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李潤基, 1947 ∼ )는 고대 종교와 신화의 세계에 빠져 있는 작가다. 그는 번역가로 제 이름을 세상에 먼저 알렸다. 30여개 출판사의 편집자가 뽑은 가장 믿을 만한 번역가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고, 그가 우리말로 옮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해방 이후의 번역서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를 받았다. 그는 토마스 벌핀치의 『그리스와 로마신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조셉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세계의 영웅신화』, 『신화의 힘』 등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신화의 매력에 빠져든다. 그의 소설에 신화적 요소가 들어 있다면 그것은 이때의 경험이 의식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든 결과일 것이다.
그동안 창작보다 번역에 전념했던 이윤기는 이 『하늘의 문』(1994)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소설쓰기에 들어간다. 그의 소설들은 고대 신화와 종교에 대한 박물적 지식, 잘 숙성된 우리말로 빚은 문체, 고전적 서사구조 들을 특징으로 한다. 지금까지 창작집 『하얀 헬리콥터』(1988), 『나비 넥타이』(1998), 장편소설 『만남』(1996), 『햇빛과 달빛』(1996), 『뿌리와 날개』(1998) 『나무가 기도하는 집』(2000)등을 잇달아 펴내고, 1998년에 「숨은 그림찾기 1 ― 직선과 곡선」으로 제29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다.
이윤기 소설의 큰 골격은 애비없이 유복자遺腹子로 태어난 자의 자기정체성 찾기에 있다. 애비의 운명과 차단된 채 세상에 버려진 유복자들의 앞에는 "변형變形, 변성變成, 변역變易"의 운명이 가로놓여 있다. '운명'이란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예측 불가능한 삶의 행로다. 더러는 그것을 수락하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더러는 그것을 거역하고 자기의지를 끝내 관철시키려 한다. 이윤기는 "운명과의 옥쇄를 선택하는 기이한 형질"을 가진 사람들에 애정과 관심을 쏟는다. 이윤기의 소설들은 그 '운명'이라는 대양에 내던져진 인간들이 어떻게 운명과 싸우고 타협하며 삶을 만들어가는가를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이윤기의 소설들은 "통념이 내리는 부적절한 선고엔 대한, 길 너머를 그리워해 본 자의 항소이유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윤기는 매우 능란한 이야기꾼이다. 이윤기는 '소설'이라는 그릇 속에 세상에 널려 있는 사람들의 피치 못할 곡절과 애옥스런 형편에서 빚어지는 이야기들을 퍼담는다. 소설은 다름아닌 삶의 서사를 담는 양식인 것이다. 그는 "한국어가 소설 언어로서 누릴 수 있는 최상급의 행복어 사전"(한기)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소설가 중에서도 드물게 우리말을 솜씨 있게 다루는 작가다. 그는 독자에게 하나의 몫을 남겨놓는데, 그것은 그의 곡진한 문체가 실어나르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속에서 "숨은 그림"을 찾아내는 일이다. '숨은 그림 찾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마다 제 속에 씨앗처럼 내장하고 있는 운명, 혹은 '삶의 그렇게 됨'의 비밀 인자들 찾아내기다.
이윤기의 세 번째 창작집 『두물머리』는 그가 서사를 능란하게 휘어잡는 솜씨를 지닌 작가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한다. 작가는 서사의 힘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진홍글씨」·「세 동무」·「두물머리」·「울도 담도 없는 집」 등과 같은 작품에서 사람살이에서 인간다운 품위를 지키게 해주는 어떤 지혜들에 말한다. 급속한 사회변동의 혼란과 요동을 겪은 우리 사회에서 느슨해지는 도덕적 해이의 세태는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도 없지 않다.
강의 아름다운 지문(指紋)이 드러나는 자리에 러브 호텔이 군데군데 박혀 있는 것은 더 재미 없었다.
"러브 호텔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바깥 경치는 한눈 팔 겨를이 있을까요 ? 그 사람들 좋아하는 경치는 객실 바깥에 있지 않을 겁니다"
"배꼽 밑에 있을 테지......"
나는 이렇게 대답해 놓고서야, 아뿔싸, 했다. 운전하는 해일이 옆에 그의 아내가 앉아 있다는 걸 깜빡 잊고 있었던 셈이다. 큰 강을 옆에 끼고 서 있는 산세에 정신을 빼앗겨 그랬을 것이다. 그 아름다운 산자락 물머리에 러브 호텔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심정 사나워서 부지불식 간에 말이 거칠어졌을 것이다.
「두물머리」, 『두물머리』(민음사, 2000)
이를테면 두 작중인물의 대화 속에 나오는 빼어난 경치를 배경으로 점점이 박혀 있는 강변의 '러브 호텔'들은 우리 사회의 저변에 확산되어가는 도덕적 해이의 한 표지일 것이다. 「두물머리」의 작중인물인 '나'는 그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심정 사나워서" 거친 말을 내뱉는다. 이렇듯 작가는 표나지 않게 세태의 이모저모를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그 속에서 시속에 물들지 않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예전'의 인간적 위엄의 빛을 뿜어내는 사람들을 즐겨 찾아내고 그려낸다. 그들은 대체로 노년에 이른 사람들인데, 작가에 의하면 그들은 "바보 같은 현자"들이다. 「두물머리」의 원국 어른, 「숨은 그림찾기 3」의 일모 선생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들은 오랜 삶의 경륜 속에 대대로 내려온 규범적 도덕을 내면화하여 그걸 삶의 '지혜'로 길어 올리는 사람들이다.
오늘의 들뜨고 호들갑스럽고 허접한 인간들이 방자하기 짝이 없는 세태 속에서 그것은 지나치게 무겁고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도덕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는 사람살이에서도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와 약속들이 있다. 이를테면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그것을 조절하고 지탱하며 사회적 생존의 복합 구조 안에서 쉼 없이 작동하는 예절·도덕·규범들이 그것들이다. 이윤기의 소설에서 "바보 같은 현자"들이 내면화하고 있는 도덕적 위엄은 그들이 태생적으로 근친화하고 있는 '경상도 양반문화'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그렇다고 작가를 영남 패권주의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이윤기가 그려내는 "바보 같은 현자"들이 난제들로 얼크러진 현대사회에서 구현하는 삶의 직관과 지혜들의 연원은 '경상도 양반문화'보다 훨씬 더 깊은 곳, 원시 채집 경제시대에서 오늘에 이르는 삶의 총체적 기억과 경험이다.
내 세대 자매들과 다음 세대 딸들에게 써서 남긴다. 쓰고 나니 조금 후련하다. 슬픔이 가라앉은 모양이다.
사랑하라. 이것은 딸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싸워라. 이것은 딸들이 지켜야 하는 원칙이다.
특권을 원칙에 앞세워서는 안 된다.
그러면 둘 다 잃는다.
「진홍글씨」, 『두물머리』(민음사, 2000)
이윤기 소설들에서 고아나 유복자들이 세상에서 갖은 수난을 겪은 끝에 정신적 성숙을 이루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신화 구조와 매우 흡사한 남성 영웅의 서사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늘의 문』의 이유복이나 『햇빛과 달빛』의 고웅진, 『만남』의 하한욱 같은 인물들이 그 예들이다. 그런 이윤기 소설의 계통 속에서 「진홍글씨」는 매우 예외적인 소설이다. 가부장제의 유습과 전통이 굳어 있는 사회에서 '여성'이란 종, 혹은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진홍글씨」의 여성 화자는 "내 아버지는 가부장제의 종이었다. 내 어머니는 그 아버지의 종이었다. 어머니는 당신이 그렇게 살았듯이 나에게도 지아비의 종이 되어 살 것을 바랐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남성 중심의 시각에서 보면 여성은 "다른 것들(이며, 다른 것들은) 다 헛것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부장제 사회의 주변부일 수밖에 없는 "다른 것들"의 삶 속에 내장된 운명이다. '딸'인 주제에 그 운명을 거부할 때 "변형, 변성, 변역"의 서사가 발생한다. 이윤기의 소설은 "변형, 변성, 변역"의 서사가 발생하는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현모양처는, 남성의 집단 무의식이 현상(懸賞)한 허울뿐인 호칭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 여성 화자는 이미 그것의 부당함을 깨닫고 온몸으로 그것을 부정한다. 그래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흔히 주변부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여성 화자의 목소리는 오히려 남성 화자의 목소리를 주변부적인 것으로 밀쳐내며 당당하게 「진홍글씨」의 서사 공간에 메아리친다.
그녀는 매우 단호하고 압도적인 목소리로 "나는 내 딸에게는 지아비의 종이 되라고 하지 않겠다. 나는 세상의 남성에게 말할 수 있다. 세상의 남성은, 딸에게 바라지 않는 것은 아내에게서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 남성은, 딸이 처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 상황에는 아내도 처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공정하다."고 말한다. 그녀의 남편은 남성우월주의자의 습성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이성적인 사유 습관에 따라 행동할 때는 남녀동권으로 가파른 기울기"를 보이는 남자다. 한데 그 남자가 때늦은 유학생활 도중에 수컷 우월주의 관성慣性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제 아내를 제쳐두고 딴 여자를 본 것이다. 결국 남성 우월주의에 바탕을 둔 가부장제의 악습을 재생산하는 그 남편의 머리를 벼루로 내려쳐 단죄하는 「진홍글씨」의 여성 화자는 상징적으로 '마스텍터미'를 하고 아마존의 여전사로 거듭난다. 그녀는 "내 이마에 핏빛 진홍글씨로 자자(刺字)하라."고 외친다.
「진홍글씨」는 매우 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서사 구조를 통해 "이성적 사유 습관에 따라 행동할 때"만 남녀 동권의식을 실천하는 잠성이 어떻게 수컷 우월주의의 관성에 굴복하는가를 보여준다. 잘못된 운명에 굴종하며 얻는 비굴한 평화보다는 잘못된 운명의 세습을 거부하고 단호하게 끊어버리는 일탈의 길에서 운명과의 불화를 피하지 않는 여성 화자의 당당한 목소리는 그 서사 전체를 주관하고 지배한다. 「진홍글씨」는 동적 서사 구조, 그리고 인물들의 성격과 행위들이 빚어내는 사실의 풍부한 양감과 사람의 모듬살이의 본질을 관통하는 작가의 통찰력이 어우러져 1990년대 소설의 지배적 흐름이었던 사인성(私人性)을 추구하는 내면탐구의 소설들을 압도하는, 남성 작가의 매우 생동감 있는 문체로 씌어진 의미심장한 페미니즘 소설로 기억될 것이다. 그것은 비슷한 연배의 작가 이문열의 『선택』과 여러 모로 매우 대조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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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