醉吟(취음)-白大鵬(백대붕)
白大鵬(?~1592, 선조 25).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만리(萬里). 조선 중기의 위항시인. 위항인들의 시 모임인 '풍월향도'(風月香徒)를 주도했다. 그의 시는 〈취음 醉吟〉·〈추일 秋日〉 2편만이 남아 있다. 허균의 기록에 의하면 천인(賤人)으로 태어났으나 궁중의 열쇠를 보관하는 정6품 사약(司鑰)의 지위에 올랐다고 한다. 그의 시에서는 지은이가 군함과 수운을 맡고 있는 전함사(典艦司)의 노비라는 구절이 나오나 확인할 수는 없다. 언제 태어났는지 알 수 없으나 〈이향견문록 里鄕見聞錄〉에 유희경·정치와 함께 노닐었다는 구절이 있고 허균이 지은 시평서(詩評書) 〈학산초담鶴山樵談〉에 허봉·심희수 등과 터놓고 사귀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550년 전후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만당(晩唐)의 풍을 본뜬 유약한 시를 썼다고 하며, 백대붕의 시풍이 유행하여 '사약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허균의 기록에서 1590년(선조 23)에 자신의 중형(仲兄) 許筬(1548~1612)이 종사관으로 일본에 갈 때 그의 재주를 아껴 데리고 갔으며, 이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도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1538~1601)이 왜적의 실정에 밝다고 하여 그를 불러서 수행하게 하였다. 백대붕은 북상하는 왜적을 맞아 상주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으나 신분이 낮았기 때문에 사적이 알려지지 않았다. 성해응(成海應)은 초사담헌(草榭談獻)에서 “백대붕의 절개는 세 명의 종사관과 비교할 때 그 경중을 가릴 수가 없었는데, 세 명의 종사관만 제단을 만들어 제향하고 있다.…… 이런 부류의 인물들이 인멸된 것을 또 어찌 한스럽게 여기겠는가.”라고 하였다. 세 명의 종사관은 임진왜란 당시 순변사 이일의 종사관으로 상주 전투에서 전사한 윤섬(尹暹)과 박호(朴箎), 이경류(李慶流)를 가리킨다. 이들은 1794년(정조 18) 상주의 충의단(忠義壇)에 제향되었다.
醉吟(취음)-白大鵬(백대붕)
醉挿茱萸獨自娛 (취삽수유독자오)
술 취해 수유꽃 꽂고 홀로 즐기다가,
滿船明月枕空壺 (만선명월침공호)
배에 가득한 명월 속에 빈 술병 베개 삼았네.
旁人莫問何爲者 (방인막문하위자)
옆 사람아 내가 무엇 하는 자인지 묻지 마소,
白首風塵典艦奴 (백수풍진전함노)
백발로 세상 풍진 겪은 전함사(典艦司) 노비라오.
秋日(추일)-白大鵬(백대붕)
秋天生薄陰 (추천생박음)
가을 하늘에 엷은 그늘이 끼면서
華嶽影沈沈 (화악영침침)
화악산 그림자도 흐릿해져 보이도다.
叢菊他鄕淚(총국타향루)
한 떨기 국화꽃은 타향살이 내 눈물이요,
孤燈此夜心 (고등차야심)
외로운 저 등불은 오늘 밤 내 마음일세.
流螢隱亂草 (유형은난초)
날아다니던 반딧불은 잡초 속에 숨고,
疎雨落長林 (소우낙장림)
성긴 빗방울이 긴 숲에 떨어지네.
懷侶不能寐 (회려불능매)
벗 그리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
隔窓啼怪禽 (격창제괴금)
창 밖에는 괴이쩍은 산새가 우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