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한북정맥을 하며 오두산통일전망대를 500미터 남겨두고 군인들의 제지로 서보질 못했습니다. 민통선 안에 있는 데에다가 코로나정국으로 폐쇄가 되어 돌아서야 했는데요. 엊그제 재개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비가 개인 맑은 날에 집을 나섰습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합정역 1번 출구로 나가니 파주 탄현 맥금동을 오가는 2200번 버스를 타는 승강장이 있습니다. 요금은 2,500원이던가? 시간은 47분 걸렸습니다. 경의중앙선을 타고 금촌역에서 내려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리하면 시간이 90분 정도 소요됩니다. 2200번 버스는 자유로를 타고가다 성동사거리에서 내려줍니다. 내려선 곳 반대편에 있는 맛고을입구 버스정류장이 2200번 서울로 나오는 버스정류장입니다. 성동사거리를 건너 버스종점까지 5분 정도 걸어야 합니다. 버스 종점에서 오두산통일전망대로 무료 셔틀버스가 오갑니다.
오두산성에 대하여,,,,, 광개토대왕릉비와 『삼국사기』백제본기에 나오는 관미성이 바로 오두산성이라는 주장이 있으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이곳을 관미성이라 기록해 더욱 주목 받고 있다. 기록에 보면 산성 명칭에 대하여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조두성(鳥頭城)으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오두산성(鷘頭山城)으로,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오조성(烏鳥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파주 오두산성 (坡州 烏頭山城)은 사적 제351호이다. 지정(등록)일은 1991.08.24.이고 소재지는 경기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산86번지 외이다. 관리주체는 파주시이다.
오두산성(烏頭山城)은 탄현면 서울에서 문산 방향으로 자유로(自由路)를 달리다 왼쪽으로 보이는 오두산의 정상부분과 산사면에 띠를 두르듯이(테뫼식) 축성된 석성(石城)이다. (파주시청) 오두산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드는 길목에 위치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는데 주변으로 높은 산이 없어 서쪽으로는 북한 지역이, 남쪽으로는 김포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파주시청) 이 산성은 임진강과 접해 있으나 임진강을 건너오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이라기보다는 서해안에서 한강을 따라 내륙으로 진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여겨진다. (경기문화포털)
산성은 현재 정상에 통일전망대(統一展望臺)가 들어서 있는 그 규모와 원형이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었고 한강과 인접해 있는 가파른 북쪽절벽위에 약 10여m의 성벽이 잔존하고 있다. (파주시청) 성벽의 전체 둘레는 대략 1.2㎞ 정도로 삼국 시대의 성 중에는 비교적 큰 규모에 속한다. 성벽은 대부분 무너져 내리고 토사에 덮여 성벽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는 곳은 6곳 정도이다. 성벽은 해발 80∼100m 선을 따라 가며 축조되어 전체적인 형태는 북쪽을 윗쪽으로 하여 ㄱ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경기문화포털) 성벽 쌓기 수법을 보면 밖으로는 위로 올라가면서 돌을 안으로 들여 쌓고, 성벽 내부는 돌로 채웠다. 이러한 성곽의 형태는 백제 성곽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문화재청)
산 정상부근에는 여기저기에 성벽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이는 석재들이 흩어져 있으며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계속 수축된 것으로 보인다. 오두산성은 한국전쟁 이후 거의 유실되고 파손되었으나 1990년 9월부터 1991년 11월 사이의 발굴조사 결과 일부 보존이 잘되 남아있는 구간에서 어느 정도의 규모가 확인되었다. 확인되어지는 유물은 삼국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토기(土器), 백자(白磁), 기와(器瓦), 철촉(鐵鏃) 등으로 발굴되어진 성과를 토대로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일부구간을 보존 · 정비하여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파주시청) 그러나 이 성을 백제의 관미성이나 고구려 성으로 추정하는 것은 지정학적인 가능성 외에는 관련 유물이 확인되지 않아 확증하기 어려우며, 앞으로 정밀조사가 이루어져야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문화포털)
백제의 북방전초기지였던 관미성은 고구려 광개토왕의 수군이 백제의 아신왕(阿辛王)을 치고 수도 위례성(慰醴城)을 함락시키기까지 고구려의 남하경로를 밝혀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파주시청) 고구려와 백제가 치열하게 전쟁을 벌일 때인 4세기 후반의 기록을 살펴보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이끄는 1만의 수군은 무려 7개 방면으로 20여일을 공략한 끝에 난공불락의 <관미성>을 함락시켰다. - 고구려 수군은 일곱 길로 나누어 공격을 퍼부은 끝에 20일 만에 성을 함락시켰다.
광개토대왕비에 따르면 광개토대왕은 AD 400년에도 신라에 침입한 왜군을 격퇴시키기 위해 5만의 군사를 보냈다. 이때는 육군이었다. 관미성, 즉 오두산성을 빼앗기 위해서는 육군이 아닌 수군을 보냈다. 바닷쪽 절벽을 포함해 성을 에워싸고 사방팔방에서 포위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관미성은 바로 이 오두산성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김정호의 대동지지 교하편에는 오두산성은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곳이며, 본래 백제의 관미성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臨津漢水交合處 本百濟關彌城)
장마로 물이 불은 청계천입니다. 청계천을 건너 왕십리역으로 걸어나갑니다
청계천에 팔뚝만한 잉어가 엄층스리 많습니다.
파주 탄현 성동사거리 맛고을 골목입니다. 뒤에 보이는 산이 신한북정맥 능선상의 99미터봉입니다. 저기서 내려오는데 상당히 가파르더군요.
성동사거리에서 능선을 타면 잠깐 500미터 진행 이후에 다시 내려와야 합니다. 숲속의궁전 모텔 뒤로 길이 이어지는데 모텔공사를 하면서 옹벽을 만들어 나무를 심어 두었기에 연이어서 길찾기가 어렵습니다. 다시 아래로 내려와 조금 진행하면 사진의 무인텔 오르막이 나옵니다. 여기로 올라야지 됩니다.
이 오르막을 오르지 않고 조금더 직진하면 도보로 오두산통일전망대 가는 산허리길이 나옵니다. 그리로 가면 능선을 타다 내려오는 정맥길과 만납니다. 자유로를 넘어가는 북쪽 인도교 다리가 나오고 다리 끝에 군검문소가 나오고 전망대로 걸어서 올라갑니다.
조금 더 진행하면 자유로 남쪽 다리를 통과하여 오두산통일전망대로 셔틀버스가 올라다니는 삼거리가 나옵니다. 여기는 차량만 통행되기 때문에 걸어가는 사람은 통행시키지 않습니다.
2200번 버스를 성동사거리에서 내려, 성동사거리를 건너 5분 정도 걸어가면 통일전망대를 오가는 셔틀버스 정류장이 나옵니다.
금촌과 대화를 오가는 버스의 종점이기도 합니다. 길 건너편에 도보로 다니는 진입로 입구가 보이고, 여기서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도 됩니다. 저는 올라갈 때는 걸어서, 내려올 때는 셔틀버스를 이용해봤습니다. 걸어서 가다보면 다리 건너기 직전, 능선에서 급내리막으로 내려오는 신한북정맥 띠지를 만납니다.
오두산통일전망대 입장료 3,000원 받습니다. 1층, 2층, 3층 그리고 스카이라운지입니다. 2,3층에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입장하기 전에 화장실이 있고, 건물 안쪽에도 층층마다 화장실이 있습니다.
여기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조강이 되어 강화도로 흘러가는 남쪽, 김포반도 하성면 지역입니다.
애기봉전망대와 한남정맥의 종착지 문수산을 좀 더 당겨보았습니다.산위에 하얀 건물이 애기봉전망대이고 그 뒤에 문수산에서 보구곶리로 내려서는 능선이 통째로 보입니다. 보구곶리로 내려서는 능선에서 더 뒤쪽은 강화도 고려산입니다.
북한쪽 군장산입니다. 바위산인데 망원경으로 당겨보면 금강산처럼 아주 잘 생겼습니다.망원경으로 애기봉전망대, 강화도전망대, 도라전망대가 다 보입니다.
이제,,, 임진강 아래로,,, 남쪽 파주시 탄현면 금촌읍 쪽입니다.
저 멀리 고령산과 팔일봉이 보이고요. 동화경모공원묘지 관리사무소도 보이고 파주LCD단지 건물도 보입니다. 사진상 맨좌측 산위에 있는 파란색 지붕 건물이 보현산에서 내려서는 신한북정맥 능선상 탄현산업단지입니다.
반대편쪽 남쪽으로 통일동산에 고려역사문화박물관이라고 하더군요. 외관은 오래전에 다 지어진듯 한데 무슨 이유때문인지 오픈 개장이 늦어지고 있네요.
여기저기 알아보니 고려조 왕과 고려시대 명문벌족들의 제사를 모신다는데 사유지라서 1년에 한번 문을 연답니다.
반대편으론 일산시가지와 서울 북한산이 보입니다. 여기서 개성 송악산까지는 26km, 서울까지는 50km입니다. 서울보다 개성이 더 가깝습니다.^^
1992년 노태우정권 때 건립한 오두산통일전망대 외관입니다. 그동안 광개토대왕이 정벌한 백제 관미성이 어디인지 수수께끼처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면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되어 있고 성 둘레를 바다가 둘러싸서 천연의 요새였다”(《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장소를 적시하지 않고 그 형상만으로 설명했기에 사학자들도 교동도라느니 예성강 하구라느니 오두산이라느니 추측만 난무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파주 교하편 오두산 지도 아래에 "오두산은 옛 백제의 관미성이다" 라고 적시한 글자가 근자에 발견되었습니다. 비로소 역사의 수수께끼가 풀린 것입니다. 아울러 삼국시대에도 관미성은 이미 바다에 연해 솟아있는 난공불락의 성이라고 말하였기에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합수점까지 서해바다로 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명명백백하게 신 한북정맥은 조선시대의 산경표를 뛰어넘어 바다와 만나는 합수점 오두산에서 끝을 맺고 있었습니다.
첫댓글 아우님 한강기맥 상원사주차장에서 새벽 2시쯤 오르려는데 중간에 검문합니까? 아우님 트랙 따라가려구요~
검문 없습니다.
다만 월정사 입구에서 택시기사가 머리를 바짝 수그리라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안그러면 통행세 5,000원을 내야 한다네요.^^ ㅋ
@퐁라라 지금 상원사주차장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무사통과라는 얘기겠죠?
@happy마당쇠 으악! 한밤중에요? ㅎㅎ~ 네 없습니다.
임도길을 따르다가 지름길로 올라갔습니다. 북대 미륵암 앞을 지나 두로령에 닿습니다.
두루령에 배낭 놓고 두로봉까지 다녀왔어요.
비로봉에서 호령봉까지 원시림이라 멧돼지를 조심해야 하고요. 호령봉 이후 위험한 절개지도 지나니 조심해야 합니다. 수고하십시요~^^
`
@퐁라라 진부령에서 시작하려다가 아우님 트랙이 두로령까지 제일 단거리라 구미가 당기데요 감사합니다 ^^
@happy마당쇠 저도 2시쯤 기도하러 간다고 자고있는 문지기를 깨웠더니 의아해 하면서 요렇게 빨리 기도하러 온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불만입니다 그 새벽에도 입장료는 꼬박 받습니다~~~~
오두산 전망대 북녘땅 잘보입니다 허리가 짤린 현실 권력이 무엇인지 참 씁쓸한 마음입니다 저도 오두산 가야 하는데 잘보았습니다 항상 안산 즐산하세요 화이팅입니다 ~~~~
넵! 세르파선배님 감사합니다.^^
관미산성과 더불어 의미있는 신한북정맥(한북오두정맥)의 합수점입니다.^^
풍라라님 수고많으셨네요
졸업 축하합니다.
이제 정맥은 다 끝난건가요? ㅎ
네 감사합니다.
정맥 끝냈고,,, 기맥도 영산, 땅끝 두개 남았습니다.^^
트랙 다운받아 운두령까지 잘 댕겨왔습니다 감사드리고요 신한북정맥 단어가 생소하여 무지 궁금한데 바빠 숙제로 남겨 둡니다 오두산전망대는 꼭 한번 가봐야 할것같네요 ^^
수고 많으셨습니다. 후기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