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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글의 주제였던 M60A1 가조립 상태로 진열장에서 몇달째 있는 놈을 한번 꺼내보았습니다.
언젠가는 본격적인 제작기를 만들어서 이곳에 다른 분들처럼 올리는 날이 오겠지요. 솔직히 지금도
가게 지하실 오피스에서 이글 쓰면서 조만간 꼭 새 콤프레써를 구입해야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오늘부터는 제2차 세계대전 유럽 전선에서 타이거1(많은 분들이 "티거"라고 발음하지만 뭐 그냥 전 영어식으로 발음하는 것이 편해서....) 탱크나 킹 타이거(타이거 2) 만큼 연합군 기갑병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지만 거대한 타이거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가 생산되고 전쟁 후반기에 투입된 반면 2차세계대전 초반서부터 종전 직전까지 가장 많은 수가 생산되었고, 실전에서 전공을 세웠던 모델들인 3호 전차, 4호 전차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위에 두개의 타미야 키트들 중에서 위에 4호 전차 키트는 일본 모델러가 쓴 "전차 모형 만들기"에서 사용된 키트이기도 합니다. 또 그 밑에 3호 전차는 함께 들어있는 독일군 장교 및 하사관 인형 세트와 함께 들어있어서 멋진 디오라마를 꿈꾸는 저 같은 초보자들에게 흥미로운 키트이기도 합니다.
사실 3호 전차 박스 아트를 보면 독일군들의 포즈가 매우 자연스럽고 생동감 넘치기 때문에 그런 기대를 가지고 박스를 열어 실제 인형들은 조립해놓고 보면 왠지 좀 뻣뻣하다는 느낌이 들면서 실망을 하게 됩니다만...... 어쨌든!
(3호 전차 키트의 타미야 작례, 특히 헬멧을 벗은 하사관의 포즈는 박스 아트
에서는 기갑병과 대화를 하는 듯한 분위기로 매우 생동감 넘치는데 실제로는
뭐 별로 생동감 느껴지지 않습니다..........)
미국에 사는 저는 이베이 덕분에 위의 두 키트들이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구입해서 후딱 가조립을 끝내놓았습니다. 특히 3호 전차(좌측)는 박스 아트에는 60mm 주포로 무장한 M형으로 나와있지만 75mm 단포신의 주포가 무장된 N형으로 만들어봤습니다. 미국 유명 모델러 잡지 "Fine Scale Modeler"에서도 금년 한해동안 3호 전차 N형을 가지고 서로 다른 두명의 전문가의 제작기가 몇개월 간격을 가지고 실릴 정도로 실제 작품으로 만들고 나면 무척 존재감이 느껴지는 "딴딴한 놈"입니다.
그런데 3호 전차, 4호 전차 설명하는 김에 아예 2차세계대전 시작부터 끝까지 나치 독일이 운용했던 탱크들을 좌악 족보를 꿰어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공부도 할 때 해야 한다고 이왕이면 얘기 시작한 김에 그냥 일사천리로 진도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중에 제작기 올리면서는 이렇게 차분하게 설명할 겨를이 있겠나 싶기도 하구요.
예전에 제가 올린 글들 중에서 한눈으로 2차대전 나치 독일 탱크들을 볼 수 있는 도표가 있습니다.
참고로 이 도표는 그냥 제 아이디어로 이렇게 만들면 참 이해하기 쉽겠다는 생각에 만들어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보시는 분들은 한번 보시면 한눈에 안들어오실지 모르겠지만 일단 맥을 잡으시려면,(밑줄 짝!)
*위에서부터 아래로 갈수록 헤비해집니다. 즉 맨 윗줄은 경전차(Small Tank), 이어서 중전차(Medium Tank), 이어서 Heavy Tank와 Super Heavy Tank(실전에 투입되지는 않았지만...)로 나뉘어집니다.
*실제 생산 개시 싯점을 봐도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순서라고 보면 크게 틀릴 것 없습니다. 즉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맨처음 제일 쪼그만 놈 만들어봤다가 점점 커졌다는 얘기이지요.
1.1호 전차(Panzerkampfwagen 1)
이미 한번 설명 드린바 있지만 Panzerkampfwagen이라는 단어의 뜻은 아주 단순 무식한 의미입니다. 즉, "Panzer"는 영어로 "Armor" 즉 "장갑"을 말합니다. "Kampf"는 "Combat" 즉 "전투"를 의미하며, "Wagen"은 폭스바겐과 같이 "차량"을 의미합니다. 즉 "장갑으로 둘러쌓은 전투할 때 사용하는 차량"이란 의미가 되겠지요. 그냥 "탱크"라고 부르면 될 것을 뭐 그리 길게 길계 늘여 설명해놓았는지.....
경전차로 분류되는 1호 탱크 시리즈는 2차대전 초기에 나치 독일의 독창적인 전술로 평가되는 "전격전"의 주력 전차 중 하나였지만 실제 그 위력은 빈약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최고 시속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고속인 시속 50km였고 비포장 도로에서도 37km로 주행이 가능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래 사진에서도 보시듯이 정말 자그마하고, 빈약한 장갑은 적의 기관총 사격에도 내부에 기갑병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독일은 1차대전 패전국인 탓에 제대로 무장된 탱크를 생산하는 것조차 승전국들이 허락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1차대전의 승전국이 된 프랑스를 포함한 연합군들은 거의 잔인하리 만큼 독일에게 앙갚음을 해대었는데 경제적인 제제와 전쟁 피해를 보상하라고 엄청난 보상금을 요구한 것은 물론이고 다시는 독일이라는 나라가 강력한 군사력으로 도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사사건건 참견을 하게 됩니다. 그 유명한 베르사이유 조약에 따라서 2차대전 발발 4년 전까지 독일은 변변한 탱크 한대를 보유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히틀러가 집권한 후에 다시 전쟁의 불꽃을 지피기 시작한 나치는 소련의 보호를 받으며 빈약하나마 탱크 개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결과물이 처음에는 달랑 기관총 두 정으로 무장된 장난감 같은 탱크인 1호 전차였고, 거의 이이서 개발된 2호 전차 역시 정말 아담하고, 빈약한 무장을 갖춘 수준이었습니다.
1939년 나치가 전세계를 경악에 빠지게 만들면서 폴란드 침공을 시작했을 때 이런 장난감 탱크가 "전격전"이라는 신조어를 만들 만큼 2차대전 지상전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전술적인 독창성이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폴란드 쪽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당시 폴란드는 아직까지 기병대가 주력을 이루는 구시대 전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전진해오는 독일 탱크들이 아무리 빈약한 화력과 왜소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파죽지세의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하지만 꼭 이런 의견이 맞는 가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습니다. 이글 말미에 따로 이런 독일 전격전에 대한 반론도 정리해놓았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드디어 유럽을 다시 불구덩이로 만들게 되는 2차대전의 시작은 이렇게 1호 전차와 아래에서 설명할 2호 전차를 시작으로 동쪽으로는 폴란드를 정렴하고, 서쪽으로는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시작합니다.
2.2호 전차
(이 키트에 포함된 보병 인형들은 별매로도 판매되었는데 타미야의 극히
초기 발매 인형 키트들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저도 초등학교 3학년때
어머님께서 미도파 백화점 프라모델 매장에서 사주셨던 제 생애 최초의
프라모델 키트였습니다.)
(탱크 실물 자체도 워낙 왜소하다보니 실제 조립해보면
미군 M3 스튜어트 탱크(아래) 못지않게 앙증맞은 느낌입니다.)
타미야의 2호 전차 키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오래 된 키트가 바로 위에 아프리카 보병부대와 함께 발매된 F/G형 키트입니다. 2호 전차의 개발 배경은 1호 전차와 3호,4호 전차 사이에 일종에 계투 요원이었던 셈인데 그런 탓에 1호 전차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장갑으로 폴란드 침공 당시에 폴란드군의 기관총 사격에도 무력화되는 코미디가 벌어지곤 했습니다.
프랑스와 폴란드 양 방향으로 침공을 거의 동시에 시작하게 된 독일은 1호에서 4호까지 네가지 시리즈의 탱크들을 모두 보유하고 있었으나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의 1호와 2호에 비교해서 아직 제대로 양산이 이루어지 않았던 3호와 4호는 비중이 적었던 탓에 부실함에도 불구하고 1호와 2호가 주력 전차 역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폴란드의 경우 위에서 설명했듯이 좀 부족하긴 해도 어쨌든 1호와 2호 정도의 장갑과 화력을 갖고도 제대로 기갑 부대가 구성되어있지 않은 탓에 제대로 방어해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꼴랑 기관총으로 무장된 1호 전차에 비해서는 20mm 지만 대포라고 부를 수 있는 화력으로 무장한 2호 전차가 그나마 전투에서 더 효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북아프리카 전선으로 확대되면서 2호 전차는 보병 작전의 정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빈번히 사막을 누비게 됩니다. 하지만 3호,4호 전차의 생산이 정상화되어 양산 체제로 들어가게 되면서 1호,2호 전차는 신속하게 뒷전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된 2호 전차)
토막 상식: "전격전"이란?
앞에서 전격전, 전격전 하는데 그것이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이냐고 물으실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오래 전 글에서 제가 설명 드린 바 있지만 다시 한번 발췌하면,(이하 제글 발췌)
(하인즈 구데리안 장군은 독일 기갑부대 창설과 전격전 전술을 만들었고,
롬멜과 같이 가장 뛰어난 히틀러의 장군들 중에 한명이었지만 전쟁 말기에
히틀러의 불화로 독일 항복 몇개월을 남기고 현직에서 해임된 후에
전쟁포로가 됩니다. 하지만 연합군들도 그가 순수한 군인으로써 전쟁을
수행하였다는 점을 인정하여 다른 전범들과 달리 전범 혐의로
기소를 하지 않았습니다. 종전 9년 후인 1954년 66세를 일기로 사망)
"전격전"(Bitzkrieg)은 나치 육군 기갑전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간단히 개념을 말하면,
1단계: 수투카와 같은 급강하 전폭기를 사용한 폭격으로 적의 통신 시설, 항공 시설, 보급로를 파괴한 후에,
(주인장 께서 제작 중이신 바로 그 "Stuka"는 전쟁 초기에는 급강하의
폭격의 파괴력 못지 않게 급강하시에 소름끼치는 굉음이 지상에 목표물
신세가 된 사람들에게 끔찍한 공포심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2단계: 공수부대가 후방에 침투하여 주요 통로를 확보하고,
(타미야의 빈티지 키트들 중에 하나인 독일군 공수부대 키트)
(전쟁 초기 실제로 독일 공수부대의 용맹은 전격전의
성공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3단계: 집중 포격으로 적진을 초토화시킨 후에
4단계: 신속한 기동력으로 기갑 부대가 적진을 뚫고 진격을 시작하게 되면,
5단계: 뒤 따르는 보병 부대들이 남은 적은 잔류 세력들을 제압하고 점령한다는.....
(1940년 4월 노르웨이 한 마을을 불태우는 독일군들.....
이것이 결국 "전격전"의 마지막 단계라는..... )
간단히 우선 공습으로 초토화한 후에 기갑 부대가 일단 돌파! 그리고 남은 적들은 뒤따라오는 보병들이 알아서 소탕! 이런 전술에서 위의 2호 전차 같이 날렵한 기동력을 보여주는 소형 전차들의 활약은 매우 효과적일 수 밖에 없었지요. 게다가 동부 전선의 경우 폴란드를 포함한 동구 국가들은 소련을 만나게 될 때까지 변변한 기갑 전력을 갖춘 상대가 없었으니까요.
이거 뭐 차근 차근 설명하다보니 글을 좀 길어졌네요. 여기서 일단 끊고 다음 글에서는 3호 전차로 이어가려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위에서 얘기했던 폴란드 침공에 대한 또다른 의견들에 대해서 소개해드리고 글을 마치겠습니다.(아래 글은 위키피디아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역사를 하나의 시각으로만 보는 것이 오류일 수도 있다는 좋은 예인 것 같아서 공유합니다.)
폴란드 침공에 관련하여 현재까지도 일반에게 잘못 유포되어 오해를 사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폴란드 기병대(Kawaleria)에게는 대표적인 창기병 연대 등의 명칭이 있었으나, 실제 이 부대에서는 75mm 야전포, 경전차, 정찰용 전차, 37mm 대전차포, 40mm 대공포 등 근대적이며 실천적인 병기를 장비하고 있어, 독일군의 전차, 참호 보병, 포병 등에 대해서 기마로 육박해 가는 “기병 돌격”을 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폴란드 기병대의 기병대는 통상 용기병(Dragoon)이란 기동 보병 부대 또는 정찰 부대로서 활약하여 돌격 공격은 지상의 보병에 대해서 드물게 벌어졌다.
예를 들어 9월 9일 북부의 2개의 도시 리프노와 파스투프 사이에서 도로 주변의 마을들을 방화하면서 이동하던 독일군 보병 대대 대열 측면의 언덕 위에 도착한 수바우키 기병 여단에 소속된 제1창기병 연대와 제3경기병 연대가 아군의 기총 사격에 따른 지원을 받으며 돌격을 감행해, 순식간에 육박해 사브르(sabre)와 랜스(lance)로 전투를 벌여, 혼전 속에서 총검으로 응전하던 적을 대혼란에 빠뜨려, 독일군 보병 대대를 항복시켰다. 도망친 독일군 병사는 같은 기병 여단에 속한 제2창기병 연대가 추격했다. 이 전투에서 폴란드군은 3명의 희생자가 생겼으나, 예부터 풍문으로 듣던 “폴란드 기병의 돌격”을 실제로 목격하여 공포 때문에 거의 발광하던 독일군 병사 200명을 포로로 잡았다. 독일군 병사에게는 약간의 희생자가 생겼다.
“폴란드 기병이 독일군 전차에 돌격을 감행했다.”라는 만들어진 이야기는 크로얀티 전투에서의 한 가지 일화를 가지고 널리 퍼뜨리게 되었다. 개전 직후인 1939년 9월 1일 포메라니아 지방의 크로얀티 도시 근교의 숲 부근에 있던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 휘하의 제14 기갑 군단의 좌익(북측)에 전개한 마우리츠 폰 빅토리안 중장이 이끄는 제20 자동차화 사단의 제76 보병 연대에 대해 카지미에시 마스테라시 대령이 이끄는 제18 경기병 부대가 “기병 돌격”을 감행해 이 숲을 확보했다. 그때까지 독일의 대군에 포위되었던 폴란드 제1 소총 대대와 체르스크 국가 방어 대대는 이 전투 동안에 포위망을 돌파해 퇴각하려던 시기 폴란드 측의 당면 목적은 달성되었다.
구데리안의 회상에 따르면 이 시기 폴란드 기병의 “돌격”에서 독일군 병사는 공포가 극에 달해 패닉에 빠져 원군이 개입할 때까지 제20 자동차화 사단은 더 이상 진격을 거부했고, 재편성으로 몇 시간을 허비하여 전술적인 일시 퇴각까지 검토할 정도였다. 구데리안은 기갑 병력 수송차로 원군을 보내 기관총 공격을 감행했으나, 이에 대해 마스테라시 대령의 기병은 이 숲에서 즉시 탈출했다. 그날 현지에서 이루어진 일련의 전투에 참가한 800명의 폴란드 기병 중 29명이 희생되었고, 퇴각 시에 몇 구의 시체가 현장에 남겨졌다.
다음날 독일의 몇 명의 종군 기자와 이탈리아 출신 2명의 저널리스트가 현지를 방문하여 폴란드인 시체와 죽은 말 그리고 실제로는 일련의 전투가 끝난 후에 도착한 독일군 전차를 보게 되었다. 여기서 이탈리아인 저널리스트 1명이 기사를 쓰고, 사브르와 랜스로 이 독일군 전차에 돌격한 폴란드 기병의 용감한 영웅적 행위에 대해서 기술했다. 물론 실제로는 이런 전차에 대한 돌격은 발생하지 않았고, 전투에 전차는 참가하지 않았음이 확실하나 이 만들어진 이야기는 독일의 대폴란드 선전에 이용되어 “근대적인 전차에 군마로 돌격한 폴란드인의 우매한 모습의 전형”으로서 전쟁 기간 동안 빈번하게 선전되었다. 전 후에 이 만들어진 이야기는 또 한 번 소련에 이용되어, 우둔한 폴란드군 상층부는 전쟁 준비를 하지 않고, 전차에 대한 돌격이란 무모한 행위를 감행해 병사의 생명을 헌신짝처럼 버렸다고 선전하게 만들었다.
많은 숙련된 폴란드인 조종사는 나중에 폴란드를 탈출해 최종적으로 영국에 도달해 영국 공군에 참가하여 영국 본토 항공전 등에서 활약했다. 영국 공군 제303 코시치우슈코(Kosciusko) 전투기 중대는 본토 항공전 개시 2개월 후에 폴란드인과 2명의 망명 체코인의 조종사로 편성되어 본토 항공전 기간, 영국 공군의 모든 전투기 부대 중에서도 가장 많은 126대의 적기 격추 기록을 세우는 용맹을 떨쳤다. 훗날에 출판된 《303 비행중대》란 책은 영국 국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독일 점령 하의 폴란드에서도 지하 조직이 이 책의 해적판을 수많이 출판하여, 많은 젊은이가 읽었다. 제303 코시치우슈코 전투기 중대의 최초 성공에 따라 많은 폴란드인 비행 중대가 영국 공군 내에서 편성되었다. 최종적으로 9개의 전투기 부대를 포함한 합계 14개의 폴란드인(혹은 주체가 된) 비행 중대가 편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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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이 좀 길어졌네요. 뭐 그래도 신문 사설 한편보다는 짧은 글이니 부담없이 읽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냥 올려봅니다.
따블오남편님 리뷰는 요약정리가 잘되있고 재미있는 리뷰랑 항상 즐겨보고 있는데 이번 리뷰도 참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사진도 오려 붙이고, 도형 잘라내고 표도 만들어야 하고..최소한 몇 가지 프로그램은 돌려야 할 것 같은데,
귀하신 시간 할애하셔서 이렇게 정성이 담긴 글을 올려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올려주시는 자료들을 모아서 엮으면 기가막힌 자료집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퇴근 후에 자세히 탐독해야겠습니다.^^
캄사합니더! 고수분들이 두분씩이나!!!!
수준이 다른 글인것 같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히 보겠습니다!
캄사합니다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타미야 킷들은 다 사야 될 것 같은 느낌이...^^
이제 머리속에 1호전와 2호전차는 확실히 감이 옵니다. 딱딱 들어 옵니다. 저는 티거라는 탱크가 그리 무거운 전차인줄 몰랐다능.. 나는 저넘이 좀 가벼운 넘인줄 알았는디... 어쨌든 그때도 따블오님 글 읽고 머리속에 기억해 두었다가 최근에 4호전차와 마더를 구매했습니다.
보기에는 4호전차가 티거보다 무거운 탱크라고 생각했는데 그럼 티이거가 4호보다 더 중량급 탱크인가요?? 음..그러고 보니 쟈드팬져도 구입했습니다. 음... 그러면 도표상 저는 티이거와 킹타이거만 갖추면 일단 저 도표에서 어지간히 구매는 마추네요.. 저렇게 한눈에 쏙 들어오는 표와
설명을 들으니 아주 이해가 팍팍!!!!
아...그리고 따블오님께서 이런식으로 쓴글 따로 모아놓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글들도 한데 뭉쳐서 보관할겁니다. 참 재밌습니다.
위에 보시듯이 Heavy는 重전차이고 Medium은 中전차입니다. 차체크기는 6호전차 판터와 별차이 없지만 티거의 차체무게가 57톤으로 판터보다 대략 12톤 정도가 더 무겁습니다. 장갑두께의 차이 때문이죠, 4호는 대략 25톤 나갑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무거운 티거의 평균 노상/야지주행속도 등의 전장기동성이 30톤가량인 셔먼보다 오히려 앞섰다는 것이죠. 셔먼이 티거보다 앞섰던것은 오직 등판능력(각도) 하나였습니다. 흔히들 무거우니까 기동성이 떨어지겠지 하는것은 사실과 다르다는것을 알 수 있고 바로 German Engineering의 승리라고 볼 수 있죠. 독빠를 만드는 이유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독재가 싫어님 추가 설명 감사드립니다.
타이거 시리즈들은 실제 2차대전에서 활약한 탱크들만 놓고 보면 가장 무겁고, 두껍고, 커다란 놈들이었죠. 그나저나 제글 재밌게 읽어주신다니 캄사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4.01.09 17:46
하하하 기억하시네요! 빅스 아트만 봐도 가슴 설레이던 시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