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평안북도 월화면 화합하리 75(대구 김) 평안북도 선천군심천면 인두동 95(담양 전)
1,나의 일기 나의 어머니박씨 외조모백씨 외조모의 친정이 남자형제가 신의학을 일본에서 많은공부를하여 지금도 그줄기가 서울 저동 백병원 외조모는 박씨집으로 결혼하였는데 시아버님이 그고을 사또 단발령 선교사 받아들였다 죄목 시아버님은 아들삼형제두어 외조모는 둘째며느리였다 첫째며느리 아들한분 둘째 며느리 나의어머니한분 셋째 며느리 딸두분 이렇게 사남매 그후 얼마지나지않아 시아버님이 역적으로 몸을 피신하였다 죄목은 선교사 단발령받아 들렸다네 아들삼형제 피신하여 과부셋이되여 사남매를키우는데도 풍지풍파가 많았다 어머니의 오빠는 늘 쫒기는자가되고 여형제들은 숨긴 선교사 보필에 애로가 많았단다 그래도 긍정적이고 낭만적인 성격이라 보람을 느끼며 살았으나 결혼적령기가 되어 어머니 오빠는 어머니의 친한친구가 올캐가 되고 문제는 나의어머니 외조모는 딸이 나이가 드니 마음이 조급하였답니다 그래 그고을 전씨라는집에 혼사를 하게 되었는데 혼인하기전 올케가 어디 도망이라도 가 결혼하지말라고 이유는 집안내력이 복잡하고 나이가 어려 극구반대했는데 외조모의 집안망신이다하며 결혼을 하고보니 나의어머니17살 아버지13살 그시절여자15세넘으면 노인취급을 당했다 나의친할머니가 전씨집후처 전처의 막내딸이 후처보다3살많았단다 전처가 딸을많이 낳아 한이되여 아들하나낳고 그자리에서 죽으면 좋겠다고 말이 씨가되어 아들낳고 일주일만에 죽었답니다 후처가 앞가슴도 생기기전 지극정성으로 전처 아들을 키웠는데 잘자라 혼인을 하려니 시모가 본처아닌 후처라고 본인이 알고부터 대농은 아니어도 머슴을 두고 농사를 짓는집안인데 큰아들이 반항 하기시작 후처가 아들둘 딸둘 사남매를 두었으나 큰동생 우리아버지를 데리고 집안을 풍지박살 그래서 어머니 친구인 올케가 그렇게 반대했답니다 우리어머니결혼하고 보니 시어머니가 13살아들 학교갔다 와 힘들어 내가 재웠으니 깨우자말라는 시어머니의 어명 그래도 15살나니 내리딸셋을 낳아 첫째는 진자리에서 죽고 딸둘 큰딸고등학교나와 결혼하고 딸을 낳았다는 소식듣고 1947년8월 작은언니17살 학교갔다오니 큰언니 빨리 어머니 막내 셋이 월남하라(외가로 인해 항상 감시대상) 사선을 넘나드는 가이드를 사야 되기때문에 비용이 너무많아 5-6가족이 한조가 되어 월남했다 그때벌써 경계가 심해 서해로 넘으면 순탄한길이지만 경계가 너무심해 동해로 낮에는 동글 숨어 자고 밤에만 넘어오는데 나는5살 걸리기도 업기도 그렇고 그래도 언니하고 엄마가 번갈아가며 업고 산길을 넘었는데 밤이라 업히면 자니까 쳐저 언니는 있는데로 엉덩이를 집어뜯어 언니가 업을때는 안업힌다고 억지를 부리지만 언니는 이놈의 에미나 버리고 간다고 엄포를 놓기도 산에 풀뿌리 자연 생땅콩 먹으면 그자리에서 설사 그래도 먹어야 하기에 우리는 간단한 식구라 괞찮은데 젖먹이가 있는집은 수시로 아이가 보채니까 가이드 견디다못해 아이를뺏어 풀섭에 누이고 남은사람은 뛰라고 아이엄마도 얼결에 같이뛰어 전곡이라는데 와서 내의무는 여기까지 한탄강건너면 남한 그때부터 아이생모 아이이름 부르며 몸부림치는것도 보았읍니다 밤낮40일걸려 어렵게 서울도착 언니가 가장이되어 "유진오박사의 소개로 중앙청취업 학교만 다니던 사람이니 심부름이나 했겠지요 너무박봉이라 세식구 풀칠하기도 힘든상태 영등포개인회사 한글타자 다닐만하니까 6,25가 터졌읍니다 언니20살 나8살 한강다리는 끓기고 출렁다리건너 그야말로 시체를 넘고 화물차 칸에서 부산으로 피난 용두산 자리를잡고 가마니3장으로 맨바닥에서 언니는 국제시장 편물점에서 삯뜨게 생활하는데 그복도 아버지 나타나 명당자리라고 술몇잔에 팔고 할수없이 서면 수원지 골짜기이동 그곳에서 국제시장을 다닐려니 힘들고 시간낭비 다시 대청동이라는데 이사 작은아버지가 조카라 등한시해서 나이먹혔다고 형님만나면 책망듣게다고 (결혼54년5월결혼) 시키자고 그때부터 어머님의 생존이걸린거라 부두를다니며 컴팔이 겨우연명하다 4학년1월에 돌아가시고 부산보수국민학교 반편성하기전 밀린 월사금 독촉을 받으며 5학년이되었어 이모가 내가 걸려 서울끌어올려왔으나 전학을 시키지않아 4학년이 최종학력 부산초량 외가식구들 나의어머니를 비롯 모두에게 사랑 원없이 받았지만 경순때문에 발길이 옮겨지지않는다고 그렇게 우니 외삼촌 울고싶은데로 울어라 그러나 애비 안담고 지어미를 닮아 어디가서 욕먹을행동 안하고 붙임성이있어 사랑을 받는다 애비가 문제다 내가초량가서 2-3일있으면 그집에서 양발 공장직원 식구 모두 받자를 하지않으니 밖에서 내가 눈이 뒬때까지 집주변을 빙빙돌며 날데려기곤했다 둘째언니밑으로 아들을 하나낳았으나 돐지나 "페니시린"이 없어 죽어 그길로 자식돌보지못했다고 나가 10년 떠 돌다 들어와 낳은것 엄마 나이38세 경순을 낳았단다 외할머니는 이런줄 모르고 딸이 부실해서 아이를 못낳는줄알고 소달구지로 몇달구지 익모초를 고와 먹였다고 넌 엄마가 익모초 몇달구지먹어서 넌100수하고 건강할거라고 이모는 늘 그러더라 아버지 서모\ 그두분은 술한잔하면 입으로 단칸방에 짐승행동 깨면 또 먹고 그행동 어떻게 입으로 나열하겠니 난 금호동 교회 대학생들이 봉사차원에서 야간에 희망자모아 가르쳤다 몇달배우다 지금의 외환은행 본점자리에 고등공민학원이 있어 등록을하니 얼마지나지않아 새학기가되어 희망자들이 뿔뿔이 새학교에 등록 나도 숭의를가게 되어 그곳에서 경순이를 만나게 되었다 간단한 시험을 보드라 턱걸이로 겨우 들어갔다 몇푼있는것으로 입학금 1학기등록금지불하니 교복이 없어 차일 피일미루며 며칠지나니 영어선생이불러 급사6명모집있는데 형식적으로 시험보라 난 시험에 자신없다 다 그렇다 다독거리며 독촉을 하드라 운인지 6명중 내가2등 1등은 교장이 "송죽원이라는고아원"을 했는데 자매라고 큰아이는 고1 교장실비서 작은아이는4학년 교장집에 잔심부름시키갰다고 그래도 난2등이니 선택권을 주겠노라고 학교도 주야간 가고싶은곳으로 곰곰히 생각하다 주간교무실가게다고 이것이 실수 단순한마음에 이유는 각과목선생한테 한마디물으면 도움될줄알고 그게 오산 교무주임 네가할일3가지 1,첫째 시간맞추어 시작ㅡ끝 종 철저히 2,선생개인부탁금지 3,교무실내의 철저한 비밀보장 3개월에 한번씩 나오는월사금 다달이 분납혜택 나를 인도한 영어선생은 월남자 그때는 호적 관공서에는 원적 본적 현주소 이런 시절 입학원서가 들어오는대로 철저히살펴 내가걸린거야 같은고향 외가가 전씨라네 이 사람은 나와 7년차 고향에서 공부를 좀 한다고 서울대 영문과 합격 고향의 아버지는 대대로내려오는 농사꾼 아들이 서울있으니 아버지가 드나들다 맥혀 오가지를 옷하고 여기서 재혼 삼남매가 있고 아들은 그때는 가정교사라고 먹고 자는형식으로 아들이 몇푼주면 한푼도 쓰지않고 아들앞으로 땅을 사곤했다네 한번 가보자고해서 가 보았는데 그때벌써 많은농지가 있더라 멀지도않은 안성 이모를 접견시키니 너무 불쌍하게 커서 단출한데 저희끼리 사는대 보내고싶다고 내운명인지 학교도 고3 여름방학끝나고 2학기부터 급사도 모조리 떨어졌다 그때는 상이군인시절이라 관공서 학교할것없이 행패를부려 자신의 자녀채용 3,4학기 월사금이 문제 미납으로 졸업장 앨범 아무것도 받지못하고 졸업하고나니 행동을 움직일수가 없어 2월에 졸업하고 5월에 부산에 몇일있어도 말을할수가 없었다 외숙모며느리 올케가 고모 온 이유뭐야고 다독거리면서 묻기에 울면서 이야기하니 올케도 나도 얼마나 울었는지 졸업축하한다며 시계 옷한벌 학교지불할돈 3만원인데 5만원을 주면서 거쳐가 마땅치 않으면 오라고 여기저기 원서를 내도 진학도 취업도 안돼 남산올라가는 퍼시픽호텔자리가 병무청이였다 여군지원서류를 받아들고 이모한테갔드니 그시간부터 날중신하라고 사방 복덕방에 내어 놓아 김재성이 낙찰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취업은 경찰병원 철도병원 을지로5가 메디칼병원 지금은 어떤가 그곳은 군인처럼 들어가 3년을 있어야하기에 나한테는 안성맞춤 이것 저것 안돼 미련없이 여군간다니 타이르고 욱박지르고 몸싸움 덥기는하고 있는대로 심통을 부리며 시어머니 남편될사람둘이 나오고 사람이 싫은것이 아니라 결혼자체가 싫어 자세도 삐닥선 할머니가 덧정없어 없던일로 하겠다고 하니 본인이 나는 괜찮다고 할아버지한테 이야기하니 엄마가 없는여식이라도 괞찮으니 성사시키라고 두부부가 언쟁을했다더라 그길로 이북5도청 열람을 하니 전씨가 문제 아니고 어머니의 본가박씨집안이 유명하다고 그당시 할머니는 무당집을 그렇게 드나들러 미신을 섬겼다네 무당에서 들을이야기 이여자 꽉 잡아라 자식번창 시집식구경제 도움있고 건강하고 되돌라나오는데 무당이 무릎을 치며 하나열 다좋은데 3달안에 시아버지를 며느리가 잡겠다고 할아버지한테 이야기하니 그아이한데 죽는한이 있어도 성사시키라고 난 소식없어 너무좋았다 병무청면접가는길에 2달만에 사주가 온것이야 난 대성통곡 (맞선 사주 결혼 2ㅡ3달만에 일사천리 이런일도 있나 있나싶드라) 이유인즉 회사경비였는데 맞선보는날 큰도둑이 들어 해고 ㅡ무직상태에서 취업이 안돼 집에서 부업으로 오랜지라는 물색소입혀 비닐에 넣어 파는것인데 세로판으로 비닐을부치면 내가하는것 생소하고 기술이없으니 다 새고 비닐만 둥둥 첫날부터 애가생겨 졸리긴하고 결혼3달후 김구암살 김희남 할아버지 김구 오른팔이였다고 하네 쇼크받아 반신불수 풍을17년을(석달을 애지중지한 나를 그날부터 된시집이 시작된다 사기결혼이다 시작으로 낳은애 이집 씨니 두고 나가라 시어머니 발동동 영감님 언쟁못이기고 하룻밤 지나니 애는병나고 밤새 두 부부지쳐 더 이상 애두고 나가는소리는 없어졌으나 .결혼1년만에 내가 가운데서 못살겠으니 젊은사람 어떻게 살아도 사니 나가리고 이모한데는 말못하고 재덕이가 북아현동꼭대개기 전세얻어줘 분가 하려니 병신인 나 두고 못나간다 어떻게해서 분가를 했다 경순
전경순 내어머니 계실때 외삼촌이 몇푼씩준것같드라 친삼촌은 옹망졸망 딸이넷 할머니7식구가 사는게 힘들었겠지 큰아들인 우리아버지가 할일을 못하니 작은엄마 역시 우리어머니를 하대를 하드라만 우리어머니당연한일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드라 외숙모는 휘어잡지못한다고 우리어머니 그 사람도 얼마나 힘들겠니 월남당시는 모두 뿔뿔이 흩어져 나와 다 만났다 어머니 동생인 이모는 아들둘 딸둘 사남매를 두고 이모부 친구부인 폭격으로 사망 이모에게 그래서 같이 살자고하니 우리이모 그래좋다 조건은 사남매 고등학교 맞추는조건으로 언니둘 경기여고 오빠둘 대광고 큰언니 경기여고 남편은 박사 작은언니 남편은 군인장교 (아웅산사태전사 )큰오빠는카츄사출신으로 이민가고 작은오빠는 지금도 장사를 하고 이모부가 얼마나 수단이 좋은지 운이 닿았는지 월남얼마지나지않아 보문동 동회장 그당시 동회앞뒤로 대소서가 판칠때 모든것은 자기가 책임질테니 대소서하라고 우리아버지에게 권유를 내가 그런것 하게 생겼냐고 책망을 했다 친사촌오빠는 서울올라와 을지로2가 종이장사를해서 각 출판사 납품을 많이 하다보니 필동에 인쇄소를 큰아버지가 맡아하시다가 몸이 불편하여 우리아버지에게 하라니 형권유로 몇달하다가 자기는 못하겠다고 그만두더라 대성리(계모)할머니는 사촌오빠(영남이네 )용산삼각지살고 오빠는 장사관계로 삼각지 대소사 행사에 대성리 할머니 불려 2-3일 일하고 익은음식(간장 김치)몇푼얻어다 먹고살았다 그러나 그행패가 내게 다 돌아오더라 외삼촌오빠는 부산초량에서 양발공장을 했다 사촌 외사촌 오빠들은 고향에서 고등학교 동기 동창이였다 사촌오빠둘이 유학가면서 비용부담갖지말고 같이 가자고 권유하니 내 집안이 이러니 난 양말기술배워 가정 돌보아야 한다며 합세를 안하였다 그런생활이 반복되다보니 오빠가 서울 경제인협회 참석차 오면 호텔안가고 삼각지에서 몇일묵고 서울 ㅡ부산 서로 오가며 잘지내드라 내게 큰돈이야 주겠냐만 푼돈몇푼씩주고 갔었어 우리아버지 부산오빠 왔다갔지 내가 급한데 돈 좀달라고 나의일기 난 결혼전 주변남자들(아버지 형부)질려 결혼하지않으려고 했으나 운명인지 김재성을 만난 첫날부터고행(치질 결핵 간염 간암)22세만나 69세헤어졌지만 모든것이 의욕없고 귀찮아 아내 아닌 엄마역활로 "동물같은사랑" "남편같은 정" 모르고 의무 봉사로 버틴것같다 결혼첫날 한방에 애는 만들었지만 신랑이 얼마나 아픔을 참았는지 치질에 닭벼슬처럼 손바닥만한 혹 옳지못한자세 이해는 갔지만 가는시간까지 병속에 살았다 눈 귀동양 지금은 있는지 몰라도 그때 노점불켜는 카바이트 요강 양회부대를 세겹바르고 안에 카바이트 가운데 구멍뚫어 물을 조금부으면 속사포처럼 증기 을라오면 그곳을 쏘이니 엉덩이를 들었다놨다 2달한것같다 그리고나니 결핵 회현아파트근처 협회가 있어 몇년을 다녔지 그후 간염 간암 부실한몸 둘이 손재주없어 벽에 못한번 시원지 못해 못박으려면 바들바들 떠니 그러다보니 무슨정이 오고가겠어 몸이 아프다보니 보통말도 짜증만 아이셋을 낳았지만 난 늘 엄마역활 이렇게 끝났다 (외부에는 위 아래 바른 예의 항상 존경의대상)
내엄마(1906년생) 38세날낳아 12살에 가셨지만 "내자식이지만"뭔가 달라 제대로 보필한다면 "재목값이라고" 늘 입버릇처럼했는데 시집이라고보니 조석거리만만치않고 동서 시누살이 시아버지사랑3개월 결혼첫날 고기를 만난 신랑한방에 애가생기고 2-3개월지나 알게되었고 별이상 증상도없었다 할머니무당집을 형제처럼드나들고 내무기는 눈물바람일뿐 아버지구로동에서 삼각지 보훈청 일자리구하려 걸어다녔고 생계수단 오렌지란물 물감들여 비닐에 넣어 각 구멍가게마다 넘기고 할아버지식사 꼭 육식1000원 사오면 달달볶아 드신다 행상인에게 간장1000원사면 떨어질때까지 하루2끼 배도 원없이 굶었다 아이는 딸을낳겠으나 반갑지않은 딸이라고 낳는대로 낳으면 딸은 별로고 아들만 낳겠다고 딸낳았다고 이모 미역한줄기 소고기두근사왔드라 할머니 며느리 고기안 먹잖아요 안먹는게 어디있어요 호랑이예요 고기 미역 한들통에 다 끓여 나만준다고 먹성좋아도 질려 식구들이 다먹었지만 먹는것없고 매일 눈물바람에 할머니 못살겠다 이번 추석에 나가 방구해나가라고 젊은사람 어떻게 살아도 산다 애업고 삼각지 큰아버지도움 받으려 갔더니 시국이 너 나없이 힘들지만 너의어머니 숭고한 정신이어라 이북5도청 김희남집안 다 정검했다 참다보면 해뜰날있다 너의 아버지 내가 망쳤지만 너의 어머니 존경한다 그당시 권경순 국민학교앞 신문팔고 오빠2분 공무원시험본다고 애가 가장 이야기못하고 "재덕이"이유도 묻지않고 전세얻어주기에 이해 다가고 내년 년말까지 꼭 갚겠노라고 그래야지 아버지 혈액원취직 4000원월급 2000원씩나누어 혼합곡 조금씩매일 사먹었는데 보니 10키로정도 먹은것같에 연탄30장 부식은 김장철이라 시레기절여 물2지게드는항아리 다먹었다 아이는 배고프다고 울고 할머니가 큰엄마에게 과대 평가했겠지 그후 큰엄마의 자존심인지 거친행동 결혼3개월에 할아버지 중풍 할머니의 남편 존경사랑은 주변에서 표창은 받았지만 본받을만하고 그나마도 나에게 사랑을 베풀었지 화장실드나드는것말고는 버릴것이없다고 집안 대소사 전부 나에게 고하고 결정하셨다 나름3남매낳았지만 아들아닌 내게 결정권을 부여했지 할머니는 나에게 이집의 어머니들 대단하다고 일본아이들에게 쫓길때 할머니 맞서 우리식구 다없애려고 하는데 너희들 손빌리지않고 내가 하겠다 그추운흑한에 식구들 옷벗기며 대항했다고 늘 강조하셨다 노할머니 아들3형제 (희원 희남 막내)막내 당신아버지 옥중처형 몇몇일을 시신이라도 달라면 팔하나 이튼날 다리하나 이런식으로 한달만에 다 맞추어 매장시키고 그시간부터 사라졌다니 옳은 귀신은 못 됐겠지 큰아들 희원(5남매 아들3 재주 재원 재성 딸2)큰딸역시 독립군결혼 생사모르고 "재원"캬츄사였는데 전사통지 "재주"가 뒤수습은 하지않고 죽을팔자지요 사람구실 못하고 태만 의욕 책임감 NO NO "희남"옥중생활5년 선물주겠노라며 생식기를 인두로 지지고 나오니"김구"이틀을붙들고 울면서 독립자금에서 몇푼받아 어머니에게서 휴식을 취하고 오라고 그돈으로 철원 방한칸얻어 큰엄마가 밭일 하며 연명하며 할아버지 마을청년들 가르켯다고 희남 할아버지는 다시김구합세 희원 마누라는 민간약초 독립군배달다니다 잡혀 많은매를맞아 아퍼다고 큰엄마결혼때 아버지6살 고모10살 그날부터 아버지는 큰엄마몸종 할머니가 너의아버지 많이 끼고돌았지만 한계가있다보니 "기"를 못 펴고 살았다고 김원신할머니 재성이불상하다고 6,25가 터져 피난길에 오르니 먹지못해 야맹증이 와 앞을 못봐 누나를 붙들고 다녔는데 험준한 산을 넘어피난길 큰엄마 많지안은 농작물 한번지고 왔는데 다시 한번 더 가라고 그러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고 김평식할아버지 연금 우리막내5세되든해받고 그이듬해3월부터 희남아버지연금나왔는데 김평식할아버지 연금 조금 더 받아 할아버지 그간 고생
많았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니 평식할아버지 큰엄마(정치욱)주자고 날달래더라 연금을
주니 몇년을 며느리북치고 장구치고 그것도 복이라고 김영삼이 실명제가 실행되어 정치욱에게 부치지말고 석준 마누라 제통장으로 부치라고(연금차단 큰엄마 내조작이라고) 당당하게 아버지 두말없이차단 큰엄마가 한행동 석준마누라 삼각지가서 같은자손인데 자기네는
왜 혜택없느냐고 보훈청이 들썩 석준이 고등학교다닐때 작은엄마 고등학교 나왔다며 장손모른체 한다고 경순오빠2분 작은오빠 동국대 7급공무원 큰오빠고등학교나와 삼각지취업 큰오빠 아이둘앞세우고 가면 피하고 작은오빠한테 떼도 많이 쓰고 많은 보살핌을 받아 석준3년12번등록금 일년에 한번씩 1기분~3기분 등록금 혜택받았다 큰엄마 염천교 겨울에 무장사 하면서 춥다고 우리집 들어오면 혼자도 아닌 친구를 데리고 들어온다 뜨끈하게 수제비라도 대접하라고 춥고 허기질 시간이니 기본이2그릇 언무한번 얻어먹은적없고 삼각지 드나들어도 짜장이라도 대접하라고 차비라도하라고 일부러 그렇기도 힘들텐데 나의일기3 너의 고모 자기 엄마아퍼도 물한모금 떠 주지않고 동네 방네 휘집고 다니며 말썽은 언제나 독차지 한번은 자기엄마자리비운사이 김원신할머니가 묶어놓고 많이 때렸다고 자기엄마에게 이야기하니 맞아죽어도 될 인간이라고 매든김에 원풀이 하지 오히려 민망할정도 고모시집이라고 갔는데 의처증이심해 도망 재혼 고모부란사람 만난는데 그사람역시 애를못 나 이혼 고모와 결혼 지지고살면서 부부싸움이라도하면 체질적인지 물한모금안 먹고 누워 2ㅡ3주버텨 고모부가 빌고 아이 집안 치닥꺼리 다 한다고 곤조는 보통곤조아니라 난 분가 2달후 시누와서 무조건 퍽퍽울어 서울신촌 모래내 철도부지 무허가 집을 지었는데 팔아달라고 우리이집도 동창이 얻어준거라하니 친정은 다 괞찮다니 팔아주면 겨울지나면 은행이자는 나올거라고 이틀을 가지않고 버티겠다고 억지부려 할수없이 언니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덜겅 사버린거야 엄동설한인데 집주인이 고맙게 편리를보아주셔서 내가 모래내로 이사를 가고 겨울을 났는데 은행이자가 안나온거야 그때부터 우리 부부 언니한테는 잡아논 물고기가 된것이다 재성이가 자기누이살리려고 음모를 꾸며다는등 그시절에는 이사를 하려면 손구레로 밀고 당기고 이모 이사때마다 아버지끌고 난 밀고 형부라는 사람은 저녁에 이사한집으로 들어오고 시누는 집처분 신촌 강화버스터미널옆에서 정육점을 했는데 내려오라고해서 내려가면 삭을세 방이라도 얻을 능력안돼 나들 어떻하라고 시어머니 그래도 피붓이옆으로 이사하라고 큰집동네 염리동 꼭대기에서 살게되었다 맞동서 서울역 옆 염천교시장에서 여름풋고추 겨울무장사 큰아들을낳으니 애도 잘났네 내가 큰집이니까 애는 자기를달라고 내 아들이 외로워서그런단다 할머니에게 날 설득시키라고 앞에서 하드라 할머니 내가 애를못낮다고 내앞에서 해괴망측한행동을 하드냐고 난리를 시동생6살에 들어어 있는대로 자기 시중들었으니 재미로 대를잇기 위해 아들을 달라는가보다 말이아니니 탓하지말라고 나를다독거리시드라 시동생 형수11년차 엄마가없으니 온갖잡일 다시키고 피난 머슴 공돌이 몇푼있으면 다 뺒고 30이 되어도 불알만 있으면 장가 가냐고 동서인 나는 고등학교 나왔다면 집안 모든일 다 시키고 자기딸들은 학교문턱을 몰라도 은행일을 잘보고 처신을 잘해 신랑이 그렇게 사랑한다네
나의일기 너의아버지 큰엄마 시련 견디다못해 어떻게 부산작은아버지에게 연락을 하니 할머니 주저말고 빨리오라고 가 보니 할아버지 조석으로 딸랑두부장사 할머니 국제시장 떠돌이행상 보다싶이 사는게 이렇다 불편해도 먹고 자고 같이하자 그러나 신문을 돌리든 무엇을 하든 학교가라 2년 늣은 야간고등학교 가게되였다 부산가기전 신설동과자공장에서 기술없으니 물긷고 빕이나 얻어먹었단다 어쩌다 집에가면 심한말로 껍데기 벗기고 온단다 국제시장2ㅡ3일돌아다녀 왕사탕(과자공장 기본)물감색소 오렌지 만들어팔아 차츰나아지게 되였는데 기피자라 공군가고 싶었는데 못가고 육군포병 제대후 서울 염리동곡대기 살다 구로동 이주민이 되어 가게되었단다 딸 아버지100%인정없고 조용해 "핵 맹수보다 무섭지 "부모 자식간에도 접촉이 있어야 윤곽이 들어나겠지만 친구인 권경순오라버니 처조카 담당이라네 연락을 들었다 우리는김희남3대 석준이 김평식의4대 너는고등학교 나왔다면서 어떻게 집안을 돕지안느냐 석준이 고등학교학비면제 좀 시키라고 그때부터 애둘달고 보훈청드나들며 경순오빠를 많이 귀쟎게 했지 오빠2분 큰오빠9급정도 작은오빠 동국대학출신 나중 작은오빠 문교부로 발령 큰오빠정년퇴직 작은오빠덕으로 3년12학기중 3번혜택받았다 비공식으로 면제받았다 대학은 갔는지 못갔는지 중앙대학붙었는데 작은아버지가 신경쓰지않아 못 갔다고 떼를 쓰더라 할머니(김원신)계실때 집안대소사 당신알아서 할테니 신경쓰지말라고 할머니돌아가시고 제사때마다 김평식부부 김희원부부 김재주 명절2번 7번 갈때마다 20만원 제사음식재료(석순이에게서 가져왔다고) 모레네서 다시 염리동 꼭대기 이사 할머니 그래도 동기간 옆으로 가라고67년 석주 낳았다 애도 잘낳는구만 장사나간다고 밥한끼 안해주고 나가드라 나는 큰집이고 너는 젊었으니 이아이 나를 주고 너는 다시낳으라고 내아들이 외로워서 그런단다 할머니에게 나를설득시키라고 할머니 난리 난리치며 애못난 나에게 할말이냐 그 이듬해 성종이낳으니 산후조리시킨다고 1달은 쉬더라 모녀지간이라 있을수 있는일이지만 너무 야속하드라 염리동에서도 이곳 저곳3군데를옮겼다 나는팔자가좋아 신랑월급따박 따박받아먹으면서 맞동서 그렇게 고생하는데 살림이라도 돕지않는다고 큰집주인할머니 부식을 얻어먹을려니 큰엄마비위 맞추려 동서지간 이간질 낭설 나보고 일수놀이한다고 우리 할머니에게 인정이없다고 날 좋지않게 이야기 해 나잇살먹은 분이 동서지간 의가없으면 다독거려 화해를 시켜야지 어떻게 그럴수있냐고 그즈음 아버지 남미당(난 혈액원다니니 형보내겠다고 사장이 그럼 없던일로 형은 내가싫다고)으로 옮겨 월급10000절반씩나누었드니 이렇게는 안 하겠다고 4000원씩만달라고 할머니 우리 석주복이라고 그리고 순화동에서도 3-4군데 옮겼다 큰엄마 여름에는 안그랬는데 겨울춥다고 같이 장사하던 여자하고 꼭 같이 드나들어 수제비라도 뜨근하게 저녁마다 들르니 그것도 만만치않더라 팔던 무쪼가리한번 얻어 먹은일도 없고 어느달22키로짜리 밀가루4포먹었다 불광동(창임이 집나간 이유 내가 석기를 낳아 수발들라고 보냈드라 이틀있다 가겠다고 석주도 애기인데 야단치고 그래 숙모 (그게아니고 재호하고 싸웠는데 아버지가 각목으로 인정없이 때렸다고 보이는데 볼수가 없드라 엄마는 각목을 갔다주며 버릇고치라고)그때부터 딸찾는다고 굿도하고 재복 재화 학교가지않아 재복이 학교 데려다 주고 오면 재복이 먼저 와 있는거야 재화사귐도없고 늘 인상쓰며 아이들 접근을 하지않는다고 담임인 저도 요주의 인물이라 관찰대상이라고 결국 고만 두었지 고모용산용문시장 2층집으로 이사갔는데 또 내가 걸려든거야 정육점장사하고 난 뒤에 드럼통놓고 고기구워팔라고 할머니가 남편 월금모으고 5식구 밥이나 얻어먹어라 앞에서는 정육점 뒤에는 연탄화덕놓고 고기구이 3-4개월한것같다 장사는 아주잘되었는대 항상돈이 마이너스 신경안쓰고 시시덕거리 그꼴은 못보게다고 아버지두말않고 그길로 세검정으로 이사갔다 누나 화교 아버지남미당 이것도 불편하고 어려워 다시 순화동으로 이사가게 되었다 몇년을 잘살았다 그런데 남미당사장 돌아기시고 아버지가 밀려난것이지 생각다 못해 돈이없으니 그때그때 융통을 해달라고 사모님을 붙들고 이야기하니 벌통을 쑤신거야 네가 순화동 들어 올때부터 너는 감시대상었고 젊은부부라도 우리가 본받을만큼 근본이 있드라 늘 눈여겨보고 집주인 주변사람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장사시작 얼마돼지않아 재온 너희시누가 어수선할때 사장 뒤를 미행 집으로 쳐들어 와 돈달라고 우리아버지에게 교육 도움 받았으니 당연하다고 4일가지않고 가게도 못나가게 해결하라고 그수모는 말로못해 그래서 너를 감시대상이였다고 자신은 친정으로 9남매 셋짜라 내맘대로 할수없다고 재성이 장사수완없는 사람이라 아이들이나 잘키우라고 남미당사장 내머리에는 항상 선생님은혜 자손들에게라도 갚으려고하니 조금만 여유를달라 통하지않아 동기간들이 몇푼모아주었다고 그때 내가 위장병 걸리고 사장어르신 풍걸려 몇시간을 퍼 붓드라 산입 거미줄 안치니 애들이나 잘키우라고 할수없이 장사시작했지 몸으로 하기에는 너무나 맘 몸고생은 이루말표현이 되지않는다 그때부터 일출아파트에서 크고 작은일은 모두가 내차례 초저녁 자는둥 꼬꾸라져 잠깐 눈붙이고나면 밤11,30분이면 시장 전부문열고 퇴계로 충무로 지방에서 올라오는 쇼핑하려 관광버스 그때부터 이리 저리 심부름을하지 그러다 아침되면 너희들학교 보내고 밖에 행상을 나간다 그러면 졸아 계산착오 속상해 울면 너희아버지 누가하랬느냐 이집내력은 눈을 닦고봐도 보이지 않을정도 인정이란 없다
3나의일기 분가 후 할머나 성당을 나가드라 할머니 성격상 앞뒤분간없는 행동 그때는 입양이 (너 나없이) 구로본당 신부"방"씨라고 내남매 보내자고 언젠가 생부모 찾는다고 이렇게 조석이 그립고 힘든데 고집피우지말고 생각하라고 평범하게 자라지못해 힘들어도 어떻게든 내업보이니 설령 지아비가 승락을 해도 나는 못한다고 그리고난후 딸이 주접을 떨고 알기시자 병원형편은 안되고 약국마다 돌아 고쳐보려고 결국 "저동 백병원"을 가게됐지 만규백병원 유강남편 한남동 순천향병원 사무실에 있어 이런 저런 혜택을 받았다 결론은 간질병 아버지 "제기동"약제시장 돌아 집에서 "사약"을 집에서 많이하고 대성리 할아버지 "옆에 뱀잡는 땅쟁이 있어 "뱀 개구리 많이 먹었다 외할아버지 에미담으면 건강할텐데 애비닮아 그렇다고 그소리도 듣기싫더라 국민학교 졸업때까지 주접을 덜더라
"화교보낸이유"옆에 수정이 할머니있었는대(고향 평북 선천) 아들은낳았으나 할아버지하고
성적으로 맞지않아 이할머니가 여자를 얻어주었어 할아버지는 가정적이고 생활력 강해도 맞지않드라 수정할아버지 한약 장사 두집경제력을 감당하셨다 수정이아버지고등학교 다니면서 여자를건드려 수정이를 낳고 헤어지고 그런일반복 배다른아이 4남매 할머니 생각하다 화교유치원보내자고 집안이 이러니 아이들 제대로 가르치겠느냐 그래 석주하고 보내게되었다 이녀석 담임을 울리고 결국 너를 보내게된거야 너 아버지 그렇게 보필했어도 차도가 없드라 나의일기 고모는 재호장가가도 별 특이한 경제력 없고 고모에거 장사를하게 도와달라고 늘 싸우다 내가 도와 과일장사를 하게 됐지 내집이라 세가없으니 도매상에서 사다팔고 가을손위처남이 사과를 사주고 그렇게 장사를하고 내게돈빌려사과 푼돈을 몇번나누어 갚고 또 가을이오고 반복 그래자리잡혔는데 이놈 얼마나 욕심이많은지 내가 경제능력이 있어 돕는것도 아닌데 저도 도움받는것을 고맙게 생각않고 석준이 돕지않는다고 사람은 괜찮은데 재호 말이 많은사람이라 신빙성이 없어 자기는돕지않고 옆에서 충돌만 석준이 딸 결혼때 재호한테 백만원빌려서 결혼을 했는데 백만원갚으면 오십만원 축하금주겠노라고 그리고난후 아들 결혼때 얼마나 석준이한테 충동을 했는지 석주에게 백만원을 얻기위해 주야 전화 준것같더라 그후 나를 만나 경제도움받아 고마운것없고 처가가 그렇게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큰엄마의 충동 대소사에 전부 밑천은 석순이 가 했다고 아버지 그렇게 돕건만 오직 석순이 아니면 살지못한다고 나의일기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