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산 넘어 화양 반도의 아름다운 해변 걷는 남파랑길(#57~56)
2022년 5월 15일 (일) 날씨 : 맑음 기온 : 섭씨 9~23도
거리 17.8+6.2(24)km 6시간 동행 : 30명
서촌마을-시목재-대서이재-서연리마을-이목리마을-구미제-고봉산
-봉화산-원포마을-카페 안포-여수마린테라스-끌레르펜션-챌린지 파크 관광단지
-소장리마을회관-소장동 고개-화양우체국(나진마을)
<때로는 극복보다 버티기가 낫다>
최선을 다해도 위기가 찾아오는 것이 인생의 사실(fact)이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인생을 잘 꾸려나가는 데 있어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위기에 좌절하지 않고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선 옳다.
그런데 균형이 중요하다.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자세와 실제적인 목표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
내 감정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은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런 사람이 강한 정신(멘털)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감정은 자율성을 상당히 가지고 있고 나의 통제에서 튕겨 나가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내가 감정을 조정하려고 힘을 더하면 그 힘은 오히려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더 강하게 저항하기도 한다.
스스로에 대한 정확하고도 따뜻한 판단이 마인드 케어(mind care)에 필요하다.
극복하려고 최대치 노력을 하고 있는데도 부정적 감정이 남아있을 수 있다.
이는 정상적이다.
몸에 상처가 나면 회복에 시간이 필요하다. 빨리 낫겠다고 환부를 함부로 만지면 오히려 덧날 수도 있다.
마음도 똑같다.
맘에 상처가 생겼을 때 ‘회복해야지’ 마음먹는 것은 옳다.
그러나 따뜻하게 자신을 스스로 안아주며 기다려 주기도 해야 한다.
마음의 상처가 아무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윤대현-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 의학과 교수)
서촌마을
<서촌마을 진산 서이산을 넘어>
오늘은 스승의날이라는데 이젠 교육의 날로 바뀌어야 한다.
스승을 대하는 태도가 절망적인 시대에 새롭게 ‘교육의 날’로 바꿔서 도약과 발전 그리고 비전을 제시하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
남쪽으로 달리는 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세상은 연둣빛에서 진녹색으로 바뀌며 계절은 어느덧 여름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다.
남원과 구례를 지나 여수에 들어서면 제법 익숙한 바람과 마을 풍경에 젖는다.
많이 자란 옥수수와 마늘, 양파, 완두콩, 감자 그리고 마을마다 환하게 핀 꽃들이 이방인을 반긴다.
서촌마을을 품고 있는 서이산 자락 깊숙히 감아 도는 57코스 남파랑길은 산과 바다를 거듭 지나는 낭만의 길이다.
섬 숲길의 일부로 서이산을 한 바퀴 돌아 시목재와 대서이재를 지나 다도해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준다.
금계국이 핀 대서이재에서 바라본 자그마한 포구와 삼각형 구도를 이룬 안정된 풍광은 멋진 잊을 수 없는 그림처럼 아름답다.
남파랑길 걷기가 아니라면 언덕의 중간에서 서이산 정상에 오른 후 대서이재로 내려오는 산행도 멋질 것 같다.
팔영산
고흥반도와 팔영대교
호수 같은 남해의 잔잔함과 멀리 팔영산이 우아한 모습으로 바다 위 전망을 뽐낸다.
그 옆으로 남열 해돋이 해변과 고흥 우주 발사 전망대가 있는 우미산, 우각산이 형제봉처럼 우뚜하다.
작은 포구에 올망졸망 멋진 풍광이 모두 담기니 마을을 지나는 작은 발걸음이 더없이 행복하다.
팔영대교, 적금도, 낭도, 둔병도, 조발도를 화양반도와 연결한 연륙교로 이곳 지형과 문물은 엄청나게 변했다.
예전 낭도에 가려면 배를 타야 했지만 이젠 자동차로 쉽게 드나들 수 있다. 낭도 둘레길도 열려 인기라고 한다.
물앵두가 붉게 익었고 오디는 검지만 정말 달다. 오디 두 개를 먹었더니 달큰한 맛에 감흥이 새롭다.
마을을 지나는데 장미 넝쿨로 대문을 아름답게 정삭한 풍경에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알뜰하게 텃밭을 가꾸는 농부 모습과 작은 포구가 어울려 환상의 남해 바닷가 경치를 볼 수 있어 좋다.
커다란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쉼터를 제공하는 구미 마을을 지나 일행들은 구미제를 오르기 전 정자 쉼터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든다.
삼삼오오 모여서 준비한 음식과 맛깔나는 반주로 정을 나누눈데 미리 준비해 온 소라회무침이 인기다.
이젠 서먹하지 않고 농담과 위로 그리고 덕담으로 훈훈한 자리가 되었다. 서로 격려하고 보듬어 부산까지 함께 가면 좋겠다.
원포마을과 돌산도
<땡볕에 넘는 구미제와 원포마을 가는 길>
오늘 코스보다 더 가려는 마음에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구미제 언덕에 오른다.
큰 신작로를 따라 서서히 고도를 높이는 구미제는 생각보다 힘들고 까다롭다.
주변의 조망도 별로 없고, 아스팔트 길을 따라 오르는 언덕은 의외로 많은 땀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중간의 언덕에서 보이는 팔영산과 고흥반도의 모습을 본 후 이내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이 대비되는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야 고갯마루이다.
고개에서 고봉산과 봉화산 가는 길이 있는데 우린 큰길을 따라 원포마을로 향했다.
다른 팀들은 고봉산과 봉화산 봉화대를 보고 원포마을로 내려오느라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직진해서 그냥 마을로 갈까 산정으로 오를까를 궁리하는 일행들을 바라보며 나진마을까지 목적지를 잡았기에 내리막을 정신없이 달렸다.
바다 건너 대미산과 수죽산, 천왕산을 연결하는 돌산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오른쪽 앞쪽에 원포마을이 보이는데 몇 개의 섬들이 바다에 떠 있고, 파도가 전혀 없는 잔잔한 바다는 푸른 빛으로 낭만 여수를 듬뿍 담고 나그네를 반긴다.
커피집 ANPO
<덤으로 가는 화양반도 바닷길>
나진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원포마을을 지나 바닷가로 발길을 돌려 빠르게 56코스 남파랑길의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화양면(華陽面)은 여수반도 서쪽 최남단에 있는 면이다.
소라면(召羅面)과 마주하는 북쪽을 제외한 동·서·남 3면은 가막만과 여자만, 장수만 등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북쪽의 비봉산(飛鳳山), 서쪽의 서이산과 이영산(二影山), 남쪽의 고봉산(高峰山)과 봉화산(烽火山) 등 해발 200~400m의 산지 사이에 20여 개의 소하천이 농경지를 가로지르며 흐르고 있다.
해안선은 굴곡이 심하며, 연안의 바다는 갯벌이 발달한 지역과 갯벌이 없는 암반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커피집 안포(ANPO)를 지나는 고갯길은 아득했지만 조그만 포구와 아담한 집들 그리고 온갖 식물들이 자라는 포근한 남녘의 정취를 맘껏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조망이 좋은 곳은 새로 단장한 집들이 멋지게 자리를 잡았지만 그렇지 못한 가옥은 무너지고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폐가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바다가 잘 보이고 탁 트인 조망터는 여지없이 펜션과 건물이 들어설 공사가 한창이다.
어쩌면 경제적인 부와 생활의 넉넉함은 시골의 형태를 양극화의 심한 굴곡으로 향하게 할 수밖에 없다.
쇠퇴와 번영이 양립한다면 성장이라는 목표는 일자리와 삶의 질의 향상이라는 필연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화양반도 바닷가를 따라 걷는 길은 의외로 언덕과 헷갈리는 갈림길이 다수 있다.
정신 차리지 않고 걷다간 엉뚱한 길을 왔다 갔다 하는 실수를 할 수 있다.
또한, 중간에 음료수나 먹을거리를 구할 곳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미리 배낭에 준비해서 적당한 쉼터에서 조망을 즐기며 갈증을 해소하면 좋다.
멀리 여수와 돌산도가 망망한 바다를 품고 시야도 좋게 다가온다. 금방 갈 수 있으려나 착각할 정도로 거리감이 없다.
안포리(安浦里)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안정, 원포, 세포(細浦)마을을 합병하여 지어진 법정리 이름이지만, 안정리만을 이르기도 한다.
안정리의 순우리말 이름은 ‘안징이’인데, ‘안’은 사물의 안쪽이고 ‘징이’는 지역을 뜻하는 접미사로, '산으로 둘러싸인 안쪽 지역의 마을'이란 뜻이다.
여수시 발행 『마을 유래집』에는 ‘안정’을 한자로 풀이하여 ‘편안하고 고요한 마을이어서 이름이 지어 졌다.’라고 하였다.
여수반도 남서쪽으로 돌출한 화양면 남동부에 있는 안포리는 가막만의 남서쪽을 감싸 안은 해변 마을이다.
만으로 이루어진 포구마다 안정마을·원포마을·세포마을이 각각 들어서 있다.
너른 갯벌에서는 바지락이 많이 나고, 가막만 바다에서는 새조개·피조개·키조개 등이 많이 잡혀 어촌의 소득이 높은 마을이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굴구지 마을은 소장마을의 남동쪽에 있는 해안가 마을로, 마을이 해안으로 깊이 들어온 후미진 곳으로 굴(窟)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굴구지’라고 한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발통기미는 소장에서 굴구지로 가는 곳의 바퀴 모양의 해안이다. '발통'은 고기를 잡는 도구이고, '기미'는 해안의 어느 지역을 이르는 말로 금이, 구미, 기미 등으로 불리며 한자로는 금(金)으로 표기한다. 글자 때문에 금이 난다는 전설이 함께 하는 곳이 많다. [여수시 홈페이지-화양면 마을 안내]
언뜻 언덕을 오느니 발통기미, 소장마을 같은 전혀 낯선 지명이 버스 정류소와 마을회관에서 발견된다.
발통기미에서 소장마을로 들어서는 동네 어귀엔 영산홍과 금계국이 너무도 아름답게 피어 있어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담벼락엔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이 그려있어 임진왜란 때 소장마을이란 지명이 탄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소장마을
소장마을 담벽화
여수 작은 어촌마을 나진리에 속해있는 소장(小莊)마을이 있다.
나진은 바다의 깊이가 낮아 물이 빠지면 배가 다닐 수 없는 낮은 개란 뜻의 ‘나지개’가 본래의 마을 이름이었다.
80여 가구가 사는 소장마을은 어촌공동체로 이루어져 있고 홍합과 새조개, 가리비, 오만둥이 등 싱싱한 먹거리가 풍부해 '축복받은 땅'으로 불리고 있다.
가막만에 속해있는 이 마을은 미국 FDA에서 인정한 청정해역으로 전남에서는 고흥 나로도와 여수 가막만이 유일하단다.
이렇게 소장마을은 어촌마을 공동체로 바다와 함께 삶의 터전을 일구는 평범하고 열심히 살아가시는 인심 넉넉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나진리(羅陣里)는 바다의 깊이가 낮아 물이 빠지면 배가 다닐 수 없는 낮은 개란 뜻의 '나지개'가 본래의 마을 이름이었다.
『호구총수』에는 나지포(羅之浦)라고 하였으며, 1990년대 초에 발행된 『마을 유래지』에는 나진(羅陣)이라 하여, 비단같이 아름다운 포구여서 이름 지어졌다고 전하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나진, 소장, 웅동마을을 합하여 법정리인 화양면 나진리가 되었다.
동쪽은 가막만 바다가 있으며, 마을 앞에 있는 밤섬에는 백로와 왜가리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비봉산이 솟아 있어 ‘동저서고’의 지형을 보이며, 나진마을 남동쪽에 있는 굴구지 마을의 땅끝에는 바다로 길게 뻗어 나간 곶이 있다.
북쪽은 화양면 용주리, 남쪽은 안포리, 서쪽은 화동리와 접하고 있다.
화양면 면사무소 소재지로 파출소, 우체국, 농협 등의 관공서와 나진초등학교, 화양중학교가 있다.
남해안의 등대와 항로 표식을 관리하는 항로표지 기지창이 있으며, 여수권의 선박 조종 면허를 취득하기 위한 시험장이 운영되고 있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멀구슬나무 꽃향기도 새롭고 이름 모를 어촌의 담벼락을 휘돌며 한국 야생화와 남녘 식생을 만끽한 하루였다.
작은 포구마다 아담한 집들과 알뜰히 농사짓는 촌로의 부지런함을 눈으로 보는 걷기 여행이 즐겁다.
아름다운 화양반도를 따라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 그리고 곳곳에 자리한 주민들의 삶이 향토색 짙은 내음으로 감동을 준다.
걷기 트레킹의 묘미는 땀을 흘리는 즐거움과 대자연의 향기를 맘껏 느끼는 무아의 경지라 할 수 있다.
나진 슈퍼에서 산 캔 맥주를 한입에 털어 넣으며 갈증을 해소했던 하루의 말미가 너무도 멋졌다.
나진마을
첫댓글 마주하는 경치와 눈맞추며 달리기 하듯 걷기에만 집중했던 남파랑길 여정이 청산님의 마을유래등 세세한 설명과 사진이 곁들여지니 지리공부는 덤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