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5:4~7
24년 살롬데이 설교(전도주일)
(엄정화씨 간증 동영상을 보여 준 뒤)
네, 엄정화라는 연예인의 간증을 잘 들으셨는지요? ‘저분은 미모나 인기 면에서 남부러울 게 없는 분이라 저런 분이 예수님을 믿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가져보긴 합니다. 통계적으로 남 부러울 게 없는 분들이 대부분 절박함이 없다 보니 신앙을 가지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내가 안 믿고 내가 하나님께 안 가는 것이지 하나님이 없는 것이 아니거든요. 바쁘다 보면 부모님을 찾아뵙기가 쉽지 않은 것이지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한계에 부딪히고, 자기 힘으로는 되지 않는 일에 부딪히다 보면 하나님을 찾을 때가 오거든요. 아니 오늘같이 살롬데이를 통해서도 하나님이 직접 찾기도 하십니다.
엄정화씨처럼 마음이 허전하던지, 아니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찾게 하든지 하는 일들 역시 종종 생기기도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함께 읽은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네요.
한 목자에게 양이 백 마리가 있었습니다.
물론 목자는 하나님을 의미하고요. 양은 저와 여러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양들이 잘 있다가 한 마리의 양이 세상이 궁금했는지, 아니면 다른 꼴을 더 먹고 싶었는지, 양들 무리 속에서 이탈하여 울(우리)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목자 편에서 보면 괘씸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어련히 알아서 꼴을 주고 물을 줄 텐데 그 위험한 우리 밖으로 나가다니!’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99마리를 챙기고 돌보기도 바쁘니 너 같은 말 안 듣고 속 썩이는 양은 나가서 고생 좀 해 보라.’고 놔둘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목자는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자기가 찾아 나서게 됩니다.
언제까지 찾아다니냐면 찾기까지 다니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양이 광야로 나가면 강도나 도둑에게 낚아채는 게 다반사입니다. 더군다나 광야는 이리와 승냥이 같은 짐승들이 얼씨구나! 하고 기다리다 잡아먹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낭떠러지로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지거나 다치기도 할 수 있습니다.
오만가지 생각이 이 목자를 괴롭힙니다. 그럴수록 목자는 양의 이름을 부르며 구석구석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왜 굳이 이렇게 한 마리로 인하여 그 고생을 하게 될까요?” “자기에게는 99마리의 양이 있는데 그 양들을 돌보고 새끼를 치면 될 텐데 왜 그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것일까요?”
목자가 그 양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자기 없이는 절대로 광야에서 하루라도 편하게 지낼 수 없다는 것을 목자는 알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물론 광야에서 위험하지만 살아남기만 한다면 그 양도 나름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목자 처지에서는 그게 아니거든요. 내 양이거니와 내 양이 하루라도 고생 덜하기를 바라는 것이죠. 나아가 안전하게 있다가 내 울안에 들어와서 하루를 보내더라도 마음 편하고, 마음 놓고 풀을 뜯기를 바라는 것이죠. 그게 목자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아마 양은 그 목자의 마음을 다 모를 것입니다.
오직 이 마음은 목자만이 아는 마음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세상을 너 혼자 살아가면 얼마나 힘들고 지치고, 외롭냐!
내가 너의 울타리가 되어 주고, 인생길을 안전하게 인도해 주고 싶구나! 하시는 거든요. 그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요14:6절에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저는 말씀을 마치면서도 여러분에게 마11:28절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여기서 쉬게 해 주시겠다는 말은 그 짐을 덜어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때로는 그 분이 대신 져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무거운 짐을 나눠 져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엎어서 데려가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한 시인이 이러한 심정을 다음과 같은 시를 써서 표현했습니다.
한 남자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예수님과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의 지나간 삶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해변의 모래밭에는 두 개의 발자국이 나 있었다.
예수님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의 것이었다.
어디선가부터 하나의 발자국만 남아 있었다.
삶에서 가장 힘들고 곤경에 처해 있을 때
하나의 발자국만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하나의 발자국이 그를 실망시켰다.
그는 항의조로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저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했으면서 정작 제가 당신을 가장 필요로 할 때는
떠났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주님이 그에게 응답하셨다.
해변에 나 있는 발자국은 네 발자국이 아니라 내 발자국이다
네가 어려움에 처하고 힘들어 할 때
너를 업고 걸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은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쉬게 해주겠다. 이제 우리는 마음만 열면 됩니다. 그리고 저를 따라서 고백만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마음을 열고 고백할 때 내 안에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사랑하는 예수님!
저는 오늘 나를 구원하러 보내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기를 원합니다.
내 안에 오셔서 나의 구주가 되어 주시고, 내 인생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이후로 나의 무겁고 힘든 인생의 짐을 맡겨드립니다. 자유와 평안과 행복으로 이끌어주시고, 천국 갈 때까지 제 손을 꼭 붙잡아 주시옵소서.
어떤 어려움이 와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 붙들고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동전 예화
동전을 구원이라 가정하고 상대방 손에 쥐여준다. 그리고 내 손을 하나님의 손이라 가정하고 맞잡는다. 상대방 손을 빼 보라고 한다. 그때 내가 손을 맞잡고 있으니 뺄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하나님이 당신에게 구원을 주신 이후에는 우리가 잠시 세상으로 나가고 하나님을 떠난 것 같아도 하나님은 이렇게 절대로 나를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해 드린다.
첫댓글 귀한 말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소홀히 여기는 그리스도인이 되지않기를 지금도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속히 뵙도록 합시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