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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 동행하는가(역대하 18장 1-3절) 240630 주일 설교
“친구 따라 강남 간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에게 끌려서 덩달아 하게 된다는 뜻.
‘근묵자흑’(近墨者黑)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말로, 나쁜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악에 물들기 쉬우니 조심하라는 뜻.
‘카멜레온 효과’ 카멜레온이라는 도마뱀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몸의 색깔을 주변과 비슷하게 바꾸는 것처럼 사람들도 주변 상황에 맞추는 경향이 있음을 일컫는 말.
사람은 비슷한 것을 먹고, 비슷한 것을 입는다. 이러한 현상을 유행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특정 장소에서는 드레스 코드를 맞추라는 요구를 받기도 한다.
문제는 옷 따위가 아니다. 사회적 지위나 취미, 심지어 감정까지도 영향을 받는다. 남자들이 흔히 이야기하기를 아무리 점잖은 남성들도 예비군복을 입혀 놓으면 비슷하게 함부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또래압력 효과’라는 말도 있는데 또래집단들에게 인정받고 동화되기 위해 압박을 받아서 그룹 친구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하게 된다는 것이다.
채널A <요즘 육아-금쪽같은 내새끼> 2024년 4월 6일 방송.
자녀의 고가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초등학교 5학년 외동딸을 키운다는 사연 작성자는 “딸이 30만 원 넘는 독일제 샤프를 사달라고 하더라. 반에서 이 샤프가 없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생일 선물로 사달라고 하는데 고가의 명품 샤프 속는셈 치고 사줘야 할까”라고 고민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장영란과 정형돈은 “말도 안 돼”라고 당황했다. 홍현희도 “평생 쓰던 필기구 모아도 그 정도 가격도 안 될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오은영은 “이 또래 아이들이 친구 따라 강남 간다. 다른 애들이 가지고 있는데, 내가 없으면 그 집단에 잘 못 끼는 느낌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은영은 아이에게 경제적인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은영은 “어른이 한 달에 자기가 버는 돈의 기준으로 봤을 때 30만 원이지만, 아이들은 버는 돈은 없지만 용돈이지 않나. 샤프 하나에 30만 원이면 아이들 경제 기준으로 봤을 때 굉장히 비싸다”라며 “아이의 마음을 먼저 공감해 주고 돈의 개념과 우리 집의 경제 상황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아이와 의논하는 게 맞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예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친구가 엄마를 따라 교회에 갔는데 그 교회에서는 목사의 안수를 받게 되면 쓰러지면서 온갖 병이 낫는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목사의 안수를 받으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쓰러지게 되었는데 드디어 엄마 앞까지 왔고 엄마도 예외 없이 쓰러졌다고 한다. 호기심이 많았던 친구는 기도회가 끝나자 엄마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를 물어봤다고 한다. 엄마의 대답이 ‘분위기상…’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자의든 타의든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우리 인간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주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기 마련.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될 수 있으면 영적 환경이 좋아야 신앙에 도움이 된다. 악한 인간들 사이에 있으면 아무래도 신앙이 흔들리고 변질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누구와 동행하는가, 누구와 교제하는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
오늘 본문의 여호사밧이 좋은 케이스. 여호사밧은 남 유다 왕국의 4대 왕(B.C. 872~848)으로 다윗 왕 다음 가는 선왕으로 평가되는 인물. 신앙이 좋았고, 나라를 잘 다스려 나라가 태평했다.
역대하 17장에는 여호사밧과 하나님과의 동행관계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도 여호사밧과 함께 했고, 여호사밧도 전심으로 하나님과 동행했음을 알 수 있다.
“3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4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그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더라 6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더라”
이 뿐 아니다. 여호사밧은 자신 뿐 아니라, 백성들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순회율법교사를 세워서 온 지역에서 율법을 가르치게 한다.
“7 그가 왕위에 있은 지 삼 년에 그의 방백들 벤하일과 오바댜와 스가랴와 느다넬과 미가야를 보내어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가르치게 하고 8 또 그들과 함께 레위 사람 스마야와느다냐와 스바댜와 아사헬과 스미라못과 여호나단과 아도니야와 도비야와 도바도니야 등 레위 사람들을 보내고 또 저희와 함께 제사장 엘리사마와 여호람을 보내었더니 9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그 모든 유다성읍들로 두루 다니며 백성들을 가르쳤더라”
이러한 여호사밧에게 하나님은 큰 복을 허락하신다. 역대하 17장 10절 이후의 기록을 보면, 블레셋이 조공을 바쳤고, 아라비아도 숫양 7,700마리, 숫염소 7,700마리를 조공을 바치고, 엄청난 대군을 거느리는 강력한 왕이 되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이러한 성공 이후에 잘못된 동행을 한다.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가까이 한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사악한 왕 아합과 동맹을 맺고 자녀들을 혼인관계를 맺는다. 결국 여호사밧은 악인을 가까이 하다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졌고 결국 큰 낭패를 보고. 심지어 목숨을 잃을 뻔 한다.
여호사밧의 실책은 한 마디로 악인과 동행한 것. 그가 어떻게 이렇게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는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
1절.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 그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우상 숭배를 타파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선 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는 말씀처럼, 아합과 사돈을 맺는다. 구체적으로, 그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인 아달랴와 결혼을 시킨 것.
왜 그랬을까? 다분히 세속적인 판단 때문이었을 것. 정략결혼을 통해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주변의 강대국들을 견제하려는 계산이었을 것.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실수를 저지른 것.
아합은 가장 사악한 왕이고, 특히 그 아내 이세벨은 이방 시돈의 공주 출신으로, 바알과 아세라 우상 숭배를 이스라엘에 들여온 인물이다.
여호사밧은 계속 아합과의 깊은 관계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2절. “이 년 후에 그가 사마리아의 아합에게 내려갔더니 아합이 그와 시종을 위하여 양과 소를 많이 잡고 함께 가서 길르앗 라못 치기를 권하였더라”
2년 후 북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 친선 방문했는데 큰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아합이 길르앗 라못을 치러 가자고 참전을 권한다. 길르앗 라못은 요단 강 동쪽 땅으로 본래 이스라엘의 영토였는데,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 왕 때 아람 나라에게 빼앗겼다. 그것을 다시 찾고자 전쟁을 벌이자는 것. 여기서 권한다는 단어는 유혹한다는 뜻으로도 사용되는 단어. 감언이설로 유혹하며 설득했다는 뜻. 그 말에 여호사밧은 속수무책으로 넘어간다.
그래도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아합의 제안을 수락하면서도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자고 제안한다. 4절.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오늘 물어 보소서 하더라”
하지만 아합 주변에 있던 4백명의 선지자들이 어떤 자들이었겠는가? 다 어용 선지자들이요 거짓 선지자들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정직하게 전하는 자들이 아니라 아합의 비위만 맞추는 자들. 그들은 무조건 아합이 승리한다고 거짓 예언을 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여호사밧이 왠지 찜찜해서 다른 선지자가 없는지 묻는다.
그러자 거짓 선지자들의 대표 격인 시드기야가 오버액션을 하면서 예언한다. 10절~11절. “10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11 여러 선지자들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승리를 거두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하더라” 철은 당시 가장 강한 금속. 뿔은 권세와 능력을 상징. 아합 왕의 능력과 권세가 대단하니 아람 나라를 거뜬히 격파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딱 한 사람 참 선지자가 있었다. 미가야는 갖은 협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서 계시를 받은 대로 정확하게 예언한다. 대하18:27 “미가야가 이르되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된다면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고 또 이르되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지어다 하니라” 아합이 반드시 참패하고 결국은 전사하게 된다는 것.
그러나 아합과 여호사밧은 그 예언을 무시하고 출전한다.
결국 그 전쟁에서 아합은 부상 당한 후 전사하고 여호사밧도 죽을 뻔했다. 대하18:28,31 “28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31 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아서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가게 하신지라”
위기의 순간 부르짖어 기도한 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도와주셨기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망신만 당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여호사밧! 그에게 선견자 예후가 그의 실책을 책망한다. 대하19: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인과 동행한 게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 지적한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으로 다윗과 비견될 선왕이었다. 그러나 그가 성공의 맛을 보고 더 큰 성공과 업적을 추구하다가 낭패를 본 것. 하나님과 세상,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을 흔히 혼합주의(Syncretism)라고 하는데, 구약 이스라엘의 문제였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양 다리 걸치기’다. 결국 실패하고 망한다. 고후6:14~16에서 바울은 단호하게 경고한다.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 ” 멍에를 멘 소가 덩치가 다르면 보조가 맞지 않아 곤욕을 치르다 결국 엎어지게 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가 벨리알(마귀)을 따르는 악인과 어울리면 함께 망하는 겁니다.
그래서 약4:4은 심지어 이렇게까지 표현한다. “ ...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세상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서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인 일.
그러므로 아무리 이익이 된다 해도 악인과 상종하면 안 된다.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평가받았던 여호사밧조차 넘어진 것을 기억하라. 누가 큰 소리를 칠 수 있는가?
오스왈드 챔버스,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 나오는 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향한 동정심을 핑계로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치는 그 어떤 행위들도 허용하지 마십시오. 거룩은 당신의 발걸음이 더럽혀지지 않는 것이고, 당신의 혀로 더러운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며, 머리로 더러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삶의 영역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심사를 거치는 것입니다.”
미국의 클리블랜드 대통령(22대, 24대)의 이야기. 그의 청소년 어느 주일 저녁에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고 도박장을 찾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도박장 부근에 작은 교회가 있는데 지나가다 교회 입구에 게시된 설교 제목을 보게 됐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 그 말씀이 그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그는 친구에게 “우리 도박장에 가지 말고 교회에 들어가 보자”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한 번 결심했으면 가야지. 교회라니 무슨 소리야?” 하며 거절합니다.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그 친구는 처음 작정한 대로 도박장으로 갔고, 클리블랜드는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그 날 저녁 클리블랜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로 헌신합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그는 미국의 2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반면 도박장으로 향했던 친구는 감옥에서 대통령 취임 기사를 읽으며 가슴을 쳤습니다. 클리블랜드가 그 날 밤 악인과 동행하다 돌아서지 않았더라면 인생이 어떻게 됐겠습니까?
우리는 의인과 동행해야 합니다. 다니엘 1장을 보면, 다니엘와 세 친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 가운데 귀족 출신 소년들이 왕궁에서 바벨론 식 교육을 받습니다. 영구 식민화를 도모한 겁니다. 그들에게 제공되는 음식 가운데 술과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가 나옵니다. 그대로 순응할 경우 자신들도 모르게 바벨론의 세속문화와 우상종교에 물들 가능성이 농후했습니다. 다니엘이 신앙 좋지만 소년의 몸으로 혼자 거부하기는 아주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나 세 친구들과 더불어 네 명이 의기투합하면서 대처해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셨습니다. 감독관이 채식을 허락했고, 그 후 그들은 다른 소년들보다 더 건강해졌고, 더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단1:16~17 “16 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17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잠언 27: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전4:9~12은 의로운 자와 동행하는 축복을 이렇게 노래한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한번은 신문에서 너무 아름다운 기사를 보았습니다. 연세대 남형두 교수와 조선대 특수교육과 김영일 교수의 이야기입니다.(조선일보 2012년 1월 28일자) 남형두가 서울 법대 2학년 재학 시절 교회 선배로부터 봉사할 데를 소개받았는데, 그 때 만난 사람이 바로 맹학교 고1 학생이었던 김영일입니다. 이른 바 무보수 과외 봉사를 하게 된 겁니다. 당시 맹학교 학생들은 대개 안마사 자격증 공부를 했는데, 대학 진학을 꿈꾸던 학생 중의 한 명과 연결된 겁니다. 이런 만남을 통해 김영일은 연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게 되었고, 그 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가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귀국해서 교수가 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김영일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남형두 선배의 격려가 큰 힘이 됐습니다. 한번은 정말 모든 것은 포기하고 싶었는데 바로 그 때 성탄 카드가 배달됐습니다. 남형두 선배가 카드에 써 준 성구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는 말씀이었는데, 그 말씀의 은혜로 소망을 갖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김영일 교수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의 인생에서 남형두 선배와의 만남은 그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2인3각 경기에서 둘이 하나가 되어 잘 달리려면 서로 보조를 맞춰야 하듯이, 신앙생활도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일생을 승리한 사람.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가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승리한다.
창39:2~3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하나님이 그와 함께했다는 것은 요셉 편에서 보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의미. 그는 도와줄 사람도 없고, 계속되는 고난의 시간을 맞이했지만, 하나님과 동행하여 결국은 승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시73:27~28 “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세계적인 기업 던킨도너츠의 창업자 월리엄 로젠버그의 이야기. 그는 공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1916년 보스턴에서 태어난 그는 14세 되던 해에 경제 대공황을 맞아 극한 가난을 겪었습니다. 주급 20달러를 받아 부모님을 모시고 힘들게 생활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21세가 되던 해에는 작은 회사의 지배인이 되었고, 30세에는 회사를 시작하고, 나중에는 사업이 크게 번창하여 도넛과 커피만을 주종으로 하는 던킨 도넛 매장을 곳곳에 오픈하게 됩니다. 그는 후일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몹시 어둡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의 동행자가 되셔서 늘 도와주셨습니다. 이게 바로 나의 성공 비결입니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나? 악인과 동행하지 않고 오직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
시1:1~3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145: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예화. 평소에 효가 뛰어나고 근검절약하기로 소문난 백성 3명이 궁궐로 뽑혀 올라갔습니다. 이들은 왕을 만나기 전에 상벌을 책임지는 관리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관리는 세 사람에게 묻습니다.
“이제 임금님께서 상을 내리실텐데 소망이 있으면 한 가지씩만 얘기해 보라”
백성 1 : “저의 소망은 집 한 채를 가지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소망은 없습니다.”
백성 2 : “저의 소원은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곡식을 창고에 채워 수시는 것입니다.”
이제 관리는 세 번째 백성에게 묻습니다. “그대의 소망은 무엇인가?”
백성 3 : “예, 저는 임금님께서 딱 하룻밤만 저희 집에서 유하시고 가신다면 가문의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자 주변의 사람들이 수군거립니다.
“아니 인생에서 다시 올수 없는 기회를 잡았는데 아깝게 되었구만.”
이 세 백성의 뜻은 임금님에게 전달이 되었고, 모두의 소원을 들어주시겠다는 윤허를 내렸습니다. 큰 집과 곳간을 가득 채우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룻밤 이지만 임금님이 묵을 그 집이 너무나 누추한 것입니다. 냄새가 나고 바람이 숭숭 드는 곳에서 어떻게 임금님이 잠을 잡니까? 또한, 문제는 그 집엘 가기 위해서는 좁디좁은 도랑 길을 건너가야 하는데 도저히 임금님의 행차가 불가능합니다. 어쩔 수 없이, 집을 고치고 다시 짓게 되었습니다. 모든 식구는 임금님을 맞이하기에 합당한 비단 옷으로 갈아입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가구가 바뀌고, 곳간이 채워지고, 주변의 환경이 정리되고, 널찍하게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미련한 자는 자신의 것을 채우려하지만, 겸손하고 현명한 자는 그분을 모시려합니다. 그분을 모시면서 따라오는 부수적인 일을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오시는 것만으로도 자신과 가정에 얼마나 큰 영광인지를 생각하기에, 그분이 오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우리의 삶에 동행자가 되시고, 우리의 인생 가운데 거하면, 그분의 영광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분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이 영광스럽게 바뀌게 될 것입니다.
누구와 동행할 것인가? 여호사밧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는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잠시 세상에 한 눈을 팔고 악인 아합과 동행할 때는 여지없이 실패하고 말았다. 이게 영적 원리다.
유명한 크리스천 개그작가인 전영호 씨의 책 <‘笑(so) Good>에 아주 재미있는 비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쥐 잡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날에는 모든 집에서 쥐약을 놓았습니다. 때로는 학교에서 잡은 쥐의 꼬리를 가져오라고 하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쥐를 잡기 전날에는 개들의 울부짖는 소리도 함께 들게 됩니다. 이유인 즉, 어느 집의 개 주인이 쥐약을 묻혀서 놓는 먹이를 가지고 개를 부릅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으려고 하면 주인이 사정없이 때립니다. 순간 개는 큰 배신감을 느끼지요. 꼬리를 흔들고 왔는데, 먹을 것을 준다고 불러서 왔는데, 먹자마자 때리는 주인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분한 마음이 들었겠지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주인이 부릅니다. 아까와 같은 먹이를 가지고 말입니다. 주인이 왜 때렸는지 이유를 모르는 개는 그 음식을 보자 군침이 돌고 다시 먹으려고 합니다. 그 순간 주인이 사정없이 또 개를 때립니다. 개 패듯이. 영문도 모르고 얻어터진 개는 이제 그 음식만 봐도 치가 떨리게 됩니다.
다음날 온 동네에 쥐약을 놓습니다. 그런데 하루를 지나고 나면 쥐만 죽는 것이 아니라 개와 고양이도 거품을 물고 죽어 있습니다. 오로지 개 패듯이 맞았던 개만 살아서 돌아다니게 됩니다.
전영호 씨는 자신의 삶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잘나가던 때, 돈을 좀 벌던 때, 이제는 작가로서가 아니고 사업을 하겠다고 거들먹거리던 때, 자신의 마음대로 세상을 살 것 같았던 때에 깨닫게 된 것이 있답니다.
세상을 다 얻고도 주님을 잃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사업이 망하고, 건강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얼마나 사랑하면 안 죽을 만큼 때렸을까? 그야말로 개죽음을 당할까봐 모질게 매질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그 학교 선생님 아들과 함께 절친하게 지내며 수업을 빼먹고 빵집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려서 학생부로 끌려가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학생부 선생님이 자기는 출석부로 몇 대 때리고는 훈계만 하는데, 그 친구는 죽지 않을 만큼 때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고 생각을 했답니다. 그런데 다음날 게시판에 그 친구는 특별지도 7일, 자신은 정학 7일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맞지 않는 것이 그렇게 후회가 되더랍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은혜를 깨닫고 나니까 그 정학 7일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고백이 되더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이 누구와 동행하느냐 하는 게 인생 승패의 갈림길이다. 부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과 동행하시고, 무엇보다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진정한 승리자가 되시기 바란다.(민찬기 목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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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