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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량'이란 도대체 뭔가? |
가장 먼저 이 '공부량'부터 짚고 가야겠습니다. 공부량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먼저 떠올리는 것은 '공부시간'입니다. 그러다 그냥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공부시간 말고, 내가 어떤 식으로든 공부액션을 실질적으로 취하는 시간을 말하는 '순공부시간'이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발전일까요?
아뇨. 공부시간이나 순공부시간이나 그게 그거고, 그래봤자 오십 보에서 한 걸음 더 간 정도입니다. 공부량은 시간단위로 측정되는 그런 게 아니니까요. <혼자 하는 공부의 정석>의 저자로 유명한 서울대 법학부 출신의 한재우 작가님은 공부법에 대한 팟캐스트 강연과 각종 저술활동 등을 통해 공부량을 공부시간으로 동일시하는 단순사고를 탈피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몰입도'의 중요성에 대해 각별히 강조를 하셨습니다.
이것을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그림으로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진짜 공부량은 단순 '순공시간'이 아니고, 아래 그림처럼 가로축을 순공시간으로 잡고 세로축을 집중강도(최대 100)로 잡았을 때에 노란색으로 칠해지는 부분의 넓이입니다.
공부를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 최고집중상태에 도달하는 커브를 생각했을 때, 그 커브로 둘러싸인 노란색 부분이 곧 순공부량인 거죠. 순공부량은 많은 분들의 생각처럼 시간 길이 같은 그런 1차원적 개념이 아니라, 이렇게 뭔가의 면적으로 나타나는 2차원적 개념입니다.
♣ 우리 주변에서 흔한 사례 살펴보기 |
여기, 두 명의 수험생 A, B가 있습니다. 둘 다 최고집중 상태까지 30분 걸립니다. A는 집중도를 최고로 끌어올리고 2시간을 공부합니다. B는 시작 30분 후 친구 카톡이 와서 대답하고, 30분 후 이웃의 SNS에 좋아요 버튼 누르고 댓글 달고, 30분 후 대댓글 알림 떠서 확인합니다. 그리고 2시간을 채웁니다.
A의 공부량과 B의 공부량은 각각 얼마일까요? 둘 다 2시간? 아니면.. 카톡 확인하고 대답, SNS 댓글 달고 대댓글 확인하고 기껏해야 1분씩이니, 117분 정도?
실제로는 이렇습니다.
한눈에 봐도 공부량에서 B는 A의 약 절반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이건 장애물이 30분마다 '규칙적으로' 있을 때를 가정한 것이고, 이번에는 현실에 좀 더 가까운, 그럴 듯한 케이스를 살펴보겠습니다.
24분에 친구카톡 알람 부르릉 와서 대답하고, 55분에 내 인스타에 댓글알림 부르릉 와서 대댓글 달고, 72분에는 아는 오빠가 야 저녁에 뭐하냐 부르릉 카톡와서 대답, 91분에 다시 휴대폰이 폭풍 부르르 부르르 부르르 하고 이젠 기습적으로 모임 단톡방에서 수다가 시작됐습니다. 아이구, 난 이런 거 못해. 공부 해야 돼. 폰 내려놓고 다시 공부합니다.
이게 모두 1분씩 걸린다고 치면 이 사람의 시계에는 순공시간 116분이 찍힐 겁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실제 공부량은 보시는 대로입니다. 노랗게 칠해진 부분을 보면 실제 공부량은 대략 A의 겨우 1/4 이나 될까말까입니다.
만약 이래 놓고 자기는 오늘 116분 공부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공부량에 대한 이해도는 아주 낮은 겁니다. 또 만약 이걸 알고선 휴대폰을 집에 두고 다니겠다는 사람한테 "으이그 인간아, 수석해서 전국제패라도 할 거냐? 카톡 대답이 30분이 걸려 1시간이 걸려?" 이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도 공부량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시간이나 길이 같은 1차원적 물리량으로 이해하는 데에 그치고 있는 겁니다.
♣ 시 사 점 - (1) |
이제 다시 위의 그림으로 돌아와 봅시다. 공부량이 많은 A는 30분의 예열 이후 계속 고원의 평지를 달리고 있고, B와 C는 내내 오르막길을 기어오르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가장 힘들까요? C>B>A 입니다.
수험생활에서 이 공부방해 요인을 통제하지 못해서 자꾸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람은 순공부량 자체도 적지만, 힘도 훨씬 더 들고 지칩니다. 수험생활 도중 이것저것 신경쓸 일을 만들고, 자기 생활을 단순화하지 못하며, 수험 외적인 부분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슬럼프로 중도에 낙마하는 사람들도 거의 이런 케이스입니다.
늘 끙끙 괴로워하면서 공부를 아주 힘들게 합니다. 오르막길을 뛰고 떨어지고 이것만 반복하니 당연히 힘은 더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엄청난 피로 누적과 정신력 고갈을 감당 못하고 슬럼프가 오면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하나 신기한 건, 그럴 때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하나같이 "나는 열심히 하다가 지쳐서 슬럼프가 온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더라는 점입니다(그리고 스스로도 진짜 그렇게 믿습니다).
슬럼프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사실 수험생활 속의 이 절벽요인 제거입니다. 누구나 슬럼프를 겪지만, 여기서 안되면 슬럼프는 그만큼 더 큰 무게로, 더 심하게 올 겁니다.
♣ 시 사 점 - (2) |
이제까지 우리는 공부량을 늘리기 위해 순공부시간을 늘리려는 시도에 그쳐 왔습니다. 어떻게든 공부시간을 더 뽑아내려고 잠을 줄이는 등 이런저런 방법으로, 면적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가로축을 잡아 늘이는 데에만 집착해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네 수험가에서도 '공부량'이라는 것에 대해 그간의 해묵은 1차원적 개념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합니다.
어떻게 공부량을 늘릴까요? 그렇습니다. 절벽을 없애야 합니다. 나도 모르는 새에 확확 떨어지는 저 절벽들만 없애도 내 공부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A처럼 공부했을 때와 B처럼 공부했을 때 내 머릿속에 실제로 저장된 정보의 양이 얼마나 차이나는지 직접 체험해서 비교해 보시고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절벽 두세 번 쭈루룩 떨어져서 실질적 공부량이 1/2로 1/3로 확 줄어드는 것에는 정작 무감각하면서, 타이머에 찍히는 공부시간이나 기상시간 취침시간 앞다투어 인증하는 것에는 어째서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민감한 것일까요?
♣ 맺 음 말 |
사법고시 출신의 모 강사님은 수험시절 휴대폰을 아예 없애셨다고 합니다. 전 그 정도까지는 못 되어서 휴대폰을 없애진 못했지만 도서관 갈 때 휴대폰을 집에 놓고 다녔고, 그 절벽이 싫어서 피자를 먹으면서도 피자 위의 올리브조각 새우조각 보면서 미시경제학 그래프의 점을 생각하고 있었고, 그 절벽이 싫어서 걸으면서도 샤프를 주머니에 넣고 쥐고 걸었고, 그 절벽이 싫어서 잘 때도 샤프를 놓지 못해서 쥐고 잔 적이 15~20번 정도 있었습니다. 도서관 식당에서 식판에 밥을 뜰 때는 여러 가지 반찬을 떠놓고 먹다가 이번엔 뭐 집을까 순간적으로 고민하는 것조차 싫어서 항상 마음에 젤 드는 한 가지만 왕창 떴습니다.
그런 행동이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고 없고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그 정도로 저는 이 절벽이 무서웠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러니 카카오 톡방이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SNS는 당시의 저에게는 정말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내가 공부량을 늘리려면 뭘 해야 하나?"보다, "내가 공부량을 늘리려면 뭘 하지 말아야 하나?"에서 답을 찾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오르막길이 아니라 고원의 평지를 달리셨으면 합니다. 내가 수험생활을 하면서 이상하게 힘이 많이 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생각되면 혹시 오늘 칼럼에서 말씀드린 이게 이유는 아닌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8. 12. 2.
by 잘하고있잖아
♣ 공부량은 측정될 수 없다. 다만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몸부림만이 있을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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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궁금한게 있는데요 몰입상태를 길게 가져가는건 개인 체력과 관계가 있을까요?? 저는 체력이 약해서 그런지 1시간 이상 공부시간(몰입) 지속되면 너무 지치더라고요 ㅠㅠ
체력 문제보다는 혹시 몰입상태가 아닌 오르막길 상태는 아니었을까요? 뇌과학적으로도 집중도가 어느 수준이 되면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어서 기분이 좋아지고 통증도 별로 못 느끼게 된다고 하기도 하고요. 실제로 체력 약한 사람도 자기가 흥미있는 것에는 장시간 잘 집중하고(ex:게임), 체력 강한 사람도 흥미를 못 느끼는 것에 붙잡혀 있으면 집중상태의 평지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무척 힘들어하기도 하니까요.
@잘하고있잖아 생각해보니 그럴수도 있겠네요.. 뜨끔합니다 ㅎㅎ 역시 통찰력이 남다르셔요;; 제가 생각한 몰입이 몰입이 아니었을수도 있겠어요ㅠ 공부계획을 시간단위로 나누지 않고 데드라인만 정해서 몰입을 잘 할 수 있게 해봐야겠어요!!
@파란불꽃 무척 힘들다가 가속도가 확 붙고 힘이 거의 안 들면서 뭔가 몸안으로 시원하게 흘러들어오는 느낌이 나는 시점이 있는데, 그거 모르는 사람한테는 공부가 계속 재미없고 힘들기만 하다가 눕고, 또 일어나서는 다시 힘들기만 하다가 눕고... 이거 무한반복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덜컥 슬럼프가 오면 그냥 포기해 버리고 말죠. 데드라인만 정해 놓고 내 몰입상태를 깰 수 있는 모든 것을 싹 제거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클럭에 찍히는 시간에 연연할 게 아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