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전 해상기지로 해상교통로를 사수하라
1980년부터 점화된 이란-이라크 전쟁은 양측 합계 5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기록하면서 1988년까지 치열하게 계속되었다. 이라크는 이란의 유전지대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에 이란이 전면 공격을 가하면서 원유오염 사태가 발생하는 등 전쟁은 페르시아 만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1984년이 되자 양측은 상대국을 드나드는 유조선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공격이 가열되면서 유조선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시작되자, 페르시아 만 주변국들과 석유 공급의 대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는 서방측 석유 소비국은 긴장하게 되었다. 이른바 '유조선 전쟁(Tanker War)'이 시작된 것이다.
특히 1986년부터 이란이 기뢰와 실크웜(Silkworm) 미사일로 상선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하면서 긴장은 극에 달했다. 유조선 전쟁으로 1987년 봄까지 무려 325척의 선박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결국 유조선 전쟁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의 개입이 필요했고, 이에 따라 미 해군은 호르무즈(Hormuz) 해협을 통항하는 상선을 보호하기 위한 '어니스트 윌(Earnest Will)' 작전을 1987년 7월부터 실시했다.
어니스트 윌 작전은 페르시아 만을 항행하는 상선들을 미 해군함대가 호송하는 것이었다. 이런 호송임무의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기뢰였다. 기뢰로 인하여 수많은 상선이 피해를 입었는데, 이 기뢰들을 모두 제거하기에는 미 해군이 보유한 소해전력이 부족했다. 게다가 페르시아 만의 매우 좁은 해협은 소형보트의 기습공격에 취약한 상황이었다. 즉 미 해군과 같은 대양해군에게 유리한 지형조건이 아니었다. 실제로 미 해군의 제1차 호송 대상이던 상선 브리지튼(SS Bridgeton)이 1987년 7월 24일 기뢰와 부딪혀 손상을 입고 말았다.
정규병력만으로는 상황이 어렵다고 판단한 미 중동사령부는 어니스트 윌의 지원세력으로 특수부대를 긴급히 소집했다. 이에 따라서 미 육군 헬리콥터 특수부대인 제160항공분견대(TF-160), 그리고 미 해군 특수부대인 실(SEAL) 팀과 SBU(특수보트전대)가 급파되었다. 이들은 2주 만에 현장에 도착하여 상륙지원함이나 초계함을 플랫폼으로 하여 작전을 수행했다. 이렇게 특수부대의 투입은 극비로 분류되어 '프라임 챈스(Prime Chance)' 작전으로 명명되었다.
제일 먼저 도착한 TF-160은 1987년 8월 5일부터 임무를 시작했다. 최초로 파견된 부대는 MH-6 지휘통제헬리콥터 1대와 AH-6 공격헬리콥터 2대로 구성되는 콜사인 '시배트(SEABAT)' 팀 수개조였다. TF-160은 당시 헬리콥터 야간비행을 가장 잘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부대였다. 이에 따라 시배트 팀은 주로 야간초계비행을 담당하다가 이후에는 요청을 받을 시에만 출격하게 되었다.
최선의 대응책은 이란 해군이 기뢰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었다. 호르무즈 해협 한가운데 고정된 위치에서 헬리콥터와 소형 선박으로 초계임무를 수행하고 해군 특수부대와 해병대를 배치한다면 매우 강력한 저지수단이 될 수 있었다. 이런 고정기지로 활용하기에 군함은 적절하지 못했다. 1척에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군함을 기뢰의 위협에 노출하는 것은 현명한 조치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채택한 아이디어가 바로 이동해상기지(Mobile Sea Base)였다.
미 해군은 이미 해상기지를 운용해본 경험이 있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 해군은 강 위에 '시플로트(SEAFLOAT)'라는 해상기지를 띄워놓고 해상교통로에서 공산게릴라를 몰아냈던 것이다. 이동해상기지로는 대형 바지선 2척이 선택되었다. 석유시추용 플랫폼인 허큘리스(Hercules)와 빔브라운 7(Wimbrown 7)이 선택되었는데, 허큘리스는 길이 84미터, 폭 53미터에 달하여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크레인을 장착한 바지선이었다. 특히 바지선들은 식당 및 숙소 등 각종 편의시설과 헬리콥터 착륙장과 격납고까지 갖추고 있으며, 독립구조로 되어 기뢰의 폭발에도 쉽게 침몰하지 않는 요새와도 같았다.
이렇게 플랫폼 배치를 준비하는 사이 실전이 시작되었다. 1987년 9월 21일, 이란 해군이 운용하는 선박 아지르(Ajr)가 반다르아바스(Bandar 'Abbās) 항구를 출항했다. 아지르는 원래 차량을 운반하는 로로(Ro-Ro)선을 기뢰부설함으로 개조한 것이었다. 출항한 아지르는 미 해군의 호위행렬이 이동할 카타르 북쪽 해안의 항로에 기뢰를 설치하고자 했다. 22시에 미상의 선박을 발견한 미 해군의 초계함 재럿(USS Jarrett)은 MH-6 1대와 AH-6 2대로 구성된 시배트 팀을 출동시켰다.
출동한 시배트 팀은 아지르의 후방 200미터까지 접근하여 비행하면서 FLIR(전방 적외선 감시장치)를 통하여 선상의 동향을 몰래 관측했다. 당시는 달빛이 비추지 않아 헬리콥터의 야간감시임무에 최적의 상황이었고 이란 측도 미군이 감시하고 있음을 모르고 있었다. 22시 50분이 되자 아지르는 갑자기 소등을 하고 항로를 바꾸었다. MH-6 헬리콥터가 FLIR로 갑판을 살펴보자 선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원통형 물체를 나르고 있었다. MH-6는 기뢰 설치로 추정하는 활동이 진행 중이라고 본선으로 무전보고를 날렸다. 본선은 시배트 팀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다.
삼각 편대비행의 맨 앞에서 감시임무를 수행하던 MH-6가 옆으로 빠지면서, AH-6 1번기가 공격에 나섰다. 600~700미터 거리에서 1번기는 7.62㎜ 미니건을 발사하여 갑판 위의 선원들을 기뢰와 대공기관총으로부터 떨어뜨려놓았고, 200미터 거리에서 2.75인치 로켓탄 2발을 선수로 발사했다. 1번기가 소사 후에 사선에서 비켜나자, 2번기가 진입하면서 이번에는 갑판과 함교를 미니건으로 공격하고, 또 다시 선수에 로켓탄 2발을 쏘아 넣었다. 2번기의 공격이 끝나자 1번기가 재진입하여 로켓으로 조타실을 공격했다. 다시 2번기가 공격하려는 찰나 본선에서 공격을 중지할 것을 명령했다.
1번기는 공격이 끝난 후에 신속히 본선으로 복귀하여 연료와 탄환을 재보급했다. 이렇게 공격이 소강상태에 빠지자, 이란 수병들은 선상에 남아있던 기뢰 16발을 모두 투하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시배트 팀은 본선의 명령에 따라 남은 화력을 모두 쏟아부어 기뢰설치를 막고 선박을 운행불능으로 만들었다. 이란 수병들은 대부분 바다로 뛰어들어 도망쳤으며, 일부만이 남아서 어떻게든 배를 운행해보려고 시도했다.
시배트 팀은 재보급을 반복하면서 정선하고 있는 아지르를 감시했으며, 새벽이 되어서야 도착한 실(SEAL) 팀의 승선수색조에게 상황을 인계하고 본선으로 복귀했다. 수색 결과 이란이 국제수로에 기뢰를 부설했음이 밝혀졌다. 또한 시배트의 공격으로 이란 측에서는 5명이 전사했고, 26명이 미군에 포로로 잡혔다. 미 해군은 결국 9월 26일 아지르를 폭침했다. TF-160은 이렇게 어니스트 윌과 프라임 챈스 작전에서 최초의 전과를 올렸다.
한편 10월 초가 되자 드디어 이동해상기지들이 개조작업을 마치고 모두 일선에 배치되었다. MSB 허큘리스와 빔브라운 7은 각각 파시(Farsi) 섬 북단과 남단에 배치되어, 이란 해군의 해협 봉쇄에 대응했다. 한편 부시르(Bushire) 항구와 파시 섬 사이에는 이란의 소형 고속정 70여 척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란 혁명군은 아지르의 침몰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고, 그 복수의 대상은 미군의 해상기지인 허큘리스였다.
허큘리스에는 TF-160 시배트 1개조, 실 팀 파견대인 대서양 해군특수전기동부대(NSWTU-Atlantic), SBU-20/24팀 분견대와 PB Mk3 '시스펙터' 및 '시폭스' 고속정, 해병 경비소대 등이 배치되었다. 무려 2만 개의 모래주머니가 이곳에 배치되어 바지선 전체가 요새처럼 구축되고 있었다. 허큘리스는 페르시아 만 최북단에 위치한 미군 자산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의 방어책은 오히려 약해 보였다. 특히 허큘리스로부터 남쪽 25마일(약 40킬로미터)에 위치한 파시 섬에는 이란 해군의 기지가 존재했다.
허큘리스가 작전해역에 도착한 것은 10월 6일이었다. 정위치를 잡은 허큘리스는 이제 고정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현지어선 1척이 허큘리스를 계속 따라다니면서 수상한 모습을 보였다. 딱히 조업을 하지도 않고 있는 이 선박은 이란군의 정보수집자산인 것이 명백해보였다. 허큘리스의 지휘관은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감지하고, 적의 접근을 사전에 탐지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했다. 바로 청음초(聽音哨)1)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일단 이렇게 청음초를 설치하기 전에 인근의 적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허큘리스의 고속정들과 '시배트' MH/AH-6 헬리콥터들은 이틀간의 조심스러운 관찰 끝에 적의 행동양상을 파악했다. 즉 이란 측은 주간에는 해상의 석유시추용 플랫폼이나 인근 항구에 숨어 있다가, 야간이 되면 항로표시부이 인근으로 이동했다. 이 부이는 유조선에게 항로를 알려주는 장비로, 유조선의 길목에 버티고 있었다. 즉 이란에게는 최적의 사냥터였다. 따라서 청음초를 설치할 장소는 결국 이 항로표시부이였다.
Mk3 초계정 2척과 시폭스 고속정 1척이 좁은 간격으로 편대기동을 하면서 부이로 접근한다. 특히 강화플라스틱 선체의 시폭스가 초계정 바로 뒤에 붙어서 이동하면, 파시 섬의 이란 해군은 레이더로 시폭스를 찾아낼 수 없을 터였다. 이렇게 적의 눈을 속이고 부이로 접근한 시폭스에서 통신병이 전개하여 이란 혁명군의 통신상황을 감청한다. 청음초의 경계를 위하여 Mk3 초계정들과 시배트 헬리콥터들은 인근에서 대기할 것이며, 시폭스도 평소보다 무장을 강화한 채로 작전에 투입할 예정이었다.
10월 8일 저녁이 되자 허큘리스는 청음초 설치작전을 개시했다. 고속정 편대와 시배트 헬리콥터 편대가 기지를 출발하여 항로표시부이로 향하고 있었다. 한편 초계비행 중이던 미 해군 구축함 태치(USS Thach) 소속 LAMPS 헬리콥터가 부이 인근에서 의심스러운 활동을 발견했다. LAMPS 헬리콥터는 곧바로 허큘리스로 상황을 알렸다. 시각은 20시. 이에 따라 시배트 헬리콥터 편대가 고속정 편대의 현장 도착까지 4마일(약 6.5킬로미터)이 남은 상태에서 먼저 부이에 도착했다. 선도기인 MH-6 헬리콥터의 FLIR에는 이란 혁명군 소속의 고속정 1척과 단정(短艇) 2척이 식별되었다.
이때 갑자기 이란군 고속정이 선도기를 향하여 기관총을 발사했다. MH-6가 급선회로 기관총 공격을 피하자, 후위에 있던 AH-6 1번기가 곧바로 로켓과 미니건으로 이란군 편대를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단정 2척은 엔진이 폭발하면서 화염에 휩싸였고, 1척은 곧바로 침몰했다. 그러나 고속정만은 여전히 살아남아 회피기동을 하면서 기관총과 로켓을 난사했다.
AH-6 편대가 다시 선회기동을 하면서 고속정을 공격하려고 진로를 잡자, 고속정에서부터 갑자기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미군의 스팅어(Stinger) 대공미사일이었다. AH-6 1번기가 가까스로 미사일을 피하는 사이, 2번기가 재빨리 고폭탄 로켓을 고속정 좌현에 박아 넣었다. 고속정은 폭발로 흔들리면서 정장을 포함한 수명의 사상자를 내고 30초도 안 되어 침몰했다.
불과 몇 분간의 치열한 교전이 끝나자 Mk3 고속정 편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이들은 해상의 잔해더미 속에서 이란 수병 6명을 구조했다. 한편 구출작업을 수행하던 부사관 1명은 해상에서 익숙한 물건을 하나 건져 올렸다. 바로 스팅어 미사일의 배터리 케이스였다. 이란군이 아프가니스탄의 헤즈볼라(Hizbollah)를 통해 스팅어를 입수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보한 것이다.
이렇게 짧은 교전이 끝나가는 사이에 허큘리스 기지의 작전센터는 비상이 걸렸다. 레이더 스크린에 의하면 40마일(약 65킬로미터) 지점으로부터 무려 40여 개에 이르는 항적이 기지로 접근하고 있었다. 이란 혁명군이 40여 척의 포함을 출동시켜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보복기습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작전센터는 곧바로 이 사실을 해역사령관에게 보고했고, 미 해군은 곧바로 구축함 태치와 상륙함 롤리(USS Raleigh)를 급파하여 허큘리스를 지원하기로 했다.
한편 허큘리스는 곧바로 방어태세로 돌입했다. 허큘리스 소속의 시배트 헬리콥터들은 신속히 기지로 귀환하여 연료와 무장을 재보급하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한편 태치에 전진 배치되어 있던 또 다른 시배트 MH/AH-6 헬리콥터 편대가 허큘리스에 합류하면서 6대의 시배트 헬리콥터가 작전에 돌입했다. 헬리콥터 편대는 곧바로 이란 고속정 편대를 향하여 전속으로 비행, 주위를 선회하면서 위력정찰을 실시했다. 헬리콥터 편대의 위력정찰에 더하여 구축함 태치까지 작전해역에 도착하자, 기습의 이점을 상실한 이란군은 결국 퇴각을 결정했다. 이렇듯 허큘리스는 철저한 사전대비를 통하여 이란군의 기습을 물리칠 수 있었다.
10월 8일의 교전 이후 해상기지 허큘리스와 빔브라운 7은 미군의 최전방 작전부대로서 이란군의 움직임을 견제하는 주요한 수단이 되었다. 특히 1987년 10월 19일의 님블 아처 작전(Operation Nimble Archer)이나 1988년 4월 18일의 프레잉 맨티스 작전(Operation Praying Mantis) 등에서 해상기지의 특수전부대는 핵심전력으로 활약하며 유조선 공격에 대한 예방 및 보복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어니스트 윌 작전은 이란―이라크 전쟁의 종결로 1988년 7월에 종료했지만, 특수부대의 프라임 챈스 작전은 1989년 6월까지 계속되어 페르시아 만의 해상로를 확고하게 지켜냈다.
1. 적의 움직임을 눈으로 볼 수 없는 흐린 날씨나 밤에 소리를 들어 적의 행동을 탐지하려고 전방에 둔 초소.