활 속의 활력소로서 너와의 사랑을 즐길수는 있겠지. 내가 재혼한 다음에도 가끔 나랑 사적으로 만나려면 지금부터라도 나한테 좀 잘해. 특히 그 예민한 성질좀 나한테 부리지 말고!!”
 
튕기는 듯 하면서 불확실한 미래의 불확실한 약속을 해주는 솔희는 제이의 몸에 길들여졌고 무엇보다도 그의 특색있는 동서양의 강점만 모아 놓은 드문 남성의 상징을 그녀가 재혼한다고 막상 놓는다는 것은 버거웠고 그와의 낭만적 로맨스도 놓기 싫었다.
 
 
“내가 다른 여자랑 연애해도 질투하지 않겠다면 나도 약속지켜주지. 솔희 너 유독 질투심 많은거 내가 모를 것 같니?”
 
“내가?? 내가 뭘 봐서 질투심이 많니? 난 5년동안 남편이 밖에서 뭘하던 누굴 만나던지 신경도 안 썼어. 솔직히 남편 입장에선 나만한 여자도 없지.”
 
“그건 너말대로 남편한테 관심도 없고 사랑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어유, 썰렁한 소리 그만하고 이만 집에 가자”
 
솔희는 회색 루이비통 핸드백을 챙겨 일어났다.
 
썰렁한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 솔희는 이제부터 치열한 현실이 다시 눈앞에 닥쳤음을 인지했다.
앞으로의 공연이나 연주스케쥴대로 움직여야 하고 사전 연습을 해야 한다.
휴대폰에는 몇통의 정균으로부터의 놓친 전화, 그리고 몇통의 카톡이 들어 왔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앞에 놓인 치열한 현실은 정균과 어떻게 잘, 그리고 신속히 헤어지고 그녀를 최근에 짓누르던 결혼생활의 굴레를 벗는 방법과 절차였다.

[갓바위]

잘보았습니다
감사요

[바다로간이리]

제 졸필을 좋게 보아주심에 고맙습니다

[자작나무]

감사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