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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자연, 시인, 그리고 테니슨. 두 문화와 소통
2008/08/06
- 문학비평가와 과학지식인의 ‘시와 과학’ 담론을 중심으로 -
오철우 2006년 12월 작성
19세기 영국 계관시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 1809-1892)은 종종 “과학의 시인”으로 불렸다. 이런 호칭은 영국 철학자 헨리 시지위크(Henry Sidgwick)가 1860년에 테니슨을 낭만주의 계관시인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와 비교해 “탁월한 과학의 시인(pre-eminent Poet of Science)”이라고 부른 이후에 테니슨을 부르는 표현의 하나로 인용되었다.
시지위크는 워즈워스의 자연이 단순한 관찰에 의해 지각되며 종교적, 공감적 직관에 의해 해석되는 자연인 데 비해 테니슨의 자연은 물리적 세계이며 그것은 “물리 과학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라고 말했다. 과학적 관점이 테니슨의 시적 세계를 지배한다고 그는 보았다.
워즈워스와 테니슨의 비교에서 나타나는 시인의 두 모습은 사실 19세기 빅토리아시대의 시 비평에서 자주 등장했던 담론 주제의 한 면을 보여준다. 테니슨은 워즈워스로 대표되는 낭만주의 시인의 태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언어로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이었다. ‘절대적 실재(the Absolute Reality)’에 도달하려는 관념적 욕망, 우주와 인간 존재의 신비를 포옹하려는 시인의 신비적 체험과 내적 경험을 중시한 낭만주의와 다르게, 테니슨은 외부 세계의 관찰자로서 자연을 묘사하고 노래했다. 자연의 묘사에서, 낭만주의 시인이 자연과 혼연일체를 이루는 감정의 분출을 보였다면 테니슨은 초월적 태도보다는 당대 과학지식의 시적 활용과 정확한 시어의 조탁을 중시했다.
로버트 브라우닝과 더불어 빅토리아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인 테니슨의 등장은 빅토리아시대에 이르러 시와 시인의 모습이 변모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에 시공간의 관념을 바꾼 천문학과 지질학을 비롯한 과학의 발전, 그리고 산업화와 도시화의 진전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 그리고 인간의 자연 내 지위에 대한 인식에 큰 변화를 일으켰고, 그 변화는 시학에도 영향을 끼쳤다. 과학의 가치가 떠오르고 낭만주의는 퇴조하며 시의 은유적 상상력이 공격을 받았고 과학과 소설의 산문이 시의 운문을 압박하는 분위기에서 시는 무엇인가, 시인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문학비평에서 주요한 주제가 되었다. 이와 관련해, 포시스는 테니슨의 시를 과학과 산업화의 시대에, 즉 시적 상상력이 도전받았던 시대에 상상력의 곤경에 처한 시인이 선택했던 낭만주의와 다른 길이었다고 지적했다.
테니슨 사후인 1910년에 영국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의 창간 편집인이자 천문학자인 노먼 로키어(Norman Lockyer, 1836-1920)는 테니슨의 시를 천문학, 지질학, 생물학의 17가지 주제들에 따라 분류해 편집하고 짧은 설명을 곁들인 해설서『테니슨, 자연을 배우며 노래하는 시인』(Tennyson as a Student and Poet of Nature)이라는 책을 펴냈다. 책 서문에서 그는 테니슨이 단테나 밀턴처럼 당대의 과학 지식에 뒤쳐지지 않았던 시인이며 정확한 과학의 언어를 구사하려고 노력했던 시인이라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테니슨 시는 “얽혀 있는 자연과 인간본성의 진리(the truths of Nature and Human Nature intertwined)을 보여주는 완벽한 시”였다. 테니슨은 과학과 시라는 ‘두 문화’를 적절히 융합한 시인의 모범으로 그려졌다.
테니슨의 작품에서 과학과 시는 어떻게 만났을까? 이 글은 이런 물음을 출발점으로 삼아 자연과 시인, 과학과 상상력에 관한 19세기 시학 담론이 어떤 변화의 모습을 띠었는지, 테니슨에 대한 평가에 다양한 시학 담론의 시각차들이 어떻게 반영됐는지, 그리고 테니슨에 대한 과학지식인의 시선이 이런 시학 담론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로키어의 테니슨 해설서와 함께, 점프와 브리스토가 각각 펴낸 책들에 실린 19세기 시인과 비평가들의 여러 글들을 주로 비교해 분석했다. 시의 정체성과 시인의 역할에 관한 논의, 특히 과학과 자연을 바라보는 시학의 시선, 그리고 시적 상상력과 정확한 묘사의 관계, 내적 경험과 외부 세계의 묘사 따위가 이 글의 주된 관심사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19세기 문학비평에서 과학과 자연은 자주 언급되는 주요한 담론의 주제였다는 점,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미술의 색채와 공간-시간 관념에 진화론,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이 큰 영향을 끼쳤듯이 빅토리아시대 시학의 변화에도 과학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볼 수 있다. 또한 로키어가 기대했던 과학과 시라는 두 문화의 만남이 타자의 시선에 대한 상호이해 없이는 공허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테니슨과 과학: 로키어의 해설
로키어는 테니슨을 과학과 시라는 두 문화의 만남을 이상적으로 이룬 시인으로 바라보았다. 실제로 테니슨은 당대의 여러 지식인들이 그러했듯이 생전에 두 문화의 경계를 쉽게 넘나들던 인물이었다. 그는 천문학과 지질학을 비롯한 당대 과학지식에 큰 관심을 기울였으며 여러 과학자들과 교류했다. 과학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 덕분에 그는 1865년 영국 왕립학회 펠로(Royal Society Fellow)가 되었다. 메도즈에 따르면, 그의 회원 증서에는 “저명한 시인이자 지식인. 과학에 대한 애착을 지니고 과학의 발전을 도모함”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테니슨은 자신의 시에 표현된 과학 내용에 오류가 없는지 여러 과학자들한테 묻곤 했는데, 로키어도 역시 그의 시와 관련해 자문을 해주곤 했다. 『테니슨, 자연을 배우며 노래하는 시인』의 서문에서 로키어는 1864년에 처음 테니슨을 알게 된 이후에 그가 숨지기 직전까지 간혹 만나 천문학을 비롯해 과학의 공통 관심사를 이야기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테니슨이 “당시에 이뤄진 [과학의] 발견들에 관한 지식으로 충만했으며” “그에게는 자연세계의 어느 것도 하찮은 게 아니며 소홀히 다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처럼 당대 흐름에 뒤쳐지지 않으려 애쓰며 관심을 기울였던 모습은 당시 문학비평가들도 인정하는 테니슨의 장점이었다.
테니슨은 과학의 시인으로서 탁월했다. “지금껏 존재했던 모든 시인을 능가하여, 사물의 원인과 자연 법칙들의 작동에 대한 끊임없이 관심과 표현의 천부적 재능을 결합시킨” 시인이었다. 그러므로 로키어가 테니슨 해설서를 쓰면서 그의 시에서 당대 과학의 흔적을 찾아내는 일은 쉬운 일이었다. “태양이라는 성운 모양의 별이 가라앉는다, / 만일 그들의 그 가설이 맞다면. (There sinks the nebulous star we call the Sun, / If that hypothesis of theirs be sound.)”(The Princess) 같은 구절에서 로키어는 “그들의 그 가설”이 라플라스 같은 이들을 언급하는 것임을 해설하였으며, 석양과 새벽, 흐린 날과 맑은 날의 태양빛을 세심하게 구분하여 테니슨이 묘사한 표현들에는 여러 대기 현상들의 차이에 관한 과학적 해설이 덧붙여졌다. 테니슨 사후에 오류로 드러난 일부 표현도 지적되었는데, 뱀이 노려보면 새들은 옴짝달싹 하지 못한다는 테니슨의 표현은 1907년에 발표된 최신의 과학 논문에 의해 정정되었다. 1846년 해왕성 발견이 1850년 테니슨의 시에서 다뤄질 정도로 테니슨 시는 당대 과학에 관한 배경지식 없이는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움을 로키어의 해설서는 보여주었다.
그가 선별하여 인용한 테니슨 시에 나타난 과학은 진보적이며 낙관적인 모습이었다. 과학은 아직 어린이 단계에 머무는 우리를 더 성숙한 단계로 인도하는 “안내자의 손(a hand that guides)”이었으며, 우리는 희망과 인내심으로 충만해야만 했다. 또 그런 과학 지식에 의해 덮여 있던 자연의 책은 마침내 펼쳐질 것이었다.
For me, the genial day, the happy crowd,
The Sport half-science, fill me with a faith,
This fine old world of ours is but a child
Yet in the go-cart, Patience! Give it time
To learn its limbs : there is a hand that guides. (The Princess)
The crowning race
Of those that, eye to eye, shall look
On knowledge ; under whose command
Is Earth and Earth's, and in their hand
Is Nature like an open book ; (In Memoriam)
특히, 테니슨의 시 「록슬리 홀」(Locksley Hall)의 한 대목을 “과학의 위대한 진보 가운데 대기에 대한 미래 지배”에 대한 노래라고 로키어가 해설한 것은, 태양흑점 주기와 기상 주기가 연계됐다는 당대 태양물리학의 가설에 의지해 “미래의 기상학” 구축을 꿈꾸었던 로키어의 신념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For I dipt into the future, far as human eye could see,
Saw the Vision of the world, and all the wonder that would be;
Saw the heavens fill with commerce, argosies of magic sails,
Pilots of the purple twilight, dropping down with costly bales;
시인에게 천문학과 지질학은 시심의 원천이었다. 테니슨이 우리 우주의 초기 발전 단계를 일러 표현한 “암흑 상태의 시작(blind beginnings)”은 항성과 행성의 세계뿐 아니라 지구와 인간의 발생과 진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으며, 이 때에 제기된 문제를 폭넓게 사유하는 그의 방식은 “천문학과 지질학의 밀접한 연계”에 대한 믿음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천문학과 지질학은 지고한 시성(Muse)이었으며 테니슨의 독특한 표현을 빌리면 “가공할 시성(terrible Muses)”이었다.
What be those two shapes high over the sacred fountain,
Taller than all the Muses, and hunger than all the mountain?
On those two known peaks they stand ever spreading and heightening.
Poet, that evergreen laurel is blasted by more than lightening!
Look, in their deep double shadow the crown'd ones all disappearing!
Sing like a bird and be happy, nor hope for a deathless hearing!
'Sounding for ever and ever?' pass on! the sight confuses -
These are Astronomy and Geology, terrible Muses! (Parnassus)
로키어가 보기에, 테니슨의 위대함은 그가 당대 과학에 기대어 정확한 시어를 쓰는 시인이라는 점 외에 “간결한 표현을 가장 적절한 시적 상상과 혼합하는(concise statement being ever blended with most exquisite poetic imagery)” 시인이라는 점이었다. 테니슨의 시는 “뇌와 심장에 모두 동시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과학과 시를 적절히 혼합할 줄 몰랐던 괴테와는 대조적으로, 테니슨은 “과학과 시가 병립하여 발전할 것임”을 보여준 시인이었다.
지고한 시는 지고한 지식과 연합해야 함은 당연하고도 맞는 말이다. 테니슨의 위대한 업적은 가장 충만한 시, 즉 가장 깊은 감정에 호소하며 인류의 가장 높고 폭넓은 지성에 호소하는 시의 기반들 가운데 하나를 과학 연구에서 공유함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서 테니슨은 과학과 시가 전혀 적대적이지 않은 채 영원히 나란히 진보해야 함을 보여주었다.
테니슨 시에서 “자연 현상들은 가장 진실한 시와 가장 정확한 과학이 혼합되는 언어로” 쓰였으며, 그 시는 천문학, 지질학, 기상학, 생물학을 비롯한 과학의 도움을 얻어 마침내 “완벽한 시가선(perfect poetic garland)”을 이뤄 자연(Nature)뿐만 아니라 인간본성(Human Nature)이 한 데 얽혀 있는 진리들을 보여주었다.
영국의 물리학자 올리버 로지(Oliver Lodge, 1851-1940)의 평가도 비슷했다. 로지는 테니슨의 시에서 자연의 사실 또는 거기에서 다뤄지는 과학의 지식에 대해 언급될 때마다 그런 언급이 언제나 만족스럽고 정확하게 다뤄졌다는 점을 무엇보다 먼저 지적했다. 그것은 “아름다운 정확성(beautiful accuracy)”이었다. 테니슨은 “시인이 형상의 아름다움만을 좇아 표상오류에 빠지거나 정확성을 희생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아름다움과 정확성은 “고상한 음악처럼 결합해 완벽한 언어(perfect words)”가 되었다. 로지도 역시 테니슨 시에서 정확성의 미학을 강조했다. 또한 로지는 로키어와 마찬가지로 테니슨이 당대 과학자들과 함께 호흡했던 시인이었음을 높게 평가했다. 로키어가 위대한 시성인 단테, 밀턴과 마찬가지로 테니슨이 당대 과학에 뒤쳐지지 않은 시인이었음을 강조했듯이, 로지는 테니슨이 “국외자(alien)가 아니라 이해하며 공감하는 친구로서 과학의 분위기 속에서 생활했다”는 기억을 강조했다.
이처럼 로키어와 로지는 테니슨의 시에서 자연과 인성, 과학과 시, 정확성과 상상력의 적절한 혼합을 보았지만, 이런 평가가 빅토리아시대에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오늘날 당대의 비평에서 낭만주의 시에서 이탈한 테니슨의 시를 바라보는 양극단의 평가를 볼 수 있다. 이 글의 관심사인 자연에 대한 과학과 시의 태도와 관련하여 살펴볼 때에, 그것은 주로 시인의 새로운 역할 모델, 시적 상상력의 본성에 관한 19세기 문학계의 논의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는데, 대체로 논쟁적인 것들이었다. 소설의 위협과 과학의 공격을 받는 시의 세계에서 시와 시인의 역할은 점차 변화했다.
빅토리아시대 시인론: 예지자에서 독백자로
브리스토는 1850년대에 시의 중요성은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가 위축한 배경으로서 소설 장르의 유행과 과학의 진전을 꼽았다. 소설과 과학이라는 산문의 공격을 받아 중심적 지위를 잃게 된 운문인 시가 새로운 자리매김을 하면서 시와 시인에 관한 여러 담론들이 생겨났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포시스도 비슷하게 천문학, 지질학을 비롯한 과학의 발전, 그리고 도시 산업화의 확산이 빅토리아시대의 시를 이전의 낭만주의 시와는 다른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리처즈는 빅토리아시대 시인들에 이르러 낭만주의 시인들이 지녔던 자연에 대한 열정, 특히 “윤리적이고 정신적인 힘으로서 자연”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렸다고 바라보았다. 거기에서 과학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 영향을 끼쳤다. 리처즈에 따르면, “과학은 이전 세기에 그랬던 것만큼이나 강렬하게 자연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켰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연과정의 기계적이고 화학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마술적 요소를 빼앗아버렸고 정신적 방향설정을 위한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자연에 대한 시선이 거둬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 태도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시인도 낭만주의 시인과는 다른 모습으로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브리스토의 구분에 따르면 이 시기에는 두 가지 시인의 모형이 있었다. 여전히 중심에 서고자 했던 영웅과 예지자로서 시인(poet as hero or prophet)이 그 하나이며, 이제 주변으로 물러난 시에서 고유한 예술 영역을 모색하고자 했던 시인(poet of the margins)이 다른 하나였다. 19세기 비평가들의 시 비평에서 이런 두 가지 시인의 모습이 어떻게 언급되지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영웅과 예지자인 시인의 모습은 이제는 잃어버렸으나 다시 회복해야 할 시인의 전통적 역할로서 부각되었다.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은 1840년 글에서 시인(poet)과 예지자(prophet)는 현대의 의미에서는 다르지만 본래 라틴어 바테스(Vates)라는 한 말로 불렸으며 이들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는 “열린 비밀(the open secret)”, 즉 “신적 신비(divine mystery)”를 꿰뚫어보는 사람들이라고 해석했다. 다른 이들은 다 잊어버린 것을 이들은 알고 있으며, 전언(Hearsay)이 아니라 통찰과 믿음으로 신적인 신비와 직접 소통하는 사람들이었다. 칼라일은 “바테스 예지자(Vates Prophet)”가 도덕의 측면에서 선과 악, 의무와 금지를 파악하며, “바테스 시인(Vates Poet)”은 미학의 측면에서 아름다움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보았다. 자연의 심장을 꿰뚫어보아 음악적 사유의 울림을 발견하는 깊은 통찰은 시인의 남다른 능력이었다.
우리는 시를 음악적 사유(musical Thought)라고 부를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사유하는 이가 시인이다. 밑바탕에서 그것은 여전히 지성의 힘에 기댄다. 그러나 그를 시인으로 만드는 것은 인간의 신심이며 시각의 깊이다. 충분하게 깊이 바라보라, 그리하면 음악적으로 보게 되리라. 그대가 거기에 이를 수만 있다면 자연의 심장은 모든 곳에서 음악적이다.
1840년 랄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좀더 분명하게 심령주의(spiritualism)의 관점에 서서 ‘예지자 시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에게 “시인은 말하는 자(the sayer)이며 이름을 짓는 자(the namer)이고 아름다움을 재현하는(represent) 자이다. 그는 주권자이며 중심에 서 있다.” 자연과 우주는 영혼의 외화(externalization)이며, “모든 형상은 성질의 외견(effect)”일 뿐이었다. 또 “우리는 자연의 비밀 앞에 서 있으며, 거기에서 ‘존재'’는 ‘현상’으로 나타나며 ‘단일성’은 ‘다양성’으로 나타[나기에]” 예지자 시인의 통찰은 외견을 넘어 깊은 시각을 지녀야 했다. 시가 만들어지고 시인이 탄생하는 데에 과학으로는 부족했다.
그러므로 과학은 언제나 인간의 고양과 나란히 나아가며 종교와 형이상학과 보조를 맞춘다. 즉 과학의 상황은 우리의 자기인식의 표지이다. 자연의 모든 것이 도덕적인 힘에 응답하기에, 어떤 현상이 잔혹하고 어둡다 해도 그것은 관찰자 안에 조응하는 능력이 아직 능동적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브리스토는 배럿 브라우닝, 로버트 브라우닝과 토머스 칼라일, 그리고 에머슨을 이런 예언자적인 시인의 역할을 강조했던 인물로 분류했다.
다른 한편으로, 시인은 전통적인 영웅과 예지자의 모습과 결별하여 시의 미학과 즐거움을 추구할 줄 아는 존재로 부각되었다. 신필드(Sinfield)의 해석에 따르면, 이는 공리주의적 태도였다. 즉, 시는 즐거움의 도구라고 바라보는 태도이다. 신필드는 “시는 그것이 현실의 생활조건을 언급하지 않는 한에서 공리주의적 세계의 가치 있는 일부가 되었다”는 점에서 “시는 주변화되었다(It is marginalised)”고 말했다. 시는 추상적 순수성과 미학적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1833년 글에서 시를 웅변과 구분하여 감정의 독백임을 강조했다.
시와 웅변은 모두 감정의 표출이거나 언설이라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대조할 수 있다면, 우리는 웅변은 듣는(hear) 것이지만, 시는 엿듣는(overhear)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웅변에는 청중이 있다. 그러나 시의 독특함은 시인이 듣는 이를 전적으로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 . . 모든 시는 독백(soliloquy)의 본성을 지닌다.
그는 1835년 에세이에서 시인이 철학적 진리를 추구한다면서 범하기 쉬운 오류, 즉 강력한 증거에 따른 결론이 아니라 매우 시적인 외양(most poetical appearance)만을 감싸려는 오류를 경계했다. 시인은 청중에게 그럴듯한 철학적 진리를 외치는 게 아니라 시적 외양을 버리고 자기 내면의 진솔한 미학을 독백해야 했다.
테니슨의 절친한 친구였던 아서 할람(Arther Hallam)도 정치웅변과 철학적 진리와는 거리를 두며 세속적 시인의 예술을 위한 예술을 강조했다. 시는 논리와도 다른 것이었다. 그는 시가 감정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진실하겠지만 논리적 분석에서는 진실하지 않을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시가 진리의 발견에 관해 비록 그릇된 기분의 상태를 불러일으키더라도, 시의 매혹은 마음을 성찰적 즐거움의 영역 안에 머물게 한다. 성찰적 즐거움은 철학적 심령을 자아내는 데 확실히 없어서는 안 되며 필수적이다. 요술이 우리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지도 모르지만 그릇된 것은 옳은 것에 이어져 있게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시인의 의무는 미학, 즐거움, 아름다움이었지 예지나 가르침은 아니었는데, 테니슨은 예지자와 정치웅변가로서 시인이라기보다는 이런 세속적이고 독백하는 빅토리아시대 시인의 전형에 가까운 시인이었다.
시인은 이제 자신의 감정을 독백하는 자였다. 이런 변화는 시인과 대중의 관계에서도 변화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포시스에 따르면, 이전까지 시인은 “영혼의 지평에서 길 잃은 여행자들을 도와 천상도시(Heavenly City)에 이르게 하거나 순진무구한 황금시대(Golden Age)의 잃어버린 정원을 되찾게 했던 전통적 안내자로서 신비하고도 불멸하는 목자왕(shepherd-king)의 유형”이었으나 이런 전형은 빅토리아시대에 변화를 겪었다. 대체로 19세기에 인간과 자연에 대한 태도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시인은 ‘신적 신비’를 직접 체험하는 예지자에서 외부세계에 대한 지식에 기반을 두고 개인의 시적 상상력을 고백하는 사람으로 변모했다. 시인은 외부세계의 웅변에서 마음세계의 독백으로 후퇴해 거기에서 자신의 미적 영역을 구축했다.
감정과 은유, 상상에 관한 시학 담론
앞에서 보았듯이, 시가 산문의 도전을 받으면서 시학의 담론은 시를 감정의 표출을 바라보면서 감정은 시의 고유한 영역으로 강조했다. 통찰과 예지를 지닌 예지자 시인은 점차 시인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감정의 독백자가 되었다. 시인의 역할모델에 관한 이런 논의와 더불어 시의 ‘진실성’은 어디에 있는지에 관한 논의도 19세기 중반 이후에 시 비평 분야에서 활발하게 벌어졌다. 시인이 독백자라면 시인은 시인은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시적 상상력이란 무엇이며, 시의 미학을 위해 그것은 어떻게 표출되어야 하는가?
상상은 중요한 화두였다. 존 러스킨(John Ruskin)은 이런 주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19세기 비평가였다. 그는 상상(imagination)과 환상(fancy)을 구분해, “전자는 시의 예술에서 위대한 모든 것의 원천이지만 후자는 단지 장식적이고 재미를 위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상상에 대해서도 “분별 있고 건전하며 유익한” 상상과 “기이하고 불건전하며 위험한” 상상을 구분하여 살피고자 했다. 그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저 나타나는 게 아니라 자연이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수형되고 덧칠될 때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아름다움의 대변자이며, 시인이 없다면 아름다움은 전해질 수 없게 된다.
미의 이런 원천들은 순수한 사본의 행태로는 아무리 위대한 예술 작업에 의해서도 표출되지 않는다. 미는 언제나 마음의 반영을 지니게 되는데, 미는 그런 마음의 그림자를 지나 마음의 상에 의해 수정되고 덧칠된다. 이런 수정이 상상이 행하는 작업이다.
러스킨은 상상을 연합상상(Imagination Associative or Combinative), 분석상상(Imagination Analytic or Penetrative), 성찰상상(Imagination Contemplative or Regardant)으로 쪼개어 그 기능과 조건을 분석했는데, 그는 예술의 상상도 분석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였다.
러스킨은 이어 1856년에 시에 나타나는 감정, 상상력, 은유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면서 상상력, 은유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주관성과 객관성을 명백히 구분하는 태도를 강조하면서 다른 사람은 다 지각하는데 당신 혼자서 지각하지 못하고서 주관적 상상을 하는 태도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는 아름답기만 하지 진실이 아닌 시 구절들이 호평을 받는 세태를 개탄해다. 한 사례로서 익사한 여인의 죽음을 비통해하는 킹슬리(KIngsley)의 시 「앨턴 로크」(Alton Locke, 1850)의 다음 구절, 즉 “그것들이 여인을 삼켰다 구르는 거품을 가로질러 ― / 저 잔인한, 구물구물 기어가는 거품이여”라는 표현을 비판했다. 그는 무생물에 감정을 이입해 생각하는 이런 태도를 아울러 “감상의 허위(pathetic fallacy)”라고 불렀다.
거품은 잔인하지도, 구물구물 기어가지도 않는다. 거품에 생물의 성질을 갖다 붙인 마음 상태는 이성의 추론(reasoning)이 비탄 탓에 흐려졌기 때문이다. 격렬한 기분(feelings)은 모두 동일한 결과를 낳는다. 우리 안에서 그런 기분들은 외부 세계에 대한 모든 인상들에 오류를 제공한다. 나는 이런 일반적 특징을 ‘감상의 허위’라 부르고자 한다.
러스킨은 감상의 허위가 “그 앞에 또는 그에게 주어진 것을 충분하게 다르기에는 너무도 약한 마음과 몸의 [기질(temperament)]” 때문에 생긴다고 말했다. “감정(emotion)에 의해 탈취된, 또는 흐려진, 또는 현혹된(over-dazzled)” 그런 것이었다. 그러므로 시인은 감상의 허위에 빠지지 않으려면 강한 지성을 갖추어야 했다. 지성이 강할 때에, 정념(passion)의 활동에 대항하거나 정념과 더불어 지성의 지배력을 지킬 때에 정념은 훨씬 더욱 장대한 조건이 된다. 러스킨은 이런 관점에서 인간을 세 계급(ranks)으로 나누었다.
감정을 지니지 않기에 바르게 지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 금달맞이꽃은 매우 정확하게 금달맞이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 꽃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감정을 지니기에 그르게 지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에게 금달맞이꽃은 금달맞이꽃 이외에 그 어떤 것이다. . . . 태양, 또는 요정방패 또는 버려진 처자 같은.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정을 지니면서도 바르게 지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 금달맞이꽃은 영원히 그 자체 이상이 아니다. 그 주위에 갖가지 연상과 정념들이 몰려들고 아무리 많다 해도 작은 꽃은 아주 꾸밈없고 잎이 많은 사실들로 이해된다.
러스킨은 강하고 약한 감정과 사유의 조합에 따라 시인의 지각이 달라지며, 이에 따라 계급(rank, order)이 달라진다고 보았다. 러스킨의 분류는 다음 <표>와 같은데, <표>에 나타난 세 부류와 더불어 그는 매우 강한 인간이면서도 더 강한 것에 종속된 예지자의 영감(prophetic inspiration)을 또 다른 네 번째 부류에 포함시켰다. 러스킨은 첫 번째 부류의 시인으로서 단테, 셰익스피어, 호머를 꼽았으며, 두 번째 부류의 시인으로 워즈워스, 키츠(Keats), 테니슨을 꼽았다.
think weakly
think strongly
feel strongly
second order of poets /
see untruly
first order of poets /
see truly
feel nothing
-
see truly
그러나 러스킨이 지성만을 시의 절대적 요소로 간주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등급의 시, 즉 감정은 강하되 사유는 약한 시도 독자한테 즐거움을 준다고 말함으로써, 시의 고유한 미학이 감정의 진실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글의 말미에서 자신의 논지를 “감상의 허위는 그것이 감상적일(pathetic) 때에 힘이 있고 그것이 허위적일(fallacious) 때에 유약하다”고 다시 정리했다. “그 기분이 진실함을 우리가 아는 한, 기분이 일으키는 것으로 인정된 시각의 허위를 우리는 관용하며 거기에서 심지어 즐거움을 얻을 수 있[지만]”, 기분의 허구는 버려야 했다. 이어 러스킨은 킹슬리 시가 주는 즐거움은 거품이 허구적으로 묘사됐기 때문이 아니라 시가 슬픔을 진실하게 묘사했기 때문임을 직시했다. 그러므로 화자의 마음이 냉담한 순간에 모든 은유 표현은 진실하지 않게 되며 “냉담한 피(cold blood)”의 상태에서 은유를 습관적으로 쓰는 일은 문학에서 가장 비천한 일로 인식됐다. 시인은 자연을 올바르게 바라볼 때에[“see truely”] 가장 위대하겠지만, 그르게 바라본다 하더라도[“see untruely”] 독자한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감정의 예술이었다.
감정과 상상에 조건을 두려는 러스킨의 시도를 1866년 로던 노엘(Roden Noel)이 조목조목 비판했다. 러스킨이 외부세계의 사실을 인식해야 함은 시인한테도 예외가 아님을 인정하면서도 시의 감정과 상상의 독자적 가치를 밝히려 했다면, 노엘은 시인의 마음세계에서 일어나는 것과 물리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임을 강조하고자 했다. 그는 “과학지식인(scientific man)은 사물 본래의 본성을 탐구하지만 시인은 결국 사물을 자신 앞에 나타나는 대로 묘사할 뿐이라는” 그릇된 대중적 가정(erroneous popular assumption)에 대해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시인과 과학지식인은 사물 현상에 나타나는 다른 특징을 묘사할 뿐이므로 “시인이 분별하는 유사성의 아름다움은 바닷물이 짜고 푸르다는 사실(fact), 거품이 하얗거나 회색이라는 점이 더욱 명백한 사실인 만큼이나 마찬가지로 사실(fact)이다”라고 말했다.
노엘의 이런 태도는 시와 과학, 시인과 과학지식인이 서로 중첩되기 힘든 ‘두 문화’의 영역(province)에 거주한다는 인식에서 비롯했다. 지성의 발전과 미학의 발전은 나름의 특징과 개성을 지닌 길을 걷는 것이었다. 과학지식인의 직무는 “물이 거품이 되고 거품이 파도 등을 따라 떨어지는 물리적 법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라면, 시인의 직무는 “사물의 이런 조건은 마음에 어떤 인상을 심어주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거품의 운동을 보면서 감각의 적확한 섬세함으로 아름다움을 면밀히 관찰하고 느끼며, 인간 심령의 기능과 상태에 대해서, 그리고 심령의 영역에 있는 어떤 유사함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물질적인 것들에 대해서 거품이 갖는 미묘한 관계들을 관찰하고 느끼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시인은 과학지식인이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바를 가르친다.”
노엘은 러스킨이 시를 일등급, 이등급, 삼등급으로 분류한 데 대해 강력히 반박했다. 아무런 느낌도 없는 사림보다는 거품이 잔인하다 느끼는 시인이 더 높은 지위에 있음을 러스킨도 인정했지만, 러스킨은 이보다 더 높은 등급을 상정했다. 러스킨은 지성의 힘으로 그릇된 감정을 통제하며 과거와 미래를 충분히 알기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완벽한 시인으로 이해했다. 이런 일등급 시인은 ‘조용히 서서 멀리 떨어진 채 감정을 그 자체로 바라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노엘은 이런 러스킨의 등급 분류가 불만족스러웠다. 킹슬리가 물에 빠져 숨진 여인을 향해 비통의 노래를 하며 “잔인한 거품”이라고 말했을 때에 그 감정은 “정확한 표현”이었다고 그는 반박했다. 그는 러스킨의 논지를 흉내 내어 “금달맞이꽃이 노란 금달맞이꽃이며 그 이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그것을 정확하게 알았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에 대한 감정, 사랑, 관심을 지니지 못하기에 그 이름 외에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공박했다. “감정 없는 판결은 종종 세밀한 감성의 내적 기관이 부족한 사람들에 의해 이뤄지는 무차별의 맹목적 판결을 의미한다”는 재판의 비유를 들어 그는 “세밀한 감성의 내적 기관”이야말로 진실한 판결의 요건이라는 논지를 폈다.
그렇다면, 시인과 과학지식인 모두가 자연의 현상만을 바라볼 뿐이며 진실은 누구도 확언할 수 없기에 시인은 과학이 제공하는 지성의 진실에 기대면서도 시인의 진실, 즉 감정의 진실을 노래해야 했다. 자연의 이해불능과 신비가 여전히 존재하면서도 과학과 산업화의 진전이 물질사회를 뒤바꾸어놓았던 19세기에 과학적 사실과 자연의 이해불능 사이에서 시인이 의지할 곳은 심령과 감정의 진실함이었다. “[킹슬리의 사례는] 이런 상황에서 나온 적절한 감정의 표현은 아닌가? 우리의 약한 의지와 이해불능의 밖에서, 특히나 우리에게 가차 없는 자연의 질서가 너무도 확고하고 완고한 때에 어떤 신비한 운명이 스스로 드러나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 때에 무구한 무지에서 우리는 종종 가차 없는 기계의 맹목적 소용돌이에 잡혀 옴짝달싹 못하지 않는가?” 이상의 논지에서 볼 때에 노엘의 주장은 시인을 등급 분류한 러스킨의 주장과 크게 달랐지만 감정의 진실이 시의 미학에서 중요함을 강조한 러스킨의 주장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다운 시에서 시인의 마음은 외부의 물질세계보다 더욱 중요했다.
한편, 노엘은 러스킨이 테니슨을 이등급 시인으로 분류한 데 대해 반발했다. “시인들을 일류, 이류, 삼류로 분류하는 것은 언제나 어느 정도 임의적일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는 “테니슨 같은 시인의 시에서 핵심과도 같은 성질을 약점이나 열등함의 지표라고 부름으로써 맘대로 처분하는 비평은 스스로 천박함을 의심받게 될 것”이라며 강하게 러스킨을 비판했다. 시와 과학의 차이를 강조한 노엘과 시와 과학의 만남을 기대한 로키어가 모두 테니슨을 높게 평가했는데, 둘은 같은 평가를 내리면서도 평가 기준에서는 몹시 대조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이제 테니슨 시에 대해 동시대를 문학비평가와 과학지식인들의 여러 다른 평가들을 살펴보자. 여기에서 우리는 테니슨에 대한 평가가 매우 다양함을 볼 수 있다.
테니슨을 향한 시학과 과학의 다른 시선
포시스는 테니슨 시가 시적 상상의 도약이라는 시인의 사명을 잃어버린 시대에 시인의 고충을 드러낸 것이라고 파악했다. 황홀한 순간에도 묘사의 정확함을 드러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테니슨 시에서 종종 공허함[“Vague Words!”]의 토로로 나타나거나 천문학과 지질학은 끔찍한 고충[“Astronomy and Geology, terrible Muses!”]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가 인용한 레즐리 스티븐(Leslie Stephen)의 1898년 글에서도 비슷한 평가가 이뤄졌다. 스티븐은 “테니슨이 「인 메모리엄」(In Memoriam)에서도 언제나 난파되어 떠다니는 판자조각에 매달려 그것이 자신을 지탱해주지 못함을 알면서도 전진하다가 가라앉거나 헤엄칠 기회를 선택할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사람 같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것은 무척 애처로움을 자아낼 만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뒤따르는 사람들한테 돌격함성을 보낼 수 있는 시인의 태도, 또는 그런 마음의 공포를 감히 대면하려는 철학자의 태도는 아니다”고 평했다.
그러나 19세기에 테니슨에 대한 평가는 호평과 악평의 두 극단에 이를 정도로 이질적인 것들이었다. 당대의 문학비평가들은 테니슨을 향해 “위대한 시인”이라는 평가부터 “삼류 시인”이라는 평가까지 극단적 평가를 내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비평계의 전반적 상황은 테니슨한테 절대적으로 우호적이었다. 오스틴(Alfred Austin)이 테니슨의 역사적 위대성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할 때에 당시 분위기에서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면 “중력의 법칙에 관해 의문을 표하거나 성경의 영성을 완전히 불신한다고 말하는 사람보다도 더욱 더 이단적으로 보일 것”이라고 다소 과장된 표현을 했을 정도로, 계관시인 테니슨은 당대에 확고하게 ‘위대한 시인’이었다.
이 글에서는 19세기 문학비평 글들을 모아 브리스토와 점프가 엮어낸 책 두 권에 나타난 당시 문학비평가들의 반응을 중심으로, 테니슨에 대한 평가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먼저 테니슨에 대한 호평으로, 도우던(Edward Dowden)은 테니슨이 “법칙의 위엄과 효율성에 대해 뛰어난 감각을 지닌” 시인이었다고 평했다. 테니슨의 신은 초자연이나 무아경의 상태에서 경험되는 게 아니라 우주의 물리·도덕적 질서에서 입법자로서 드러나며, 테니슨의 이상적 인간형은 “자기통제를 낳는 자기인식에 의하여, 그리고 자기존경에서 완벽하게 성장하는 자기통제에 의하여 자주적 능력을 획득하는 삶을 사는 사람”으로 드러난다는 게 도우던의 해석이었다. 테니슨을 강렬하게 예찬한 이는 심령주의에 심취했던 마이어스(F. W. H. Myers)였다. 그는 테니슨 시에서 심령주의 요소를 선별하여 인용하면서 그를 영적인 우주를 노래하는 예지자 시인으로 바라보았다. “우주는 무한한 방식으로 무한하다” “아마도 보이지 않는 세계는 보이는 세계에 선행한다” 같은 믿음을 드러내는 마이어스의 세계관은 당시 과학과 사회에 나타난 심령주의와 연관되어 있었는데, 그는 테니슨이 “발견되지 않은 위대한 것을 말할 목소리”, “웅변가와 사제 이상의 . . . 현자(sage)”로서 테니슨을 재인식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에 테니슨에 대해 낮은 점수를 매긴 비평가들은 주로 테니슨의 창조성, 즉 예술 창조의 원본성(originality)에 의문을 제기했다. 오스틴은 테니슨이 역사상 위대한 시인으로 치자면, 일등급, 이등급에도 끼지 못하며 “삼등급 중에서도 선두가 아니다”라고 평했다. 오스틴은 테니슨이 ‘당대와 호흡하는 시인으로서, 당대의 사랑을 받는 시인으로서는 제일의 지위에 있다’고 평하면서도 그것은 “응접실의 시일뿐이지 지구의 음악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1891년 콜린스(Collins)도 비슷한 근거를 들어 혹평을 했다. 테니슨은 새로움을 창작하는 시인이라기보다는 기존 작품들을 적절히 변형하고 다듬어 예술적 가치를 빛내는 이른바 “숙련된 원예가”의 수준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19세기 시인을 통틀어 평가한다면 “[위대한 고전으로서] 제1의 지위는 워즈워스, 제2의 지위는 바이런, 제3의 지위는 셀리한테 돌아가게 될 것”이며 테니슨은 고전의 반열에 오르더라도 그것은 “그의 언어를 말하고 그의 생각을 사유하는 사람들에게나 이해되는” 단편적 고전(Classics in fragments)에 속할 뿐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오스틴과 콜린스는 모두 테니슨이 역사상 위대한 시인의 반열에는 들지 못한다 하더라도 당대에 사랑을 받은 뛰어난 시인이었음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한편, 강한 지성과 감정을 갖추고서 지성의 지배 아래에서 조용한 감정을 관조하는 시인을 일등급의 완벽한 시인으로 여겼던 러스킨은 1856년에 테니슨을 강한 감정과 약한 지성을 갖춘 이등급의 시인으로 분류했다.
이상에서 보듯이, 당시 문학비평가들이 테니슨에 대해 내린 평가들이 이질적이었다. 다양한 평가는 문학비평의 특징이지만, 그런 평가의 차이는 평가 기준과 평가자의 시각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문학비평가의 평가는 과학지식인의 평가와도 뚜렷하게 달랐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테니슨과 당대를 함께 살았던 과학지식인으로서 로키어는 테니슨이 당대 과학의 진전에 뒤쳐지지 않았으며 자연을 탐구하며 정확한 시어를 구사하는 위대한 시인이라고 평가했으며, 로지도 비슷하게 테니슨이 당대 과학에 압도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을 마주보고자 했던 시인으로 기억했다. 로키어와 로지가 높게 평가한 바는 무엇보다 테니슨의 ‘당대성’과 ‘정확성’이었다. 반면에 테니슨을 낮춰 평가한 오스틴과 콜린스는 테니슨의 시가 당대인의 언어로만 이해되는 당대성에 매몰되어 역사적 고전이 되기 힘듦을 지적했는데, 이런 평가 기준은 로키어의 평가 기준과는 다른 것이었다. 즉, 과학지식인의 평가에서 호평의 근거가 됐던 부분은 문학평론가의 평가에서 악평의 근거가 됐다. 이런 점에서 시인 테니슨은 당대 과학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두 문화의 경계를 어렵지 않게 넘나들었지만, 이런 인물 테니슨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테니슨 시에 대한 문학비평가와 과학지식인의 평가는 기준 자체가 달랐다.
맺음말
지금까지 과학의 진전, 도시 산업화, 소설의 확산에 의한 ‘산문의 도전’에 직면해 빅토리아시대의 시가 크나큰 변화에 직면했으며, 이 과정에서 시와 시인에 관한 갖가지 담론들을 쏟아내며 새로운 시와 시인의 모습을 모색했음을 살펴보았다. 또한 “과학의 시인” 테니슨을 바라보는 당대 과학지식인과 문학비평가의 평가들을 통해, 테니슨에 평가들이 매우 이질적이었으며 때로는 ‘위대한 시인’과 ‘삼류 시인’을 오가는 극단적 평가의 모습마저 띠었음을 보았다. 테니슨은 일부 과학지식인의 눈에 당대의 과학지식과 사실의 언어에 기대어 ‘정확성’과 ‘상상력’을 조화시킨 뛰어난 ‘과학의 시인’으로 비추어졌으나, 일부 문학비평가의 눈에는 당대인한테나 이해되는 ‘단편적 시인’으로 비추어졌다.
이런 시선의 차이는 로키어가 테니슨한테서 “과학과 시가 나란히 발전함”의 기대를 나타냈을 때에 그것이 과학과 문학의 영역에서 전반적 동의를 얻기 힘든 과학지식인의 기대이었음을 보여준다. 사실, 과학과 인문학, 과학과 문학이라는 지적 문화의 간극을 좁혀야 한다는 주장과 기대는 스노우가 1959년 리드 강연에서 “두 문화”의 통합을 주장하기 이전인 19세기 후반부터 영국 사회에 나타났던 지적 전통 가운데 하나였으나, 두 문화의 간극은 로키어의 기대만큼이나 쉽게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은 아니었다. 오히려 테니슨 해설서에 나타난 로키어의 태도는 두 문화, 즉 문학과 과학의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시인은 누구인가? 이 물음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의 차이는 자연과 시인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로키어가 보기에, 뛰어난 시인은 과학자의 눈을 빌리거나 도움을 받아 자연을 바라본다. 즉, 자연과 시인 사이에 과학은 개입해야 하며, 그럴 때에야 시적 상상력은 정확한 것이 될 수 있다. 이에 비해, 칼라일 같은 이들이 보기에 예지자로서 시인은 자연과 직접 교감을 나누며 거기에 숨은 신비를 통찰하고 그것과 직접 소통하는 존재다. 과학은 자연과 시인 사이에서 불필요할 뿐 아니라 방해 요소가 된다. 또한 러스킨 같은 이들이 보기에 시인은 완벽함을 위해서는 지성을 갖춰야 하되, 그게 약하더라도 최소한 시인의 상상력과 은유에서 감정의 진실함을 추구해야 한다. 자연과 시인 사이에서 시인의 감정과 상상력은 용인된다.
테니슨은 위대한 시인인가? 테니슨에 대한 평가의 차이는 자연과 시인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와 관련한 것이었다. 로키어는 테니슨이 정확한 과학지식을 시적 상상력에다 실어 나를 줄 알았던 위대한 시인이었다. 테니슨은 당대 지식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았던 ‘당대성’을 갖춘 시인이었기에 탁월했다. 오스틴과 콜린스는 테니슨이 당대의 시인으로는 뛰어났지만 시 작품에서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당대에 매몰되었기에 역사상 위대한 시인의 반열에는 들지 못한다고 보았다. 테니슨이 “천문학과 지질학이 있노라, 가공할 시성이여(terrible Muses)!”라고 노래했을 때, 포시스는 과학에 의해 상상의 영역이 위축된 시인의 고충을 노래한 것이라고 해석했으나, 로키어는 천문학과 지질학이 테니슨 시심의 원천이었다고 해석했다. 테니슨이 실제로 얼마나 과학과 시의 영역을 넘나들었던 두 문화의 만남을 보여주었는지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문학비평가와 과학지식인들의 테니슨 평가에서 두 문화의 차이는 뚜렷하게 드러난다. 비어는 문학의 과학 수용 관계를 “기원보다는 교환을, 번역보다는 변형을 강조”해 바라볼 것을 주문한 바 있는데, 마찬가지로 시와 과학의 관계도 동일하고 단일한 기준에서 바라보려 할 때보다 각자의 고유한 미학과 독자층에 담긴 문화적 가치에도 눈을 돌릴 때에 오히려 상호이해에 좀더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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