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극본 11

[툰이]

11 - 1

번호를 주고받은 그날 밤.

나는 침대 위에서 이불을 한 웅큼 끌어안으며 탄성을 질렀다. 점점 더 관심이 가던 그 남자가 먼저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대해 격한 감정의 흥분을 느낀 것이었다. 이불 안을 가득 감싸 돌던 그 따스함의 향기가, 내 눈으로부터 시작해 발끝까지 모조리 전달되었다.

그렇게 나는 어느 상상의 극본을 쓰기 시작한다. 눈을 감은 내 머리 속엔, 당신과 내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어느 모습이 그려진다. 더불어, 어느 영화 속 한 장면에 나오는 거와 같이,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그런 장면마저 추가되지. 저번에 그와 살짝 손길이 스치던 그 순간, 이제는 직접적으로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꼬옥 잡고 어디론가 같이 가는 뭐 그런 거.

난 설렘으로 가득 찬 얼굴과 사정없이 엉킨 머리를 쭉 쓸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저기 구석지에 홀로 앉아 있는 토끼인형을 집어 들며 허공으로 들어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중얼 거린다.

"나 왜 이렇게 떨리지..."

난 남자와 크리스마스의 악몽으로 만났다. 그리고 그와 지옥에서 섹스를 펼치며 천국에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남자를 피해야 하는 상대로 여겼고, 앞으로도 계속 피해 다닐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는 어느새 그에게 끌리며 자동적으로 302호의 앞에 서서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당신과 자고 싶다고, 그렇게 속삭인 것이지. 그런데 그래놓고도 다음 날의 나는 그의 앞에서 부끄럼 하는 아주 웃기지도 않은 여자가 되어 있었다,

뭐, 사실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긴 있었다. 성관계로 첫 단추를 잠근 이 관계 속에서 내가 정말 끝까지 그 단추를 잘 잠굴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렴 어떻겠는가.

친구들의 말대로 '남'의 연애이야기나 쓰면서, 정작 '내'연애를 하지 못했다. 그러니, 내 인생의 연애극본에, 그깟 두려움 즘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감수할 수 있는 문제였다. 고로 난, 정말 없어 보이는 멘트이지만. 그 두려움이 사라질 만큼 그 남자가 좋아질 듯 한 이상한 이 느낌을 즐기고 싶다.

지금 오르고 있는 어느 전율을 계속 품고 싶다. 아마, 지금의 난 꿈을 꾸고 있는 거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악몽 같은 어느 선물의 대한 꿈을. 꿈을? 꿈을.

.

.

"하, 너무 오바인가."

난 단순히 엄마의 식당일을 도와주러 가는 거 뿐인데도 불구, 얼굴엔 화장까지 하고 옷차림도 평소와 다르게 차려 입었다. 허벅지를 살짝 가리는 스커트와, 목선이 조금 드러나는 브이넥의 상의. 게다가 전신 거울을 보면서 뒤태까지 꼼꼼히 살피고 있으니 이건 아무리 봐도 과도하게 미친 여자였다.

게다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머리에 고데기까지 말았다니까.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두 손으로 머리를 살짝 쥐어뜯었다. 아니, 그러다가도 겨우 모양낸 머리가 망가질까봐 두 손을 살며시 떼었다.

나는 이런 꿈같은 나의 미친 짓을 잠시 체념하며 벽시계를 살폈다. 아마 내 생각에 그는 항상 이 시간대에 출근했던 거 같은데, 오늘은 어째 타이밍을 잘못 맞춘 느낌이다. 보통 이맘때 즈음이면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나야 하는데, 깜깜 무소식인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튀어나가려고, 치장까지 하고 대기 중인데. 핸드폰도 조용하고, 집밖도 조용하고 나도 상당히 조용해.

나는 괜히 심난한 마음에 두볼 가득 바람만 집어넣으며, 한쪽 발로 바닥을 몇 번 쳤다. 리듬에 따라 톡톡, 손가락도 아무 죄 없는 책상 위를 두드린다. 결국 하는 수 없이, 나는 느리게 움직이는 초침이 답답해 집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여전히 조용한 302호를 응시했다.

벌써 나가고 없는 건가? 이러다가 문짝과 눈싸움을 하게 생겼잖아.

"소란아?"

뒤숭숭한 마음에, 뒤숭숭한 눈빛을 띄운 내가 어느 부름에 뒤를 돌아섰다. 역시나 목소리를 듣던 순간부터 예감했던 대로 1층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나는 입술을 동그랗게 말다가, 이내 안녕하세요 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주머니만 보면 자동적으로 몸을 굽히게 되었다. 뭔가 조심해야할 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

"어디 나가나봐?"

"네, 뭐 이곳저곳이요~"

"아까 302호도 아침 일찍 나가던데."

"아, 그래요?"

"응. 아차, 내 정신 좀 봐."

뭐야, 왜 벌써 나간 거야. 별 것도 아닌 거가지고 나는 은근한 섭섭함이 느껴졌다. 물론 이것은 나 혼자만의 섭섭함이었다. 아침이라 할지라도 그 남자의 얼굴을 아주 조금이라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치 좀 담갔는데, 먹어보라고."

아, 매번 아주머니께서는 어떤 음식을 만드시면 이렇게 전해주신다. 괜히 감사하게 말이지. 나는 송구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며 김치 통을 받아들었다. 아무래도 알타리를 담그신 모양인지, 무게가 꽤나 묵직했다. 나는 벌써부터 저녁에 이 김치와 밥을 먹을 생각에 사로잡혀,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감사하다는 식으로 아주머니께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정말, 감사해요. 매번."

"아이그, 감사는 무슨. 이웃끼리 이 정도도 못하나?"

"저번에는 캔 커피 까지 주시고."

".........."

"센스 무지 좋으신 거 아니에요?"

내가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평상시 같았으면, 이런 내 너스레를 다른 방식의 넉살로 받아줬을 아주머니가 아무런 말도 없다. 내가 무슨 말 실수를 했나 싶어? 전에 했던 말들을 곱씹어 보았지만, 전혀 그럴 부분이 없었다.

"캔 커피?"

".........."

"그게 뭔 소리여."

어라? 분명히 정태해, 그 어른이 그때 나에게 캔 커피 하나를 전달해주면서 1층 아주머니가 전해주라고 막 그랬던 거 같은데. 가슴이 쿵쿵 뛰어오름과 동시에, 내 표정은 멍해져. 그와 달리 영문 모를 내 말에 의아함만 더해진 아주머니는 계속 그런 적 없다며 내게 말씀을 덧붙였다.

"나 그런 거 잘 안 먹잖아."

".........."

"젊은 애들이 먹는 걸 뭣하러 먹나."

맙소사. 보통 여자들은 이럴 때, 어떤 식으로 해석을 하지? 나 또한 보통 여자임에도 불구, 내 머릿속 감정 선들은 쉴 새 없이 꼬이고 꼬이기 시작한다. 마음이 복잡해짐과 동시에, 비례적으로 가슴 또한 크게 뛰었다.

"어휴. 밖에 눈 어지간히 많이 오네."

나는 아줌마의 말마 따라 시선을 옮겨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정말 밖은 눈이 금세 쌓일 만큼 많이도 오고 있었다. 게다가 짧게 옷을 차려입은 내가 민망할 정도로 말이지.

"괜찮겠어? 그렇게 입어도."

아주머니가 내 차림이 걱정되었는지 넌지시 묻고, 나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네, 뭐.. 하하."

이미 남자가 이곳에 없는 이상, 내 옷차림의 의미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저 퍼붓는 눈송이들로 인해 나타날 추위를 견디는 것이 중요할 뿐.

나는 다시금,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며 알수록 오리무중인 그의 행동을 곱씹어보았다. 아주, 꼭 꼭.

11 - 2

- 사랑해, 엄마.

- 뭐야?!

- 그래서 나는 언니의 남자친구가 쓰레기라는 말은 죽어도 못해.

야! 통화 건너에서 들려오는 언니의 비명소리를 마지막으로 난 먼저 전화를 끊었다.

아니 글쎄, 오늘 엄마의 잘 나가는 식당일을 도와주러 밖으로 나갔는데, 엄마와 언니가 다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왜 그러나 했더니, 그녀의 말로는 어제 언니와 주호 가 같이 있는 모습을 엄마가 직접 목격을 했다는 것, 그런데 하필이면 싸우는 장면을 목격하여, 엄마의 추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고로 엄마는 나를 붙잡고 언니에 대해 묻기 시작했고, 시종일관 식당일을 하느라 입을 다물고 있던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로써 살짝 귀띔을 해주었다. 엄마의 생각대로 김 주호는 쓰레기 같은 놈이 맞다고.

뭐, 나중에 언니가 내 집안으로 쳐들어와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언니가 그 남자와 헤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언니가 흘린 눈물만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아플 지경이니까.

눈이 많이 오는 만큼, 사람들은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는 듯 보였다. 평상시에는 비어있던 정류장이, 꽤 많은 사람들로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하면 어떻게 타야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서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쓰고 있던 우산을 접고, 후다닥 정류장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우산이 삐그덕거리며, 잘 안 닫혀서 중간에는 갑자기 펼쳐질 뻔한 순간도 있었지만, 겨우 잘 극복했다.

우산과 우산의 부딪힘으로 가득 찬 이곳에 존재하는 거라곤 불필요한 접촉과, 그로 인한 불편함뿐이었다.

그러나.

"어라..?"

내 눈이 반짝 빛나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이 서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처음에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저만치에 서있는 어느 남자를 응시했다. 그리고 흐릿한 그 실루엣을 또렷이 보기 위해 조금 더 가까이 접근했다. 머지않아 나는 선명해 오는 그 옆모습에 나는 곧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과장해서 이건 운명이야, 라고 까지 생각하며 말이지. 나는 겉에 걸친 코트를 잔뜩 여민 채, 손목에 찬 시계만 바라보는 그에게 걸어갔다.

바람에 섞여 사선의 방향으로 흐르는 눈송이에도 굴하지 않고 그렇게 다가갔다. 그렇게 딱 봐도 긴 그의 옆에 다소 작은 내가 서는 순간, 나의 얼굴은 새하얀 눈송이와 상반되게 기가 막힌 홍조를 띄었다.

그는 나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 하긴, 이런 저런 사람들로 분위기는 시끄러웠으니, 어느 한곳에 집중하기는 힘든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순간, 아까 아주머니가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해보며 그의 행동의 의미를 새삼스레 해석해보았다. 분명 나에게 관심이 있었으니까, 그 음료를 전달해준 거 일테고. 그럼 난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하지? 온전한 관심? 아니면, 35살 어른이 27살 어른에게 베풀 수 있는 일종의 매너?

즉, 가끔 나 자신도 이해 안 될 정도로 돌발적인 행동을 하곤 했던 나는, 또 그러기에 이르렀다.

.

.

"태해 오빠."

뚝뚝. 나의 발칙한 부름에. 옆으로 보이는 그의 긴 속눈썹이 옅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덧, 그의 오똑한 콧날이 나로 향하지.

살짝 인상을 찡그린 당신의 얼굴까지도.

".........."

".........."

그는 내가 옆에 있다는 사실보다도, 나의 부름에 놀란 듯 싶었다.

"..오빠?"

그의 예민 서린 말투에 나는 다시 '태해....'라며 말 끝을 흐렸고, 그는 짧은 웃음을 터트리더니 당신의 몸마저 내게로 온전히 틀었다.

"취한 건가?"

"아니오."

"안 취했다고?"

"보시다시피요."

남자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퇴근 하는 길인지, 그는 긴 가방을 매고 있었는데, 기다란 키에 그것은 매우 잘 어울렸다. 나는 괜시리 뿌듯해지는 마음을 느끼며 그의 옆에 물끄러미 섰다.

"어디 갔나오나봐?"

다행히도, 옆에 선 내가 민망하지 않게 그가 먼저 물어봐주었다. 나는 뭔가 추운 얼음판 위에 맨몸으로 올라간것마냥, 크나큰 전율을 느끼며 답했다.

"네."

"........."

"여기저기서 자꾸 저를 찾네요."

옷은 편한 걸로 갈아입었다 치지만, 화장은 여전히 한 상태라서 다행이었다. 더불어 나는 이 버스가 엄청나게 늦게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와의 대화 시간이 넓어진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글쎄."

"............"

"누가 찾기도 전에, 넌."

그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나름 따뜻하게라도 갖춰입으려, 가디건 하나 걸친 나의 옷차림을 흘끗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내 앞에서 얼어 죽을 거 같은데."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혹시라도 당신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이렇게 쭈욱 차려입은 거 아니야. 물론 아침 일찍 출근한 그로 인해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리고, 그런데 또 운명처럼 이렇게 당신을 만난 것이다. 어째, 내 하루는 이렇게 시끄러운 건지. 그것도 단 하나의 원인 때문에.

"그럼 어디 좋은데다 묻어주시던가요."

어제 번호를 물어볼 때에는 언제고, 전화도 안 주고 반응도 없는 그가 야속해 내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냥 죽지마."

"죽을 거 같다매요."

"귀찮아서라도, 죽게는 못 냅두겠어."

"나 어차피 추위 잘 안 타거든요."

사람들이 끝없이 밀려들어오고, 그와 나의 몸이 가깝게 부딪혔다. 덕분에 당신과 나의 손가락 살결이 살짝 닿고, 나는 직접적으로 닿는 육체적 관계보다 이것이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껴버렸다.

"추위를 잘 안탄다라.."

"그래요."

어어- 사람들의 품에 휩쓸려 내가 다른 데로 비틀거리는 사이, 그가 내 손목을 잡아서 자신의 옆에 바로 세웠다.

"그럼 그때."

"........."

"왜 내 앞에 나타난 건데?"

그리고 그가 나에게 얼굴을 마주보며 묻는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온몸에 전율이 확 돋아. 즉 모든 걸 들킨 거 같은 기분이 들어 머릿속에 소용돌이를 어찌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때 얘긴 꺼내지 말죠?"

나의 말에 그가 내 손목을 확 놓는다.

"그렇게는 못하지."

"왜요!"

나는 단단한 그의 팔을 휘어잡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누르고, 붉어진 얼굴을 차가운 손으로 스윽 문대며 괜히 왼쪽 방향을 주시했다. 초록빛깔이던 파랑빛깔이던, 어느 버스라도 눈앞에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네 대답이 궁금하니까."

차마 뒤를 돌아서지 못하겠다. 고백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정도 아닌 간접적인 말을 탁 던져놓으니, 정말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질 않기 때문이었다. 그의 부름에도, 나는 꼿꼿이 전방을 주시하다가 결국 뒤를 돌아봤다.

"자기가 엄청 거슬린 다는 거."

"............"

"알기는 아는 건지.."

그 중얼거림이 스치듯 내 귓속을 파고들자, 나의 입술은 꾹 다물어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가까이 붙어있는 탓에 서로간의 손끝이 살짝 닿을 때면, 놀란 나는 그 손을 잽싸게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어젯밤 여러 상상의 나락을 펼치던 내 모습과는 제법 상반되는 모양새다.

"이봐."

"............."

그의 말에 내가 눈치를 살피며 답했다.

"왜.,요."

"잠깐 옆으로 돌아봐."

아, 또 어떤 식으로 사람 마음 들었다 놨다 하려는 거야. 나는 못이기는 척, 그러나 입가에 히죽거리는 미소를 감출 수 없는 채로 옆을 돌아봤다.

그는 자신이 두른 목도리를 푸르더니, 나의 목에 두르고 둘러주었다. 그의 손이 직접적으로 목 부근에 닿으니, 가슴의 두근거림은 이미 형용 범위를 넘어섰다. 한번, 두번. 그 따뜻한 기운이 내 목 주위를 감쌀 때마다, 내 온 신경은 그깟 목도리가 아니라 그것을 건넨 당신에게로 향해있다.

그러나 목도리는 계속 두르고 둘러지더니, 내 입술마저도 둘러버렸다. 순식간에 입막음 당해버린 나는, 가뜩이나 큰 눈을 크게 뜨며 위에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입 좀 다물고 있으라고."

"..........."

뭔가 나를 놀리는 듯 한 그의 말에, 난 목도리를 입술 아래로 확 내리고, 그를 노려봤다.

"저 별로 안 시끄러운데요."

"그냥 너 때문에."

"............"

"내가 시끄러워."

"왜요."

"........."

"나..를 좋아하기라도 해..요?"

그냥 냅다 물어버렸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머리에서 전구가 떠오르는 대로 돌 직구를 던진다.

"..........."

그러나 그는 아무 반박도 하지 않는다. 난 역시나 당신에게 져 버리고 만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목도리를 내게 두른 채로, 그리고 눈이 펑펑 내리는 배경만을 보고 있었다. 이미 당신에게 엄청나게 끌리고 있는 나를 더욱 쥐락펴락 할 기세로.

.

.

뭔가 상황이 어색해졌다. 그런데 나만 어색해진 거 같다. 그는 아까 그런 반응을 보이고도 아주 말짱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뒤뚱거리고, 어색한 움직임을 보이고, 버스 한대가 도착할 때 즈음 사람들 사이를 제대로 뚫고 들어가지도 못했다.

대신 그가 내 손목을 이끌고, 대충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나를 자신의 옆에 세웠다. 게다가 계속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 못 이겨 내가 비틀거리자, 그가 나를 자신의 앞에 세웠다.

아, 바로 뒤에 있으니까 심장이 쫄깃해서 죽을 거 같다. 나는 들고 있던 우산을 꼭 쥐고, 그리고 내 옆으로 보이는 당신의 팔, 기둥을 잡고 있는 그의 손 또한 보았다. 핏줄이 살짝 솟아오른 그의 손을 보고 있자니, 그날 밤 내 온몸을 어루만지던 그 스킨십이 떠올렸다. 나는 나 자신에게 스스로 '변태'라 칭하며 앞에 있는 창문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걸 어째? 그 창문마저 날 가만히 두지 않아.

투명한 창문에 당신의 얼굴이 슬쩍 비춰졌기 때문이다. 그걸 보고 있던 나는, 결국 앞에 앉아 있는 어느 사람의 머리만 보기 이른다.

"숨 좀 쉬어."

그러나 긴장하느라 숨조차 제대로 쉬고 있지 못한 나를 눈치 챘는지, 그가 한마디를 건넸다. 나는 다소 놀라며 극구 부인했다.

"쉬고 있거든요."

"아까 네가 한 말 때문에 그래?"

"그 부분도 없잖아 있긴 하죠."

"지금 그쪽 기분이 어떤데."

끼익. 여전히 창밖으로 쏟아지는 눈. 버스가 정류장에서 정거하고, 이미 포화된 버스 내부로 사람들이 더욱 올라탔다.

"어떻길 바라는데요?"

"도망가길 바래."

예상외의 답변에 나는 가까운 그 거리 속에서, 당신의 품에 안겨있는 꼴이 되어버린 지금 이 상황에서 얼굴을 굳힌다. 빨개진 얼굴이 꽁꽁 얼기까지야 하니, 앞에 거울이 있었다면 상당히 볼만했을 것이다.

"도망가는 건 제 타입 아니거든요."

"그럼 잡혀주겠다는 건가?"

"잡으려 해야, 잡혀 주기도 하는 거죠."

말을 하는 도중에, 더욱더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왔고, 그의 몸이 내 몸에 가볍게 밀착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물론 낯을 가릴 거 없는 그와 내 사이에서 이러한 접촉은 큰 문제가 될 건 없었지만, 그래도 단단한 그의 몸이 내 등에 살짝 닿자,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이 뛰어댔다.

"미안."

"아, 아니에요."

나는 이상하게 그가 사과를 할 때면 더욱더 떨린다. 전혀 사과란 거 할 거 같지 않은 그가, 자상한 목소리로 그리 뱉어주면 기분이 묘하게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

"........."

우리 사이엔 잠시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덜컹거리는 바퀴 굴러가는 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누군가는 통화를 하고, 누군가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가까이 붙어 있는 그와 내 사이에서 아무 말도 없으니 나는 더욱 어색해지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술 마실래요?"

마지못해 내가 먼저 저리 물었다. 친구들이 흔히 말하는 썸 타는 기분이 이런 걸까? 나는 그와 내 사이를 오가는 알쏭달쏭한 기분에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내 뒤에 슬쩍 붙는 당신의 감촉만 해도 내입으로 하여금 저런 말이 튀어나오도록 만드는 것이다.

"어디서."

그때와 비슷한 장면이 연상된다.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던 나, 계단을 올라오고 있던 당신. 내가 먼저 술을 마시자 제안했고 그는 어디서냐 그리 물었었다. 그리고 나는 대답했었지.

"집에서요."

그의 향기가 쉴 새 없이 내 귀를 파고들고, 그 숨소리도 찬찬히 내 목덜미를 훑는 거 같은 느낌이 들어왔다.

"좋아, 근처에 있는 주점에서."

오호라, 선을 긋고 있는 게 정말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거 처럼 느껴지잖아. 나는 미묘한 웃음을 입에 머금은 채로, 뒤에 있는 그의 숨결과 모든 것을 모조리 느꼈다.

*

오늘은 내용이 좀 밋밋하네요. 근데 다음편부터는 전개가 빨라지면서, 둘사이에

아찔한 긴장감이 넘칠 예정이랍니다. 그리고 서브 남주와 여주도 등장을 하게 되면서, 아주 난리가 날거 같습니다.. 음, 오늘 내용은 좀 짧은데 12편부터는 길어지니까 이해해주세요 꾸벅.

그나저나 제가 이달의 작품에 후보에 오르다니..기대도 안 했는데 이거 너므너므 깜짝 놀랐네요 ㅠㅠ

엉엉. 감동의 눈물을 머금고, 심장 쫄깃할 수 있도록 훨씬 더 열심히 글 쓰겠습니다!

혹시 매일 들락날락 거리시는게 힘드시면, 업쪽을 드리겠습니다.

업쪽 원하시면 댓글 앞에다가 ★을 붙여주세요!

[지원이만사랑]

악최고에요

[영영이]

★쫄깃쫄깃한데요ㅋㅋ담편기대되용

[열므파탈]

이번편도 두근두근 거리는데요??ㅎ 다음편은 더 기대가 되네요~!

[아라]

요거 보고 있음 제가 다 긴장돼요. 누가 먼저 끈을 놓을 지 궁금해요.

[호피핫핫]

헐 캔커피에 그런 비밀이 ㅋㅋㅋ그나저나 윗님말씀대로 두사람다 성격이 장난아니라 제가 다 안절부절한다는...ㅋㅋㅋㅋ서브캐릭터들 등장하면 더 재밌어질거같아요!

[그래그래]

오빠라니 오빠라니ㅋㅋㅋㅋㅋ진짜 와ㅋㅋㅋㅋ대박이다 정말
나도 목도리줘 목도리 헝 ㅠ_ㅠ

[히윽히윽]

서브남주여주 너무 기대되는데요ㅋㅋㅋ

[녹녹]

한동안 카페 못 들어오고있었는데 작가님 새 소설 연재중이셨군여ㅠㅠ첫화부터 슈루룩 읽고왔음당 헤헤..넘넘 재밌어여 소란이 성격 너무 매력적이에요ㅋㅋ! 아직 직접적인(?) 러브러브한기운(??)이 없는데도 전 왜 이렇게 떨리고 두근거리는지 모르겠네여ㅋㅋㅠㅠ으앙 떨려ㅠㅠ 다음화 기다리고있을게용><

[헐랭헐랭]

헐헐 너무재미있어요 왜케 글을 잘쓰세요ㅎㅎㅎㅎ 작가님 글은 다 재미있는 거 같아요 ㅋ

[wnwnwb]

오홍홍홍 다음부터 아찔한 긴장이랑 두눈 번쩍뜨고 기다릴게요♥

[수가]

두근두근 쫄깃쫄깃한 긴장!!

[하늘곰]

내 인생의 연애극본.. 멋져보여요ㅎ 마음대로 써나갈 수는 없겠지만 그 만큼 멋진 극본이겠죠

[므니]

서브남녀라ㅋㅋ다음편도기대됩니다

[호떡천만개]

꺄~~두근두근 설레네요~~

[aube]

아 제가 썸타는거같아요ㅠㅠㅠ 설렘설렘 ㅜ

[하루하루하루하루]

재밋게잘보구갑니다~~

[나래]

악ㅋㅋ진짜 너무 설레요!!!

[힙합비둘기]

잘보구갑니다~~~
근데 태해가 너무 떠보는거 같아효ㅎ

[체루]

유후!!!!!!

[이므쏘]

아찔한거좋아요빨리오세여ㅎㅎ잘읽고갑니당

[허허]

너무 설레네용 ~~ㅋㅋㅋ 서브남주.여주 나올생각에 벌써 머리가 아파옵니다 ㅋㅋ

[heeisgood]

뭔가 여주가 한번 차인느낌인데... 보통 남자가 저렇게 나오면 다시 술먹자고 못할꺼 같아요 ㅠㅠ

[떤미떤미]

태해오빠...추워훀ㅋㅋㅋㅋㅋ

[수호천사]

남자의 마음은 뭘까요?
아직 알쏭달쏭항데요! ㅎㅎ
근데 보면서 진짜 마음이 막 설레네요

[ㅎㅖ연]

재밋서요!!!

[블랙은희]

잼있어여 잘보고있습니다ㅎ ^^

[팥콩콩]

재밋게 읽고 갑니다~ ^^

[쪼코쪼코앙]

드디어 드디어!!!! 두 사람의 마음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는군요!! 역시 술은 모든 사람과 친하게 만들어준다니깐ㅎㅎㅎㅎ

[다미니]

인소닷에서이달의작가후보축하드려요~~

[달려라하니]

태해마음이 너무 궁금하네요 ㅎㅎ

[히히]

기대되요빨리다음편보러가야되겠어요!!!

[지효엄마]

정말 계속 기대되요 점점 흥미진진

[비안]

서브 남주 여주의 등장도 기대되요

[Pisces]

뭔가 진전이 있는것 같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