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초( 香草 )라는 걸 아십니까 ? 도대체 이게 먹어야 되는 풀입니까? 아니면 마셔야 하는 향입니까?
아내는 두 달 전 부터 이번엔 '향초로 만든 차(茶) 와 간단한 요리'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쉽게 말하자면 갖가지 훈의초와 꽃차로 만드는 차와 요리였다.
나는 평상시 집에 잘 전화하지 않는다. 아낸 늘 그걸로 원망을 삼지만 난 나대로 이유가 있다. 서로 구속하기 싫다는 거다. 내가 전화하지 않는대신 너도 별로 쓰잘데게 없는 일로 전화질 해대지 말아라 하는, 사실 난 전화란 구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전화에 대해선 할 말이 많지만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전화가 아니니 그만 하고, 어쨌든 내가 자주 전화하지 않는 만큼 바쁜내가 어쩌다 아내에게 하는 전화란 아주 급한 일이다. 그런데 아내는
핸드폰을 받자마자 지금 전화받기가 곤란하다며 좀 있다가 자기가 다시 하겠단다. 이럴 수가 있나, 난 얼떨결에 "응" 했지만 아주 기분이 나빴다.
이럴때 아내가 그런 소릴 들었을때 어떤 기분이었을까히는 걸 어림 잡으면 내가 아니다. 난 바쁜 사람이고 가장이고 그럴 권리가 있으므로.
어쨌든 아내는 한시가 좀 넘어 전화를 했다. 난 이상하게 오늘따라 낮잠도 오지 않았다(이곳은 점심시간에 자는 것이 습관인 나라). 그렇다고 아내에게 다시 전화 하기도 싫었다. 무슨일로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지 지금은 잊었다. 아내는 내가 한 시까지 낮잠을 자는 줄 알고 있었고 정확하게 내가 늘 낮잠에서 깨서 화장실까지 다녀오는 시간인 한시 십오분에 전화를 했다.
어디갔었냐고 묻는 내 말에 아내는 화차(花茶)를 배우러 갔었다고 했다. 화차를 마시러 갔었다고 하면 참 팔자 좋다고 한마디 핀잔하면 끝날 일인데 배웠다고 하는 발에 난 잠시 아득해 졌다.
"또 배워?"
"뭐가 또야?"
"그럼 또지 뭐야!."
이제 직장을 다니지 않는 아내는 여전히 집은 엉망으로 치우지 않으면서 나가 돌아다니기를 좋아한다. 직장을 그만 둔 초기엔 쇼핑을 다녔다. 뭔가 싸고 좋아 보이는 것은 다 사다가 집안에 재 놨다. 냉장곤 늘 만탱크 였고 베란다는 창고였다. 그러다 시내에 있는 여성회관을 발견하곤 그 곳에서 하는 일을 소개한 카다로그를 가져와 며칠을 연구하더니,
처음은 <양재>를 배우러 다녔다. 한 일주일 다니더니
재봉틀을 사야 겠다고 했다. 난 기특해 했다. 옷값 비싼데 아이들 옷이나 자기 옷이라도 해 입겠다는데 말릴 필요가 뭐 있으랴!
'착각은 잠시 피곤은 영원'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 아무도 말 한 사람이 없으면 내가 했다고 치자.
재봉틀을 사고 나선 집안의 모든 손 발이 달린 것들에 양말과 장갑을 씌우기 시작했다.
우선 식탁보를 만들고 의자의 등받이를 뒤집어 씌웠다. 의자에게 네 발이 있지 않은가 아내는 무척 할 일이 많았다.
각 방의 문고리가 앞뒤로 있는데 모두 장갑을 씌웠고 스위치마단 옷을 해 입혔다.
멀정한 휴지는 집을 만들어 가둬놓고, 오디오 테레비는 모자를 만들어 씌웠다.
집안에는 나오고 들어간 모든 것들이 옷을 해 입은 셈이다.
이제는 사람의 차례다. 때는 바야흐로 여름 옷은 안감을 해 넣을 필요가 없이 간단하게 오바록만 치면 옷이 정리가 된다.
우선 어린 딸 들은 간단히 실습 대상이 된다. 남방이며 반바지 긴바지 살 필요가 없이 수두룩 색색갈 셑드로 엄마까지 세쌍동이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선다.
속 모르는 남들은 아내가 재주가 좋고 부지런해서 좋겠다고 하지만 남편인 나의 속이 터지는 줄은 아무도 모른다.
그 옷을 만드는 동안 집안이 어땠으랴. 먼지가 풀풀 날리는 것은 고사하고라도
아마도 아침에 내가 출근하자 마자 시작했을 그 재봉질을 내가 퇴근할 때 까지 밥도 안하고 매달려 있는데 나더러 어떻게 참으란 말인가 가장이 왔으면 밥은 해 놓고 집안을 정리해 놓고 나랑 같이 놀아줘야 하지 않느냐 말이다.
아내는 그 동대문 시장 바닥같은 집안에서 나를 기다리게 한 저녁밥을 해 놓곤 내 눈치를 봐가며 또다시 매달린다.
그때 난 눈에서 불이났다.
다 집어 던졌다. 그 후론 다시는 집에 먼지가, 천 조가리가 날리지 않았다.
천만다행이다.
그 후론 지점토였다. 지점토로 만든 인형이 우리집의 인구밀도를 높이고 있었다. 스물 일곱평의 집이면 그리 좁지 않았는데 난 늘 좁게만 느껴젔다.
우리 집에는 일곱 난장이와 백설공주가 살고 있었고, 돼지 삼형제, 못난이 심형제, 신데릴라, 왕자와 공주, 가 살고 있었다. 지금은 다 기억못하지만
많은 동화속의 인물들이 나와 현실 적으로 같이 살고 있었다. 각종 잡지 꽂이에다 시계며 사진 틀까지 세워놓기엔 벽이 장식장이 너무 좁았다.
"언제까지 인구 밀도를 높일거야?"
"보기 싫어?"
"말이라고 해?"
"누구 줄 데 있으며 다 줘버려."
아내는 이후론 마르고 색칠 하는 데로 박스에 넣고 열심히 선물하는 모양이었으며 언젠가 그만 두었다.
다음은 뭐 였더라 , 그 다음에도 아내는 배우기를 끊임없이 했다. 지금은 요즘 한창유행인 花茶와 香草인 것이다
.....계속.... 2003/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